print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금을 향한 원초적 본능] 국제통화질서 신뢰 흔들리면 금 매력 부각

[백프로의 환율 돋보기 | 금을 향한 원초적 본능] 국제통화질서 신뢰 흔들리면 금 매력 부각

달러화 하락해도 원화 기준 금 가격은 상대적 우위 가능성 높아
경제적 인센티브는 사람을 움직인다. 미식축구팀 샌프란시스코 49ers의 팀명은 1849년 골드 러시(gold rush) 때 일확천금을 노리고 캘리포니아로 몰려 든 노동자들에서 유래했다. 대개 도시 이름 뒤에 팀명을 붙이는 미국 프로 스포츠팀에도 예외가 있는데, 샌프란시스코를 연고지로 하는 NBA 농구팀 골든 스테이트 워리어스(Golden State Warriors)가 그렇다. 이 팀명은 캘리포니아의 별명인 ‘골든 스테이트’에서 시작한다. 이 ‘황금의 주(州)’라는 별명 역시 골드 러시 당시에 생긴 것이다.

금을 향한 사랑은 원초적이다. 유구한 인류의 역사가 증명한다. 시대와 민족, 문명을 초월한다. 미국의 달러화를 기본 축으로 형성된 현대의 국제통화질서에서도 달러의 신뢰가 약해질 때마다 그 반작용으로 국제 금 가격이 상승한다. 가까운 사례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를 꼽을 수 있다. 단지 금이 화폐로서 달러화의 지위를 언젠가 탈환할 수도 있는 후보이기 때문은 아니다. 국제 거래에서 금 가격의 척도는 달러화이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의 변동이 달러화로 표시되는 금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역으로 생각하면 국제 금 시세의 변동 즉, 금의 달러 가격 변동은 금의 가격이 변한 게 아니라 달러화 가치가 변동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원화로 거래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거래되는 금 현물 가격은 원달러 환율과 국제 금 시세 모두에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한국인 입장에서 금 가격을 볼 때는 원달러 환율과 국제 금 가격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 2019년에는 연평균 원달러 환율이 지난 10년 내 최고치인 1165원을 기록했다. 원화가 약세를 보이면서 상대적으로 달러화는 강세였다. 한편 2019년 연평균 국제 금 가격도 2013년 이래 최고인 1390달러(트로이온스당)를 기록했으며, 연말에는 1500달러에 육박했다. 물가 상승을 반영하여 현재 물가로 조정한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도 국제 금 가격은 상당히 높은 레벨이다. 원달러 환율과 국제 금 가격이 모두 상승한 것이다.
 이미 높아진 가격에도 여전한 금 수요
달러화와 금은 투자자들의 자산 포트폴리오 중에서 자산 가격 하락에 대비한 보험 성격의 대표적 안전자산이다. 그런데 이 자산들의 가격이 이미 많이 상승했다는 것은 가격적인 매력이 상대적으로 하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원화 자산 수익률 저하, 부동산 규제와 수요 억제 등으로 무려 1000조원에 달하는 유동자금이 투자처를 찾지 못하고 현금, 요구불예금,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등에 머물러 있다. 게다가 국내 투자자들은 상대적으로 지지부진한 코스피보다는 해외 자산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2019년 9월 말 국제투자대조표상 증권투자 잔액을 기준으로 국내 거주자의 해외 주식투자 잔액은 1년 전에 비해 14%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외국인의 한국 주식투자 잔액은 12% 줄었다.

한국 경제 상황에 부정적인 국내 일부 투자자들에게는 이미 높아진 가격이라도 투자에 큰 장애물이 되지는 않는 듯 하다. 특히 세계화의 수혜를 이끌었던 한국의 높은 대외 의존도가 이제 그 역류(逆流)에 직면했다는 현실은 향후 한국 경제에 어두운 면을 부각시킨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지 이미 10년이 지났고, 이를 성공적으로 극복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 처방은 미국·유럽·일본 등 선진국의 막대한 유동성 투입에서 비롯됐고, 이것이 필연적으로 자산가격 버블 논란과 과다 부채 논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음을 감안하면 금이나 달러화 같은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크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금과 달러화만을 비교할 경우 어떤 자산이 더 매력적일까. 짧게 본다면 달러화가 여전히 매력적일 수 있지만 길게 본다면 금의 매력이 높아질 수 있다. 우선 가격적인 특징만을 고려할 때, 금이 더 매력적이라고 볼 수 있다. 환율은 상대 가격이고 그래서 변덕이 심한 외환시장에서 현재의 달러화 강세가 꺾여 하락하더라도 원화 기준의 금 가격은 상대적으로 달러화 가격에 우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달러화 하락은 국제 금 가격의 상승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있기에, 단순히 원달러 환율의 하락에 따른 달러화 예금의 손실에 비해 원화 기준의 금 가격은 상대적으로 우위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대외 정책 때문에 달러화의 활용도가 낮아지는 측면도 있다. 미국이 일부 국가를 향한 경제 제재에 달러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달러화를 무기화하면서 러시아는 달러화 의존도를 크게 줄이는 대신에 금을 적극적으로 사들여 외환보유고에 편입했다. 중국은 달러화 베이스의 원자재 거래에 대항하여 위안화 기반 플랫폼을 내세웠다. 미국의 대(對) 이란 경제 제재에 동참하지 않는 국가들은 이란과의 거래에서 달러화 거래가 막히자 유로화 거래로 전환했다.
 미 재무부의 달러화 지급보증 신뢰, 영원할 수 없어
달러화에 대한 선호는 그 지급을 보증하는 미국 재무부에 대한 신뢰를 기초로 한다. 그런데 미국은 현재의 최강대국일 뿐, 미래에는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다. 나날이 가속화되는 기술 변화에 따라 세계 경제가 급속히 디지털 경제로 전환되면서 달러화 패권이 흔들릴 수도 있고, 심화되고 있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재정수지 적자+경상수지 적자)가 달러화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수도 있다.

결국 달러화를 견제하며 호시탐탐 달러화 위상 약화를 노리는 세력들의 존재, 변화 속도가 극적으로 가속화된 세상에서 나약한 인간이 직면한 불확실한 미래,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미국에 대한 신뢰 약화는 금에 대한 원초적 본능을 소환하기 좋은 여건이다. 달러화 기반의 국제통화질서 자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게 되면 금은 더욱 매력을 드러낼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최고의 자산은 달러화가 아니라 특정 암호화폐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그 변환 과정에서 직면할 과도기에는 금에 대한 원초적 본능이 다시 작동하지 않을까 싶다.

- 백석현 신한은행 외환이코노미스트

※ 필자는 신한은행에서 환율 전문 이코노미스트로 일하고 있다. 공인회계사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근무한 경력을 살려 단순한 외환시장 분석과 전망에 그치지 않고 회계적 지식과 기업 사례를 바탕으로 환위험 관리 컨설팅도 다수 수행했다. 파생금융상품 거래 기업의 헤지 회계 적용에 대해서도 조언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LGD가 해냈다…‘주사율·해상도 조절’ 가능한 세계 첫 OLED 패널 양산

2‘전기차 올림픽’에 LG가 왜 출전?…“영향력 상당하네”

3“포르쉐 안 부럽잖아”...중국 시장 홀린 스웨덴 폴스타

4미국 주택에 스며든 삼성전자 가전…건설사 ‘클레이턴’에 패키지 공급

5포스코그룹, 이차전지소재 사업 강화…‘실리콘 음극재’ 공장 준공

6 서울대·울산대·원광대 의대 교수들, 주 1회 휴진…‘의료 공백’ 심화 조짐

7페퍼저축은행, 제2회 페퍼저축은행배 전국장애인양궁대회 성료

8“극한의 기술 혁신”…삼성전자, TLC ‘9세대 V낸드’ 양산

9SK그룹 경영진 머리 맞대고 ‘리밸런싱’ 고민…최창원 “전열 재정비” 주문

실시간 뉴스

1LGD가 해냈다…‘주사율·해상도 조절’ 가능한 세계 첫 OLED 패널 양산

2‘전기차 올림픽’에 LG가 왜 출전?…“영향력 상당하네”

3“포르쉐 안 부럽잖아”...중국 시장 홀린 스웨덴 폴스타

4미국 주택에 스며든 삼성전자 가전…건설사 ‘클레이턴’에 패키지 공급

5포스코그룹, 이차전지소재 사업 강화…‘실리콘 음극재’ 공장 준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