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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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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러 조약 이후 혼돈의 한반도…韓 핵재배치론까지 대두

국제 이슈

“쌍방 중 어느 일방이 개별적인 국가 또는 여러 국가로부터 무력 침공을 받아 전쟁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타방은 유엔헌장 제51조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러시아연방의 법에 준하여 지체없이 자기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수단으로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 제4조)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19일 서명한 ‘포괄적인 전략적동반자관계에 관한 조약’ 제4조가 한반도를 혼돈으로 몰고 있다. 미국에서 韓 핵무장론·핵 재비치론 등의 주장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90년대 한국에서 핵무기를 철수했다. 북러 조약 이후 핵무기 재비치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한국과 핵무기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21일(현지시간) 트럼프 행정부에서 한반도 정책 실무를 담당했던 앨리슨 후커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은 아시아소사이어티정책연구소(ASPI) 웨비나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면서 “북한과 러시아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한국을 그런 방향으로 몰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카토연구소의 더그 밴도우 선임 연구원은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핵무기를 보유한 북한과 함께 사는 법 배우기’라는 기고문에서 한국의 독자적 핵무기 개발을 차악의 선택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분석했다. 또한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필수적인 요구로 삼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면서 “역대 정부가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북한이 심각한 핵보유국이 되도록 독려했다”고 비판했다. 미 의회 상원 군사위원회 공화당 간사인 로저 위커 의원도 “동맹국인 한국·일본·호주와 핵 공유 협정을 논의해야 한다. 이제 이들 국가도 핵 공유에 동참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또한 “중국과 북한 견제를 위해 미국의 핵무기를 해당 지역으로 재배치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국 정부는 북러 조약 서명에 대해 “북한과 러시아가 상호 군사 경제적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데 대해 엄중한 우려를 표하며 이를 규탄한다”고 발표했다. 또한 정부는 북러 조약을 심각한 안보적 위협으로 규정했지만, 1961년 북한과 소련이 맺은 ‘조소 동맹’의 수준에 이르진 못했다고 선을 그었다. 지난 21일 주한러시아대사를 초치해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김홍규 외교부 제1차관은 이날 중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대사를 서울 외교부청사로 불러 정부 입장을 전달했다.

2024.06.22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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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일 국방장관회담 “연내 北미사일 정보 실시간 공유체계 가동”

정책이슈

한국과 미국, 일본은 북한 미사일 경보정보를 3국 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체계를 연내 가동하기로 했다.이종섭 국방부 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장관, 하마다 야스카즈 일본 방위상은 3일 싱가포르 샹그릴라 호텔에서 3국 국방장관회담을 하고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3국 장관은 북한 미사일에 대한 탐지·평가 역량을 증진하기 위해 미사일 경보정보 실시간 공유 체계를 올해 안에 가동하기로 하고 실무협의를 열어 구체적으로 논의하기로 했다.한미일은 지난해 11월 프놈펜에서 열린 3국 정상회담에서 북한 미사일 경보 정보의 실시간 공유에 합의하고 이행 방안을 논의해왔는데, 실시 시기가 나온건 이번이 처음이다.현재 한미는 한국군 작전통제소(KTMO-CELL)와 주한미군 작전통제소(TMO-CELL)를 통해 실시간으로 경보정보를 공유하고 있고, 미국과 일본도 실시간 정보 공유체계를 가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간에는 이런 체계가 구축돼 있지 않기 때문에 2014년 체결한 한미일 정보공유협정(TISA)을 활용, 미국을 통해 정보 공유가 이뤄진다.3국 장관은 최근 북한이 발사한 정찰위성에 대해서는 “탄도미사일 기술을 활용한 일체의 발사를 금지하는 유엔 안보리 결의에 대한 심각한 위반행위”라고 규탄했다. 아울러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는 3국의 대잠전훈련과 해상미사일 방어훈련도 정례화하기로 약속했다.

2023.06.03 1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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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경제” 10일 아·태 국가 안보회의…경제 판세 재편되나

국제 이슈

‘안보=경제’가 국제관계의 화두가 된 가운데 10일 싱가포르에서 아시아·태평양 주요 국가들의 안보 사령탑들이 모이는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가 열린다. 패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과 중국이 동석할 예정이어서 충돌이 예상된다. 이 안보회의에서 중국이 중국의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다. 중국의 국제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는 미국 입장에선 불편한 기색을 감추기 어려워 보인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에 따르면 11일 본회의 연사로 나서는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은 장관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다음 단계’라는 제목으로 연설할 예정이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도 회의 10일 기조연설을 통해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을 강조할 예정이다. 이 속엔 미국과의 연대를 통해 반중 전선을 형성하겠다는 뜻으로 보인다. 이에 12일 연사로 나설 웨이 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역내 질서를 위한 중국의 비전’으로 알려졌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달 한국과 일본을 순방, 양국의 정상들과 만나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경제적 군사적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안보 동맹을 토대로 연결한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를 출범시킨 것이 그 방증이다. IPEF엔 미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를 비롯해 동남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10개국 중 중국과 가까운 3개국을 제외한 7개국이 참여했다. 바이든은 이와 함께 지난달 일본을 방문했을 때 정상회의를 통해 쿼드(Quad)를 강화해 나가겠다는 구상에 대해 뜻을 함께 했다. 쿼드는 국제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중국의 견제에 맞서 미국·일본·호주·인도가 맺은 협의체다. 앞서 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인 오커스(AUKUS)도 지난해 9월 발족한 상태다. ━ 중국이 흔드는 세계 공급망, 안보동맹 중심으로 재편 이에 대응해 중국도 최근 안보와 경제를 묶은 연맹 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잰걸음을 내딛고 있다. 중국은 지난달 30일 피지에서 제2차 중국-남태평양 섬나라 10개국 외교장관회의를 열고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미국의 안보·경제 동맹 강화에 대한 대응인 셈이다. 중국은 해외에 해군기지도 건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가 캄보디아 레암 해군기지 북쪽에 비밀 해군기지를 건설한다고 미국 매체가 최근 보도했다. 중국은 이를 부인했지만 사실 여부를 떠나 중국이 미국의 반중 동맹 구축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적 거점을 고민하고 있는 한 사례로 해석되고 있다. 이밖에 이번 안보회의에선 ▶7차 핵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진 북한 문제 ▶미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반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상황과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 여부 ▶미얀마 쿠데타 사태에 대한 국제사회 해결 방안 등에 대한 논쟁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간 경계선이 이러한 안보 중심 동맹으로 재구성되면 국가간 경제교류 판세도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 바이든 대통령이 20~22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한국에 방문했을 때 미국에 대규모 투자를 약속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긴밀한 만남을 가졌다. 이는 중국의 영향력에 흔들리는 세계 공급망을 미국을 위시한 안보 동맹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의미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2.06.1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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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 경호 맡는 구르카족] 돈 받고 싸우는 용병? 직업정신 투철한 전사!

산업 일반

싱가포르 경찰에 1800명가량 근무 … 영국 식민지 군대 시절에도 용맹 떨쳐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 싱가포르는 제복의 나라다. 군인과 경찰의 비율이 높다. 싱가포르는 서울 면적(606.2㎢)의 1.2배 수준인 721.5㎢의 좁은 국토에 561만 명(2017년 11월 싱가포르 통계청)이 몰려 사는 작은 도시국가다. 그런데도 이 나라의 안보를 책임지는 싱가포르군은 7만1600명의 병력을 유지한다. 인구의 1.27%가 군인이다. 군 병력의 80% 정도가 징집병이다. 18세 이상의 모든 싱가포르 남자는 의무적으로 22~24개월 간 군복무를 해야 한다.법과 질서를 책임지는 경찰도 준군인이다. 싱가포르 경찰은 공식 명칭이 싱가포르 경찰부대(The Singapore Police Force, SPF)다. 병력이 4만1599명이나 된다. 군 병력의 절반을 넘는다. 이 가운데 1만5000명이 풀타임 경찰이다. 싱가포르 경찰의 모토는 ‘국가를 위한 경찰-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나라로(A Force for the Nation – To Make Singapore the Safest Place in the World)’이다. ‘범죄를 예방하고 억제하며 감지(prevent, deter and detect crime)‘하는 것을 임무로 정하고 있다. 군인과 경찰을 합치면 병력 11만3000명 이상이 이 작은 도시국가를 지키는 셈이다. 미국과 북한이 싱가포르를 회담 장소로 선택하고 받아들인 데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이 같은 철통 같은 보안도 한몫했을 것이다.이런 가운데 싱가포르 경찰에는 1800명가량의 네팔 구르카족 병력이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보도돼 관심을 끌고 있다. 이들 구르카족 경찰은 계약에 따라 싱가포르 경찰에 ‘해외 취업’하고 있다. 통상 18, 19세 때 엄격한 체력 검증 등을 거쳐 선발돼 싱가포르에서 45살까지 급여를 받고 근무하게 된다. 근무가 끝나면 본국 네팔로 의무 귀국해 연금으로 안락한 노후를 보내게 된다. 근무 후 싱가포르 정착이나 근무 중 싱가포르 국적 여성과의 결혼은 할 수 없다. 이들은 근무 기간 중 싱가포르에서 마련해준 숙소에서 집단생활을 한다. 숙소에선 오후 10시 30분에 취침해야 하며 자정 이후에는 외부 통행이 금지된다. ━ 계약에 따라 싱가포르 경찰에 ‘해외 취업’ 싱가포르 경찰에는 ‘구르카 경찰단(Gurkha Contingent, GC)’이라는 이름의 구르카 분견대가 별도로 있다. 이들은 고도의 특수 훈련을 받은 후 강력한 헌신성과 업무 적합성이 확인될 때 임용돼 임무에 투입된다. 구르카 분견대의 기본 임무는 특수 경비이며, 최근 이들은 대테러 임무의 선두에 서고 있다.싱가포르 경찰에 싱가포르인도 아닌 네팔의 부족 구르카족으로 이뤄진 ‘구르카 경찰단’의 구성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인도의 독립이었다.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1947년 8월 15일)한 후인 1949년 4월 9월 영국-인도-네팔의 삼각 합의가 이뤄지면서다. 식민지 군대에서 근무하는 것을 부족의 주요 수입원으로 삼고 있던 네팔의 구르카족으로선 자신들의 군인 지위를 유지하는 것은 당대는 물론 후손들까지 먹고 사는 데 핵심적인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이 합의에 따라 ‘인도 주둔 영국군 구르카 부대’는 영국군과 인도군으로 소속이 나뉘어졌다. 이 가운데 영국군 소속으로 이관된 인도 내 구르카족 부대 4개 연대는 인도를 떠나 말레이나 싱가포르 등 아직 영국 식민지였던 지역으로 전환 배치됐다. 반대로 인도 독립에 따라 그전까지 영국 식민지였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 주둔했던 시크족 부대는 영국군에서 분리돼 인도군으로 소속을 옮기고 본국으로 귀국하게 됐다. 이 구르카족 부대는 말레이와 싱가포르에서 시크족 부대가 맡고 있던 군대와 경찰 임무를 맡았다.특히 싱가포르 경찰에 배치된 구르카인들은 치안 유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50년 12월 11~13일 싱가포르에선 ‘마리아 허토흐 폭동’이 발생했다. 이 폭동은 싱가포르 법정이 체 아미나 빈트 모하마드라는 이름으로 말레이계 무슬림 가정에서 성장한 13세 소녀를 네덜란드계 가톨릭교도인 생물학적 부모에게 돌려줘야 한다고 판결하면서 벌어졌다. 무슬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는데 이 어린이가 성모마리아상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사진이 공개되면서 시위는 폭동으로 번졌다. 18명이 사망하고 173명이 부상했다. 구르카족의 용감하고 합리적이며 헌신적인 대처 덕분에 사태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진정됐다. ━ 리콴유 총리가 싱가포르 경찰에 구르카족 분견대 설치 그 후에도 대규모 폭동이 터졌다. 1964년 7월 21일 이슬람 예언자인 무함마드의 생일을 맞아 싱가포르 전역에서 무슬림인 말레이계와 중국계가 감정적으로 충돌했다. 이 충돌은 그 해 9월까지 간헐적으로 계속됐다. 영국이 떠난 이후 서로 다른 종족 간에 민족 분쟁과 종교 갈등이 줄을 이은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계든 말레이계든 어느 한쪽에 속한 경찰이 나서면 사태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 자칫 한쪽 편을 든다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해당 경찰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속한 종족의 눈 때문에 합리적인 일 처리가 어려워지는 문제도 있다. ‘말레이계 경찰이 중국계 시위대에 발포했다’ ‘중국계 경찰이 말레이계 시위대에 발포했다’는 소문이 퍼지면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폭력적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립적일 수 있는 제3의 종족인 구르카족 경찰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李光耀, 1923~2015)는 구르카족의 규율 및 충성심과 함께 이런 요소를 감안해 싱가포르 경찰에 구르카족 분견대를 설치했으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구르카족이 영국과 옛 영국 식민지 국가에서 군사와 경찰 업무에 종사하는 데는 역사적인 사연이 있다. 네팔의 한 부족인 구르카족은 1814~1816년 벌어졌던 영국-네팔 전쟁에서 용맹성과 탁월한 전투 능력을 보여줬다. 네팔은 당시 고르카(지금도 인도에선 고르카로 부른다) 왕국이라는 이름의 독립 국가였는데, 이 때문에 구르카라는 부족의 이름이 곧 네팔을 의미한다는 주장도 있다. 전쟁 당시 구르카족을 눈여겨본 영국군은 이들을 적으로 두기보다 아군으로 포섭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해 구르카족 부대를 조직해 식민지 인도군의 한 부분으로 배치했다. 급여를 지급하는 직업군인 부대이다.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하고 1949년 4월 9월 영국-인도-네발 삼각 합의가 이뤄지면서 구르카족 군인들은 본인의 희망에 따라 인도 또는 영국을 선택했다. 10개의 구르카족 연대 중 6개가 인도군으로 가고 4개가 영국군을 택했다. 현재 인도군은 7개의 구르카 연대에서 39개 대대를 운영한다. 이 가운데 6개 연대는 독립 직후 식민지 군대였던 ‘영국인도군’에서 넘어온 부대이며 1개 연대는 독립 이후 신설됐다. 독립 후 구르카 연대를 추가로 설치한 것은 그만큼 이들의 전력이 인도군에 필요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다. 영국인도군의 구르카 부대 중 4개 연대는 1948년 1월 1일자로 영국군에 배속돼 말레이와 싱가포르에 배치됐다. 이들은 현재 영국군 구르카 여단을 이루고 있다. 말레이에 배치된 구르카 부대는 2차 대전 당시 버마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벌였던 것처럼 정글 전투에서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1949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로 근거지를 옮긴 영국군 소속 구르카족 부대는 단순한 경비 임무를 넘어 실전에 투입됐다. 1948년 당시 영국 식민지이던 말레이에서 ‘말라야 비상사태(Malayan Energency)’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말라야 비상사태는 말레이 공산당 산하 무장단체인 말라야 민족해방군(MNLA)이 영국군을 대상으로 독립을 요구하면서 게릴라전을 벌인 사건이다. 1960년까지 계속된 이 사태로 말레이 지역은 혼란에 휩싸였다. 이 사태가 진행 중인 1957년 8월 31일 말레이 식민지는 말라카 해협의 또 다른 영국 식민지인 페냥과 말라카를 합쳐 말라야 연방이란 국가로 독립했다. 말라야 연방은 1963년 싱가포르와 보르네오섬의 북보르네오와 사라와크 등 인근 영국 식민지를 통합해 새롭게 말레이시아 연방을 구성했다. 싱가포르는 1965년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돼 화교가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다민족 국가로 새 출발했다.말라야 비상사태가 발생하자 영국은 총력을 다해 공산군 봉기에 대항했다. 사태가 발생할 당시 영국은 노동당의 클레멘트 애틀리(1883~1967) 총리가 집권하고 있었다. 애틀리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45년부터 한국전쟁 이듬해인 51년까지 총리를 지내며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로 요약되는 20세기 복지국가를 건설한 인물이다. 하지만 외교에선 확고하게 친미·반소·반공 정책을 견지했다. 2차대전 후 초 강대국이 된 미국과 소련이 냉전(1945~91년)에 들어가자 냉정한 판단으로 미국을 편들며 자유진영의 핵심 역할을 했다. 소련이 동유럽 등에 세력을 확장하는 것에 불안을 느끼고 좌파정당인데도 반공·반소·친미 정책을 폈다.1947년 이후 노동당내 좌파들이 ‘계속 좌향좌(Keep Left)’를 주장하며 유럽사회민주주의를 미국과 소련 사이의 제3세력으로서 중립정책을 요구했지만 애틀리는 듣지 않았다. 대신 국민의 오해를 피하기 위해 소련은 물론 영국 공산당과도 멀리했다. 공산당과 가까이하는 노동당원은 가차 없이 제명했다. 국민의 지지 속에 내정 개혁을 완수하려면 공산당이나 소련과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국민에게 확신시켜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냉전은 사실 영국 역사상 가장 길고 비용이 많이 들어간 전쟁이었다. 핵무기를 포함한 재무장에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갔다. 애틀리는 1949년 4월 공산권에 대항하는 서방 집단 방위기구인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창설에 앞장섰다. 그러면서도 영국이 독자 노선을 걸으려면 핵무기 보유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47년 1월 자체 핵무기 개발을 지시했다. 애틀리의 핵 자주권 확보 노력은 정권이 바뀐 52년 남호주에서의 핵실험으로 결실을 맺었다. 말레이 비상사태는 영국의 노동당 정권이 핵개발을 진행하고 있는 동안 발생했다. 영국이 사태 진압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전후 복구와 식민지 경제 부흥을 위해 말레이의 광산의 주석과 플랜테이션의 고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영국군은 세계에서 동원할 수 있는 군대를 모두 모았다. 물론 핵심은 말레이 여단을 주축으로 하는 25만 명의 말레이 방위군이었다. 영국군이 말레이 현지에서 현지인을 훈련시켜 구성한 식민지 군대다. 그 중추는 말레이인만 사병으로 근무하는 특수부대인 말레이 여단이었다. 당시 2개의 공수 대대, 1개의 기갑대대, 22개의 경보병으로 구성된 정예 부대였다. 이 식민지 여단은 제2차 세계대전에도 참전해 영국군 휘하에서 일본군을 대상으로 말레이 전투와 싱가포르 전투를 치른 역전의 부대다. 특수 훈련에 용맹성까지 갖춰 말레이 여단은 ‘말레이 구르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물론이 부대는 말레이인만 사병으로 근무해 쿠르카인은 없었다. 구르카족의 용맹성은 이미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던 셈이다.영국군은 4만 명의 영국군과 영연방군도 동원됐다. 영연방인 호주와 뉴질랜드의 군대와 함께 영국군 직할 식민지 부대들이 대거 나섰다. 케냐·우간다·탄자니아(당시엔 잔지바르와 탕가니카)·말라위(당시엔 니야살랜드) 등을 기반으로 하는 ‘킹스 동아프리카 소총부대(KAR)’도 동원됐다. 이 부대는 1차대전의 아프라카 전역과 2차대전의 에티오피아·소말릴랜드(현재 소말리아 북부 지역)에서 파시스트 이탈리아군에 대항해, 마다가스카르에선 프랑스 비시정부군과 전투를 벌였다. 아프리카 지역은 물론 버마에도 원정해 일본군에 대항해 싸웠다.영국은 1차대전과 2차대전을 거치면서 식민지 부대를 대거 유럽 전선에 투입했다. 인도군의 경우 영국군 휘하에서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제2차 보어전쟁(1899~1902), 제1차 세계대전(1914~1918), 아프가니스탄에서 벌어진 제1차 와지리스탄 전쟁(1919~1920)과 제2차 와지리스탄 전쟁(1936~1939),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1939~1945)에 참전했다. 특히 1차대전 당시에는 인도 국민의회의 협조를 얻어 100만 명 이상의 병사들이 지원하고 원정부대를 조직해 프랑스 등 유럽 전선 등에 참전했다. 이 가운데 최소 7만4787명이 전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 뉴델리에 있는 주황색의 ‘인다아 문’은 1914~1921년 전사한 인도 군인들을 추모하기 위해 1931년 건설됐다.인도군의 영국 전쟁 참전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이어졌다. 인도군은 1939년 1차대전 발발 당시 20만 명 수준이던 인도군의 병력은 전쟁이 끝난 1945년 8월엔 250만 명이 넘었다. 인도군 가운데서도 구르카족은 발군이었다. 이들의 주특기는 은밀한 야간 기습이었다. 구르카 병사는 언제나 몸에 지니는 부족 전통의 단검인 쿠크리를 실전에서 사용했다. 이들은 야간에 2인 1조로 보초를 서는 독일군이나 이탈리아군 초소를 몰래 침입해 한 명의 목만 잘라갔다. 졸다 깨어보니 옆의 동료가 목 없이 피를 흘리고 있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한 ‘살아남은’ 독일군 병사의 비명 소리는 부대 전체를 공포에 휩싸이게 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보초는 물론 전체 병력이 며칠 동안 밤새 뜬 눈으로 밤을 세우기 일쑤였다. 그러다 지쳐 사기와 판단력이 흐려질 무렵 영국군은 야습을 해서 피로에 지친 독일군을 섬멸했다. ━ 부족 전통의 단검인 쿠크리 실전에서 사용 말레이 비상사태에서 구르카 부대는 특유의 용맹성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모든 작전의 최선봉에 나서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부대에 가장 위험한 임무나 최선봉 투입 임무가 넘어가면 항의하기 일쑤였다. 말레이 비상사태는 윈스턴 처칠이 해결했다. 1951년 영국 총선 승리로 총리에 복귀한 처칠은 내정에 주력했다. 정권을 잃은 기억을 잊지 않고 재건 과정에서도 다양한 복지정책을 추진했다. 특히 매년 30만채의 서민주택을 공급하겠다는 공약을 지켜 주택난을 상당히 해소했다. 하지만 공산주의의 세력 확대에는 더할 나위 없이 단호하게 대처했다. 특히 1948년부터 계속되던 말레이 식민지(현 말레이시아)의 공산주의 무장단체인 말레이민족해방군(MNLA)의 게릴라전에 맞서 대규모 병력을 증파하는 한편 농촌지역에 대한 의료·식량지원을 강화해 근거지의 민심을 장악했다. 그 결과 1954년까지 게릴라의 3분의 2를 소탕, 동남아시아에서 공산 세력의 확산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었다. 그 최선봉에 쿠르카 부대가 있었다.말레이와 브루나이 사태가 일단락되자 구르카 부대는 모두 홍콩으로 이동 배치돼 주로 보안과 경비 업무를 맡았다. 주로 국경 경비를 맡으면서 밀수와 불법이민을 단속했다. 1966년 홍콩 폭동에서도 역할을 했다. 당시 홍콩의 식민지 행정당국이 홍콩 섬과 주룽(九龍)반도를 오가는 해상 페리 요금을 인상하자 시민들이 항의 시위로 시작했다가 폭력 사태로 번졌다. 1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부상했으며 1800여 명이 체포됐다. 1997년 7월 1일 홍콩이 중국에 회귀되면서 홍콩에 주둔하던 구르카 부대는 본부와 훈련소 문을 닫고 영국으로 이동했다.구르카족 부대는 영국군의 일부로 세계에 분쟁 지역에 투입돼왔다. 1974년 터키가 키프로스를 침공하자 영국은 1개 구르카 연대를 키프로스 내 영국 해외 영토이자 군사기지인 데칼리아 주둔지로 보내 경계를 강화했다. 구르카 부대는 1999년 코소보 전쟁 당시 영국군의 일원으로 다시 한 번 용맹성을 보여줬다. 다국적 평화유지군 가운데 마케도니아에서 코소보로 가장 먼저 진입해 수색, 정찰, 지뢰 제거, 장애물 정리 등의 임무를 수행한 것이다. 위험한 작전에서 항상 최전선에 선다는 구르카족의 전통이 살아있음을 보여줬다. ━ 佛 외인 부대와 더불어 국제법상 특수성 인정 받아 1994년 7월 1일 4개 구르카 소총연대는 1개의 여단으로 통합됐다. 지금도 약 3500명이 구르카 병사로 영국군 소속으로 근무한다. 이들은 특수부대로서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 등 영국군의 작전을 펼치는 험악한 지역엔 빠지지 않고 투입된다. 아무리 최첨단 무기로 무장해도 전통의 단검인 쿠크리는 항상 몸에 지닌다. 비록 다른 나라를 위해 싸우고 있어도 이들은 구르카족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다른 나라를 위해 돈을 받고 싸우는 용병은 국제법이나 국내법으로 불법이다. 하지만 구르카족 부대는 프랑스 외인 부대와 더불어 국제법상 특수성을 인정받는다. 역사성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의 엄격한 군기와 합리적인 일처리는 세계적으로 정평이 나있다. 이들의 활동은 돈을 받고 폭력을 대신 행사해주는 일반적 의미의 ‘용병’과 다르다. 구르카족을 용병으로 불러선 곤란한 이유다. 다만 직업정신에 철두철미할 뿐이다.

2018.06.09 1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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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적은 오늘의 동지

산업 일반

중국, 이념적 라이벌이던 러시아와 전략적 밀착으로 미국 제치고 아시아 패권 노린다 아직은 미국이 아시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슈퍼파워다. 그러나 현재 중국과 러시아가 전략적 공동보조를 취하면서 미국의 아시아 패권에 거세게 도전한다. 세계 최고의 전략 지역 중 하나인 아시아에서 나타나는 위태롭고 복잡다단한 파워 역학을 분석한 최근의 보고서에서 지적된 내용이다.호주 시드니 소재 싱크탱크 로위연구소는 지난 5월 8일 아시아·태평양 지역 25개국의 국력을 평가한 ‘아시아 파워 지수(API·Asia Power Index)’를 발표했다. ‘경제적 자원’ ‘군사적 역량’ ‘탄력성’ ‘국방 네트워크’ ‘문화적 영향력’ ‘미래 전망’ ‘외교적 영향력’ ‘경제 관계’ 등 8가지 항목을 기준으로 아시아 지역에서 발휘되는 각국의 파워와 영향력을 측정한 결과다. 미국이 100점 만점에 85점을 얻어 1위에 올랐다. 그런 사실은 별로 놀랍지 않다. 그보다 더 중요한 점은 ‘신흥 초강대국’ 중국이 75.5점으로 미국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는 사실이다. 또 중국은 일부 주요 평가 항목에서 미국보다 앞서며, 미국의 세계적인 군사 라이벌로 인식되는 러시아와 전략적인 관계를 맺음으로써 상당한 이익을 얻고 있다.러시아는 이 경쟁에서 상대적으로 뒤지지만 중국과 손잡았다는 사실이 러시아의 입지 강화에 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시아 파워 지수에서 러시아는 33점으로 5위였다. ‘스마트 강대국’ 일본과 ‘미래의 거국’ 인도보다 뒤졌다. 또 중국은 아직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러시아와 공동전선을 펼침으로써 전통적인 서방 주도의 국제질서에 맞서려 한다.로위연구소에서 API 프로젝트 조사 책임자를 맡은 에르브 르마이유 선임연구원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형성되면서 그들의 파워가 합쳐진다”며 그 배경을 설명했다.세계에서 인구가 가장 많고 상비군 규모도 가장 큰 중국은 시진핑 국가주석이 2013년 정권을 잡은 이래 대대적인 개혁에 착수했다. 중국은 시 주석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따라 인접한 주변 지역을 넘어 아시아 전역과 아프리카·유럽으로 영향력과 경제력을 확대한다. 그와 함께 국내외에서 중국의 급속한 성장은 막대한 에너지 수요를 창출했다. 바로 그 측면에서 러시아가 중국과 관련해 중요한 역할을 떠맡았다. 전통적으로 중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가장 많은 석유를 수입했지만 2016년부터는 러시아가 사우디를 제치고 최대 대중국 석유 수출국이 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아주 복잡한 냉전 역사를 공유한다. 처음엔 공산주의 강국으로서 동지애를 나눴지만 나중엔 이념적인 라이벌로 서로 적대시했다. 그러다가 2001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시 중국에 손을 내밀면서 ‘중국-러시아 선린우호 협력조약’이 체결됐다. 그 이래 양국 관계는 갈수록 공고해졌다. 지난 3월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 모두 국가 수반으로 재선출되면서 국내적으로 권력을 강화하는 동시에 글로벌 영향력의 추를 서에서 동으로 옮겨 놓았다.르마이유 연구원은 뉴스위크에 “러시아가 중국의 에너지 의존성을 상쇄해주는 측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리스크를 싫어한다. 그래서 러시아와 정략적으로 선린관계를 구축했다. 아주 냉정하고 계산적인 관계다. 따라서 그런 관계는 이득이 없으면 언제라도 쉽게 깨질 수 있다. 또 소련 시대와 달리 러시아는 중국과의 관계에서 동생격이며 러시아도 그런 사실을 어느 정도 인정한다.” 아시아 파워 지수에서 군사력만 놓고 보면 중국이 2위, 러시아가 3위다. 러시아군의 대부분은 유럽과 시리아에 배치된 반면 중국군은 아시아 지역에 집중됐기 때문이다. 또 중국이 지출하는 국방비는 러시아의 3.5배에 이른다. 물론 두 나라 모두 미국의 국방비 지출과는 비교가 안 된다.현재 중국은 남중국해에서 이웃나라들의 반발에도 많은 구역의 영유권을 주장한다. 여기서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고 있지만, 중국은 러시아와 군사 관계를 강화하면서 그에 맞서는 상황이다. 2012년 이래 러시아와 중국은 여러 차례 합동 군사훈련을 실시했다. 미사일과 대테러 훈련만이 아니라 연례 합동 해상 기동연습도 포함됐다. 지난 4월 중국 국방부는 올해 중-러 합동 훈련이 서해에서 실시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또 중국은 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관계가 악화되는 상황에서 러시아의 편에 서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혔다. 지난 몇 달 동안 중국과 러시아의 관리들은 양국 사이에서 돋보이는 전례 없는 수준의 정치·군사 협력을 자랑했다. 예를 들어 지난 4월 개최된 제7차 모스크바 국제안보회의에서 웨이펑허 중국 국방부장은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에게 “특히 현재와 같은 상황을 감안해 중국군과 러시아군 사이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겠다는 확고한 결의를 미국에 보여주기 위해 이 자리에 참석했다”고 말했다.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이 당면한 주요 지정학적 이슈에서도 공동보조를 취했다. 예를 들어 북핵 위기에서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그리고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동시에 중단하자는 ‘쌍중단(freeze-forfreeze)’ 접근법을 지지한다. 아울러 러시아와 중국은 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혐의를 받는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겨냥한 미국 주도의 공습에 반대했고,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기로 한 미국의 결정을 비난했다. 러시아(시리아에서 이란과 전략적인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와 중국(이란에서 석유를 수입한다)은 미국·유럽국들과 함께 이란 핵합의 협정 조인국에 포함됐다.한편 푸틴 대통령은 오는 6월 중국 칭다오에서 열리는 상하이협력기구(SCO, 중국·러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키르기스스탄·타지키스탄의 협력기구) 정상회담에 참석할 예정이다. 7월엔 러시아가 제5차 중국-러시아 엑스포를 개최한다.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에 따르면 최근 중국 상무부의 가오펑 대변인은 기자회견에서 2018년 중-러 양자간 무역이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으며 연간 무역액이 1000억 달러를 초월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로위연구소는 “아시아 국가 다수 사이의 경제적 관계가 강화된다”면서 “세계의 부와 파워가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이런 추세의 대부분을 중국이 선도한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파워 지수에 따르면 중국은 3가지 주요 평가 분야(‘미래 전망’ ‘외교적 영향력’ ‘경제 관계’)에서 미국에 앞서며 ‘경제적 자원’에선 중국과 미국이 거의 동률을 이뤘다. 또 중국은 2030년이 되면 국내총생산(GDP)에서 미국을 쉽게 능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특히 아시아 국가들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상대하기를 꺼리기 때문에 역내 관계에서 더욱 전략적으로 중국의 편에 설 것으로 전망됐다. 중국이 가장 약하게 평가된 분야는 ‘국방 네트워크’였다. 군사 관계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은 아시아 파워 지수에 포함된 25개국 중 7개국와 긴밀한 군사 관계를 맺고 있어 1위로 평가됐다.르마이유 연구원은 아직 중국이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리지 않았고 지금까지 해군 전력 강화에 치중했지만 인공지능(AI)만이 아니라 장거리 미사일과 항공모함 같은 좀 더 전통적인 무기에도 투자를 늘려 방위 능력의 급속한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모든 점을 감안하면 중국은 현재 아시아에서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의 경쟁국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중국이 미국보다 더 강해질 것이라고 확언할 순 없지만 그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톰 오코너 뉴스위크 기자

2018.06.0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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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은 지역 안정군”

산업 일반

북미정상회담을 앞둔 미국, 한미 공조 방해하는 주한미군 감축설 조기 진화에 나서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이후 주한미군의 역할과 성격을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는 와중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 국방부에 주한미군 감축안 검토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5월 3일자 신문에서 그 문제에 관여한 익명의 관리들을 인용하며 그렇게 보도했다.그러나 미국 국방부는 언론 브리핑에서 그런 사실을 부인했다. 한국 청와대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가 뉴욕타임스 기사를 오보라고 해명했다고 기자들에게 전했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지난 5월 4일 기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백악관 NSC 핵심 관계자가 그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조금 전 백악관 핵심 관계자와 통화한 후 이 같이 전해왔다.”볼턴 보좌관도 같은 날 한국의 연합뉴스에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국방부에 주한미군 병력감축 옵션을 준비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연합뉴스에 보낸 본인 명의의 성명을 통해 미국 뉴욕타임스의 관련 보도를 “완전한 난센스(utter nonsense)”라고 일축한 뒤 이 같은 입장을 표명했다. 백악관이 NSC 보좌관 명의로 언론 보도에 대한 반박 입장을 밝힌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한미 공조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는 주한미군 감축설의 파장을 조기 진화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남북한, 미국, 중국 사이에서 외교적 교류가 급증하면서 한반도의 긴장이 완화되는 상황에서 약 2만8500명에 이르는 주한미군에 관한 문제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다. 최근 들어 여러 보도를 통해 주한미군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양면성이 드러났다. 5월 7일 NBC 방송은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주한미군의 완전 철수를 지시하려 했지만 존 켈리 백악관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강하게 만류해 단념시켰다고 보도했다.트럼프 대통령은 미군이 제공하는 안보 우산과 관련해 한국이 방위비를 충분히 분담하는지 오래 전부터 의문을 표했다. 지난 3월 그는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의 비공개 정치자금 모금 행사장 연설에서 “우리는 무역에서 돈을 잃고, 군대(주한미군)에서도 돈을 잃는다”며 “지금 한국과 북한 사이에 미군 병사가 주둔해 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미국의 전략자산 한국 배치도 논의의 대상이다. 5월 5일 한국의 영자지 코리아타임스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하며 미국이 한국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의 철수 가능성을 두고 중국과 논의 중이라고 보도했다.한국은 미군이 세계에서 세 번째로 많이 주둔하는 나라다. 서울에서 약 65㎞ 떨어진 경기도 평택의 캠프 험프리스는 미군이 가진 최대 규모의 해외 기지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방위비를 공정하게 분담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한국 정부는 캠프 험프리스의 최근 확장 공사에 필요한 107억 달러 중 91%를 부담했다.한국 정부는 미군의 주둔과 한국전쟁을 공식 종료하는 평화협정 체결 가능성은 별개의 문제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지난 5월 2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에 따르면 문재인 대통령은 “주한미군은 한미동맹의 문제다. 평화협정 체결과는 아무 관련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의 안정을 위한 미군의 주둔으로 본다는 뜻이다. 북한도 미군의 지속적인 주둔에 반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북한은 공식적으로 반미 입장을 견지하지만 오랫동안 주한미군이 지역의 ‘안정 장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국 국무장관이 역사적으로 북한을 방문했을 때 김정일 위원장은 주한미군을 인정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냉전 이후 북한 정부의 관점이 바뀌었다”면서 “미군은 이제 (동북아 질서를) 안정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랜덜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는 지난 5월 15일 상원 외교위원회(동아시아·태평양·국제 사이버안보 정책 소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주한미군이 지역 평화를 유지하는 데 중요하냐는 에드워드 마키 의원의 질문에 “매티스 국방장관이 최근 주한미군을 ‘안정군(stabilizing force)’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북한의 위협이 제기되는 현시점에선 미군의 한국 주둔이 명백히 필요하다”고 말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외교적 노력이 성과를 거둔 이후에도 미국은 동북아시아에 장기적인 전략적 이익이 있다면서 “전진 배치된 미군 (forwarddeployed force)을 미국은 계속 원할 것으로 생각한다”고 답했다. 슈라이버 차관보는 이날 제출한 서면보고서에서 미군의 역할은 준비태세 유지와 힘을 바탕으로 한 외교적 노력을 뒷받침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입장을 거듭 밝혔다.한편 미국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정상회담을 앞두고 ‘주한미군 감축론’에 제동을 걸었다. 의회의 승인 없이 주한미군 감축을 못하도록 국방수권법(NDAA) 개정에 나선 것이다. 북미 회담의 결과와 상관없이 한반도 방위공약을 공고히 하고, 북미 간 협상 테이블에서 주한미군 문제를 완전히 배제시키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국방수권법은 당면한 안보 문제를 명시하고, 이에 따른 예산을 총괄하는 1년짜리 한시법으로 매년 개정된다.지난 5월 10일 미국 하원 군사위원회 소속 루벤 가예고(민주당) 의원이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의회의 승인 없이는 주한미군을 줄일 수 없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NDAA 수정안이 찬성 60표, 반대 1표로 전날 하원 군사위원회를 통과했다. 국방수권법 수정안은 ‘주한미군 감축이 국가 안보 이익에 부합하고 지역의 동맹 안보를 심각하게 저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국방장관의 보증 없이는 주한미군을 2만2000명 아래로 줄여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초당적 지지 속에서 통과된 이 수정안은 앞으로 하원 전체회의에 넘겨질 전망이어서 최종 표결 결과가 주목된다.- 소피아 로토 퍼시오 뉴스위크 기자

2018.05.28 09:58

4분 소요
미국은 그래도 전쟁으로 기우나?

산업 일반

대북 선제타격 주장한 존 볼턴의 국가안보보좌관 지명은 북한과의 충돌 가까워졌다는 신호라는 우려 제기돼 2003년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는 북핵 프로그램을 포기하도록 유도하려는 새로운 노력을 전개했다. 한국·중국·일본·러시아 4개국과 연합전선을 펼쳤다. 이 이른바 ‘6자회담’ 외교노력은 여러 해에 걸쳐 종종 좌절을 겪으며 진행됐다. 회담이 한창일 때 나는 한 참가국의 협상대표와 마주앉았다. 지역에서 내 최고의 정보원 중 하나가 된 외교관이었다.평소 차분한 그였지만 내가 존 볼턴을 언급하자 평정심을 잃고 말았다. 볼턴은 앞서 미-북간 핵협정의 좌초에 일조했던 부시 행정부의 전 관료였다. “볼턴은 북한이 오늘날 여러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는 원인”이라고 그 외교관은 내뱉듯이 말했다.그 외교관의 말에는 과장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그가 그런 말을 한 사실 만으로도 시사하는 바가 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를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한 현 시점에는 더 큰 의미를 갖는다. 이 조치는 4월 초 공식화되는데 대략 그 한 달 뒤 미국 역사상 손꼽히는 대담한 외교적 도박이 펼쳐진다. 바로 트럼프가 북한의 젊은 지도자 김정은과 만나는 미-북 정상회담이다.H. R. 맥매스터의 후임인 예일대 출신 달변가 볼턴은 여전히 극단적인 강경파다. 부시 정부에서 국무부 관료와 유엔 대사를 지낸 그는 여러 해 동안 폭스 뉴스 분석가로 일한 바 있다. 그가 거의 모든 국가안보 문제에서 강경파임을 충분히 인식할 만큼 트럼프 대통령이 TV를 통해 그를 오래 지켜봤다는 의미다. 한 달 전 볼턴은 월스트리트저널에 ‘북한 선제 타격의 법적 근거’라는 제목의 칼럼을 기고했다. 북한에 대한 미국의 대북 선제적 타격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는 워싱턴 정가 사람들에게 볼턴의 칼럼은 극도의 우려를 불러일으켰다.이제 그의 부상으로 상당수 워싱턴 정가(동아시아 전체는 말할 필요도 없이) 인사의 불안감이 커졌다. 10여년 전 핵협상을 좌초시키려 했듯이 트럼프와 김정은의 정상회담이 이뤄지기도 전에 결렬시키리라는 우려다. 빌 클린턴이 대통령 재임 시 서명한 그 협정에서 북한은 비핵화 대가로 2기의 경수로와 매달 연료유를 공급 받았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볼턴을 전면에 내세워 북한이 협정을 어겼다고 불평했다. 클린턴 시대의 협정은 북한의 플루토늄을 이용한 핵무기 개발 노력을 다뤘지만 북한은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해 비밀리에 무기를 개발하려 하고 있었다. 그것은 중대한 위반이었지만 각국의 외교 담당자들은 북한의 우라늄 프로그램을 조용히 중단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부시 정부는 그들과 달리 북한에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했고(북한이 시인했다) 협정은 깨졌다. 그 뒤 북한은 여러 개의 핵무기를 만들겠다고 말했으며 이제 그들의 뜻을 이뤘다.분석가들은 10여년 동안 부시 정부의 대응이 적절했느냐를 두고 갑론을박해 왔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볼턴이 외교관으로서 상당히 비외교적일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행정부 내 그의 정적들도 그가 똑똑하고 치밀하고 집요하다는 점은 시인한다(플로리다주에서 부시와 알 고어 간의 최종 표결로 판가름 난 2000년 대선 당시 재검표 싸움에서 볼턴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뒤 부시가 그를 국무부로 불러들였다).이제 관건은 역사적인 트럼프-김정은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 볼턴이 그런 역량을 어떤 목적으로 사용할 것이냐는 점이다. 볼턴이 합법적인 수단이라며 선제공격을 선호한다는 지적이 이미 반대 진영에서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에서도 일부 지원을 받을지 모른다. 볼턴의 지명을 발표하기 몇 주 전 트럼프 대통령은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을 해임하고 또 다른 강경파인 마이크 폼페오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그 자리에 앉혔다.이를 종합해 볼 때 강경파들이 이제 주도권을 쥐고 있으며 북한과의 충돌이 멀지 않았다는 신호라고 반대 진영에선 말한다. 하지만 몇 달 전에도 트럼프 정부는 이미 북한을 겨냥해 ‘코피(bloody nose)’ 전략을 검토하고 있었다. 북한 핵시설 일부에 대한 제한적인 선제 타격으로 미국의 강력한 비핵화 의지를 그들에게 인식시키려는 목적이다. 맥매스터가 이끌던 국가안보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최근에야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틸러슨 전 국무장관의 강력한 반대에 부닥쳐 트럼프 정부가 그 전략을 포기했다.볼턴의 옹호자들은 그의 임명이 타당한 조치라고 말한다. 그와 트럼프 대통령이 운전대를 잡으면 2명의 예측 불가능한 강경파 지도자가 김정은과 마주하면서 앞으로는 선제공격 전략을 효과적으로 집행할 수 있게 된다. 한국과 일본의 지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볼턴의 강경 발언이 전쟁을 부를 것이라고 우려할지 모르지만 어쩌면 그것이 노림수일지 모른다. 평양의 김정은과 그 일당을 떨게 만들려는 것이다.열쇠는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난 뒤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다. 자칭 탁월한 협상가인 트럼프 대통령이 실망하고 돌아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로널드 레이건이 1986년 소련 지도자 미하일 고르바초프와의 역사적인 핵 정상회담에서 그랬듯이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본능적으로 세계 역사상 가장 경이적이고 중요한 최상의 거래를 성사시켰다고 큰소리칠 것이다.그 뒤 몇 달 사이 북한이 무엇이 됐든 합의 내용을 지키지 않는다는 증거가 발견될 경우 볼턴은 강력히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그날이 오게 되면 북한과의 전쟁 전망은 현실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2018.04.08 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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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한 ‘코피’ 전략

산업 일반

백악관은 북한의 미사일·핵을 표적으로 하는 제한된 선제공격 고려하지만 재앙적인 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커 지난 2월 9일 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에서 남·북한 선수단은 ‘한반도기’를 앞세우고 동시 입장했다. 북한은 평창 올림픽에 선수 22명, 임원 24명 등 46명의 선수단을 파견했다. 개막식 VIP 박스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 지도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동생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과 반갑게 악수를 나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은 그 곁에서 어색하게 앉아 북한 고위급 대표단을 애써 외면했다.당연한 일이다. 그 짧고 의례적인 광경은 워싱턴에서 진행되는 치열한 논쟁을 가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북한의 핵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도널드 트럼프 정부가 공언한 정책은 변함이 없다. 북한이 지금까지 만든 핵무기를 전부 폐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분석가들은 그 무기가 머지않아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다고 본다.북한의 비핵화라는 목표를 미국은 어떻게 이룰까? 또는 그런 일이 가능할까? 지금으로선 알 수 없다. 워싱턴에서 거론되는 한 가지 방안이 소위 말하는 ‘코피(bloody nose)’ 전략이다. 북한의 특정 미사일 기지나 핵무기 저장소를 표적으로 하는 ‘제한된’ 공격을 일컫는다. ‘트럼프 정부는 북핵을 묵인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메시지를 북한에 던지려는 의도다.‘코피’ 전략의 목표는 북한 모든 핵시설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전략을 재고하도록 압박하는 것이다. 이 방안은 김정은 위원장이 합리적인 사고를 한다는 점을 전제로 한다. 공격당했을 때 대대적으로 보복하다가는 미국과 전면전을 치를 수밖에 없으며 그럴 경우 정권이 무너진다는 두려움에서 북한이 쉽사리 강하게 반격하지 못할 것이라는 논리를 바탕으로 한다는 뜻이다.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는 지난해 이 방안을 하나의 가능성 있는 조치로 제시했지만 그 이래 폐기되지 않고 계속 남아 있다. 이 전략을 지지하는 논리는 핵무장한 북한을 용인하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용인할 경우 악몽 같은 핵무기 확산이 불 보듯 뻔하다. 일본과 한국이 핵무장 결단을 내릴 수 있고, 북한의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가 다른 불량 국가들로 흘러들어갈 수도 있다.트럼프 정부에선 그 누구도 핵무장한 북한의 위험을 과소평가하지 않는다. 그들은 전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 또는 ‘전략적 무시’ 정책을 맹비난했다(한 백악관 관리는 익명을 전제로 “오바마 정부의 그런 정책이 이처럼 엉망인 상황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관리 다수는 제한된 선제공격이 효과 있으리라고 보지 않는다.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과 조지프 던퍼드 합참의장,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모두 선제공격에 반대한다. 지난 1월 중순 북한과 관련한 동맹국 외무장관 회동에서 매티스 장관은 “현재 우리의 노력은 확고히 외교 영역에 있다”며 “우린 외교적인 해법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일본 외교관은 다른 나라의 외무장관들이 듣고 싶어 하던 언급이었다고 돌이켰다. “트럼프 정부엔 전쟁의 가능성이 실제로 있다는 상당히 일관된 저류가 흐르고 있고, 다른 나라들은 그런 상황을 심히 우려하기 때문이다.” 특히 트럼프 정부가 빅터 차 조지타운대학 교수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을 최근 들어 철회하면서 미국 동맹국들 사이의 불안이 고조됐다. 조지 W. 부시 백악관에서 NSC 아시아담당 국장을 지낸 그는 오랫동안 북한 문제를 다뤘다. 그는 오바마 정부 시절보다 더 단호한 대북 정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코피’ 전략은 지지하지 않는다.초조한 외부자들은 그의 주한 미국대사 내정 철회가 ‘코피’ 전략을 둘러싼 견해차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실제는 그보다 더 복잡한 이유가 있을지 모른다. 그의 가족 일원이 사업과 관련해 한국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어 이익충돌처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의 한 소식통은 “바로 그점이 그를 낙마시킨 ‘경고등’이었다”고 말했다. 차 교수는 논평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그런데도 백악관은 여전히 ‘코피’ 전략을 검토하면서 많은 내부자들을 당황케 한다. 특히 비판자들은 트럼프 정부가 ‘김정은이 제한적인 타격에 어떻게 대응할지 안다’고 생각하는데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고 미국 중앙정보국(CIA) 북한 분석가 출신으로 현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연구원인 슈 미 테리가 말했다. “우리가 반드시 정확히 아는 것도 아닌데 위험하게도 왜 그걸 테스트하려 드는지 모르겠다.”트럼프 정부 내부에서 더 강경한 ‘봉쇄와 억지’ 전략을 옹호하는 인사들은 백악관을 위해 여러 옵션을 준비 중이다. 지금보다 더 강도 높은 경제제재, 북한이 경화 수입을 위해 해외에 판매하는 물품을 운송하는 화물선을 대상으로 하는 좀 더 적극적인 차단, 한·미·일의 미사일 방어 시스템 강화 등이 포함된다.그러나 이런 전략은 현재의 남·북한 분위기로 볼 때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미국 정부는 ‘남·북한이 하나 된’ 평창 동계올림픽 후 한국 정부가 북한에 대해 더 엄격한 입장을 취하길 꺼릴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지난 2월 10일 예상한 대로 김여정 부부장은 북한 고위급 대표단과 함께 청와대를 예방한 자리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문 대통령을 이른 시일 안에 만날 용의가 있다. 편하신 시간에 북을 방문해줄 것을 요청한다”는 초청 의사를 구두로 전달했다. 트럼프 정부는 올림픽 개막식에서 보여준 좋은 분위기를 고려하면 대북 온건 노선을 견지하는 더불어민주당 소속인 문 대통령이 그 초청에 덥석 응하리라고 걱정했다.그러나 문 대통령은 “앞으로 여건을 만들어 성사시켜 나가자”며 절묘하게 넘겼다. 그러자 미국 정부도 안도했다. 하지만 그로써 마무리가 된 건 결코 아니다. 문 대통령은 조만간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하라는 국내의 정치적 압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미국은 불안해 하는 동맹국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그런 계획을 지지해야 할지 모른다. 어쩌면 북한과 직접 대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다면 김정은의 올림픽 전략은 성공하는 셈이다.-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2018.03.1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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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의 ‘미니 냉전’

산업 일반

핵 가진 북한을 미국이 어떻게 하면 봉쇄하고 억제할 수 있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북한 문제는 쉬 해결되지 않을 듯하다. 지난 9월 초 북한은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주장했으며 또 한 번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을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희소식은 미국과 아시아 우방들이 다행히 어리석은 대응 전략을 내놓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냉전시대를 경험했던 사람들에게는 귀에 익은 봉쇄와 억제 전략이다. 앞으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이 평소처럼 제 발등을 찍는 실수를 하지 않고 또는 중국의 방해를 받지 않고 이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가장 최근의 흐름을 살펴보자. 북한의 최근 미사일 실험 이후 남한과 일본은 미사일 방어체계를 배치하겠다고 밝혔다. 니키 헤일리 유엔 주재 미국 대사는 북한의 핵 확장을 억제하는 강력한 대북 제재안의 결의에 앞장섰다.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장관은 북한이 미국이나 우방을 공격한다면 “대대적인” 대응조치로 맞설 것이라고 단어를 신중히 선택해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에 대해 “모든 옵션”이 테이블에 올라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미국 국방부는 대통령이 검토하도록 여러 군사적 옵션을 보고했다. 그러나 민감한 사안이라는 이유로 익명을 요구한 미국 정부 소식통은 선제적 타격은 여전히 최후의 옵션이라고 말했다.많이 듣던 소리 아닌가? 미니 냉전이라고 부를 만하다. 북한은 옛 소련과 다르다. 제국주의적 야심은커녕 그만한 힘도 없다. 그러나 미국의 대북 전략이 궁극적으로 옛 소련을 와해시킨 것과 달라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제프리 베이더는 말한다. 오바마 정부의 국가안보회의(NSC)에서 아시아 정책을 담당했던 브루킹스 연구소 연구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냉전식 전략에는 공공연하고 실질적인 군사적 압박이 포함된다. 미국은 한국과 일본에 미사일방어 시스템을 제공했을 뿐 아니라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기자회견에서 밝혔듯이 “아름답고 새로운” 하드웨어를 현지에 더 많이 배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텔스 전투기와 핵 잠수함들이다. 중화기의 배치는 미국이 얼렁뚱땅 넘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북한에 보여주려는 취지다. 같은 의도에서 미국 고위 군사 당국자들은 아시아의 어떤 주요 우방이 위협을 받을 경우 온갖 반격 옵션이 모두 준비돼 있다고 아시아 주요 우방들을 안심시켰다.봉쇄전략은 또한 훨씬 더 대규모의 경제적 압력을 포함한다. 유엔안보리는 지난 11일 어느 때보다 강력한 대북 제재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켰다. 북한에 대한 유류 공급을 제한하고, 북한의 섬유제품 수출을 금지하고, 북한 해외 노동자 신규 허가를 금지하고, 외국 금융기관에 예치된 북한 자산을 동결하고, 공해상에서 의심스러운 북한 선박의 검색이 가능해진다.그러나 이 같은 봉쇄계획에는 적지 않게 구멍이 뚫려 있다.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원유 수출의 전면 금지가 무산됐다. 북한은 연간 600만 배럴에 가까운 석유를 수입하는데 거의 모두 중국에서 들여온다. 제재가 먹히려면 중국이 송유관 밸브를 잠가야 하는데 그 여파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지금도 식량과 일자리 부족으로 인해 북한을 탈출하는 난민의 증가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석유공급을 전면 중단할 경우 새로운 난민 물결이 밀어닥칠 수 있다.석유공급을 차단하면 또한 북한 내 정정 불안을 유발해 김정은 정권의 안정을 위협할 수 있다. 중국은 국경 불안정을 원치 않지만 한반도에서의 전쟁도 바라지 않는다. 베이더 연구원의 말마따나 “중국에겐 군사대결보다 제재가 더 나은 옵션”이다.미-북 대치국면이 냉전보다 더 복잡한 한 가지 이유가 바로 이 같은 중국의 역할이다. 또 하나의 중대한 차이점은 냉전시대엔 미국이 모스크바와 종종 대화를 했다는 점이다. 양 진영은 긴장 국면을 완화하고(예컨대 1961년 쿠바 미사일 위기), 각국의 핵무기 규모 같은 장기적인 전략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협상을 했다. 각자 상대국의 수도에 대사관을 뒀으며 대화 채널이 거의 항상 열려 있었다.평양과는 그렇지 않다. 미국과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양국간 공식 외교관계가 없었다. 일정 기간 외교활동을 한 적이 있었지만(가장 최근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 정부에서 실패로 끝난 ‘6자 회담’) 대부분 거의 대화가 없었다. 트럼프는 지난 9월 초 “대화는 답이 아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우방들이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원치 않는다. 그는 최근 한국 문재인 대통령의 ‘유화’ 정책을 비판해 미국 국가안보팀의 원성을 들었다. 문 대통령의 유화책은 일정 부분 대선 유세 중 대북 대화 확대를 촉구한 데서 나온 것이다. 트럼프는 북한과 위기가 고조되는 동안 우방을 비판했을 뿐 아니라 한미 양국간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하겠다고 위협했다. 민감한 사안이라며 익명을 요구한 한 트럼프 보좌관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 정부의 몇몇 당국자는 결국에는 북한과 얼굴을 마주하는 직접 대화가 효과적일지 모른다고 사석에서 말한다. 그리고 트럼프도 가끔씩 김정은과 일대일 대화에 열려 있다고 말해 왔다.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트럼프 정부 일각에선 외교 채널이 가동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베이더 연구원은 미국 정부가 중국을 통해서든(베이징 정부를 개입시키는 취지에서) 또는 직접적이든 딜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완전 비핵화의 대가로 미국과 우방들이 북한을 외교적으로 정식 승인하고 모든 제재를 해제하고 북한 경제에 직접 투자하고 평화조약을 체결해 한국전쟁의 정전협정을 마침내 대체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북한이 그런 제의에 동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김정은은 핵프로그램을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상의 보험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 대치국면을 끝내기 위해 성의 있고 대담한 노력을 보이면 중국과 러시아에 포괄적인 봉쇄전략에 동참하도록(그것을 위반하지 않고) 압력을 넣을 수 있다. 그에 따라 베이더 연구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 정부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서고” 반대로 유엔 안보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이 거북해지면서 대북 제재의 이행을 방해하기가 더 힘들어지게 된다.백악관이 그런 전략을 추구할 가능성이 전혀 없지는 않다. 트럼프는 대통령 취임 후 8개월 동안 믿기 어려울 정도로 예측 불가능한 행보를 보였다. 그것은 누구보다도 대통령이 민주당 측과 연방 부채 상한에 합의한 데 놀란 공화당 의원들이 잘 안다.트럼프의 한 보좌관 말마따나 “‘모든 옵션’은 군사행동뿐 아니라 외교적 수단도 테이블에 올라 있다는 의미다.”-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2017.09.25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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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막말 폭탄’에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

산업 일반

지성과 이성 겸비한 장성 출신 3인방이 트럼프 곁을 든든하게 지키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제임스 매티스가 대통령 당선인을 대신해 뉴저지 주 베드민스터를 방문했을 때 그의 측근들은 충격을 받았다. 해병대 퇴역장성인 매티스가 신정부에 국방장관으로 들어갈까 고려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친구인 피터 로빈슨이 매티스에게 물었다. “이봐, 도널드 트럼프라고?”해병대 전역 후 3년 동안 매티스는 스탠퍼드대학 후버 연구소에 틀어박혀 독서삼매경에 빠져 지냈다. 운동화와 청바지 차림에 배낭을 매고 캠퍼스를 돌아다녔다. 해병대 출신 퇴역 대령 게리 앤더슨에게 “지난 수십 년 래 미군이 낳은 가장 뛰어난 전투 지도자”로 불린 매티스는 스탠퍼드대학 동료 로빈슨의 말마따나 “나이든 대학원생”처럼 보였다. 그는 그런 생활에 변화를 줄 생각은 거의 없었다. 그러나 트럼프의 전화 한 통으로 모든 게 바뀌었다.다른 두 명의 저명한 퇴역장성도 비슷한 전화를 받았으며 그들도 제의를 수락했다. H. R. 맥매스터 국가안보 보좌관과 당초 국토안보부 장관으로 신정부에 합류했던 존 켈리 신임 비서실장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들을 “나의 장군들”이라고 부른다. 당사자들은 그런 호칭을 다소 거북하게 받아들인다고 동료들은 말한다.대통령감이 아니라는 지적을 많이 받는 예측 불가능한 지도자가 이끄는 혼란스런 정부가 들어선 지 6개월. 요즘엔 당초 친구들 다수가 제기했던 회의론이 가라앉으면서 세 사람 모두의 친구인 엘리엇 코언 존스홉킨스대학 역사학 교수 표현처럼 “안도감”이 확산됐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을 어른들이 맡았다. 이 정부에 정말로 필요한 사람들이다.”미국의 주요 우방들, 그리고 심지어 일부 적성국에까지 그런 느낌이 널리 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요즘 북한 핵위기가 고조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호전적인 ‘말 폭탄’에 우방과 적국 모두 기겁하는 상황이다. 이 기사에 등장하는 다른 많은 사람처럼 익명으로 뉴스위크 인터뷰에 응한 중국 외교관은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했을 때 중국 정부는 다른 많은 나라처럼 그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막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티스·맥매스터·켈리의 임명으로 “다소 마음이 놓였다.” 모두 “지적이고 합리적이라고 평가 받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고 그 외교관은 말했다. 북핵 위기에 관해 미국 정부와 거의 끊임없이 소통하는 미국 주요 우방국의 대사는 더 직설적이다. “그들이 없으면 어떤 상황이 전개될지 상상하기 어렵다.”미국 군대의 장교는 모두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다. 매티스·맥매스터·켈리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든 그들의 서비스가 이젠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며 제각기 군말 없이 물러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백악관에선 대통령과 ‘그의’ 장성들 관계가 더 미묘할 수 있다. 대통령은 정치나 국가안보에 아무런 경험도 없다. 거기에 세 명의 장성에 수반되는 폭넓은 존경심뿐 아니라 진중하고 지적이라는 평판까지 더해진다. 이는 협상의 달인 트럼프 대통령이 너무나도 잘 이해하는 것을 그들이 보유한다는 의미다. 지렛대, 대통령을 움직이는 영향력이다.정권 초기 켈리 국토안보부 장관은 브리핑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백악관이 공표한 ‘입금금지 조치’의 실패로부터 여태껏 어떤 중대한 법안도 통과시키지 못한 데 이르기까지 이번 정부의 무능은 놀라울 정도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장성들 중 하나라도 물러나게 될 경우 그런 일들은 대수롭지 않게 보일 것”이라고 세 사람 모두를 잘 아는 전 오바마 정부 각료가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되면 현 정부가 치명상을 입을 것”이라며 “이들 중 하나라도 개인 사정(예를 들면 질병 등)이 아닌 다른 사유로 물러날 경우 정말로 악재가 된다”고 말했다. 그것은 “미치광이들이 실권을 잡게 된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라고 그는 덧붙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수석 전략가인 스티브 배넌과 그의 충성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지금은 영화 ‘세븐 데이스 인 메이(Seven Days in May)’의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강경파 장성들이 평화를 추구하는 대통령을 몰아내려 쿠데타 음모를 꾸미는 유명한 냉전 시대 영화다). 대신 워싱턴의 기성 정계와 세계 각지의 미국 우방들은 코언 교수의 조크대로 요즘엔 영화 ‘어 퓨 굿 맨’에 나오는 잭 니컬슨의 대사를 사실상 토씨만 바꿔 되풀이한다. “그쪽 장벽에 그 친구들을 원한다. 그쪽 장벽에 그 친구들이 필요하다.”특히 미국 정부가 북한에서 재앙을 막으려 애쓰는 지금 상황에 딱 들어맞는 말이다. 북한 정권은 대륙간탄도미사일에 탑재할 수 있는 핵무기 개발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한다. 북한 정부가 괌 주변으로 미사일을 쏘겠다고 엄포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도 똑같은 ‘말 폭탄’으로 응수하는 사이 한 워싱턴 주재 동아시아 외교관은 매티스와 맥매스터뿐 아니라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의 “상황을 진정시키는 존재감”에 찬사를 보낸다. “그들은 당황하지 않으며 그들의 발언은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정확하고 사실적이다.”지난 8월 초 매티스와 맥매스터는 보좌관들과 함께 대북 군사적 대응 방안을 체계적으로 검토했다. 예컨대 뉴스위크 취재에 따르면 북한 미사일을 무력화할 수 있는 사이버 공격 가능성도 그중 하나였다. 당시 여러 소식통이 선제공격의 위험성을 트럼프 대통령에게 인식시키는 중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한국전쟁의 잠재적 희생자에 대한 미국 국방부의 과거 추산(100만 명 사망)이 여전히 유효한지는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얼마나 많은 희생자가 생길지 예측할 수 없다”고 말했다. “전쟁은 예측 불가능하다. 단지 위험을 평가해 억제 방안을 모색하는 방법밖에 없다.”트럼프 대통령도 그런 위험을 이해하는 듯하다고 장성들은 믿는다. 미국 국가안보회의(NSC)의 한 보좌관 말마따나 그의 발언이 가끔씩 “불 같지만 이 문제에 관한 의사결정이 충동적이지는 않을 듯하다. 대단히 심사숙고할 것이다.” ━ 부시의 전쟁 오바마의 골칫거리 매티스·맥매스터·켈리가 등장하기 오래 전부터 1950년대 조지 C. 마샬부터 2000년대 초 콜린 파월에 이르기까지 퇴역 장성들은 오랫동안 백악관에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그러나 이처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장성 출신 3인방이 대통령 귀를 잡고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모두 저마다 전사와 학자로서 눈부신 명성을 누린다. 코언 교수는 2004년 이라크에 나가 있던 매티스를 방문할 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중 특히 평단에서 호평 받는 책 한 권”을 가져갔다고 한다. 장군은 선물을 받은 뒤 “15분 동안 그 책을 라마디 현지에서 갖고 있던 것을 포함해 자신이 소유한 다른 2종과 비교했다.”매티스 국방장관은 미국 국방대학(National War College)에서 국제안보학 석사학위를 취득했지만 친구인 코언 교수의 말처럼 “한순간도 공부를 멈춘 적이 없었다.” 약 7000권에 달하는 개인 소장도서를 상당수 기부하고 자신의 부하 해병대원들이 배치되기 전 추천도서 목록을 작성해 건네주기도 했다.맥매스터 보좌관은 ‘직무유기(Dereliction of Duty)’의 저자다. 린든 존슨 정부 시절 베트남에서 미국의 군사적 의사결정에 얼마나 큰 결함이 있었는지 꼼꼼하게 조사해 신랄하게 비판한 책이다. 그의 노스캐롤라이나대학 박사논문이 이 책의 출처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대통령이 들으려 하든 않든 항상 최선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책의 핵심적 교훈이라며 그것이 “거의 매일” 국가안보보좌관으로서 자기 임무의 근간을 이룬다고 말한다.켈리 비서실장은 조지타운대학에서 국가안보학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중령 시절 워싱턴 D.C.의 국방대학에서 2년간 수학했다. 미군에서 선택 받은 엘리트 요원만이 거치는 코스다. 트럼프 정부 장군들의 유대감과 그들이 가진 세계관은 이라크전 경험의 공유에서 비롯된다. 켈리는 당시 매티스 장군 아래 부사단장으로 복무하면서 상관이던 매티스 장군이 얼마나 냉철하고 단호할 수 있는지를 목격했다. 초기 바그다드 진격작전 중 켈리의 휘하 연대장이 나시리야를 신속히 점령하지 못해 애먹고 있었다. 그는 그 지휘관에게 매티스 장군과의 면담을 권했다. 매티스 장군은 그가 망설이는 이유를 들은 뒤(여러 가지 요인 중 지쳤다는 것도 있었다) 즉시 그를 해임했다.나시리야는 함락됐고 곧 바그다드까지 점령했다. 매티스 장군은 그 뒤 자신의 전차와 포대를 본부로 보낸 뒤 현지의 이라크 군사 지도자들을 방문했다. 그는 그들에게 “나는 싸우러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대포를 가져오지 않았다. 그러나 내 눈에 눈물을 흘리며 간청하건대 나를 엿 먹이면 모두 죽여 버릴 것이다.”매티스 국방장관과 켈리 비서실장 모두 노동자 계급 가정 출신으로 베트남전 중 해병대에 입대했다. 젊은 시절 워싱턴 주 풀먼에서 성장한 매티스 국방장관은 행실을 바로잡기까지 시간이 좀 걸렸으며 해병대에서 목표에 집중하는 법을 배웠다고 한다. 그는 한창 군생활을 하던 중 부모님 댁을 방문해 거실에서 신문을 읽을 때의 일을 돌이켰다. 곁에 앉아 있던 모친이 웃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뭐가 그렇게 우스워요?” 매티스 국방장관이 물었다. “아냐, 아들아. 네가 철창 신세를 지지 않게 돼 너무 기뻐서 그렇단다.” 맥매스터 보좌관은 일찍이 군경력에 초점을 맞췄다. 고등학교는 명문 ‘밸리 포지 밀리터리아카데미’를 나온 뒤 육군 사관학교에 진학했다. 1991년 제1차 걸프전 중부대 지휘관으로 전차 9대만 이끌고 이라크 탱크 28대를 23분 만에 격파하는 사이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았다. 73 이스팅 전투로 불리는 이 싸움은 현재 미국 육군사관학교 교재에도 실렸다. 15년 뒤 맥매스터 보좌관은 이라크 탈아파르 반군 진압작전에서 상당한 성과를 올렸다. 이 작전은 그 전쟁 막판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장군이 이끈 ‘병력증강’의 모델이 됐다.켈리 비서실장은 미국 국경 남쪽의 전체 미군 병력을 이끄는 남부사령부 사령관으로 해병대 경력의 정점을 찍었다. 그 임무를 맡는 동안불법 이민자들로 인해 제기되는 안보 위험에 민감해졌다(이런 부분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어필한 듯하다). 그리고 국경 개방과 불법체류자 보호도시(sanctuary cities)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멸시를 숨기지 않는다.그의 경력은 또 다른 면에서 눈길을 끈다. 이라크 또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전투 중 아들을 잃은 미군 내 최고위 인사라는 사실이다. 당시 29세의 해병대 장교였던 그의 아들 로버트 켈리는 2010년 아프가니스탄 상인(Sangin)에서 지뢰를 밟아 즉사했다. 2014년 아버지 켈리는 캘리포니아 주에서 열린 금성장(전사자 상징) 가족 모임의 연사로 나섰다. 그는 이라크에서 트럭 폭탄 공격으로부터 경찰서를 지키던 중 희생된 해병대원 2명의 영웅적 행동에 관해 연설했다. 해병대 정신을 찬양하는 그의 연설은 깊은 감동을 안겨줬으며 연설자도 청중과 마찬가지로 금성장 부모였다는 점에서 울림이 더 컸다.3명의 장군 중 매티스 국방장관이 최고 선임자다. 페트레이어스 장군의 뒤를 이어 중동지역 미군을 총괄하는 중부군 사령관으로 재임 중 2013년 물러났다. 그 조치는 군대 전체에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그것을 오바마 정부의 불신임 투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매티스 국방 장관은 위험한 핵협상 문제에서 백악관이 이란에 굴복했다고 여겨 갈수록 불만이 쌓여갔다. 해병대 전역 후 오바마 정부 외교정책을 조용히 비판하던 그의 목소리가 점차 높아졌다. 2014년 워싱턴 D.C.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에서 잔인할 정도로 솔직하게 오바마 대통령의 외교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시리아·이라크·리비아 사태 악화의 여파로 부상하기 시작한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문제를 두고 “부시 대통령과 그의 외교정책 보좌관들은 무슨 일에든 책임을 회피하는 놀라운 능력을 발휘한다”고 꼬집었다.트럼프 대통령이 해외에서 “골칫거리”를 물려받았다고 말할 때마다 오바마 옹호자들은 발끈하지만 그런 주장을 한 건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은 아니었다. 매티스 국방장관도 오래 전에 그런 말을 했다. ━ ‘미친 짓은 하지 않는다’ 지금은 매티스 국방장관이 그 골칫거리의 대책을 마련하는 핵심인물이라는 데 많은 사람이 놀란다. 그는 ‘트럼프만은 안 된다’는 진영에는 속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강세가 뚜렷해진 2016년 공화당 예비선거에 참여하라는 보수파 전략가 빌 크리스톨의 간청은 예의상 검토했다. 매티스 국방장관은 난색을 표했지만 한 측근에 따르면 매티스가 베드민스터에서 대통령 당선인을 만났을 때 “어떤 선거공약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자 트럼프는 “문제 없다”고 답했다. “그런 문제는 신경 쓰지 말라”며 그의 우려를 일축했다.트럼프 대통령은 매티스가 국방장관에 오른 뒤 갈수록 더 많은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는 취임 초반 트럼프 정부의 중동정책 리셋(재설정)을 이끌었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이 자국 국민에게 또다시 화학무기를 살포한 뒤 시리아 비행장 폭격을 지지했다. 그 뒤 맥매스터 보좌관과 함께 요르단·이집트·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만안 지역 아랍국가 등 중동의 미국 전통 우방들과 관계 강화에 힘썼다. 둘 다 시리아 내전과 이란 핵협상에 대한 오바마의 정책방향에 비판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한 아프가니스탄 주둔 병력 수준을 일일이 관리하던 오바마 정부와는 반대로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결정을 일임한다. 그와 맥매스터 보좌관은 요즘 북한에 신경 쓰지 않을 때는 미국의 전반적인 대 아프가니스탄 전략의 검토에 깊숙이 개입한다.매티스는 국방장관으로서 대체로 백악관과 충돌을 피해 왔다. 그래도 충동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대통령에게 옆구리를 받치기도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우디의 대 카타르 경제봉쇄를 지지한다는 트윗을 띄웠다. 미국이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는 단체에 카타르가 자금을 댄다는 주장 때문이었다. 그러자 매티스 국방장관은 카타르의 알우데이드 공군기지가 중동 내 미국의 작전에 필수불가결한데 사우디의 경제봉쇄 조치로 크게 지장을 받게 된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조용히 귀띔했다. 카타르 고립 정책에 대한 미국 정부의 지지는 그것으로 끝났다.앞으로는 미군에 트랜스젠더 지원자들을 받지 않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을 때 매티스 국방장관도 놀랐다. 그는 해병대 장성 시절 그 문제에 관한 오바마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 장성들’과 상의했다고 주장했지만 매티스 국방장관은 그런 적이 없다고 분명히 말했다. 국방부는 대통령의 트윗을 따르기보다는 군통수권자의 공식 지시를 기다릴 것이라고 대변인이 밝혔다(대통령이 고집한다면 매티스 국방장관이 이 문제에 관해 지시를 따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반대할지 모른다고 보좌관들은 말한다).맥매스터 보좌관은 매티스 국방장관처럼 백악관 내 권력다툼을 피할 만큼 운이 따르지 않았다. 8월 초 배넌 수석전략가의 월권 시도에 맞서야 했다. 배넌 고문은 대통령의 캠페인 공약을 이행하도록 하려 한다고 지지자들은 말한다. 그는 경제 문제에선 보호주의를 표방한다(맥매스터 보좌관은 이 같은 입장이 주요 우방들과 마찰을 유발한다고 본다). 외교정책에선 아프가니스탄 같은 지역에 대한 미국의 개입에 극도로 회의적인 국가주의자다(맥매스터·매티스·켈리 모두 아프가니스탄을 포기하면 9·11테러 공격을 유발했던 탈레반·알카에다 간 동맹이 재현될 위험이 있다고 본다).브라이트바트 뉴스를 비롯해 ‘대안우파(alt-right, 미국 주류 보수주의의 대안으로 제시된 우익의 한 부류로 온라인으로 백인우월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전파하는 세력)’ 백인 국가주의 운동에 영합하는 사이트의 배넌 추종자들은 맥매스터 보좌관이 트럼프에게 대선 승리를 가져다 준 공약들을 저지한다고 비난하기 시작했다. 혼란스럽고 끝없는 다른 나라의 전쟁을 피하고 통상 파트너들에게 강경하게 대처하고, 이란 협상에서 발을 빼는 정책들이다. 이란 문제에서 맥매스터 보좌관에 대한 공격은 특히 진실을 호도한다. 배넌 고문 진영은 맥매스터 보좌관이 이란 협상의 유지를 선호한다며 친이란파의 증거라고 주장한다.그러나 맥매스터 보좌관은 “이란과 맺은 핵협상은 여러 모로 보나 사상 최악이었다”는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그리고 중동 지역 내 이란의 영향력 행사는 “피해를 유발하고 안정을 해친다”는 점을 강조한다. 미국 정부는 3개월 뒤 이란이 협정을 잘 준수하는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 유럽의 주요 우방들은 미국의 협정 파기를 원치 않으며 트럼프 대통령이 그럴 경우 유럽 우방들 간에 외교상 많은 혼선이 빚어진다는 사실을 맥매스터 보좌관은 알고 있다. 배넌 고문은 “그런 문제를 모르는 듯하다”고 맥매스터 보좌관의 측근은 말했다.이런 사소한 문제는 오래 가지 않을 듯하다. 켈리의 비서실장 취임과 북핵 프로그램의 고조되는 위기로 장성들의 권위 기반이 확고해지고 있다. 그런 변화는 지난 7월 말 확연히 드러났다. 앤서니 스카라무치 신임 공보국장이 기자 인터뷰에서 육두문자를 섞어가며 막말을 퍼부은 뒤 켈리 비서실장이 그의 해임을 요구했다. “켈리는 그를 자질 부족이며 트럼프와 대통령직에 망신을 준 인물로 간주했다”고 백악관의 소식통은 전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주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이런 구태는 끝내야 한다. 내 방식대로 하지 못하면 역할을 맡지 않겠다.” 트럼프 대통령이 받아들였고 과거 대통령의 뉴욕시 재계 친구였던 스카라무치는 퇴출됐다.켈리 비서실장은 또한 맥매스터 보좌관과 매티스 국방장관에게 인사권을 줘야 한다고 대통령에게 말했다. 다음날 맥매스터 보좌관은 배넌 고문 충성파 직원 4명을 솎아낼 수 있었다. 지금껏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를 받던 사람들이었다. 그중 NSC 선임 정보국장이던 에즈라 코언-워트닉(31)에게는 다른 정보기관 동료들도 거의 노골적으로 경멸을 드러냈다. 그의 경험미숙이 한 가지 원인이었다. 한 정부 관계자는 “존 켈리가 비서실장에 취임하는 날 배넌은 암흑기를, 맥매스터 보좌관은 호시절을 만났다”고 말했다.그런 점을 강조하려는 듯 트럼프 대통령은 배넌 고문과 대안우파의 공격을 중단시키려는 취지의 성명을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맥매스터 장군과 나는 잘 협력한다”며 “그가 나라를 위해 계속적으로 노력하는 데 감사한다”고 말했다.트럼프 정부에서 세 장성들에게 호시절이 찾아 왔지만 언제나 그런 건 아니다. 미국에 “큰 대가를 치르게 해주겠다”며 북한이 지난 8월 5일 발동된 유엔 제재조치를 비난하면서 더 많은 핵·미사일 시험을 실시하겠다고 위협한 뒤 트럼프 대통령이 폭발했다. 8월 8일 북한이 계속 미국을 위협할 경우 “불길과 분노”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수위 높은 발언에 당시 베드민스터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있던 맥매스터·매티스·켈리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대경실색했다. 백악관 측근들에 따르면 아무도 그런 발언을 예상하지 못했다. 맥매스터 보좌관과 매티스 국방장관은 틸러슨 국무장관과 함께 불안해 하는 우방들을 달래려 애썼다. 전쟁이 임박하지 않았으며 북한은 아니라고 해도 미국은 아직 외교에 몰두한다고 강조했다.맥매스터 보좌관의 측근은 “트럼프 대통령이 때때로 감정을 분출하리라는 건 이젠 익히 알려졌다”고 말했다. “희소식은 트럼프 대통령이 거의 언제나 장군들의 말에 귀 기울인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정신 나간 소리를 할지 모르지만 미친 짓은 하지 않으리라는 의미다.”그러나 가장 필요한 순간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그의’ 장군들 말을 항상 경청하리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소식통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낸들 어찌 알겠소.”-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2017.08.2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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