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화질 DVD 표준 선점 전쟁
고화질 DVD 표준 선점 전쟁
DVD Cold War 라스베이거스는 통상적으로는 대변동의 전조를 알리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1월 초에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인 가전제품쇼(CES)는 전면전이 벌어진 듯했다. ‘본격적인 디지털 전쟁’ ‘양 진영 전쟁에 돌입’ 같은 신문기사 제목들이 긴박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전쟁의 원인은 누가 고화질(HD) 비디오 디스크의 표준을 정하느냐는 문제다. 일부에서는 그 표준이 향후 최소한 10년간 비디오 업계를 지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경쟁으로 업계는 이미 양대 진영으로 갈렸다. 한쪽 진영의 선두업체는 도시바다. 이들이 내세우는 HD DVD 포맷은 현재의 DVD 기술을 ‘확장’해 고화질 비디오에 요구되는 데이터 수신을 가능케 하는 저가의 대안 기술이다. 상대 진영은 소니 블루레이 디스크 연합으로 보다 혁신적인(그리고 더 고가의) 제품에 승부를 걸고 있다. 데이터 용량이 엄청나게 커지고, 소니 최고경영자인 하워드 스트링어가 “혁명적이고 경이롭다”고 격찬한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소니는 한곳을 제외한 모든 대형 영화제작사와 대다수 핵심 비디오기기 제조사의 지지를 받으며, 도시바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을 끌어들였다. 양 진영은 라스베이거스 쇼에 참가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도시바는 오는 3월 499달러짜리 HD DVD 플레이어를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반면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출시는 올 여름께로 가격은 1800달러다. 소니는 올 후반 출시 예정으로 팬들이 학수고대하는 플레이스테이션 3에 블루레이를 탑재함으로써 후발주자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시장 규모가 엄청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5년 DVD 판매액은 약 150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다른 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적이다. 영화업계에서는 고화질 비디오 포맷들이 DVD 판매의 꾸준한 감소 추세를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DVD 판매는 오래전부터 영화 입장권 판매를 앞질러 업계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매김했다. 한편 소비자들은 상황을 조심스럽게 관망한다. 1~2년 안에 다른 포맷이 승리하게 된다면 누가 수백 달러를 들여 디스크 플레이어를 구입하려 하겠는가? 이 같은 모든 우려의 배경에는 ‘모든 표준 전쟁의 원조’에 대한 기억이 깔려 있다. 바로 1970년대와 80년대 초 소니와 파나소닉 간의 비디오 카세트 포맷 주도권 다툼이다. 물론 당시 승자는 파나소닉이었다. 파나소닉의 VHS 포맷이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으며, 기술력에서 우세한 소니의 베타맥스 기기는 매장 진열대에서 먼지만 덮어썼다. VHS와 베타맥스의 대결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연구 사례로 삼아 신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할 때 초반 지지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30년 동안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70년대에는 비디오를 볼 때 두 종류 카세트 중 택일하면 됐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도시바의 요시히테 후지 부사장은 HD DVD를 열렬히 옹호하면서 블루레이 진영이 “비난 선전”과 근거 없는 기술적 우위 주장을 퍼뜨린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그도 이제는 광디스크가 유일한 정보전달 수단이 아니라는 점만은 즉각 인정했다. 그는 표준 전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15년 후에는 DVD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디스크 용량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니 진영의 경쟁상대들이 ‘물리적인 포맷’ 자체에만 집착한다고 주장했다. “블루레이 추진자들은 광 디스크 세대다. 그러나 미래에는 플래시 메모리,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광 홀로그램이 보다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누가 승리할지는 점치기 어렵지만 많은 업계 분석가들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에 주목한다(PC의 ‘두뇌’가 작아져 휴대용 기기 안에 장착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인비저니어링 그룹의 리처드 도허티 연구소장은 “HD DVD가 출시되지 않으면 네트워크와 HDD에는 유리하다. 고객들은 개인용 비디오 리코더로 콘텐츠를 보다 많이 확보하며 이것이 HDD에서도 작동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블루레이와 HD DVD 간의 싸움이 “최후의 포맷 전쟁”이라고 빌 게이츠는 선언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미디어 센터가 어떻게 콘텐츠를 저장하고 DVD를 불필요하게 만드는지 시연해 보였다. 골드먼삭스의 가전업계 분석가인 마쓰하시 이쿠오는 HDD가 “영화나 TV를 녹화하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식”으로 등장해 DVD를 변두리로 밀어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2~3년 안에 고객들은 이번 DVD 표준 경쟁을 기억조차 못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경쟁 참가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디스크 연합의 대변인 앤디 파슨스는 케이블, 주문형 비디오 같은 대안이 아직은 DVD를 잠식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고객들은 집으로 가져가 수집할 수 있는 DVD처럼 유형의 전통적인 ‘패키지 상품’을 여전히 선호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도박을 피함에 따라 양 진영 간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파라마운트와 워너는 영화를 두 가지 포맷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예전에 블루레이에만 전념했던 삼성과 휼렛패커드도 HD DVD까지 지원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한편 양 진영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모든 경쟁업체들은 DVD 이후를 내다본다고 마쓰하시는 주장했다. 그는 수익성 증대의 관점에서 볼 때 DVD는 다른 전략적 프로젝트(예를 들면 도시바의 경우 평면 TV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효과를 봤다)보다 중요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차세대 DVD 포맷 전쟁이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서조차 자신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이번 전쟁은 지난번처럼 결사적이지는 않으리라. 임일동 newsw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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