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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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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동향] 상하이, 코로나19로 주춤한 경제 발전에 속도…승인 없이 조업 재개 OK

차이나 포커스

(중국 상하이=신화통신) 코로나19 방역과 경제·사회 발전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상하이가 기업 조업 재개에 팔을 걷어붙였다. 상하이시는 29일 '상하이시 경제 회복 및 진작 가속화 액션플랜'을 발표했다. 50개 조치가 담긴 이 문건에 따라 상하이는 오는 6월 1일부터 기업 조업 재개 승인 제도를 철폐하고 외자안정·소비촉진·투자확대 관련 일련의 조치를 내놓을 예정이다. 우칭(吳清) 상하이시 상무부시장에 따르면 상하이시는 외자 안정을 위해 중점기업 조업 재개 전문가 서비스 메커니즘을 구축할 방침이다. 또 글로벌 회사가 중국 지사를 상하이에 설립하도록 독려하기 위해 설립 지원금 신청을 앞당겨 실시할 계획이다. 소비 촉진을 위해 상하이시는 연내에 비(非)영업성 자동차 번호판을 4만 개 추가 발급하고 일부 승용차에 대한 자동차구매세를 단계적으로 감면할 예정이다. 또한 순수전기차로 바꾼 개인 소비자에게 1만 위안(186만원)의 보조금을 1회 지급할 방침이다. 그 외에도 할인쿠폰을 배포하는 대형 상업·무역 기업과 전자상거래 플랫폼을 지원하는 등 소비 회복을 위한 조치를 실시한다. 투자 확대를 위해 상하이는 올해 안에 중심지 내 낡은 구역 개조를 완료할 방침이다. 도시 속 미개발 지역 개조 프로젝트도 8개 이상을 추가 실시할 예정이다. 그 외에도 상하이시는 기업채 신청 및 발행 규모를 확대하고 뉴SOC(新基建·신인프라 건설)를 지방정부 전용 채권 지원 범위에 포함하는 등 투자 확대에 속도를 낼 것으로 기대된다. 이 밖에 상하이시는 조건을 충족한 기업에 부동산세와 토지사용세 등을 감면하고 인재 유치를 위한 전입 신고 및 주택 구입 등 조건을 개선한다는 방침을 내놓아 눈길을 끌었다.

2022.05.30 13:17

2분 소요
상해 봉쇄 해제·코스피200 편입 가능성에 F&F 7%↑ [증시이슈]

증권 일반

패션의류 전문업체인 F&F 주가가 상승하고 있다. 18일 오후 2시 10분 기준 F&F는 전날보다 7.22%(9500원) 오른 14만5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지난 3일 종가 이후 9거래일 만에 14만원대를 회복했다. 이날 F&F 주가 상승을 견인한 건 코로나19 확산으로 50일째 도시 봉쇄 중인 상하이가 정상화된다는 소식이 영향을 미쳤다. 상하이는 코로나19 재확산이 없다는 전제 하에 오는 6월 1일부터 도시 봉쇄를 전면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쭝밍 상하이시 부시장은 지난 16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방역 통제가 단계적으로 효과를 거두며 신규 감염자가 급감했다”고 설명한 뒤 “3단계 방역 관리를 통해 완전 정상화를 이루겠다”고 밝혔다. F&F는 의류브랜드 디스커버리, MLB 등과 화장품브랜드 바닐라코 등을 운영하고 있다. F&F는 올해 1분기 연결기준 매출액 4371억원, 영업이익 1346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57%, 94% 오른 수치다. 중국 법인 매출액이 205% 증가하면서 시장 평균 전망치(영업이익 1100억원)를 웃돌았다. 코스피200 신규 편입 가능성도 주가에 호재다. 이달 코스피200지수 정기변경을 앞두고 증권가에선 F&F의 신규 편입을 예상한다. 통상 코스피200에 편입되면 글로벌 투자금 유입 등에 따른 주가 상승효과를 누릴 수 있다. 삼성증권, NH투자증권, 키움증권, 유안타증권 등은 F&F를 공통으로 코스피200 신규편입 종목으로 제시했다. 한국거래소는 이달 말 코스피200 정기변경 대상 종목을 발표한다. 서정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브랜드별로 MLB가 73%, 디스커버리가 29%, MLB키즈가 36% 성장해 중국과 국내 모두 강한 수요가 유지되고 있다”면서 “중국발 변수에도 사업이 탄탄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했다. 허제나 DB금융투자 연구원은 “F&F는 시장에서 우려하는 최악의 상황을 실적 추정치에 반영하더라도 저평가 상태”라면서 “2분기 실적 우려가 이미 반영된 상태로 성장주를 싼 가격에 매수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DB금융투자는 목표 주가 21만원, 투자 의견 ‘매수’를 유지했다. 홍다원 기자 hong.dawon@joongang.co.kr

2022.05.18 14:38

2분 소요
[소셜·라이프] 상하이, 이틀 연속 '사회면 제로 코로나'...6월 1일 봉쇄 해제 목표

차이나 포커스

(중국 상하이=신화통신) 상하이시의 16개 구(區) 가운데 15개 구가 '사회면 제로 코로나'를 달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상하이는 16일부터 3단계에 걸쳐 정상적으로 생산·생활 질서를 회복할 예정이다. 사회면 제로 코로나란 무증상자를 포함한 신규 감염자가 격리 통제된 곳에서만 발생해 지역사회 전파 위험을 효과적으로 차단했다는 뜻으로 중국 내 방역 용어다. 쭝밍(宗明) 상하이시 부시장은 이날부터 3단계로 나눠 상하이를 개방한다고 밝혔다. 우선 1단계로 이날부터 21일까지는 방어구역의 ▷점진적 개방 ▷제한된 이동 ▷효과적인 통제 등을 통해 상하이시의 사회활동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한다. 2단계로 22일부터 31일까지는 통제구역 및 관리통제구역 범위를 봉인해제까지 계속 축소한다. 3단계로 6월 1일부터 중순까지 시 전체의 정상적인 생산과 생활질서를 완전히 회복한다는 계획이다. 상하이시는 주거 지역을 감염자 발생 현황에 따라 '통제구역' '관리통제구역' '방어구역' 세가지 곳으로 분류해 관리한다. 상하이시는 통제구역에서 7일 동안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 않으면 통제구역을 관리통제구역으로 하향 조정할 방침이다. 이후 관리통제구역에서 3일 연속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나오지 않으면 방어구역으로 하향 조정할 계획이다. 교통 방면에서도 정상화 움직임이 보인다. 이날 상하이역과 훙차오(虹橋)역의 열차 운행이 재개됐고, 향후 항공사들의 상하이행 노선 운항도 점차 다시 열릴 계획이다. 또한 22일부터 버스 등 대중교통 운영을 다시 시작한다. 이와 동시에 상하이시는 단계적으로 업무·생산·상업활동·수업 등의 점진적 재개를 추진하고 있다. 16일부터 상하이시는 산업·공급사슬 회복에 집중하고 조업 재개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비(非)생산성 기업은 계속해 재택근무를 실시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슈퍼마켓·편의점·약국 등 상업시설의 매장 운영을 단계적으로 재개하고 이발·세탁 등 서비스도 다시 시작할 방침이다. 한편 영화관·헬스장 등 밀폐된 장소의 개방은 잠시 유예할 계획이다. 현재 상하이 통제구역 내 총인원수는 100만 명 이내로 떨어졌고 상하이시는 '사회면 제로 코로나'를 이틀 연속 유지하고 있다.

2022.05.1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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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라이프] 상하이, '사회면 제로 코로나' 달성 시 점진적 개방

차이나 포커스

(중국 상하이=신화통신) 코로나19로 홍역을 치른 상하이시가 일상 회복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갔다.13일 열린 상하이 코로나19 방역 브리핑에 따르면 상하이시는 5월 중순까지 '사회면 제로 코로나'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목표 달성 시 상하이시는 질서 있는 개방, 제한적인 이동, 효과적인 관리 통제, 분류 관리 등을 시행할 계획이다. 상하이시는 이미 일상 회복에 관한 방안을 제정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업의 조업·생산 재개 확대와 도시·학교의 일상 회복을 통해 도시 전체를 정상화 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구체적으로 상하이시는 코로나19 상황 변화에 따라 ▷대중교통 순차적 운영 ▷슈퍼마켓·편의점·백화점 오프라인 영업 시작 ▷온라인 예약, 오프라인 인원 제한을 전제로 이발소·세탁소 운영 재개 ▷고3, 고2, 중3 학생 오프라인 수업 시작 ▷정부 서비스 창구 오픈 및 운영 시간 연장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우칭(吳清) 상하이시 상무부시장은 상하이시의 코로나19 확산이 호전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노후 아파트 단지 등 중점지역은 여전히 코로나 재확산 위험이 존재한다며 '제로 코로나'를 위한 방역 업무를 지속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05.13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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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셜·라이프] 상하이, 대학·고등학교 입학시험 연기 결정

차이나 포커스

(중국 상하이=신화통신) 상하이시 정부가 코로나19 재확산으로 대학교와 고등학교 입학시험을 한 달 연기한다고 7일 밝혔다.오는 7월 7~9일로 연기된 대학 입학시험에는 5만 명 이상의 학생이 응시할 예정이다. 같은 달 11~12일로 연기된 고등학교 입학시험에는 11만 명의 학생이 응시하고 물리, 화학, 외국어 듣기 시험은 취소된다.천췬(陳群) 상하이시 부시장은 격리되거나 코로나19에 감염된 학생들을 위한 시험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 모든 학생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한편 상하이시의 모든 초·중·고등학교의 수업은 지난 3월 12부터 온라인으로 전환했으며 유치원·어린이집은 휴원 중이다.

2022.05.08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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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 포커스] 中 창장 삼각주, 공급사슬 안정화로 국내외 수요 만족시킨다

차이나 포커스

(중국 상하이=신화통신) 중국 상하이 자유무역구 린강(臨港) 신구역에 자리한 상하이자동차(上海汽車·SAIC) 린강 승용차 공장은 연일 계속되는 작업으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이곳에서 생산된 완성차는 중국뿐 아니라 전 세계로 전달된다.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상하이 테슬라 기가팩토리 역시 조업을 재개했다. 여기에서 생산된 완성차와 부품 역시 세계 시장으로 공급된다.이처럼 상하이자동차, 콴타 컴퓨터(Quanta Computer), 화훙(華虹) 반도체 등 상하이 소재 대표 제조업 공장이 잇따라 조업 재개에 들어갔다.상하이시 경제정보화위원회(경신위) 통계에 따르면 지난 1주일 동안 상하이 666개 중점기업 중 70%가 이미 조업을 재개한 것으로 집계됐다.우칭(吳清) 상하이시 상무부시장은 최근 장쑤(江蘇)성·저장(浙江)성·안후이(安徽)성 및 각 중점도시에서 업무 전담반을 조직했다며 ▷상하이 중점기업이 제기한 부품 공급 관련 요청 사항을 적극 처리하고 ▷핵심 부품, 원자재 등의 성·시 간 물류 운송을 원활하게 해 ▷중점기업의 생산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원했다고 밝혔다.예를 들어 장쑤성 타이저우(泰州)는 상하이자동차·테슬라 현지 공급업체의 조업 재개 및 운송 통행증 발급을 지원했다. 쑤저우(蘇州)·타이저우는 현지에 출입하는 상하이 화훙, 중신궈지(中芯國際·SMIC) 등 집적회로 제조업체 차량에 대해 통행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지치웨이(吉祺煒) 상하이자동차 승용차회사 부사장은 "자동차 산업의 공급사슬이 매우 길다"면서 "바로 이 때문에 완성차 공장을 통해 전체 산업사슬을 견인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생산라인이 잘 굴러가야 문제점도 잘 발견되고 또 이를 개선해 생산능력을 점진적으로 확장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이에 저장성·장쑤성·상하이시의 협력하에 창장(長江)삼각주 중요 물자 긴급 공급 보장 중계소(이하 중계소)가 지난 18일 정식 운영에 들어갔다.상하이시 경신위가 주도하고 상하이자동차 안지(安吉)물류회사가 건설과 운영을 맡은 중계소는 상하이·저장성·장쑤성에 각 2개씩 6개가 1차적으로 건설될 예정이다. 현재 4개가 완공됐고 2개는 건설 중이다.상하이자동차 승용차회사의 공급업체 중 하나로 상하이 자딩(嘉定)구에 위치한 상하이 싼리후이중(三立匯眾)자동차부품회사의 한 관계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단지에서 채소를 공동구매한 후 배송비를 n분의 1로 분담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며, 장쑤성 쑤저우의 여러 부품업체가 화물을 공급업체 중 한 곳으로 모은 다음 한꺼번에 상하이로 보내면 업스트림 기업이 운송비를 나눠 분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물류 지연 가능성도 줄일 수 있다고 소개했다.한편 창장 삼각주는 중국, 나아가 글로벌 자동차 산업에서 집적도가 가장 높은 지역 중 한 곳으로, 이곳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내수를 만족시킬 뿐만 아니라 해외로 수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상하이 해관(세관)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올 1분기 상하이시의 자동차 수출액은 242억6천만 위안(약 4조6천60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4.4% 증가했다. 그중 사람이 탑승하는 전기차 수출은 374.2% 급증한 169억4천만 위안(3조2천540억원)에 달했다.4월 들어 코로나19 상황이 심각해졌음에도 상하이 자동차 수출입은 여전히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해관 통계에 따르면 지난 1~18일 상하이 와이가오차오(外高橋)·양산(洋山) 통상구를 통해 총 4만6천400대 이상의 자동차가 수출입된 것으로 집계됐다.우 상무부시장은 "3성·1시가 ▷공급사슬 공급 보장을 위한 '화이트리스트'를 발전시켜 ▷성·시 간 명단 공유 및 상호 인정을 추진하며 ▷창장 삼각주 지역에서 중점 산업사슬·공급사슬 및 타지 부대 공급업체 '화이트리스트 풀'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창장 삼각주 전체 산업사슬 차원의 조업 재개를 보장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2022.04.2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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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데이터 조례' 만든 상하이, 추가 조치도 연내 마련 예정

차이나 포커스

(상하이=신화통신) 궁원 기자 = 상하이시가 지역 경제 성장 촉진을 위해 데이터 활용에 적극 나서고 있다. '상하이시 데이터 조례'가 올해 1월 1일부터 시행됐다. 이에 관련 부서는 추가 정책 또는 조치를 오는 3월 말, 6월 말, 12월 말에 순차적으로 제시하거나 완비할 계획이다. 우칭(吳淸) 상하이시 상무부시장은 최근 브리핑을 통해 '상하이시 데이터 조례'로 상하이시가 디지털 전환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게 됐다며 관련 정책 조치를 제정 및 실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새롭게 제정될 7개 분야의 총 37개 세부 조치는 ▷개선형 데이터 발전 메커니즘 구축 ▷공공 데이터 거버넌스 시스템 효율성 제고 ▷유연한 데이터 배치 시스템 모색 ▷선도형 모범 지역 사례 마련 ▷안전 관리 조치 강화 등 다섯 가지 측면에 초점이 맞춰질 예정이다. 우 부시장은 "'상하이시 데이터 조례' 관련 일부 정책이 이미 시행됐고 초기 성과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말 푸둥(浦東)신구에서 설립된 상하이 데이터 거래소를 예로 들며 관련 규정과 시스템이 빠르게 구축됐다고 덧붙였다. 그 외에도 '데이터 최고 책임자(CDO)' 제도 연구와 시범사업도 이미 시작했다고 밝히며 업계의 디지털 전환을 촉진하고 있다고 전했다.

2022.01.14 1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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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의 재발견

산업 일반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을 깨뜨리면서도 중국 경제가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뭘까? 올해는 경제대국 중 중국만이 상당한 경제 성장을 보일 전망이다. 왜 그럴까? 역설적이지만 경제 교과서에 나오는 모든 규칙을 거침없이 깨뜨리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중국에는 진정한 자유시장이 없다. 당국이 통계를 조작하고, 주식시장을 조종하며, 주요 물가를 책정하고, 전략 산업을 100% 소유하며, 주요 은행 요직을 공산당 간부로 채워 대출과 투자를 지시하는 나라다.중국이 다른 주요 경제대국들보다 성장둔화 속도가 느린 주된 이유는 정상적인 상황 같으면 경제 전문가들이 비웃을 거리낌 없는 ‘국가의 개입’ 능력에 있다. 예컨대 금융 부문에서 외국인 투자를 제한했고, 세계적 신용위기의 주범인 혁신적 금융 상품을 도입하지 않았다. 이런 중국 특유의 ‘계획 자본주의(command capitalism)’가 먹히는 이유가 뭘까?경제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이 물음에 흥미를 느꼈다. 국가는 구제할 수 없을 만큼 우둔하며, 시장은 원천적으로 똑똑하다는 게 그들의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현재 미국과 유럽도 은행과 자동차 회사들을 국유화하고, 금융 규제를 강화하면서 국가 통제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이런 시점에서 그 물음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가장 가난하고 혼란스러운 거대 중국이 70년 만에 닥친 가장 심각한 세계적 경기침체를 가장 잘 헤쳐나갈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관리들은 위기가 닥칠 때 서방처럼 전통적인 시장 부양책에서 마음에 드는 조치를 취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명령식 자본주의 정책도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다.지난해 초 중국의 주택시장이 과열되자 관리들은 은행에 주택 대출을 줄이라고 지시했다. 그로 인해 주택 매매가 줄어들자 그들은 취득세를 낮추는 등의 시장 유인책을 내놓았다. 최근 몇 주 동안 그들은 서방에서 볼 수 있는 경제구제 프로그램과 유사한 정책을 도입했다. 6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과 대폭적인 금리 인하 등이 대표적이다.아울러 그들은 서방에서는 부적절한 ‘개입’으로 비칠 만한 명령을 내렸다. 지난주 제철과 건설 등 국영기업체들에 국내외 기업을 인수해 국가경제에서 역할을 “적극 늘리라”고 지시했다. 중국의 이런 국가 개입은 이전에는 미성숙한 경제의 악습으로 비쳤지만 요즘은 오히려 안정을 보장하는 보루로 간주된다.“자본이 가장 집약된 부문을 정부가 통제하기 때문에 중국의 전망이 밝다고 본다”고 크레디리요네증권사(CLSA)의 수석 분석가 앤디 로스먼이 말했다. “이런 부문에서는 기업들에 정부가 ‘투자 계획을 미루지 말고 계속 지출하라’고 지시할 수 있다.” 중국 경제는 최대 수출 시장이 침체되고 자체 주식시장이 폭락한 데도 불구하고 2009년 7% 이상의 성장이 예상된다.근년의 두 자릿수 성장률에는 못 미치지만 대다수 국가보다 훨씬 높을 전망이다. 국영은행들이 대출요건을 완화하면서 기업 대출 금리는 실제로 높아졌다. 중국에서는 투자가 국내총생산(GDP)의 40%를 차지한다. 그처럼 투자가 “지속 가능한 성장의 중추”인 국가에서 성장에 심각한 위협이 되는 요인들을 제거하려고 정부가 다시금 투자를 촉진하고 있다고 모건스탠리 아시아의 스티븐 로치 회장이 말했다.“경제 압박이 심한 시기엔 중국의 지휘통제 체제가 다른 시장기반 체제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증거다.” 중국의 주자파(走資派) 원조인 덩샤오핑(鄧小平)은 ‘흑묘백묘론(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을 내세우면서 이념의 순수성보다는 경제 성장을 우위에 두었다.지금의 중국 지도자들도 그가 중국 인민에게 내놓은 기본적인 약속을 옹호한다. 공산당이 절대적인 정치 권력을 잡되, 독재 자본주의로 인민들에게 경제성장을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요즘 대부분의 중국 지도자는 세계적인 경기침체에서 민주화된 중국으로는 성장은커녕 살아남지도 못한다고 생각한다. 상하이 증권거래소 “중국은 아직 민주적인 자유시장 체제를 도입할 상황이 아니다”고 팡싱하이(方星海) 상하이시 금융판공실 주임이 말했다. 덩샤오핑은 30년 전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개혁의 고통을 견뎌내려면 안정된 정치 체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현재 우리의 체제를 뭐라고 부르든 간에 여하튼 중국에 적합한 시스템이다.” 중국이 잘 굴러가는 것은 느리지만 꾸준히 좀 더 자유로운 시장으로 나아가는 데 초점을 맞춘 ‘급진적 실용주의’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이를 두고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넌다(摸着石頭過河)”고 표현했다. 그만큼 신중해야 한다는 뜻이다. 중국 정부는 여전히 엄격한 통제로 안정을 유지하지만 민간 부문은 자유화했다.현재 민간 부문이 경제의 절반을 차지한다. 민간기업식의 경영이 허용된 국가소유 기업들까지 포함한다면 그 비율은 70%에 이른다. 1990년대 초에는 약 17%에 불과했다. CLSA에 따르면 GDP 성장의 약 60%, 새로운 일자리의 3분의 2가 민간 부문에서 나온다. 중국은 95년 혁명적인 국영산업 해체 작업을 시작했다.그 다음 6년 동안에만 국영기업 근로자 460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프랑스나 이탈리아의 전체 노동력과 맞먹는 규모다. 그 이후 산업 능률화 운동이 계속됐다. 그 결과 국영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높아졌고(2004∼2005년 38% 증가), 민간 부문이 경제에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됐다.로스먼은 그것을 “오랜 시일에 걸쳐 일어난 급진적인 변화”라고 표현했다. 이 기간에 러시아의 자본주의 체제 전환에 관한 수많은 책이 중국어로 번역됐다. 중국은 무엇보다도 90년대 초 러시아의 ‘빅뱅 개혁’에 따른 혼란을 피하고 싶어 했다. 러시아에는 그로 인해 부패한 소수의 신흥재벌이 생겨나 지금도 러시아 경제를 괴롭히고 있다. 서방은 반체제 세력에 대한 중국 정부의 탄압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중국이 얼마나 큰 위험을 무릅쓰고 경제개혁에 나섰는지 잘 알지 못했다. 사실 중국은 일본이나 한국보다도 더 이른 발전단계에서 투자 문호를 개방했다. 그때가 80년대 초였다. 당시 평균 국민소득은 760위안(500달러)에 불과했다.그렇게 서둔 것은 덩샤오핑이 빈곤에서 탈출하는 길은 국제 무역이라는 점을 인식했기 때문이었다. 또 그는 농민들이 도시에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킨 역사가 깊은 나라에서는 위험천만한 조치였다. 89년 천안문 학살 후에도 덩샤오핑은 경제개혁을 계속 밀어붙였다.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위기 동안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국내시장 개방을 확대하기로 했다. 그때쯤 정부는 해고된 근로자들이 자영업을 하고 국가가 지은 주택을 헐값으로 구입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로써 거의 단숨에 ‘소유자 사회’를 건설하고 중산층 사회를 위한 기초를 닦았다.로스먼은 그것을 “한 차례 부의 이전으로서는 세계 역사에서 최대 규모”라고 말했다. 이제 더 심한 위기가 닥쳐오는 가운데 중국 정부는 다른 부문에서는 통제를 재확립하면서도 핵심 부문에서는 개혁을 계속 밀어붙인다. 그중에서도 은행이 주된 개혁 대상이다. “자본시장은 여전히 은행 대출이 지배한다.우리에게는 금융 상품이 너무 적고 더 많은 기관투자가를 시장에 끌어들일 필요가 있다”고 팡싱하이가 말했다. 그것을 목표로 중국은 주식 거래 수준을 뛰어넘어 주가지수 펀드, 회사채, 심지어 옵션과 선물 거래(물론 서방 시장의 붕괴를 가져온 복잡한 신용 파생상품보다는 간단한 석유 선물 등이 주를 이룬다) 등 복잡한 증권 상품으로 진출하고 있다. 신용위기의 와중에서도 중국 지도자들이 더욱 정교한 ‘증권화’가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는 사실은 그들이 전략적 사고를 하며, 다른 나라들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는 뛰어난 기술을 가졌다는 점을 보여준다. 중국 최대의 국영 은행인 공상은행(ICBC)의 장젠칭(江建淸) 행장은 이렇게 말했다.“미국인들은 혁신에 끝없는 열정을 갖고 있다. 과거엔 규제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혁신을 막을 수 없다. 혁신은 경제를 일으키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 더욱 장기적인 포석은 획기적인 토지개혁이다. 중국 농민들이 토지를 외지인(기업 포함)에게 임대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이다. 중국에서는 누가 무엇을 소유하는지 파악하는 일 자체가 어려워 토지개혁에는 수십 년이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발상은 이미 투자자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들었다.지난해 11월 세계적인 부동산 전문회사 존스 랑 라살(JLL)은 중국의 토지개혁으로 2조5000억 달러 규모의 농지가 규제에서 풀릴 수 있다고 추정했다. “토지개혁이 후진타오 주석의 영구적인 유산이 될 전망”이라고 JLL의 마이클 클리배너가 말했다. 농민을 ‘토지를 소유한 소비자’로 바꿔 놓으면 중국의 수출 의존도가 낮아지고 세계 경제의 균형이 다시 잡힐 가능성이 크다. 중국 지도부는 일단 방침을 세우면 번복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고 로스먼이 말했다. 예를 들어 위안화 가치를 둘러싼 정치 공방을 보자. 미국은 중국이 수출 증대를 목표로 의도적으로 위안화의 가치를 낮추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05년 여름부터 2008년 사이에 위안화 가치가 21.5%나 올랐다.최근 몇 달 동안 위안화 가치가 떨어지긴 했지만 대다수 경제 전문가는 중국 정부가 수출 경쟁력 강화의 필요성과 세계적인 무역 균형의 필요성을 저울질하면서 어느 정도의 위안화 가치 상승을 계속 허용하리라고 생각한다. 자유시장과 관리시장 사이의 이런 균형은 정부가 물가를 책정하고 금융 서비스, 통신, 에너지 같은 핵심 부문을 통제하는 데서도 나타난다.이런 산업의 일부는 부분적으로 민영화됐다. 통신 부문에서는 장비제조 시장이 외국인들에게 개방됐다. 들여오는 자본과 기술이 궁극적으로는 자국 기업들에 흡수되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경우가 현재 중국 최대의 통신장비업체로 국제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화웨이(華爲)다. 그러나 좀 더 수익성이 좋은 서비스 시장은 여전히 정부가 운영한다.휴대전화 요금이 대표적이다. 팡싱하이는 이렇게 말했다. “물론 중국은 물가를 통제한다. 부인하지 않겠다. 하지만 정부는 시장보다 한발 뒤에서 움직인다. 언제나 시장이 기준이다.” 예를 들어 최근 중국은 유가를 국제 기준에 근접시키려고 연료보조금 삭감에 들어갔다. 이는 물가 자율화를 목표로 한 15개년 계획의 일부다.CLSA의 로스먼에 따르면 그 장기적인 계획으로 국가가 정하는 전체 소비자 물가의 비율이 95%에서 5%까지 낮아졌다. 그런 점진적이고 장기적인 조치는 물가가 자율화된 뒤 91년에서 92년 사이 인플레이션이 1000%로 치솟은 러시아의 전철을 밟지 않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반영한다. 브루킹스 연구소 손턴 중국연구센터의 수석 연구원 청리(程立)는 이렇게 말했다.“중국인들은 충격요법을 원치 않는다. 충격만 있고 치료 효과는 없다고 판명 났기 때문이다.” 중국 지도부가 이처럼 시장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그들 대다수가 철저한 계획을 기초로 일하는 데 숙련된 엔지니어라는 사실에서 나오는지 모른다. 공산당 핵심 간부 9명 중 8명이 엔지니어 출신이다. 어쩌면 중국이 서방식의 위험도 높은 금융 혁신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엔지니어링에서 중시되는 실용성 때문일지 모른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최근 열린 중국 사업 관련 행사에서 상하이 시장 출신으로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부주석이며 중국공정원(中國工程院) 당서기인 쉬광디(徐匡迪)는 서방 은행들이 지난 10년 동안 판매한 ‘가상’ 상품을 비웃었다.“은행이 이해할 수도 규제할 수도 없는 가상 금융 상품을 물리학 박사들을 동원해 만들어냈다. 투자자들은 그런 상품이 실제 상품보다 훨씬 낫다는 소리를 듣고는 그대로 믿어버렸다. 모두가 꿈속에서 일했다.” 숙련된 기술관료들이 운영하는 지휘통제 시스템 덕분에 중국은 무슨 일이든 신속하게 할 수 있다. “중국이 일관성 있게 움직이고 인력과 자원을 공동 목표에 투입하는 능력에 늘 감탄할 따름”이라고 CLSA의 중국 현실 연구부장인 데이비드 머피가 말했다. 이런 상황을 러시아와 비교해 보라. 러시아에서는 폭압적인 독재체제가 ‘무슨 짓을 해도 괜찮다’는 분위기를 조성해 투자자나 대다수 관리나 하루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형편이다. 중국을 지배하는 엔지니어들은 절차를 중시하고 성과지표에 집착하는 시스템을 관리한다. 중국 고위 관리들과 긴밀하게 일하는 한 경제 전문가는 그들 중 다수가 저녁 만찬을 주최할 때 똑같은 최고급 보르도 와인인 샤토 라피트를 내놓는다고 지적했다. ‘와인 스펙테이터’지의 유명한 평론가 로버트 파커가 매긴 우수한 점수 때문이다.중국 외교가의 원로인 우젠민(吳建民) 중국 외교학원 전 원장은 최근 장쑤(江蘇)성 우시(無錫)시의 부시장과 만난 일을 말해 주었다. 그 부시장은 우시의 경제를 70년대의 미국과 상세히 비교했다. 그는 우시의 개인 소득이 높아지는 데 비해 서비스 부문이 좀 더 성장하지 않는 이유를 몹시 걱정했다.그 이후 서비스 부문의 인재를 구하려고 우시의 당서기가 미국으로 급파됐다. 국제적인 성과기준에 미달하는 지도자들은 대개 책임을 추궁당해 면직된다. 여러 개도국에서는 아직 보기 힘든 현상이다. 지난해 9월 발생한 멜라민 파동을 보자. 단백질 수치를 허위로 높이기 위해 분유에 멜라민을 섞어 중국 어린이가 적어도 6명 사망하고 30만 명이 병에 걸렸다.그러자 그 분유 제조사인 산루(三鹿)의 본사가 있는 도시의 시장과 당서기를 포함해 6명의 간부가 곧바로 파면됐다. 중국의 식품안전 검사 책임자도 물러났고, 산루의 회장은 재판에 회부됐다. 그런 조치가 대중의 분노를 완전히 잠재우지는 못하지만 관리들을 겁주기에는 충분하다. 분명한 성과 목표를 세워 일을 처리하는 것도 중국인들이 효율성을 중시하는 미국인들에게서 배우려는 정신 중 하나다.요즘은 고위 관리 5명 중 4명이 일정 기간 미국의 유수 대학에서 연수를 받는다(하버드의 케네디 행정대학원은 ‘제4의 공산당 학교’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현 단계에서 중국인들이 원하는 것은 번영과 안정이다. 중국인들은 미국을 능가할 만큼 실용적이고 자본주의적인 열의로 번영과 안정을 추구한다.뉴욕의 코넬대와 베이징의 창장상학원(長江商學院) 두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황밍 교수는 미국에서는 아이비리그 대학의 종신 재직 교수라고 말만 해도 존경받을 수 있지만 중국인들은 “그래요, 대단하네요. 하지만 돈은 얼마나 벌어요?”라고 되묻는다고 말했다. 물론 부가 늘어나면서 부패의 유혹도 커졌다.하지만 그 분야에서도 점진적인 발전이 눈에 띈다. 국제투명성기구가 발표하는 부패국가 순위에 따르면 중국은 10년도 채 안 된 기간에 52위에서 72위로 훨씬 투명해졌다. 부패 문제와 관련해서는 중국인 사업가든 서방 사업가든 기사에 인용되기를 원치 않지만 그들은 중국의 부패가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기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급행료’ 같은 뇌물로 변해간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개도국 시장에서 경험이 많은 어느 유럽 대기업의 회장은 이렇게 비유했다. “러시아에서는 교량 건설 예산이 100달러라면 관리가 90달러를 가져간다. 중국에서는 30달러만 가져가고 적어도 다리가 어떻게 해서든 건설된다는 게 보장된다.” 많은 사람은 가전제품 대기업 궈메이(國美)그룹의 회장으로 중국의 최고 부자인 황광위(黃光裕)가 내부자 거래 혐의로 체포된 사건을 두고 정부가 부패 청산에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한다.모건 스탠리에서 활동했다가 지금은 독립한 경제전문가 앤디 시에(謝國忠)는 황이 어떻게 되든 궈메이는 살아남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이 성숙해 가고 있다는 증거라는 얘기다. 또 시에는 주식소유법의 최근 개정으로 시장이 더욱 역동성을 띠게 됐다고 지적했다.당국의 통제에서 더 많이 벗어나게 됐다는 의미다. 당국이 지난해 8월부터 주식 매입에 부과하던 인지세를 폐지해 주식시장을 되살리려 했지만 실패한 것도 부분적으로는 그런 성숙함으로 설명된다. 이제 중국 시장도 너무 자유로워져 국가가 통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나 경기침체 상황에서는 경제에서 국가의 통제가 강화될 수밖에 없는 것 역시 사실이다.최근의 경기부양책 대부분은 운송과 전력, 건설 같은 정부 통제 부문을 통해 흘러나올 계획이다. 또 중국 정부는 현시점에서 3세대 이동통신 면허를 내주기로 결정했다. 그로써 국영 통신산업 분야를 통해 더 많은 자금이 유통될 전망이다. 아울러 홍콩에서는 투자자들이 일반 은행에서 국영 은행으로 돈을 옮기고 있다. 국가가 지원해 주리라는 판단 때문이다. 중국의 이런 혼합형 시장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전은 지도자들이 정치와 경제 모든 면에서 여론을 중시한다는 사실일지 모른다. 중앙 정부는 지방 관리들에게 미국식 홍보 전술을 가르치는 컨설턴트들을 파견한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촉발된 민중 항의를 잠재우려는 새로운 ‘개방’ 캠페인의 일환이다.지난해 11월 충칭(重慶)에서는 중앙당의 상무부장 보시라이(薄熙來)가 파업에 돌입한 수천 명의 택시 기사를 진정시키려고 가두 연설에 나섰다. 중앙당 고위관리로서는 전례 없는 행동이었다. 이후 그는 정부 관리, 택시 기사, 시민대표를 한 자리에 모아 협상을 주선했다. 그 결과 택시 회사들의 수수료를 줄이고 연료 보조금을 늘리며 기사들의 노조 결성을 허용하는 안이 채택됐다. “중앙 정부가 과거의 실수에서 교훈을 얻고 있다”고 베이징에서 발행되는 경제잡지 재경(財經)의 편집 간부 왕숴가 말했다. “지난 10년 동안 민중소요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는 상황을 훨씬 잘 처리한다. 유혈사태도 대규모 반발도 없었다. 정부는 그런 소요에 자신들의 생사가 걸려 있다는 사실을 잘 안다.” 여론을 현명하게 관리하는 일이 경기침체 시기에는 매우 중요하다는 점이 입증될 듯하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스스로 무엇을 선택하기를 좋아한다. 시청자들이 우승자를 투표로 정하는 가수 발굴 프로그램 ‘아메리칸 아이돌’과 비슷한 중국의 리얼리티 TV쇼가 큰 인기다. 정치 지도자를 직접 선출할 수는 없지만 지금은 많은 곳의 중국인들이 시 운영 웹사이트에 시정부에 관한 소감을 올릴 수 있다.또 지방정부 지도자들은 민원을 사흘 내로 처리해야 한다. 부정적인 댓글과 긍정적인 댓글이 얼마나 달리느냐에 따른 시 각 부처의 순위가 온라인으로 게재된다. 인터넷과 여론을 이용해 지방 공무원들에게 압력을 가하고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것은 중앙 정부 전략의 일환이다.베이징의 시장조사업체 호라이즌의 빅터 위안 회장은 정부의 의뢰로 여론조사를 실시해 올림픽 경기 입장권 요금을 정하고 오지의 천연가스 시설 개선에 부과할 요금을 산정하도록 했다. 과도한 가격에 대한 민중의 반발을 피하기 위한 조치였다. 위안은 내년에는 여론조사를 기반으로 중견과 고위 관리 1만 명의 순위를 매길 계획이다. 그는 2014년이 되면 최고위 관리들까지 포함하는 여론조사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 “현재의 중국 정부는 실적 위주 조직이다. 인민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 불필요한 문제를 피하려고 한다. 덩샤오핑 이후의 지도자들은 더 이상 수퍼맨이 아니다. 그들도 인민의 지지를 통한 정통성을 확립해야 한다.” 아무리 급진적인 실용주의자라 해도 덩샤오핑의 약속을 이행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30년 전에는 중국 인구가 9억6300만 명이었고 그 가운데 30%가 굶주렸다. 그러나 지금은 인구가 13억 명으로 늘었고 그들 중 97%가 굶주리지 않지만 중산층(현재 전체 인구의 6%에 불과하다)으로 올라가기는 더 어려운 실정이다.모건스탠리의 루치르 샤르마 글로벌 이머징 마켓 담당은 중국의 개인당 GDP가 최근 3000달러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일본의 경우 그 수준에서 기적처럼 성장하던 경제가 좀 더 성숙한 수준으로 가면서 속도가 더뎌지기 시작했다. 미국이나 유럽도 중국이 계획 자본주의 경제를 잘 이용하는 데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지 모른다.물론 미국 같은 선진국에서 성장을 부양하는 것보다 독재 시스템에서 명령을 통해 성장을 촉진하기가 훨씬 쉽다. 그러나 중국이 점점 더 잘사는 나라가 돼가고 있다는 사실은 연구할 가치가 있다. 특히 신용위기가 자유시장의 정통성에 대한 더 넓은 의문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CLSA의 로스먼은 이렇게 말했다.“신용위기도, 신뢰위기도 겪고 있지 않는 나라가 강대국 중에서는 중국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중국 정부의 능력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도 “신뢰가 금보다 더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중국 인민은 여전히 자국의 시스템에 믿음을 갖는다. 적어도 현재로서는 그렇다. With MELINDA LIU and MARY HENNOCK in Beijing and DUNCAN HEWITT in Shanghai

2009.01.13 11:24

12분 소요
새로운 중국을 일구는 젊은 변혁가들

산업 일반

철교 전체 길이 6772m, 자동차 다리의 강 위에 걸치는 부분만 1577m나 되는 난징 장강대교(南京長江大橋). 다소 살찐 몸집의 사내가 다리의 한쪽 끝에서 쌍안경을 들고 다리 중앙 쪽을 열심히 살피고 있다. 사내는 목표물을 발견하자마자 오토바이 위에 뛰어올라 쏜살같이 달려간다. 자칭 자살 감시인인 천쓰(陳思·39)가 지난 5년간 설득하거나 때로는 억지로 난간에서 끌어내린 자살 기도자는 153명. “짐도 없이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걸어가는 자살 기도자를 분간해 내는 것은 어렵지 않다”고 그가 말한다. 하지만 180㎝의 거한을 제지하려다 약 50m 아래의 탁류로 함께 추락할 뻔한 간담이 서늘했던 적도 있었다. 그는 농사꾼의 아들로 태어나 돈벌이를 위해 난징(南京)으로 상경했다. 그가 목숨을 구한 사람의 다수는 정신질환이 있든지 연애나 결혼에 실패하거나 또는 금전적인 문제에 시달리던 이주 노동자들이었다. “그들 대부분은 나와 똑같은 주변인”이라고 천이 말했다. “그들을 위해 뭔가 하고 싶었다.” 부인은 생면부지의 사람들을 위해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한다며 천을 타박한다. 그래도 그는 주말이면 쌍안경을 들고 나와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자살 기도자 감시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체면을 중시하는 배금주의자, 이기주의자라는 이미지가 강한 중국인이지만 쓰촨(四川) 대지진 때는 전국 각지에서 대학생 자원봉사자가 피해지역으로 몰려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다. 자신을 희생해 사회에 봉사하는 사람들의 존재는 중국의 일상을 둘러봐도 두드러진다. 그 중핵을 담당하는 것이 천을 비롯한 30~40대 전반의 ‘혁명 7세대’다. 이 세대는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경제 개방이 막 시작되던 80년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청소년기였던 89년에 톈안먼(天安門) 사태를 경험했다. 그리고 시장경제가 크게 확대되고 국가의 사회보장이 줄어드는 90년대에 사회에 진출했다. “이들의 부모 세대는 국가가 모든 것을 정하는 데 익숙해져 있지만 그들은 자신의 일은 스스로 결정한다는 의식을 갖고 있다”고 대만의 단장(淡江)대학 국제정세 전략연구소의 린중빈(林中斌)이 말했다. 정계에서는 신중국을 만든 혁명 제1세대인 마오쩌둥(毛澤東)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제2세대인 덩샤오핑(鄧小平)으로부터 제3세대인 장쩌민(江澤民), 제4세대인 후진타오(胡錦濤)까지 세대교체가 계속돼 왔다. 2007년 가을의 공산당 전당대회에는 제5세대인 시진핑(習近平) 부주석, 리거창(李克强) 부총리에 이어 40대 후반을 중심으로 한 제6세대가 주요 직책에 오르기 시작했다. 제6세대와 80년대 이후에 태어난 한 자녀 세대인 ‘80년 이후 세대’의 중간에 위치한 천 같은 30~40대 전반의 ‘제7세대’는 인구 13억 명의 25%, 약 3억4000만 명을 차지한다. 현재와 같은 속도가 유지된다면 공산당은 2032년에 제22회 당대회를 맞아 제7세대가 정권의 중추를 담당하게 된다. “문화혁명에 휘말렸던 세대는 베이징 올림픽의 개폐회식을 연출하는 영화감독 장이모우(張藝謀)처럼 체제와 사회의 커다란 흐름에 순응하려는 사람이 많지만 제7세대는 강요된 가치관을 거부할 수 있는 세대”라고 문혁 세대에 속하는 중국인 정치학자 자오훙웨이(趙宏偉·54)가 말했다. “어쨌든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 일본의 통계·수리연구소가 2002년부터 2003년에 걸쳐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총 3000명가량의 중국인을 대상으로 의식조사를 실시했다. “남들이 틈만 보이면 당신을 이용하려 하는가”라는 질문에 당시 25~29세의 상하이 주민의 83%와, 30~34세 베이징 주민의 65%가 “그렇지 않다”고 답변했다. 양쪽 통계 모두 다른 세대를 웃돌았다. 천이 목숨을 구한 153명은 중국 인구 13억 명에 비하면 극히 적은 숫자지만 단 한 사람으로 시작한 그의 활동을 지금은 중국인 대학생과 미국인 자원봉사자들이 지원하고 있다. 톈안먼 사건은 건축가인 마옌쑹(馬岩松·33)이 중학생 때 일어났다. 80년대의 개혁을 이끌었던 후야오방(胡耀邦) 전 총서기의 죽음을 계기로 대규모의 민주화 시위가 일어나자 89년 6월 4일 정부가 무력 진압을 시도했다. 정부 발표만으로도 240명이 사망했다. 마는 그 시기를 전후해 학교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뚜렷이 기억한다. “그 이전의 교육에선 선악의 기준이 주어진 것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6월 4일 이후로 기준을 지키도록 가르치는 입장의 교사가 (체제에 의한 탄압을 보고)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기준이 없어졌기 때문에 우리들은 스스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건축가가 된 이후 마가 뉴욕의 공모전에 금붕어가 들어 있는 비틀린 수조 모양의 작품을 출품한 것도 그 영향인지도 모른다. 중국의 “대형 선호” 경향을 조롱하는 디자인을 설계한 일도 있다. “광저우(廣州)시 정부의 공모전에 출품한 것은 ‘800m 타워’라는 작품이었다”며 마가 미소를 지었다. “확실히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었지만 400m 올라간 후 400m 내려가는 비틀린 모양이었다.” 당연히 마는 정부의 기피 인물이 됐다. 그러나 2006년 캐나다의 공모전에 입상해 세계에 이름을 알리면서 주가가 올랐다. 같은 해 톈안먼 광장을 숲으로 에워싸는 베이징 중심부의 도시계획안 ‘베이징 2050’을 발표했다. 주요 언론은 이 계획을 묵살했지만 마는 변화의 조짐을 감지하고 있다. 하나는 어느 지방정부가 그의 개방적이고 인간적인 건축을 행정부 건물에 채용하려고 열성을 보이는 것. 또 하나는 대형 국유기업 사옥의 설계를 마의 설계사무소가 수주한 일이다. “(요즘의 중국에는) 독자적인 잣대를 가지고 가치를 판단하는 사람이 어느 계층에나 존재한다”고 마가 말했다. 톈안먼 사태 약 20년 전 마오쩌둥이 온건파로부터 당내 권력을 되찾기 위해 시작한 문화대혁명으로 중국은 10년간의 내전에 가까운 대혼란에 빠졌다. 사망자 수는 지금까지도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사상이나 문화활동 외에는 모두 반혁명적이라고 탄압 당하고 운동을 담당했던 학생들도 나중에 ‘학습’ 명목으로 농촌으로 쫓겨났다. 80년대 들어 문혁의 종료와 경제개방에 따라 정부의 억압이 완화되면서 꽁꽁 얼어붙었던 사상과 문화가 일제히 꽃을 피웠다. ‘황하는 죽었다’는 주제의 다큐멘타리 ‘하상’이 중국 CCTV에서 방송된 것은 88년 6월. 중국인의 정신적 지주인 황하 문명을 ‘구 문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하며 투명하고 개방된 문명을 이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전통문화를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이 작품은 1년 후에 톈안먼에서 민주화 시위를 벌인 학생과 지식인에게 영향을 줬다. 하지만 그 뒤로는 언제 그런 게 있었느냐는 듯 대중의 눈앞에서 사라져 버렸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수하오룬(舒浩侖·36)은 ‘하상’의 영향을 받았다는 점을 인정한다. 가난하면서도 높은 이상을 가진 80년대야말로 그의 세대가 가진 공통의 기억이며 지금도 그 이상주의가 살아 숨 쉬고 있다고 수는 믿고 있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던 수가 귀국을 결정했던 것도 덩샤오핑의 전기영화나 과학기술영화밖에 볼 수 없었던 중국에서 사람들의 혼을 일깨우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산재사고의 보장을 요구하는 이주 노동자를 돕는 변호사를 그린 수의 졸업작품 ‘몸부림’은 스위스의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수의 다음 작품은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장편영화 ‘흑백사진(白黑寫眞).’ 상하이의 저잣거리에서 사는 소년의 성장을 통해 무지하지만 그 순수함 덕분에 ‘하상’ 같은 다큐멘터리가 탄생한 시대를 그린다. 80년대의 개방을 계기로 제7세대는 해외에도 눈을 돌렸다. 2007년 11월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지에 쓰촨성의 농촌 여성이 꾀임에 넘어가 네이멍구(內蒙古)의 사막 마을에 3600위안(약 54만원)에 팔린 사건을 알리는 기사가 실렸다. 베이징에서 사는 저널리스트인 장리자(張麗佳·44)가 쓴 글이다. 전미도서상을 받은 재미작가 하진처럼 영어로 작품을 쓰는 중국인은 그 말고도 있지만 장은 베이징에서 거주하며 때로는 정부의 압력을 견디어가며 외국인 특파원이 취재할 수 없고 중국 매체가 보도하기 어려운 중국의 실태를 외국에 전한다. 장은 16세부터, 퇴직한 엄마를 대신해 난징시의 국영공장에서 일해 왔다(당시 중국에서는 일자리의 세습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장은 당시 공장에서 사회주의를 찬양하는 혁명시와 혁명문학 대신 자유로운 테마를 형식에 구애 받지 않고 노래하는 현대시 ‘몽롱시(朦朧詩)’가 유행했던 일을 잘 기억하고 있다. 그녀 자신도 우아하고 아름다운 표현 속에 자유를 향한 갈망과 체제비판이 스며 있는 몽롱시가 실린 전문지를 탐독하고, 생산라인에 매몰하는 노동자의 심리를 노래한 대표적인 시인 수틴의 시 ‘생산선’에 자신의 모습을 투영하기도 했다. “정치집회보다 시나 문학이 얼마나 자기계발에 도움이 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장이 말했다. 기자를 꿈꿨던 장은 공장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영어를 배워 90년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3년 후 귀국해 외국인 기자의 조수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자신의 공장체험을 바탕으로 경제 개방기의 중국을 객관적으로 묘사한 최근 저서 ‘사회주의는 좋은 것이다’는 톈안먼 사태의 노동자 시위에 참가한 ‘나’가 경관의 심문을 받는 장면으로 끝난다. 소비자 피해사건이나 매체의 언론자유와 관계된 재판을 많이 다루는 베이징의 변호사 푸즈창(浦志强·43)은 올해의 톈안먼 사태 기념일(6월 4일)이 가까워진 어느 날 공안(중국 경찰)의 차에 태워져 “6월 3일과 4일은 집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경고를 받았다. 공안이 푸를 경계하는 것은 그의 영향력 때문이다. 푸는 과거 정부가 단속하지 않아 피해가 확대된, 미용성형업자에 의한 독성 가슴확대제 사건에서 십수만 명의 중국 여성을 도왔다. 대학원생이었던 89년에 민주화 시위에 참가해 징계를 받았던 과거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푸는 톈안먼 사태 후의 징계로 교원으로 대학에 남겠다는 꿈을 접고 취업을 받아주는 국가기관도 없이 시장 경리 등의 일자리를 전전하면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그에게 변호사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았다. 역사에 농락 당한 자신의 인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지금도 종종 자신의 불운을 탓하기도 한다. 그래도 정부를 자극할 가능성이 큰 자유와 인권 관련 소송을 굳이 맡으려는 것은 남들이 하라는 대로는 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누구의 명령도 듣지 않는다. 때문에 공안도 정부도 나를 어떻게도 하지 못한다”고 푸가 말했다. 실제로 49년 공산정권 성립 후 56년의 사상해방운동을 거꾸로 탄압한 57년의 반우파 투쟁, 58년의 대약진 정책, 66년부터 76년까지 이어진 문화대혁명, 그리고 78년에 시작된 경제개방 등, 중국인은 정치의 거친 파도에 마구 휩쓸렸다. 78년 이후에 진행된 자유화와 경제성장도 89년의 톈안먼 사태로 암흑기를 맞았다. 다시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은 덩샤오핑이 화남지방에서 개혁과 발전의 필요성을 목청 높여 선언한 92년 이후의 일이다. 제7세대의 정치에 대한 경계심도 아직 풀리지 않았다. 취재 요청을 받은 남성 중 한 사람(직장 업무에 영향이 있다며 익명을 요구)은 “(89년) 당시 베이징 시민으로 톈안먼 광장에 나가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본지가 직접 인터뷰한 이들 세대의 중국인들 가운데 톈안먼 사건에 관해 실명으로 증언한 사람은 극히 일부였다. 이주 노동자 출신으로 이주 노동을 하는 농민의 지원활동을 계속하는 가수 쑨헝(孫恒·32)은 “베이징 올림픽이 끝날 때까지 해외 언론의 인터뷰에 응하지 말라는 지시를 정부로부터 받았다”며 본지의 취재요청을 거부했다. 미국 라 샐르 대학의 중국학자 찰스 데스노이어스에 따르면 톈안먼사태 후 수년간 이 세대의 다수는 정치참여를 피해 돈으로 얻을 수 있는 자유를 추구하게 됐다. “무엇을 어디까지 하면 문제가 되는지를 그들을 잘 알고 있다”고 데스노이어스가 말했다. 중국에선 90년대 말 이후 인터넷 수요가 급증했다. 제7세대에는 그 기회를 살린 IT기업의 유명 경영자가 많다.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百度)’의 최고경영자 리옌훙(李彦宏·39)이나 중국인의 PC에는 반드시 들어 있다고 알려진 인스턴트 메신저 프로그램 QQ를 개발한 텐센트(騰訊公司)의 마화텅(馬化騰·36) CEO, 중국에 블로그를 처음 도입한 ‘블로그 차이나(博客網)’ CEO 팡싱둥(方興東·39)이 모두 이 세대다. 그들이 발전 초기였던 사회의 ‘공백’을 살려 성공했기 때문에 다음 세대에는 거의 과실이 남아 있지 않다. “비즈니스로 성공한 ‘1980년생 이후 세대’는 거의 없다”고 81년생으로 창업 준비 중인 중국인 여성(업무에 피해가 있을지 모른다며 익명을 희망)이 말했다. “제7세대가 경영자이며 우리는 그들 밑에서 일한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우유밍(吳幼明·34)은 지금도 후베이(湖北)성 양쯔(揚子)강변의 거리 황스(黃石)에서 경찰관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우는 도시 주민의 1년 소득에 달하는 월 9000위안이라는 터무니없이 많은 벌금이 교통경찰관에게 할당되는 일이나 중앙정부에 직소하는 사람을 지방정부가 체포하는 실태를 인터넷에 공개해 2007년 해직됐다. 원래 작가를 지망했던 우에게 경관은 집필 소재를 제공하는 일이었다. 한 자녀 정책을 준수토록 하기 위해 임신 6개월인 임부의 팔과 다리를 잡고 집에서 억지로 끌어내는 것을 돕기도 했다. 병원으로 데려가 낙태시키기 위해서였다. 경찰복을 벗은 이후 우는 베이징으로 옮겨가 화가로 활동하면서 실명으로 블로그를 쓰고 있다. “지식인이라면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우가 말했다. “뭔가 알면서 입을 다문다면 보통 사람들과 다르지 않다.” 베이징의 지하철에 있는 이동식 공중화장실에서 1회의 사용료 5각(약 70원)을 내도 이전에는 법정 영수증이 발행되지 않았다.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는다는 것은 운영하는 지하철 회사가 탈세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자칭 ‘공익소송인’인 하오징쑹(35)은 2004년 지하철 회사를 상대로 영수증 발행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또 철도청에 차내 판매의 영수증 발행과 구정 때의 운임 편승인상 중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잇따라 제기했다. 처음의 소송을 빼곤 모두 패소했지만 철도청은 2007년 구정부터 운임인상을 중단했다. 정부는 부정하지만 누구나 하오의 공적임을 인정한다. “한 개인이 철도청을 움직였다. 도움이 안 될 거라고 생각했던 법률의 힘에 대한 중국인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하오는 말했다. 은행원을 거쳐 대학에서 법률을 다시 배우면서 공익소송인으로 활동을 시작한 하오지만 무턱대고 정부에 맞서는 것은 아니다. 하오와 그를 지원하는 변호사들은 일련의 소송을 시작하기 전에, 정부를 강하게 자극하지 않는 문제부터 다루기 시작해 법정에서 실적을 쌓아가기로 방침을 정했다. ‘인치(人治)’의 나라라고 일컬어지는 중국사회에서 법률의 지위는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전에는 대학입시에서 문과의 하위에 처져 있던 법학부의 인기도 최근 서서히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하오는 아직 자기들 세대에는 중국을 변화시키려는 의지가 부족하다고 안타까워한다. “우리들은 극히 소수파”라고 그가 말했다. “대부분은 ‘떠든다고 뭐가 도움이 되느냐’는 부정적인 생각을 갖고 있다.” 대다수 중국인이 표면상 하오에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공산당의 힘이 아직 압도적이기 때문이다. 간부의 부패사건과 농민의 폭동이 끊이지 않아도 당원 수는 해마다 200만 명씩 계속 증가해 2006년 말에는 국민 18명당 한 명꼴인 7239만 명이 됐다. 당원이 되는 것만으로도 존경 받는 일은 없어졌지만 출세의 왕도임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들 세대 중 공공연히 당이나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국외 거주자나 국내에 있어도 실권이 없는 사람”이라고 32세의 중국인 카메라맨(가족에게 피해가 간다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이 말했다. “공산당은 전보다 통제를 강화하고 있다. 중국은 그렇게 쉽사리 변하지 않는다.” 정부에 공공연히 반항하지 않더라도 탄압받는 경우도 있다. 자칭 증권 애널리스트인 ‘다이터우다거(帶頭大哥, 솔선하는 형님이라는 의미)’라는 별명의 왕슈제(王秀傑·35)는 2007년 봄에 만든 주가예상 블로그가 국내 1위의 히트 수를 기록했다. “내가 하늘 아래 둘째라면 첫째는 없다”는 허풍에 가까운 자신감이 먹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하이 시장의 주가가 급상승하던 작년 7월 왕은 주가 거품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당국에 돌연 체포됐다. 중국 언론은 그를 투기꾼으로 매도하고 탈세나 사기 의혹도 보도했지만 결국은 허가 없이 증권 관련 영업을 한 죄로 기소됐을 뿐이다. 공산당과 정부 내부에서도 7세대의 대두는 현실이 됐다. 2008년 들어 남부의 장시(江西)성 부성장에 비당원 출신 경제학자 셰루(謝茹·40)가, 과거 후진타오가 맡고 있던 공산주의청년단 제1서기에 베이징시 부시장인 루하오(陸昊·41)가 각각 발탁됐다. ‘미인 최연소 부성장’ 셰는 출세가도를 일사천리로 달려왔다. 원래 공산당을 싫어했던 것이 아니라 중국 언론에 따르면 머지않아 입당허가를 받게 되며 당이 “젊고 우수한 지식분자를 당 밖에서 육성한다”며 일부러 입당시키지 않았다고 한다. 셰는 단순한 스타 정치인은 아니었다. 장시성 징더전(景德鎭)시에서 부시장을 맡고 있던 2002년 시내의 초·중등 학교의 내진강도가 낮은 교실의 보수에 착수해 2년간 위험교실 비율을 전국 최저로 끌어내렸다. 쓰촨 대지진으로 ‘두부 건축물’에 대한 전국민의 분노가 폭발하기 6년 전의 일이다. 물론 특정 세대가 중국을 움직이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중국사회를 가르는 것은 세대가 아닌 계급”이라고 프린스턴 대학의 중국 정치학자 페리 링크가 말했다. “해고 당한 근로자나 연금을 한 푼도 받지 못한 퇴직자, 농민은 반체제 성향이 더 강한 반면 좋은 교육을 받은 세대의 사람들이 정부에 협력한다.” 2003년에 자신이 수십 명의 남성과 가진 성관계를 묘사한 블로그로 일약 스타가 된 무쯔메이(木子美), 본명 리리(李麗·30)는 “나는 제7세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80년대생, 90년대생으로 분류하는 쪽이 더 잘 이해된다.” 7월 1일, 칼과 화염병, 해머로 무장한 28세의 남자가 상하이시 공안국의 분국을 습격해 경관 6명을 살해했다. 남자는 분국의 한 경찰관으로부터 받은 단속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중국에서 경찰 6명을 살해하면 사형을 면하기 어렵다. 본인과 가족 모두 가난해 변호비용을 댈 수 없다. 얼마 전의 중국이었다면 아무도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고 약식 재판을 거쳐 처형됐을 사건이다. 그러나 공익 소송인인 하오는 이 고립무원 상태의 남성을 법률 면에서 지원하겠다고 나섰다. 베이징의 변호사 슝례쒀(熊烈鎖·39)도 무상으로 남자를 변호하기로 결심했다. “제7세대에게 미숙한 부분도 있지만 상식의 틀을 벗어나려는 힘은 강하다”고 중국인 정치학자인 자오가 말했다. 제1세대인 마오쩌둥이나 저우언라이는 항일전쟁과 국민당과의 전쟁을 이끌어 공산정권을 만들었다. 제2세대인 덩샤오핑은 경제개방을 선도해 현재의 발전 기틀을 다졌다. 카리스마 없는 집단지도체제라고 일컬어지는 후진타오의 제4세대는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경제발전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을 획득하려 하고 있다. 경제개방이 막 시작되던 중국에서 몽롱시가 유행하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몽롱시라고 인식했던 사람은 없었다. 사회주의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쓰인 시가 훗날 몽롱시라고 불리게 됐을 뿐이다. 제7세대도 반세기 후에는 중국을 바꾼 세대로 역사에 기록될지 모른다. With PAUL MOONEY, NICK FRISCH, WANG XIAOYAN in Beijing, DUNCAN HEWITT in Shanghai, LEE DANUFF in New York. (기사제공·뉴스위크 일본판)

2008.08.19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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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양’ 광둥성 당서기 선두 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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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정계에는 깨지지 않는 불문율이 하나 있다. 지방정부를 두 번 이상 거치지 않은 지도자는 중앙정부의 핵심 포스트에 오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금 중국의 지방정부에서 승천의 꿈을 안고 뛰고 있는 잠룡들은 누구일까? 중국은 지난달 말 지방정부의 당서기, 성장, 부성장 등 200여 명 규모의 성급 지도자 인선을 모두 끝냈다. 이 중 왕러취안(王樂泉·64), 류치(劉淇·66), 왕양(汪洋·53), 장가오리(張高麗·62), 위정성(兪正聲·63), 보시라이(薄熙來·59) 등 여섯 명은 당 중앙정치국 위원직을 맡고 있다. 중앙에 교두보를 두고 있다는 얘기다. 이들 중 왕양 광둥(廣東)성 당서기가 가장 앞서가는 인물로 꼽힌다. 부총리 승진을 앞둔 장더장이 떠난 자리를 채웠다. 왕양은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같은 안후이(安徽)성 출신으로 공청단 안후이 선전부장을 거쳐 1993년 38세로 안후이성 부성장에 올랐다. ‘안후이방(안후이 출신 그룹)’이자 ‘퇀파이(공청단 출신 그룹)’로 후 주석의 골수 직계인 셈이다. 왕양은 광둥에 후 주석의 정치경제 노선인 ‘과학발전관’을 이식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내실이 있으면서도 빠른 성장을 뜻하는 ‘유하오유콰이(又好又快)’ 발전 모델을 강조하고 있다. 상무부 부장에서 충칭시 당서기로 자리를 옮긴 보시라이도 주목해야 할 지방지도자다. 그는 혁명원로 보이보(薄一波·1908~2007)의 둘째아들로 태자당의 대표 주자다. 다롄(大連)시장 시절 정치적 업적을 쌓은 그는 다롄을 ‘북방의 홍콩’으로 탈바꿈시켰다는 평가다. 보시라이는 축구, 의상박람회와 함께 ‘다롄 삼보(三寶)’로 불리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보시라이가 충칭권 경제발전을 앞당긴다면 5년 후 중난하이 진입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장가오리 톈진(天津)시 서기는 지난해 초만 해도 차기 주석으로 거론되는 시진핑과 경쟁하던 사이였다. 그러나 연령이 높아 뜻을 꺾어야 했다. 하지만 장가오리의 정치적 열망은 꺾이지 않았다. 그는 2010년까지 빈하이(濱海) 특구에만 5000억 위안(약 60조원)을 투자해 톈진을 제2의 푸둥으로 육성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다. 선전시를 하이테크 신도시로 변모시킨 그는 개혁개방의 살아 있는 전설로 꼽히고 있다. 위정성 상하이시 서기는 저장(浙江)성 출신으로 초대 톈진시장을 지낸 위치웨이(兪啓威)와 베이징 부시장을 역임한 판진(范瑾) 사이에서 태어난 태자당의 또 다른 선두 주자다. 상하이 간부들의 부패 비리척결과 경제건설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최근 단행된 지방정부 인선에는 몇 가지 특징이 엿보인다. 첫째 ‘60후(後) 세대’라 불리는 40대 젊은 피의 약진이다. 신장(新疆) 위구르자치구 주석 누얼 바이커리(47), 후난(湖南)성장 저우창(48) 등이 40대의 잠룡이다. 징더전(景德鎭)시 부시장 시절 관광을 진흥시킨 업적을 인정받은 셰루(謝茹·여·39)는 장시(江西)성 부성장에 전국 최연소 나이로 발탁됐다. 둘째 ‘동학서점(東學西漸·동부에서 배워 서쪽으로 이동한다)’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다롄·랴오닝성에서 충칭시에 입성한 보시라이, 후난성 창사(長沙)시 서기 출신의 친광룽(秦光榮·57) 윈난(雲南)성장, 원저우(溫州)시 서기를 역임한 장쥐펑(蔣巨峰·59) 쓰촨(四川)성장이 대표적이다.

2008.02.25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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