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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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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슐랭 선정 7년...금돼지로 '명품 삼겹살'을 만들다[이코노 인터뷰]

유통

몇 년 전 한 요리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의 식당 외벽에 미슐랭 가이드 배지가 붙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것이 ‘최고의 식당’으로 인정받는 길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미슐랭 가이드 배지는 많은 요리사와 외식업 관계자들이 꿈꾸는 목표다. 약수역의 한 거리. 이 요리사의 꿈이던 미슐랭 가이드 배지가 무려 7개나 붙어있는 가게가 있다. 누군가에게는 꿈같은 일이 이곳에서는 7년째 벌어지는 일상 같은 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곳이 고급 레스토랑이 아니라 평범한 ‘삼겹살집’이라는 점이다. 이곳은 ‘삼겹살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며 수년째 ‘줄서는 식당’으로 큰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박수경 금돼지식당 대표(40)는 어떻게 이곳을 ‘명품 삼겹살집’으로 만들었을까. 미슐랭 선정 7년...‘명품 삽겹살’을 만들다박수경 대표와 인터뷰를 하기 위해 평일 낮 3시쯤 금돼지식당을 찾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난 시간이지만 입구는 여전히 문전성시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총 3층으로 이뤄진 건물은 전 층이 고객용 좌석으로 구성됐다. 1층과 3층은 홀좌석, 2층은 바테이블 형식으로 구성돼 가운데서 직원들이 고기를 구워주는 식이다. 눈길을 끄는 점은 어마어마한 직원 수다. 홀에 보이는 직원 수만 대략 20명 정도다.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 방식이라 직원 수가 많을 수밖에 없다. 점장에게 물어보니 주방직원과 아르바이트생까지 하면 약 40명 정도란다. 내부는 고객으로 가득 찼다. 이렇게 장사가 잘 되는데 가게를 알리려 굳이 언론 인터뷰를 할 이유가 있을까. 점장은 “대표님이 40명을 먹여 살리려면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고 하신다”며 웃었다. 다음은 박수경 대표와의 일문일답.Q.직원 수가 굉장히 많다. -아르바이트생까지 포함하면 한 40명 정도 돼요. 지금 직원 몇 명은 오픈 준비 중인 대만점(해외 1호점) 오픈을 위해 자리를 비운 상태고요. 일단 인터뷰 제안이 오는 것 자체가 감사하죠. 저희가 뭐라고...이렇게 시간 내서 찾아주시는데 안 할 이유가 없어요. Q.줄을 선 고객들이 대부분 외국인이던데.-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명인(베컴, BTS, 블랙핑크, 지드래곤(GD) 등)들이 다녀간 것이 컸어요. 또 입소문 영향도 무시 못하는 같고요. 예전에 1층에서만 금돼지식당을 운영하던 때였어요. 하루는 일본 고객들이 단체로 오신 거예요. 저희 가게가 알려지기 전이라 저희 모두 의아해했죠. 알고 보니 이 근처 장충체육관에서 장근석 팬미팅이 열린 거였어요. 다녀간 일본 고객들이 입소문을 내줬는지 이후에도 일본 손님들이 많이 왔어요. 이런 것들이 쌓이고 쌓여 입소문을 타고 외국인들 사이에서 식당이 유명해진 부분이 있죠. 낮 시간대에는 주로 관광을 온 외국인들이 주 고객이지만 저녁 시간에는 한국 고객들이 더 많아요. Q.미슐랭 가이드 빕 구르망(Bib Gourmand)에 7년 연속(2019~2025) 선정된 영향도 있을 것 같다. 선정 당시 기분이 어땠나.-정말 기분이 좋았어요. 저희가 2016년 4월에 금돼지식당을 오픈했는데 당시에는 미슐랭 가이드가 한국 식당 평가(2018년부터 시작)를 하기 전이거든요. 그때 남편이 휴대폰에 미슐랭 배지를 배경화면으로 해놨었어요. 뭐 언젠가 저 배지를 받겠다는 포부 정도였죠. 그런데 정말로 저희가 미슐랭 가이드에 선정이 된 거죠. 얼마나 좋았겠어요. 미슐랭 가이드 홈페이지에 게시된 금돼지식당 평은 ‘합리적 가격에 훌륭한 음식’이다. 금돼지식당의 삼겹살(본삼겹) 1인분(150g) 가격은 1만9000원이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 기준, 올 3월 서울의 삼겹살 평균값(200g 기준)은 2만276원이다. 중량 차이를 감안해도 금돼지식당 삼겹살 가격이 특별하게 비싼 편은 아닌 셈이다. 여기에 맛을 고려하면 이 가격은 제법 합리적이라는 것이 미슐랭의 평가다. 또한 미슐랭은 금돼지식당이 ‘이전 YBD(요크셔, 버크셔, 듀록 교배)품종에서 최상급 선별육으로 변경해 풍미를 더욱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박 대표의 좋은 돼지고기 품종 고집은 금돼지식당이 맛에 있어 다른 삼겹살집들과 차별화되는 요인 중 하나다. Q.품종을 바꾼 이유가 뭔가.-4~5년 전에는 YBD품종을 썼어요. YBD품종은 듀록의 형질이 많이 나타나거든요. 저희가 추구하는 돼지맛이죠. 그런데 요크셔와 랜드레이스가 교배된 돼지를 듀록과 한 번 더 교배시킨 YLD품종은 듀록의 형질이 100% 나타나요. 훨씬 맛도 좋았고요. 그래서 비용이 더 들어도 YLD품종을 고객들에게 제공하기로 결정했어요. 저희와 계약한 전용 농장에서 100% 듀록 형질의 YLD품종은 일주일에 딱 5마리만 나올 정도로 귀해요. 싼 고기를 싼 가격에 파는 것보다 좋은 고기를 비싸게 파는게 더 낫다고 판단했죠.Q.금돼지식당만의 숙성 비법이 있나.-도축된 돼지는 마트나 식당으로 유통되는 과정에서 대부분 자연 숙성이 이뤄지기 때문에 시중에서 먹는 삼겹살은 모두 숙성돼지인 셈이에요. 다만 어떤 품종으로, 어떤 조건을 만들어 숙성시키냐에 따라 맛은 달라지죠. 기본적으로 저희는 육즙이 최대한 덜 빠지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어요. 온도나 습도 이런 조건들을 미세하게 조정해서 최대의 숙성 환경을 만드는 거죠. 아주 작은 온도 차이에도 맛의 변화가 심할 수 있거든요. 계속된 폐업, 그래도 희망을 품다박 대표가 금돼지식당 창업 전 동대문에서 도매상인들을 대상으로 배달 장사를 했었다는 것은 이미 업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는 20대 중반부터 당시 남자친구(현 남편)와 함께 과일주스, 수제버거, 뼈없는 치킨, 족발, 아구찜 등 안 해본 장사가 없다. 하지만 잇따라 폐업하며 빚이 2억원 가까이 쌓였다. 그래도 그는 절망하지 않았다.Q.왜 ‘삼겹살 가게’를 생각하게 됐나.-남편과 동대문 시장에서 도매상인들을 상대로 배달 장사를 했었는데 그때 제 나이가 겨우 29~30살이었어요. 아직도 한창 젊은데 ‘더 새로운 거를 해봐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다 계속 폐업을 하긴 했지만 장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고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삼겹살이었어요. 원래 ‘배달 삼겹살’ 업종을 한 적도 있었고 제가 원래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삼겹살이기도 해요.(웃음)Q.힘든 시기였지만 배운 점도 많았을 것 같다.-손님에 대한 소중함을 깨달은 시기였던 것 같아요. 특히 배달 장사할 때는 전화 한 통의 소중함을 깨달았죠. 당시에는 지금처럼 배달앱이 있던 것이 아니어서 전부 전화로 주문을 받았거든요. 주문 전화 하나하나가 다 소중했어요. 또 지금도 저희는 브레이크 타임과 휴일이 없어요. 손님이 저희 가게에 왔다가 문을 닫은 상태면 다른 가게로 갈 수밖에 없고 그 가게가 더 좋아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제가 지금의 남편과 장사를 하다가 결혼을 했거든요. 근데 결혼식 전날에도 새벽 5시까지 일을 했고 당일에도 일하다 결혼하러 갔어요.(웃음) 당연히 결혼식 끝나고 다시 장사하러 왔고요. 신혼여행은 언감생심이었죠. 이유는 손님이 너무 소중하니까요. Q.당시 함께 고생한 남편은 어떤 일을 하고 있나-청담동에 ‘뜨락’이라는 유명한 소고기집이 있어요. 거기 대표님과 함께 SMC라는 외식관련 회사를 만들어서 운영 중이에요. 영동장어, 제주 거부갈비, 하니칼국수 등 여러 브랜드를 관리하는 곳이에요.Q.사장이지만 여전히 테이블에서 고기를 직접 구워주는 것도 인상적이다. 손님과 일일이 대화도 나누던데.-아무래도 외국인 고객이 많아서 제가 직접 고기를 구우며 쌈을 먹는 방법이나 고기의 맛 같은 것을 설명해주는 편이에요. 또 외국인 고객들의 경우 돼지껍데기에 대한 거부감이 좀 있어요. 그들에게는 익숙한 음식은 아니니까요. 그럴 때는 간단히 ‘포크 하리보’(젤리)라고 얘기하면 다 알아듣죠.(웃음) 음 제가 되게 습자지 같은 사람이라 누구랑 대화해도 잘 어울리는 편이에요. 또 고객들과 대화하면 너무 즐겁고 행복해요. 제가 언제 또 이런 젊은 친구(고객)들과 대화를 해보겠어요. 저는 정말 이 일이 천직인 것 같아요. Q.제2의 금돼지식당을 만들려는 예비 창업자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이게 진짜 어려운 얘기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직원들한테 매일 얘기하는 것이 ‘본인의 길은 본인이 찾아야 된다’거든요.(웃음) 나의 성공방식이 꼭 다른 사람한테도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식으로 최대한 노력을 많이 하는 것이 성공으로 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굳이 조언을 하자면 진부한 말이긴 하지만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예요.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는 거 같아요.Q.금돼지식당 대만 지점(중산역 인근)이 5월 13일에 오픈한다. 첫 해외 지점으로 대만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 -일단 현지에서 고기를 안정적으로 수급할 수 있는지, 고기 퀄리티가 좋은지가 최우선 조건이었어요. 대만에 가서 테이스팅을 해봤는데 현지 고기가 저희가 추구하는 맛과 가장 흡사했어요. 또 식자재 수준이 굉장히 높았어요. 그래서 대만으로 결정했죠. 일단은 아시아 위주로 해외 지점을 낼 생각이에요. 앞으로 일본이나 중국 쪽에도 지점을 내려고 검토 중입니다.Q.앞으로의 계획은.-한국식 디저트 가게를 한 번 해보고 싶은데 생각만 하고 있어요. 일단은 금돼지식당을 잘 운영하는 것이 목표죠. 잠깐 반짝하고 사라지는 식당은 되고 싶지 않거든요. 오랫동안 사랑받기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생각입니다.

2025.05.07 06:05

6분 소요
“진짜 장어 10마리 먹는 거 맞아?”…유튜버 ‘쯔양’ 리얼 먹방 취재기

유통

‘먹방 크리에이터’ 하면 이분을 빼 먹을 수 없는데요. 바로 367만명의 구독자를 자랑하는 쯔양입니다. 쯔양은 라면 20봉지, 초밥 240 접시, 방어 10kg을 한 자리에서 먹어치우면서 유명해졌죠. 그런데도 49kg의 가녀린 몸매를 지니고 있어 뭇 여성들의 부러움을 사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그가 복귀 후 ‘소상공인 살리기’에 앞장서고 있다는데요. 위메프 상생협력팀과 손잡고 소상공인의 온라인 판로 진출을 돕고 있는 겁니다. 쯔양 역시 자신의 본명을 딴 분식집 ‘정원 분식’을 운영 중인 소상공인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소상공인의 어려움과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에 위메프 라이브커머스를 통해 선보인 라이브 방송은 많은 화제를 모았는데요. 여름을 맞아 ‘보양 특집’으로 진행된 방송에서 쯔양은 특유의 먹방을 선보이며 눈길을 끌었습니다. 평소 장어 10마리를 한 끼에 먹고 전복은 40마리까지 한 자리에서 먹어봤다는 데요. 쯔양은 이날 어떤 먹방을 선보였을까요? 또 와의 인터뷰를 통해 소상공인에 대한 마음과 본인의 매력, 다이어트 비법까지 낱낱이 공개했는데요. 그 생생한 현장 속으로 한번 들어가보시죠. 김설아 기자 kim.seolah@joongang.co.kr,이현정 인턴기자 lee.hyunjung3@joongang.co.kr,홍다원 인턴기자 hong.dawon@joongang.co.kr

2021.07.15 18:21

1분 소요
[한국 뒤흔든 ‘먹거리·생필품·질병 쇼크’ 돌아보니] 도대체 뭘 먹고 뭘 쓰라는 말인가

헬스케어

모럴해저드, 허술한 방역시스템 도마에...AI·구제역 등 가축질병 해마다 반복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 먹거리와 생필품에서 검출된 유해 화학물질, 거듭 발생하는 가축질병…. 질병·유해물질 등에 따른 공포가 커지고 있다. 남의 나라 일인 줄만 알았던 높은 치사율의 전염병이 한국을 한바탕 휩쓸고 지나갔다. 국내 방역 체계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발단이 됐다. 기업·당국의 모럴해저드와 관리 소홀 탓에 먹거리와 생활용품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 소·닭·돼지 등 가축에게 전파되는 질병 문제도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때로는 위험하다던 것이 사실 인체에 무해하다거나 괴담으로 밝혀지기도 하지만, 이미 사회에 많은 상흔을 남긴 후였다.올해도 전염병·유해물질 사태로 한국 사회가 시끄럽다. 가깝게는 계란이 문제가 됐다. 살충제를 남용하거나 쓰지 말아야 하는 살충제를 사용한 산란계 농장이 전국 곳곳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소비자들이 믿고 먹었던 친환경 인증제품도 믿을 수 없는 제품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생필품인 생리대도 논란에 휩싸였다. 일회용 생리대 제품에서 스타이렌 등 발암물질과 새집증후군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총휘발성유기화합물(TVOC)이 검출되면서다. 7월엔 덜 익은 패티를 먹고 신장이 손상된 이른바 ‘햄버거병’이 논란이 됐다. 전염병·유해물질 사태는 경제도 흔든다. 특정 제품 판매나 기업 이미지에 타격을 줄뿐 아니라, 때로는 전체 소비시장의 위축을 부른다. 이는 기업의 실적 부진이나 자영업자의 고통으로 이어졌고, 나라경제 성장에 악영향을 미쳤다. 사태가 발생할 때마다 언론에서는 경제적 손실 추정치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사태의 빈도도 잦아지는 추세다. 돌아보면 1~2년에 한 번씩은 전염병·가축질병이 유행하거나 먹거리·생필품에서 유해물질이 나오는 사건이 발생했다. ━ 모럴해저드로 위협받은 먹거리·생필품 안전 2000년~2011년 중금속 꽃게·낙지: 중국산 꽃게와 복어, 병어 등의 뱃속에서 납 덩어리가 대거 발견돼 대한민국이 발칵 뒤집혔다. 중금속에 속하는 납은 미량이라도 오랫동안 섭취할 경우 납 중독을 일으킬 수 있다. 일부 납 꽃게는 통관절차를 마치고 유통 직전에 발견돼 더욱 충격을 안겼다. 당시 납 꽃게를 먹은 임산부가 기형아 출산을 우려해 낙태수술을 받는 일까지 벌어졌다. 누가, 어떤 이유로 꽃게에 납을 넣었느냐에 대해선 밝혀지지 않았다. ‘무게를 늘리기 위해서’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다른 경쟁자를 위험에 빠뜨리기 위한 것이라는 음모론도 나왔다. 중국산 농수산물에 대한 불신이 커지자 우다웨이 당시 중국대사는 “납 꽃게에 한국인이 개입했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했다. 납 꽃게 파문이 있고 난 뒤 해양수산부는 중국과 ‘수산물 위생관리 약정’을 체결하고 금속탐지기 검사 의무화, 이중검사,수출공장 등록 제도 등을 도입했다.그로부터 10년 후인 2010년에도 수산물의 중금속 문제가 대두됐다. 서울시가 낙지머리 속 먹물과 내장에서 중금속 카드뮴이 기준치의 최대 15배 넘게 검출됐다고 발표한 것. 이후 서울시와 식약청은 안전성 공방을 벌였고 당시 식약청은 “안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논란이 지속되자 식약청은 2012년 내장을 포함한 꽃게와 낙지 등의 중금속 안전관리를 강화하는 기준을 마련했다. 2005년 기생충알 김치와 색소 장어: 2005년 10월 중국산 김치 16개 제품 중 9개에서 미성숙 기생충알이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김치는 국내산에 비해 가격이 훨씬 저렴해 대부분의 식당에 유통되고 있었던 터라 시민들 사이에서 김치 공포가 확산됐다. 이어 일부 국산 제품에서도 기생충알이 검출되면서 김치 시장은 혼란에 빠졌다. 음식점과 김치 제조업체들은 직격탄을 맞았고 국산 김치에 대한 신뢰가 하락했다. 기생충알 김치 파동으로 11월 김치 수출액이 월간 기준으로 6년 5개월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는 등 여파가 만만치 않았다.이보다 앞선 7월에는 중국산 장어에서 ‘말라카이트 그린’이라는 산업용 색소가 검출돼 파문을 일으켰다. 수정란의 소독·양식 등 과정에서 사용된 이 물질은 위험성이 높은 발암 물질로 알려져 시민들에게 충격을 줬다. 중금속 수산물에 이어 김치, 색소물질 파문이 일면서 중국산 식품 전체에 대한 불신이 번졌고, 한·중 외교분쟁 직전까지 비화됐다.2008년 멜라민 분유 파동: 멜라민 분유 파문은 2008년 중국에서 멜라민이 함유된 분유를 먹고 영아 6명 이상이 숨지고 29만 6000명의 어린이들이 신장결석이나 배뇨 질환을 앓으면서 시작했다. 이후 22개 업체의 분유에서 멜라민이 검출됐다. 바닥 타일, 주방기구, 화이트 보드 등을 만들 때 쓰이는 물질인데, 중국의 분유 생산 업체들은 우유에 물을 섞은 사실을 숨기기 위해 이 멜라민을 첨가한 것. 추후 중국의 ‘멜라민 분유’ 생산 관계자들은 모두 사형에 처해졌다. 당시 국내에선 식품의약품안전청은 파동이 일어난 지 열흘이 지나서야 해당 성분이 포함된 모든 중국산 식품의 수입을 중단해 늑장 대처라는 비판을 받았다.또 국내에서 중국산 분유와 우유, 유당 성분이 포함된 과자에서 멜라민이 검출돼 충격을 안겼다. 특히 ‘멜라민 과자’ 목록에는 롯데제과·해태제과·동서식품 등 대형 업체들이 포함됐다. 혼란에 빠진 국민들에게 식약청은 ‘하루 허용 섭취량’이라는 구체적인 수치를 들어 멜라민 공포를 잠재우고자 했다. 가령 국내 과자 중 멜라민 수치가 가장 높게 나온 품목이라 해도, 20kg짜리 어린이가 하루 15개 이상 꾸준히 먹어야 유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 번 번진 불안감은 쉽게 걷히지 않았다. 2015년 가짜 백수오 사건: 갱년기 여성에게 좋다고 알려져 홈쇼핑 등에서 붐이 일었던 ‘백수오’가 가짜라는 것이 드러났다. 백수오를 섭취한 일부 소비자들에게서 부작용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에 한국소비자원이 32개 백수오 제품의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는데, 단 3개의 제품만이 진짜 백수오를 사용했고 나머지는 ‘이엽우피소’라는 백수오와 비슷한 식물이 혼합돼 있었다. 백수오 제품 대부분을 공급하는 건강식품회사인 내츄럴엔도텍은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뒤이어 진행된 식약처의 전수조사 결과, 207개 백수오 제품 가운데 진짜 백수오만을 쓴 것은 단 10개, 5%에 불과했다.믿었던 건강식품에 배신 당한 소비자들은 백화점·홈쇼핑 등을 상대로 집단 환불을 요구했다. 내츄럴엔도텍의 주가는 한 달여 만에 80% 넘게 떨어졌다. 홈쇼핑 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백수오 제품이 주로 홈쇼핑에서 판매됐던 탓이다. 2015년 한 해 6개 홈쇼핑 업체가 환불한 금액만 417억원에 달했다. 식약처는 이엽우피소가 포함된 백수오 제품을 압류하는 등 조치를 시행하면서도 한국소비자원의 제품 점검 방법이 잘못됐고, 이엽우피소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며 엇갈린 입장을 내놨다.2016년 가습기 살균제: 지난해 검찰이 본격 수사에 착수하면서 가습기 살균제가 수면 위로 다시 떠올랐다. 가습기 참사가 알려진 지 5년 만이다. 가습기 살균제는 소리 없이 퍼지는 독성 때문에 ‘죽음의 약품’ ‘죽음의 연기’로 불렸다. 가습기 살균제를 사용한 소비자들은 원인 모를 폐병으로 죽어갔다. 폐가 점점 굳어가 약을 먹어도 회복되지 않고 결국 손 쓸 수 없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돼 버리는 ‘소리 없는 죽음’이 이어졌다. 정부는 2011년 이런 증상의 원인이 가습기 살균제 안에 들어 있는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포스페이트(PHMG) 성분임을 발견했고, 뒤늦게 가습기 살균제 6종의 제품을 수거조치 했다.그러나 당시 사건의 실체에 대한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오랜 기간 개별적인 소송과 시위를 이어갔다. 마침내 지난해 검찰 조사가 시작됐고, 이 과정에서 살균제 업체 옥시가 대학교수와 결탁해 유해성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시민들의 분노는 ‘옥시 제품 불매운동’으로 이어졌다. 국회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지원하기 위한 ‘가습기 살균제 피해 구제법’을 제정했다. 현재 공식 확인된 사망자만 239명, 신고된 피해자만 5600여 명에 이른다. 이후 살균 화학물질 문제는 치약·물티슈·화장품 등으로까지 번졌다.2004년 불량 만두 사건: 먹거리·생필품 파동 중엔 괴담으로 밝혀진 사건도 있다. 2004년 불거진 ‘불량 만두’ 또는 ‘쓰레기 만두’ 사건도 그런 사례다. 당시 언론을 통해 쓰레기로 버려야 할 자투리 무말랭이로 만두를 만든 25개 업체의 명단이 공개됐고 유통 업자들이 구속됐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뒤 관련 업체 대부분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에 보도된 무말랭이는 버리기 위해 모아 놓은 쓰레기였을 뿐 만두에 쓰이지 않았다는 게 밝혀졌다. 억울함은 밝혀졌지만 피해는 막대했다. 심한 곳은 하루 매출의 90%가 감소했고 전국 130여개 만두 제조 업체는 파산 위기에 몰렸다. 한 만두 업체 사장이 결백을 주장하며 목숨을 끊은 일까지 있었다. ━ 허술한 국내 방역 시스템 드러난 전염병 사태 2002년 사스: 2002년 사스(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가 전 세계를 덮쳤다. 한국에서는 처음엔 괴질로 불렸다. 중국 남부 광둥성 일대에서 100명 이상이 감염되고 수명이 숨진 것이 시작이었다. 그 뒤 이 전염병은 갈수록 기세를 떨쳐 중국뿐만 아니라 인근 동남아 국가와 미국, 캐나다 등 북미와 유럽 등지로까지 퍼져나가며 불안감을 키웠다. 이후 이것이 변종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호흡기 전염병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밝혀졌고,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이란 이름을 얻었다. 국내 당국에서도 괴질이라는 호칭이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언론에 ‘사스’로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WHO는 2003년 7월 5일 사스 사태의 종료를 선언했고, 한국도 이틀 뒤 비상 방역을 끝냈다. 이때까지 전 세계에서 8000여 명의 감염자와 800여 명의 사망자를 냈다.사스로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중국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스 발병으로 2003년 2분기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7.90%로 전 분기의 10.80%보다 3%포인트가량 떨어졌다. 홍콩의 경제성장률도 같은 기간 4.1%에서 -0.9%로 역성장을 했다. 아시아개발은행(ADB) 추정치에 따르면 사스에 따른 경제적 손실은 전 세계에 걸쳐 500억 달러로 집계됐다. 전파력과 치사율이 높았지만 국내엔 확산하지 않았기 때문에 홍콩과의 교역이 일부 둔화된 것을 제외하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과학적 진위는 불분명하지만, 김치가 일등 공신으로 꼽혔다. 그 덕에 김치 수출이 잠깐 늘기도 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03년 1~4월 김치 수출은 3033만 달러를 기록, 사상 최대였던 전년 같은 기간보다 38.4% 증가했다. 대(對) 중국 수출 증가율은 245.1%에 달했다.2009년 신종플루: 2009년 북미 지역으로부터 신종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번지기 시작했다. 발견 초기에는 ‘돼지 독감’이라고 불리다가, 발병원이 돼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서 이후 국내에서는 ‘신종 플루’라고 불렸다. 전 세계로 퍼지면서 214개국 이상에서 확진 판정이 내려졌고 2009년 4월부터 대유행(pandemic)이 종료된 2010년 8월까지 세계적으로 1만850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대유행은 종료됐지만, 지금까지도 세계 곳곳에서 감염자가 나오고 있다. 대유행 당시 국내에도 유입되면서 75만 명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263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정부는 첫 환자 발생 2개월 반 만에 국가 위기 단계를 ‘주의’에서 ‘경계’로 상향 조정했다. 안이한 대처로 감염자를 늘렸고, 이미 확진자가 900명을 돌파했을 때여서 당시 ‘늑장 대응’ 논란도 빚어졌다. 사망자 대부분이 고령층이었지만, 여러 사람이 함께 지내는 군대·학교 등에서 감염자가 속출하는 일이 발생했다. 항바이러스제 국내 비축분이 부족한 것도 국민의 불안을 가중시켰다. 휴교와 자택 격리 등이 이뤄지면서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꾀병’과 ‘고의 감염’ 논란이 생기기도 했다.2015년 메르스: 중동을 여행하고 귀국한 남성에 의해 국내로 유입되었던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는 격리 인원 1만 2000명, 환자 186명, 사망 38명이라는 사상 초유의 감염 대란을 발생시켰다. 이로 인해 대한민국의 일상은 무너졌다. 사람이 모이는 공식·비공식 행사, 여행이 줄줄이 취소됐다. 전국에서 2903개의 학교가 한꺼번에 문을 닫기도 했다. 메르스 외에 정부의 다른 정책들은 ‘올 스톱’ 됐을 정도였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줄고 소비자들의 소비 심리가 위축되면서 경제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정부가 추산한 사회경제적 손실은 10조원에 달한다.당시 ‘찌라시’ 등을 통해 발병 병원과 환자에 관한 허위 정보가 난무하거나 공기감염의 가능성을 경고하는 유언비어가 일파만파 퍼져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당국이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것을 두고 거센 비판이 나오기도 했다. 메르스는 한국의 허술한 방역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2016년 12월 24일 0시 기준 메르스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이후 병원에서는 환자 병문안 제한 조치가 본격 시행됐고, 정부는 방역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질병관리본부를 차관급으로 격상하고 관련법을 개정하는 등 부랴부랴 국가방역체계 개편에 나섰다. ━ 정치·경제·사회적 상흔 남긴 가축질병 2008년 광우병: 1996년 3월 영국의 보건부장관이 광우병이 인간에게 감염될 가능성을 인정해 세계 육류 업계에 커다란 타격을 입혔다. 지금까지도 광우병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광우병 소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수입산 소고기가 문제가 됐다.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이후 수입 쇠고기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달렸던 미국산 쇠고기가 2003년 미국 내 광우병이 확인되면서 수입이 전면 금지됐다가, 2008년 5월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하자 반발한 시민 수십만 명이 수 개월간 전국 곳곳에서 대규모 촛불집회를 열었다.당시 인터넷을 통한 광우병에 대한 잘못된 정보의 유포를 통해, 미국산 쇠고기는 공기로도 전염되는 광우병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 등의 잘못된 내용이 퍼지기도 했다. 이후 정부가 미국과의 추가 협상에 나섰고, 미국에서 광우병이 추가로 발생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할 수 있는 검역주권을 두 나라 쇠고기 협상 협의문에 명문화하는 것으로 광우병 파동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광우병은 한국 정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당시 막 닻을 올린 이명박 정부는 큰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또 대규모 촛불집회를 경험하면서 새로운 방식의 정치 형태를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2010년 구제역: 2010년 충남 천안시에서 발병한 구제역이 충남 지역 366곳에 퍼졌다. 정부에서는 구제역 발생 원인을 해외 유입 또는 잔존 바이러스로 추정하지만, 구체적 유입 경로는 밝혀내지 못했다. 구제역은 돼지와 소처럼 발굽이 2개로 갈라지는 동물에게 주로 발병한다. 사람에게 옮기지는 않지만, 전염성이 강해 발병과 동시에 살처분 결정이 난다. 구제역이 퍼질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예방적 살처분’을 하기도 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2010년 11월 말부터 2011년 4월 중순까지 전국을 휩쓴 구제역으로 348만 마리의 소와 돼지 등 가축이 살처분됐다. 이 과정에서 살처분보상금과 소독·방역비용, 농가 생계안정자금 등으로 총 2조7383억원의 재정 부담이 발생했다. 당시 돼지고기 값은 40% 이상 폭등했다. 가축들을 매장하는 장면에 대한 충격으로 살처분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지역 환경단체와 동물보호단체들이 무차별적인 ‘예방적 살처분’을 반대하는 시위를 하거나 일부 농가가 정부의 살처분 권고를 거부하는 일이 발생했다.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등 후유증이 심각하게 나타나기도 했다. 이는 2015년부터 가축 매물을 전문적으로 하는 용역업체에 의뢰해 살처분을 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 정부는 농장 전체 가축이 아닌 일부만 살처분하도록 가축의 살처분·매몰 범위를 조정했다. 2010년부터 구제역 백신접종도 의무화했다.2016년 AI: AI(조류 인플루엔자 또는 조류 독감)은 말 그대로 모든 조류들이 걸리는 유행성 독감이다. 가장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철새 조류의 분비물이 지목된다. 닭은 감염되면 80% 이상이 호흡곤란으로 폐사하고 전파력도 높아 거의 매년 축산농가를 괴롭히고 있다. AI가 발생했을 때의 주요 대책도 살처분이다. 백신으로는 자주 형태 변이를 하는 AI 바이러스에 대응할 수 없다는 점이 이유다. 이로 인해 AI가 발생할 때마다 양계농가의 타격이 크다. 유통시장에서도 육계 가격이 널뛰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한국에서는 2003년 처음 시작돼 지금까지 112건의 AI가 발생했다. 대규모 AI는 대략 7건 정도이다. 최근에는 거의 해마다 일어나고 있고, 지난해 말에 일어난 조류독감은 단기간에 두 가지 바이러스가 동시에 확산돼 어느 때보다 많은 살처분을 기록한 역대 최악의 수준이었다. 지난해 겨울 AI 사태 때 살처분 된 가금류는 약 3300만 마리이며 이중 닭은 2582만 마리였다. 전체 닭의 20% 정도 되는 수가 사라진 것이다. 이 중 상당수는 산란계 닭들이어서 결국 계란 파동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추산한 살처분 보상금 소요액만 2300억원을 웃돌고, 농가 생계안정 자금 등 직접적인 비용을 비롯해 육류·육가공업, 음식업 등 연관 산업에 미치는 간접적인 기회손실 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피해규모가 1조원에 육박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2017.08.27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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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소 키우지 않고 우유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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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모나 박테리아를 조작해 미세공장으로 사용함으로써 원재료를 완제품으로 바꾸는 합성생물학이 차세대 신기술로 급부상 흔히 경제 성장이라고 하면 아주 복잡한 과정을 상상하겠지만 번지르르한 얘기를 다 걷어내면 한마디로 아주 간단히 설명할 수 있다. 저가치 원자재를 고가치 상품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런 상품은 흔치 않고 사람들이 원하고 필요로 하기 때문에 가치가 높다. 지난 수천 년 동안 경제는 그렇게 돌아갔다.그러다가 디지털 경제가 등장하면서 첫 번째 변칙이 생겼다. 디지털 복제품은 결함이 없으며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아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다. 그러면서 갑자기 상품의 희소성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런 것은 전부 일회성 디지털 상품이다. 진짜 괜찮은 상품은 18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국부론’)가 이해한 것과 똑같은 규칙에 여전히 얽매어 있다.이제 좀 더 강한 도전자가 등장했다. 요즘 급부상하는 과학 분야인 합성생물학(synthetic biology)이다. 어쩌면 이 신기술이 스미스의 지배를 끝낼 수 있을지 모른다. 진짜 괜찮은 ‘상품’을 더 많이 원한다고? 그냥 키워내면 된다.합성생물학은 생명과학적 이해의 바탕에 공학적 관점을 도입한 학문으로 자연 세계에 존재하지 않는 생물 구성요소와 시스템을 설계·제작하거나 자연 세계에 존재하는 생물 시스템을 재설계·제작하는 두 가지 분야를 포괄한다. 인간의 미래를 바꿔놓을 신기술의 하나로 일컬어진다. 합성생물학을 더 쉽게 말하자면 효모나 박테리아 같은 미생물을 조작해 미세공장으로 사용함으로써 원 재료를 완제품으로 전환하는 것이다.공상과학 영화처럼 들리겠지만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빌 랴오는 아일랜드 코크에 있는 SOS벤처스의 파트너(이사)다. SOS벤처스는 인간의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물학을 활용하는 스타트업 육성에 초점을 맞추는 세계 최초의 액셀러레이터 ‘인디바이오(Indie. Bio)’의 투자기관이다. 랴오 이사는 자신이 투자하고 있는 기업 중 하나가 연간 우유 7350억ℓ를 생산하는 세계의 낙농산업을 겨냥한다고 설명했다. “세계의 우유 대부분은 넓은 들판을 돌아다니며 신선한 풀을 먹고 살져 행복한 아일랜드 젖소가 아니라 아주 열악한 환경에서 지내는 비참한 젖소에게서 얻는다. 사람들이 그들에게 항생제와 성장 호르몬을 강제로 먹인다. 산업화된 젖소의 추악한 삶이다.”인디바이오가 지원하는 회사중 하나인 무프리는 실제 우유를 인공적으로 생산함으로써 동물을 대우하는 윤리 문제를 해결한다.랴오 이사는 “무프리는 효모를 조작해 우유 단백질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젖소의 DNA를 효모 세포 속에 입하면 효모가 우유의 주요 성분인 단백질을 만들어낸다. 여기에 칼슘, 칼륨 등을 섞으면 진짜 우유 성분과 비슷해지고, 질감도 유사해진다. 지방을 적절하게 활용하면 치즈나 버터도 만들 수 있다. 무프리 측은 “두유와 같은 현재의 우유 대체품보다 훨씬 더 실제 우유와 흡사하다”면서 “동물성이 아니기 때문에 콜레스테롤이 없고 성분 조절도 가능한 만큼 우유에 소화 장애가 있는 사람도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랴오 이사는 무프리 측의 설명에 이렇게 덧붙였다. “맥주를 양조하듯이 효모의 DNA를 조작해 대형 나무통에 넣어 발효시킨다. 그러면 알코올 대신 우유 단백질인 카세인이 만들어진다. 거기에 몇 가지 미네랄과 오일, 갈락토스를 넣어 섞으면 락토스(대다수 사람은 소화하지 못한다)나 콜레스테롤이 없는 이상적인 우유가 생산된다. 우유맛도 그대로다. 열로 살균처리할 필요도 없고 젖소가 고통 받지도 않는다. 게다가 고객이 마시는 무프리 우유는 유전자 변형 부분이 전혀 들어 있지 않다. 효모의 유전자만 조작되는데 효모는 나중에 전부 걸러낸다. 이건 우유 대체품이 아니라 진짜 우유다.” 무프리는 내년 인공우유 시판을 목표로 한다.또 다른 스타트업 벤틱 랩스는 대장균(E. coli)을 조작해 먹장어가 공격당할 때 방어 기제로 방출하는 필라멘트를 이용해 새로운 고분자 화합물(폴리머)을 생산하는 방안을 연구한다. 먹장어는 위기 상황에 처하면 방어용 점액을 분사한다. 케라틴(각질 단백질)으로 만들어진 소형 필라멘트가 그 구성 성분이다. 무게 기준으로 그 필라멘트는 강철보다 5배나 강하다.1950년대 미국의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 로잘린드 프랭클린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 밝혀낸 이래 DNA 이해에서 이뤄진 큰 발전이 합성생물학의 바탕이 됐다. 랴오 이사는 “유전체의 DNA 염기 서열 분석 비용이 지난 10년 동안 1200만 배 저렴해졌다”고 말했다.아울러 오늘날의 디지털 스타트업이 무료 툴과 클라우드 컴퓨팅(창업하기 위해 독자적인 웹 서버를 소유할 필요가 없다)의 기초 위에 세워지듯이 합성생물학도 마찬가지다. 완전 자동화되고 상호 연결된 로봇 실험실, 공개소스 생물학 데이터, DNA를 기초 차원에서 합성하는 저렴한 기계는 생물학의 민주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합성생물학은 열광주의자들의 몽상도 아니다. 랴오 이사를 비롯한 스타트업 투자자과 함께 기존 금융사도 이 분야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뉴먼 하크는 실리콘밸리은행 영국 지점의 의료‘생명과학 담당 국장이다. 그는 합성생물학 분야의 전망을 조심스럽게 낙관한다.그에 따르면 합성생물학에는 비현실적인 면이 분명히 있지만 초기에 이 기술이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될 곳은 좀 더 현실적인 응용 분야다. “생물학과 의학에서 재현률(실험 결과를 반복 측정했을 때 오차 없이 일관성 있는 수치를 나타내는 정도)은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잘 생각해보면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그 기법은 사실상 지난 200년 동안 거의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반면 로봇 실험실을 사용하면 합성생물학 실험은 똑같이 수없이 반복될 수 있다. 신뢰성과 정확도가 그만큼 높아진다는 뜻이다. “프로토콜을 컴퓨터 언어로 암호화하면 실험실의 연결된 기계가 매번 정확한 시간에 작동한다.” 하크 국장은 제약사와 약품 개발과 관련된 분야가 앞으로 모든 합성생물학의 약 3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합성생물학 기술의 한가지 중요한 초점은 에너지 부문이다. 하크 국장은 “제약과 화학 부문 다음으로 생물연료에 이 기술이 적용될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에너지 부문에서 이 기술을 ‘성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그 이유를 알기는 어렵지 않다. 세계의 석유시장을 뒤흔들면 곧바로 지정학에 문제가 생긴다. 또 랴오 이사에 따르면 지금의 생물연료 생산 방식은 산업 규모도 커야 하기 때문에 비용도 많이 든다. 그렇다면 연료 수천ℓ를 생산하기 위해 대형 생물반응장치를 사용하기보다 그냥 집에서 자신이 사용할 만큼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 아닐까? 랴오 이사는 “음식물쓰레기와 물이 가득찬 167ℓ짜리 드럼통에 박테리아 여러 종을 섞어 넣어 이틀 뒤 디젤 2∼3ℓ를 얻을 수 있다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대단치 않게 들리겠지만 개발도상국에선 디젤 2∼3ℓ면 밭을 갈거나 오랫동안 발전기를 돌릴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 더 경제성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군에서도 합성생물학 기술에 관심을 갖는다. 올해 초 영국 국방과학기술실험실은 1800만 파운드를 투자해 합성생물학 기술로 장갑부품에 필요한 신소재를 개발하거나 기존 소재 생산의 비용을 낮추는 새로운 방법을 찾을 계획이라고 밝혔다. 현재 그들은 개선된 탄화붕소 장갑 소재와 연료전지 촉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랴오 이사는 합성생물학의 잠재력을 확신한다. “앞으로 컴퓨터 산업 전체보다 합성생물학에서 더 많은 수익이 나올 것이다.”- 벤 루니 아이비타임즈 기자

2016.07.25 15:02

5분 소요
서울 동교동 '스시겐'···‘지라시 스시’ 드셔 보셨나요? /유지상 중앙일보 기자

산업 일반

지라시 스시는 밥 그릇 위에 생선을 얹은 스시다. 지라시 스시에 놓인 참치·연어·장어·광어·도미·오징어·조개관자·성게알 등이 푸짐하다. 뭉친 밥 위에 날생선을 얹어먹는 스시(초밥)는 일본 음식의 꽃이다. 일본 음식점의 실력을 가름하는 기준도 스시로 집약된다. 일단 생선과 밥알의 크기를 눈으로 따져본다. 생선의 크기가 너무 크면 밥맛이 떨어지고, 생선의 크기가 작으면 회맛이 떨어진다. 검은 눈동자(밥)를 감싸고 있는 흰자위(생선)의 비율이 적당하다. 생선의 두께도 유심히 살펴본다. 종이장처럼 얇으면 씹는 맛이 덜하고, 너무 두꺼우면 입안에서 따로 논다. 생선이나 재료에 따라 차이가 있으나 2∼3㎜에서 크게 벗어나지 말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깨지거나 뭉그러진 밥알은 없는지, 밥알 사이의 공간이 일정한지, 식초와 설탕과 소금이 들어간 초밥초의 배합은 적절한지, 생선의 신선도와 숙성도가 알맞는지 등 따질 것이 꽤 많다. 스시를 잘 쥐는 일식집에선 일반적으로 지라시 스시라는 특이한 메뉴를 낸다. 지라시 스시는 밥알에 생선을 올리는 일반 스시와 달리 그릇에 담긴 밥 위에 생선을 올린 것. 생선 한두 가지를 집중적으로 올리기도 하고, 다양한 생선과 재료를 예쁘게 담아내기도 한다. 우리나라에 있는 일식집이 진짜 일식집인지 한국식 횟집인지 판단하는 기준이 되는 메뉴이기도 하다. 서울 동교동 로터리 린나이빌딩 지하에 위치한 일식 레스토랑 ‘스시겐’은 지라시 스시를 간판 메뉴로 내세우는 곳이다. 생선회·초밥·소바·냄비요리·구이요리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추고 있지만 점심시간의 인기 메뉴는 꽃초밥이란 이름의 지라시 스시. 원래 지라시 스시는 생선보다 버섯이나 계란지단 등 생선이 아닌 부재료가 많이 올려지지만, 이 집의 지라시 스시에는 참치·연어·장어·광어·도미·오징어·조개관자·성게알 등이 푸짐하다. 연어알·날치알 등을 동원해 색깔도 화려하게 꾸몄다. 밥 위에 올려진 생선 한 점을 집어 와사비(고추냉이) 간장에 찍어 생선의 맛을 즐긴 후 그 아래에 있던 따뜻한 초밥을 따로 먹는 것이 지라시 스시를 제대로 맛보는 요령이라고. 그러나 젓가락으로 생선 아래 있는 밥까지 한번에 들어올려 와사비 간장을 찍어 먹어도 무관하다. 드문드문 밥 위에 올려진 날치알과 연어알이 톡톡 터지는 재미도 있다. 값은 얹은 재료에 따라 2만원과 3만원 두 가지. 식사 위주의 점심과 달리 저녁에는 일품요리 몇 가지에 술을 즐기는 손님이 많다. 일품요리 중에 안주를 겸해 따끈하게 맛볼 수 있는 특선짱꼬냄비(1인당 1만5,000원)가 독특하다. 각종 야채와 버섯·두부를 끓여 넣은 시원한 국물에 곱게 간 닭고기와 생선으로 만든 완자를 익혀 먹는 방식인데, 일본에서는 스모 선수들이 몸보신용으로 즐기는 등 인기 있는 음식이라고 한다. 브라운 톤의 편안한 실내 인테리어와 나지막하게 흐르는 재즈 선율은 일식 분위기와 다소 동떨어진 듯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히려 살갑게 다가온다.

2004.08.13 00:00

2분 소요
자갈치 시장에 가면 꼼장어처럼 삶이 꿈틀댄다

산업 일반

"그곳에 뭐하러 가냐? 얻을 것도 없을 텐데….” “선생님, 어떤 여행이든 얻을 게 없는 여행은 한번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뭔가를 꼭 얻어 올 겁니다.” 수년 전. 인도 여행을 떠나던 날 스승께서는 화두처럼 질문을 던지셨고, 난 여행은 단지 풍경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기에 내 방식의 여행에 토를 달았었다. ‘그 곳’에 ‘그 사람’이 있기에 더 큰 의미를 갖게 되는 행로. 여행하면서 또 다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은 새로운 길을 떠나는 것만큼이나 설레는 일 아닌가. 그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태풍 직전의 이른 아침, 부산을 향해 2번 국도를 탔다. 진해를 지날 즈음 앙칼스런 바람이 벚나무들을 마구 흔들어 놓는다. 장복터널을 빠져 나와 장복산길을 오르니 울울한 벚나무 숲길이 하늘을 뒤덮는다. 간간이 폭우가 쏟아지고, 그런가 하면 어느새 자욱한 안개구름이 산과 들녘, 사람을 감싼다. 가까이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아름답고 푸근한 벚나무 숲을 벗삼아 한 모금 넘겨본다. 달고 쓴 진한 액체를 목젖에 넘기며 새삼 자연의 신비에 젖어본다. 곧 바로 발길을 옮긴 곳은 1966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을숙도다. 지난날 수인선 협궤열차 타는 것과 함께 낙동강 하구둑을 막기 전 그렇게도 가고 싶었던 곳인데, 모두 과거 속으로 사라진 지금에야 이 자리에 섰다. 그런 걸 생각하면 꼭 해보고 싶은 것이나,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면 “당장 행동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수십년이 지나도 을숙도를 그리워하고, 비릿한 생선냄새 풍기며 인천에서 수원으로 해산물 넘기러 가는 갯사람들을 태우던 수인선 협궤열차를 그리워 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낙동대교를 건너서 우회전하면 다대포 이정표와 함께 너른 백사장이 보인다. 몰운대 가는 길이다.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이면 ‘구름 속에 빠진 섬’이라는 시화적인 이름을 지니고 있다. 경관이 뛰어나 시인·묵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신석기시대에 이미 사람이 살았던 흔적인 패총이 발견되었고 태종대·해운대와 함께 부산의 3대 명소로 꼽힌다. 특히 예로부터 해운대 일출이 가장 아름답다면 몰운대는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회자되는 곳이다. 자갈마당으로 내려가자면 양쪽 바다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쪽 바다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거친 반면, 다른 쪽은 순하디 순하다. 몰운대가 있는 다대포 주위에는 멀리 남형제도·북형제도·목도·금문도·동섬·동호섬·팔봉섬·솔섬·오리섬·쥐섬·모자섬·자섬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주변을 맴돌고 있다. 다대포 가는 길에서 낙동강 저편을 보면 을숙도가 그대로 보인다. 늘 세월이 바뀌면 길도 달라지듯이 “예전에는 삐걱삐걱 노를 저으며 나룻배를 타고 을숙도를 드나들었는데” 하는 생각에 더럭 미소가 솟는다. 비둘기 모이를 사들고 용두산 공원 계단을 밟는다. 예나 지금이나 수많은 비둘기들이 무리를 지어 날개를 펴고 접는다. 여기서 가장 많은 곳을 볼 수 있는 가장 높은 곳, 부산 타워에 올랐다. 벽에 걸린 70년대 부산 정경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 자리에 서 있는 오늘의 사진들이 언젠가는 저 벽면을 채울 것”이라고. 부산에 왔으면 자갈치 시장을 놓치면 안될 터. 야시장이 열리는 자갈치에는 오늘도 고래고기가 한 광주리씩 손님을 기다리고 있고, 꼼장어는 연탄불 위에서 지글지글 연기를 내며 익어가고 있다. 포장마차 불빛이 밝아질수록 독한 소주를 한 모금에 털어 넣으며 삶의 애환을 달래는 서민들.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인생들이 꼼장어처럼 익어가고 있었다. 이젠 푸른 파도가 넘실대는 동해안을 따라 7번 국도에 올라갈 차례다. 또 어떤 새로운 길이, 인생이 반길까. 가슴이 두 방망이질을 한다. (여행가·for NWK) ■주요 통과지역: 진주~마산~진해~김해~부산 맛집을 찾아서 10년 전 가격 그대로인 조방낙지 육수에 온갖 양념을 넣고 즉석에서 볶아 먹는 낙지. 거기에 후식처럼 밥을 달달 볶아 먹는 맛이란. 여름날 이열치열 낙지를 생각하면서 부산 명물 조방낙지를 찾았다. 특히 부산의 조방낙지는 맵지 않은 고추를 써 담백하게 볶아 먹는 것이 특징이다. 일제시대 때 조선방직이 있던 자리여서 지금도 ‘조방앞’이라고 불리는 부산진구 범천동에 빈정순(73)할머니의 낙지전문집 ‘원조할매집’(051-643-5037)이 있다. 젊은 시절 미곡상을 운영하던 할머니가 낙지요리를 시작한 데는 사연이 있다. 젊은 날 여름 장마철에 두번씩이나 수해를 당하면서 전 재산을 떠내려 보낸 후 살길이 막막해 밑천 없이 시작할 수 있는 일을 찾다 낚지볶음을 생각해 낸 것. 간판도 없이 탁자 다섯개를 놓고 문을 열었다. 당시 낙지볶음 값은 자장면 값 정도. 세월이 흐르면서 조방앞 낙지맛이 입소문 나 조방낙지라는 고유 이름을 갖게 됐다. 35년 전. 구청에서 의무적으로 간판을 걸게 했을 때 손님들이 우스갯소리로 “그냥 할매집이라고 간판을 걸면 어떠냐”고 해 그 시절 젊은 아낙이면서도 할매집 간판을 내걸고 일찌감치 할매가 됐노라고 기분 좋게 웃는다. 그 젊은 아낙이 이젠 칠십을 넘긴 진짜 할매가 되었고 덩달아 조방낙지는 영문도 모른 채 전국적으로 유명한 음식이 돼버렸다. 오랜 세월 음식을 다루다보니 할머니는 멀찌감치에 서서 낙지 색깔만 봐도 간이 어떤지 맛이 어떤지 안다고 한다. 맛이 덜할성 싶으면 다가가서 양념이나 육수를 넣어주곤 한다고. 게다가 눈매가 매워서 낙지만 봐도 어디에서 살다가 잡혀온 놈인지 금방 알아낸다고 한다. 지금은 할머니의 딸인 이명길(45)씨가 대물림을 한지 7년이 됐다. 하지만 할머니는 당시 배고픈 시절을 잊을 수 없어 음식값을 10년째 올리지 않고 그대로 받는다. 그래서 음료수도 5백원, 공깃밥도 5백원이다. 세월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조방낙지 맛. 아마도 그것은 손끝에서도 나오지만 할머니의 인정 맛이 아닐까.

2003.07.18 14:03

4분 소요
[이규형의 일본에서 건지기/日영화  실락원]50대 실직자의  불륜 도 상품화

산업 일반

지금 포도주를 맛보며 이 글을 쓰고 있다. 일본에 와서 처음 사 먹어 보는 포도주다. 맥주를 사러 동네마다 있는 소매상에 들어갔더니 한쪽에 고급스럽게 치장된 이 포도주 ‘샤토 마고’가 있었다. 특별진열대 앞엔 이런 문구가 있다. ― 두 남녀가 정사(情死) 전에 마셨던 그 포도주. 값은 7천8백엔(7만원 가량). 주위의 대중적 포도주들보다 압도적으로 비싸다. 이런 동네 소매점에선 안 팔릴 술이다. 그것도 원래는 2만엔(18만원) 정도 하는 것인데 너무 많이 팔려 특별히 이 기간(실락원 붐 기간)에만 세일을 한다는 거다. 평소 와인에는 별 관심도 없는 나이지만 영화를 이런 식으로 또 팔아먹는 재주에 감복하며 흔쾌히 썼다. 실락원. 97년도 극영화 부문 최고 히트작. 관객 2백60만명 동원에 일본 전국을 불륜 붐에 빠뜨린 영화. 우선 이 영화 내용은 대충 이렇다. ―‘두 남녀의 시체 검시결과 보고서.’ 여관방에서 발견된 남녀는 완전히 나체였고 두 사람의 성기가 결합된 상태였음. 남녀의 그 부분이 너무 단단히 얽혀 있어 떼내는 데 힘이 몹시 들었음. 남녀의 죽음은 붉은 포도주에 타서 같이 마신 독극물이 원인…. 지금 일본을 엄청난 불륜붐에 빠뜨리고 있는 영화 ‘실락원’의 라스트 자막이다. 물론 이 자막이 뜨기 직전의 화면은 정사를 약속한 뒤 남녀의 격렬한 정사장면이 펼쳐지고 있다. 남자가 독이 든 포도주를 입에 머금고 여자 입에 흘려넣으며 일생일대의 후회없는 섹스를 벌인다.― 바로 이 장면에 나오는 포도주가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실락원 포도주’이다. 영화의 정사장면을 생각하며 마시면 왠지 맛이 틀리다. 나랑 비슷한 생각들을 하며 지금 수도 없는 아줌마, 아저씨들이 취해가고 있겠지. 특히나 현재 불륜여행(?)중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실락원’의 히트요소를 읽으면 우선 돈이 보인다. 이 영화에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 이유는 뭔가? 제대로 된 인기배우가 진짜 키스(혀가 얽히는)를 해 낼 정도의 농염한 연기를 보여준다는 점. 영화에서 왕년엔 잘 나갔지만 어느 날 갑자기 회사내 한직으로 밀려난 50대 남자를 연기하는 배우는 ‘야쿠쇼 호우지.’ 올해 칸 영화제 그랑프리를 안은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영화‘우나기’(뱀장어)의 주연배우다. 96년 최고 흥행작 ‘Shall We Dance’로 일본 아카데미상 남우 주연상을 거머쥔 인기절정의 연기자다. 말이 필요없는, 여자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원작인 ‘와타나베 준이치’의 애정소설은 영화화 돼 ‘야쿠쇼 호우지’가 숨을 불어넣고, 주인공 이미지를 형상화시킴으로써 급작스럽게 베스트셀러가 됐다. 일본 전국 여성들이 이 남자배우를 생각하면서 소설의 정사장면을 읽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배우도 차갑고 야무진 연기로 정평있는 ‘구로키 히토미.’ 40대 주부층 공략이 성공요인 실제로도 30대 유부녀인 그녀는 영화 속에서도 의사 남편에게서 몸과 마음이 떠난 30대 여자로 분한다. 중견감독 ‘모리타 모시미츠’의 조금씩 점점 더 진하게 섹스테크닉의 도를 높여가는 연출도 일품. 처음엔 서로가 젖가슴만 애무하는 신에서 중반엔 오럴섹스 그리고 막판에는 발가락까지 핥는 완전한 사랑(?)…. 그러나 영화 내용보다는 전혀 틀린 면에서 이 영화가 히트했다. 그건 세대차 공격이다. 일본 낮의 TV방송들은 주로 연예계 스캔들과 주간지성 사고·사건으로 도배질 되는 ‘와이드 쇼’를 방영한다. 어떤 민방도 하루 서너 시간을 ‘와이드 쇼’에 편성하는 바 여러 TV국들의 공식적인 타깃은 정해져 있다. ‘40대 주부를 잡아라!’ 40대 주부를 잡으면 30대와 50대가 따라 움직이며 시청률을 좌우한다는 거다. ‘실락원’의 히트도 마찬가지다. 30, 40대 주부들이 볼 TV프로는 있지만 그녀들을 위한 오락거리는 세상에 거의 없다. 어린애들과 남자 어른이 볼(즐길) 영화는 있지만 주부용 와이드쇼 성격의 극장판이 없었다는 얘기다.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사람들은 전혀 무방비상태(?)의 그녀들에게 한 번 폭탄을 쏟아볼 가치가 있다. 비단 소프트웨어만이 아니다. 돈과 시간을 사실은 가장 많이 갖고 있는 그녀들이 아닌가. 그녀들을 정신적으로 시원하게 해 줄 상품, 오락장, 모임, 파티 등을 생산하거나 주최해 보시라. ‘실락원’의 경우 영화상영 시간대를 분석해 보면 이 특별한 집단이 얼마나 황금덩어리인가를 단박에 알 수 있다. 일본의 평일 극장 오픈시간은 원래 정오쯤이 일상적인데 이 영화는 1시간30분 앞당겨져 오전 10시30분부터 손님들을 부른다. 남편이 출근하면 오전 시간이 남는 아줌마 관객들을 싹쓸이 하겠다는 전략이다. 원래 주부층은 영화관의 관람객 대상에서 인기가 없는 편이다. 그런 영화계 상식을 ‘실락원’은 날카롭게 꾸짖고 있는 인상마저 풍기고 있다. “영화 만드는 친구들. 불륜을 멋있게 좀 다뤄봐. 우리가 극장 대박 터지게 해 줄게. 젊은 애들 영화만 만들지 말고 우리한테도 좀 신경써 달라구!”하는 식으로. 실제로 10시30분 표가 매진되자 또 다시 한 시간 반 댕긴 특회 9시까지 몽창 매진되는 영화흥행상의 대 이변이 벌어졌다. 여름방학중 어린애들 영화에나 가끔 있는 특회 매진현상이 방학도 아닌 평소에 터진 거다. 남편과 애들을 출근시킨 직후 옆집 엄마와 손에 손잡고 달려오면 9시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정오 상영 전까지 두 회를 빼먹을 수 있는 유일한 집단을 우리는 가만 놔둘 것인가. “왜 너는 그럼 안 만드냐? 영화감독이라면서” 하실 분이 계시겠지만, 이거 보슈! 돈이 된다고 무조건 합니까? 여태까지 청소년영화만 만들고 살아온 내가 이것 때문에 속보일 순 없는 거다. 무슨 말인고 하면 돈 되는 사업이라는 것도 임자가 있다는 얘기다. 나 말고도 이런 영화를 잘 만들 감독들이 많이 있으니 그 사람들 영화를 보면 되는 거다. 영화장면 관련 패키지 상품 잘 팔려 그러나 나 역시 기획자로서(감독으로서가 아닌) ‘실락원’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돈벌이가 있다. 영화 중에 나오는 기차노선, 카페, 정사하는 여관을 묶은 여행사 패키지 상품까지 날개돋친 듯이 팔리고 있는 게 일본의 현실이다. 도쿄에서 카루이자와까지 가는 기차여행은 이후 불륜커플들의 즐거운 노선이 되었다. 여행사의 패키지 아이템뿐만 아니라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실락원 포도주’도 마찬가지다. 영화의 히트가 아니라면 내가 세상에 ‘샤토 마고’란 포도주가 있는 줄이나 알았을까? 영화가 히트했을 때 빨리 그 영화를 분석해 장소와 상품을 팔아먹을 수 있는 기획! 이것이 ‘실락원’이 나에게 준 교훈이며 어쩌면 ‘영화를 읽으면 돈이 보인다’의 테마이기도 한 것이다. ‘실락원’에서 보았듯 우리가 영화를 돈으로 만드는 기본적인 감각은 국내 영화든 외국 영화든 그 영화 속에 나오는 상품과 장소를 팔아먹는 거다. 실락원 포도주라고 영화명을 붙여 소매로 팔면 아무 문제가 없다. 가끔 저작권이 존재하는 상품을 팔아 문제가 되긴 하지만 먹는 것, 마시는 것 같은 소비상품은 문제될 이유가 없다. 두 번째는 장소로서 ‘콰이강의 다리’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가 관광명소가 됐듯 여행상품에 동반되는 운송사업, 숙박사업, 관광가이드 사업, 관련 기념상품 사업 등이 히트영화에 편승할 수 있는 기본적인 사업 아이템이다. 미국 국내는 물론이고 일본에서도 불멸의 명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 등장하는 로케이션 장소들은 끊임없이 잘 나가는 장사가 된다. 영화의 무대인 남부지방과 핵심지인‘애틀랜타’를 각 영화사들이 패키지 상품으로 팔고 있는 거다. 그냥 로마 여행하라고 여행사에서 광고하면 안 가던 사람들에게 영화‘로마의 휴일’을 완전히 맛볼 수 있는 ‘로마의 휴일’ 패키지상품을 팔면 성공한다. 일본 최대 여행사 ‘니혼 조오코’사는 그레고리 팩과 오드리 헵번을 마치 자기네 모델인양 내세워 단단히 한몫 봤다. 국제통화기금(IMF) 시대인 만큼 국외로 나가는 패키지보다는 한국영화의 최고 화제작을 잘 연구해 상품과 장소를 파는 기획을 한다면 실속있는 영화장사가 될 게 틀림없다.

1997.02.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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