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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공급 절실한데…상처투성이 재건축·재개발

[정비사업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①]
조합집행부 비위행위, 사업·분양지연 원인 돼
불투명한 운영으로 손해는 조합원·수분양자에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13일 오후 서울 강북구 미아동 미아 4-1 주택 재건축 정비구역을 찾아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현장 설명을 듣고 있다. 국회사진기자단
제20대 대통령 선거(3월 9일)가 2주가량 남은 가운데 유력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유력 후보들 모두 부동산 공약으로 주택 공급 확대와 과도한 규제 완화 등을 주요 골자로 내세우면서 재건축·재개발·리모델링 시장이 들썩이는 모습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도시정비사업 자체에 대한 더욱 근본적인 제도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도시정비업계에서는 지자체 및 공공기관과 정치권이 정비사업을 ‘집값 상승의 원흉’, 또는 ‘민간·임대주택 공급의 도구’로만 보는 이분법에만 갇혀, 수십 년간 이어진 구조적 문제에는 관심이 없었다는 볼멘 소리가 심상치 않게 들린다. 이번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 역시 원인을 찾아 해결하기보다는 단순 표심을 의식한 보여주기식 성격이 짙다는 지적이다.
 

‘조합 돈은 쌈짓돈’ 끝없는 조합 비리

서울 송파구 헬리오시티의 모습. [중앙포토]
 
실제로 이번 대선 후보들 공약 중 조합장 등 조합 집행부의 비위행위와 조합에 집중된 각종 이권 싸움을 해소할 수 있는 공약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동안 우리나라 도시정비사업은 조합 내부의 고소·고발로 인해 사업이 지연되는 일이 거의 모든 사업장에서 벌어졌다. 이로 인해 주택공급 차질 및 부실공사는 빈번히 발생했다.
 
2018년 말 입주한 송파구 가락동 소재 헬리오시티는 가락시영아파트를 재건축해 탄생한 9510가구 규모의 송파구 대표 신축아파트로 유명하다. 2000년 안전진단을 통과한 가락시영아파트 재건축은 총 사업비가 3조원에 육박했던 만큼 큰 이권이 걸린 사업이었고 조합 비위 문제로 여전히 해산을 못 한 채 진통을 겪고 있다.  
 
현재까지 구속, 또는 직무 정지된 가락시영재건축 조합장 및 조합장 직무대행은 3명에 달한다. 조합설립 초기부터 조합장을 연임했던 김모 조합장은 2016년 일감을 주겠다며 협력업체로부터 억대 뇌물을 받은 혐의로 검찰에 체포됐으며 이듬해 재판에서 징역형을 받았다. 김씨가 체포된 이후 조합장 직무대행을 맡았던 신모씨 역시 조합 임원으로서 김씨의 비리에 연루돼 구속됐다.  
 
2018년 임원 선거를 통해 선출된 새 조합장 역시 당선 당시와 달리 조합원들에게 추가분담금을 요구해 직무 정지된 상태다. 조합은 뒤늦게 8호선 송파역과 단지 내 지하통로를 만든다며 분담금을 늘리고 조합해산을 미뤄왔다. 해당 논란으로 ‘소유권 보존등기를 위한 총회’가 늦어지며 새로 입주한 아파트 소유주들이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소유권 등기가 나지 않은 집은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을뿐더러 매도를 할 수 없고 전·월세를 놓기도 어려운 점이 많다.    
 

늦어지는 사업, 커지는 비용  

헬리오시티 사례처럼 조합 갈등의 핵심엔 결국 재건축사업 이권 문제, 조합자금 유용문제와 사업지연 문제 등 세 가지가 얽혀 있다. 조합 집행부가 권력을 남용해 사업과 관련된 정비업체, 시공사 등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하거나 공적자금을 사적으로 활용하고, 이 같은 이권 등을 유지하기 위해 일부러 사업을 지연시키는 사례가 흔하다.  
 
21일엔 부산광역시 진구 소재한 재개발 조합장이 사업관리업체로부터 8번에 걸쳐 4억358만원을 받은 혐의로 징역 7년을 선고받았다. 해당 업체는 이 조합장에게 사업관리업체계약과 분양대행계약 등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에는 올해 서울 ‘재개발 대어’로 불리는 한남뉴타운2구역에서 조합장 해임안이 가결됐다. 이 과정에서 전 조합장이 자기 소유 건물에 조합 사무실을 임차하면서 보증금 12억원을 개인 통장으로 받은 점이 문제가 됐다. 일부 조합원들은 전 조합장이 개인적으로 사용할 현금이 필요해 조합자금을 유용한 것으로 의심하기도 했다.  
 

손해는 조합원·수분양자 몫, 법제도 개선 필요해

이 같은 내부 갈등에 소송전과 집행부 해임 및 신규 선임 절차를 겪다 보면 사업 진행은 더뎌진다. 2019년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이주를 앞두고 있었던 흑석뉴타운 9구역은 2020년 6월 전 집행부가 해임되고 이후 조합원 간 소송전이 이어지면서 착공이 미뤄지고 있다. 흑석9구역 사례와 달리 조합장이 연봉과 판공비, 사업 이권 등을 욕심내며 사업이 지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고스란히 조합원과 수분양자 몫이 된다. 조합과 사업자 간 짬짜미로 인해 사업비용이 늘 뿐 아니라 아파트 품질 역시 낮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연되는 기간만큼 금융비용도 커진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일단 사업이 신속히 진행돼서 분양을 빨리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한데 갈등을 겪으면서 지연되는 재개발 현장을 보면 답답하기도 하다”면서 “기본적으로 정비사업 조합은 사업 초기부터 차입금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금융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고 설명했다.  
 
서울 시내 한 재개발 비대위 관계자는 “지자체가 정비구역지정 이후 조합을 지원해주는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조합 집행부 감시나 비위행위 처벌 측면에서 손을 놓고 있는 측면이 있다”면서 “조합장은 물론 조합 이사나 감사 자격 기준을 높이고 조합 회계감사를 투명하게 하는 부분에 대해 더 힘써야 하지 않나 싶다”고 강조했다.      

민보름 기자 min.bore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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