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할리우드 이단아 마침내 세상 떠나다
파란만장한 영화인생 마감한 개성파 감독 로버트 앨트먼 (1925~2006) 로버트 앨트먼은 관객의 눈치를 보지 않았다. 냉정한 인습타파주의자로서 감상주의를 비웃고, 장르의 법칙을 뒤집었으며 행복한 결말을 거부했다. 그런데 그의 걸작들을 보면서 왜 다른 감독의 작품과 달리 행복감을 느꼈을까? 1970년대 초 나온 마술적 연작(‘매케이브와 밀러 부인’ ‘기나긴 이별’ ‘캘리포니아 불화’ ‘내슈빌’)을 보면서 참으로 황홀한 느낌에 젖었다. 극장에 들어갈 때보다 나올 때 도취감으로 기분이 두 배는 좋아졌다. 여기에 예술의 신비한 연금술적 측면을 이해하도록 돕는 역설이 있다. 그 영화들은 겨울 같은 황량함, 실존적 무용(無用), 태평한 숙명론으로 끝나지만 심미적 황홀을 안겨준다는 점이다. 앨트먼 영화에는 그만의 독특한 언어가 있다. 방황하는 롱테이크. 배우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엿듣게 만드는 겹치기 대화, 관객들이 마음대로 골라보게 만드는 풍성하고 자연스러운 파노라마. 모든 장면을 치밀하게 사전 준비한 히치코크와는 정반대 기법이었다. 앨트먼의 영화는 필름 가장자리 밖으로 흘러나와 생활의 혼란상을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는 느긋한 성격으로 악명 높았고, 즉흥연기를 좋아하며 여러 대의 카메라를 사용했다. 마치 파티 주최자처럼 잔치를 벌여놓고는 카메라가 그 결과를 포착하도록 내버려뒀다. 출연진에게 명확한 지시를 잘 내리지 않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전에 본 적이 없는 장면을 기대하는 내가 뭘 지시하겠는가”고 되물었다. 앨트먼은 감독이면서 동시에 관객이었으며, 영화적 진실의 순간을 창조하는 동시에 발견하면서 그가 느낀 즐거움은 전염성이 컸다. 배우들은 그와 함께 일할 기회가 생기면 뛸 듯이 기뻐했고 최선의 연기로 보답했다. 자신을 거창한 말로 표현한 적은 없지만 본능적인 실존주의자였다. 그의 영화제작 방법은 곧 그 영화의 의미였다. 1970년대를 살아보지 않은 사람은 뻔뻔스럽고 즉흥적인 ‘야전병원(M. A. S. H. )’이 당시 얼마나 혁명적이었는지 잘 모른다. 어두운 분위기로 미몽을 깨우치면서 위험을 빈정거리는 반전영화였다. 앨트먼은 영화와 텔레비전 산업에서 오랜 수련을 쌓은 뒤 크게 성공한 그 코미디 TV시리즈로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 신동은 결코 아니었다. 영화는 전통적으로 젊은이들의 놀이지만 앨트먼은 45세에서야 비로소 이름을 날렸다. 필름누아르(‘기나긴 이별’은 레이먼드 챈들러를 송두리째 뒤집었다)에서 전기영화(‘빈센트와 테오’는 고흐의 신비를 벗겼다)에 이르는 모든 전통 장르를 파괴하면서, 실물보다 위대한 영웅을 만들거나 설교조를 거부했다.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자란 앨트먼은 같은 중서부 출신인 존 휴스턴과 마찬가지로 생김새가 불법 도박꾼 같았고, 할리우드 영화가 밥 먹듯 해대는 거짓말을 경멸했다. 그의 영화인생은 기복이 심했지만(‘퀸텟 살인게임’과 ‘더 컴퍼니’는 잊혀졌다) 굴하지 않고 일을 계속했으며, 정치풍자극 ‘태너 88’로 에미상을 받았다. 정치적 수완은 별로 없어 할리우드의 주류 영화와 영화 제작을 허가한 간부들을 실컷 비웃었다. 그런 그가 신랄한 할리우드 풍자극 ‘플레이어’(1992년)로 재기했으니 더더욱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갑자기 영화계에 돌아와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소설을 토대로 한 ‘쇼트컷’(1993년)으로 부활을 이어갔다. 그러다가 2001년의 ‘고스퍼드 파크’는 흥행까지도 성공적이었다. 그 영화로 다섯 번째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지명됐다. 아카데미상은 한 번도 받은 적은 없으나 올해 뒤늦게 공로상을 탔다. 마지막 작품 ‘프레리 홈 컴패니언’으로 중서부와 연예계라는 자신의 뿌리로 돌아갔다. 그 영화는 고별의 느낌을 풍겼다. 그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다룬 영화라고 말했다. 죽음의 천사가 매혹적으로 하얀 트렌치 코트를 걸친 미녀(버지니아 매드센)로 등장한다. 노대가만이 가능한, 절제되고 힘들이지 않은 우아함으로 만들어낸 가장 부드러운 환상곡이었다. 80세의 고령에도, 건강 악화에도 불구하고 그가 평생 보지 못한 장면을 기대하며 만든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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