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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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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업체에 기술자료 불법 요구한 아모텍에 과징금 철퇴

산업 일반

안테나 부품 등을 제조·판매하는 삼성전자 1차 협력사 아모텍이 법에 정해진 절차를 지키지 않은 채 하도급 업체에 도면 등 기술자료를 요구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로부터 제재를 받게 됐다. 8일 공정위는 중소업체에 별도로 요구서를 교부하지 않고 기술자료를 받으며 하도급법을 위반한 아모텍에 시정명령과 16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공정위에 따르면 아모텍은 2016년 1월부터 2018년 10월까지 10개 중소 하도급 업체에 e메일이나 구두로 안테나 부품 관련 도면 등 기술자료 38건을 요구했다. 그러나 아모텍은 기술자료를 요구하기 전 권리 귀속 관계, 비밀유지 사항, 대가 등을 정한 서면을 하도급 업체에 제공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도급법 제12조의3은 원사업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수급사업자에게 기술자료를 요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정당한 사유가 있더라도 기술자료 명칭, 요구 목적 등이 적힌 서면을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조치는 기계업종에 이어 전자업종에 대해서도 수급사업자로부터 제공받는 부품 도면 등이 하도급법이 보호하는 기술자료에 해당되며, 원사업자가 이를 요구하는 경우 기술자료 요구서를 제공해야 함을 명확히 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필수 기자 kang.pilsoo@joongang.co.kr

2022.02.08 15:35

1분 소요
[산업계 압박하는 원가공개 규제] 공정경제 앞세워 툭하면 “원가 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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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프랜차이즈·통신 업계 등 압박… 전문가들 “시장경제 포기하겠다는 발상” 비판 “원가 공개가 개혁적인가?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결국 벌고 못벌고 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경제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4년 6월 아파트 분양가 원가 공개를 반대하면서 발언한 내용이다. 그가 말한 소신은 산업계에서 요구하는 시장의 자율성을 대변한 발언이었다. 그런데 14년 여가 흐른 지금, 노무현의 후계자라 불리는 문재인 정부에서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최근 정부가 연이어 원가 공개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올해부터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대폭 늘리기로 했다. 프랜차이즈 업계에선 가맹사업자의 제품 원가 공개가 올 초부터 시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지난해 이동통신요금 원가 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발의됐다. 또 택배 업체가 택배요금 원가를 국토부 장관에게 신고하도록 의무화하는 법안 개정안이 입법예고됐다가 업계의 반발에 무산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원가 공개 규제에 대해 실효성이 떨어지고, 시장의 자율조절 기능만 마비시킨다고 우려한다.정부발(發) 원가 공개 ‘폭풍’에 휩싸인 대표적인 영역은 부동산 시장이다.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1월 15일 공공택지 내 공공·민간아파트의 분양가 공시 항목을 현행 12개에서 62개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지난 1월부터 개정안이 시행돼 토목비와 건축비 항목에 포괄적으로 들어 있던 조경 공사, 정화조 공사, 타일 및 도배 공사, 흙막이 공사 등 62가지가 세부 내역으로 표시된다. 땅값은 물론 건축비의 상세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 산하 SH와 경기도 산하 경기도시공사도 비슷한 수준으로 분양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기로 했다. ━ 프랜차이즈 차액가맹금 정보 공개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차액가맹금 공개가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4월 공정위는 가맹사업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가맹본부가 공정위에 제출하는 정보공개서에 차액가맹금 정보를 함께 공개토록 하는 것이 골자다. 지난해부터 가맹본부는 구입 요구 품목별 차액가맹금 수취 여부, 가맹점 1곳당 전년도에 가맹본부에게 지급한 차액가맹금의 평균 액수, 가맹점 1곳당 전년도 매출액 대비 차액가맹금의 평균 비율, 주요 품목별 전년도 공급 가격의 상·하한 등을 공개해야 한다. 정부는 당초 가맹점주가 본부로부터 반드시 사야 하는 ‘필수품목’ 가격을 전부 공개하려 했다. 하지만 반대가 거세지자 지금은 매출액 기준 상위 50% 상품으로 한정했다.이동통신 업계에는 이미 정부의 원가 공개 후폭풍이 불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2세대(2G)·3세대(3G) 통신비 원가 자료를 공개하라”는 대법원 판결 후 자진해서 LTE 원가 자료까지 공개하기로 했다.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는 지난해 8월 정부로부터 받은 2004년부터 2016년까지 이동통신 3사의 2G, 3G, LTE 원가 관련 회계자료와 인가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면서 SK텔레콤 등 이통사가 막대한 초과이익을 거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통 업계는 모호한 기준에 따른 주장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국회에는 통신비 변경 때 소비자 및 시민단체가 참여하는 심의위원회의 인가를 받아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도 발의됐다. 한편 정치권 일각에서는 스마트폰 출고가 인하를 위해 제조 원가를 공개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은행 가산금리 원가내역도 뜨거운 감자다. 지난해 금감원 조사에서 일부 은행들이 가산금리 인하 요인이 발생했음에도 인하하지 않고 수년 간 고정값을 적용하거나, 산출 근거 없이 불합리하게 가산금리를 부과한 사례 등이 적발되면서 금융당국이 대출금리 산정내역 공개를 추진하고 있다.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지난해 7월 ‘은행권 대출금리 중에서 가산금리(원가 내역)도 공개해야 하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어느 정도 들여다보는 것이 맞다”고 답했다. 그는 “은행들의 영업 노하우나 기밀사항을 건드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은 유념하겠다”고 단서를 달긴 했지만 ‘대출금리 모범규준’을 개정하겠다고 언급하는 등 가산금리 체계를 손댈 의사를 직간접적으로 밝혔다.윤 원장은 보험상품의 사업비(수수료)와 사업비를 감안한 실질수익률 공개도 공론화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소비자가 보험상품을 제대로 비교해 선택하기 어려운 것도 불완전판매가 많은 이유 중 하나”라며 “소비자들이 보험료의 어느 정도가 보험사의 사업비로 쓰이는지 알고 보험상품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비 공개가 보험상품에 대한 소비자 신뢰를 높이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현재 사업비가 공개되는 보험상품은 저축성보험과 자동차보험뿐이다. 저축성보험은 전체 납입보험료의 약 8~15%, 자동차보험은 18% 전후가 사업비로 나간다. 종신보험·암보험·어린이보험 등의 보장성보험은 사업비가 공개되지 않는다.물류·운송 업계에서는 택배요금을 두고 정부가 나서서 무리하게 원가 공개를 요구했다가 민간의 반발에 흐지부지되기도 했다. 지난해 5월 국토부는 화물을 집화·분류·배송하는 운송사업자(택배 업체)에도 신고요금제를 도입하는 ‘화물자동차 운수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을 추진했다. 택배요금을 택배 업체가 국토부 장관에게 신고하는 것이 골자다. 이를 통해 단가(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해 택배 기사들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입법예고 후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법제처 등 관계기관 협의에서 택배요금 신고제는 없던 일이 됐다.최근 정부의 강제 원가 공개는 산업을 막론하고 전방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가 원가 공개 카드를 꺼내면서 내세우는 이유는 비슷하다. 원가를 공개해 소비자가격을 내리겠다는 것. 다른 제품과 비교하거나 공개 내역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쉬워져 결과적으로 제품 가격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이른바 ‘갑을’ 관계를 이용해 이득을 내는 관행을 없애겠다는 목적도 있다. 프랜차이즈 차액가맹금 공개에 대해 정부는 “그간 본부-점주 간 물품 공급 계약에서 마진과 관련된 정보가 없었다”며 “정보가 상대적으로 부족한 ‘을(乙)’인 점주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시장 가격 낮추고 갑을 관행 해소하겠다지만… 그러나 규제 대상이 되는 사업자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이들이 항변하는 근거도 크게 다르지 않다. 먼저 반시장적 규제라는 측면이다. 원가에는 비용 절감을 위한 기업의 경영전략이 녹아 있는데, 이를 밝히라는 것은 기업의 핵심 비밀을 공개하라는 뜻과 마찬가지라는 비판이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개인과 국가에 사생활과 국가 기밀을 보장하는 것처럼, 기업에게도 최소한으로 보장돼야 할 영업비밀이 있다”며 “이 영역을 침해하는 건 시장경제를 포기하겠다는 것이고, 경제를 망가뜨리는 무책임한 행위”라고 비판했다. 조 교수는 이어 “가령 통신요금의 경우 마케팅 비용처럼 일정 수준의 정보는 공개할 수 있겠지만, 원가 같은 경우는 도를 넘어선 영역”이라고 말했다.이윤 낼 여지를 주지 않으면 기업활동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문철우 성균관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가를 절감해 경쟁력을 높인 업체에 정부가 나서서 페널티를 주는 격이고 이윤을 죄악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원가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한 기업에 도리어 불이익이 돌아온다면 기업들의 일자리·투자 창출 의지가 약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오동윤 동아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기적으로는 가격을 낮춰 소비자후생이 높아지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시장의 경쟁을 저해하는 요소가 돼 기업들의 고용·투자를 저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원가 공개가 가격 하락이라는 결과물을 내지 못할 수 있다. 원가 절감을 하려는 기업의 혁신 동기를 제거해 원가 자체가 오르면, 정책 의도와 달리 상품·서비스 가격이 오히려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원가 공개가 품질이나 소비자 편익 저하로 나타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가령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의 경우, 신규 주택 공급이 줄고, 값싼 자재를 사용해 아파트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해당 업계의 출혈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특히 원가와 함께 마진률이 공개되면, 이미 경쟁이 치열한 업종에서 제품·서비스 혁신이나 경쟁력 제고보다는 '제 살 깎아먹기'식 단가 후려치기만 늘면서 업계 전체가 망가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 “해서는 안 되고, 할 수도 없어” 산업계에서는 정부의 원가 공개 규제를 두고 “정부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식 규제 행위”라고 비난한다. 정부가 지난해 5월 대기업이 납품단가를 낮추기 위해 하청 업체에 회계 등 각종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관행을 불법으로 다루고 제재하기로 한 것을 두고 나오는 얘기다. 당시 홍종학 중소기업벤처부 장관은 “기술자료를 요구하거나 납품단가를 깎기 위해 각종 경영정보를 요구하는 것은 범죄행위”라며 “이런 관행으로 중소기업 경쟁력이 약해졌고 결국 대기업 경쟁력에도 악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주어만 바뀌었을 뿐인데 기업이 하면 범죄행위인 것이 정부가 하면 상생조치로 바뀐다”고 하소연했다.규제의 정당성과 함께 비현실성도 자주 거론되는 문제다. 일단 원가 산정이 어렵다는 점이다. 업종별로, 또 동종 업계 안에서도 업체에 따라 가격 산정 방식이나 사업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획일적인 기준으로 원가를 공개하면 왜곡된 정보가 제공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관련 부처 협의 과정에서 무산된 택배요금 원가 공개도 이런 점이 걸림돌이 됐다. 갈수록 다양한 형태의 택배 물량이 쏟아져 일괄적인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최근 시민단체에서 공개한 통신료를 두고 이통사들이 반발하는 점도 이 부분이다.경제학계에서는 근본적으로 무엇을 원가로 볼 것인지도 모호하다고 말한다. 특히 원가에 반영되는 디자인, 브랜드, 위험 부담, 혁신성 등 무형의 가치를 어떻게 평가할지가 문제다. 가령 제약사가 개발하는 신약의 경우 원가에는 그간 들인 연구·개발 비용과 함께 시간, 실패 위험에 대한 부담, 초기 개발자로서의 보상이 반영된다. 그런데 단순한 원가 공개 방식으로는 제품 생산에 들어간 화학제품과 인건비, 공장 가동비용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가격에는 시장의 크기와 특성, 해당 제품의 희소성 등도 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산 중턱이나 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아이스크림과 막걸리 한 잔의 가격이 마트와 편의점에서 판매되는 가격과 다른 원리다.적정 이윤의 수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 제품으로 얼마를 남겨야 적당한가’를 사회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지의 문제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통큰치킨’으로 촉발된 치킨 가격 공방이다. 롯데마트가 프랜차이즈 대비 절반 수준의 치킨을 내놓으면서 ‘그동안 치킨집이 얼마나 남겨 먹은 것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자 치킨프랜차이즈 업계에서 스스로 원가를 공개하며 “대형마트는 치킨을 ‘미끼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역마진으로도 팔 수 있는 것인데, 단순히 가격만 비교해 치킨집이 폭리를 취한다고 모는 건 부당하다”면 반발했다. 당시 인터넷 게시판에서 한 자영업자는 “정성껏 만들어 3000원 남기면 부당한거고, 대충 만들어도 1000원 남기면 미덕이 되는 건가”라며 일괄적인 원가와 이윤 수준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기도 했다.전문가들은 “적정 가격을 찾으려는 의도가 있더라도, 그 방법은 인위적인 가격통제가 아니라 독과점 구조의 해소에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정 업계에서 업체가 폭리를 취할 수 있는 건 독과점 구조에서 경쟁의 압력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김두얼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부분의 산업에선 자유로운 진입과 탈퇴만으로도 최적의 가격이 산출될 수 있는데, 일부 산업에서 정부가 진입을 막고 수량을 통제하면서 가격을 두고 불만이 나오니까 억지로 가격까지 통제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원가공개를 두고 크게 논란이 되지 않는 분야도 있다. 공공요금이다. 영국·동유럽 등 일부 국가의 경우 공기업에서 민영화된 기업이 공급하는 전력·가스 등의 제조원가는 공개되고 사회적 합의를 통해 가격이 책정된다. 국내에서도 2011년부터 전기, 열차, 도시가스 도매, 광역상수도 도매요금 등 6개 주요 공공요금 원가를 공개한다. 그러나 이 역시도 독과점 여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진 결과다. 공기업 한 곳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시장 경쟁 요금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므로 부득이하게 요금을 원가에 연동시킬 수밖에 없다. 정부가 하나의 공기업을 통해 이들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기 때문이다. 통신 요금 원가 공개에 대한 법원 판결의 주요 논거 역시 이동통신 서비스가 전파 및 주파수라는 공공재가 한정적인 사업자에게 제공되고 있다는 점이었다. ━ 가격 통제보다 독과점 구조 개선이 중요 과거에도 원가 공개는 정당성과 실효성 문제 때문에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노 전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분양가 원가 공개’로 아파트 가격을 낮추겠다고 공약하며 군불을 지폈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2004년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 그러자 당시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김근태 원내대표가 “계급장 떼고 논쟁하자”며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여권 내부의 반발에 밀려 노 전 대통령은 소신을 접고 한발 물러섰다. 그래서 나온 게 일종의 우회적인 원가 공개 방식인 ‘분양가 상한제’다. 하지만 이후 건설사들이 주택 공급을 줄이면서 전세대란이 일어나는 등 부작용이 커지자 제도는 결국 껍데기만 남았다.이명박 정권 때도 ‘원가 공개’ 카드로 기업을 압박했다. 2011년 이른바 ‘기름값 소동’이 그 예다. 당시 국제유가가 내린 만큼 국내 휘발유 가격이 떨어지지 않자 이 전 대통령은 “기름값이 묘하다”는 화두를 던졌다. 윤증현 당시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유소들은 가격이 공개돼 투명한 경쟁을 하지만 정유사들은 그러지 않는다”며 거들었고, 최중경 당시 지식경제부 장관은 “회계사 출신인 내가 직접 기름값 원가를 계산해 보겠다”며 총대를 멨다. 몇달 간 정유사들을 압박하고 조사에 나섰지만 성과는 없었다. 정유 업체를 닦달해 3개월 시한으로 L 당 100원씩 강제로 기름값을 내려 체면치레한 게 전부다. 되레 ‘기름값의 절반 이상인 세금이 주범’이라며 유류세를 인하하라는 역풍을 맞기도 했다.

2019.02.16 09:23

9분 소요
표적 1호 첨단 대한민국 비밀 노린다

산업 일반

세계 곳곳에서 산업스파이 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첨단 정보기술(IT)산업 왕국인 한국은 산업스파이들의 표적 1호다. 그동안 우리나라에서만 수조원 규모의 산업 기밀이 유출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미국은 해커들에 의해 비밀기관들이 뚫리고 있다. 산업스파이들은 대담하고도 치밀하게 우리의 기업 비밀을 노리고 있다. 혼신의 힘을 기울인 기술이 어느 한순간 외국으로 날아가 버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제 우리도 산업스파이에 대한 대책을 세밀히 할 때다. 이코노미스트가 산업스파이의 세계, 이들을 막는 방법 등을 심층취재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술보호센터는 2003년 초 설립 후 지난 9월 말까지 모두 81건의 해외 기술 유출 사건을 적발, 91조8000억원 규모에 달하는 국부 유출을 예방했다. 2003년 6건, 2004년 26건, 2005년 29건, 2006년 9월 현재 18건으로 그 규모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국정원과 검찰이 적발하지 못한 산업스파이 사건의 피해액이 연간 수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정원이 적발한 사건을 분석해 보면 트렌드의 추이는 명확하다.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한 휴대전화·반도체 등 IT분야에서 전체의 73%인 59건이 발생했다.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최근 그런 트렌드가 자동차·조선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산업스파이의 세계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 즉 정글의 법칙에 의해 지배되며, 다음의 세 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첫째는 경쟁 회사의 간행물, 공공기관의 조사보고서, 상대 회사의 제품 분석, 상대 회사의 직원이 발설한 내용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정리하는 방법인데, 이는 합법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둘째는 상대 회사의 퇴직 사원 포섭, 특정 정보의 입수를 위한 상대 회사 사원의 스카우트, 상대 회사의 최근 동향에 관한 정보 수집 등인데, 이는 도의적인 문제를 야기시킬 소지가 있다. 셋째는 상대 회사에 잠입해 매수·협박, 또는 본인이 직접 기밀서류를 복사·절취·강탈하는 것인데, 이는 불법적인 행위에 속한다. 산업스파이 활동은 경쟁 회사가 기밀이 누설된 일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데 가장 역점을 둔다. 따라서 절취보다는 복사를, 협박보다는 매수를 앞세워 더욱 음성화한다. 이는 상대방의 정보 누설에 대한 대책 강구를 막기 위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업의 이미지 손상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술 유출은 주로 전·현직 직원의 이직, 기술 판매 등 생계형 기술 유출이 대부분이나 최근에는 협력업체에 의한 유출 사례도 발견되고 있다. 무엇보다 외국 정부 연계, 기업형으로 대형화하고 있는 것이 가장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아직까지는 연구자 등의 매수가 주축을 이루고 있으나 공동연구·해킹·불법수출·위장합작에다 최근엔 합법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술을 빼가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국내 산업스파이의 대부분은 금전적 유혹에 휘말려 기술을 빼돌렸다. 유출 동기는 금전 유혹·개인 영리가 57건으로 전체의 70%를 차지했고 처우·인사 불만에 의한 유출도 18건에 달했다. 기술 유출 방법도 날로 교묘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문서로 된 중요 서류에 대한 복사·절취나 팩스·전화를 이용한 기술 유출이 대부분이었으나 최근에는 외장형 하드인 USB메모리와 노트북 등 외부 저장장치를 이용해 유출하는 수법을 사용하고 있다.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e-메일이나 인터넷 파일 관리시스템인 웹하드를 이용한 기술 유출 사례도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우리나라는 미·일 등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첨단기술의 원천기술은 매우 부족하다. 다만 IMF사태 이후 벤처 붐과 함께 연구개발에 지속 투자, 원천기술을 토대로 한 발전응용 기술, 상용기술은 세계적 수준에 도달하고 있다. 첨단기술을 선점하지 못한 후발국 기업들은 곧바로 제품화가 가능한 한국의 상용기술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상용기술의 세계화가 국제적인 산업스파이의 표적이 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월과 3월에 적발된 2건의 기술 유출은 그 규모와 수법 측면에서 충격적이었다. TFT-LCD 컬러 필터 제조기술과 비메모리 반도체 제조기술이 유출 직전에 적발됐다. 지난 1월 국정원은 A사의 퇴직 연구원들이 TFT-LCD 컬러필터 제조기술을 빼내 중국에 공장 설립을 추진 중이라는 첩보를 입수했다. 국정원은 A사의 퇴직 연구원들을 대상으로 외국 기업의 접근 동향을 탐문하는 한편 중국·대만 등 현지 확인 작업을 시작했다. 조사 결과 주범 박모씨가 A사의 TFT-LCD 컬러필터의 제조기술을 유출한 데 이어 전·현직 연구원 12명에게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국 선전에 1만5000평 규모의 TFT-LCD 컬러필터 제조공장을 건설하려던 이들은 그 계획을 일명 ‘중국 선전 프로젝트’라 명명하기도 했다. 주범 박모씨가 포섭하려한 A사의 연구원들은 LCD 7세대 라인을 셋업한 핵심 중의 핵심 인력이었다. 이 ‘선전 프로젝트’가 계획대로 진행됐다면 중국은 우리의 첨단 TFT-LCD 생산기술을 확보할 수 있었음이 분명하다. 허술한 보안에 구멍 ‘뻥뻥’ 지난해 5월에는 컨설팅업체 F사가 S사에서 개발한 최신 휴대전화 제조기술을 해외로 유출하려 한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이 유출 사건의 주범은 F사의 장모씨, S사의 이모 연구원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 프로젝트 규모도 거대했다. ▶삼성·LG 반도체 대만 유출 사건 지난 1998년 수원지점에서 삼성과 LG반도체 제조 기밀의 대만 유출 사건과 관련된 각종 증거품을 관계자와 기자들이 들여다보고 있다. 범인들은 카자흐스탄 업체와 기술 이전 계약을 맺고 현지에 휴대전화 공장을 설립키로 합의한 상태였다. 이모씨는 S사가 개발한 이동통신 기술자료 및 프로그램, 최신 휴대전화 회로도 등 영업 비밀을 유출한 후 국내 휴대전화 제조사 L사의 핵심 연구원 5명에게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이 야심 찬 계획이 성사됐을 경우 예상 피해액은 1조3000억원을 상회했다. 기술 유출을 시도한 해당 연구원들은 사내 통신망에 접촉해 파일을 다운받아 A4 용지 15장을 출력한 뒤 상의 안주머니에 넣어 외부로 유출했다. 금속만 탐지하는 회사 검색대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다는 것이 국정원 관계자의 말이다. 기업의 허술한 보안대책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다. 올해 3월 말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 직원 ○씨는 우연한 기회에 중대한 제보를 접수했다. 중국에 거주하는 한 사업가가 지나가는 얘기로 “최근 반도체 회사인 I사에서 퇴직한 사람이 중국의 반도체 제조업체 C사 사람들과 자주 만나더라”고 한 말이었다. 퇴직자 박모(42)씨는 I사에서 영업이사, 홍콩지사장을 지낸 핵심 임원이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곧장 중국으로 건너가 박씨의 주변을 탐문했다. 박씨가 전혀 눈치채지 못하도록 주차장 관리원, 음식점 배달원으로 위장해 박씨에게 접근해 갔다. 3개월의 추적 끝에 전직 기술이사 2명과 현직 사외이사까지 연루돼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검찰과 국정원은 2350억원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비메모리 반도체 기술을 빼돌리려고 한 4명을 검거해 지난 7월 기소했다. 첩보의 단서는 대부분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 해당 업체에서 벌어진 사소한 움직임에서 시작된다. 2004년 5월 적발된 휴대전화 업체 P사의 기밀 유출 사건은 20대 여직원이 1000만원이 넘는 성과급이 지급되기 한 달 전에 별다른 이유 없이 회사를 그만둔 것을 의아하게 여긴 데서 추적이 시작됐다. 국정원은 여직원의 행적을 뒤쫓다가 8명의 연구원이 회사를 차례차례 그만두고 최신 휴대전화 제조기술을 홍콩 업체에 넘겨주려 한다는 정보를 포착했다. 유출 직전 국정원은 검찰과 함께 이들을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이 기술이 유출됐다면 연간 1조5000억원의 피해가 예상됐다. 한두 마디의 막연한 제보도 실마리가 된다. 2003년 5월 한밤중에 국정원에는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다. ‘미국에 있는 사람’이라고만 밝힌 이 제보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 있는데 너무하는 것 같다. S사 측 사람과 함께 최신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 기술을 외국에 팔아먹으려 한다”는 내용이었다. S사 주변을 조사한 결과 이사 승진에서 탈락한 정모씨를 주목하게 됐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정씨의 후배가 “PDP 관련 기술을 넘기면 건당 2억원을 받을 수 있다”고 유혹한 사실을 알아냈다. 국정원은 정씨가 우편을 이용해 기밀 자료를 해외로 보낼 것이라는 첩보를 입수하고 며칠 동안 정씨 집 주변의 우체국 20여 곳에서 모든 우편물을 일일이 검사했지만 확증을 잡지 못했다. 최후 수단으로 정씨의 개인 컴퓨터를 압수수색해 회사의 핵심 기밀을 보관하고 있던 그를 체포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 기업은 보안 관리가 부실하고 연구 보상이 미흡해 산업스파이의 준동에 취약하다. 일부 대기업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업은 첨단기술 보호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예산부족으로 보안체제 구축에 소홀해 보안관리 수준은 초보단계다. 국정원 산업기술보호센터의 한 요원은 “보안분야 투자를 비생산적 요소로 인식해 투자를 기피하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2004년 IT수출진흥센터의 조사에 의하면 기업들의 72%가 매출액의 1%도 안 되는 금액을 보안 분야에 투자하고 있다. 허술한 보안대책 때문에 피해도 막심하다. 대한상공회의소의 올 7월 설문조사에 의하면 국내 기업 5개사 중 1개사가 회사 기밀 유출로 피해를 본 적이 있으며, 이들 피해기업의 평균 기밀 유출 횟수는 무려 3회 이상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기술 유출 사건이 발생하고 난 다음에야 보안관리를 강화하는 등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식’의 대응도 문제다. 부산경찰청 외사수사대는 지난 6월 자신이 근무하던 벤처기업의 자동차 금형분야 첨단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A사 대표이사 최모(45)씨와 대표이사 박모(32)씨 등 2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자동차 보닛과 트렁크, 문짝 금형 설계 및 제작 업체인 D사의 해외영업팀 과장과 대리로 근무하던 지난해 10월 초 2차원, 3차원 설계용 프로그램과 자동차 금형 설계 핵심 데이터베이스 파일을 빼돌렸다. 자동차 업계는 기술 유출이 잇따르자 뒤늦게 보안시스템 구축을 서두르고 있다. 김일호 중소기업청 경영정보화혁신팀장은 “기술 유출에 대해 대부분의 기업이 당장의 매출에 영향이 없다는 이유로 무관심하다가 일을 당하고 나서야 개선을 서두른다”고 지적했다. 처우 낮은 연구원들 유혹 심해 구조조정 또는 긴축재정 때 R&D분야 인력을 우선 감축하고, 연구개발 성과에 대한 보상도 미흡하다. 한마디로 연구인력 관리가 소홀해 이들을 스파이로 내몰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진단이다. 직업 윤리를 강조하기 이전에 연구원의 실적에 확실한 보상을 해서 이들의 이탈과 배신을 막아야 한다는 얘기다. 지난해 직무발명보상제도를 통해 연구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20%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또 앞으로도 이 제도의 도입 의사가 전혀 없는 기업이 71%나 됐다. 기술 연구에 전념할 보상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 않은 것이다. IT부문에서 국내 연구원들의 기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브로커의 스카우트 제의를 한두 번 안 받아본 연구원은 거의 없다. 연봉 4000만~5000만원대의 연구원 수입은 그들의 실적에 비해서는 턱없이 적은 액수다. 그러나 브로커의 스카우트 제안에는 으레 조건이 붙게 마련이다. 기술 유출을 요구하는 것이다. 연봉을 많이 주는 대신 ‘기술’ 하나쯤을 손에 들고 와야 한다는 브로커의 제안에 넘어가지 않기 위해서는 상당한 직업 윤리가 필요하다. 브로커의 스카우트 제의를 수락, 산업스파이 실형을 선고받은 K씨는 이렇게 말한다. “평생직장 개념도 사라진 상황에서 연구원들에 대한 대우가 계속 열악해진다면 회사의 핵심기술을 빼돌려 이직하거나 일확천금을 얻으려는 이들이 더 늘 것입니다. 산업스파이 운운하기 전에 연구원들 의식 속에 깔려 있는 상대적 박탈감부터 없애는 방법을 연구해야 할 겁니다.” ▶해커의 침입 여부를 점검하는 우리은행 내 보안시설. 그나마 기업은 산업 보안에 투자를 시작했지만 대학은 아직도 보안의식의 무풍지대다. 대학은 정부의 연구개발(R&D) 총투자액 7조7996억원(2005년 기준) 중 총 23.5%에 해당하는 1조8273억원을 차지한다. 석·박사급 연구자 총 2만167명 중 52.9%(1만1473명)가 소속되어 있는 만큼 국가 기술 연구의 뿌리 같은 존재다. 그럼에도 기업과 달리 대학 연구실의 보안 의식은 허술한 게 사실이다. 형량 가벼워 실형은 3명뿐 국정원에 따르면 대학교수와 연구원 중 기술 이전이나 기업체 등에 연구개발 성과 공개시 비밀유지 계약을 맺지 않고 있는 비율이 40.3%, 기술 이전이나 향후 연구로 인해 문제가 생겼을 때 중요 검토 자료가 되는 연구노트 보관 관리를 하지 않은 사람은 41.2%나 됐다. 또 외국 기관과 공동연구 또는 위탁 연구 때 노하우나 특허 및 무형의 결과물에 대한 소유권 등 처리 문제로 곤란을 겪은 사람도 11.9%나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전체 응답자 중 82.5%가 연구제안서 작성이나 연구노트 및 비밀정보 관리에 대한 교육을 받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산학 연계의 산업 보안 시스템 구축이 시급하다는 얘기다. 산업스파이 등을 차단하기 위한 ‘산업기술의 유출방지 및 보호 지원에 관한 법률’이 지난 9월 29일 국회를 통과한 것은 주목할 만한 변화다. 법률이 시행되는 내년 3월부터는 국가가 지정한 핵심기술 보유 기업 및 연구기관이 해외매각 및 합작투자, 기술이전 등을 추진할 때 반드시 산업자원부 장관의 승인과 산업기술보호위원회의 심의를 받아야 한다. M&A를 통한 기술이전 등을 국가가 감독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 것이다. 기술 유출 피해액 어떻게 산정하나 국부 유출 피해 예방액은 해당 기술이 해외로 유출됐을 때 해당 기업 및 관련 산업에 미칠 피해를 산정한 금액으로 검찰 수사 과정에서 피해 기업체가 직접 산출하고 있다. 지난해 카자흐스탄 휴대전화 기술 유출 사건의 경우 당사자인 S사가 1조3000억원의 피해 예상액을 직접 산출했다는 얘기다. 국내 기업의 피해 예상액 산출 방법은 통상 미국 법원 등에서 사용하는 ‘수익접근법’을 적용해 산출한다. 수익접근법은 해당 기술이 유출되어 상품 개발로 이어져 출시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매출 감소 예상액으로 시장 점유율, 기술수명 사이클 등을 참고해 산정한다. 기타 도난당한 정보로 만들 수 있는 상품의 시장가치를 평가하는 ‘시장접근법’, 도난당한 정보를 만드는 데 투입된 전체 비용으로 평가하는 ‘비용접근법’ 등이 있으나 ‘수익접근법’이 규모가 가장 크기 때문에 기업 입장에서 가장 많이 적용하고 있다. 국정원이 올 9월까지 약 3년간 91조원의 피해 예상액을 산정한 것도 해당 기업의 평가를 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때 적용된 방법도 미국 법원에서 흔히 사용되는 ‘수익접근법’이다. 이 법은 산업스파이로 인한 이득을 전액 몰수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스파이 범죄자에 대한 처벌도 강력해졌다. 산업기술을 외국으로 유출한 자는 7년 이하 징역이나 7억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중형을 각오하지 않으면 산업스파이 행각을 벌일 수 없는 법적 환경이 일단 조성됐다. 그러나 현행 법률 하에서 기술 유출 사범의 형량은 가볍기 그지없다. 2000년 1월부터 지난 10월까지 기술 유출 혐의(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 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로 기소된 125명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분석해보면 기술 유출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 125명 가운데 항소심까지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3명에 불과했다. 검찰에 따르면 기술 유출 사건의 1심 실형 선고율은 17.7%로 검찰이 기소한 전체 사건 1심 실형 선고율 38.9%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1심에서 실형이 선고된 기술 유출 사범 22명 중 항소심에서 3명밖에 실형이 선고되지 않았다. 실제 고속철 차량 제작사인 로템의 전동차 설계도면 등을 빼낸 혐의로 기소된 S중공업 이모 회장 등 8명은 1심에서 모두 무죄였고 항소심에선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검찰 관계자는 “한국은 반도체·휴대전화·LCD 등에서 세계적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어 첨단기술의 해외 유출 위험성이 증가하는데도 법원의 온정주의적 판결은 국부 유출 위험성을 증대시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첨단기술이 없으면 대한민국도 없다”는 말은 더 이상 수사나 표어가 아니다. 첨단기술은 한번 유출되면 복원이 어렵다. 막대한 투자비용이 물거품이 되고 그 이후의 피해 예상액은 객관적인 추정조차 어렵다. 2004년 중반 홍콩에 기반을 둔 휴대전화 판매회사의 한국인 직원이 회사 컴퓨터 파일 7만5000개를 홍콩에 유출하려다 적발됐다. 모든 영업비밀이 망라된 이 파일이 유출됐다면 피해액은 과연 얼마였을까? 그 액수는 무려 38억 달러, 약 3조8000억원이었다. “첩자 1명이 1만 명의 군대보다 낫다”고 가르치는 중국의 전통적 지혜는 첨단경제 시대에도 어김없이 관철되는 진리임에 틀림없다. 비상 걸린 국내 업체 회사마다 특명… 첨단기술 보안대책 강화하라 삼성전자는 2006년 1월 국정원의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핵심기술의 해외 유출 적발 사건을 계기로 전·현직 직원 대상 보안교육을 실시하는 등 산업보안대책을 강화하고 있다. 연구실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는 한편 서울본관은 물론 각 사업장에서 X선 투시기를 통한 검색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999년부터 기흥·수원 등 지방사업장에, 2003년 말에는 서울본관에 각각 X선 검색대를 설치한 바 있다. 대용량 e-메일 스크린 작업을 강화하고 부서장의 허가 없이는 메모리스틱과 CD, 디스켓 등을 반출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카메라폰과 디지털 카메라, 캠코더의 내부 사용도 철저히 규제하고 있는 상태다. 현대자동차 등 국내 자동차 업계도 협력업체 및 퇴직자에 의한 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보안조치를 강화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남양연구소의 자동차 관련 기술 보호를 위해 2006년 3월 연구소 내 ‘연구개발 보안운영팀’을 신설했다. 매월 15일을 보안의 날로 정해 보안의 생활화를 강조하고 협력사와 기술용역 개발 때 보안서약서 작성을 필수화하고 분기별로 보안 감사를 한다. 현대자동차는 사내에서 대용량 이동저장장치에 대한 통제를 강화하는 한편 무선 전자태그 기술을 이용, 휴대용 컴퓨터 무단 방출을 방지하는 시스템도 조만간 구축할 예정이다.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의 한 연구원은 “인권 침해가 아니냐는 생각도 들지만 이렇게 하지 않으면 수천억원이 소요되는 R&D 예산을 일거에 날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더 크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기흥연구소 내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고 있으며, GM대우차는 부평공장 내 카메라 내장 휴대전화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다. 국가정보원 산업기밀보호센터는 기술 유출 양상이 전자·정보통신 분야에서 자동차·조선 분야로 확대됨에 따라 11월 6일과 7일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 핵심연구인력 3500여 명을 대상으로 보안 교육을 실시했다. 그간 국정원은 산업스파이의 색출 활동과 더불어 예방 활동이 중요하다고 판단, 대기업 및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맞춤형 보안 교육을 해 왔으나 이처럼 대규모 인원을 대상으로 보안 교육을 실시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현대자동차는 연구의 효율성 제고 및 연구소에 대한 체계적 보안관리를 위해 지난해 울산 등에 산재해 있던 연구인력을 경기 화성 소재 남양연구소로 통합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등 해외 진출이 증가하면서 현지 보안관리 미숙 등 해외 기술 유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됨에 따라 연구원들의 보안의식 제고를 위해 국정원 산업기밀보호센터에 해외사례 및 현지 보안관리 대책 등 특화된 강의 지원을 요청했다. 미국의 경우는… 비밀 스파이 조직들의 각축장 미국 플로리다주의 마이애미 검찰청은 지난 5월 대만계 사업가 빌 무(58)를 구속 기소했다. 중국 스파이로 F-16 전투기와 블랙호크 헬기 엔진 70개,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사정거리 3680㎞의 AGM 129 크루즈 미사일을 구매하려 한 혐의다. 중국의 스파이 활동이 적발된 사례는 또 있다. 지난 5월 초 미 연방법원은 중국계 사업가 4명에 대해 레이더 교란 장치에 들어가는 기술을 중국으로 몰래 빼돌린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최근 2년간 구속된 중국계 스파이만 25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민·세관당국(ICE)도 2000년 이후 군수품 및 군사기술이 중국으로 불법 수출된 사건도 400건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미 당국은 중국이 미국의 군사 기술을 닥치는 대로 빼돌리려는 것으로 판단한다. FBI의 티머시 베레즈네이 방첩국 부국장은 “중국이 완성된 제품뿐 아니라 최첨단 기술을 연구개발(R&D)하는 단계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뿐 아니다. 미국은 최첨단 군사 기술과 핵심 부품을 빼내려는 전 세계 스파이들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올 5월 USA투데이는 “러시아·이란·쿠바 등도 미국의 첨단 군사 기술에 관심이 많다”고 보도했다. 과거에는 전통적으로 대사관을 통해 미국의 군사 정보를 수집하던 방식이었다면, 냉전 이후에는 첨단 무기체계에 대한 정보를 캐내는 산업스파이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외국 스파이들은 특히 야간 투시경, 레이더 교란 장치, 유도 미사일 시스템 등과 같은 첨단 군사 장비나 기술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소련 붕괴 이후에도 러시아는 여전히 미국에서 최대 비밀 스파이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쿠바는 미국의 군사 정책을 파악하기 위해 주로 뉴욕과 플로리다 남부 지역에서 첩보망을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미 정보기관은 파악하고 있다. 또 이란도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 미국이 군수품 수출을 전면 금지하자 혁명 이전에 수입했던 F-14 전투기 등 전투 장비의 부품을 구하기 위해 미국 내 첩보망을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ICE는 지난해 군수품 및 군사기술 불법 수출 의혹에 대해 모두 2500건을 조사했다. 이 같은 스파이 활동에 대처하기 위해 FBI는 4개 주요 방위산업체와 연락체제를 구축했고, 전국 56개 지부에 방첩 팀원을 배치했다.

2006.11.27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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