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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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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신년사]김원규 LS증권 대표

증권 일반

김원규 LS증권 대표이사 사장이 2025년 신년사에서 LS그룹의 금융사로서 새로운 비전을 실현하고, 철저한 준비와 지속 가능한 성장으로 변화와 도약의 전환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김 대표는 3일 신년사에서 “2024년은 경기침체 우려와 중동전쟁 격화, 국내외 정세 변화 등으로 시장 환경이 급격히 악화되며 어려운 한 해였다”며 “2025년에도 저성장과 불확실성의 고리를 풀어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어 “LS그룹의 일원으로서 새로운 지배구조 아래 회사의 위상을 확립하고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고 강조했다.올해 LS증권의 경영 전략으로는 ▲사업 목표 달성 ▲지속 가능한 수익모델 구축 ▲컴플라이언스 준수 ▲LS그룹과의 시너지 창출을 제시했다.김 대표는 “수익 창출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상황에서 고객의 신뢰는 성과에서 나온다”며 “2025년 사업 목표를 반드시 달성해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시장 변화와 관계없는 중립적 절대수익 창출 능력을 강화하고, 디지털 사업 경쟁력을 높여 고객 저변을 확대해야 한다"며 "기업금융 역량을 키우고, 신규 사업 발굴에도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컴플라이언스 준수의 중요성도 강조됐다. 김 사장은 “한 번의 실수로 쌓아온 평판을 잃어버릴 수 있다”며 “법과 규범을 벗어난 성과는 사상누각에 불과함을 인지하고, 컴플라이언스 준수가 우리의 일상이 되도록 노력하자”고 말했다.LS그룹과의 시너지를 통한 경쟁력 강화도 주요 과제로 제시됐다. 김 사장은 “LS그룹의 유일한 금융사로서 본원 경쟁력을 끌어올리고, 그룹의 브랜드 가치 제고에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며 “각 사업부가 그룹과의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고 이를 실행으로 옮겨야 한다”고 덧붙였다.신년사를 마무리하며 김 대표는 “손자병법에 ‘동주공제(同舟共濟)’라는 말이 있다. 같은 배를 타고 강을 건너기 위해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한다는 뜻”이라며 “LS증권은 고객 성공을 위해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며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2025.01.03 10:48

2분 소요
2025년 경제도 전쟁도, '트럼프 입'에 달렸다

국제 경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미국 제47대 대통령에 재선됨에 따라 전 세계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가져올 국가전략과 대외정책, 그리고 궁극적으로 국제질서의 변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것이 곧 세계 경제의 흐름 자체를 바꿀 수 있어서다. 또한 장기화되고 있는 러시아·우크라이나와 중동 지역의 두 전쟁은 여전히 세계 경제에 있어 가장 큰 위험요소로 작용 중이다. 2025년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변수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2기 트럼프 '자국 우선주의' 강화, 여파는?트럼프가 돌아왔다. 그는 그동안의 미국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색깔이 다른 지도자다. 강력한 관세 정책 및 보호무역주의를 바탕으로 언제나 자국에 최우선한 정책을 강조한다. 그의 이런 기조는 이번에도 이어질 전망이다. 그는 선거 때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혹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를 내걸었다. 이는 경제적 내셔널리즘의 특징을 보인다. 여기에 더해 트럼프 전 대통령이 또 어떤 자국 보호주의 제도를 도입할 지 전 세계는 긴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선 미국 내 제조업 육성에 심혈을 기울일 것이라고 전망하는 분위기다. 정구연 강원대 정치외교학과 부교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국제주의 질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라며 "이는 지금의 중국이 국제주의 질서 속에서 강대국으로 부상한 반면,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미국의 제조업이 약화했다는 분석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트럼프 전 대통령 선거 캠프는 이번 대선에서 경합주였던 미시간·펜실베이니아·조지아·위스콘신 등의 블루컬러 저소득 계층을 겨냥한 정책들을 구체화했다. 또 우선적으로 그의 정책은 미국의 제조업 기반 확충을 목표로 하며, 미국의 국경보호, 그리고 중동에서의 전쟁 종식을 선거 동안 지속적으로 강조했다. 정 부교수는 "제조업 기반 확충 정책은 미국으로의 온쇼어링, 해외 에너지 의존도 축소, 해외 투자 기업 보조금 철폐, 인공지능 등 신흥기술 관련 탈규제를 통한 미국의 경쟁력 확보 등의 정책으로 이미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전쟁 역시 올해 글로벌 경제를 좌우할 핵심 요소 중 하나다. 2022년 2월 러시아군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곧 3년이 된다. 이란은 지난해 10월 1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시설을 공격하며 중동전쟁을 일으켰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회장은 “우크라이나와 중동에서 벌어지는 전쟁이 제2차 대전 이후 세계경제에 가장 위험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2022년 러·우 전쟁이 발생하자 국제 곡물·에너지 시장이 들썩거리는 등 세계 경제에 충격을 줬다. 러시아는 서방국들의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맞대응하기 위해 유럽에 가스 수출을 중단했다. 유럽 국가들은 러시아 가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서 에너지 공급난이 발생했고 추운 겨울을 보내야만 했다.에너지 수입원을 러시아에서 중동 지역으로 바꾸는 작업도 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생한 러·우 전쟁은 세계 물가를 상승시키는 데 일조했다. 중동전쟁 역시 유가 상승의 기폭제가 됐다.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 두 전쟁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높다. 그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푸틴과의 친분을 과시해 왔다. 그는 당선될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겠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엄태윤 한양대 국제학대학원 글로벌전략·정보학과 교수는 "트럼프 정부는 바이든 정부와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에 개입하지 않고 러시아 쪽에 유리한 방향으로 종전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크라이나 정부는 세계패권 국가인 미국의 지원 없이 전쟁을 수행하기가 어렵다"며 "푸틴도 트럼프와 대화할 의지를 표명하고 있으므로 향후 러·우 전쟁이 끝날 가능성이 크다. 전쟁이 종료된다면 에너지난, 곡물 가격 인상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라고 덧붙였다.중동전쟁도 화해 국면으로 돌입한 모양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선거 전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에게 “내가 당선되면 대통령 취임 전까지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 달라”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지난 26일(현지시간) 네타냐후 총리는 영상 연설을 통해 "미국의 제안으로 이란과 휴전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13개월만의 휴전이다. 그는 "우리는 미국의 완전한 이해 속에 레바논에서 완전한 행동의 자유를 유지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엄 교수는 "트럼프는 현재 진행되는 두 개의 전쟁을 종식하는 데 여러 노력을 기울일 것이고 전쟁이 끝날 경우 지정학적 리스크가 해소돼 글로벌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AI 시대 전환’ 공식화...어떤 변화 올까2025년 글로벌 경제를 움직일 변수로는 실물 경기, 지정학적 분쟁, 글로벌 공급망 변화, 미국 대선 후 정책, 디지털 기술혁신 등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그중에서도 AI와 로봇 기술은 꼭 눈여겨봐야 할 중요한 요소다. 2024년 노벨 과학상 주역도 AI였다. 노벨 과학상 3개 분야 중 물리학, 화학 등 2개 분야를 석권했다. 노벨위원회가 AI 연구에 상을 몰아준 것은 ‘AI 시대 전환’의 공식화로 해석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최연구 부경대 과학기술정책학과 겸임교수는 올해 AI·로봇 기술 가속화가 크게 ▲생산성 향상 ▲노동시장 재편과 일자리 지형 변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등장과 산업 구조 변화 ▲소비 패턴과 트렌드 변화 등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최 교수는 "2025년에는 AI·로봇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가시화하면서, 긍정적, 부정적 영향 및 부작용이 점점 더 뚜렷해질 것"이라며 "생산성 향상, 산업 구조 개편은 미래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지만, 동시에 노동시장 재편과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계별 대응책도 미리 준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2024.12.02 07:00

4분 소요
중동 긴장감 고조...유가 오르고 韓수출 기업도 '덜덜'

산업 일반

중동 확전에 대한 긴장감이 커지는 가운데, 국내 수출 기업들의 수익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직접적인 공급망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나 생산비·운송비·물류비와 같은 간접비가 치솟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지난 1일(현지시간) 이란은 이스라엘을 향해 탄도미사일을 대규모로 발사했다. 이는 4월 미사일과 드론으로 이스라엘을 공습한 지 5개월 만이다. 이에 이스라엘도 이란에 대형 보복 공격을 암시하면서 중동 전쟁 발발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특히 이스라엘은 보복 타깃으로 석유 시설 등을 꼽은 것으로 전해진다. 2일 뉴욕타임스 보도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이란의 군사기지뿐 아니라 석유 생산 시설을 공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중동 전쟁 촉발 위기에 최근 하락세를 보이던 국제 유가가 상승세로 바뀌었다. 7일 기준으로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0.90% 오른 배럴당 74.38달러, 영국 브렌트유는 0.55% 오른 배럴당 78.05달러를 기록했다. 국제 유가 상승으로 국내 기업 생산비용에도 부담은 커질 전망이다. 최근 국내 유가는 10주 연속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지만, 국제 유가 상승세가 국내로 영향을 미치는 2~3주 후에는 국내 가격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특히 중동 3대 해상 원유수송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이번 무력 충돌로 봉쇄될 경우, 유가 상승은 더욱 불가피해진다. 세계 석유 20~30%가 호르무즈 해협을 지나가는데 아시아 국가의 수입 원유 80%가 이 수송로를 통과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매해 치솟는 해운운임 상승에 국제 유가 상승 등으로 국내 기업들이 물류비 폭탄을 맞을 게 우려되는 상황이다. 삼성·LG전자, 이미 운반비 50%이상 상승해상 수출 비중이 큰 국내 가전업계 역시 노심초사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 상반기에만 운반비로 1조3615억원을 지출했는데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63% 증가한 지출이다. LG전자 역시 상황은 같다. LG전자는 올 상반기 기업설명회(NDR)를 통해 신규 반기 수출물량 계약분의 해상운임이 직전 대비 58% 증가했다고 밝혔다. TV, 냉장고 등 부피가 크고 무거운 가전제품의 특징상 항공보다는 해상 운송 비중이 큰 가전업계는 해상운임, 물류비 상승이 수익성에 영향을 크게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중동전쟁이 지속되면 가전업계 외에도 국내 전 산업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 산업연구원(KIET)가 내놓은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우리 산업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국지전으로 유가가 배럴당 97.5달러까지 상승할 경우, 전 산업 0.7%, 제조업 1.2%, 서비스업 0.32%의 생산비용 상승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되고, 전면전으로 커지며 유가가 115달러까지 오를 경우에는 전 산업 1.49%, 제조업 2.57%, 서비스업 0.69%의 생산비용이 상승한다. 또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되면 유가는 약 148.5달러까지 상승할 수 있고, 이는 전 산업 생산비용의 3.02%, 제조업 5.19%, 서비스업 1.39%가 오를 것으로 예측한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 교수는 “중동 확전은 국제 유가 상승 및 글로벌 교역 감소를 야기하기에 무역의존도 75%에 달하는 우리나라 기업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다”며 “운반비, 물류비가 50% 가까이 상승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24.10.07 17:17

3분 소요
간 큰 개미들 폭락장에 ‘줍줍’...삼전·SK하닉, 동반 급반등 [증시이슈]

증권 일반

지난 5일 폭락했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다음날인 6일 장 초반 반등하고 있다. 개미들이 대폭락 장 속에서 이틀 사이 3조 8000억 원 넘게 주식을 사들인 영향으로 풀이된다.이날 오전 9시 40분 기준 삼성전자의 주가는 전 거래일 대비 4.06% 상승한 7만4300원에 거래되고 있다. 전날 삼성전자의 주가는 10.30% 하락한 바 있다. 지난 2008년 10월 24일 금융위기 시기에 13.6% 폭락 후 16년 만에 최대 낙폭이며, 직전 고점인 지난달 11일 8만8800원 대비 25% 하락한 수치다.SK하이닉스는 전 거래일 대비 5.19% 오른 16만4200원에 거래 중이다. 전날 SK하이닉스는 9.87% 하락했으나 이날 반등에 성공하면서 낙폭을 일부 회복했다. 전날 국내 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 하락폭이 과도했다는 인식이 확대되면서 매수세가 모이는 것으로 풀이된다. 개인 투자자들은 지금을 바닥으로 판단하고 주식 매수에 나섰다. 지수가 가파르게 떨어진 만큼 저가 매수 기회로 본 셈이다. 급락 후 급등이 나타날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작용했다.특히 시총 1위 삼성전자를 1조 8739억 원이나 사들였다. SK하이닉스도 7411억 원 순매수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만 2조 6150억 원 넘게 사들인 셈이다.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가 하락은 경기침체와 중동전쟁 우려 속에 엔비디아 차세대 AI 가속기인 블랙웰 출시 지연 우려 때문”이라면서도 “경기침체가 없다는 가정하에 삼성전자 주가는 과매도 구간에 진입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 24년간(2000~2024년) 삼성전자 주가가 10% 이상 급락한 7차례의 경우 이후 3개월 주가는 평균 22% 상승했다”고 설명했다.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어제와 같은 주가 급락은 이례적이고 또 과도하다”며 “시장 일각에서는 현재의 AI 열풍이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하다고 판단하는 듯하지만, 펀더멘털이 견조했던 닷컴 버블 초기의 삼성전자 주가 급락(2000.04.17 -12%)은 이후 한 달간 25% 반등(4거래일간 +10%)하며 되돌림 됐던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어 “시장 참여자들은 이번 주가 급락 원인을 엔비디아의 블랙웰 출시 지연, 경제 지표 둔화, 기타 수급적인 이슈 등에서 찾고 있지만 이러한 이슈들은 삼성전자의 펀더멘탈과 큰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2024.08.06 09:52

2분 소요
방심은 '金물?'...금값된 '금', 고점 주의보

증권 일반

중국 인민은행이 최근 ‘금 사재기’에 나섰다. 중국의 부동산, 주식 시장이 침체에 빠지자 갈 길 잃은 중국 자본이 상대적으로 안전자산인 금으로 쏠리고 있는 것이다. 중국 경제위기, 중동전쟁 위험과 같이 글로벌 지정학적 리스크에 금값이 金값이 되자, 이번에는 금 관련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자들이 몰리고 있다.28일 한국투자신탁운용에 따르면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상장 원자재 ETF의 평균 순매수액 17억원을 크게 웃도는 415억원을 국내 금현물 ETF를 순매수하는데 사용했다. 현재 국내 최대 원자재ETF는 '금'이 됐다.보통 기준금리가 내려가면 자연스레 국채수익률이 떨어지고 금의 가치는 오르게 된다. 다른 안전자산인 국채수익률, 달러가치와 반비례 관계를 보인다.현재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전망이 하반기로 후퇴했지만, 여전히 인상 가능성은 적다는 점에서 금값이 아직 올라갈 공간이 있다는 평가다. 월가에선 올해 금값이 25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보고 있다.일례로 29일 오후 3시 기준 미국 시카고상품거래소 온스당 금값은 2344달러에 거래 됐다. 2000달러 선에서 공방을 주고받던 금값은, 지난달 방어선을 돌파 후 파죽지세로 상승 중이다젊은 층을 중심으로는 이미 오를대로 오른 가격에 1그램 전후 단위를 찾는 경우도 있다. 0.5그램, 1그램 등 저중량 골드바 자동판매기를 설치한 한 편의점에 따르면 구매고객의 절반은 2,30대였다고 한다 주먹밥 살 돈을 아껴, 적은 중량의 순금을 차근히 사들이는 '금챌린지'를 SNS에 인증하기도 한다.하지만 금값의 앞 길에는 金길만 있을까?금이 사상 최고가를 돌파했다는 점을 들어 일각에서는 금값 고점론을 말하기도 한다. 투자자들 중 일부는 오를대로 오른 금의 대체 상품으로 은이나 구리 등의 상품에 눈을 돌리기도 하며, '가상 세계의 금'이라 불리는 비트코인도 최고가 돌파 후 홍콩 ETF 발매 등의 호재에도 지지부진한 흐름을 보이기 때문이다.특히 미 연준은행의 금리 조정에 따라 원자재 EFT는 급등하락의 요인이 됨으로 안전한 투자전략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방심은 '금물'이다온라인 이코노미스트

2024.04.29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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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발발’ 이스라엘에 韓 대기업 법인 8개…삼성만 5곳

IT 일반

한국 대기업이 이스라엘에 운영 중인 현지 법인이 총 8곳이란 조사가 12일 나왔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적으로 공습했다. 전쟁 발발 후 한국 기업에 발생한 피해는 아직 없다. 다만 관련 기업들은 무력 충돌 사태를 주시하며 직원 안전 확보 등을 위해 현지 상황을 지속해 확인하고 있다.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는 국내 82개 그룹의 이스라엘 법인 현황을 분석해 이날 발표했다. 82개 그룹은 지난해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집단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 중 ▲삼성 ▲SK ▲LG ▲OCI가 이스라엘 법인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4개 그룹이 운영 중인 이스라엘 법인은 총 8곳으로, 5곳의 삼성이 가장 많았다. 나머지 그룹은 각 1곳씩 현지 법인을 운영 중이다.삼성이 보유한 이스라엘 법인 3곳은 삼성전자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삼성 일렉트로닉스 베네룩스’를 통해 운영된다. 구체적으로 ▲마케팅을 담당하는 삼성 일렉트로닉스 이스라엘 ▲연구개발(R&D) 거점 삼성 세미컨덕터 이스라엘 R&D센터 ▲카메라 사업을 하는 코어포토닉스가 삼성 일렉트로닉스 베네룩스를 통해 운영되고 있다. 이밖에 ▲하만 베커가 직접 지배하는 오디오 생산 업체 ‘레드 벤드’ ▲삼성바이오에피스가 이스라엘서 운영하는 바이오 업체 ‘삼성 바이오에피스아이엘’이 있다.SK그룹 중에선 SK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 이스라엘이 현지에 설립됐다. SK하이닉스가 미국에 세운 SK 하이닉스 낸드 프로덕트 솔루션을 통해 지배하는 회사다.LG그룹에선 LG전자가 2021년 인수한 이스라엘 자동차 사이버 보안 기업 사이벨럼이 이스라엘 현지 법인으로 이름이 올라 있다. 이 회사는 텔아비브에 본사를 둔다. OCI그룹 계열사 부광약품은 최근 의약품 연구 및 개발사업 업체인 프로텍트 테라퓨틱스를 이스라엘 현지에서 인수해 해외법인으로 편입했다.오일선 한국CXO연구소 소장은 “숫자만 보면 국내 그룹이 이스라엘에 진출한 해외계열사는 다소 적은 편”이라면서도 “전쟁이 길어지거나 중동전쟁으로 확전될 경우 국내 기업에 미치는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질 수 있어 상황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23.10.12 1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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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일쇼크에서 시작한 석유비축기지 건설 41년만에 마무리

정책이슈

전세계 자원 전쟁이 다시 불거지고 있는 요즘, 정부가 추진해온 석유비축기지 건설 사업이 41년 만에 마무리됐다. 2016년 착공한 울산 비축기지 건설이 완료되면서 우리나라의 석유비축 계획 추진이 41년여 만에 실현된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석유공사는 19일 석유공사 울산지사에서 울산 석유비축기지 준공식 열고 석유비축기지 시설의 일부를 공개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는 울산 석유비축기지(저장능력 약 1030만배럴) 준공을 포함, 전국 비축기지 9곳(구리·거제·곡성·동해·서산·여수·용인·울산·평택)에서 총 1억4600만배럴의 저장 능력을 확보하게 됐다. 정부가 현재 비축 중인 석유는 총 9700만배럴에 이른다. 이 비축양은 국제에너지기구(IEA) 국제기준을 적용해 추산하면 외국에서 석유 추가 수입이 없다는 가정 하에 우리나라 국민이 106일 정도 사용할 수 있는 양이다. 여기에 민간 보유량(약 1억배럴 추산)까지 합산하면 약 200일 버틸 수 있는 양이다. 정부는 1980년부터 석유비축기지 건설을 추진해왔다. 1970년대에 세계 석유 파동을 두 차례나 겪으면서 전략을 수립하게 됐다. 1차 석유파동은 1973년에 발생했다. 제4차 중동전쟁 발발 후 페르시아만 연안의 6개 산유국들이 가격 인상과 생산 감축으로 석유를 무기로 사용하는 전략을 썼다. 이로 인해 선진국들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경제불황과 물가상승이 동시에 발생하는 상태)이 발생했으며 우리나라도 물가 급등과 무역 적자 급증을 겪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하는 시기여서 석유 파동의 충격이 컸다. 5년 뒤인 1978년 이후 2차 석유 파동이 발생했다. 1978년 이슬람 혁명을 일으킨 이란의 석유 수출 중단 선언,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 1981년 사우디아라비아의 석유 무기화 선포 등 일련의 사태로 석유 값이 천정부지로 급등했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는 당시 정치적 혼란에 경제적 오일 쇼크까지 겹치면서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실업률과 물가 상승, 환율 급등 등을 겪어야 했다 이에 우리나라는 1980년부터 석유비축계획을 세우고 석유비축사업을 추진해왔다. 그 일환으로 2016년 울산 비축기지 지하공동 건설에 착수한 것이다. 정부는 이날 준공식에서 비축기지 건설에 기여한 손준택 석유공사 차장 등 총 8명에게 산업부 장관과 석유공사사장 표창을 수여했다. 이와 함께 시공사인 SK 에코플랜트, 설계·감리를 맡은 삼안과 벽산엔지니어링, 터널굴착공사·기계설비공사 협력사 동아지질과 유벡에 감사패를 전달했다. 박기영 산업부 제2차관은 “3년 만에 국제유가가 최고에 이르고, 최근엔 요소수 등 원자재에 대한 수급 불안정 사태가 나타나는 등 에너지와 주요 원자재의 수급 불안정성이 갈수록 증가하는 시기에 에너지 자원을 비축하는 석유저장시설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됐다"고 축사했다. 이날 준공식엔 박기영 산업부 제2차관을 비롯해 이채익 의원, 권명호 의원, 울산광역시 부시장, 석유공사 사장 및 비축건설 관련 기업 임직원들이 참석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1.11.20 13:00

2분 소요
미국 주도 평화 ‘팍스아메리카’, 아프간 사태로 신뢰 금가나 [채인택 글로벌 인사이트]

전문가 칼럼

아프가니스탄이라는 작고 가난한 나라가 세계 정치사의 흐름을 온통 뒤바꿀 태세다. 미국이 아프간 철수 과정에서 계획적이고 조직적이며 질서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지극히 혼란스러운 상황을 연출하면서다. 이 과정에서 나온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미국 국익’ 중심과 아프간 정부와 국민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발언 등으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전 세계에서 타격을 받고 있다.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는 이렇게 금이 가기 시작하는 것일까.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독일 나치즘과 이탈리아 파시즘, 일본 군국주의 등 비인륜적인 권위주의 세력에 승리를 거둔 미국이 강력한 경제력과 군사력, 그리고 민주주의와 합리적 제도를 바탕으로 전 세계 질서와 평화를 이끈 지 75년이 지났다. 그동안 남베트남 패망이나 도널드 트럼프의 이기주의적 국제 정책 등 숱한 시련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미국이 신망을 잃기는 처음이다. ━ 아프간 난민, 지역문제와 국제문제 유발 할 수 있어 아프간은 국제사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아도 지정학적 위상은 대단하다. 남아시아(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부탄 등으로 이뤄진 인도아대륙)와 중앙아시아(우즈베키스탄·카자흐스탄·타지키스탄·키르기스스탄·투르크메니스탄), 중동(이란과 서쪽의 아랍권)을 잇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내륙국가인 아프간은 파키스탄(2670㎞)·타지키스탄(1357㎞)·이란(921㎞)·투르크메니스탄(804㎞)·우즈베키스탄(144㎞)·중국(91㎞) 등 6개국은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이 국경을 넘어 난민이 넘쳐 나갈 경우 지역 문제와 국제 문제를 유발할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이란을 지나면 터키 국경을 만나고 터키는 그리스와 불가리아를 비롯한 유럽연합(EU) 국가들과 이어진다. 과거 시리아 내전으로 발생했던 시리아 난민이 터키와 그리스를 지나 육로로 발칸 국가, 해로로 이탈리아로 들어가면서 유럽 전역에 난민 사태를 유발했다. EU 국가들은 터키에 거액을 지급하고 난민 수용을 부탁했다. 터키의 발언권이 강해질 수밖에 없다. EU는 국경을 넘어 들어온 난민의 관리와 수용을 각 회원국에 분담시켰다고 두고두고 갈등과 불화의 소지를 남겼다. 비교적 경제적 능력이 부족한 동유럽과 부유한 서유럽 사이에는 이 문제를 두고 아직도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난민 문제는 평등·인권·인도주의를 비롯한 유럽의 가치관을 둘러싸고 서유럽과 동유럽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이 되고 있다. 미국은 아프간 난민 문제와 관련해 다문화주의·박애주의를 비롯한 공허한 이론이나 동정론을 포함한 감상적인 접근을 할 경우 유럽과 간극을 더욱 넓힐 수 있다. 유럽이 아무리 진보주의자의 아성이라고 해도 국가주의자도 상당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자, 또는 극우세력은 이미 난민 문제를 정치적 발판으로 삼아 세력을 확대하고 있다. 여기에 지리적으로 대서양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사이에 두고 있어 육로를 이용한 아프간 난민 문제에 비교적 자유로운 미국이 유럽에 ‘도덕적’ 훈계라도 할 경우 그 반발이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럴 경우 미국은 중동은 물론 동맹 지역인 유럽에서도 신망을 잃고 영향력을 상실할 가능성이 크다. 아프간 문제와 난민 사태는 팍스 아메리카의 종말을 앞당기는 요소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적으로 고찰해도 팍스 아메리카는 수명을 다하고 있다. 19세기 나폴레옹 전쟁(1803~1815년) 이후 2차대전 종전까지 130년 이상 글로벌 패권국으로 자리 잡았던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를 잇는 것이 팍스 아메리카다. 팍스 브리타니카 시대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 직전인 1913년 대영제국은 당시 본국과 자치령, 식민지를 포함해 세계 인구의 23%에 이르는 4억1200만 명을 거느렸다. 1차대전 직후인 1920년에는 세계 육지의 24%에 이르는 3599만㎢의 영토를 지배해 전성기를 맞았다.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란 말이 틀리지 않았다. 1876~1948년 영국 군주가 인도 제국의 황제 지위를 누리면서 ‘대영제국’으로 불린 영국은 단순히 영토·인구에서만 대제국의 면모를 보였던 게 아니라 군사력과 경제력, 그리고 과학기술에서도 세계를 주도했다. 이를 바탕으로 영국은 언어와 문화를 전 세계에 확산했으며, 헌법·의회민주주의·선거제도·법률시스템·교육제도도 세계 곳곳에 심었다. 개인의 원리, 인권 의식도 함께했다. 나폴레옹 제국이 자유·평등 등 프랑스 혁명의 유산을 전 유럽에 확산한 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전 세계에 유럽의 합리주의를 퍼뜨린 것이다. 사실 아프간도 영국과 관련이 크다. 아프간은 영국의 번성과 쇠락의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1823~1973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던 바라크자이 왕조는 영국에 저항과 굴복을 바복했다. 이 왕조기 지배하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영국은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하려는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고 있었다. 식민지 인도(현재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스리랑카·네팔 포함)에서의 이익을 지키고 이란에서 입김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중앙아시아의 작은 이슬람 국가를 점령하며 영토를 확장해온 러시아는 이란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시도한 데 이어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의 접점인 아프간에 눈독을 들였다. 영국은 아프간을 완충 국가로 삼아 인도에서의 이익을 지키는 전략을 구사했다. 아프간이 중국과 국경을 맞댄 것도 당시 영국이 러시아와의 완충지대로 삼기 위해서였다. 아프간은 동북부에 길고 좁게 촉수처럼 뻗은 길이 350㎞, 너비 13~65㎞의 ‘와한(와칸으로도 씀) 회랑’을 통해 중국으로 연결된다. 이 회랑은 영국과 러시아가 제국주의 경쟁인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19세기 말 아프간 영토가 됐다. 러시아가 1893년 아프간 북쪽 동타지키스탄을 병합하면서 영국령 인도와 국경을 맞닿게 되자 영국이 이 지역을 아프간에 통합해 완충지대로 삼으려고 했다. 이런 지정학적 이유로 탈레반이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면서 국경을 맞댄 중국의 신장위구르 자치구에 이슬람주의를 확산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 지역의 무슬림 주민을 동요시킬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와한 회랑은 산중 벽지로 인구가 희박한 데다 교통도 불편하기 짝이 없다. ━ 국경 맞댄 위구르에 이슬람주의 확산 어려워 와환 회랑의 북쪽은 강을 사이에 두고 타지키스탄과 접경하며, 남쪽은 험준한 힌두쿠시 산맥이 솟아 있다. 동쪽 끝에 있는 험준한 와흐지르 고개를 통해 중국과 연결된다. 붉고 뾰족한 돌산으로 둘러싸인 와흐지르의 국경은 이미 오래전에 폐쇄됐다. 차량이 다닐 수 있는 변변한 접근조차 없다. 한때 서방 정보기관들은 이 회랑을 통해 아프간에서 양귀비를 재배해 생산한 헤로인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다고 경계했지만, 워낙 벽지라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결론 내렸다. 차라리 다른 나라를 통과하는 데 더욱 수월하다는 이야기다. 탈레반이 이렇게 고립되고 막혀 있는 국경을 뚫고 신장 위구르에 침투해 지역 무슬림을 부추기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럴 이유나 여유도 없어 보인다. 중국은 아프간 북부의 자원개발에 투자한 드문 나라의 하나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영국은 아예 아프간을 지배 아래에 두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1차 아프가니스탄 전쟁(1839~1842년)을 치렀지만 험한 산악 지형 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일단 밀려났다. 하지만 1878~1880년 제2차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아프간을 보호국으로 뒀다. 식민지는 아니고 바라크자이 왕조의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형태였지만 외교권은 영국이 보유했다. 다른 나라, 특히 러시아와 동맹을 맺거나 그 군대를 주둔시켜 영국을 견제하려는 시도를 원천 차단하기 위한 침략이었다. 영국은 이렇게 30여년 간 허수아비 군주를 내세워 아프간을 보호령으로 두면서 인도를 러시아의 입김에서 지킬 수 있었다. 제1차 대전이 끝난 직후인 1919년 영국이 재정적으로 힘든 상황에서 아프간의 바르카자이 왕조는 영국에 대항해 제3차 아프간 전쟁을 일으켰다. 국제 정세를 정확히 보고 영국의 힘이 빠질 때를 노린 셈이다. 영국은 산중 험지인 아프간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으며, 그레이트 게임을 벌이던 상대방인 러시아의 로마노프 왕조는 1917년 혁명으로 무너졌다. 당시 러시아는 볼셰비키를 지지하는 적군과 이에 대항하는 백군 간에 치열한 내전이 벌어진 상태였다. 영국이 애초 인도를 러시아의 도전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시작한 아프간 보호국화는 더는 필요성도 없어진 상태였다. 영국은 그 이후로도 패권 국가의 지위를 유지했다. 정작 영국의 팍스 브리타니카가 무너진 것은 2차대전 뒤인 1956년이었다. 영국은 식민지 독립과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한 정부 부채, 그리고 국력 쇠약과 미국의 부상 등으로 글로벌 패권국가로서의 지위를 사실상 잃었다. 하지만 국제 정책에선 여전히 패권국가인 양 행동했다. 여기에서 문제가 생겼다. 1956년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대통령(1918~70년, 재임 56~70년)이 아랍민족주의에 따라 영국과 프랑스가 운영하던 수에즈 운하를 국유화하겠다고 발표했다. 지정학적 요충지인 수에즈 운하가 해당 국가의 소유로 넘어가게 되자 영국은 펄쩍 뛰었다. 과거 수에즈 운하는 영국 식민지인 인도와의 거리를 좁히고 경제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필수적인 지정학적 요충지였고, 건설 자체가 제국주의 이익을 위한 활동이었다. 수에즈운하는 완공 당시인 1869년 제국주의 국가였던 영국·프랑스가 아시아 식민지와의 거리를 줄이고 경제적·국제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려고 건설했다고 볼 수 있다. 이 건설로 영국과 식민지 인도, 프랑스와 식민지 인도차이나와의 거리는 1만㎞가 단축됐다. 하지만 인도가 1947년 8월 15일 독립(인도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등이 분리해서 독립했다) 하고서도 영국 지도층의 생각을 과거의 지정학적 공식에 사로잡혀 있었다. 수에즈운하는 제국주의와 무관하게 20세기 들어 1956 ~59년과 67~75년 두 차례나 폐쇄됐다. 전쟁 때문이었다. 56년 6월 26일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18~70년, 재임 56~70년) 대통령이 영국 소유이던 수에즈운하의 국유화를 선언하자 영국·프랑스·이스라엘이 56년 7월 26일 수에즈운하 지구를 침공하면서 제2차 중동전쟁(수에즈 동란)을 일으켰다. 항공모함·전함·순양함·잠수함에 공수부대를 동원한 영국·프랑스는 군사적 승리를 거두고 운하 주변을 점령했다. ━ 영국 ‘수에즈 위기’와 닮은 미국 ‘아프간 철퇴’ 하지만 외교에선 수세에 몰렸다. 당시 미국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1890~1969년, 재임 53~61년)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해결하라고 3국을 압박했다. 유엔은 특별 긴급총회를 열고 11월 2일 즉각 정전을 요구하는 총회 결의 997호를 채택했다. 사면초가 신세가 된 영국과 프랑스는 11월 6일, 이스라엘은 같은 달 8일 각각 정전에 동의했다. 시나이반도에 휴전선을 긋고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제1차 유엔긴급군(UNEF)을 평화유지군(PKO)으로 파병했다. 유엔평화유지군의 기원이다. 당시 캐나다 외무부 장관으로 이를 제안한 레스터 피어슨(1897~1972년)은 이듬해인 57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영국과 프랑스는 미국을 설득하지 못하고 유엔과 국제사회의 압박을 받아 수에즈운하에서 철수하면서 강대국 지위의 상실을 절감했다. 이로써 지정학적 요충지를 선점하고 군사력과 경제력을 내세우며 약소국의 주권을 무시하던 제국주의 시대는 사라졌다. 대국과 소국 개념도 시효를 마쳤다. 힘으로 남의 나라와 국민을 깔보고 괴롭히는 식민주의도 종말을 고했다. 유엔이 창설되면서 국제사회엔 주권존중·호혜·평등·상호존중·공존공영의 시대가 열렸다. 제국주의의 시대가 끝나고 세상이 바뀌었다. 냉전이 가속하면서 세계 각국은 미국과 소련의 우산 아래에서 국제관계를 추구하게 됐다. 수에즈 위기는 현재의 우리에게도 중요한 국제관계의 교훈을 안겨준다. 글로벌 패권은 군사력·경제력 넘어 도덕성과 국제사회의 지지 확보가 필수적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미국의 아프간 철퇴는 영국의 수에즈 위기와 많이 닮았다. 군사력과 경제력이 아무리 강해도 글로벌 패권을 유지하고 전 세계가 따를 국가가 되기는 쉽지 않다. 국익만 내세운다는 점에서 트럼프와 별 차이가 없는 바이든이 어떻게 이런 시대를 조정할지 우려된다. 전 세계가 팍스 아메리카의 운명을 살펴보고 있다. 아프간이 아무리 작은 나라이고 전략적인 가치가 떨어진다고 해도 미국이 이렇게 무참히 폐기하듯 포기하는 것은 문제가 크다. 최소한의 도덕성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상원 법사위원회를 거쳐 외교위원회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바이든은 도대체 그동안 무엇을 배웠던 것일까. 만일 팍스 아메리카가 종언을 고한다면 대놓고 ‘아메리카 퍼스트’를 주장하면서 표를 구했던 트럼프 때문이 아니라, 위선적으로 ‘미국이 돌아왔다’고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아무런 준비도 배려도 하지 않고 아프간을 버린 바이든 때문이라고 역사가 기록할지 모른다. 지금이 그 고비다. 하지만 바이든이 어떤 변명으로도 잃어버린 미국의 신뢰를 되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미국에 대한 세계의 신뢰는 이미 큰 금이 갔고, 팍스 아메리카 시대는 위기에 처했다. 2021년 아프간 사태가 몰고 온 결과다. ※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ang.co.kr

2021.08.29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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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성지(聖地)에 진동하는 화약 냄새

전문가 칼럼

거룩한 종교 성지에 화약 냄새가 진동한다. 유대교·기독교·이슬람 등 유일신을 따르고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여기는 ‘아브라함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 다시 갈등의 시발점이 되고 있다. 예루살렘은 종교 성지일 뿐 아니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역이 모두 헌법상 수도로 선언한 정치적인 갈등 지역이기도 하다. 2021년 5월 예루살렘은 갈등과 분쟁, 그리고 유혈극의 발화점이 되고 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인 하마스가 로켓탄을 이스라엘로 쏘고 이스라엘이 전투기를 출동시켜 인구 밀집 지역인 가자지구를 공습하는 피투성이 힘겨루기가 이곳에서 불붙었다. 왜 성스러운 지역에서 이런 일이 시작됐을까? 중동에 강하다는 AFP통신과 카타르에 본부를 두고 아랍어·영어 등 다국어로 송출하는 글로벌 방송인 알자지라, 독일의 DW, 프랑스의 프랑스24 등 비교적 중립적인 국제채널을 중심으로 그간의 상황과 배경을 짚어본다. ━ ‘성전산’서 벌어진 폭력사태 사태의 시작은 토지를 둘러싼 송사였다. 예루살렘 구시가지에서 북쪽으로 2㎞ 떨어진 ‘셰이크 자라’ 지역의 유대인 정착민들이 이 지역에 사는 팔레스타인인을 퇴거시켜달라고 재판을 걸면서 시작됐다. 이곳은 이른바 ‘동예루살렘’으로 불리는 지역이다. 이스라엘이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승리한 뒤 점령한 지역 중 자국에 편입한 곳이다. 그 뒤 유대인들이 이 지역의 팔레스타인인을 퇴거시키고 유대인 지역으로 만들려고 50년 이상 시도해왔다.유대인들은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다. 일부 유대인은 토지와 건물을 점거한 뒤 퇴거를 거부하고 버텼다. 과거 오스만튀르크가 이 지역을 지배하던 시절의 문서를 입수해 유대인이 살던 토지임을 증명하고 팔레스타인인을 밀어내기도 했다. 유럽 등에 살던 유대인이 유대국가 건설을 위해 이곳으로 귀환하기 전에도 이 지역에는 적지 않은 유대인들이 거주했던 역사적 사실을 이용한 것이다. 이스라엘 법원이 이런 재판에서 유대인의 손을 들어주며 분쟁에 불씨가 붙었다. 셰이크 자라 지역의 토지를 둘러싸고 제기한 소송에서 이스라엘 법원은 지난 1월 유대인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을 계기로 ‘셰이크 자라’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의 또 다른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팔레스타인인들은 불만이 폭발했다.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서 폭력 사태가 계속됐다.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대법원에 항소했지만 심리가 미뤄지면서 다시 불만이 터져나왔다. 그러다 5월 7일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충돌했다. 팔레스타인 무슬림(이슬람 신자)들은 이날 예루살렘 성전산에 위치한 알아크사 모스크에 모여 단식월인 라마단 종료 전 마지막 금요 기도회를 열려고 했다. 라마단은 신앙고백·기도·기부·성지순례와 함께 ‘이슬람의 다섯 기둥’으로 불리는 종교적 의무다. 낮 시간 동안 단식하며 신앙을 다진다. 라마단 등 이슬람 종교 행사는 태음력인 이슬람력을 바탕으로 한다. 서양 달력인 그리고리우스력을 기준으로 하면 매년 바뀔 수밖에 없다. 올해의 경우 대략 4월 12일 저녁부터 5월 12일 아침까지이다. 이슬람은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주류 종교다. 2018년 미국 매체 알모니터의 추정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출신의 약 79%가 무슬림, 20%는 기독교 신자, 1%는 드루즈다. 기독교 신자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외국으로 떠나는 비율이 높아 현재 팔레스타인 자치지구는 인구의 90% 이상이 무슬림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무슬림이 알아크사 모스크에 모여 기도회를 열려던 날짜다.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다. 이슬람 수니파에선 라마단이 시작된 지 27번째 날인 이날을 ‘라일라트 알카드르(권능의 밤)’라고 부른다. 신앙심 깊은 무슬림은 이날을 기도가 가장 잘 받아들여지는 날로 여긴다. 장소도 중요하다. 알아크사 사원은 이슬람 창시자 무함마드가 하늘로 승천해 믿음의 성인들을 만났다는 자리에 건설한 거룩한 사원이다. 이슬람 경전인 쿠란의 17장 1절은 “알라는 그의 종을 데리고 밤에 성스러운 예배당으로부터 우리가 정결하게 한 멀리 떨어진 예배당에까지 오셔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조짐을 눈으로 경배하도록 하여 주셨도다”라고 기록한다. 이슬람에서는 이를 ‘알이스라 왈미라지’라고 부르는데 서구에서는 통상 ‘밤의 여행’으로 번역한다. 메카에 살던 무함마드가 천마 부라크를 타고 순식간에 ‘가장 먼 모스크(아랍어로 알마스지드 아크사)’로 여행한 것을 가리킨다. 무함마드는 이곳에서 다른 예언자들을 만나 기도를 인도했다고 한다. 무슬림들은 여기서 말한 ‘가장 먼 모스크’를 실제 세계의 예루살렘 성전산의 한 지점으로 여겨 서기 705년에 이곳에 같은 이름의 알아크사 사원을 지었다. 무슬림들은 이를 실제 세계와 영적 세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내용으로 여긴다 이슬람 세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날에 그토록 거룩한 성지인 알아크사 앞에서 기도회를 열려던 팔레스타인 무슬림은 이스라엘 경찰의 제지를 받았다. 앞서 예루살렘과 서안지구에선 폭력 사태가 계속 빚어졌기 때문에 ‘예방차원’이라며 기도회에 참석하러 온 사람들을 해산하려고 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고무탄을 쏘는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돌과 병, 그리고 폭죽을 던지며 저항했다. 팔레스타인인이 220여 명의 부상했다. 다음 날인 8일엔 철야 대치 끝에 121명의 팔레스타인인이 부상했고 이스라엘 경찰관 17명도 다쳤다. 충돌이 심화한 것은 알아크사 사원이 있는 성전산은 고대 유대교 성전이 있던 곳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솔로몬 대왕이 세운 제1 성전이 기원전 957~기원전 586년에, 페르시아의 군주 키루스(구약성서엔 고레스로 표기)가 건설을 승인한 제2 성전이 기원전 516년~기원 70년 성전산에 있었다고 믿는다. 성전이 로마군에 의해 마지막으로 무너지고 남은 서쪽 벽이 바로 ‘통곡의 벽’이다. 전 세계로 흩어진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기를 기원할 때 목적지로 상정했던 곳이다. 성전산은 넓지 않다. 언덕 위에 서쪽이 488m, 동쪽이 470m, 북쪽이 315m, 남쪽이 288m인 마름모꼴의 평지가 펼쳐져 있는 게 전부다.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에게 양보하기 어려운 역사적·종교적 성지인 셈이다. ━ 2개 정파 분열된 팔레스타인… 온건파 파타, 강경파 하마스 2002년 마드리드 회의 이후 평화중재 작업을 계속해 온 ‘중동 콰르텟(사중주단)’인 미국·러시아·유럽연합(EU)·유엔은 이날 모두 폭력 사태에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교황도 폭력 중단을 호소했다. 하지만 이런 호소는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요일인 9일 저녁에는 동예루살렘의 여러 곳에서 이스라엘 경찰과 팔레스타인 청년들이 다시 대치했다. 이스라엘은 금요일과 토요일을 쉬고 일요일에 한 주가 시작된다. 시위는 월요일 아침에도 계속돼 395명이 부상하고 이 중 200명은 입원했다. 5월10일이 되자 사태는 극도로 심각해졌다. 이날이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의 날’로 부르는 국경일이기 때문이다. 이날은 1967년 6월 6일 ‘6일전쟁’ 당시 예루살렘 점령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스라엘은 태음력과 태양력이 섞인 유대력(히브리력)을 쇠기 때문에 올해는 5월 9~10일이다. 이스라엘 당국은 충돌을 피하기 위해 유대인의 행진을 중단시켰다. 이날은 이스라엘의 유대인에겐 자랑스러운 날이지만, 팔레스타인에겐 분노를 유발하는 날이다. 양측의 분쟁의 기원은 1947년의 유엔 분할안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유엔 임시위원회가 채택하고 유엔총회가 통과한 결의안 181호는 팔레스타인을 유대 지구, 팔레스타인 지구, 그리고 유엔이 관리하는 예루살렘으로 분할했다. 이를 바탕으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아랍 국가들이 공격해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했다 이스라엘 독립전쟁으로 불리는 1차 중동전에서 승리한 이스라엘은 독립을 확고히 했다. 아랍권의 요르단은 팔레스타인 지구인 요르단강 서안과 동예루살렘을, 이집트는 가자지구를 각각 점령했다. 이들 지역에서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생각은 누구도 하지 않았다. 아랍은 이스라엘을 타도한 뒤 팔레스타인 국가를 세울 생각을 했겠지만 유대인은 만만하지 않았다. 전쟁 뒤 이스라엘은 유대인 지역 전체와 서예루살렘을 확보했다. 사실 요르단과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이 유대교와 이슬람 모두의 성지란 점을 감안해 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 도시에서 전투를 벌이지 않기로 비밀협약을 맺었다. 대신 도시를 이스라엘이 지배하는 서쪽과 요르단이 통치하는 동쪽으로 나눴다. 유대인이 많이 거주하는 서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인이 다수인 동예루살렘을 요르단이 통치하게 됐다. 지리상으로나, 인구상으로 합리적인 타협안이었다. 그러나 동·서 예루살렘 분할은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군사적인 타협안에 불과했다. 게다가 이스라엘은 1967년 6일전쟁에서 승리하면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 그리고 가자지구를 모두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점령지로 관리했지만, 예루살렘을 하나로 통합했다. 예루살렘은 주변 지역을 합쳐 이스라엘을 구성하는 6개 ‘구역(지방행정구역)’의 하나가 됐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과 분리될 수 없는 불가분의 영토이자 수도’로 본다. 팔레스타인도 예루살렘을 수도로 보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에서 명분까지 부딪힐 수밖에 없다. 점령된 팔레스타인은 1987~1993년 제1차 티파타(봉기)를 통해 국제적인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1993년 미국 등이 개입한 오슬로 합의를 통해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 자치정부를 세울 수 있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서안지구에 쿠드스(예루살렘의 아랍어) 주를 세웠다. 이 주는 과거 동예루살렘으로 불리던 옛 요르단령 예루살렘을 포함했다. 이는 이스라엘의 행정구역과 겹친다. 자치정부는 이를 감안해 이 주를 J1과 J2로 나눴다. 이스라엘이 실효 지배를 하는 지역이 J1이고 나머지 지역은 J2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현실적으로 요르단강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라인는 2개의 지역과 이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는 파타와 하마스라는 2개의 정파로 분열됐다는 사실도 이번 사태의 원인을 제공했다. 파타와 하마스는 서로 사뭇 다르며 서로 적대적이기까지 하다. ‘승리’라는 뜻의 파타는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이끌던 야세르 아라파트가 1957년 설립한 정당이다.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온건파이며, 1993년 오슬로 협정에서 합의한 ‘2국가체제’를 지지한다. ‘2국가 체제’는 이스라엘과 장래 들어설 팔레스타인 국가가 평화롭게 안전하게 공존하는 방안을 가리킨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한 나라를 구성하는 ‘1국가 체제’나, 이스라엘과 서안지구, 가자지구가 각각 병립하는 ‘3국가 체제’와 대립하는 개념이다. 파타는 정치적으로 중도좌파로 분류되며, 세속주의와 온건 민족주의를 지향한다. ‘이슬람 저항운동’의 아랍어 머릿글자를 딴 하마스는 1987년 이슬람주의자 아흐마드 야신이 무슬림 형제단의 팔레스타인 지부를 바탕으로 설립한 정파다. 이념과 정책에서 파타와 극과 극이다. 대이스라엘 정책에서 강경파다. 이스라엘을 타도하고 전체 팔레스타인 지역을 ‘해방’하는 게 목표다. 따라서 ‘2국가체제’를 거부한다. 철저한 반유대주의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무장투쟁을 주도한다. 하마스는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을 상대로 한 자선사업으로 민심을 얻었다. 이들은 예루살렘에 대한 생각만 동일하다. 아랍어로 알쿠드스로 부르는 예루살렘은 팔레스타인의 수도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갈등은 사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 폭격 시작한 하마스, 이스라엘도 보복 나서 하마스는 5월 10일 이스라엘이 성전산에서 보안 병력을 철수하지 않으면 상황이 악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런 뒤 이스라엘로 150발 이상의 로켓을 발사했다. 이스라엘은 즉각 전투기를 동원해 보복에 나섰다. 하마스가 지배하는 가자지구에 130회에 이르는 폭격을 가했다. 가자지구에는 거제도(379㎢)와 비슷한 365㎢의 좁은 땅에 대부분 난민인 200만의 팔레스타인인이 거주한다. 이곳을 폭격하면 민간인에 대한 부수적 피해는 불가피하다. 이스라엘은 ‘군사 목표물’을 겨냥했다고 발표했지만, 하마스는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를 강조한다.이스라엘은 하마스가 발사한 로켓을 대공방어체계인 아이언 돔으로 잘 방어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지역 매체인 중동뉴스는 하마스의 로켓 발사가 이제 시작이라고 지적한다. 하마스가 한 발에 600달러 정도의 비용이 드는 로켓탄을 15만발정도 비축해 앞으로 다량·장기 공격을 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루 1000발 정도를 발사한다면 이스라엘의 아이언 돔도 제대로 방어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이스라엘 방산업체인 라파엘과 IAI가 개발한 아이언 돔은 4~70㎞ 거리에서 발사돼 단거리 로켓과 포탄을 차단한다. 주·야간 전천후로 가동하는 이 시스템은 탐지거리 4~350㎞의 레이더와 사거리 4~70㎞의 타미르 미사일, 분당 1200개의 목표물을 처리하는 컴퓨터 시스템으로 이뤄졌다. 발사대가 대당 5000만 달러 이상, 요격 미사일은 기당 2만~5만 달러로 알려졌다. 700만원짜리 미사일을 6000만원짜리 미사일로 막는 형국이다. 이스라엘군이 날아오는 로켓의 궤도를 보고 인구 밀집지역으로 오는 것만 골라 요격하고 빈터로 가는 것은 그냥 두는 이유다 중동에는 전쟁의 불씨가 여전히 잠복해 있다. 채인택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2021.05.15 13:57

8분 소요
[채인택의 글로벌 인사이트 | 요르단 왕실의 갈등과 국제 정세] 요르단 왕실이 권력투쟁해도 국제 지지를 받는 이유
서방세계의 정보 채널이자 중동 난민의 피난처로 평가 받아 중동의 ‘뼛속까지 친미국가’인 요르단의 하심 왕가에서 승계와 관련된 갈등이 되풀이되고 있다.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59·재임 1999~)의 이복동생인 함자 왕자(41)가 쿠데타 시도설 속에 계속 가택연금을 당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면서 왕가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 관광이 주요 산업인 요르단은 코로나19로 인한 주민 봉쇄와 경제난으로 3월에는 수도 암만 등에서 항의 시위도 이어졌다.요르단 왕실의 불안이 표면화한 것은 지난 4월 3일이었다. 요르단 국왕의 이복동생인 함자 빈 후세인이 쿠데타 기도로 짐작되는 정치적 움직임에 연루돼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고 영국 BBC 방송 등이 보도하면서다. BBC는 요르단 보안당국이 이날 수도 암만의 함자 왕자의 거처에 들이닥쳐 그를 사실상 구금하고 있다고 전했다. AP·로이터 통신은 함자 왕자와 함께 바셈 아와달라 전 재무장관과 왕실의 일원인 샤리프 하산 벤 자이드도 체포했다고 보도했다. 왕정국가인 요르단에서 왕실 일원이 보안당국에 체포되거나 구금되는 일은 이례적이다.함자 왕자는 영국 BBC 방송이 입수한 영상에서 자신이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고 밝혔지만 쿠데타에 연루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함자 왕자는 요르단군 참모총장이 3일 오전 일찍 자신을 찾아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사람들을 만나거나 통화하지도 말라고 요구했다고 전했다. 함자 왕자는 참모총장이 자신에게 국왕을 비난하는 여러 부족 모임에 참석한 것에 대한 처벌을 받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자신은 어떠한 모의에도 참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하지만 함자 왕자는 대놓고 요르단의 현실을 대놓고 비판했다. “우리나라의 통치 시스템에 지난 15∼20년간 문제가 있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통치 실패, 부패, 무능이 가중됐지만 그 책임은 내가 아닌 의지가 부족한 기관의 책임자들에게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국민의 안위는 통치 시스템의 뒷전으로 밀려났다”며 “사익과 금전적 이득, 부패가 1000만 국민의 삶과 존엄, 미래보다 더 중요해졌으며 그 결과 우리는 희망을 잃었다”고 말했다. 함자 왕자는 동영상에서 거처의 전화와 인터넷도 끊겼다고 말했지만 이 동영상이 어떻게 BBC에 전달됐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 함자 왕자가 쏘아 올린 요르단의 부정·부패 이날 요르단군은 함자 왕자가 체포됐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신 국가가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데 이용될 행동을 중지할 것을 함자 왕자 측에 요구했다. 군은 함자 왕자와 측근, 그리고 관련자들을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왕실 일원인 함자 왕자의 권위를 존중하되 그의 행동에 경고를 보낸 셈이다.함자 왕자는 5일 왕실 내부의 중재로 압둘라 2세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자신에 대한 처분을 국왕에게 맡기며 헌법을 따르겠다고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함자 왕자는 삼촌인 하산 왕자를 만난 뒤 입장을 바꿨다. 하산 왕자는 전임 후세인 1세 국왕의 동생으로 1947년부터 1999년 1월까지 왕세제를 맡다가 폐위되고 왕위승계권자 자리를 조카인 압둘라 2세에게 넘겼다. 옥스퍼드대 출신으로 왕실에서 가장 엘리트로 평가 받는다.궁정 권력투쟁은 일단락돼 보이지만 함자 왕자가 언급한 요르단의 근본적인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요르단에선 지난 3월 14일 수도 암만에서 주민들이 코로나19에 따른 봉쇄와 경제난, 의료 사고 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유 있는 시위였다.전날 요르단 국립병원에서 코로나19 중증 환자 7명이 산소 공급 중단 사고로 숨지는 일이 벌어져 민심이 악화했다고 AP·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했다. 앞서 3월 13일 암만 서부의 알후세인 알살트 병원의 코로나19 환자와 임신부용 집중치료실(ICU)에 산소 공급이 1시간쯤 끊겼다. 이 국립 병원은 요르단 정부가 수백만 달러를 들여 건립했으며 지난해 8월 개원했다.사고가 나자 요르단 정부는 즉각 고개를 숙였다. 압둘라 2세 국왕이 직접 병원을 찾았으며 병원 입구에서 책임자에게 왜 이런 사태가 벌어졌느냐고 물었다. 사건의 심각성을 인지한 것이다. 요르단의 비셰르 알 하사우네 총리는 정부에 책임이 있다며 공식 사과한 데 이어 사고 책임을 물어 나티르 오베이닷 보건부장관과 보건부 차관 3명을 한꺼번에 경질했다. 요르단 경찰은 병원 책임자 5명을 체포해 조사하고 있다.사실 요르단의 코로나19 상황은 심각하다. 인구 1000만의 작은 나라에 4월 9일까지 확진자가 65만5456명, 사망자가 7565명이 발생했다. 4월 8일에만 4775명의 확진자가 발생했다. 3월 17일 하루에만 9535명의 확진자가 나올 때보다는 조금 줄었지만 여전히 심각하다.관광이 재개되지 않는 이상 경제사정이 올해도 나아질 전망이 없다. 요르단은 여전히 안개 속에 남았다. 그동안 겉으론 중동에서 가장 안정적인 나라라는 평가를 받아왔던 요르단이 코로나19로 한계상황에 직면하는 나라가 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 왕세제 자리를 두고 다툼 벌인 요르단 왕실 왕실의 불화가 이미 오래 전부터 잠복해왔기 때문이다. 압둘라 2세는 1999년 부왕인 후세인 1세(1935~1999년, 재임 1952~1999년)가 별세하면서 국왕에 올랐다. 압둘라 2세의 승계에는 2가지 독특한 점이 있었다. 우선 1965년 왕세제를 맡아 34년 동안 왕위계승 예정자로 있던 동생 하산(73)을 1999년 1월 25일 폐위하고 아들인 압둘라를 왕세자로 세웠다는 사실이다.사실 하산은 요르단 왕실인 하심 가에서 가장 공부를 잘했다. 형인 후세인 1세가 다녔던 영국 런던의 해로스쿨을 마치고 옥스퍼드대 크라이스트처치 칼리지에서 동양학을 전공해 우등 졸업했다. 일찍이 험악한 중동정세를 경험한 후세인은 영민한 후계자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후세인 국왕은 후계자를 동생 하산에서 아들 압둘라로 교체한 지 불과 2주 만에 세상을 떠났다. 게다가 후세인은 압둘라에게 배다른 동생인 함자를 왕세제로 삼으라고 요구했다. 1952년부터 47년 동안 요르단을 통치했던 4대 국왕 후세인이 1999년 1월 25일 별세하면서 압둘라 2세 국왕이 즉위하고, 그의 이복동생인 함자가 왕세제를 맡았다. 압둘라 2세는 어머니가 영국인, 함자는 미국인이다.하지만 함자의 왕세제 자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압둘라 2세가 2004년 11월 함자를 왕세제에서 폐위했다. 당시 국영방송에서 낭독한 압둘라 2세 국왕의 편지는 “상징적인 자리가 너의 자유를 속박해왔다”며 “네게 맞는 자리에서 일할 자유를 주자”고 왕세제 폐위 이유를 밝혔다.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요르단 헌법은 국왕의 장남이 부왕이 별세하면 왕위를 승계하도록 되어 있어 자신의 아들인 후세인(26)이 자동으로 법적인 계승권자가 됐다. 후세인 왕자는 2009년 7월 공식적으로 왕세자에 올랐다. 요르단의 궁중 투쟁은 2004년 왕세제이던 이복동생 함자를 폐하고 2009년 아들 후세인을 왕세자로 책봉하며 이미 시작됐다고 볼 수 있다.왕실의 이런 갈등에도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서방과 중동 이슬람 국가는 여전히 요르단 왕실을 지지한다. 인구 1000만의 중동의 작은 왕국 요르단의 궁정 투쟁에 서방과 이스라엘 언론은 연일 속보를 보도했다. 이는 요르단이 서방의 대중동 정책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의 대이슬람권 군사·정보 대리인 첫째는 요르단이 중동 군사·정보 분야에서 미국의 충실한 대리인 역할을 꾸준히 해왔다는 점이다. 1952년 설립된 요르단 종합정보부(GID)는 왕실을 지키는 핵심 기관으로 평가 받지만 동시에 중동에서 미국을 겨냥한 반미 테러를 사전에 적발하는 데도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다.대표적인 사례가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미국 중앙정보국(CIA) 채프먼 기지에서 자폭한 알카에다 삼중스파이 후맘 칼릴 아부무달 알발라위 사건이다. 알발라위는 팔레스타인 난민을 부모로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요르단에서 자라고 터키에서 공부한 의사 출신이다 요르단에서 알카에다 인터넷 선전요원으로 일하다 체포됐다. 요르단 정보부인 GID는 그를 전향시킨 뒤 이중스파이로서 알카에다에 침투시키는 임무를 부여했다.이 작전을 맡은 요르단 정보요원은 샤리프 알리 빈 자이드라는 고위 가부로 왕족인 것으로 전해졌다. 알발라위는 아프가니스탄에 파견돼 그곳에 숨어있는 것으로 알려진 알카에다 2인자 아이만 알자와히리를 찾는 임무를 맡았다. 하지만 알발라위는 사실은 알카에다의 3중 스파이였고, 채프먼 기지에서 자폭하면서 CIA 요원과 요르단 정보부 요원 등 14명을 폭사시켰다.이 사건은 2010년 미국 매체들에 의해 상세하게 보도됐다. 당시 대중은 삼중 스파이라는 화제성에 관심을 집중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대이슬람권 정보수집과 작전, 그리고 공작에서 요르단 정보부인 GID가 얼마나 깊숙이 개입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요르단은 중동 대테러작전의 주역이다.요르단이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난민 수용이다. 1000만 국민 중 220만이 팔레스타인 난민으로 등록돼 있다. 요르단은 최근까지 자국에 거주하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원하면 국적을 부여해왔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이 자치 국가를 꾸리는 등 변화가 생기면서 경계를 맞댄 팔레스타인 서안지구 주민이 요르단에 들어와 국적을 얻는 것을 막고 있다.사실상 팔레스타인과 요르단은 지리적으로나, 주민들의 언어·문화 측면에서나 동질성이 강하다. 지리적으로는 요르단 강을 사이에 두고 서쪽은 시스요르단, 동족은 트란스 요르단으로 불려왔다. 라틴어로 시스는 이쪽, 트란스는 저쪽을 의미한다. 해상이나 해안에서 볼 때 요르단강의 이쪽이고 저쪽이라는 의미다. 제1차 세계대전 뒤에 프랑스가 지금의 시리아와 레바논, 영국이 옛 오스만튀르 영토인 이라크와 시스요르단, 트란스요르단에 각각 주둔했다.트란스요르단은 영국의 지원으로 나중에 요르단이라는 독자 왕국으로 자리 잡았다. 시스 요르단은 1947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분할하는 방안이 유엔에서 나왔지만 아랍권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듬해 이스라엘이 독립을 선언하자 아랍권이 침공해 전쟁이 벌어졌다. 전쟁 뒤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동예루살렘은 요르단이, 가자지구는 이집트가 각각 차지했다가 19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했다. ━ 팔레스타인·시리아 난민 수용 보금자리 역할 이 때문에 1948년 1차 중동전쟁 직후엔 지금 이스라엘이 차지한 영토에 살던 팔레스타인 주민이, 1967년 3차 중동전쟁 이후엔 요르단강 서안지구에 살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대거 요르단으로 몰려왔다. 1991~92년 걸프전 이후엔 쿠웨이트에 살다 이라크 침략군을 환영했던 팔레스타인 주민이 쫓겨나면서 요르단으로 몰려왔다.이런 과정을 거쳐 팔레스타인 주민은 난민이 돼 전 세계에 퍼졌으며, 같은 아랍어를 쓰는 중동에 많이 정착했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깝고 1948~1967년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점령했던 요르단에 많이 몰렸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 구호사업기구(UNRWA)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난민은 전 세계에 540만명이 있으며, 이 가운데 요르단에 220만 정도가 거주한다. 등록된 난민 기준이다. 난민으로 등록하지 않고 요르단이 사는 팔레스타인 출신이 얼마나 되는지는 알 수 없다. 요르단은 압둘라 2세 국왕의 부인인 왕비부터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이다. 팔레스타인 난민 중 요르단 국적을 얻은 사람을 통합하고,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의 귀화를 억제하는 것이 요르단의 국가 정책이자 생존 전략으로 자리 잡고 있다.난민으로 등록하면 주거·식량·의료·교육 등에서 UNRWA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UNRWA는 유엔난민기구(UNHCR)와 별도로 팔레스타인 난민만 맡는 기구다. 1949년 설립돼 2020년 예산이 8억6000만 달러에 이르며, 주로 팔레스타인 난민들인 3만 명의 직원이 일한다. 이스라엘 건국과 유지 과정에서 생긴 팔레스타인 난민을 전 세계 각국이 분담금을 낸 유엔이 먹여 살리는 셈이다.요르단은 팔레스타인 난민뿐 아니라 국경을 맞댄 시라아에서 내란으로 발생한 난민 중 140만 명을 수용하고 있다. 공식 등록된 난민은 65만 명이지만 2015년 인구 센서스에서만 126만 명이 파악됐으며 지금은 140만 정도로 추산된다. 364만 명의 시리아 난민을 수용한 터키에 이어 둘째로 많다.이뿐만 아니다. 과거 이라크 전쟁이나 내전, 이슬람국가(IS)의 모술 지역 점령 당시 발생한 이라크 난민도 상당수가 다녀갔다. 120만 명 정도가 왔다가 지금은 거의 귀국한 상황이다. 다만 귀국해서 박해를 받을 가능성이 많은 이라크의 칼데아 기독교도 2000여 명은 요르단에 정착했다.요르단은 종교적 도그마가 비교적 적고, 왕실이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주의자들을 막아주면서 중동에서 인도주의적인 피난지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적으로 구분할 수 없는 팔레스타인 난민, 전란으로 인한 시리아와 이라크 난민에 이어 종교적 박해를 피해 정착한 이라크 기독교도 난민까지 자유와 안전을 찾아 이주하는 등 수많은 사람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요르단은 중동의 ‘수도’로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서방이 요르단에 주목하는 이유다.※ 필자는 현재 중앙일보 국제전문기자다. 논설위원·국제부장 등을 역임했다.

2021.04.10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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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호 (2025.4.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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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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