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ECONOMIST

10

발행호수_1668호(20230109)[80] 팬데믹 수준으로 회귀한 2022년 M&A 시장을 보며 [조원경 글로벌 인사이드]

전문가 칼럼

2022년 글로벌 인수·합병(M&A) 시장에 폭풍이 강타했다. 41년만의 높은 인플레이션, 급격한 금리 인상,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세계적인 경기침체의 가능성,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중국의 도시 봉쇄 등이 휘몰아쳤다. 그 결과 2022년 체결된 인수합병(M&A) 건수는 2021년 대비 38%나 감소했다. 이는 2001년 이후 가장 큰 하락 폭이다.지난해 상반기 M&A 금액이 2조367억 달러(약 2643조원)에 그치며 전년 동기 대비 36%나 줄었을 때 그런 징조가 보였다. 당시 건수 기준으로는 2021년 상반기보다 26% 줄어든 2만3800건에 머물렀다.지난해 하반기 인수 합병 물량은 급격히 줄어들었다. 2022년 하반기로 갈수록 인수 합병을 위한 자금 조달 비용이 너무 높고, 저렴한 자금조달 환경이 종언했다는 평가가 줄을 이었다. 건수 기준으로 2018년, 2019년보다도 낮은 수준으로 코로나19로 경기가 침체한 2020년 수준을 소폭 상회했다.2021년 M&A 시장 규모 폭발적 증가그나마 역사적 평균 수준이라니 다행이고, 2023년 시장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M&A는 기업이 새로운 시장과 제품군에 진출하고, 새로운 고객을 발굴하고, 새로운 역량을 구축하도록 지원해준다. 이로써 기업은 수익을 증대하고 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다.여전히 조심스러운 상황이지만 M&A 시장이 완전히 문을 닫은 것은 아니라는 평가다. 돌이켜 보면 2021년 M&A 시장에서 거래 규모와 건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2010년 집계이후 최대치로 새 역사를 썼다. 특히, 미국은 2021년에 2020년 대비 거래액과 거래량이 각각 88%, 27% 증가해 M&A가 가장 활발한 국가였다. 2021년에는 조 단위의 빅딜이 쏟아졌다.우리나라에 있었던 랜드마크 딜을 보자. 우리나라 반도체 대표 기업인 SK하이닉스가 인텔 낸드 사업부를 인수한 것이 먼저 떠오른다. 조 단위 거래 뒤에 대형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의 굳건함이 존재했다. 특히 2021년 4/4분기 거래 건수와 규모가 급등하면서 전체 규모를 키웠다.연말에 빅딜이 크게 집중되었다. 2022년과 2021년 현재까지 가장 활발한 분야는 기술(특히 소프트웨어와 인터넷 서비스), 에너지(주로 석유와 가스), 의료(제약과 생명공학 주도)였다. 또 다른 활발했던 분야는 금융 서비스, 부동산, 인프라를 들 수 있다.많은 영역에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지정학적 긴장이 거래를 촉진했다는 게 특징이다. 예를 들어, 많은 회사들이 러시아와의 관계를 끊고자, 사업을 러시아 현지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거나 다른 방식의 형태로 이전하려 했다. 러시아 기업들과 투자자들은 서구 국가들에 대한 투자를 종료하려 했다. 예를 들어, 소비에트 연방의 석유사업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제재 명단에 올랐고, 압박 끝에 3월 초 첼시 매각을 발표했다. 영국 내 자산이 동결되며, 첼시는 19년간의 로만 체제에 작별을 고하고 새 구단주 토드 볼리 주도로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게 되었다. 2003년 1억4천만 파운드(약 2200억원)에 첼시를 인수한 러시아 신흥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19년 만에 구단을 떠나게 됐다. M&A를 주도하는 미국과 2023년 전망 2022년 미국 M&A 시장은 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액 면에서 글로벌 물량의 절반 수준을 차지했다. 영국도 평균 이상이었다. 미국 마이크로소프트가 대형 게임업체 액티비전블리자드를 인수하는 발표가 있었지만, 헬스케어 등 다른 산업에서 M&A가 활발히 진행되지 못했다. 유럽, 일본, 중국은 미국보다 감소폭이 훨씬 컸고 중국이 가장 많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2015년에 최고치를 기록한 중국의 M&A 활동은 코로나 19 봉쇄의 재발로 침체되었다.2015년 이전에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 투자자들이 유럽 회사들에 대한 M&A를 적극 추진했다. 당시 역사상 유례없는 금융·경제 위기로 유럽에 큰 M&A 장터가 열렸다. 경제성장과 해외투자로 두둑한 현금을 확보한 중국 기업이 유럽 M&A 시장의 큰 손으로 나섰다. 유럽은 아시아 기업이 유럽 기업을 사는 이례적 현상인 ‘리버스(reverse) M&A’에 주목했다. 중국에서 이러한 현상은 ‘역 마르코폴로 현상’으로 회자됐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은 기술 및 노하우 확보, 시장점유율 확대, 브랜드 인지도 확보 순으로 대형 M&A를 중시했다.2022년 우리나라에서도 재계 순위 상위권을 차지한 굵직한 기업이 잇따라 M&A 시장에 뛰어들었다. 2023년 새해에도 산업계의 지각변동에 대응하고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려는 기업의 움직임은 이어질 것이다. 롯데케미칼은 동박 소재 기업 일진머티리얼즈, 한국조선해양은 선박용 엔진 제조업체 STX중공업 인수를 각각 추진하고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은 지난해 시작돼 현재진행형이다.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인수는 본계약 체결로 마무리 단계다.2022년 M&A에 뛰어든 기업 중에는 ‘승자의 저주’와 마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승자의 저주란 경쟁에서 이겼으나, 경쟁 과정에서 과도한 비용이나 대가를 치르는 바람에 엄청난 후유증에 시달리는 현상을 말한다. M&A업계에서는 인수 기업이 피인수 기업과 시너지 효과가 나기는커녕 유동성 위기와 재정난 등을 초래해 모기업이 휘청이는 상황을 일컫는다.역사적으로 돌이켜보면 승자의 저주의 대표주자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다. 2000년대 중반 금호그룹은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달아 인수하며 재계 8위까지 순위가 뛰어올랐다. 그러나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로 그룹이 동반 부실에 빠졌다. 대우건설 주가가 급락하면서 재무적 투자자(FI)에게 갚아야 할 이자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결국 인수 2년 반 만인 2009년 6월 대우건설을 다시 팔았다. 연이어 대한통운과 금호타이어, 아시아나항공 같은 핵심 회사를 모두 내다 팔았다. 결국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중견기업 수준으로 전락한 상태다.최근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M&A에 나서기보다는 공급망 안정이나 재무 상황 등 자사의 내부 과제를 챙기는 데 경영의 우선순위를 두는 경향이 늘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주식 시세가 내림세를 보이면서 기업 가치가 내려가고 주식 교환을 통한 기업 매각 움직임이 둔화됐다는 견해도 있다.기업공개(IPO) 시장이 얼어붙으며 자금조달이 급한 기업들이 증시 입성을 위해 스팩(SPAC)에 몰리고 있지만 스팩주를 향한 투자심리마저 악화됐다. 2022년 스팩 신규상장 건수가 역대 최다를 기록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스팩주의 기대수익률이 낮아졌다.앞으로 1년 동안의 거시 경제 상황은 M&A 시장의 회복력을 시험할 것 같다. 지정학적 긴장, 공급망 혼란, 인플레이션, 금리 상승과 관련된 나쁜 경제 뉴스는 M&A 열기를 약화시킬 것이다. 기업은 불경기의 불길한 위협을 감안해 수익이 비용 상승을 따라가지 못할 것을 우려하여 M&A와 투자에 보다 신중한 접근을 취할 것으로 보인다. 높은 이자율은 거래 자금 조달을 더 비싸게 만든다. 기업의 현금 보유 경향이 인수 자금을 제한하고 있다.이 와중에 메가 딜로 인식되는 일론 머스크의 트위터 인수는 테슬라 주가 하락과 함께 여러 잡음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테슬라의 생태계속에서 구조조정의 소용돌이 속에 있는 트위터가 어떤 시너지를 낼지 세상이 주목하고 있다. 싸게 사는 것 못지않게 M&A 이후의 기업 간 조화란 하모니가 매우 중요하게 느껴진다.

2023.01.04 17:15

5분 소요
[채인택의 글로벌인사이트 | UAE가 아랍권 반대에도 이스라엘과 손잡은 속사정] ‘포스트 석유’ 경제 개혁 갈망

전문가 칼럼

기술강국 이스라엘 통해 아랍에미리트 산업개발·치안강화 모색 아랍국가 아랍에미리트(UAE)가 8월 13일 이스라엘과 외교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중동 지역에 한바탕 외교 지각변동이 전망된다. 이날 아랍에미리트를 구성하는 최대 토후국인 아부다비의 왕세자인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나흐얀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는 각각 양국의 평화협정과 수교를 발표했다. 무함마드 빈 자이드 왕세자는 와병 중인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겸 아부다비 에미르(이슬람 군주) 할리파 빈 자이드 알나흐얀을 대신해 국정을 이끌어왔다.이번 조치는 이집트가 41년 전인 1979년, 요르단이 26년 전인 1994년 이스라엘과 평화협정을 맺고 수교한 뒤 처음 있는 일이다. 페르시아 만(아랍권은 아라비아 만으로 부른다) 연안 국가로는 처음이다. 가히 역사적이라고 할 만하다.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수교 결정으로 193개 유엔 회원국 중 163개국이 이스라엘을 승인하고 30개국이 미승인국으로 남았다. 아랍권 지역기구인 아랍연맹(AL) 22개 회원국 중 알제리·바레인·코모로·지부티·이라크·쿠웨이트·레바논·리비아·모로코·오만·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소말리아·수단·시리아·튀니지·예멘 등 17개국이 주축이다. 여기에 이슬람협력기구(OIC) 회원국 중 아프가니스탄·방글라데시·브루나이·인도네시아·이란·파키스탄·말레이시아 등 아시아 7개국과 말리·니제르 등 아프리카 2개국이 포함된다. 남미의 쿠바와 베네수엘라, 아시아의 북한 등 반미국가와, 고립정책을 추구하는 불교 군주국가 부탄도 이스라엘을 승인하지 않는 나라로 남았다. ━ 첨단 기술 확보에 공 들이는 아부다비 이런 상황에서 아랍에미리트가 ‘퍼스트 펭권’으로 나선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중동의 시아파 반미국가인 이란·시리아·예멘 등에 대한 견제 등 다양한 전략적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직접적인 동기로 경제적인 요인을 꼽을 수 있다.사실 아랍에미리트는 남부러울 것이 없는 석유부국이다. 이 나라의 경제의 핵심은 해상 유전을 중심으로 하는 석유사업이다. 이를 바탕으로 국내총생산(GDP)은 국제통화기금(IMF) 2019년 명목금액 기준 4057억 달러로 세계 30위에 이른다. 1인당 GDP는 3만7749달러로 24위에 오른 부자나라다.아랍에미리트를 이루는 7개 토후국의 핵심은 아부다비와 두바이다. 아부다비는 아랍에미리트 전체 GDP의 60%를 생산한다. 대부분 석유와 가스다. 연간 2000억 달러를 넘는 아랍에미리트 전체 석유 생산의 94%를 차지한다.주목할 점은 아랍에미리트의 중심인 아부다비가 1976년 설립한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파이낸셜 타임스(FT) 추정 약 9000억 달러(8750억 달러~1조 달러로 추정액이 다양하다)의 국부펀드를 운영한다는 사실이다.아부다비는 포스트 석유 시대에 대비해 첨단기술 확보에 필사적이다. FT 보도에 따르면 아부다비 국부펀드의 하나인 무바달라는 이미 지난해 세계적인 원자력발전소 건설사인 GE와 공동으로 아부다비에 80억 달러 규모의 합작법인을 세웠다. 뿐만 아니라 GE의 10대 투자자가 되기로 했다. 할리파의 원전 도입은 원전 기술 확보와 산업 진흥이라는 큰 그림의 일부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원전 도입의 최종 목표는 결국 에너지 산업 다양화라는 이야기다. 아부다비가 간단치 않은 토후국임을 보여주는 사례다.아부다비는 그린과 에너지 기술뿐 아니라 다양한 고부가 하이테크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독특한 점은 심지어 우주항공 분야에까지 손길을 뻗치고 있다는 점이다. 무바달라 펀드는 에어버스 여객기를 만드는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와 계약을 맺고 일부 항공기 부품을 아부다비에서 제조하는 계약을 맺고 있다. 아부다비에서 현지 젊은 기술자들의 손으로 항공기 부품을 개발하고 제조하겠다는 의지다. 경영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와 스위스 항공업체들에 대한 지분도 투자해왔다. 아부다비는 심지어 반도체 분야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무바달라 펀드는 설립 목적부터 독특하다. 벤처 투자, 인수합병 등을 통해 아부다비 경제를 다양화하는 것이 목적이다. 할리파가 UAE와 아부다비를 앞으로 어떤 나라로 만들려는지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부분이다. 그것은 오일달러로 최첨단 기술을 확보해 단숨에 고부가 하이테크 산업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것이다.아부다비의 국영 투자회사인 어드밴스드 테크놀러지 인베스트먼트사(ATIC)는 싱가포르의 반도체업체인 차터드세미컨덕터를 18억 달러에 매입한 점도 눈에 띤다. ATIC은 그 전에 미국의 반도체회사인 AMD와 공동으로 글로벌 파운드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차터드 세미컨덕터를 이 회사에 합병해 덩치를 키웠다. ━ 아랍 투자자들 이스라엘 기술에 눈독 이처럼 아랍에미리트, 특히 아부다비는 투자할 곳이 필요하다. 그들에게 스타트업 국가로 발돋움하는 이스라엘에 매력적인 투자처의 하나로 보였을 것이다. 2018년 이스라엘을 방문했을 때 만난 스타트업 분야 관계자는 “아랍권 투자자들이 다른 나라 여권을 들고 이스라엘을 방문해 스타트업 기업을 살펴보고 있으며 정부도 이를 모른 척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아랍권 투자자들과 당국자들이 이스라엘의 경제력, 과학기술력, 서구와의 네트워크 등을 활용하려고 경제적 접촉 면적을 오래 전부터 넓혀왔다는 이야기다. 이 가운데 투자할 것을 찾고 있는 아랍에미리트 사람이 상당수 있었을 것으로 추론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아랍에미리트가 이스라엘과 손잡은 이유로 이스라엘의 뛰어난 보안 기술을 꼽을 수 있다. 아랍에미리트는 우선 외국인 거주자가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 아랍에미리트 인구는 2020년 현재 989만 명으로 추산된다. 2005년 센서스에서 집계한 인구가 410만 명이었으니 12년 새 2배 넘게 늘었다. 세계적인 인구 고속 증가 국가의 하나다. 문제는 늘어나는 인구가 대부분 외국인 이주자라는 점이다. 전 세계 200개국 출신이 아랍에미리트에 거주한다.주목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구 중 내국인과 외국인 비율이다. 이주민이 몰리면서 그 비율은 이미 오래 전에 역전된 상태다. 2018년 세계은행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11.48%만 국민이고 나머지 88.52%는 외국인이다.7개 토후국 중 인구가 많은 5개 토후국을 대상으로 거주자의 국적을 조사한 결과 인도인(25%)·파키스탄인(12%)·에미라티(UAE국민·9%)·방글라데시인(7%)·필리핀인(5%)·스리랑카인(3%)의 순으로 나타났다. UAE가 국제사회에서 ‘거대한 인디언(인도계 주민) 타운’으로 불리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10만 명의 영국인과 러시아·유럽·중남미 등에서 온 50만 명의 유럽계 이주민도 존재한다. 국민은 이슬람 종파로 수니파 85%, 시아파 15%의 비율이다.이런 상황에서 해외 이주민을 관리하고 치안을 유지하는 기술과 능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UAE의 석유 시설의 대부분은 이란과 연결된 해상 유전에서 나온다. 해상 유전은 페르시아 만(아라비아 만)의 작은 섬이나 바다 위에 건설한 인공 섬에서 바다를 뚫어 석유나 가스를 채굴한다. 이 섬의 원유 채굴 시설, 작업장으로 향하는 선박, 이동하는 노동자들의 동태 파악은 UAE 경제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테러라도 벌어지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원전·우주선 개발로 산업 다양화 모색 주목할 점이 석유와 가스에 경제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온 산유국인 UAE가 이제는 포스트 석유시대에 대비해 자국에 다양한 산업을 일으키고 세계 각국의 주요한 첨단산업에 투자해 동반 성장하려는 전략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위해 UAE는 한국과 손잡고 바라카 원전 건설에 들어갔으며 지난 8월 1일 1호기가 상업 발전에 들어갔다.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막툼 아랍에미리트(UAE) 총리 겸 부통령 겸 두바이 지도자는 8월 1일 아부다비 바라카 원자력 발전소 1호기 가동을 발표했다. 바라카 원전사업은 한국형 차세대 원전 APR1400 4기(총발전용량 5060㎿)를 UAE 수도 아부다비에서 서쪽으로 270㎞ 떨어진 바라카 지역에 건설하는 프로젝트다. 한국전력 컨소시엄은 2009년 12월 이 사업을 수주해 2012년 7월 착공했다. 애초 2017년 상반기에 1호기를 시험 운전할 계획이었지만 UAE 정부 측에서 자국민 고급 운용 인력 양성을 요구하면서 시기를 수 차례 연기했다. 한국에선 고리 원전에 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KINGS)를 세워 아랍에미리트 등 국내외 원자력 전문 인력을 양성해왔다.중동권에서 원전 가동은 이스라엘의 네게브 원전과 이란의 부셰르 원전이 이에 세 번째다. 이스라엘과 이란 원전이 핵무기 개발 의혹을 사는 것과 대조적으로 바라카 원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규제를 따르는 상업발전 시설이다.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중동의 강국으로 자부하는 터키도 2018년 4월 러시아 국영 원자력 기업 로사톰과 손잡고 지중해 연안 메르신 지역의 악쿠유 원전의 건설 기공식을 열었다. 기공식에 맞춰 터키를 찾은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손을 잡았다.AFP 통신에 따르면 아랍권의 강국 이집트도 러시아와 손잡고 원전 4기를 건설하려다 미국의 반대로 주춤한 상태다. 한국원자력연구원에 따르면 요르단도 한국과 협력해 연구용 원자로를 가동하며 실력을 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UAE는 원자력으로 다른 나라보다 앞서가고 있는 셈이다.UAE는 지난 7월 20일 중동 최초의 화성 탐사선 아말을 발사했다. 아랍어로 희망을 뜻하는 아말은 이날 일본의 우주발사체인 H2-A에 실려 일본 남부 다네가시마 우주센터에서 발사됐고 BBC방송이 보도했다. UAE의 첨단과학기술부의 주도 아래 과학기술자들이 지난 6년간 개발한 화상탐사선 아말은 5억㎞의 우주 공간을 날아가 2021년 2월 UAE 건국 50주년에 맞춰 화성 궤도에 진압할 예정이다.이런 성과에도 아랍에미리트와 아부다비는 고민이 많다. 1971년에 독립한 아랍에미리트는 석유로 번영을 구가하고 있지만 작업복을 입고 먼지 속에서 땀 흘려 일하는 국민의 모습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한 마디로 헝그리 정신이 부족하다. 아라비아 만(페르시아 만) 연안 산유국의 공통적인 고민이다. ━ 성과 없는 이스라엘 봉쇄 정책 변경 아랍에미리트 인구의 9%를 차지하는 현지인들은 에어컨이 잘 되는 사무실에 앉아 편안히 일하는 공공 부문 일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건설 등 힘든 일은 대부분 인도와 파키스탄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가 맡고 있다. 중동 산유국 도시들이 거대한 인디언 타운이 되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사회복지는 거의 완벽해 힘들여 일하지 않고도 상당한 수준의 생활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와 지식인이 필요한 제조업이나 첨단산업의 발전을 애초에 기대하기가 힘든 구조다.게다가 경제에서 석유의존도가 지나치게 높다는 문제도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60%가 석유와 천연가스에서 나온다. 다른 걸프 산유국 평균인 45%와 비교해도 높은 편이다. 2000억 달러 정도를 수출하는 석유 말고는 수출품이라고 해봐야 대추야자와 중동과 인도 요리에서 양념으로 쓰이는 말린 생선 정도밖에는 없다. 다만 국내에서 석유 플랜트를 제작하고 여기에 사용하는 철강을 자체 제철소에서 생산하는 등 아라비아 만(페르시아 만) 연안 산유국 중에선 드물게 자체 산업을 보유하고 있기는 하다.아무리 부자 산유국이라고 해도 과도한 복지정책을 언제까지나 계속 펼 수는 없다. 인구는 갈수록 늘고 있고 복지비용은 경제에 서서히 부담을 준다. 나라 안에는 석유회사와 국부펀드 운용사, 그리고 공공 부문 말고는 별다른 일자리도 없다. 산업을 추가로 일으킬 필요성이 절실한 이유다. 석유 다음의 시대도 고민해야 한다. 대대적인 경제구조 개혁 드라이브가 필요한 부분이다. 산유국에서 원전을 건설하는 이유는 이를 위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아랍에미리트에 이스라엘은 중동 유일의 과학기술 능력을 보유한 최선의 지역 내 파트너가 될 수 있다. 팔레스타인을 위해 이스라엘을 봉쇄한다는 아랍 민족주의의 구호는 실제 팔레스타인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는 현실론도 감안했을 것이다.사실 와병 중인 아랍에미리트 대통령 겸 아부다비 에미르인 할리파는 중동 서민들에게 인기 있는 군주다. 팔레스타인에선 하마스 지도자에 이어 인기 2위의 인물이다. 대대적인 경제적인 지원 때문이다. 할리파는 팔레스타인 자치구인 가자지구에 자신의 이름을 딴 신도시인 셰이크 할리파 시티의 건설을 추진해왔다. 팔레스타인의 경제적인 부흥을 지원해 이 지역에 평화를 가져오겠다는 기대에서다. 거의 대부분 젊은이 일자리가 없는 팔레스타인에 건설 분야 등에서 일자리를 제공한 것이다.미국 존스 홉킨스 대학에 심장병과 중환자동 건물 건설에 거액을 기부하기도 했다. 이 건물에는 자신의 선친인 셰이크자이드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경제개혁가이자 자선기부자인 할리파의 야망은 사막의 열기보다 뜨겁다. 할리파의 뜻을 이복동생인 왕세제 무함마드 빈 자이드가 반영했다고 볼 수 있다.따지고 보면 이스라엘이 보유한 능력은 한국도 마찬가지로 확보하고 있다. 아랍에미리트에 없는 인적 자원과 지식, 기술, 그리고 경험과 의지가 있다. 아랍에미리트와 이스라엘의 수교는 아랍에미리트를 비롯한 중동 산유국들의 숨은 고민을 보여준다. 그 틈새에 한국이 진출할 기회가 엿보인다. 문제는 언어와 문화의 차이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0.08.23 15:29

8분 소요
[글로벌 파워 피플 (113)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 아랍에미리트 부총리] 석유산업·투자 책임지는 왕국의 브레인

정책이슈

이제 국제사회에서 ‘만수르’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금수저의 상징으로만 여긴다. 왕족으로서 재산과 지위를 물려받았으니 그런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비즈니스 분야에서 그와 접촉해본 사람들은 한결 같이 그를 차가운 판단력과 뜨거운 열정을 바탕으로 초대형 투자를 성공으로 이끄는 집념의 사업 귀재로 평가한다. 그의 이름은 만수르 빈 자예드 알 나얀(45). 페르시아만 연안의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UAE)의 부총리이자 이 나라를 이루는 7개 토후국(이슬람 군주인 에미르가 다스리는 세습군주국) 중 가장 크고 부유한 아부다비의 로열 패밀리다. 정확하게는 아부다비의 왕제(왕의 동생)이다. 아부다비 에미르(이슬람 토후국의 군주)로 UAE의 당연직 대통령인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얀(67)이 만수르의 배다른 형이다. ━ 맨시티 인수한 집념의 사업 귀재 만수르는 국제 스포츠·투자 분야의 ‘큰 손’으로서 ‘돈의 힘’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평가다. 돈뿐만 아니라 투자 대상과 시기를 보는 예리한 눈, 투자 대상의 비즈니스를 성공으로 이끄는 집념과 의지, 그리고 탄탄한 네트워크로 명성을 얻고 있다. 2008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를 인수해 선수 영입에만 수억 달러를 쏟아부은 결과 지금까지 두 차례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1968년 이래 이 팀이 거둔 첫 우승이며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처음 얻은 영예다.만수르의 힘은 아부다비투자청(ADIA)에서 나온다. ADIA는 세계 최대 규모 국부펀드를 운용한다. ADIA는 스스로 규모를 밝힌 적이 없을 정도로 베일에 싸여있다. 하지만 국제 금융계에서는 자산 규모를 3000억~8750억 달러 정도로 추산한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아부다비의 에미르 집안인 알 나얀 가문의 재산을 이보다 더 많은 1조 달러 정도로 보고 있다. 국가보다 왕실의 재산이 더 많은 것이다.이 엄청난 부의 원천은 물론 UAE의 석유와 가스다. 아부다비는 매년 2000억 달러에 이르는 UAE 전체 석유 생산의 95%를 차지한다. 가스의 6%를 생산하기도 한다. 지금까지 발견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9%, 가스 매장량의 5%를 각각 차지한다. 매장 에너지 자원만 가지고도 상당 기간 아무런 문제없이 경제가 굴러갈 수 있다. 이 나라는 인구 1인당 석유와 가스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이웃 국가인 카타르에 이어 세계 2위다.UAE의 GDP는 400억 달러를 넘으며 그중 아부다비가 3분의 2를 차지한다. 1인당 GDP는 4만5000달러 수준이다. 전 세계를 뒤흔든 재정위기 속에서도 8~9%의 고성장을 이루고 있다. 석유 외에 해외 투자도 활발하기 때문에 저유가에도 오랫동안 경제 활력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되는 국가다.아부다비만 따지면 석유부국 가운데 최고 부자는 물론 지구상에서 가장 부유한 지역이기도 하다. 만수르의 형님으로 아부다비의 에미르이자 UAE 대통령인 할리파는 재산 230억 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왕족 재산 순위 2위다. 중동 사막지대에서 전통적인 부의 상징인 낙타도 1만4000마리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분원을 유치해 아부다비를 중동의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이 나라의 왕자이자 고위 관료인 만수르는 최근 세계 스포츠계에 중동 오일달러 바람을 일으킨 주인공이다. 이미 2008년 UAE 두바이의 기업인인 술라이만 알 파임과 함께 태국 총리 출신의 망명 통신기업인인 탁신 친나왓으로부터 EPL의 맨시티 팀을 사들였다. 국제 무대에서 생소했던 인물인 그는 그 뒤로 전 세계에 해외 투자의 선봉으로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포브스의 억만장자 목록에 이름을 올린 그의 개인자산은 49억 달러로 추산됐다. 대부분은 상속받은 것이다. 그의 직계 가문은 1970년대 석유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둬 약 1500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하지만 그는 물려받은 재산에 만족하지 않았다. 만수르는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 투자에 나선 최초의 UAE 억만장자 왕족이다. 첫 공식 투자는 맨시티를 매입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맨시티를 사들인 직후 59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금액을 들여 브라질 선수 호비뉴를 영입했다. 그 직후 바클레이스 은행이 중동 자본 유치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96억 달러의 현금을 투자했다. 팀을 사들인 만수르는 유명 선수를 스카우트하는 등에 3억 달러 가까운 돈을 투자하며 팀을 최고 수준으로 키웠다.엄청난 투자의 효과는 2011/2012년 시즌부터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맨시티는 막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상대로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드래포드에서 6대1로 대승하면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맨체스터의 두 팀인 맨유와 맨시티의 대결을 맨체스터 더비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맨시티가 대승을 거둔 것은 드물다. 이듬해 5월 14일 맨시티는 맨유와 승점이 동률인 상태에서 마지막 경기에서 퀸즈파크 레인저스를 제물로 삼아 44년 만에 시즌 우승을 거뒀다. 맨시티는 2013/2014년 시즌에서도 마지막 경기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2대0으로 물리치고 리그 우승을 확정했다. 무승부만 기록해도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승리해 2위인 리버풀을 승점 2점차로 느긋하게 제쳤다. 만수르의 맨시티는 이후에도 엄청난 돈을 들여 우수 선수를 꾸준히 영입했다. 유럽축구연맹으로부터 재정적 페어플레이(FFP, 수입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는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았을 정도다.만수르는 미국 스포츠, 특히 축구 시장을 노리는 해외 자본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미국 5대 프로 스포츠 중에 가장 늦게 출범한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아이스하키(NHL)와 농구(NBA)를 따돌리고 미국 내 3위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MLS는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관객수 1만8608명을 기록했다. 미식축구(NFL·6만8397명)와 야구(MLB·3만504명)의 다음이다. 전 세계 프로축구 리그 중에서도 10위권에 들었다. 여기에 만수르가 가세한 것이다. 이미 2008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체스터 시티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MLB 명문 뉴욕 양키스와 손잡고 뉴욕을 연고로 하는 20번째 MLS 프로축구 팀인 뉴욕시티FC를 창단했다. 다비드 비야(스페인), 프랭크 램퍼드(잉글랜드) 등이 뉴욕시티FC 유니폼을 입고 2016년 3월 MLS에서 뛴다. 만수르가 스포츠 투자를 강화하기 시작할 당시 그의 부하직원이 했다는 “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말이 한때 그의 발언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 개인재산 49억 달러로 추산 만수르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보는 그의 가문이다. 그의 가문에 대한 정보는 그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만수르 빈자예드 알 나얀은 나얀 가문의 자예드의 아들 만수르라는 뜻이다. 이름 맨 앞에 셰이흐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이슬람 율법학자나 부족 지도자, 이슬람 군주 가문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여성에겐 셰이하라는 존칭이 붙는다.만수르의 선친인 자예드 빈 술탄 알 나얀(1918~2004)은 아부다비의 에미르, 즉 이슬람 세습군주였다. 이름에 술탄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두고 러시아 차르나 몽골 칸과 동급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빈 술탄은 술탄의 아들이란 뜻으로 자예드의 부친 이름이 술탄이었다. 술탄은 이슬람 군주를 의미하는데 이름으로도 많이 쓰인다.자예드는 1971년 아랍에미리트를 이루는 7개의 토후국이 독립할 당시 이를 결집해 아랍에미리트(UAE)라는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독립 당시 가장 크고 인구와 자원이 많으며 강했던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UAE의 대통령을, 둘째로 큰 두바이의 에미르가 총리를 맡기로 합의했다. 그는 이 자리를 33년간 유지하다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아부다비의 에미르는 독립 전인 1966년부터 38년간 그 자리를 맡았다.자예드는 생전에 6차례 결혼해 19남 9녀의 자녀를 뒀다. 첫 부인 소생으로 장남인 할리파 빈 자예드 알 나얀은 선친이 세상을 떠나자 아부다비의 에미르 자리를 이어받았으며 UAE의 대통령직도 당연히 물려 받았다. 그의 이복동생인 모하메드(54)는 아부다비의 왕세제가 돼 차기 대권 계승자에 올랐으며 UAE군 부사령관을 맡고 있다. 만수르는 이 두 사람의 이복동생인데 선친 자예드의 셋째 부인 파티마의 넷째 아들로 권력 정점으로부터 거리가 멀다.여기서 더욱 중요한 점이 있다. 만수르의 동복 형제들이다. 만수르의 생모 파티마는 6남2녀를 낳았는데 아들들은 하나 같이 똑똑하고 유능하다. 이들 여섯 명은 어랍어로 바니 파티마, 즉 파티마의 아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UAE와 아부다비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파티마의 장남인 함단(52)은 이복동생 술탄(60)과 함께 1997~2009년 UAE의 공동 부총리를 지냈으며 1990~2006년 UAE의 외교 장관을 맡았다. 현재는 아부다비 서부지역의 주지사다.만수르는 2009년 이복동생 사이프와 함께 이들로부터 공동 부총리를 이어 받았다. 하자(50)는 2006년 퍼스트 걸프 뱅크(현재 FGB로 이름을 바꿈) 회장으로 선출됐으며 동생인 타눈은 부회장을 맡았다. 만수르는 그전까지 이 은행의 회장을 맡다가 하자에게 넘겨줬다. 아부다비에 본부를 두고 있는 이 은행은 1979년 생겼으며 자산 규모에서 UAE 최고를 자랑하며 이슬람 금융과 방카슈랑스를 하고 있다. 만수르의 동생인 압둘라(43)는 1997~2006년 UAE 정보문화 장관을 지낸 뒤 2006년 2월부터 외교장관을 맡고 있다.만수르는 UAE의 내각위원회 의장, 투자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으며 최고석유위원회와 국제 석유투자회사와 아부다비 투자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라의 돈을 만진다는 이야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우주여행을 추진하고 있는 버진 갤럭틱과 아랍 세계의 주요 미디어인 스카이뉴스 아라비아를 비롯한 벤처 및 주요 기업에 상당한 지분을 투자하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의 오너라는 사실이다. 2008년 맨시티를 구입해 최근까지 투자 드라이브를 이어오고 있는 바로 그 회사다. 이 회사는 2013년 5월 미국 MLS에서 뉴욕시티FC를 창단했다. 2015년 리그에 데뷔했다. ━ 쟁쟁한 만수르의 동복 형제들 만수르는 두 명의 부인을 두고 있다. 첫 부인은 1990년대 중반에 결혼한 것으로 알려진 알리아 빈트 모하메드 빈 부티 알 하메드로 총리를 지낸 인물의 딸이다. 둘 사이에는 자예드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둘째 부인이다. 2005년 5월 둘째 부인인 마날 빈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37)과 결혼해 2남2녀를 두고 있다. 마날은 두바이의 에미르이자 UAE의 총리인 모하메드의 딸이다. 두바이의 부동산 투자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으나 자금 부족으로 좌절한 바로 그 집안 출신이다.마날은 두바이의 왕세자인 함단(32)의 누나다. 두바이 아메리칸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한 뒤 마케팅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UAE 여성위원회 의장으로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담당하고 있다.기가 막힌 미인으로도 유명한 마날은 UAE의 최대 에미르 가문인 아부다비의 나흐얀 가문과 서열 2위 격인 두바이의 알막툼 가문을 잇는 가교 역을 맡고 있다. 이런 마날을 부인으로 두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만수르의 정치적 위상을 잘 보여준다. 개인의 판단으로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에 50억 달러, 우주여행사 버진 갤럭틱에 2억8000만 달러(지분 32%)를 투자할 수 있는 자금력은 별도다.- 채인택 중앙일보 논설위원

2015.12.27 12:22

7분 소요
30년 전과 닮은 유가 폭락, 그 끝은 - 그때의 부시처럼 대타협 이룰까

산업 일반

지난해 가을부터 시작된 국제 유가의 폭락세는 지난 1980년대 중반과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유가 폭락은 모두 유가의 폭등에서 잉태됐다. 1980년대의 폭락세는 2차 오일쇼크가, 지금의 폭락세는 2008년 당시의 이른바 ‘오일 스파이크’가 야기했다.유가 폭등은 원유개발 붐을 촉진했다. 공급이 대폭 증가했다. 30년 전 멕시코와 북해산 원유가 다크호스로 등장한 것처럼, 지금은 미국의 셰일 오일이 혁명을 일으켰다. 지난해 10월 미국의 원유생산량은 2억8000만 배럴에 달했다. 금융위기 전에 비해 두 배 가까이나 늘어 1986년 초 유가 폭락 당시 수준에 이르렀다. 더구나 30년 전에도 그랬듯이 에너지 효율화가 가속도를 내고 대체 에너지 개발도 활발하다. 그래서 지금 전 세계 하루 평균 원유 공급량은 수요량을 200만~300만 배럴 초과해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전격적인 정책 전환이 유가 폭락을 촉발했다는 점 역시 30년 전과 똑같다.지난해 가을까지만 해도 미국은 원유 순수출국이 될 거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지금과 같은 생산 증가 추세라면 꿈은 머지 않아 이뤄질 터였다. 지난해 9월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원유수출 금지 정책을 폐기할 때가 됐다고 주장했다. 미국의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고, 유럽을 러시아산보다는 미국산 원유에 더 의존토록 해 안보 지렛대를 높일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원유 가격 폭락세가 지속, 심화되면서 그 꿈의 실현에는 제동이 걸릴 조짐이다. 지난해 여름에만 해도 100달러를 넘던 WTI 가격은 최근 들어 50달러 선을 뚫고 내려갔다. 급증세를 타던 미국의 원유 시추장비 수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미국 원유산업 분석 업체인 ‘베이커 휴즈’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에 감소한 시추장비 수는 5년 만에 가장 많았다. 무디스에 따르면 앞으로 석 달간 200개 이상의 시추장비가 나가 떨어 질 전망이다.석유회사들은 신규 투자를 경쟁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관련업종의 실업자가 급증할 것이라는 우려가 잇따르고 있다. 텍사스를 비롯한 핵심 원유생산 지역의 경제가 곧 침체에 빠져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1월 5일(현지시간) “최근의 유가 하락세를 모니터링하고 있다”면서 “아직까지는 유가 하락이 미국 경제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백악관이 밝혔듯이 유가 하락은 ‘아직까지는’ 미국의 경제를 띄우는 효과가 더 크다. 원유산업이 위축되겠지만, 소비자와 기업들의 에너지 비용이 크게 감소하면서 더 큰 혜택을 받게 된다. 그러나 유가가 일정 지점 밑으로까지 하락하면 경제 충격은 부양 효과를 능가할 수 있다. 뉴욕증시가 그 위험을 반영하고 있다. 에너지 기업에서 시작된 주가 급락세가 다른 부문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OPEC 의장이 밝힌 것은 절대적인 경쟁 바로 그것이었다. 미국 석유산업에 미친 결과는 참혹했다. 실업자가 무서운 속도로 급증했다. 유휴 원유시추 장비들이 쌓여 올라갔다. 남서부지역의 금융 인프라는 지진을 일으켰다. 이 지역은 경제공황에 빠져들고 있었다.’(대니얼 예르긴 중에서) 마치 2015년 미국 원유산업을 예언하는 듯한 1986년 미국 경제의 한 단면이다. 1985년 11월 31달러를 넘던 유가(WTI 선물)는 넉 달 뒤인 1986년 3월 말 10달러 수준으로 곤두박질쳤다. 그 해 4월 텍사스주의 한 주유소는 ‘0달러(무료)’에 휘발유를 팔기까지 했다. 당시에만 해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유가 하락이 제공한 경기 부양 효과를 만끽했다. 특유의 방임주의를 원유시장에 적용하는 데 일절 거리낌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작지 않은 한 축인 원유산업은 붕괴되고 있었다. 그 위험을 간파한 사람은 정부 안에 드물었다. 그러나 적어도 한 사람은 생각이 달랐다. 바로 조지 W.H. 부시 당시 부통령이었다. 그는 메사추세츠주에서 나고 자라 예일대학을 졸업한 전형적인 동부의 양키였지만, 텍사스에서 석유사업으로 큰 돈을 벌어 성장한 남부의 정치인이기도 했다. 원유 가격이 폭락하면 미국의 석유소비가 다시 급증할 것이고 미국의 석유생산 기반은 무너지고 말 것이다. 그러면 미국의 에너지 안보는 위기에 처할 것이고 무역적자는 급증할 것이다. 적어도 부시는 그렇게 우려하고 있었다. 석유산업의 붕괴는 자신의 정치적 고향뿐 아니라 국가 전체를 위협하는 일로 여겼다. ━ 생산자-소비자 모두 만족할 가격은… 부시가 움직인 것은 WTI가 10달러로까지 떨어진 직후인 1986년 4월 초였다. 당시 중동 원유는 8달러에도 거래가 됐다. 부시는 사우디아라비아를 공식 방문했다. 아흐메디 자크 야마니 석유장관과의 만찬에서 부시 부통령은 “유가가 이렇게 계속 낮게 유지될 경우 미국 의회가 원유수입 관세를 인상할 수도 있다”고 위협했다. 당시 사우디는 이란 혁명정부의 군사적 위협에 극히 민감한 상태였다. 부시 부통령과 파드 국왕 간의 심야 면담에서 결국 사우디의 군사안보, 미국의 에너지안보 이해관계가 일치했다. 부시 부통령은 백악관의 기류를 명백히 거슬러 거래를 성사시켰다. 그 다음 달인 1986년 5월, OPEC 핵심 6개국의 석유장관들이 ‘배럴당 17~19달러’의 공정가격을 설정했다. 이 가격을 지지할 수 있는 국가별 생산 한도에 합의했다. 석 달 뒤 OPEC 총회는 ‘18달러’의 유가와 쿼터제를 승인했다. 이로써 시장 점유율 경쟁, 가격전쟁은 종료됐다. 비(非)OPEC 국가들의 동참도 이뤄졌다. 당시의 ‘배럴당 18달러’는 원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공존 할 수 있는 황금분할이었다. 소비 경기를 부양할 수 있는 상한선이었고, 생산기반이 무너지지 않을 만한 하한선이었다. 벼랑끝에 몰렸던 원유 생산자들은 참혹한 바닥을 경험하고 난 뒤였기에 새로운 기준가격에 동의할 수 있었다. 새로운 생산쿼터는 대체로 잘 준수되었으며, 유가는 20년 가까이 낮게 안정됐다. 30년 전은 로널드 레이건과 마가렛 대처의 ‘자유시장 정책’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원유시장의 황금분할 가격은 시장이 아닌 국가가 결국 발견하고 결정했다. 지금의 원유시장도 다시 서서히 임계점을 향해가고 있다. 자유경쟁 시장에 돌연히 맡겨졌던 가격 발견 기능은 다시 정부에게로 넘겨질 수 있다. 당시에도 지금도 원유는 단순한 원자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30년 전 유가 폭락에 제동을 걸었던 미국의 지렛대는 ‘관세장벽’이란 채찍과 ‘중동 산유국에 대한 군사적 보호’란 당근이었다. 석유 가격이 어떻게 바닥을 찍고 안정될 것인지를 가늠하는 데에는 이런 정치적 요소를 주목하는 것도 도움이 될 듯하다. - 국제경제 분석 전문 매체 Globar Monitor 특약

2015.01.10 15:56

4분 소요
SHEIKH MANSOUR BIN ZAYED AL NAHYAN - 만수르의 오일머니 파워 ‘무섭네’

산업 일반

전 세계에 ‘만수르 열풍’이 불고 있다. 석유 부국 아랍에미리트(UAE)의 부총리이자 이 나라를 이루는 7개 토후국 중 가장 크고 부유한 아부다비의 로열패밀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얘기다. 그는 영국 축구팀 맨체스터 시티를 인수하더니 뉴욕시티 FC도 창단했다. 아부다비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국부펀드를 운용하는 아부다비투자청(ADIA)이 있다. ADIA는 자산 규모를 밝힌 적이 없지만 국제경제계에서는 3000억(약 300조원)~8750억 달러 정도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포브스는 아부다비의 알 나흐얀 가문의 재산을 1조 달러 정도로 추정한다.그 부의 원천은 물론 석유와 가스다. 아부다비는 매년 2000억 달러에 이르는 아랍에미리트(UAE) 전체 석유생산의 95%, 가스 생산의 6%를 차지한다. 또 지금까지 발견된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9%, 가스 매장량의 5%를 차지한다. 에너지만 갖고도 상당 기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이 나라는 인구 1인당 석유와 가스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이웃 국가인 카타르에 이어 세계 2위다. UAE의 2013년 국내총생산(GDP)은 3900억 달러 규모다. 1인당 GDP는 4만3185달러에 이른다. 전 세계를 뒤흔든 재정 위기 속에서도 8~9%의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 자기 이름으로 개인투자 한 최초의 UAE 부자 아부다비의 에미르(군주)이자 UAE 대통령인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재산이 230억 달러로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왕족 순위 2위다. 중동 사막지대에서 부의 상징이라 불리는 낙타도 1만4000마리 소유하고 있다.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분원을 유치해 아부다비를 중동의 문화 중심지로 만드는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할리파의 동생인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최근 세계 스포츠계에 중동 오일달러 바람을 일으켰다. 그는 2008년 UAE 두바이의 기업인 술라이만 알 파임과 함께 태국 총리 출신의 기업인 탁신 친나왓으로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 팀을 사들였다. 국제무대에서 생소한 인물이었던 그는 세계에 해외 투자의 선봉장으로 자신의 이름을 새기기 시작했다.2009년 3월 11일 포브스닷컴은 그를 ‘페르시아만의 새로운 억만장자’로 표현했다. 기사 내용은 이렇다. “1년 전만 해도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이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에게 다소 생소했다. 적어도 UAE의 수도 아부다비에 살지 않는 사람에게는 그랬다. 하지만 오늘날 영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을 찾기가 매우 어렵게 됐다. 39세의 그는 아부다비의 왕족 출신으로 현재 아랍에미리트의 부총리 직을 맡고 있다.그의 자산 중 대부분은 상속받은 것으로 그의 가문은 1970년대 석유사업으로 큰 성공을 거둬 1500억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개인투자에 나선 최초의 UAE 억만장자다. 첫 공식 투자는 맨시티를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맨시티 인수와 동시에 5900만 달러라는 기록적인 금액을 들여 브라질 선수 호비뉴를 영입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그 다음 달인 10월 바클레이스 은행이 중동 자본 유치에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96억 달러를 투자해 국가 구제금융을 피할 수 있도록 도왔다.”맨시티를 사들인 그는 6년간 어마어마한 돈을 퍼부어 팀을 최고 수준으로 키웠다. 세계에서 가장 자금력이 풍부한 축구클럽이 된 맨시티는 레알 마드리드로부터 호비뉴를 영입하는 등 지금까지 3억 달러 가까운 돈을 들여 우수 선수들을 줄줄이 데려왔다.엄청난 투자의 효과는 2011/12년 시즌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1년 10월 맨시티는 막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상대로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드래포드에서 6대 1로 대승하며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맨체스터의 두 팀인 맨유와 맨시티의 대결을 맨체스터 더비라고 부르는데 여기서 맨시티가 이 같은 대승을 거둔 것은 드문 일이다.이듬해 5월 14일 맨시티는 맨유와 승점이 동률인 상황에서 퀸즈파크 레인저스와의 마지막 경기를 이겨 44년 만에 시즌 우승을 거뒀다. 퀀즈파크 레인저스는 이 패배로 프리미어 리그에서 탈락했다. 맨시티는 지난 5월11일 치른 2013/14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를 2대 0으로 물리치고 리그 우승을 확정지었다. 무승부만 기록해도 우승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승리함으로써 2위인 리버풀을 승점 2점차로 느긋하게 제쳤다. 꾸준한 투자의 힘을 보여준 셈이다.만수르의 맨시티는 올해 중앙 수비수 엘리아큄 망갈라를 3200만 파운드(약 552억원)에 영입했다. 지난 시즌 유럽축구연맹으로부터 재정적 페어플레이(FFP·수입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쓸 수 없다는 규정) 위반으로 징계를 받은 여파로 자제한 것이 이 정도다. 야야 투레, 사미르 나스리, 세르히오 아구에로 등 쟁쟁한 멤버들이 가득하다. ‘첼시의 레전드’라고 불리던 프랭크 램퍼드는 미국 뉴욕시티 이적 후 재임대 형식으로 맨시티에 합류했다.만수르는 미국 스포츠, 특히 축구 시장을 노리는 해외자본의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미국 5대 프로 스포츠 중 가장 늦게 출범한 메이저리그사커(MLS)는 아이스하키(NHL)와 농구(NBA)를 따돌리고 미국 내 3위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 잡았다. MLS는 지난 시즌 경기당 평균 관객 수 1만8608명을 기록했다. 미식축구(NFL·6만8397명)와 야구(MLB·3만504명) 다음이다. 전 세계 프로축구 리그에서 10위권에 들었다. 여기에 만수르가 가세한 것이다.이미 2008년부터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맨시티를 운영한 그는 MLB 명문 뉴욕 양키스와 손잡고 뉴욕을 연고로 하는 20번째 MLS 프로축구팀인 뉴욕시티FC를 창단했다. 다비드 비야(스페인), 프랭크 램퍼드(잉글랜드) 등이 뉴욕시티FC 유니폼을 입고 내년 3월 MLS에서 뛴다. 만수르가 스포츠 투자를 강화하기 시작할 당시 그의 부하직원이 했다는 “돈이 무엇인지를 보여주겠다”는 말이 한때 그의 발언으로 와전되기도 했다. 해외 투자로 아부다비도, 아부다비 왕자 만수르도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 맨시티 인수 후 선수 영입에 3억 달러 들여 한국에서도 만수르는 위력을 발휘했다. KBS ‘개그콘서트’에서 7월 13일 첫 방송한 ‘만수르’ 코너가 2회분인 7월 20일 방영분부터 ‘억수르’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국석유공사 측에서 거래국 주요 인사인 만수르의 심기를 건드릴까봐 코너이름 변경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만수르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정보는 그의 가문이다. 그의 가문에 대한 정보는 그의 이름에 잘 나타나 있다.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나흐얀 가문의 자이드의 아들 만수르라는 뜻이다. 이름 맨 앞에 셰이크를 붙이기도 하는데 이는 이슬람 율법학자나 부족 지도자, 이슬람 군주의 가문 사람에게 붙이는 존칭이다. 여성에겐 셰이하라는 존칭을 붙인다.만수르의 아버지인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은 아부다비의 에미르, 즉 이슬람 세습군주였다. 이름에 술탄이라는 단어가 있는 것을 두고 러시아 차르나 몽골 칸과 동급이라고 주장하는 자료도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빈 술탄은 술탄의 아들이란 뜻으로 자이드의 부친 이름이 술탄이었다. 술탄은 이름으로도 많이 쓰인다.자이드는 1971년 아랍에미리트를 이루는 7개의 토후국이 독립할 당시 이를 결집해 UAE라는 하나의 나라로 만드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독립 당시 가장 크고 인구와 자원이 많으며 강했던 아부다비의 에미르가 UAE의 대통령을, 두 번째로 큰 두바이의 에미르가 총리를 맡기로 합의했다. 그는 이 자리를 33년간 유지하다 2004년 세상을 떠났다. 아부다비의 에미르는 독립 전인 1966년부터 38년간 맡았다.자이드는 생전에 여섯 차례 결혼해 19남 9녀의 자녀를 뒀다. 첫 부인 소생인 장남 할리파 빈 자이드 알 나흐얀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부다비의 에미르 자리를 이어 받았으며 UAE의 대통령직도 당연히 물려받았다. 그의 이복동생인 모하메드는 아부다비의 왕세제가 돼 차기 대권 계승자가 됐으며 UAE군 부사령관을 맡고 있다. 만수르는 이 두 사람의 이복동생인데 아버지 자이드의 셋째 부인 파티마의 넷째 아들로 권력에서 거리가 멀다.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것은 만수르의 동복형제들이다. 만수르의 생모 파티마는 6남 2녀를 낳았는데 아들들은 하나 같이 똑똑하고 유능하다. 이들 여섯 명은 어랍어로 바니 파티마, 즉 파티마의 아들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며 UAE와 아부다비에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 아부다비 군주와 셋째 부인 사이에서 태어나 파티마의 장남인 함단은 이복동생 술탄과 함께 UAE의 공동 부총리를 지냈으며 UAE의 외교장관을 맡았다. 현재는 아부다비 서부지역의 주지사다. 만수르는 2009년 이복동생 사이프와 함께 이들로부터 공동 부총리를 이어 받았다. 하자는 2006년 퍼스트 걸프 뱅크(현 FGB) 회장으로 선출됐고 동생인 타눈은 부회장을 맡았다. 만수르는 그전까지 이 은행의 회장을 맡았다 하자에게 넘겨줬다. 아부다비에 본부를 둔 이 은행은 1979년에 생겼으며 UAE에서 가장 큰 자산 규모를 자랑한다. 만수르의 동생인 압둘라는 UAE 정보문화장관을 지낸 뒤 2006년 2월부터 외교장관을 맡고 있다.만수르는 UAE의 내각위원회 의장, 투자위원회 의장을 겸하고 있으며 최고석유위원회와 국제 석유투자회사, 아부다비 투자 위원회의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나라의 돈을 만진다는 이야기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우주여행을 추진하는 버진 갤럭틱과 아랍 세계의 주요미디어인 스카이뉴스 아라비아를 비롯한 벤처 및 주요 기업에 상당한 지분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이 아부다비 유나이티드 그룹의 오너라는 사실이다. 2008년 맨시티를 구입해 최근까지 투자 드라이브를 이어오고 있는 바로 그 회사다.만수르는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2년제 대학인 산타 바바라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한 뒤 UAE대학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해 1993년 졸업했다. 1997년 아버지인 자이드가 대통령으로 있던 대통령실의 운영위원장을 맡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이복형인 할리파가 뒤를 잇자 대통령 담당 제1장관을 맡았다. 과거 대통령 위원회와 대통령 법원을 합친 막강한 자리였다. 그는 왕세자가 된 이복형 모하메드를 지원하기 위해 여러 일을 했다.만수르는 부인들 역시 만수르만큼 화제다. 첫 번째 부인은 알리아 빈트 모하메드 빈 부티 알 하메드 전 총리의 딸이다. 둘 사이에 자이드라는 이름의 아들이 있다. 그는 2005년 5월 둘째 부인인 마날 빈트 모하메드 빈 라시드 알 막툼과 결혼해 2남 2녀를 두고 있다.마날은 두바이의 에미르이자 UAE의 총리인 모하메드의 딸이다. 마날은 두바이의 왕세자인 함단의 누나이기도 하다. UAE 여성위원회 의장으로 여성의 사회활동 참여를 담당하고 있다. 미모가 뛰어난 마날은 UAE의 최대 에미르 가문인 아부다비의 나흐얀 가문과 서열 2위 격인 두바이의 알막툼 가문을 잇는 가교 역을 하고 있다. 이런 마날을 부인으로 뒀다는 사실이 만수르의 위상을 잘 보여준다.만수르의 개인 재산은 얼마일까? 그는 2009년 포브스가 선정한 억만장자 순위에서 49억 달러의 재산으로 104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포브스는 2010년 그의 재산의 상당액이 개인 자산이 아닌 아부다비의 국가 자금이라는 판단 아래 억만장자 순위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국가자금이든 개인재산이든 그가 쓸 수 있는 자금은 천문학적인 규모다. 그간 영국 바클레이스 은행에 50억 달러를, 맨시티 선수를 영입하는 데 3억 달러를 퍼부었는데 이는 그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바로 만수르의 힘이다.

2014.10.16 12:46

7분 소요
3차 오일쇼크의 먹구름

산업 일반

▶고유가에 항의하는 프랑스 농민들. 미국은 이제 역사적인 전환점에 도달했다. 주유소에서 휘발유의 평균 가격이 ℓ당 1달러를 넘어서면서 미국의 악명 높은 낭비벽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은 자가용 대신 대중교통을 더 많이 이용하고, 대형 승용차 구입을 자제하고, 무절제한 쇼핑을 줄이고 있다. 그동안 어떤 충격에도 확고하게 버텨오던 소비자 신뢰도까지 낮아지는 추세다. 미국인들로서는 갑작스러운 변화다. 스웨덴 사람들처럼 됐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과거와는 확실히 달라졌다. 이런 변화로 세계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앞으로 더 많은 변화가 예상된다. 지금까지 유가 쇼크는 미국에서 가장 확실한 일부 소비자 행태의 변화를 가져왔을 뿐이다. 유럽인들은 한층 높아진 유로화 가치를 방패막이 삼아 유가 급등의 충격을 완화하고 있다. 또 아시아인들은 정부의 보조금으로 치솟는 국제 유가로부터 보호받는다. 그러나 유가의 고공행진이 계속된다면, 그리고 보조금의 보호막이 무너진다면(그럴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을 변화시키고 있는 에너지 혁명이 세계 전체로 퍼져 나갈 것이다. “유가가 배럴당 80달러까지 올랐을 당시 우리는 잘 견뎌냈다”고 에너지 부문의 대가로 ‘황금의 샘(The Prize: The Epic Quest for Oil, Money and Power)’ 저자이며 케임브리지 에너지연구협회 회장인 대니얼 예르긴이 말했다. “그렇다고 해서 배럴당 200달러를 무리 없이 극복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 정도 유가라면 세계 전체에 강력한 충격파를 전달할 수 있다.” 1년 전만 해도 어느 누구도 원유 가격이 배럴당 200달러까지 오르리라 내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시장의 모든 사람이 그렇게 말한다. 그 이유를 들어보면 실제로 섬뜩하다. 유가는 1999년 10달러에서 지난해 95달러로 치솟았지만 세계경제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가 급등은 기본적으로 수요의 증가, 특히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인 인도와 중국에서 수요가 크게 늘어난 결과라는 시장의 믿음 때문이었다. 물론 공급 측면의 우려도 있었지만 1970년대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세계 목 조르기로 촉발된 공황(1차 오일쇼크) 같은 사태는 없었다. 그러나 지난 몇 달 새 상황이 달라졌다. 유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지난주 선물시장 가격이 135달러에 이르자 비관론이 여론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국과 인도가 이끄는 장기 수요가 계속 늘어난다. 아울러 분쟁의 증가, 투자 감소, 업계의 병목현상, 주요 산유국의 대규모 유전 매장량 예측의 하향조정 등 공급측면의 위협요소도 조만간 사라지지 않을 전망이다. 이제는 모두는 아니라고 해도 많은 사람이 유가 200달러 전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 1970년대 같은 오일쇼크가 올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투자은행 골드먼삭스는 배럴당 200달러가 향후 이르면 6개월, 늦어도 24개월 안에 닥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에너지 절약을 유도하고 지구온난화를 막는 방편으로 높은 유가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에게조차 유가의 상승 속도는 너무 빠르게 느껴진다. 치솟는 유가는 이미 서민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고, 세계 곳곳의 경제성장을 위협하고, 인플레이션의 망령을 되살리고 있다. 고유가의 압력은 중국과 인도 등 대형 신흥시장에서 특히 심하다. 이런 신흥시장은 최근년에 와서 저렴한 상품과 서비스의 수출을 통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는 건전한 재정관리의 본보기로 떠올랐지만 이제 그들이 인플레 수출국이 될 위험이 있다. 특히 에너지 가격 관리가 무너지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현재 미국인들은 비싼 주유 비용에 따른 손실을 메우려고 월마트 같은 대형 할인점으로 몰려가 값싼 중국 상품을 구입한다. 그러나 중국 같은 곳에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면 미국인들의 운도 다할 것이다. 2009년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를 돌파해도 ‘대형 차량에 대해 환경세를 부과하는 정도 아닐까’ 하는 생각은 큰 오산이다. 그 정도로 끝날 문제가 결코 아니며 그 타격은 매우 고통스러울 것이다. 세계경제의 대부분은 석유에 좌우된다. 따라서 유가 200달러 시대의 세계를 정확하게 그려보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확실한 점은 그 쇼크로 인해 각국은 지금보다 훨씬 빨리 환경친화적으로 변신을 꾀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등 조치가 불가피해진다. 그러나 이 중 어느 것도 6∼24개월 안에 완성될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예측은 비관적일 수밖에 없다. 일부 분석가는 물류 비용의 급증으로 상품의 장거리 운송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역내 교역 중심으로 무역 체제가 변하며, 심지어 세계화의 역행까지 내다본다. 지난 5년 동안 수조 달러의 오일 달러가 석유 소비국에서 산유국으로 흘러 들어갔다. 이런 부의 이전이 가속화하면 권력의 세계적인 균형이 깨진다. 예를 들어 이란, 베네수엘라, 러시아 같은 석유 독재국가들이 득세하게 된다. 투자은행 모건스탠리의 외환 전략가 스티븐 젠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라면 페르시아만 지역 6개국의 확인된 석유매장량만 따져도 그 가치가 95조 달러에 이른다. 세계 전체 공개자본시장(주식시장) 규모의 약 두 배다. 그렇게 되면 산유국들의 국부펀드(SWF)가 시장의 실세가 된다. 대부분 왕실이 관리하는 이들 국부펀드를 더 많이 개방하라는 서방의 압력이 증가할 게 뻔하다. 일부 낙관론자는 이런 횡재를 잘만 관리한다면 중동이 현대 세계로 진입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명한 투자가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이미 많은 소규모 국가가 지금까지 벌어들인 오일 달러를 효율적으로 투자하는 데 실패했다. 또 석유로 부자가 되면 부패한다는 징크스는 잘 알려진 사실이다. 캘리포니아대 LA 캠퍼스(UCLA)의 정치학 부교수 마이클 L 로스는 세계 전체의 내전 중 산유국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캄보디아, 동티모르 등 산유국 수도 많아지고 있다. 유가가 올라갈수록 새로운 산유국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이들 중 다수는 소규모 국가며 부정 부패와 맞서기엔 역부족이다. 어떤 산업 부문도 고유가의 파장을 피해 갈 수 없다. 상품과 사람을 움직이는 회사라면 석유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유가가 200달러가 되면 오래전부터 예측돼온 미국 자동차산업 전체의 몰락, 또는 3대 자동차 제조업체 중 적어도 하나의 파산이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 항공사도 마찬가지로 취약하다. 미국의 항공사들은 치솟는 연료 가격으로 연료 효율성이 떨어지는 노후 비행기 다수의 퇴역으로 운항 노선과 항공 편수를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에어프랑스-KLM 그룹은 최근 올해 수익이 3분의 1로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고 발표했다. 에어프랑스-KLM의 CEO 장 시릴 스피네타는 유가 200달러가 2001년의 9·11 테러나 2003년에 유행한 사스(SARS: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보다 훨씬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일종의 혁명이며, 항공산업이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유럽, 미국, 아시아에서 연쇄 파산 사태가 급속도로 이어질 것이다. 항공사 네트워크의 재편(인수합병), 운항 노선 감축 등이 일어날 것이다.” 합병과 노선 감축이 이뤄지면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에서 미국의 중서부에 이르는 소도시들의 공항은 유령 건물로 변할 것이다. 고유가로 발생하는 미국의 소비 침체는 세계 모든 곳에 닥칠 현상의 전조가 될 수 있다. 현재 미국의 소비자 신뢰지수는 15년래 가장 낮다. 미국 에너지부의 통계는 휘발유가 ℓ당 1달러를 넘어서면 미국인들도 자가용 이용을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올해 미국의 휘발유 소비가 1991년 이래 처음으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 부양책’을 아무리 마련한다 해도 도움이 될 것 같지 않다. 시티뱅크는 유가가 현재 수준에 머무른다 해도 미국 소비자 휘발유 가격의 전년도 대비 증가 폭이 너무 크기 때문에 예상되는 유류세 환급액 1200억 달러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것으로 추정했다. 식품과 연료 가격이 올라가면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지출이 줄어들게 된다. 그러니 월마트 같은 대형 할인매장이 기록적인 매출을 올리고, 중고가 소매점이 허덕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추세가 곧 유럽에도 나타날 전망이다. 독일인들은 연료를 절약하려고 아우토반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2000년 이래 ℓ당 0.92유로에서 1.53유로로 66%나 올랐기 때문이다. 분석가들은 유럽인들이 휘발유에 돈을 더 많이 쓸수록 가구, 옷, 가전제품 구입을 줄이게 된다고 분석한다. 이런 품목의 매출은 이미 줄었다. “업계는 이미 내부적으로 세계적인 경기후퇴가 온 것처럼 느낄 것”이라고 시티뱅크 유럽자본 분석가 리처드 레이드가 말했다. “파산, 인수합병이 크게 늘 것으로 예상된다. 인도의 타타 그룹 같은 활기찬 신흥시장의 대기업들이 구미의 침체된 기업들을 헐값에 사들일 것이다.” 최근 두 달 만에 석유 선물가격이 40%나 오르면서 미국인들은 그 파급효과가 더 빨리 피부에 와 닿는다고 느낀다. 미국의 자동차 제조업체들은 유가가 치솟기 전부터 서서히 소형차로 눈을 돌렸지만 스포츠다목적차량과 픽업트럭의 매출이 떨어지는 속도가 너무 빨라 허를 찔린 모습이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가 되면 GM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에너지 전문가 필립 벌레저가 말했다. “생산 모델을 바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포드의 CEO 앨런 멀랠리는 5월 중순 2009년이 되면 다시 수익을 낼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며 휘발유 가격의 변화가 고착될 듯하다고 말했다. 포드는 20년 동안 미국의 베스트 셀러 차종이던 F 시리즈 픽업트럭의 생산을 줄였다. 한편 일본의 닛산은 차세대 전기차의 동력원으로 사용할 리튬이온 연료전지를 생산하는 1억1500만 달러 규모의 공장을 도쿄 외곽에 새로 지었다. 개인이 어떤 차를 몰지, 얼마나 자주 비행기를 탈지, TV를 얼마나 자주 교체할지에 대한 결정은 고유가가 유발하는 거시경제적 위협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 위협은 아직 공식적으로 조사된 바 없다. 모건스탠리 같은 주요 금융기관들은 유가 200달러가 현실이 되면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이제야 진지하게 논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미 빈국만이 아니라 부국에서도 석유가 인플레 위협을 가속화하고 있는 게 분명해졌다. 이번 여름 인플레이션은 미국이 약 5%, 유럽이 약 3%로 예상된다. 그러나 신흥경제국들의 경우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이 표준이 될지 모른다. “아마도 미국인들은 지금이 1990년대의 정반대처럼 느껴질 것”이라고 모건스탠리의 미국경제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리처드 버너가 말했다. “하지만 선진 산업국의 상황이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개도국들의 경우를 보라. 그곳 사람들은 소득 중 50%를 식품과 연료에 쓴다.” 실제로 아시아 국가들이 유가가 더 올라가 연료 보조금을 줄이거나 철폐할 수밖에 없다면 성장이 크게 둔화될 뿐 아니라 사회불안까지 야기될 수 있다. 이미 자유무역에서 이탈하는 사례가 많아지는 가운데 보조금이 사라지고 사업비용마저 늘어나면 세계화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세계화 역행의 전조”라고 CIBC 은행 월드 마케츠 담당 수석 이코노미스트 제프 루빈이 말했다. “유가가 배럴당 200달러가 되면 운송비용이 크게 늘어 지난 30년 동안 이룩한 무역 자유화가 물거품이 될 것이다.” 루빈은 세계무역이 지역별로 재편될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중국 상품을 계속 수입하겠지만 미국은 라틴 아메리카에서 수입을 늘리게 된다. “오일쇼크가 일어난 73∼79년에도 똑같은 현상이 발생했다”고 루빈은 말했다. “당시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연안 지역에서 미국의 수입 물량이 6%포인트 증가했다. 순전히 운임 때문이었다.” 물론 지역주의 때문에 무역이 완전히 멈춰서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러시아, 라틴 아메리카, 페르시아만 등 에너지가 풍부한 지역에서 새로운 금융 및 서비스 중심지가 생겨날 것이다. 국부펀드는 구미의 은행들과 우량 기업들의 지분을 계속 매입하면서, 새로운 여러 나라들로 투자의 폭을 넓히고 다양한 통화에도 투자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외환의 움직임이 활발해지는 동시에 더욱 예측 불가능해질 것이다. 국부펀드의 부상은 이미 보호주의의 부활을 촉발했다. 미국 정부는 미국 기업의 외국인 투자자들에 대한 심사를 강화했다. 더 심한 갈등도 얼마든지 생길 수 있다. “중동과 아프리카, 러시아, 베네수엘라 같은 지역의 힘이 강해지면 에너지 탐욕, 호전적인 행위, 신식민주의적 행동이 늘어날 것”이라고 다국적 컨설팅 업체 매킨지의 에너지정책 책임자 스콧 나이키스트는 예측했다. 이란이 부유해지면 헤즈볼라의 힘이 더욱 강해질 수 있다. 중국은 아프리카에서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게 분명하다. 시민사회, 환경, 여성의 권리에 대한 서방세계의 개념이 새로운 가치관에 밀려날지도 모른다. 그 과정에서 더 많은 유혈 사태가 예상된다. 석유로 이룬 부는 그 국가의 경제와 정치를 엉망으로 만들기 쉽다. 다문화의 수용을 가로막고, 자국 내 소수민족의 불만을 고조시키고, 저항세력에 자금을 대기가 더 쉬워지기 때문이다. 현재 세계 전체 내전의 약 3분의 1이 산유국에서 발생한다. 92년에는 5분의 1 수준이었다. “이라크와 나이지리아 같은 곳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보라”고 UCLA의 로스 교수가 말했다. “분쟁이 유가 상승을 부채질하고, 고유가가 석유 분쟁을 일으키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석유 공급 측면에서 여분의 역량이 없기 때문에 그런 현상을 제재로 해결하기가 어렵다. 현시점에서는 특정 지역의 공급을 막으면 안 그래도 폭발성이 큰 상황에 불을 댕기는 셈이다. 세계적인 석유 공급 부족을 부추기는 요인들은 서로 밀접하게 얽혀 있다. 유가가 올라가면서 러시아, 베네수엘라 같은 산유국들은 유전을 다시 국유화한다. 투자은행 샌포드 번스타인의 분석가 벤 델에 따르면 종종 그 결과는 석유 생산의 감소로 나타난다. 국영 석유회사들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민영 석유회사들은 가능한 곳이라면 어디서든 유전을 개발해야 한다. 미국 알래스카와 북해 같은 평화 지역의 유전이 바닥을 드러내자 석유 회사들은 나이지리아와 앙골라 같은 분쟁 지역이나 채굴이 매우 어려운 극한지대인 시베리아와 심해저에서 새로운 석유를 찾는다. 고유가로 이미 부국들이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는 있지만 그 정도로는 신흥시장의 급증하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다. 한편 다양한 친환경 기술이 유망하긴 하지만 어느 것도 조만간 현실화될 수 없다. “친환경 에너지 기술은 아직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석유 컨설팅 업체인 PFC에너지의 로빈 웨스트 회장이 말했다. “기술에서 단계적인 발전은 있겠지만 사람들은 석유사업의 규모를 망각했다. 곡물을 재료로 하는 대체 연료 에탄올은 지난해 50억 갤런이 생산됐다. 그것을 생산한다고 농민들에게 거약의 보조금이 지급됐고 식품 가격이 급등했다. 그래 본들 서아프리카 해변의 한 유전에서 나오는 석유 정도의 규모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어떤 조치가 필요할까? 우선 정책입안자들은 대규모 석유회사들에 가격이 왜 그렇게 비싸냐고 따지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확인된 매장량의 극히 일부분만 통제할 뿐이며 대부분 원유는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또 별 볼일 없는 에탄올보다 풍력, 태양력 이용을 높이는 좀 더 슬기로운 친환경 에너지 개발을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새로운 현실을 무시하는 보조금과 유류세 인하로 유권자들의 인기에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 어차피 석유는 더 많은 사람이 더 많이 원하는 유한 자원이며, 낭비하는 관행은 현실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정말 싸고, 깨끗하고, 쉽게 얻을 수 있는 연료가 있는데 그건 바로 절약”이라고 웨스트는 말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자동차 운전시 속도 제한 지키기, 소등, 그리고 하이브리드 발전, 더 나은 단열장치 등등 이미 보유한 친환경 기술을 제대로 사용하기만 해도 세계는 전체 석유 사용량의 25%를 줄일 수 있다. 소비 억제는 부국, 특히 미국의 취향이 아니지만 에너지 가격이 치솟으면 모두가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1970년대에도 그랬다. 이제 다시 똑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가 아주 운이 좋다면 절약이 유가 200달러 시대의 중요한 교훈으로 길이 남을 것이다. With BARRETT SHERIDAN in New York, KEITH NAUGHTON in Detroit, STEFAN THEIL in Berlin, MICHAEL FREEDMAN in Paris and GEORGE WEHRFRITZ in Hong Kong

2008.06.10 11:15

10분 소요
속으로 골병드는거대 석유 회사들

산업 일반

고유가 덕택에 큰 돈 벌었지만 비용늘고 값 떨어져 노심초사 전망 어둡자 자구책 마련 부심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은 존 브라운 경이 지휘봉을 잡은 11년 동안 색다른 석유회사라는 평판을 얻었다. 환경과 여직원 등 온갖 문제에서 좀 더 친절하고 온화한 회사라는 평이었다. 브라운은 종종 “가장 존경받는 최고경영자” 명단의 정상에 오르고는 했다. 그러나 최근 몇 달 동안 변화가 생겼다. 텍사스시티에서 정유소 폭발사고가 일어나고, 알래스카에서 기름이 유출됐으며, 한 계열사가 에너지 시장을 조작한다는 혐의를 받았다. 대주주들은 제도적 문제를 따졌다. 미국 하원의원들은 BP 중역들이 안전기준을 어겼다고 비난했다. 미 법무부를 비롯한 여러 기관이 조사에 나섰다. BP는 전직 판사를 고용해 내부 고발자들의 주장을 검토했다. 이들은 회사가 은폐를 기도한다고 말하는데 회사는 단호히 부인했다. 브라운 경은 올 여름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이제 비상시국을 맞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 상황은 BP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엑손모빌과 셸에 이은) 세계 3위의 이 석유회사는 분명 호되게 경을 치르는 중이다. 그러나 미래 걱정을 하는 석유회사 최고경영자가 존 브라운만은 아니다. 밖에서 보면 석유업계는 역대 최고의 유가, 이윤, 최고경영자 연봉이라는 3박자를 즐기는 부자집단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많은 경영자는 신속히 상승하는, 아니 적어도 이윤보다 신속히 상승하는 원가에 신경을 쓴다. 과거 경험도 무시 못한다. 유가의 고공행진이 오래갈 전망이 아니니 너무 좋아하지 말라는 경고를 보내기 때문이다. 유가가 최근 배럴당 60달러 이하로 떨어지자 신규 공급이 늘면서 40달러나 심지어 30달러 이하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첫 조짐으로 해석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사실 최근의 유가 폭등 전만 해도 석유업계는 여러 해 동안 유가 관리에 무척 신경을 써왔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는 머지않아 BP 같은 대기업이 안전과 유지보수 기준을 어겼다는 혐의를 받게 되리라고 내다봤다. 석유업계 최고경영자들이 장사가 안 된다는 소리를 하면 허튼소리로 들리겠지만 사실 석유 메이저들은 유가 폭등 전보다 그다지 풍족하지 못하다. 지난 6년 동안 수익이 제자리에 머물렀다. 골드먼 삭스에 따르면, 서구 종합석유회사의 평균수익은 투자자본의 19%로 2000년 이후 약 2%가 늘었을 뿐이다. 자본집약도가 높은 석유산업에서는 자본수익성이 주요 잣대다. 회사가 얼마나 버는지 말해줄 뿐 아니라 그 비용이 얼마인지도 말해주기 때문이다. 요점만 말하자면, 석유회사의 가치 창출이 휘청거린다. 업계의 수입은 전보다 늘었지만 이윤 창출에 전에 없이 많은 돈을 쓴다. 요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20년 동안의 투자부족, 석유 민족주의의 부상, 바닥을 드러내는 매장량, 위험한 탐사 프로젝트의 증가 등등. 그런 모든 요인이 한데 뭉쳐 서구 메이저들이 쉽게 석유를 얻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으면서 유가 폭등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단지 석유회사의 세입을 보면서 엄청 큰돈을 번다고 생각한다”고 골드먼 삭스의 상품 연구실장 제프리 커리는 말했다. “오늘날의 영업환경이 제기하는 막대한 난제들과 온갖 어려움은 그들 눈에 보이지 않는다.” 시장은 일반인들보다 그런 어려움을 더 잘 인식한다. 최근의 이윤에도 불구하고 석유업계의 주가가 오르지 않는 원인이 거기에 있다. S&P 500 지수에 편입된 석유재벌들의 평균 주가수익률은 9.8로 역대 평균의 약 절반이라고 S&P의 선임연구원 하워드 실버블래트는 말했다. 역대 주가수익률 평균치보다 약 20%나 떨어지는 전체 대기업 주식의 평균치보다 훨씬 낮은 수준이다. 석유회사의 경영자들이 흐뭇해할 일은 못 된다. 평균적으로 2000만 달러를 훨씬 넘는 연봉을 받지만 말이다.“최고경영자들의 입장에선 결코 즐거운 상황이 못 된다”고 케임브리지 에너지 연구협회(CERA)의 대니얼 여긴은 말했다. 여긴은 석유산업의 역사를 다룬 책 ‘프라이즈’(The Prize)로 퓰리처상을 받은 바 있다. “최고경영자들은 새로운 자원에의 접근을 막는 제약 강화, 자원 민족주의의 부상, 인력 부족, 원가 급상승을 걱정한다. 석유는 장기 산업이며, 10~15년 후 에너지 공급 체제가 어떻게 달라지느냐는 큰 의문에는 답이 나오지 않았다.” 지난 몇 해 동안 석유회사들을 전에 없이 부자로 만들어준 유가의 고공행진이 반드시 지속되지는 않으리라는 조짐은 벌써 보인다. 브라운을 비롯한 업계 최고경영자들은 유가가 배럴당 35달러로 떨어진다는 가정 아래 중장기 투자계획을 세워 왔다. 올 여름만 해도 브라운은 장차 배럴당 25달러로 안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많은 전문가가 그 수치에 동의했다. “유가가 배럴당 40달러를 넘는 현상은 불과 2년밖에 안 됐다는 사실을 잊기 쉽다. 50달러를 넘은 것도 1년밖에 안 된다”고 브라운은 말했다. “거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다.”골드먼 삭스 같은 투자은행들은 동절기 난방시즌이 시작되면서 75달러까지 오를 수도 있다고 내다본다. 그러나 최근의 유가 하락으로 석유는 부침 현상이 심한 변덕스러운 산업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사실 지난 20년 동안의 바닥가(평균유가가 배럴당 20달러이고 심지어 10달러까지 내려간 적도 두 차례 있었다)야말로 BP뿐 아니라 업계 전체의 일부 문제를 일으킨 요인이다. 공급이 넘치는 데다 1990년대의 아시아 금융위기로 수요가 다소 줄면서 유가는 2002년까지 낮게 유지됐다. 그 기간에 석유 업계에서 대규모 합병이 이뤄졌다. 임금이 폭락하고, 예컨대 미국에선 100만 명 이상이던 고용인원이 50만 명으로 줄었다. 서구 석유기업 약 400개가 도산했다. 넘어가지 않은 기업들은 비용과 용량 절감으로 살아남았다. 그 결과 석유산업의 한 세대가 실종됐다. “10년 전의 젊은이들은 광산이나 광물 엔지니어링 산업에 종사하기를 싫어했다”고 이탈리아의 석유 메이저 ENI의 전략담당 부사장 레오나르도 마우제리는 말했다.“패자로 인식됐다.” BP와 셸이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비용을 절감한 회사로 알려졌다. 다소의 차이는 있지만 다른 기업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제 큰 의문은 BP가 너무 멀리 나간 나머지 이윤을 위해 안전을 위태롭게 하지 않았느냐는 점이다(내부 고발자들은 우선 이 회사가 알래스카 시설의 유지보수를 게을리 했고, 텍사스시티에서 낡은 장비를 사용했다고 비난했다). “1990년대의 BP 문화는 엑손이나 셰브론과 크게 달랐다”고 업계의 한 고위직 베테랑은 익명을 요구하며 말했다. “지금 곤경에 빠진 원인을 운수 탓으로만 돌리기는 곤란하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 사이에선 BP가 너무 심하게 나갔다고 말하는 사람보다 그렇게 단정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이 더 많다. 여긴 같은 전문가들의 입장에선 프루도만이나 텍사스시티의 실정을 정확히 판단하려면 몇 달 더 조사한 뒤 보고서가 있어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래도 시장은 가장 적극적인 비용절감자에게 상을 준다는 사실 하나는 분명하다. “1990년대 초에는 BP의 주식이 인기 없었다”고 ING의 석유 분석가 제이슨 케니는 말했다. “그러나 1990년대 말이 되자 인기주가 됐다.” 시장원리가 작동하기 시작한 바로 그 시기였다. 15년 이상 투자를 게을리 한 2000년이 되자 업계는 예비용량(땅속에서 손쉽게 빨리 뽑아낼 수 있는 석유의 분량)까지 빼냈다. “그제서야 마침내 모두들 투자를 시작했다”고 골드먼 삭스의 커리는 말했다. 그러나 투자 속도가 충분치 못했다. 석유 시출장비(몇 달이나 몇 해 전에 미리 주문해야 하는 대형 기계)와 기사 등 모든 것이 모자라는 데다 중국·인도 등 급성장하는 나라의 수요 증가가 겹치면서 비용이 급등하기 시작했다. CERA는 2000년 이후 전체 역외비용이 68% 증가했으며, 특정 유형의 기계와 장비의 비용은 그보다 더 빨리 증가했다고 추산했다. 많은 대형 프로젝트가 인력 부족으로 중지되거나 예산을 수십억 달러씩 초과했다. BP의 바쿠-세이한 송유관은 건설사와 자재 납품업자들의 청구액이 급등하면서 예산보다 적어도 10억 달러를 넘길 전망이다. 셸의 캐나다 유사(油砂) 프로젝트는 지난해 예상액보다 50% 높은 자본비용에 직면했다. 강관(鋼管)과 내식특수강 등 모든 자재비가 기하급수적으로 뛰었다. 브라운은 심해(수심 1500m 이하)에서 석유를 시추하는 장비를 대여하느라 BP가 지불하는 하루 최대비용이 2004년 이후 20만 달러에서 50만 달러로 뛰었다고 말했다. 게다가 이 비용은 떨어질 가능성이 없다고 내다봤다. “석유업계에는 감가상각이 거의 없다. 영원히 떠안아야 하는 추가적 고정비다.” 비용 앙등에 석유 민족주의라는 대형 추세까지 겹치면서 사태는 한층 복잡해졌다. 몇 해 전 유가가 오르기 시작하자 멕시코·러시아·베네수엘라 등은 유전관리권을 환수하고 새 시추지역에 서구 메이저들의 접근을 막았다. 에너지 컨설팅 전문사 PFC 에너지(워싱턴 DC)에 따르면, 그 결과 오늘날 서구 메이저들이 이용하는 석유는 알려진 부존량의 25%에 불과하다. 1960년대의 85%보다 크게 떨어졌다. “다른 분야에선 세계화가 대세인데 석유업은 그 반대로 간다. 에너지에 관한 한 세계는 평평하지 못하다”고 로빈 웨스트는 말했다. PFC 대표인 웨스트는 로널드 레이건 정부에서 내무부 차관보를 지냈다. 이 나라들은 외부인을 참여시킬 때 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요구한다. 전에는 전체 석유세입의 70~80%를 요구했지만 지금은 약 90%를 가져간다. 셸의 최고경영자 예룬 반데르 베어는 요즘 석유회사 경영자가 그 작은 파이나마 먹으려면 개도국 정치인들 앞에서 “모자를 벗어 들고 공손하게 서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어련한 말일까. 시베리아에서 진행되는 셸의 사할린 가스 프로젝트는 서구 석유 메이저들이 매장 에너지를 찾아 금융·정치적으로 더 큰 위험을 무릅쓰며 전보다 더 험지로 진출한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셸은 최근 험준한 지형과 인건비·자재비 때문에 사할린 프로젝트가 예산을 100억 달러 정도 초과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그것이 러시아 정치인들의 분노를 샀다. 비용이 상승하면 자기 몫을 찾아먹는 데 더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러시아 정부는 셸이 사할린에서 사업하는 데 필요한 환경인가를 취소했다. 그로써 사업이 백지화될 수도 있다. 러시아 정부는 엑손을 비롯해 그 지역에서 일하는 다른 회사들에도 같은 조치를 취할 수 있다고 위협했다. “개개의 석유회사는 대형이고 돈이야 많지만 지배자가 아니라 피지배자”라고 웨스트는 말했다. 그것이 바로 석유 메이저들이 역대 최고의 이윤에도 기뻐하지 않는 주 원인이다. 엑손모빌의 현 광고 캠페인은 딱할 정도로 방어적이다. 예컨대 진짜 수혜자는 정부라고 주장한다. 엑손모빌이 지난해 300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고는 하지만 세금을 990억 달러나 냈기 때문이라고. BP가 미국에서 위기를 겪기 전에도 유럽과 미국 정치인들은 공히 석유재벌들의 불로소득에 세금을 매기라고 로비했다. 셰브론의 멕시코만 대박 이후 미국 정부는 로열티 재협상 추진에 나섰다. 석유재벌들의 몫이 어차피 줄게 마련이라는 주장에도 설득력이 있다. 일부 분석가는 석유재벌들이 국영기업의 컨설턴트로 변신하면서 기술과 노하우를 제공하고 줄어드는 몫을 받게 되리라고 말했다. 에너지 경제 연구원 필립 벌레거는 전형적인 서구 메이저가 축소돼 GM보다는 메르세데스처럼 된다고(차별화 전략) 말했다. 이 변화가 진행 중이라는 증거도 이미 있다. 최근 노르웨이의 스타토일과 미국의 발레로는 일부 메이저보다 높은 수익을 올렸다. 그 이유는 종합사업을 안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탐사에서 소매까지 석유사업의 전 과정을 취급하지 않는다. 신경 쓰는 분야가 적기 때문에 비용과 위기의 관리가 덜 복잡하다. 어찌 됐든 앞으로는 더 어려워지고 더 비싸질 전망이다. 대다수 업계 인사들은 BP 같은 문제를 겪는 회사가 더 나온다고 예상한다. 20년 동안 투자를 하지 않았기에 사람과 장비가 한계상황에 내몰렸으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안전과 인프라 지출을 늘리는 일이 시급하다. 기업들이 좀 더 험준한 지형과 심해로 진출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특히 더 그렇다. 셸 같은 회사들은 그런 프로젝트에 사용하는 초강력 신합금소재 개발에 적지 않은 돈을 쓴다. 얼마 전 BP의 선더호스 플랫폼이 기울어진 사고는 석유의 새 전선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브라운은 이 사태의 결말을 볼 일이 없다. 마침 BP의 창립 100주년인 2008년 최고경영자직을 그만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양새로 보건대 앞으로 석유산업의 100년은 지금까지의 100년보다 더 험할 듯하다.

2006.10.18 13:39

8분 소요
[일본의 에너지 외교]“이란 유전 우리가 개발한다”

산업 일반

일본은 대미정책에서 벗어난 독자적 에너지 외교를 모색하고 있다. 지난 4월7일,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최대 실력자인 사우디아라비아 누아이미 석유광물자원 장관이 당일치기로 일본을 방문했다. 일본 정부 측에서는 나카가와 쇼이치 경제산업대신이 그를 맞이했다. “물량과 가격 면에서 안정적인 원유 공급을 부탁한다”는 일본 측의 요청에 대해 사우디아라비아 측은 “원유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없도록 하겠다”는 정도로만 대답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아랍에미리트연방(UAE)과 함께 일본의 최대 원유 수입국이다. 중동 정세가 혼미하고 원유 값이 급등하고 있는 가운데 OPEC 맹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존재는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가 처한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테러범의 일부가 사우디아라비아 세력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약 60년간에 걸친 반공산주의의 방파제로 미국을 가까이 해온 사우디아라비아의 자세도 확실히 달라졌다.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사업을 국영화한 이래 엑손 모빌 등 미국계 거대 석유회사는 주요한 개발안건에 거의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대미관계가 냉랭해진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가까이 하고 있는 나라는 러시아다. 비(非)OPEC 국가 가운데 최대 석유 세력인 러시아를 무시할 수 없는 데다 미국을 견제하려는 심리가 깔려 있다. “왕정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여전히 미국의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경제적으로 어려워진 사우디에서는 미국에 저항하는 ‘침묵의 대중’이 있다.”(미야자키 일본 에너지경제연구소 객원연구원) 돌이켜보면 일본은 역사적으로 중동과 관계가 좋았다. 그러나 최근 미국 때문에 미묘하게 관계가 변화하기 시작했다. 전쟁 상대인 이라크는 물론, 이라크와 함께 ‘악의 축’으로 지명된 이란, 그리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들과 미국의 관계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자연히 친중동인 일본과는 입장이 갈리게 된다. 그것을 결정적으로 드러낸 것이 이란의 ‘아자데간 유전 개발’이다. 이란과 이라크 국경 근처에 위치한 아자데간 유전은 일본의 사우디아라비아 석유가 2000년에 카후디 유전(사우디아라비아령)의 원유 권익을 잃어버린 이래 다시 확보한 비원의 자주개발 원유다. 2001년에 일본과 이란이 지질조사를 실시한 이래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 의혹을 이유로 이란·리비아 제재강화법을 발동시켜 교섭은 일시 중단됐다. 그러나 지난 2월 일본과 이란이 전격적으로 원유개발 합의를 체결해 버림에 따라 미국은 심한 불쾌감을 표명했다. 일본은 러시아와 이란 양쪽에 선을 대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에너지 정책이 안정된 것은 아니다. 동시베리아 유전개발 참가를 표명한 것은 본래 이란과의 아자데간 유전 개발의 교섭이 불투명했기 때문에 “보험을 들어놓는 의미”(정부 관계자)가 있었다. 국가 에너지 보안에 있어 일본은 대미 일변도의 정책을 쓰지 않는다. 앞으로 미국의 중동정책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가 더욱더 반발할 경우 일본은 어느 편에 서는 것이 옳은가. 수요 면에서 잠재적 경합관계에 있는 중국과 미국의 긴장이 장래 불거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2002년에 에너지 협력을 체결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경우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느 쪽이든 종래와는 전혀 다른 에너지 외교가 예상된다.

2004.05.14 00:00

2분 소요
<font size=프랑스 석유업체 토탈
“다음 차례는 이라크”" onerror="this.src='/img/renew/noimage_gray.png'">

산업 일반

이란 ·수단 ·미얀마에서 오랫동안 위험한 게임을 벌여 온 프랑스의 대형 석유회사 토탈이 이라크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1927년부터 이라크에서 사업을 해온 프랑스의 석유회사 토탈(Total)은 요즘 이라크 석유사업을 재개하는 문제에 대해 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이라크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토탈은 이미 엑슨모빌(ExxonMobil)과 비공식 접촉을 갖고 이라크 신생 정부 출범에 맞춰 마즈눈과 나흐르 빈 우마르 유전개발을 위한 합작회사 설립 문제를 논의했다. 하루 100만 배럴을 채굴할 수 있는 마즈눈과 빈 우마르 유전은 저렴한 채굴비와 수익성 또한 매우 높은 양질의 원유를 생산한다.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은 2,500억 배럴로 순익이 3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활동적인 토탈로서는 가만히 두고 볼 수 없는 먹잇감인 셈이다. 파리에 있는 세계 4위의 석유업체 토탈은 오래 전부터 이라크를 ‘텃밭’으로 여겨왔다. 과거 사담 후세인과 빈 우마르 유전 개발 협상을 벌인 적이 있고, 2000년 토탈이 인수한 엘프 아키텐(Elf Aquitaine)도 마즈눈 유전 개발을 두고 협상에 나선 바 있었지만 성사되지 못했다. 후세인과 밀고 당기던 게임이 실패로 돌아간 것이다.러시아의 석유회사 루코일(Lukoil)은 다른 전략을 택했고 ‘바그다드의 백정’ 후세인으로부터 방대한 웨스트 쿠르나 유전 개발 사업권을 따낼 수 있었다. 루코일은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지금 사업권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합법적 사업권이 없는 토탈은 이라크에 다시 진출할 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그 동안 이라크에서 축적해온 노하우로 합작회사에 참여할 경우 합작 파트너는 채유 시기를 1년 정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합작 대상기업으로는 꽤 괜찮은 셈이다. 영국 런던 소재 왕립 국제문제연구소(RIIA)의 석유 담당 수석 연구원 발레리 마르셀은 이렇게 분석했다. “토탈로서는 이라크에 다시 발부터 들여 놓는 게 중요한 만큼 불리한 합작조건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토탈과 엑슨모빌 사이에 모종의 논의가 오간 것으로 알고 있으나 토탈은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현재 이라크가 국제적 관심의 초점이 되다보니 예기치 못한 리스크를 떠안고 싶지 않은 것이다.” 토탈이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토탈은 벨기에의 페트로피나와 합병해 몸집을 불린 바로 다음해 2000년에 자신보다 더 큰 프랑스의 엘프 아키텐을 무리하게 인수했다. 지난해 매출 1,080억 달러에 순이익 66억 달러를 기록했한 토탈은 현재 시가총액 1,160억 달러로 프랑스 최대 기업이다. 하지만 토탈은 엘프 아키텐 인수과정에서 과거 부정사례가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떠안고 말았다. 게다가 판도라 상자의 뚜껑을 닫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엘프 아키텐의 전 회장 루아크 르 플로슈 프리장(Loik Le Floch-Prigent)은 프랑스 언론에서 떠들어댄 이른바 ‘시스템 엘프’ 스캔들의 주모 혐의로 현재 공판을 받고 있다. 시스템 엘프란 80~90년대 3억 달러를 빼돌린 회계부정 스캔들이다. 3억 달러는 엘프 임원진 호주머니에,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의 사회당으로 흘러들어갔다. 엘프에 대다수 사업권을 내준 서아프리카의 부패 관리들에게도 고급 선물이 돌아갔다. 공판에서 드러난 바에 따르면 엘프의 부정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91년 미테랑은 르 플로슈 프리장과 만난 자리에서 골프 친구인 로랑 라이야르 박사가 파리 외곽의 전원주택을 팔 생각이라고 우연히 내뱉었다. 엘프는 라이야르의 전원주택을 2,000만 프랑에 매입하고 뒷돈으로 600만 프랑까지 건넸다. 게다가 라이야르는 임대료 한 푼 없이 전원주택에 계속 거주했다.보도에 따르면 토탈은 문제를 조용히 마무리 짓겠다는 심산에서 엘프의 미지급 채무를 군소리 없이 꼬박꼬박 갚아왔다. 토탈이 외부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한 감사보고서를 의뢰해 지난 5월 발표한 것도 악화된 이미지 제고 노력과 무관하지 않다. 티에리 데스마레(Thierry Desmarest) 토탈 회장은 “회사의 덩치가 커지면서 토탈에 대한 사회의 기대치도 한층 높아졌다”며 “그러나 위험을 감수할 생각이 없다면 다른 일자리나 알아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데스마레가 위험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그는 토탈을 자기 방식대로 이끌며 수렁에 빠뜨리기도 했다. 데스마레는 석유 탐사 ·생산부문에서 근무하며 승진에 승진을 거듭했다. 그에게는 새 유전을 찾아내는 본능적인 후각과 위험도 불사하는 배짱이 있었다. 95년 그는 49세의 나이로 회장직에 올랐다. 한때 석유업계에서 토탈의 전신(前身)인 ‘콩파니 프랑세즈 데 페트롤(CFP)’은 ‘석유를 찾을 수 없음(Can’t Find Petroleum)’이라는 뜻으로 통하기까지 했다. 그 농담을 사그라지게 만든 이가 바로 데스마레다. 젊은 시절 데스마레는 시베리아 서부 카리야가(Kharyaga) 유전의 생산량 배분 협상을 담당한 바 있다. 당시 러시아는 관련 법규가 없어 어떤 보호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과거 모빌의 러시아 석유 탐사 ·생산부문 담당자로 현재 석유산업 컨설팅업체 경영자가 된 플로런스 피는 데스마레에 대해 “기회를 누구보다 먼저 포착해 내는 인물”이라며 “당시 협상은 배짱 두둑한 행동이었다”고 회상했다. 데스마레는 석유탐사에 주력한 결과 지금까지 적지 않은 성과를 거뒀다. 토탈은 지난해 토탈보다 규모가 큰 에너지업체의 생산량이 감소하거나 현상 유지하는 추세와 대조적으로 석유겷동О】?생산량을 하루 240만 배럴로 10% 늘렸다. BP의 증산율은 3%에 불과했다. 데스마레는 향후 6년에 걸쳐 생산량이 연평균 5%씩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토탈은 올해 보유자본 가운데 67%인 68억 달러를 석유 탐사 ·시추 ·개발 ·생산에 쏟아붓고 있다. 업계 평균 60%를 웃도는 비율이다. 토탈은 높은 실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악의 화신’과 거래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토탈의 석유 탐사 ·생산팀은 많은 석유 ·천영가스가 매장돼 있는 이란 ·미얀마에서?활동하고 있다. 얼마 전 토탈의 한 임원은 어느 컨설턴트에게 “어쩌다 이토록 많은 석유가 범죄자들 손에 들어가게 됐단 말인가”라며 탄식했다. 그만큼 말썽 많은 곳이라는 의미다. 토탈은 석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토탈은 미얀마 안다만해(海)의 야다나 가스전에서 태국으로 이어지는 파이프라인을 건설했다. 태국은 파이프라인으로 해마다 공급되는 천연가스 50억㎥의 대부분을 구매한다. 추악한 정권 중 하나인 미얀마 정부는 파이프라인에서 연간 4억 달러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얀마 군사정권의 든든한 돈줄인 셈이다. 그러나 95년 시작된 파이프라인 공사에 부녀자와 아이들이 강제 동원됐다는 비난이 빗발쳤고 토탈은 이에 대해 계속 부인해 왔다. 토탈은 파이프라인 주변 마을의 주민들을 강제 이주시킨 혐의로 제소돼 이 사건은 현재 프랑스 법정에 계류 중이다. 데스마레는 “석유 회사마다 분쟁지역 하나씩은 안고 있는데 셸은 나이지리아, 엑슨은 인도네시아, 그리고 토탈은 미얀마”라고 밝혔다. 강제노역에 대해선 “부녀자들이 수t에 달하는 거대한 파이프를 어떻게 운반한단 말이냐”며 일축했다. 그러나 토탈의 한 컨설턴트조차 변명이 석연치 않다는 생각이다. “토탈은 그 동안 의심받을 때마다 ‘굴뚝에 연기가 난다고 우리가 불을 피웠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식으로 대응해 왔다”는 것이다.토탈은 97년 9월 22억 달러 상당의 이란 사우스 파스(South Pars) 가스전 운영계약에 서명해 미국으로부터 분노를 샀다. 미국이 이란 ·리비아의 제재조치로 이란에 대한 미국인의 투자를 금한 지 1년 뒤에 발생한 일이다. 비슷한 시기에 토탈은 자사가 보유한 미국 내 주유소망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토탈이 미국에서 완전히 철수한다는 의미였다. 토탈의 석유 탐사 ·생산 담당 크리스토프 드마르제리(Christophe de Margerie) 사장은 “선과 악에 대한 다른 나라의 기준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당시 토탈은 미국 워싱턴 소재 법률회사 패튼 보그스(Patton Boggs)의 로비스트들를 동원해 미국에 중요한 바나나를 일괄 무역협상 품목에 포함시켰다. 그 결과 사태를 무마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미 정부가 토탈의 행동을 용서하거나 잊어버렸다는 뜻은 아니다. 피는 토탈이 “이란의 사우스 파스 가스전과 관련해 경솔하게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토탈은 분쟁지역인 수단 남부의 B구역 석유채굴권을 20여 년 간이나 보유하고 있다. 이것은 동족상잔으로 고통받고 있는 수단에서 납과 유황 성분이 많은 석유를 생산하는 것은 원치 않기 때문이다. 수단 석유부가 해마다 토탈에 계약대로 채유하도록 촉구하면 토탈은 채유할 수 없는 이런저런 불가항력적 이유를 들어 매년 개발 라이선스 갱신비 5만 달러만 지불하는 일종의 게임까지 벌이고 있다. 셰브론텍사코(Chevron Texaco)는 수단에 15억 달러나 투자하고도 기름 한 방울 뽑아내지 못하고 84년 철수했다. 토탈은 언젠가 수단에 변화의 바람이 불어 수단의 나쁜 이미지를 씻어 주기를 바란다. 피로 물든 수단 땅에는 최고 50억 배럴의 석유가 매장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데스마레 자신도 “수단에서 과연 석유를 퍼올릴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한숨지었다. 토탈은 이라크에서도 위험천만한 모험을 감행하며 비슷한 게임을 벌였다. 후세인이 프랑스의 두 석유회사에 마즈눈과 빈 우마르 유전을, 러시아의 루코일에 광대한 웨스트 쿠르나 유전을 선물로 떠안긴 이유는 자명하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이사국들에 유전개발권을 주고 그들 나라로부터 대(對)이라크 경제제재 철폐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의도”라는 게 드마르제리의 설명이다. 프랑스 기업들은 이라크에 대한 정치적 지지의 대가로 유엔 석유 ·식량 교환 프로그램 아래 35억 달러 상당의 상품을 수출할 수 있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1996~2001년 이라크의 최대 서방 교역국으로 부상했다. 이후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가 강화되면서 프랑스의 수출은 내리막길을 걷게 됐다. 데스마레는 대이라크 금수조치를 위반하지 않겠다면서도 주저없이 한계선까지 접근하곤 했다. 토탈은 후세인의 사위 후세인 카멜이 석유장관으로 재직 중일 당시 이라크와 협상했다. 하지만 카멜은 해외로 망명했다 꾐에 빠져 이라크로 다시 들어온 뒤 살해됐다. 문제는 이라크 측 협상단에 아무 실권이 없었다는 점이다. 토탈의 중동 담당 알랭 르슈발리에(Alain Lechevalier) 이사는 “한결같이 장관급 윗선에서 중요 결정이 내려지고 있었다”며 “협상 테이블에 앉은 이라크 대표들에게는 어떤 권한도 없었다”고 회고했다. 토탈 측 법률 고문단은 드마르제리의 말에 따라 배후에서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손’과 협상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데스마레는 충고를 무시했다. 드마르제리는 “어쨌든 협상이 계속됐고 이라크와 협상했다고 교도소에 간 사람도 없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라크가 정작 계약서에 사인을 요구하자 토탈은 기피했다. 제재법 승인 아래 개발을 시작한다는 단서부터 요구한 것이다. 드마르제리는 “이라크가 토탈로 하여금 제재법을 위반하도록 유도하려는 속셈이었다”며 “프랑스 정부도 토탈이 계약서에 사인할 경우 이는 위법임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데스마레로서는 제대로 체결된 계약이 하나도 없는 셈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아직 몇 가지 카드가 남아 있다. 그 중 하나는 토탈이 이라크의 석유 관계자들과 오랫동안 관계를 맺어 왔다는 점이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토탈이 이라크에 진출해 있는 동안 직접 교육시킨 인물이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 과도정부 아래서 당시 인맥을 활용할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결국 토탈의 인맥이 이라크 석유산업을 이끌게 될 것이므로 토탈은 인내심을 갖고 기다리며 수단에 눈돌리고 있는 것이다. 데스마레는 이라크 유전개발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무엇보다 이라크에 안정된 정부가 들어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전 한 곳을 개발하는 데 30억~40억 달러가 필요한 데다 석유생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까지 5년도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토탈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익이 적더라도 기꺼이 이라크 유전개발에 참여하겠다는 입장이다.데스마레는 토탈이 미겳?석유회사와 다른 점은 ‘반이라도 좋다’는 식의 적극적인 태도라고 말했다. 그는 “토탈이 미국 기업보다 중동국가에 훨씬 빨리 적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수익만 보장된다면 계약조건도 융통성 있게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토탈은 이란의 광대한 사우스 파스 연안 가스전 프로젝트에 두 기업과 손잡고 22억 달러를 투자했다. 토탈의 지분은 40%이며 사우스 파스 가스전은 현재 가동 중이다. 이번 계약은 토탈을 동등한 투자업체에서 하청업체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토탈은 하루 8만 배럴의 농축가스를 얻고 있는 데다 수익률도 20%에 육박한다. 토탈은 올해 초반 사우스 파스의 통제권을 이란 국영 석유회사에 양도했다. 그 과정에서 650명의 학생을 교육시키는 프로그램를 마련했다. 지금까지 배출한 졸업생 420명 가운데 350명이 사우스 파스에서 일하고 있다. 토탈이 이란의 방대한 석유 ·천연가스에 주목하고 있는 한 해로울 게 하나도 없는 사업이다. 이라크에서 새 계약이 체결될 경우 사우스 파스와 유사한 형태를 띠게 될 것이다. 앞으로 들어설 이라크 정부가 석유개발권을 다른 나라 기업에 넘겨줄 것 같진 않기 때문이다. 드마르제리는 “직원들에게 ‘이라크에 대한 미련을 버리라’고 말한다”며 “전에는 계약 한 건 제대로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이제 체결할 수 있게 됐다”고 자위했다. 토탈은 이라크가 아니더라도 현재 목표를 달성하는 데 별 지장이 없다. 토탈에 당장 중요한 것은 카자흐스탄의 대규모 카샤간(Kashagan) 유전이다. 카샤간 유전은 확인된 매장량만 130억 배럴에 이른다. 토탈은 카샤간 지분 20.3%를 갖고 있지만 토탈의 목표는 사업권이다. 그 점은 제휴업체인 엑슨모빌과 로열 더치/셸(Royal Dutch/Shell)도 마찬가지다. 현재 카샤간에서 활동 중인 기업은 다른 제휴업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이탈리아의 에니(Eni)다. 다른 제휴업체들은 에니가 카샤간에서 실패하기만 고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데스마레는 제휴업체들을 제치고 사업권 획득에 성공할 수 있을까. 성공한다 해도 생산목표 시점인 오는 2005년까지 정치분규에 얽히고 설킨 카스피해(海) 송유관으로 석유를 운송할 수 있을까. 피는 “여러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누군가 할 수 있다면 그는 바로 데스마레일 것”이라고 장담했다.

2003.08.09 10:24

9분 소요
독재자와 석유메이저의 위험한 ‘동침’

산업 일반

과거 이라크도 그랬듯 독재자가 유전을 장악하고 있는 나라는 한 둘이 아니다. 그렇다면 엑슨모빌 같은 석유업체가 손은 더럽히지 않은 채 계속 석유를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과연 무엇일까. 엑슨모빌(ExxonMobil)의 해리 롱웰(Harry Longwell) 부사장 사무실에 고급 양탄자가 깔려 있었다. 조용한 사무실 밖은 앙골라 해안의 전경이 담긴 대형 그림으로 장식돼 있었다. 영국 낭만파 화가 조지프 터너의 아름다운 바다 그림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색채에 조명까지 비치고 있었다. 그림에는 병풍처럼 펼쳐진 장엄한 절벽을 등진 어촌이 담겨 있었다. 롱웰은 그림 배경으로 선정된 곶(串)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 모퉁이만 돌아서면 앙골라의 수도 루안다”라며 “앙골라는 아름다운 나라”라고 말했다. 석유 채굴권을 가진 이들에게는 특히 아름답게 보일 것이다. 엑슨모빌은 480만헥타르에 이르는 앙골라 근해의 석유 채굴권을 보유하고 있다. 석유 매장량은 75억배럴로 추정된다. 석유 채굴권을 따내는 일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엑슨모빌은 1990년대 후반 호세 에두아르도 도스 산토스 앙골라 대통령의 부패정권에 수백만달러를 건네줬다. 이는 피비린내 나는 앙골라 내전을 연장시키는 데 한몫 했다. 하지만 당시 석유사업은 신통치 못했다. 엑슨모빌의 리 레이먼드(Lee Raymond) 회장은 무표정한 얼굴로 “석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라크처럼 석유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 진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이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에 경제제재를 가한 뒤에도 프랑스와 러시아의 석유업체들은 이라크로부터 석유 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엑슨모빌 등 서방의 석유업계는 세계 도처에서 후세인 같은 독재자들과 공공연히 거래한다. 그들 업체로서는 별 도리가 없다. 하루 420만배럴에 달하는 엑슨모빌의 석유 ·가스 생산량 가운데 70%가 아직은 북미와 유럽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곳 매장량은 하루가 다르게 줄고 있다. 거대 석유회사라면 독재자들과 거래하든지 아니면 앉아서 회사가 망하는 꼴을 그냥 바라보고 있어야 할 판이다. 앙골라는 카자흐스탄 ·적도기니처럼 유망한 석유 개발지역이지만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때로 폭력도 난무하는 곳이다. 독립 이후 거의 내내 포악한 군사 독재자의 통치 아래 있었던 나이지리아에도 엄청난 석유가 매장돼 있다. 엑슨모빌 같은 업체의 경제적 이해관계는 전적으로 석유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엑슨모빌은 화석연료인 석유 채굴로 세후(稅後) 95억달러를 벌어들였다. 정유곂??부문 순익의 4배에 달하는 규모다. 엑슨모빌이 새로운 원유 공급지를 확보하지 못할 경우 얼마 안 되는 정유사업 수익에 의존해야 할 판이다. 엑슨모빌이 오랜 세월에 걸쳐 구축한 외교적 ·경제적 영향력을 활용해 새 유전으로 진출하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악당’이 지배하는 산유국들에 아첨하는 것이다. 엑슨모빌과 협력업체들은 석유 수십억배럴이 매장돼 있는 차드 남부의 도바 유전 채굴권을 따내기 위해 30여년이나 투자했다. 카메룬에서 대서양 연안까지 1,050km에 이르는 송유관 가설을 포함해 35억달러 규모의 프로젝트다. 그들 업체가 환심을 사기 위해 제공한 선물 가운데는 중고 기관차 6량, 교량 10여 개, 모기장 7만7,000개, 차드의 이드리스 데비 대통령 정부에 건네준 2,500만달러 등이 포함된다. 하지만 데비는 2,500만달러 가운데 450만달러를 북부 반군과 치르는 내전에 필요한 무기구입으로 전용했다. 세계은행은 석유 관련 수익이 무기와 군대가 아닌 사회개발에 이용될 수 있도록 정교한 프로그램까지 마련해 놓았다. 그러나 데비는 돈을 무기구입에 써버렸다. 세계은행이 마련한 프로그램에 따라 향후 30년 동안 차드는 유전개발 프로젝트에서 발생하는 세금 ·로열티 20억달러를 특정 은행 계좌로 입금시켜야 한다. 계좌는 정부 ·교회 ·노조가 지명한 9인 위원회의 감시를 받도록 돼 있다. 감시위원회는 20억달러 가운데 적어도 80%를 사회보장제도 및 인프라 건설에 할당해야 한다. 인권단체들은 세계은행의 프로그램이 석유 수입과 식량 구입을 연계시킨 이라크 프로그램보다 과연 나을지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고 있다. 후세인이 이라크 국민을 여전히 굶주리게 만들고 무기까지 구입했지만 어떤 처벌도 가해지지 않았다. 차드에서 활동중인 미국 가톨릭 구제 위원회(CRS)의 이안 개리는 이렇게 말했다. “차드 의회는 데비의 통제 아래 놓여 있다. 법에 따르면 5년 뒤 석유 수입 할당을 변경할 수 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엄청난 석유 수입이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하는 것도 바로 그때다.” 외국 석유회사들은 앙골라에서도 많은 비난을 사고 있다. 60년대 후반 셰브런(지금의 셰브런텍사코)은 앙골라 근해에서 석유 매장지를 발견했다. 외국 석유업체들과 마르크스주의자였던 도스 산토스의 유착관계는 발견된 유전 규모가 커지면서 한층 더 강화됐다. 토탈피나엘프갃P ·엑슨모빌은 99년 근해 유전 채굴권 ‘계약 보너스’로 앙골라 정부에 8억7,000만달러를 건네줬다. 영국 런던 소재 인권단체 글로벌 위트니스에 따르면 도스 산토스는 받은 돈 가운데 상당 부분을 호나스 사빔비가 이끄는 반군과 싸우는 데 필요한 무기 구매로 전용했다. 글로벌 위트니스는 도스 산토스 정권이 부패한 무기상으로부터 뇌물을 받는데다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원유 매출 가운데서 10억달러도 빼돌렸다고 비난했다. 석유업체들은 계약 비밀 준수 조항을 들먹이며 부패한 정권에 얼마나 지불했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하지만 어마어마한 계약 보너스가 건네졌다는 사실은 스코틀랜드의 컨설팅업체 우드 매켄지에 의해 확인됐다. 미국 워싱턴 주재 앙골라 대사관은 부패 관련 보도를 부인했다. 재무 보고서에서 드러난 누락 항목은 ‘기술적 문제’ 때문이라는 주장이었다. 논란을 빚고 있는 또 다른 지역이 중앙아시아의 카자흐스탄이다. 서방의 석유업체들은 앞으로 40년 동안 카자흐스탄에 370억달러를 투자할 계획이다. 뉴욕 연방 대배심은 최근 미국인 컨설턴트 제임스 기펜을 기소했다. 97~98년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있는 군소업체들을 통해 여러 계좌로 7,800만달러나 송금한 혐의다. 미 당국은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이 계좌를 관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엑슨모빌은 자사가 2000년 인수한 모빌이 기펜과 거래했음을 인정했다. 엑슨모빌은 미 연방 당국에 협조하며 기펜이 당시 카자흐스탄 정부의 공식 대표였다고 밝혔다. 모빌의 임원 출신인 J. 브라이언 윌리엄스는 카자흐스탄 사업과 관련해 뇌물 200만달러에 대한 탈세 혐의로 최근 기소됐다. 하지만 기펜과 윌리엄스 모두 무죄를 주장했다. 엑슨모빌은 모빌을 인수하면서 모빌의 좋지 않은 이미지까지 물려받아야 했다. 모빌은 90년대 중반 적도기니에서 석유 채굴권을 획득한 바 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최근 석유업체들이 워싱턴 소재 릭스 은행의 적도기니 정부 계좌에 어떻게 3,000만달러를 입금했는지 상세히 보도했다. 적도기니 정부의 계좌는 압제자인 육군 퇴역 준장 테오도로 오비앙 은구에마 음바소고가 관리하는 게 분명하다. 적도기니 사정에 정통한 국제통화기금(IMF)의 한 관리는 IMF가 적도기니의 재외 은행 계좌 사용과 예산 비공개 문제를 “매우 우려하고 있다”고 증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얼마나 많은 돈이 적도기니 정부로 흘러 들어가는지 파악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라고 덧붙였다. 나자르바예프, 음바소고 같은 인물들과 거래하는 게 석유업계의 필요악이라면 엑슨모빌이 그런 거래를 처음 한 것은 아니다. 엑슨모빌의 전신인 뉴저지 스탠더드 오일은 20년대 후안 빈센테 고메스 장군이 이끄는 베네수엘라 독재정권으로부터 석유 채굴권을 따낸 뒤 마라카이보호(湖)에서 처음 석유생산에 나섰다. 고메스는 2차대전 발발 직전 사망했다. 그리고 당시 에소는 원유 가운데 반을 베네수엘라에서 조달했다. 엑슨모빌은 세금을 올리되 석유산업 국영화에 대해서는 반대한 개혁파를 지원했다. 그러나 멕시코는 38년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레이먼드는 억압적인 정권들과 거래한 것에 대해 어떤 죄책감도 갖고 있지 않다. 미국 소비자들을 위한 석유확보 차원에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레이먼드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외부패방지법’을 위반하지 않는 것이었다. 해외부패방지법에 따르면 다른 나라 정부 관리들에게 뇌물을 공여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미 의회가 해외부패방지법안을 통과시킨 것은 77년의 일이다. 엑슨의 이탈리아 지사가 60년대와 70년대 초반 노조 ·정당에 5,000만달러를 건네는 등 대규모 부정사건이 불거진 뒤였다. 레이먼드는 “모든 계층과 나라에서 부패를 지양하는 것이 엑슨모빌의 사규”라며 “이런 사실을 안다면 부패에 대해 별로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레이먼드는 “프로젝트를 다른 업체에 빼앗겨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프랑스 국영 석유회사였던 엘프 아키텐의 전 임원들까지 연루된 사건과 관련해 현재 공판이 진행중이다. 공판 과정에서 엑슨모빌이 어떤 계약들을 빼앗겼는지 밝혀질 가능성도 있다. 프랑스 검찰은 엘프가 석유 공급지 확보와 프랑스의 영향력 확대 차원에서 제3세계 지도자들에게 건넨 비자금 가운데 수억달러를 엘프 임원들이 횡령했다는 주장이다. 엑슨모빌이 추진중인 프로젝트는 규모가 엄청나다. 따라서 소액 부정사건은 피해갈 수도 있다. 1인당 국민소득 203달러로 세계 빈국 가운데 하나인 차드 정부는 세계은행이 막대한 석유 수입의 지출을 감시하기 위해 설립한 프로그램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차드 정부는 애초 받은 계약 보너스 2,500만달러의 경우 감시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무기구매로 전용한 450만달러를 환급하는 데는 동의했다. 석유사업에 좀더 경험이 많은 나라라면 그런 엄격한 통제를 거부하려 들 것이다. 레이먼드는 카자흐스탄에 차드 같은 프로그램을 요구할 수 있겠느냐고 묻자 “나자르바예프에게 물어보라”며 한 발 물러서는 듯했다. 엑슨모빌 등 석유회사들은 차드에서 실시중인 것과 같은 감시체계를 갈망하고 있다. 감시체계가 마련될 경우 석유업체는 해외부패방지법에 따라 기소되는 사태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감시체계가 마련되면 석유 수입이 정확히 얼마인지 파악할 수도 있게 된다. 이는 미국의 중요 정책 목표 가운데 하나다. 워싱턴에서 활동중인 변호사 스튜어트 에이젠스태트는 “모든 것이 투명하면 투명할수록 테러집단과 가짜 자선단체로 달러가 흘러 들어가는 일은 더 어려워진다”고 말했다. 에이젠스태트는 77년 미 정부 관리로 해외부패방지법 입안에 참여한 인물이다. 현재 카스피해(海)에서 바쿠 ·트빌리시 ·횁제이한까지 잇는 송유관으로부터 비롯되는 석유 판매를 감시하는 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일부 국가는 감시체계가 마련될 경우 자국의 영향력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잘 안다. 석유 프로젝트에 투자할 수 있는 차관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은행의 차드 ·카메룬 프로젝트 조정관 미셸 포미에는 “민간부문의 경우 가난하고 불안정한 나라를 먹잇감 아니면 피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과거 차드는 국제기관으로부터 차관을 들여와 프로젝트에 직접 투자함으로써 석유 판매 수입에서 자국 몫을 40%로 늘릴 수 있었다. 포미에는 “현 시점에서 차드가 그렇게 한다면 차드 몫이 60~70%에 이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약삭빠른 나라일수록 협상에서 강경 태도를 취하기 일쑤다. 가난한 나라들도 베이커 보츠나 애킨 검프 스트로스 하우어 앤드 팰트처럼 정치적 연줄이 있는 법률회사를 고용한다. 법률회사 배로스의 국제계약 전문가 고든 배로스는 최근 앙골라에서 협상 담당자들이 세율을 80% 정도까지 끌어올렸다고 전했다. 엘프와 엑슨모빌이 참여한 프로젝트에서 인플레를 감안한 배럴당 유가 20달러 이상의 모든 수입은 앙골라 몫이라는 이른바 ‘초과이득세’ 확보에 성공한 것이다. 미국에서는 석유업체의 수익률이 30%다. 하지만 앙골라에서는 외국 석유회사에 자본 ·운용 비용을 뺀 수익률 15%만 돌아가게 된다. 그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 세법에 따르면 로열티 비용은 단순 공제 대상이지만 해외 소득세의 경우 공제액만큼 돌려주게 돼 있다. 따라서 대다수 국가는 자국 몫이 로열티가 아닌 세금 형태를 띨 수 있도록 계약한다. 협상은 일종의 소모전이다. 엑슨모빌은 중국석유화공집단공사(中國石油化工集團公司갨INOPEC)와 30억달러 규모의 정유 합작투자를 협상하는 데 지금까지 수년이 걸렸다. 엑슨모빌의 임원진과 변호사들은 한 푼이라도 지급하기 전 계약 내용에 과세 ·송금방법을 일일이 명시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엑슨모빌에서 석유 수송 ·정제 ·판매를 담당하고 있는 에드워드 갤런트(Edward Galante) 수석 부사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베이징(北京) 출장 길에 나선다. 갤런트는 이를 두고 “합의에 이르기 위한 기나긴 여정”이라며 “중국측 인사들은 서방과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고 말했다. 레이먼드는 자기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인물로 결코 외교관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는 내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도 도스 산토스와 만나기 위해 수차례 앙골라를 방문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자들,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 알고 지낼 필요가 있는 세계 지도자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기도 한다. 엑슨모빌은 레이먼드 덕에 러시아 세법까지 바꿔가며 150억달러 상당의 사할린 프로젝트를 추진할 수 있었다. 몇 년 전 엑슨모빌은 러시아로부터 생산 공유 협정을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임의적 세금 인상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막을 좀더 두텁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세법 개정안이 러시아 하원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엑슨모빌이 미국 정부와 푸틴의 도움으로 압력을 가하자 비로소 통과됐다. 레이먼드는 “많은 문제를 러시아 정부와 하원의 힘으로 해결했다”며 “푸틴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그렇다면 이라크는 어떤가. 레이먼드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과 달리 이라크 문제에 관한 한 미국 정부와 한 번도 논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이는 이라크의 석유 매장량 1,120억배럴(사우디아라비아 다음으로 많은 매장량)을 확보하려면 모종의 힘든 거래가 전제돼야 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엑슨모빌이 사우디아라비아의 광대한 가스 매장지 개발 프로젝트를 포기하다시피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레이먼드는 “사우디아라비아 가스 매장지 개발에 뛰어들어봐야 승산이 없었다”고 털어놓았다. 엑슨모빌은 오는 2010년까지 신규 ·기존 석유 개발 프로젝트에 1,000억달러를 쏟아 부을 계획이다. 지난해 엑슨모빌이 세계 전역에서 하루 공급받은 석유 ·천연가스는 250만배럴이다. 하지만 앞으로 수년 안에 아프리카 ·카스피해 지역에서만 하루 160만배럴을 공급받게 될 것이다. 레이먼드는 너무 위험한 투자가 아니냐는 질문에 거리낌없이 이렇게 내뱉었다. “50년 전 사우디아라비아에, 40년 전 리비아에, 25년 전에는 인도네시아와 페루에 투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들만 하고 있었다. 엑슨모빌은 업계 관점에서 수용할 만한 곳이 있다면 그곳이 어디든 갈 것이다.”

2003.07.16 13:47

9분 소요

많이 본 뉴스

많이 본 뉴스

MAGAZINE

MAGAZINE

1781호 (2025.4.7~13)

이코노북 커버 이미지

1781호

Klout

Klou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