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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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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폐배터리’ 각축전...韓이 직면한 과제는

자동차

전기차의 보급이 빠르게 확대되면서 폐배터리의 발생량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전기차 시장은 매년 두 자릿수의 성장률을 기록 중이다.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전기차에 사용되는 배터리의 수명 종료 시점도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경우 2022년 기준으로 약 1만4000개의 폐배터리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는 2030년까지 그 양이 10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자원의 효율적 활용과 환경 보호는 물론,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 우리나라가 전기차 폐배터리를 적극적으로 재활용해야만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세계의 폐배터리 재활용 현황중국은 폐배터리 재활용 분야에서 세계적인 선도국으로 자리 잡고 있다. 중국은 2021년부터 폐배터리 재활용 의무화를 법제화했다. 이에 따라 배터리 제조업체와 자동차 제조업체가 공동으로 재활용 시스템을 구축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아울러 CATL과 같은 대형 배터리 제조업체는 직접 배터리 재활용 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코발트·리튬·니켈 등의 고가 금속을 회수하고 있다. 이 같은 기술력과 제도적 지원은 중국이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유지하게 하는 핵심 요인이다.유럽연합(EU) 또한 폐배터리 재활용에 대한 강력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유럽의 배터리 지침(Battery Directive)은 배터리의 수집·처리·재활용에 대한 구체적인 목표치를 설정하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배터리 규정을 통해 재활용 비율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유럽은 순환경제를 실현하기 위해 재활용 원료 사용을 의무화하고, 배터리의 설계 단계부터 재활용 가능성을 고려하도록 하고 있다. 독일·프랑스·스웨덴 등은 재활용 인프라와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하며 이를 실현하고 있다.미국은 주정부와 연방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재활용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특히 캘리포니아주에서는 폐배터리 수집 및 재활용 프로그램을 의무화했으며, 연방 차원에서는 배터리 혁신법을 통해 재활용 기술 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에너지부(DOE)는 폐배터리의 고효율 자원 회수 기술을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다. 한국이 마주한 과제는한국의 폐배터리 관련 제도와 기술은 글로벌 선도국에 비해 여전히 뒤처져 있다. 국내에서는 폐배터리 재활용이 주로 민간 기업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제도나 지원은 부족한 상황이다. 기존의 전자폐기물 처리법(EPR 제도)을 일부 적용하고 있으나, 전기차 폐배터리만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적인 법규나 정책은 미비하다.기술적으로는 일부 대기업과 연구기관이 리튬·니켈 등의 금속 회수 기술을 개발하고 있으나, 상용화 수준에서는 아직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원료인 블랙매스 확보에서 가야 할 길이 멀다. 국내 폐배터리 설비의 처리량은 27년까지 16만톤의 처리량을 가질 것으로 예상하나, 현재 발생량은 3000톤 정도로 이보다 턱없이 부족해 처리시설이 개점 휴업 상태이다. 이로 인해 각 처리업체들은 시설의 가동률을 높이기 위해 해외에서 발생하는 폐배터리 물량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최근 유럽연합에서 사용 후 배터리를 폐기물로 규정하여 바젤협약에(Basel Convention) 따라 국가 간 이동이 더욱 제한될 것으로 예상되므로, 우리나라 업체들의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고려해야 한다. 이는 단순히 국내 시장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이러한 뒤처진 상황에서 우리나라는 미래의 기술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폐배터리 회수를 위한 정부차원의 제도를 정비해야 하며, 폐배터리 사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전처리 기술을 자동화하고 고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밖에도 후처리 기술의 상당 부분을 중국이나 다른 국가로부터 수입해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친환경적이고 독자적인 후처리 기술 개발에 적극 투자해야 한다. 특히, 현재 화재등으로 인해 주목받는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경우 경제적인 이유로 재활용을 하지 않고 있어 이에 대한 기술 개발에도 박차를 가해야 한다. 이는 기술적 자립뿐만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 확보에도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전기차 폐배터리는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라,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다. 이미 많은 나라에서 폐배터리의 가치를 인정하여 해외 반출을 저지하려 하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배터리 강국으로 남기 위해서는 배터리의 제작과 폐배터리의 수거, 폐배터리의 재사용과 재활용이 하나의 순환고리로서 운영돼야 한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규제와 관리 제도를 마련하고, 정부와 민간의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전기차 폐배터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은 단지 경제적 이익을 넘어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필수적인 과제이다.

2025.01.17 09:00

3분 소요
건축물 에너지효율등급제 폐지…제로에너지 인증제로 통합 간소화

건설

올해부터 건축물 에너지 성능을 평가하는 ‘건축물 에너지 효율 등급제’가 ‘제로에너지건축물(ZEB) 인증제’로 통합된다. 이로써 기존에 건축물 에너지 효율 ‘1++’ 등급 이상을 취득한 후 다시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을 신청해야 하는 절차가 간소화된다. 또한 노후 공공건축물을 대상으로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한 ‘그린리모델링’이 단계적으로 의무화된한다.국토교통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제3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2025∼2029)’을 확정·고시했다. 녹색건축물 기본계획은 녹색건축물 조성을 촉진하기 위해 5년마다 수립하는 법정 계획이다. 3차 계획에 따라 제로에너지건축물 인증 제도가 간소화되고, 인증에 걸리는 기간은 80일에서 60일로 단축된다.공공건축물 신축 때 취득해야 하는 제로에너지건축물 최저 인증 등급은 5등급에서 4등급으로 높아진다. 공공이 건물 부문 탄소중립을 선도하기 위해서다. 민간 건축물의 경우 올해 6월부터 30세대 이상 공동주택, 연면적 1000㎡ 이상 건축물은 제로에너지건축물 5등급 이상을 받아야 한다.노후 건축물의 그린리모델링 의무화도 추진한다. 이를 위해서는 녹색건축물조성지원법 개정이 필요하다. 연면적 1000㎡ 이상 민간 신축 건물의 에너지 절약 설계 기준은 강화한다. 또한 지자체의 녹색건축 조성 계획 수립 시점은 ‘국가기본계획 수립 이후 2년 이내’로 법제화할 계획이다.장우철 국토교통부 건축정책관은 “제3차 녹색건축물 기본계획은 건물 부문 탄소중립 이행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이라며 “올해부터 시행된 제로에너지건축물 통합 인증 제도를 시작으로 향후 5년간 기본계획을 차질 없이 이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2025.01.01 12:46

2분 소요
'35조 추경' 제안에 단호한 추경호...

정책이슈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3일 "정부는 현재 추가경정예산(추경)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다.추 부총리는 이날 국회 경제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국민의힘 이헌승 의원의 관련 질의에 이렇게 답했다.추 부총리는 야당의 35조원 규모 추경 제안에 대해 "처음 추경 이야기가 나올 때는 세수 부족과 관련해 감액 추경이나 지출을 줄이는 추경이 필요한 거 아니냐는 것으로 이해했다"며 "세수가 부족하다고 여야 의원이 공히 걱정하면서 35조원을 더 쓰겠다고 하면 나라 살림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냐. 냉철하게 다시 한번 문제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지난 12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고금리 피해 회복을 지원하기 위한 약 12조원, 고물가·에너지 요금 부담 경감을 위한 약 11조원, 주거 안정을 위한 약 7조원 등을 비롯해서 미래성장과 경기회복의 마중물 역할을 할 재생에너지, 디지털, SOC(사회간접자본) 인프라 투자, 전세 사기 피해자 지원까지 합쳐서 약 35조원 정도의 추경 편성이 시급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날 대정부질문에서 35조원 추경 관련 질의가 나왔지만 추 부총리는 여력이 없다고 못을 박은 셈이다.그는 재정준칙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에는 "재정준칙은 한 나라의 살림이다. 우리나라는 저출산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고 앞으로 돈을 써야 할 데는 많은데 세금을 낼 그런 계층은 점점 적어진다"며 "앞으로 엄청난 국가 재정 부담, 국가부채가 늘어나는 이런 구조를 그냥 두면 곧 국제신용기구 등에서도 우리나라에 경고등을 보낼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에 엄청난 빚 부담을 넘겨주게 된다"고 경고했다.그러면서 "재정준칙의 법제화는 윤석열 정부에서 처음 시작하는 게 아니라 문재인 정부에서도 정부의 공식 법안으로 발의했다"며 "여야 모두 재정준칙의 법제화와 관련된 법안을 제안해놓고 있으며 현재 국회 상임위에서 열심히 논의를 하는 만큼 조금 더 속도를 낼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말씀드릴 예정"이라고 말했다.민간단체에 대한 국고보조금 문제와 관련해서는 “국고보조금은 국민의 혈세다. 보조금을 줄 때도, 지급된 후에도 법규에 맞게 제대로 집행됐는지 엄정하게 검증하려고 한다”며 “그러한 검증을 강화하는 내용의 시행령을 오늘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고 설명했다.정부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보조금 관리에 관한 법률 시행령 일부 개정령안을 의결했다. 해당 개정안은 민간보조사업 정산보고서 외부 검증 대상을 보조금 총액 3억원 이상에서 1억원 이상으로 강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23.06.13 21:49

2분 소요
함준호 “실물경기 둔화, 금융권 버블 붕괴…고통스러운 부채축소 지속돼야”[이코노 인터뷰]

은행

“조만간 취약가계나 자영업자, 한계기업의 잠재부실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잠재적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비은행 금융부문에 대한 적기 시정조치 및 정리체계를 면밀히 마련해야 합니다.” 함준호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전 금통위원)는 연세대 연구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일부 비은행부문과 CP,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경색 위험이 여전히 잠재해 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통화정책 전환과 관련해선 “물가가 목표치인 2%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을 줄 만큼 아직 안정적이지 않다”며 “미국 금리의 향배도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3차례 연속 기준금리 동결에도 불구하고) 금리인상 사이클이 종료됐다고 단언하기는 이르다”고 강조했다.함 교수는 캘리포니아대, KDI연구위원을 거쳐 2014년부터 4년간 금통위원을 역임하는 등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내 화폐금융분야의 석학이다. 33대 한국금융학회장으로 내정, 오는 7월 임기를 시작한다. 한미 통화정책의 전환, 구조적 전환기 잠재부실처리에 대해 함 교수의 진단과 처방을 들었다. 연내 급격한 통화정책 전환 어려울 듯 Q. 한국은행이 3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금리인상 사이클이 종료된 게 아니냐는 기대감이 형성되고 있습니다. A. 금리인상이 종료됐거나 금리인하로 전환될 것이라는 전망은 시기상조로 보입니다. 물론 미국보다는 한국이 조기에 금리인상을 중단할 가능성이 높지만 예단하기는 어려워요. 물가가 미국보다 낮은 수준이긴 하지만 통화정책 목표치인 2%까지 내려갈 것이라는 확신을 줄 만큼 안정적이지는 않습니다. 근원물가가 견고하게 2%수준에 이르는지 좀 더 확인하면서 통화정책을 운용할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실물경기가 어렵다고 해도 미국의 금리향배가 아직 불확실한 상황이기 때문에 통화정책을 섣불리 전환하기엔 부담이 큽니다. Q. 미국은 중소은행들의 연쇄파산이 통화긴축의 효과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데요. A. 실리콘밸리뱅크, 시그니처뱅크 파산에 이어 퍼스트리퍼블릭이 JP모건에 인수되는 등 중소은행의 위기가 지속되고 있어요. 역설적으로 연준 입장에선 이런 중소은행 위기가 통화정책을 운용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시스템위기 없이 실물경제 둔화를 통해 인플레이션 압력을 낮추고 있기 때문이지요. 중소은행 위기로 금융여건(Financial conditions)이 더욱 긴축적으로 전환되면 인플레이션은 좀 더 빨리 완화될 수 있어요. 실물경기도 제조업 중심으로 둔화하면서 은행 위기와 연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요. 최근 단기금리 하락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장단기금리차가 여전히 -0.5%의 역전폭을 지속하고 있는데 과거 경험으로 볼때 조만간 실물경기 침체와 주식시장 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Q. 그런 면에서 미국 연준도 통화정책의 전환(Pivot)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요. A. 중소은행의 연쇄 파산이 긴축효과로 나타나고 실물경기도 둔화 조짐을 보이지만 미국도 당장에 완화기조로 전환하기는 어려울 거예요. 금리 수준을 중립이상으로 계속 유지해야 인플레이션 추세를 확실히 하향기조로 바꿀 수 있는데 현 금리수준이 얼마나 긴축적인지 불확실합니다. 다양한 물가 지표를 보고 통화긴축이 실제 물가에 반영되는지 확인하면서 누가 봐도 기조적 인플레이션이 목표치인 2%에 도달하고 있다고 보일 때 통화정책을 전환할 거예요. 그래서 다양한 인플레이션 지표가 앞으로 어떻게 나오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최소한 더 큰 은행 위기나 심각한 경기침체가 오지 않는 한 연내 긴축에서 완화로 급격히 선회하기는 힘들 거예요. 더욱이 글로벌화의 퇴조와 공급망 재편, 저탄소경제 이행 등으로 물가압력은 계속될 것으로 보여 팬데믹 이전의 초저금리 수준으로 쉽게 돌아갈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Q. 미국이 금리인하 기조로 전환하면 우리나라도 완화적인 통화정책을 쓸 여지가 생깁니다. 가계부채 PF부실 등 잠재위험 요인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요. A. 미국의 정책금리 인상이 마무리되고 조기에 인하된다면 국내 통화정책 운용에는 도움이 될 거예요. 다만 경기침체가 심하게 오지 않는 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빠르게 해소되기는 어려울 겁니다. 무엇보다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미국이 금리인상기에 접어들기 이전에 잠재부실을 제거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미 실기했어요. 미국의 고금리가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가계, 기업, 금융회사들의 대비가 필요합니다. 정부도 미국 금리인상이 멈추면 지금이라도 모든 잠재부실을 덮어두지 말고 일부라도 현실화하면서 정리해 나가야 합니다.Q. 국내 통화당국은 연준의 통화정책에 제약을 많이 받습니다.A. 미국처럼 규모가 큰 경제는 통화정책의 파급효과에 대해 예측이 한결 수월하지요.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시장의 기대수준을 관리하면서 장기금리를 움직여주면 돼요.그런데 우리나라 같은 개방된 신흥국에선 통화정책 운용에 한계가 있어요. 장기 금리를 컨트롤하기 어려워요. 기준금리를 조정해도 기껏 3년물 정도까지만 영향을 미칠뿐 10년물, 30년물 등 장기금리는 미국 금리 수준에 따라 동조화되기 때문이에요. 실제 금통위원시절 기준금리 조정이 장기 시장금리에 미치는 효과가 높지 않아 고민이 많았어요.예컨대 우리 중앙은행이 가계부채 관리를 위해 금리를 올려 긴축적인 신용여건을 만들려고 해도 잘 먹히지 않았어요. 미국이 엄청나게 양적 완화를 하면서 채권시장에 외국자본이 흘러들어오니 우리 장기금리는 되레 낮아지고 그에 기초해 부동산 등 실물경제가 움직이면서 통화 정책의 효과가 의도대로 나타나지 않은 거죠. Q.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이라는 상충적인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는 건 더욱 어렵겠군요. A. 통화정책만으로는 금융안정과 물가안정이라는 양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는 없어요. 금융안정과 관련한 거시건전성 정책이 통화정책과 조화를 이룰 필요성이 있는 거죠. 그런 면에서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의 협조가 매우 중요합니다. 금융안정과 관련한 정책 거버넌스체제를 투명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어요.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안정과 관련한 유관기관 회의를 법제화해 분명한 미션을 주고 유동성 지원 등을 통해 시스템 리스크를 관리하도록 하면 됩니다. 회의를 정례화하고 회의 안건과 의사록도 가급적 투명하게 공개해 책임성을 높이도록 하면 되요. 이를 통해 중앙은행의 역할과 한계도 좀 더 명확히 할 수 있지요. 실물경기 둔화, 잠재부실 현실화 Q. 은행산업에 대해 과점논란이 일고 있습니다. A. 여러 지표로 볼 때 국내 은행들의 경쟁압력 수준이 낮지만은 않아요. 지금 은행산업이 과점 구조로 철옹성처럼 보호받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중개기능이 완전히 새로 해체되고 분해되는 과정에 있어요. 은행 독점의 수직적 중개기능이 분업화 분절화되고 있다고 할까요. 예전엔 은행 창구에서 독점적으로 대출 심사를 했지만 핀테크가 활성화되면서 지금은 네이버 포털 같은 온라인에서 대출상품을 비교해 차입자들이 선택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단순히 과점을 해소하겠다고 은행 수를 늘리는 건 별 의미가 없어요. 디지털 전환으로 금융중개기능이 해체되고 빅테크, 핀테크 등 새로운 경쟁압력이 높아지는 상태에서 금융당국은 이런 흐름을 반영해 금융중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규제 틀을 바꿔 나가는 일이 중요해요. 진입규제, 영업규제를 경쟁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디지털 전환에 따른 새로운 위험에 대응해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Q. 은행 본연의 기능이 미흡하다는 지적도 많은데요. A. 정부의 과보호아래 퇴출 위험이 없으니 중개능력에 따른 수익성 경쟁보다는 자산규모에 치중한 경쟁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은행으로선 몸집만 불리면 예대마진을 통해 수익이 저절로 나는 구조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예금자나 주주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고 경영성과도 실력으로 차별화되지 않으니 지배구조도 왜곡되게 마련이지요. 예금자와 주주에 의한 시장규율이 정립돼야 합니다. 은행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보호막을 걷어내고 예금자와 주주에 대한 책임경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해요. 은행은 공공재적 성격이 있지만 이를 너무 강조하다보면 시장에 은행불사의 기대감이 생기고 시장원리는 작동할 수 없습니다. 은행 본연의 재원배분기능, 지배구조기능을 시급히 복원해야 합니다. Q. 은행 중심의 금융중개구조를 자본시장 중심으로 전환해야겠지요. A. 예금과 부동산에 편중된 민간 금융자산이 고성장 혁신기업으로 효율적으로 배분되기 위해선 금융중개구조를 시장중심형으로 전환해야 해요. 경제발전의 동력이 기술혁신, 데이터, 무형자산 등으로 점차 고도화되고 있잖아요. 이질적이며 전문화된 정보를 시장가격에 효율적으로 종합 반영할 수 있기 위해선 자본시장의 심화된 중개역량이 필요합니다. 자본시장의 신뢰성,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정보생산 및 유통, 소비자 보호, 불공정거래 등과 관련된 규율체계를 정비해야 해요. 무엇보다 고위험, 고수익 상품에 대한 자기책임 투자 원칙이 투자자보호와 균형을 이뤄야 합니다. 문제가 터질때마다 규제의 중심이 자꾸 흔들리는데 이럴 경우 자본시장의 위험평가와 가격기능은 제대로 활성화 될 수 없습니다. Q. 지금 같은 통화정책의 전환기, 한국 금융의 구조적 문제점이 노정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A. 금융기관과 자본시장의 괄목할 만한 외연적 성장에도 우리 금융시스템은 생산성이 높은 실물부문으로의 중개능력이 미흡합니다. 금융저축이 은행과 단기성 자본시장에 환류하면서 성장 혁신기업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채 금융재원이 부동산부문으로 과다하게 쏠리고 있어요. 금융순환이 실물순환이 아닌 주택경기순환과 맞물리며 주택가격의 변동위험에 고스란히 노출, 시스템적으로 취약성을 보이고 있지요. 여기에 정책금융과 보증의 과다 지원으로 시장규율도 원활히 작동하고 있지 않아요. 그러니 은행과 자본시장의 사후 지배구조 기능도 취약해 상시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Q. 잠재 위험요인들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겠군요.A. 고령화, 디지털 혁신, 에너지 전환 등으로 전통 금융업의 경쟁력이 약화하고 있어요. 여기에 금융부문에 군집행동이 나타나면서 부동산 등 자산거품으로 이어져 불안정성을 야기하고 있어요. 이런 취약성으로 인해 한미 금리 역전에도 불구하고 국내 금융여건은 미국보다 더 빠르게 긴축화되고 있는 상황이에요.은행의 경우 건전성이 높고 시장성증권 투자규모도 크지 않아 시스템리스크 가능성은 높지 않습니다만 일부 상호금융, 신협 등 서민금융기관과 증권, 카드 등 일부 비은행부문에서 부동산 PF 등 잠재위험이 높은 상황이에요. 얼마전에도 CP, 회사채 시장을 중심으로 신용경색 조짐이 나타난 바 있지요. 조만간 취약가계나 자영업자, 한계기업의 잠재부실이 현재화될 거예요. 실물경기 흐름도 대내외 신용긴축이 겹쳐지면서 하방위험이 높아지고 있어요. 그간 실물부문과 괴리돼 부풀려진 가계, 기업, 금융회사의 대차대조표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할 거예요. 극심한 금융위기까지는 아니라 해도 고통스러운 디레버리징(부채축소)이 한동안 지속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Q.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A. 사전적 위기방지와 사후적 금융안정을 위해 정책기관별로 역할 분담을 명확히 하고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 원칙도 정립할 필요가 있어요. 금융당국은 예기치 못한 경로를 통한 시스템위기 발생 가능성을 꼼꼼히 모니터링하고 예금보험공사, 자산관리공사 등 사후적 금융안정 기관들은 재원을 미리 확충해 위기 대응력을 높여야겠지요. 여기에 유사시 유동성 공급, 적기시정조치, P&A 등 투명한 절차에 따른 신속한 부실금융기관 정리체계가 작동할 수 있도록 면밀히 대비해야 합니다. 특히 유사시에 대비해 잠재적으로 시스템 리스크를 유발할 가능성이 있는 비은행 복합금융회사에 대한 정리체계도 마련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함 교수는…▲1964년 서울 출생 ▲서울대 영문학과 ▲컬럼비아대 경영학 석사·박사(화폐금융) ▲캘리포니아대 산타바버라캠퍼스 경제학과 조교수 ▲KDI 연구위원 ▲금융개혁위원회 전문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회 위원 ▲예금보험공사 비상임이사 ▲금융통화위원회 위원 ▲(현)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 ·차기 한국금융학회장

2023.06.07 09:14

7분 소요
‘난방비 폭탄’ 맞은 소상공인 “정부 지원책 시급”

정책이슈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난방비 상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위해 정부가 난방비 대책을 마련해줄 것을 촉구했다.소공연은 21일 서울 여의도 소공연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소상공인을 에너지 취약계층에 포함하는 대책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요구했다.오세희 소공연 회장은 “소비심리 위축으로 송년 특수는커녕 혹한의 12월을 보낸 소상공인에게 지난달 한파보다 무서운 난방비 폭탄이 떨어졌다”며 “난방비 상승분이 소비자가격에 반영될 경우 물가상승과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지고 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 감소는 결국 경제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소공연에 따르면 전기요금은 1년 전에 비해 킬로와트시(kwh)당 32.4원(30%) 상승했다. 도시가스 요금은 지난해 4월, 5월, 7월, 10월 총 네 차례에 걸쳐 올라가면서 영업용1은 37.1%, 영업용2는 39.8% 상승했다. 소공연이 지난달 실시한 긴급 난방비 실태조사에서는 난방비가 30% 이상 올랐다고 답한 응답자가 전체의 51.6%를 기록했다.정부는 앞서 지난 15일 에너지 요금을 분할 납부할 수 있는 대상을 취약계층에서 소상공인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상공인들은 요금 분할 납부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며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소공연은 이날 정부와 국회에 ▶소상공인 에너지 취약계층에 포함해 에너지 지원 법제화 ▶소상공인 대상 에너지 효율 개선 사업을 통한 냉난방비 부담 완화 ▶에너지비용 급등에 대비한 소상공인 전용 보험 상품 마련 등을 요청했다.오 회장은 “정부가 현재 복합위기 상황에서 비용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에너지 바우처, 요금할인 등의 지원책을 법제화해야 한다”며 “소상공인 난방비 절감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고효율 에너지 제품으로 교체하는 것을 지원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기세와 가스비 급등 상황에 대비한 사회적 보험 제도를 마련해 가입을 지원하고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23.02.21 2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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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출은 떨어지는데…소상공인 99% “난방비 부담 느껴”

산업 일반

매출 감소에 직면한 국내 소상공인들이 최근 난방비까지 인상되며 ‘이중고’를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연합회가 2일 발표한 ‘난방비 인상 관련 소상공인 영향 긴급 실태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99%가 “사업장 운영에 있어 난방비용이 부담된다”고 답변했다. “매우 부담된다”고 응답한 비율도 80.4%에 달했다. 특히 숙박업은 98.5%가, 욕탕업은 90.0%가 “매우 부담된다”고 응답해 해당 업종의 난방비 부담이 더욱 큰 것으로 보인다.이 같은 부담은 매출이 감소하는 가운데 난방비가 오르며 심화하고 있었다. 같은 조사에서 전년 동월 대비 매출에 대해선 감소했다고 말한 응답자가 전체의 85.1%를 차지했다. 이 기간 동안 난방비는 96.9%가 상승했다고 답했다. 난방비가 오른 수준에 대해선 “10~30% 상승”이 40.2%로 가장 응답이 많았고 30~50% 상승(31.3%)과 50~70%(10.4%)가 그 뒤를 이었다. 난방비가 두 배 이상 올랐다는 응답도 6.4%나 됐다. 난방비 상승에 대한 대응책으로는 “난방 시간과 온도 제한”이 40.8%로 1위를 차지했으나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답변 또한 35.8%로 높았다. 소상공인들은 난방비 지원정책으로 난방비 요금 할인(51.7%)을 가장 선호했다. 소상공인에게 에너지 바우처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35.7%를 차지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가스와 전기는 소상공인 영업에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면서 “소상공인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긴급 에너지 바우처 등을 편성해 에너지 비용을 지원하고 에너지 급등 상황에서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근거를 법제화해 현재와 같은 위기에 대응할 수 있도록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 1월 30일부터 2월 1일까지 소상공인 1811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을 통해 진행됐다.

2023.02.0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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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박업소·목욕탕, 치솟은 난방비에 울상”...소상공인 99%가 ‘부담’

유통

최근 에너지 비용 인상에 따라 수도권과 지방, 고용원의 유무, 사업기간의 장단과 무관하게 대부분의 소상공인에게 난방비가 적지 않은 부담이 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2일 소상공인연합회가 ‘난방비 인상 관련 소상공인 영향 긴급 실태조사’를 진행했다. 조사에 따르면 ‘사업장 운영에 있어 난방비용이 부담된다’고 답한 소상공인이 99%에 달했다.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 이후 경기 악화로 매출은 하락한 데 반해, 난방비는 급격히 상승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전년동월 대비 매출 변동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85.1%가 ‘감소했다’고 응답한 반면, 같은 기간 난방비 변동을 묻는 질문에 96.9%가 ‘증가했다’고 답했다. 난방비 증가 수준은 10~30%가 40.2%로 가장 많았다. 이어서 30~50%(31.3%), 50~70%(10.4%) 등의 순이었다. 2배 이상 늘었다는 응답도 6.4%에 달했다.업종별로는 숙박업 및 욕탕업종이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부담된다’는 응답이 숙박업 98.5%, 욕탕업 90%로 타 업종에 비해 높았다. 여기에는 업장운영비 중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된다. 전체 변동비에서 난방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경우가 숙박업은 37.4%, 욕탕업은 40%에 달해 평균치인 17.1%를 크게 웃돌았다. 또 전년동월 대비 난방비 변화를 묻는 질문에도 50% 이상 상승했다는 응답이 숙박업 38.8%, 욕탕업 40%로 평균치인 20.3%의 두 배에 육박했다.이러한 심각한 난방요금 급등에도 소상공인은 별다른 대처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상공인들의 난방비 대책으로 ‘난방시간과 온도제한’이 40.8%로 1위를 차지한 데 이어 ‘별다른 대안 없음’이 35.8%로 2위를 차지한 것. 휴폐업을 고려한다는 응답도8.1%에 달했다.소상공인이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는 상황이다보니 정부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가장 필요한 난방비 관련 지원정책을 묻는 질문에 ‘소상공인 난방비 요금 할인’이 51.7%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이어서 ‘긴급 소상공인 에너지 바우처 지원’ 35.7%, ‘에너지 취약계층에 소상공인을 포함시키는 등 법제화 마련’ 9.8%의 순이었다.실제 현재 정부는 취약계층에게 에너지 바우처 제공, 요금 할인 등의 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해당 법령에 소상공인이 포함되지 않아, 소상공인은 에너지 지원 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차남수 소상공인연합회 정책홍보본부장은 “가스와 전기는 소상공인 영업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이다. 에너지 비용 현실화에 따른 비용 상승분이 고스란히 소비자가격에 반영될 경우 물가상승과 소비자 부담 증가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가격 상승에 따른 매출 감소는 결국 경제 악순환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부는 앞서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에게 긴급대책을 마련해 약 30~50%의 전기요금 할인과 도시가스 요금납부 유예를 지원한 바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측은 생존권 보호 차원에서 현 상황에서도 긴급 에너지 바우처 등을 편성해 에너지 비용을 지원하고, 에너지 급등상황에서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근거를 법제화해 현재와 같은 위기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정책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23.02.02 18:16

3분 소요
가난은 뇌도 병들게 한다

산업 일반

폭력, 가정 불화, 영양실조, 학대, 부모의 실직 등이 학습성과를 좌우하는 뇌 부위의 발달을 방해한다. 천성과 환경 중 무엇이 더 지능에 영향을 줄까?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영상이 재생됐다. 2012년 15세에 통학버스에서 탈레반의 총에 머리를 맞고도 살아남은 파키스탄 소녀다. “교육을 받고 싶었고,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 소녀는 탈레반이 사람들의 얼굴에 염산을 붓거나 죽였지만 “나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을 이었다.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SC) 뇌과학및창의력연구소(BCI)에서 노트북으로 유사프자이의 동영상을 보던 15세 소년은 무덤덤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어깨는 앞으로 굽어져 있었다. 인터뷰 진행자가 소년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냐고 묻자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반응은 그게 다였다. 연구자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질문을 이어갔다.“좋은 사람이요”라고 소년이 답했다.“대학에 가고 싶니?”“네.”“대학을 졸업하면 뭘 할 계획이니?”“생각 안 해봤는데요.”“어떤 직업을 갖고 싶니?”“생각 안 해봤는데요.”아이는 저소득가정 청소년 67명을 대상으로 문화와 가족관계, 폭력에 대한 노출 및 기타 변수가 인간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5년간 추적하는 USC 신경과학자 메리 헬렌 임모르디노-양의 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모집한 청소년들에게 특정인의 인생 실화가 담긴 40개 동영상을 보여주고 이들의 뇌 반응을 지켜보는 실험이다. 동영상 중에는 유사프자이의 이야기처럼 영감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피험자가 동영상을 지켜보는 동안 이들의 뇌반응은 MRI로 촬영하고 기록한다. 2년 후 피험자들은 BCI를 다시 방문한다. 연구소는 학습센터 및 대학 혁신허브다. MRI 촬영 연구소와 회의사무실, 현대예술 및 사진 갤러리, 문학 낭독회와 과학 발표 및 강연, 요요마 등의 예술가가 연주하는 공연 등이 개최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피험자들은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연구진은 2년이 지난 후 반응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본다. 초기 단계에서 나온 결과는 심란하다. 폭력적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들은 인터뷰에서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고, MRI 촬영 결과 신경연결이 약했다. 의식과 판단, 윤리적 결정 및 감정처리 과정에서 뇌의 각 부분이 원활히 연결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임모르디노-양의 연구는 발달 단계에 있는 ‘가난의 뇌신경학’이란 연구분야의 일환으로 진행 중이다. 뇌의 패턴과 환경 간 상관관계밖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진이 알려주는 결론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가난과 연관된 환경 예를 들어 폭력, 지나친 소음, 가정 불화, 오염, 영양실조, 학대, 부모의 실직 등의 요소가 성장 중인 어린 뇌의 신경 상호작용 및 형성·조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최근 이 사안에 대한 공공담화를 활짝 열어젖힌 연구 결과가 2개 발표됐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빈곤가정 아이의 경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의사결정, 문제해결, 충동조절 및 판단, 사회적 혹은 감정적 행동을 관장하는 전두엽, 언어와 시각 및 청각정보 처리, 자기의식을 관장하는 측두엽 등에서 정보 처리 및 관리행동을 돕는 뇌조직 회백질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시 이행과 집중, 전반적 학습능력에 필수적이며 학습성과를 좌우하는 뇌 부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정보다.지난해 미국의학협회지(JAMA)는 4~22세 사이 피험자 389명을 관찰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험 참여자 4분의 1은 연방빈곤선(올해 기준 4인 가족 연소득 2만4230달러) 하위에 위치한 빈곤가정 출신이었다. 최빈곤층 가정 출신의 청소년은 회백질이 많이 감소해 있었고 표준화 시험에서 점수도 더 낮았다.두 번째 연구는 지난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에 수록됐다. 3~20세 사이 피험자 1099명을 관찰한 실험이다. 그 결과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은 연소득 15만 달러 부유층 자녀 대비 뇌 면적이 적다는 결과가 나왔다.“건강 및 학습결과에서 사회적 계급이 격차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하버드대학 아동발달센터 이사장 잭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그러나 신경과학이 발달한 요즘은 환경과 행동, 뇌활동을 연계해서 문해력에만 중점을 둔 기존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재설계하는 등 교육 및 사회정책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새로운 접근방식 덕분에 사회 및 감정적 발달에도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과학 발전으로 환경과의 관계 및 상호작용이 집중력을 통제하는 뇌 부위를 어떻게 발달시키는지 그 과정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읽기 등의 학습 성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생물학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그렇게 나온 새로운 연구 결과 덕에 천성과 환경 중 무엇이 인간 지능에 영향을 주는지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2013년 베르가라는 임모르디노-양의 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해 동영상을 보면서 MRI 촬영을 했다(베르가라는 암 말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레모네이드를 팔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실험에 호기심을 느낀 베르가라는 임모르디노-양이 인턴십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신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인턴이 돼 동네에서 다른 피험자를 모집하는 일을 했다. 주민 중 43%가 연방빈곤선 미만으로 분류된 동네였다.연구소 근무 전에도 베르가라는 자신의 삶을 부유한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연구팀이 왜 자신과 급우에 관심을 갖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한 건 친구들의 MRI 영상을 본 후였다. “우리의 뇌는 다른 동네 아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발달하지 못했다.”그때까지만 해도 베르가라는 우리 몸의 스트레스 반응체계와 뇌 발달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가난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갱단의 폭력이 급증하며 동네가 ‘열기에 휩싸일 때’를 자매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는 구역에서는 누가 평생 폭력단에서 일했는지, 초등학교 친구 중 폭력단 새 멤버로 입단한 사람은 누구인지도 알았다. 사람이 총에 맞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침실 밖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다.누군가 가슴에 총을 맞는 걸 직접 봐야만 폭력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니라고 임모르디노-양은 말했다. 주변이 혼란스러우면 “세상이 무섭다는 걸 몸이 깨우친다”고 그녀는 말했다. “인정사정 없는 위험한 세상이라 어떤 사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선한 존재라고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뇌 구조가 변한다. 신경 시냅스의 연결이 변화하고 신경은 다른 방향으로 신호를 보낸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돼 뇌 전체에 퍼진다.권총이 자신을 겨누면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결정하는 ‘투쟁-도주(fight or flight)’ 반응에 돌입해 코티솔과 에피네프린 등의 호르몬을 분비하고 근육에 에너지와 힘이 모인다. 노르에피네프린과 아드레날린,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편도체로 배출돼 심장과 폐가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감정과 감각이 경계상태에 돌입하고 우리 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망가거나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강도 피해자 106명을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 이들 중 33%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타인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느끼게 된 사람도 전체의 80%에 달했다. 매일 수십 명의 폭력적 범죄자를 만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어둠 속에서 언제든 튀어나와 나를 구타하거나 돈을 뺏어가거나 강간하거나 총으로 쏠 수도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항상 분비되다 보니 얼마 후에는 그 양을 줄이기가 힘들어진다. 뇌는 언제나 투쟁-도주 상태에 놓인다. 만성 스트레스는 줄기세포와 뇌세포 연결, 신경의 발달을 저해한다. 임모르디노-양의 연구는 이런 환경에 놓인 피험자의 경우 계획 수립과 목표 설정, 윤리적 결정, 안정적 감정 유지 능력을 온전히 발달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의 뇌 활동은 제대로 조직되지 못하고 발달 및 체계 또한 미숙하다”고 임모르디노-양은 말했다.불안정한 가족과 학대, 방치 또한 비슷한 해를 끼친다. 생물-신경학적 영향은 아동과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신생아와 유아에게도 영향을 준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연구진이 77명의 아동을 연구한 결과 저소득 가정의 자녀는 최소 5개월째부터 부유한 가정의 아기 및 유아와 비교해서 전두엽과 두정엽의 회백질이 감소한 것이 발견됐다. 이는 다른 연구 결과와 함께 가난이 뇌 성장을 지체시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뇌 발달은 시작 단계에서 뒤처지면 결코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가난이 아동 뇌 발달을 저해한다’ ‘가난은 태어날 때부터 뇌를 축소시킨다’ ‘가난할수록 의사결정을 못하는 이유’ 등 새로운 신경학 연구의 제목을 보면 경악과 우려가 교차한다.숀코프 박사는 이런 언어 사용이 “위험하며 걷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평균적으로 회백질과 표면적이 감소했다’고 말하는 것과 ‘그래서 너의 뇌가 손상됐다’고 결론짓는 건 엄연히 다르다. 이는 부당하게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맥락 없이 볼 경우, 가난과 뇌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내용은 인종별 지능 격차나 ‘빈곤층은 날 때부터 열등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데도 악용될 수 있다.“이들 연구 결과가 새로운 우생학적 연료로 쓰일 위험이 있다”고 코네티컷 대학의 사회학 부교수 매튜 휴이가 말했다. “’가난한 사람의 뇌는 달라’라고 손쉽게 내뱉는 말은 너무 간편하고 무섭다. 명백히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미시건대학 국가빈곤센터 자료를 보면 특정 소수집단의 경우 빈곤율이 미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이 사실이다. 미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라 2014년 평균 14.8%였던 빈곤율을 인종별로 나눠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26.2%, 라틴 계열은 23.6%, 아시아계는 12%, 백인은 10.1%였다. 빈곤이 각 민족집단에 고루 분포돼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통계다.빈곤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과학이 설명한 대로 인지발달에서 어려움을 겪은 소수민족 청소년은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된다고 루이빌 대학 아프리카 지역학 부교수 W 카슨 바이어드는 말했다. 관련 연구와 제목을 기준 삼아 소수민족 아이는 “백인 아이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이다. 미국에서 가난한 소수민족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만으로 뇌 발달이 저해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빈곤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과 사회가 가난한 소수민족을 대하는 방식은 분명 이들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소수민족의 경우 위험하고 낡아빠진 건물에 산다. 거주환경의 차별과 함께 학교에서는 교사가 은연 중에 보내는 인종차별적 편견이 있다. 빈곤 지역에서 예산 부족을 겪는 학교와 영양실조는 정상적 뇌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요소가 모두 합해지면 학습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아프리카계가 백인보다 빈곤의 덫에 갇힐 확률이 왜 더 높은지도 알 수 있다. 뇌가 작아진다는 주장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층에 대한 좁은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고 바이어드 교수는 말했다. 이는 흑인은 뇌 용적이 작아서 유럽인보다 지능이 열등하다는 과거 엉터리 과학자들의 인종적 편견을 그대로 반복하는 위험한 행동이 된다. 뇌 과학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들은 대중문화나 언론 기사, 심지어 연구 초록에서조차 연구 결과가 지나치게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동의했다. “상관관계가 겨우 입증된 내용을 인과관계로 보도한다”고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연구를 이끈 컬럼비아대학 신경과학자 킴벌리 노블은 말했다. “조사 결과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과학을 잘못 전달하는 것이다. 뇌는 운명이 아니다. 가족 소득을 기준으로 아동의 뇌 크기를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부모의 소득수준은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도 뇌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도 많다.” 빈곤은 소득 수준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다고 무조건 가정내 폭력이나 학대가 아이의 신경생물학적 발달을 저해시켰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폭력단이 지배하는 슬럼가에서 자랐어도 부모가 이들을 보호하고 역경을 이길 수 있도록 감정적 준비를 시켰다면 얼마든지 안전함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다.부모님과 교사, 기타 성인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대처기제를 가르쳐 줘 ‘투쟁-도주’ 체계가 끊임없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은 역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다시 일어서도록 뇌를 보호하는 완충제를 얻게 된다. “스트레스 수준을 기준선으로 끌어내리고 폭력 혹은 빈곤의 짐을 제대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구축하게 된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이런 미묘한 작용은 문제를 극복할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빈곤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 겪은 어려움 때문에 신경적 토대가 약하더라도 “너무 늦은 때는 없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뇌는 계속 발달한다.” 신경회로는 환경적 영향에 따라 만들어진다. 뇌가 자체적으로 구조를 조정하는 신경가소성은 영아 및 초기유아기에 가장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지만 결코 ‘0’에 도달하는 법은 없다. 15~30세 사이에 뇌는 가소성이 증가하는 제 2의 성장기를 거친다. 다시 말해 사춘기와 성년 초기에도 제대로 가르치고 연습만 한다면 뇌가 재조정과 적응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이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빈곤지역 사회 프로그램과 정책을 재설계하고 범죄 및 오염, 인구과밀과 학대를 줄이는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한편, 0~5세 자녀를 둔 부모를 지원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아동행동학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새로 도입되는 프로그램은 아동뿐 아니라 빈곤 속에 자라서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익히지 못한 어머니, 그래서 자녀에게 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던 어머니도 수혜 대상에 포함시킨다.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사회 및 감정적 학습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관심을 기울이도록 지도하는 내용이다. 특히 외상이나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법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이들 교과과정을 국어나 수학처럼 필수과목으로 만드는 방안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및 발달지원기관의 우선순위에 대한 대대적 재평가뿐만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도구를 확보하기 위한 예산의 재조정도 필요할 것이다.이를 현실로 이끌기 위해서는 의회나 지방정부, 학교 이사회, 사법제도의 힘이 필요할 수 있다. 2013년 뉴욕대학 신경과학교육연구소의 클랜시 블레어는 가난과 혼란으로 가득한 가족 속에서 보낸 시간이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 분비량 증가와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거 담배와 고당분 음료, 정크푸드와 유해성을 연결하고 정책 및 규제를 변화시켰던 상관관계와 동일한 증거 능력을 가지는 연구결과는 더 있다. 블레어의 연구 결과 또한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주거지역, 감당할 수 없는 주택가격 및 돌보미 센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법제화를 지원하거나 기념비적 소송을 이끄는데 이용될 수 있다.열악한 학교와 지역사회 인프라, 치안 불안, 아동학대 방치, 오염된 환경, 의료서비스 및 대중교통과 녹지 부족 등 빈곤의 굴레를 강화하는 시스템 또한 법안 제정과 소송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베르가라가 임모르디노-양 연구팀에서 인턴십을 마친 지도 2년이 지났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학점 평균 3.8로 졸업한 베르가라는 SAT에서도 학급 최고 점수를 받았다. 지금 그녀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산호세주립대학에서 생명의공학을 전공한다. 그녀를 ‘생존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대학 동기들은 그녀가 성장한 동네 이름을 듣고 “거길 어떻게 빠져 나왔니?”라고 묻기도 했다.베르가라는 안다. 그녀의 집은 피난처였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부모님도 어쩌지 못했지만 적어도 집안에서는 완벽하게 보호 받는 느낌을 줬다. 베르가라의 집은 블록에서도 가장 수목이 우거진 마당이 있었다. 장미 덤불에서는 분홍색과 복숭아색, 붉은색, 노란색 장미가 자랐다. 거실은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했고, 분홍 장미 색깔로 칠해진 벽은 가족 사진으로 장식돼 있었다. 베르가라의 동생이 15세 생일 때 흰 드레스를 입고 손에 밝은 오렌지색 꽃다발을 든 사진도 있었다. 팬더곰이나 거북이, 새끼를 지키는 어미 사자, 자유의 여신상과 천사상 등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고 알록달록한 조각상이 TV 스탠드에 진열됐다.베르가라는 2명의 여동생과 조카 1명과 함께 방을 썼다. 좁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아늑했다. 부모님은 돈 문제로 어려운 때가 있어도 자식 앞에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는 노력은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 타코처럼 정겨운 집밥의 기억으로 남았다. 부모님은 서로 만났던 공장에서 오래 일하며 찬찬히 승진 단계를 밟았고 마침내 전체 생산라인을 감독하는 관리자 직책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주택담보대출을 전액 상환했다.베르가라의 부모님은 숙제나 친구들과의 놀이에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이를 지키도록 했다. 베르가라는 고등학교에서 축구팀과 배구팀에서 활동하느라 파티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과는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베르가라와 자매들이 다른 성인 롤모델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도록 했다. 동네에서 활동하는 모든 폭력단원의 얼굴과 이름을 알아야 했지만 위험한 상황에 닥칠 경우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나 달마시안을 키우는 친절한 이웃 등 어떤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베르가라는 USC에서 과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배구팀 코치를 통해 생명의공학에 대해 정보를 얻었고 이를 전공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코치는 그녀를 임모르디노-양에게 소개시켜줬고 USC 연구진은 베르가라에게 뇌에 대한 정보를 줬을 뿐 아니라 대학 입학신청서를 쓰는 일도 도와줬다.베르가라는 자신을 품어준 가족과 멘토가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안다. 함께 자란 친구들은 그런 기회나 지원체계를 얻지 못했다. 그녀는 일부 선생님과 학교 담당자가 학생들을 ‘잠재력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나누고 차별 대우를 한다는 걸 느끼며 자랐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의 발전으로 표면적 행동이나 학습 문제가 아닌 기저에 있는 문제가 밝혀졌다. 뇌 발달과 관련된 문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다”고 베르가라는 말했다.과학적 혁명은 이제 시작이라고 임모르디노-양은 말했다. “풍부한 사회적 담화를 이제야 발견한 단계다. 빈곤의 사회적 스트레스가 뇌 발달 및 생물학적 발달을 변형시키고 평생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우리는 이제야 정보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에리카 하야사키 뉴스위크 기자

2016.11.07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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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로 바뀌는 세계 경제지도 | 美 기업, 저부가 사업 팔고 혁신 또 혁신] 창조적 파괴로 이룬 ‘왕의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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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쇼어링, 스마트 제조, 그리고 신사업 개척.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이끈 3가지 키워드다. 한때 더 나은 조건을 찾아 미국을 등지고 중국, 멕시코, 인도 등지로 떠났던 기업들이 다시 미국으로 복귀하고 있다. 리쇼어링(reshoring)이다. 다음은 기존 제조업의 변신이다. 첨단 사물인터넷(IoT) 등 정보통신 기술의 옷을 입고 기존의 굴뚝 제조업이 스마트하게 거듭나고 있다. 2004년 IBM이 PC사업을 중국 레노버에 매각한 것이나, 최근 GE가 100년 넘게 보유했던 가전사업부를 하이얼에 매각한 게 대표적이다. 경쟁력이 다한 사업은 과감히 털어 버리고 새롭게 스마트화 대열에 합류하겠다는 의도다. 마지막으로 인류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획기적인 신사업 개척이다. 애플·구글·테슬라·페이스북 등 미국의 혁신 기업들은 미래 산업의 패러다임을 송두리째 뒤흔들 새로운 도전과 탐험을 멈추지 않고 있다. 미국 제조업이 부활하고 있다. 딜로이트 글로벌과 미국경쟁력위원회에서 공동 조사해 발표한 ‘국제 제조업 경쟁력 지수(2016 Global Manufacturing Competitiveness Index)’에 따르면 미국은 2020년 제조업 경쟁력 순위에서 중국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결과는 각국 제조업에 종사하는 500명 이상의 최고경영자와 고위 임원을 대상으로 한 심층 조사를 기반으로 한다. 특기할 점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 지수는 2010년 4위에서, 2013년 3위, 그리고 2015년 2위로 꾸준히 높아져 왔다.미국 제조업의 부활은 수치로도 입증된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인 2005~2008년과 이후인 2010~2013년 미국의 누적 고정자산 투자액을 비교해 보면, 민간부문 총투자액은 -9.1%로 금융위기 이전 실적을 회복하지 못한 반면 제조업은 9% 증가했다. 연구·개발(R&D) 투자도 급증하고 있다. 제조 업체의 2010~2013년 R&D 누적 투자액은 2005~2008년 대비 18.8%의 증가율을 보였다. 정부의 R&D 예산도 2010~2014년에 2004~2008년의 누적 투자액 대비 10.4%나 증가했다. 특히 정부의 14개 R&D 부문 중에서도 산업 제품 및 제조공정을 대상으로 하는 산업생산기술 R&D 예산은 43.3%로 급증했다. ━ 글로벌 경쟁력 1위로 부활하는 미국 미국 제조업의 부활에는 어떤 배경이 있는 걸까. ‘국제 제조업 경쟁력 지수’ 응답자들에 따르면 가장 먼저 우수한 인력과 비용상의 우위, 노동생산성과 공급사슬 측면의 이점, 그리고 기업하기에 좋은 법과 제도가 미국의 경쟁력을 높인 요인으로 꼽혔다. 그 외에도 잘 갖춰진 사회 인프라, 우월한 교육 시스템, 친기업적인 경제·무역·금융·조세제도와 혁신정책, 그리고 저렴한 에너지 조건 등이 미국을 기업하기에 좋은 나라로 만든 요인으로 언급됐다.1990~2000년대 미국 제조 업체들은 사업다각화에 따른 채산성 악화, 고임금 체계로 인한 경쟁력 저하 상황에 직면했다. 자연스레 경제의 주도권을 1990년대 금융, 2000년대 정보기술(IT) 및 바이오산업에 내줘야 했다. 미국의 제조 업체들은 고임금과 각종 규제를 피해 중국, 멕시코 등으로 제조시설의 해외 이전(offshoring)을 확대했다. 제조업의 공동화가 시작된 것이다. 미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제조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1990년대에 15~16%에서 2001년엔 13.9%로 내려갔고, 2009년에는 12%로 추락했다.이렇듯 제조업 위축이 지속됐지만 미국 정부는 별다른 정책수단을 꺼내 들지 않았다. 오히려 경제의 주도권이 제조에서 서비스로 옮겨가는 것은 산업발전 궤도상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러나 2008년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이러한 판도를 단번에 뒤집었다. 제조업 기반이 약했던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위기에 취약했던 반면, 독일과 일본 등 제조업 강국은 큰 충격없이 금융위기에 견디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09년 1월 취임식에서부터 제조업 부활을 강조했다. ‘리메이킹 아메리카(Remaking America)’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제 위기에 빠진 미국을 선조들이 물려준 덕목으로 헤쳐나가자”고 역설했다. 금융 및 서비스산업 중심의 미국 경제를 다시 제조업 경쟁력이 강한 나라로 만들겠다는 다짐이었다. 1년 후인 2010년 1월 국정연설에서는 “5년 안에 수출을 배로 늘리겠다. 새로 일자리 200만 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나온 게 ‘선진 제조업 파트너십(AMP)’ 정책이다. AMP는 2012년 16개의 권장 대책을 내놓으며 국가 네트워크 제조업 혁신 연구소 설립을 계획했다. 이 연구소는 제조업의 지역 허브 역할을 담당하게 돼 미국 기업의 국제적 경쟁력을 높이고 미국 내 제조업에 대한 투자를 증대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미국의 제조업 강화 정책은 2014년 ‘미국 제조업 재활성화 법’이 발효되면서 법제화를 마무리했다. 향후 10년 내 45개의 민간 및 국책 연구소를 설립해 미국의 미래 제조업을 이끌어갈 3차원(D) 프린팅, 디지털 제조 및 디자인, 경량금속 제조, 광역 반도체, 첨단 화합물 제조, 통합 광학기술, 클린 에너지 등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6년 회계연도에 6억 달러 이상의 예산을 사용할 계획이다.국내외 경제 전문가들은 ‘미국의 시대가 다시 왔다’는 데 모두 공감한다. 미국의 힘은 단순히 달러라는 기축통화의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셰일가스가 가져다 주는 에너지 이점만으로도 설명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것은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는 미국 정부 정책의 유연성과 연속성, 그리고 변화하는 시장의 흐름에 맞게 체질을 변화시키며, 미래 산업의 판도를 좌우할 혁신적 신산업 개발에 매진하는 제조 업체가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슘페터가 말한 것처럼 지금 미국 제조 업체들은 ‘창조적 파괴’를 통해 스스로를 파괴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고 있다.리쇼어링으로 미 제조업 권토중래: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알리는 첫 번째 시그널은 미국을 떠났던 제조 업체들의 본국 귀환이다. 생산비용을 줄이고자 중국과 동남아 등 저임금 국가로 떠났던 제조 업체들이 해외 공장을 닫고 미국으로 돌아오거나 미국에 새로운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를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겼던 ‘오프쇼어링(offshoring)’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리쇼어링(reshoring)’이라고 부른다. 한 때 유행했던 ‘백쇼어링(backshoring)’이 주로 해외 현지의 비합리적인 제도나 관행 때문에 발생했던 것이라면, 리쇼어링은 본국의 경영 환경이 더 좋아졌기 때문에 회귀한다는 측면에서 차이가 있다.지금까지 오프쇼어링이 각광을 받았던 이유는 국제물류 비용의 감소로 세계 여러 국가(특히 저비용 국가)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글로벌 가치사슬(value chain)을 형성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 내 노동 비용이 감소하고 셰일가스 덕에 에너지 비용까지 하락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여기에 더해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로 침체에 빠진 경제를 되살리고자 기업의 자금조달 비용을 낮추고 강력한 제조업 지원 정책을 폈다.2011년 12월 포드는 멕시코 트럭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겠다고 발표했다. 2012년 캐터필라는 일본 대지진으로 부각된 지리적 리스크 극복을 위해 일본 공장을 미국으로 옮기고, 굴착기 생산설비를 텍사스주에 신설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해 GE는 중국과 멕시코에 있는 세탁기, 냉장고, 히터공장을 미국으로 이전하겠다고 발표했다. 2013년에는 월풀이 세탁기 생산설비 중 일부를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옮겼고, 다우케미칼이 미국에 화학제품 생산공장을 신설했다. 애플은 중국(폭스콘)에서 생산하던 스마트폰 부품을 미국 내 신설 공장에서 만들기로 결정했다. 2014년에 GM은 차세대 캐딜락 SRX 크로스오버 SUV 생산설비를 멕시코에서 테네시주로 옮긴다고 발표했다.리쇼어링과 그에 따른 미국 제조업의 부활은 단지 우연의 산물이 아니다. 노동·에너지·금융 비용을 줄이고 내수경기 회복을 촉진한 미국 정부의 일관된 노력의 결과물이도 하다. 리쇼어링으로 미국 내 투자가 확대되면서 일자리가 늘어나고, 이는 다시 안정적 수요 기반인 중산층을 늘려 내수시장이 살아나면서 경기가 회복되는 선순환 고리를 만들었다. 리쇼어링은 세계 제조업 지형도를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대량 생산에서 시장접근성에 기반한 근거리 생산으로 바꾼다는 중요한 의미도 지니고 있다.미국 내 비영리기구인 리쇼어링 이니셔티브(Reshoring Initiative)의 2014년 조사에 따르면 리쇼어링은 주로 중국(135건), 멕시코(20건), 인도(11건) 등지로부터 발생했다. 주된 이유는 미국 내 숙련된 노동력(87건), 이미지·브랜드 제고 효과(80건), 미국 정부의 인센티브(79건), 자동화·기술·3D프린팅에 대한 접근 기회(57건), 저렴한 미국 에너지 가격(49건) 순으로 나타났다. AT커니에서 조사한 리쇼어링의 10가지 이유도 배달 시간 단축, 총소유비용 개선, 품질 개선, 운송비 절감, 노동비용 절감, 고객대응 개선, 이미지·브랜드 제고, 생산성 제고, 혁신·제품 차별화, 재고 개선 등으로 유사했다.리쇼어링 이니셔티브에 따르면 2003년에는 제조업 일자리 15만 개가 미국 밖으로 나갔고, 리쇼어링과 FDI(외국인직접투자)로 생겨난 일자리는 1만2000개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4년에는 오프쇼어링으로 일자리 3만~5만 개가 줄어든 반면 리쇼어링으로 일자리 6만 개가 생겨났다. 리쇼어링 업종으로는 운송·전기기기 및 가전, 컴퓨터 및 전자제품, 기계류, 섬유류 등의 업체가 51%였으며, 이들이 늘어난 일자리의 80%를 차지했다.리쇼어링은 당분간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BCG의 지난해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17%가 리쇼어링 계획이 있다고 답했다. 2012년 응답의 2.5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신규 생산설비를 어디에 짓겠느냐는 물음에도 미국 31%, 중국 20%로 나타났다. 불과 2년 전 설문에서 미국 26%, 중국 30%로 응답한 것과는 딴판이었다.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는 스마트 제조: 올해 다보스포럼(1월 20~23일)의 주제는 ‘제4차 산업혁명의 이해(Mastering the Fourth Industrial Revolution)’였다. 4차 산업혁명은 기계와 사람, 인터넷을 연결해 시장상황에 따라 생산체계를 유연하게 운영하고, 빅데이터 분석을 기반으로 공장 내 모든 설비를 관리해 최상의 생산 효율을 달성하는 제조업의 패러다임 진화를 일컫는다. 모든 제조 공장이 ‘스마트 팩토리(smart factory)’로 진화한다는 의미다. 스마트 팩토리는 단일 공장에서 다양한 맞춤형 제품을 소량씩 생산할 수 있으며, 기존보다 공장 가동률이 높아지고 불량률이 낮아지는 등의 효과가 있다.스마트 팩토리 구현을 위해서는 다양한 설비와 센서가 인터넷으로 연결되는 사물인터넷(IoT)과 이를 통해 수집한 방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다루는 빅데이터 분석이 필수다. 두 분야 모두 첨단 정보통신(IT)의 최강 경쟁력을 보유한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제조업 부활정책과 맞물려 미국 기업들은 사물인터넷과 빅데이터 분야의 기술 우위를 적극 활용해 세계 스마트 제조 혁명을 주도하고 제조업의 새로운 플랫폼을 장악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GE와 테슬라를 살펴보자. ━ ‘물건 잘 만들기’ 넘어 ‘똑똑한 공장’ 만들기 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2015년 9월 한 컨퍼런스에서 ‘GE는 2020년까지 세계 톱10 소프트웨어 기업이 될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마이크로소프트 등 여러 IT기업에서 소프트웨어 플랫폼 개발을 담당했던 하렐 코데시(Harel Kodesh)를 GE 소프트웨어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영입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 제조업의 상징과도 같은 GE가 제조업을 떠나 IT 산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긴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는 중국 하이얼에 54억 달러 규모로 가전사업 부문을 매각했다.그러나 그들의 중점 전략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GE는 여전히 제조업에 기반을 두고 있다.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가 제조업의 플랫폼을 구축해 미래 제조업의 ‘큰 판’을 장악하겠다는 전략이다. 물건 만들기를 잘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물건을 잘 만들 수 있는 공장을 만들어주겠다는 이야기다.GE는 지난 2012년 산업인터넷(Industrial Internet) 비전을 제시한 후 적극적으로 IoT 기술을 수용하면서 ‘생각하는 공장(Brilliant Factories)’이라는 이름으로 스마트 팩토리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우선 수백 개의 생산시설을 IoT 기술로 연결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엔지니어링 팀에서 제품을 설계하면 이를 바로 생산시설과 연결하고, 파트너와 서비스 운영부서까지 연결을 확대해 나갔다. 이런 실시간 연결만으로도 불필요한 시행착오와 대기 시간을 줄여 생산 효율이 10% 이상 증가했다고 한다.다양한 제품을 한 공장에서 생산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이다. 일례로 인도에 위치한 멀티모달 공장은 GE의 4개 사업부문을 구성하는 제품을 한 곳에서 생산한다. 제트엔진을 만들고 기관차 기술을 개발하며, 풍력터빈을 조립하고 수처리장치를 제조하는 식이다. 시장에서 수요가 발생하면 신속하게 대응하면서도 품질 수준과 운영 효율은 최적의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GE는 자사의 공장을 스마트 팩토리로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고,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제조기업들에게 ‘생각하는 공장’ 플랫폼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산업별로 특화된 IoT 클라우드 서비스인 ‘프레딕스(Predix)’가 그것이다. GE의 기계설비를 사용하는 공장에서 설비 가동에 관한 모든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에너지를 절감할 수 있는 개선안을 제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미 볼보와 프록터앤갬블, 사우스웨스트 항공 등에서 계획휴지시간(planned down time)을 줄이고 유류비를 절감하는 데 탁월한 효과를 보인 바 있다.플랫폼 전략을 구사하는 또 다른 대표주자는 전기차 제조 업체인 테슬라다. 2015년 포브스가 선정한 가장 혁신적인 기업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테슬라는 사실 IT 산업과 전통 제조업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 주인공이기도 하다. 2003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한 전기차 전문 기업으로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미미하지만 업계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기존의 자동차 업체들도 테슬라의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미국의 다임러는 테슬라의 배터리 팩을, 독일 메르세데스는 테슬라의 파워트레인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테슬라는 전기차 제조뿐 아니라 전력 공급 시스템과 배터리 생산, 전력 충전 등 전기차 산업의 전체 가치사슬을 모두 내재화한 자체 플랫폼을 보유하고 있다. 게다가 2014년 6월에는 전기차 업계의 핵심 진입장벽이라고 할 수 있는 배터리관리기술(BMS)을 포함한 모든 기술 특허를 대중에 공개했다. IP노믹스에 따르면 테슬라가 보유한 특허 203개 중 135개가 BMS와 관련된 기술이다.이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먼저 전기차 시장 및 관련 산업의 규모 자체를 키울 수 있다. 진입장벽을 낮추어 많은 후발주자가 전기차를 쉽게 개발할 수 있도록 유도하면 기술 발전도, 그리고 시장 성장도 더 빨리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이다. 두 번째 의미는 전기차 제조, 배터리 관리, 충전 인프라 등 모든 가치 사슬에 걸쳐 테슬라의 기술이 글로벌 표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테슬라 특허를 활용해 전기차 개발에 착수한 업체들은 후속 사업에서도 테슬라 기술을 기반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높크다.플랫폼은 한번 자리를 잡으면 네트워크 효과로 안정적 지위 구축이 용이하다.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미래 제조업의 플랫폼을 장악하려는 미국 기업의 행보에 주목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무한한 상상력으로 미래 제조업 선점: 미국은 현재의 제조업을 발전시키는 것을 넘어 앞으로 인류의 삶의 모습을 획기적으로 뒤바꿀 새로운 산업을 창조하는 데에도 적극적이다. 요즘은 너무나 당연한 일상용품이 된 PC와 인터넷, 스마트폰도 불과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미국 기업이 만들었다. 새로운 경험과 선물을 가져다 줄 미래 제조업을 구현하기 위해 미국은 지금 어떤 준비를 하고 있을까? ━ 플랫폼 선점으로 ‘파이 키우기’와 ‘글로벌 표준화’ 달성 먼저 소규모 연구·개발(R&D)에 정부 지원을 집중해 수많은 벤처가 탄생하고 있다. 미국 정부의 R&D 자금은 비상장 중소기업이나 대학, 정부출연 연구기관에 집중적으로 지원된다. 또한 초기 시제품 출시에서 본격적인 상업화 단계에 이르기까지 거쳐야만 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을 극복할 수 있도록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 프로그램에 연방정부 예산의 3%를 배정한다.미국의 선거자금 감시단체인 CRP(Center for Responsive Politics)에 따르면 2008년 이후 실리콘밸리 기업이 연방선거에 후원한 금액은 총 1억 7200만 달러로 오일&가스, 보험산업의 뒤를 이어 3위 규모이다. 영향력이 크다 보니 정치인들은 선거철마다 미국 내 첨단 벤처에 대한 갖가지 지원 정책을 제안하고 있다.또한 미국 스타트업의 메카인 실리콘밸리에는 뛰어난 인재와 돈이 몰리며 기술혁신을 가속화하는 선순환의 생태계가 구축되어 있다. 실리콘밸리 인근에 위치한 스탠퍼드대와 MIT는 창의적 기업가를 낳는 산실이다. 스탠퍼드대는 구글에서 보여지듯 인터넷·모바일 분야에서, MIT는 클린에너지와 전기전자 관련 분야에서 미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을 개척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업가치 1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 스타트업을 ‘유니콘(Unicorn)’이라 하는데, 실리콘밸리에 본사를 둔 유니콘 기업은 약 100 개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회가 많은 만큼 투자도 활성화되어 있다. 기존의 전통적인 벤처캐피털 외에도 최근에는 킥스타터(Kickstarter), 인디고고(Indigogo) 등의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을 통해 손쉽게 다양한 형태로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정부의 적극적 지원과 자금, 인력이 몰리는 선순환 구조가 보장된 실리콘밸리에서는 미래 먹거리로 어떤 산업이 태동하고 있을까?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에 따르면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는 소프트웨어 융합 하드웨어 스타트업이 부상하며 제조업의 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플랫폼인 앤젤리스트(Angelist)에 따르면 2010년 100개 미만에 불과했던 융합 스타트업 개수가 2015년에는 약 3500개로 급증한 것으로 조사됐다.IoT와 웨어러블, 센서 기술 등의 소프트웨어와 액션 카메라라는 하드웨어를 결합한 고프로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프로는 글로벌 액션 카메라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며 2014년 6월에 나스닥에 상장했다. 2014년에 페이스북이 23억 달러를 들여 인수한 오큘러스(Oculus)도 센서와 가상현실 기술의 소프트웨어에 헤드셋이라는 하드웨어를 결합한 융합 스타트업이다. ━ 소프트웨어하드웨어의 융합형 혁신 미국의 미래 제조업 선점 노력은 이들 스타트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전통 제조업의 ‘공장’ 방식을 뿌리부터 뒤흔들 것으로 예상되는 3D 프린팅 관련 기술도 이미 미국이 주도하고 있다. 2015년 TED 컨퍼런스에서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의 한 교수가 액체 상태에서 연속적으로 3차원 물체를 만드는 3D 프린팅 기술을 공개했다. KT 미래기술경영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이 기술이 제대로 상용화되면 기존의 3D 프린터 대비 약 25~100배가량 빠른 속도로 조형물을 제작하는 게 가능하다. 이 기술은 기존의 분말 형태 대신 액체 소재를 사용한다. 이 중 액체금속에 대한 특허는 현재 애플이 독점 라이센싱을 받아 스마트 기기에 일부 적용하고 있다.- 박용삼·민세주 포스코경영연구원 수석연구원

2016.01.23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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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energy - 멕시코의 새 오일 러시

산업 일반

방대한 규모의 석유개발 산업 대외 개방하는 에너지 개혁법으로 경쟁체제 도입 추진 세계에서 가장 끈질긴 독점체제 중 하나를 끝내고 그 과정에서 경제를 개혁하려는 멕시코 정부의 영웅적인 투쟁이 중대 국면을 맞았다. 엔리케 페냐 니에토 멕시코 대통령은 수익성 높기로 세계에서 손꼽히는 미개발 에너지원을 해외 투자자들에게 개방하는 개혁을 추진해 왔다. 그 개혁조치로 멕시코 경제의 활성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으며 글로벌 기업들은 수익성 높은 석유·가스 시추계약을 원한다고 니에토 정부는 내다본다.그러나 페냐 니에토는 먼저 좌파 정치인들이 계속 그의 앞길에 던져 놓는 여러가지 장애물을 뛰어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현재의 여론조사를 믿는다면 프로젝트 전체를 침몰시킬 수 있는 국민투표 가능성이다.페냐 니에토는 앞날을 낙관한다. 멕시코 상원은 2013년 12월 입법의 첫 단추를 꿰었다. 그뒤 이 법안은 상·하원의 승인을 거쳐 32개 주의회로부터 과반의 찬성을 얻어냈다. 그리고 12월 20일 페냐 니에토가 새 에너지개혁법안에 서명했다. 계획대로 된다면 1938년 라사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이 석유산업을 국유화했을 때 만들어진 헌법 규정이 무효화된다. 새 규정은 또한 멕시코의 석유 및 천연가스 개발 사업을 외부에 개방해 국영 석유 독점회사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규정을 법제화하게 된다.그러나 에너지 시장 개혁 시도가 멕시코에 절실히 필요한 대형 에너지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기에 충분할까? 그것은 전적으로 마지막 세부사항에 달려 있다고 석유 애널리스트와 멕시코 정치인들은 말한다.페냐 니에토는 투자자 유치를 위해 “정치적으로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멕시코 외무장관 출신으로 일찍부터 에너지 시장 자유화 정책을 지지해온 뉴욕대 호르헤 카스타녜다가 말했다. 그러나 그에 따르면 대형 석유회사들을 쫓아버릴지 모르는 잠재적인 정치적 함정이 몇 가지 있다. 대표적으로 새 법안을 무효화할 수 있는 국민투표 가능성이다.정부는 그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3년 뒤에는 이런 일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게 된다.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것”이라고 멕시코 정부의 한 당국자가 말했다.멕시코의 석유 독점기업 페멕스는 부패, 정치적 특혜, 노조의 과도한 요구, 노후한 기술에 발목 잡혔다. 이들은 한때 세계를 호령하던 에너지 강국 멕시코를 2류 산유국으로 전락시켰다. 1984년에는 하루 원유생산량이 340만 배럴이었다. 올해엔 250만 배럴을 약간 웃돈다.수압파쇄(fracking) 기술 혁명은 멕시코를 거의 비껴 지나갔으며 심해시추 기술은 크게 뒤떨어진다. 결과적으로 멕시코가 곧 에너지 순수입국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커졌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북극권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미개발 원유 매장량을 보유하면서도 말이다.페멕스 CEO 에밀리오 로요사는 구미의 여러 다국적기업을 거친 빈틈없는 베테랑 기업인이다. 멕시코가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외부인들을 끌어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멕시코의 생산량을 늘리려면 더 많은 투자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한 가지 방법은 다른 기업들이 페멕스와 함께 투자하는 것이다.” 그가 지난 11월 멕시코 의회에서 말했다.페멕스의 추산에 따르면 멕시코가 잠재력을 발휘하려면 연간 600억 달러의 투자가 필요하다. 투자액을 지금의 두 배로 늘려야 한다. 에너지 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면 1%의 경제성장 효과가 있다고 정부는 추산한다.엑손모빌, 셰브론, 로얄더치셸을 비롯해 방대한 매장량과 상당한 수익성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다른 대형 에너지 업체들이 멕시코의 정치 드라마를 예의 주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투자자들을 끌어들이려면 대통령이 먼저 그들에게 믿음을 줘야 한다. 자신의 법안에 따르는 수익성이 충분히 클 뿐 아니라 훗날 그들의 투자를 위협할 수 있는 함정이 숨겨져 있지 않다고 말이다.법안의 통과는 “대단히 긍정적인 발전”이라고 멕시코를 전문으로 하는 휴스턴의 에너지산업 분석가 조지 베이커가 말했다. 그러나 세부사항이 모두 알려지기 전에는 그 법안이 투자자들에게 얼마나 매력적일지 정확히 평가하기 어려울 듯하다. 정부가 이익의 60%를 차지하고 투자자들에게 40%를 배분한다면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그가 말했다. “그러나 90 대 10의 배분 비율은 매력적이지 않다.” 멕시코시티에서 활동하는 독립적인 에너지 애널리스트 데이비드 쉴즈는 “관련 법규가 제정되어 첫 프로젝트들의 입찰이 실시되기까지 몇 개월이 걸린다”고 말했다. “첫 프로젝트가 낙찰되고 첫 계약이 체결되려면 1년이나 어쩌면 그 이상이 걸릴지도 모른다.” 잠재적인 투자자들은 입찰하기 전에 분명 멕시코의 조건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한다고 그가 말했다.지난 8월 니에토 대통령은 좌파의 지원을 받아 에너지 개혁법안을 통과시키려 애썼다. 당시 그에게는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석유시추 이익을 정부와 공유하도록 허용한다는 구상뿐이었다. 하지만 12월 들어 법안이 투자자들에게 더 매력적으로 바뀌었다. 시장지향적인 국민행동당(PAN)과 연합한 뒤였다. 생산권 나아가 ‘채굴권’의 일부를 투자자들에게 넘겨주기로 한 것이다. 외국기업들이 일정량의 석유자산을 소유하고 그 대가로 정부에 로열티를 지불하는 방식이다.그러나 집권 제도혁명당(PRI) 의원들은 좌파 정당들의 반응에도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들은 석유산업 개혁을 완전히 중단시키기 위해 가두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을 주도해왔다.160만 명의 서명을 받을 경우 주요 이슈에 관한 국민투표를 승인하는 법안이 12월 중순 하원에서 통과됐다. 좌파 의원들은 페냐 니에토의 새 법을 저지하기에 충분한 서명을 확보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론조사에 따르면 멕시코 국민의 최대 60%가 국민투표가 실시되면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답했다. 전 좌파 대통령 후보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최근 여러 대형 석유회사에 서한을 보냈다. 국민투표에서 석유산업개혁법이 무효화될 경우 외국인들이 그때까지 멕시코에 투자한 돈을 모두 날리게 되리라는 경고장이었다.에너지 생산은 감소세에 있다. 정부의 석유독점 체제 종식은 정부 세수 감소를 초래한다. 그런데도 땅 속에 묻힌 멕시코의 보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은 뜨겁다. 이번 개혁안이 멕시코 정계의 뜨거운 감자가 된 까닭이다. 2000년, 71년 만에 처음으로 대통령직을 내놓았을 때도 PRI는 PAN의 개혁시도를 저지할 만큼 충분한 의석을 확보할 수 있었다. 더 시장지향적인 신세대 PRI 지도자를 대표하는 페냐 니에토가 2012년 대통령 자리를 되찾아온 뒤에야 석유산업 개혁 구상이 가능해졌다.1938년 멕시코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며 국제적 석유 대기업들의 이익을 몰수해 그들을 아연실색케 했다. 그 장본인이 PRI의 중진이었던 카르데나스였다. 상당한 이익 잠재력에도 불구하고 외부 투자자들이 멕시코 시장에 뛰어들기 전에 여전히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2014.01.15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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