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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선도하는‘유로 스타일’의 힘

세계를 선도하는‘유로 스타일’의 힘


원칙으로 돌아가 품질과 개성 중시하는 문화 통해 성공사례 창출 질문을 던지면 답변이 쇄도한다. 답변자가 누구냐에 따라 모두 맞는 말이다. 유럽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회사는? 벨기에의 피에르 마르콜리니, 아니 고디바인가? 독일은 가장 우수한 자동차를 만든다. BMW나 벤츠다. 그러나 소형차인 르스마트카가 꽤 똑똑한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는 세계 이동전화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다시피 했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전화시장의 유행을 선도한다. 그러나 노키아를 매우 창의적이라고 여기던 시절은 오래전이다. 오늘날 그 영광의 주인공은 주스트(Joost)다. 주스트 개발자들은 얼마 전만 해도 일련의 대히트작을 냈으며, 그중 하나가 스카이프(Skype)다. 그런데 어떻게 선정하나? 유럽의 많은 창업사가 그 영예를 놓고 겨룬다. 여기서 키워드는 ‘유럽적’이다. 과거와는 대조적으로 지금은 실리콘밸리가 화제가 아니다. 요즘 유럽에서 큰일들이 일어난다. 세계가 주목해야 한다. 유럽이 장구한 활력의 알맹이를 재발견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원조(元祖)로서의 장점이다. 만물이 똑같이 세계화된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간혹 색다른 물건, 고유 환경에 뿌리 박은 진짜배기를 원한다. 그것이 반드시 낡고 전통적이거나 매력적일 필요는 없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순수한 품질과 개성을 무기로 발전하며 경쟁에서 이긴 그 무엇인 경우가 많다. 뉴스위크가 유럽 특유의 몇 가지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노인이 살기 좋은 스웨덴
비르기타 렘베(77)는 오른쪽 허파의 3분의 1을 빼놓고, 2주 전 집에 돌아왔다.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스톡홀름)에서 받은 암 수술은 잘 됐다. 전액 무료였다. 퇴직 언론인 비르기타는 수술 후 재활 클리닉에서 2주 동안 머물렀다. 역시 무료였다. 2주 동안 매일 집단미용체조를 하고, 마지막 날에는 1.5㎞를 걸었다. 아파트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도움을 받았다. “가정 도우미”가 장을 봐 오고, 세탁과 청소를 해준다. 언론계에 40년 동안 봉직한 비르기타의 연금이 꽤 되기 때문에 이 도우미 봉사는 무료가 아니다. 한 달에, 놀라지 마시라, 72유로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노인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다. 핀란드나 덴마크가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잘나갔던 1970년대 이후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고 불평하는 일부 스웨덴인도 역시 달리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비르기타와 남편 롤프(81)는 관대하지만 합리적이며 제대로 굴러가는 복지제도의 산증인이다. 롤프는 2002년 1월 심장우회수술을 받았다. 그로부터 아홉 달 뒤 10㎞ 경주에 참가했다. “우리는 평생 세금을 냈다”고 비르기타가 말했다. “이제 우리 돈을 돌려받는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수시로 본받으려고 애쓰는 스웨덴의 한 가지 장점은 변화하는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노인복지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고령자의 의료비 부담이 병원들 몫이어서 노인환자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폭증했다. “병상 재배치를 고려해야 할 정도였다”고 카린 헬크비스트 보건사회부 차관이 말했다. 그래서 스웨덴은 1992년 그 책임을 지자체로 돌렸다. 가능하면 노인들을 값비싼 병원에서 퇴원시켜 집으로 보내고 비르기타가 누리는 혜택과 비슷한 가정 도우미 체제로 지원했다. 개혁에 착수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65세 이상의 입원환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스웨덴은 1999년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국민연금제도를 손봤다. 많은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의 단일 연금제도 역시 신속한 고령화 사회의 무게에 짓눌렸다. 국가는 정당들의 합의 아래 기존 연금제도를 소위 명목확정기여 방식으로 대체했다. 새 제도는 공공연금을 개인 소득과 전체 기대 잔여수명 비율에 연동시켰다. 덕분에 세입 변동, 경제 현황, 인구 변화에 맞추는 적응력을 얻었다. 새 제도는 여전히 손볼 여지가 있으나 이제 세계은행이 연금 파산에 직면하는 국가가 본받을 모델로 예시한다. 새 연금제도의 입안에 참여한 웁살라 대학의 경제학자 에드바르트 팔메르는 독일과 일본 등이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다시 스웨덴 모델의 승리다. Stryker McGuire

전쟁 방식에도 요령이 있다
“미국인들은 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선언하듯 말해 유명해진 말이다. 이라크 사태를 보면 그 말이 사실이다. 뉴욕 소재 세계정책연구소의 반란 진압 문제 전문가인 영국인 이언 커서버트슨은 미국과 유럽 간 군사 전술의 차이를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인들의 접근방식은 ‘먼저 쏘고 나중에 질문한다’는 식이다. 유럽인들은 좀 더 위험을 감수하려 한다. 그들은 점령군보다는 동반자로 보이고 싶어한다. 미국인과 달리 유럽인들은 전쟁터 너머를 바라보는 전체론적 사고방식을 지녔다.” 유럽 군대는 최근 일련의 활동에서 유럽적 사고방식의 효과를 증명했다. 그 효과는 무지막지한 군사력 행사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고 대처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예컨대 영국군이 이라크 남부에서 순찰에 나설 때 사용한 방법을 보라. 그들은 헬멧 대신 부드러운 모자를 착용하고, 군인보다는 경찰처럼 보이려 했다. 전쟁 당사국들의 군사력 균형이 비대칭적인 시대에, 그런 방식은 흥미로운(그러나 워싱턴에는 언짢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미국이 국방비 면에서는 유럽보다 3대 1 정도로 많을지 몰라도, 21세기의 전쟁을 수행하고 힘을 투사하는 방식에서는 유럽이 (일부 지역의 경우) 가장 뛰어나다는 결론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에 파견된 프랑스군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측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스니아에서는 유럽연합(EU) 군대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대를 대신해 성공적인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유럽 19개국에서 파견된 대표단이 유엔 지원 아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실시된 선거를 감독했다. 콩고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0년 동안의 내전에서 막 벗어난 나라다. “유럽 대표단은 매우 적은 인원으로도 각종 선거를 훌륭하게 치러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런던 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대너 앨린은 말했다. 유럽이 그런 우수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많은 국가는 과거 식민지 종주국 시절 성급하게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분쟁 중인 집단들을 진정시켜온 경험이 풍부하다. 유럽 옹호론자들은 미군보다 우수한 훈련 방식과 더욱 노련한 직업 장교·하사관들을 또 다른 요인으로 꼽는다. 유럽인들은 문화·인종적 편견을 극복하는 데도 뛰어나다. 점차 심화되는 다양한 문화접목 현상을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영국군 신병들은 무슬림을 위험한 외계인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미군보다 작다. 영국 일부 도시에서는 주민의 10% 이상이 무슬림일 정도로 낯익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이라크인들을 “순례자” 내지 “모래밭의 깜둥이” 정도로 간주하도록 사상주입을 받았다. 미군의 이라크 주둔 임무가 실패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조슈아 키의 주목할 만한 신저 ‘탈영병 이야기(The Deserter’s Tale)’를 읽어 보라. 어쩌면 유럽의 최대 장점은 과장된 수사(修辭)와 비현실적인 목표를 외면하는 실용주의 정신인지도 모른다. 커서버트슨은 이렇게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럽 군인들이 현지인들과 마주앉아 어떤 협정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미군보다 훨씬 크다. 그것은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일종의 평화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현지인들이 원하는 바다.” 사격을 중단하라. 그러면 가슴과 마음이 뒤따른다. WILLIAM UNDERHILL

유럽판 실리콘밸리의 영웅들
“범유럽적 기업”이라는 표현은 에어버스사의 A380 여객기 같은 불행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와는 반대로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범유럽적 접근방식으로 미디어와 텔레콤 분야에서 일련의 확실한 성공을 거뒀다. 그런 성공 사례 중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창업회사 주스트(Joost)도 포함된다. 주스트의 공동 설립자는 덴마크인 야누스 프리스와 스웨덴인 니클라스 젠스트롬. 그들은 정보기술(IT)계의 최정상급 스타이자,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 비견될 만한 유럽인들이다. 프리스와 젠스트롬은 크게 성공한 음악 공유 웹사이트 카자의 설립자로 이미 명성을 얻었었다. 카자는 사용자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은 만큼이나 음반 회사들로부터는 엄청난 욕을 먹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스카이프도 설립했다. 스카이프는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을 이용한 저렴한 전화통화 서비스를 제공해 거대 통신회사들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제 프리스와 젠스트롬은 자신들의 재능을 새로운 미디어·오락 사업 쪽으로 돌렸다. 그들은 동화상 공유 웹사이트인 주스트를 이용해 가장 좋아하는 TV 쇼를 시청하는 새로운 방법을 웹 세대에 제공하려 한다. 플라스마 스크린에 필적하는 고선명 화질의 동영상을 언제 어디서든 감상하게 된다는 뜻이다. 기존의 디지털 케이블과 위성 TV 사업자들은 동영상 서비스의 이용료를 계속 인상해 왔다. 그러나 주스트는 동영상을 무료로 제공한다. 게다가 의견 게시와 인스턴트 메시지 등 각종 사회적 연결망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는데, 이것 역시 공짜다. 전문적으로 제작된 콘텐트와 간편한 이용방법을 갖춘 주스트는 구글의 유튜브를 과거의 기술로 보이게 만든다. 주스트는 아직은 베타 버전을 사용자 그룹에 공개해 시험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강력한 제휴사를 확보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워너 브러더스, 바이어컴 등이다. 바이어컴은 계열사인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제작되는 영화뿐 아니라 MTV·VH1·코미디 센트럴 등 산하 130개 채널의 영상물들도 주스트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것만으로도 프리스와 젠스트롬이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시장조사 업체인 포레스터 리서치의 제임스 매퀴비는 말했다. “그들이 카자를 운영했을 때, 거대 미디어 회사들이 하고 싶었던 유일한 일은 그들을 고소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2005년 26억 달러를 받고 스카이프를 캘리포니아의 이베이에 팔았다. 그 즉시 실리콘밸리의 만신전(萬神殿)에는 그들의 이름이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확고한 유럽인이다. 네덜란드식으로 발음되는 주스트라는 회사 이름부터가 그렇다. 주스트의 본사는 네덜란드의 라이덴에 있다. 그곳에서 스웨덴인 최고경영자 프레드릭 데 왈은 다국적 팀을 이끈다. MTV의 전(前) 마케팅 책임자와 아파치 소프트웨어 파운데이션의 전 CEO도 그 팀의 일원이다. 주스트의 조직망은 유럽 대륙에 널리 퍼져 있어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강점들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지극히 중요하고 독창적인 P2P(peer-to-peer) 소프트웨어는 에스토니아의 프로그래머 팀이 제공한다. 또 각종 서버(그리고 주스트의 법인 설립 인가증)는 룩셈부르크에 있다. 그리고 런던 사무소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과의 섭외를 담당한다. 첨단기술의 미래가 미국의 스탠퍼드와 서니베일만큼이나 라이덴과 룩셈부르크에 달려있다는 의미일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JOHN SPARKS

스위스 명품 시계의 미학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으로, 또 마음으로도 보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짙은 화장의 얼굴, 잘 닦여진 표면, 자질구레한 장신구, 다이아몬드 등의 뒤에 존재하는 실체를 인식하는 데 있다. 그것은 그 아름다움에 생명을 부여하고 똑딱거리며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을 이해하는(혹은 적어도 상상하는) 일이다. 시계 얘기다. 유일무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스위스 시계 말이다. 물론 시계의 존재 목적은 시간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러나 스위스 시계는 제조 기술의 최고점에 군림한 채 의상이나 과학기술의 유행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영속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알려준다. 스위스 시계의 신비로움은 그 작동 방식에 있다. 수세기 전에 밝혀진 기계공학적 원리에 입각해 오로지 기계적으로만 작동한다. 장인(匠人)들은 수없이 많은 초소형 톱니바퀴, 평형바퀴, 내부의 보석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맞물리도록 조립하고 손으로 문질러 광택을 낸다. 1970년대에는 한때 이런 우아한 기계장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우주비행사와 콩코드 여객기의 시대였다. 초음속의 시간은 단순한 구조의 액정화면에서 측정됐다. 그러나 명품 시계의 내면적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수집가·감정가들의 열정이 지난 25년 사이에 포스트모더니즘적 풍조 속에 되살아났다. 스위스 시계가 고전적 의미의 미술품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발명가로서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부러워할 만큼 정교한 시계장치를 사려고 기꺼이 수십만 달러를 내놓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명품 시계 중 하나가 내부의 복잡성과 외면의 단순성을 자랑하는 롤렉스다. 롤렉스 시계는 세계 최초의 방수시계에 속한다. 1930년대에 착용자의 손목 움직임을 동력으로 활용해 만든 최초의 “영구 작동” 시계이기도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텍 필립, 브레게, 예거-르쿨트르 등 몇몇 다른 명품시계 제조사는 복합기능(complication)으로 유명한 기계장치를 만드는 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서 복합기능이란 단순히 시간과 날짜를 알려주는 기능 외에 기계적 시계에 탑재된 온갖 복잡한 기술·기능을 의미한다(수정[水晶]시계의 수정이나, 당신의 삼촌이 착용하는 오래된 불로바 시계의 ‘소리굽쇠’ 같은 부품은 없다. 또 전지도 없으며, 단순히 손이나 움직임으로 태엽을 감는다). 복합기능은 달의 모양 변화를 알려주는 ‘단순한’ 복합기능부터, 세팅을 새로 하지 않고도 향후 122년 동안 달 모양 변화를 보여주는 ‘위대한’ 복합기능(제네바의 제조업체 측 표현)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미니트 리피터’는 한 애호가의 표현에 따르면 “교회처럼” 1시간이나 15분마다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이다. 또 ‘투르비옹’ 기능은 스프링의 동력을 전달하는 핵심 장치(이스케이프먼트: 톱니바퀴에 맞물려서 회전 속도를 조절한다)를 회전시켜 지구 중력 때문에 발생하는 시간 오차를 보정한다. ‘영구 달력’은 별도의 조정 없이 윤년을 비롯해 모든 달의 길이를 자동 계산한다. ‘균시차(均時差)’라 불리는 또 다른 복합기능은 ‘진(眞)태양시’와 인위적인 ‘평균 태양시’의 차이를 산정한다. 지난해 예거-르쿨트르 측은 3면의 구조와 18개의 복합기능을 갖춘 ‘리베르소 그란데 컴프리케이션 아 트립티케’ 시계를 선보였다. 물론 이런 명품 시계들이라도 그 생명은 정확성에 있다. 그러나 전자시계의 정확성은 그다지 높은 평가를 못 받는다. 원자시계의 정확성을 기준으로 투르비옹 기능을 평가하는 고객들은 명품 시계 업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가격은 얼마일까? 세계 시장이 감내할 만한 가격은? 지금까지 생산된 트립티케 시계는 75개뿐으로 개당 37만5000유로에 팔린다. 진정 시대의, 아니 시간들의 표상이다. CHRISTOPHER DICKEY

프랑스 요리는 토종 재료 써야 제 맛
최근 프랑스의 위대한 요리사들이 뉴욕과 런던은 물론 라스베이거스·홍콩·도쿄에서도 식당을 개설했다. 그들은 외국의 요리법과 식재료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외국산 식재료는 프랑스산만큼이나, 때론 그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란다. 퓨전 요리 열풍의 기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잠깐. 훌륭한 프랑스 요리라면 그 재료도 프랑스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마법 같은 포도주를 만들어내는 프랑스 토양의 특성들에, 또 그처럼 우수한 토양에서 우러나오는 그 모든 미묘함과 우아함을 존중하는 프랑스 문화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면 어떻게 프랑스 요리라고 할까. 과거에는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래야 하지 않나. 현대는 세계화한 요리사들이 뿌리를 잃은 희한한 퓨전 음식을 고급 프랑스 요리라고 내놓는 세상이다. 또 요리용 굴이 원래 서식지에서 수천㎞ 떨어진 주방으로 공수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프랑스 요리사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역사와 공간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런 요리사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미셸 브라(60)다. 방목장과 숲이 많은 오브락 지방 깊숙이 자리 잡은 라기올시(市) 외곽에는 그의 이름을 딴 3성급 식당이 있다. 이곳은 프랑스의 내륙 삼림지대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너무도 많은 주민이 도시의 일자리를 찾아 빠져나가 녹색의 황무지로 불려 왔다. 남아 있는 주민들은 집념에 가까운 애향심으로 고향을 지켜 왔다. 브라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어머니는 현지인 단골손님에게 집에서 만든 음식을 팔아 부수입을 올렸다. “우리 고장엔 미식법의 전통이 없었다. 주민들은 굶어죽지 않으려고 먹었다”고 브라는 말했다. 그는 독학으로 요리법을 공부하면서 식물 종자에 관한 오래된 서적들을 정독했다. 거기에서 과거 여러 세기 동안 사용돼 온 식재료에 관한 힌트를 얻고 독특한 원료들을 찾아냈다. 산야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눈(혹은 코)을 사로잡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꽃·풀잎·뿌리를 채집했다. 오브락 산악지대의 고원 목초지에서는 달콤한 꽃들을 발견했다. 그 꽃들은 지금 아이스크림의 독특한 향기를 내는 데 이용된다. 어느 겨울날, 산악 도시 미요 부근을 산책하던 중 발견한 노간주나무 열매는 이제 양배추·오렌지와 함께 제공되는 계절 양념의 주성분이다. 쇠고기 역시 오브락 토종소 고기다. 야채는 브라의 집 정원에서 채취하거나 현지 농민들이 재배한 것들을 이용한다. 치즈도 토산품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평론가이자 저자인 패트리셔 웰스는 프랑스의 위대한 요리사 일부가 전 세계로, 심지어 라스베이거스에까지 진출하는 현상을 비판하지 않는다(하기야 “사막 지대였던 라스베이거스에는 애당초 토종 식품이 없다”). 그러나 원래의 토양에 확고히 뿌리내린 요리사들만큼 웰스를 흥분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그녀는 “프랑스의 힘을 유지시키는 요인은 바로 전통의 감각과 땅에 갖는 존경심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혁신이나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프랑스 요리에 관한 한 프랑스만큼 좋은 원산지는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GINNY POWER and ALEXANDRA BUNZL

어딜 가나 최고 수준의 건축물
런던 국립미술관 건물에 뭔가를 추가하자는 제안에 찰스 왕세자는 20여년 전 “절친한 친구의 얼굴에 박힌, 눈에 거슬리는 커다란 부스럼”이라며 발끈했다. 결국 그 제안은 폐기됐고, 찰스는 ‘전투’에서 이겼다. 그러나 ‘전쟁’에선 졌다. 찰스 왕세자가 비판하는 와중에도 현대성을 강조하는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로이드은행 건물은 런던의 빌딩숲에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스테인리스 강철로 지은 이 건물은 외계인의 우주선처럼 미끈하다(다시 말해 ‘현대적’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찰스의 취향이 20여년 전 대처 시대의 ‘포스트모던’ 설계에 잠시 활력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저스와 현대성을 중시하는 동료들이 끼치는 상반된 영향력은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커져갈 뿐이다. 요즘 그 세대의 설계자들은 유럽의 가장 눈에 띄는 ‘수출품’이 됐다. 사실 미국인 중에서 현대 건축에 유럽 출신 설계자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프랭크 게리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런 게리도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영국 출신 건축가 노먼 포스터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포스터는 런던 본부에 500명의 직원을 두고 카자흐스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 프로젝트를 감독한다. 다른 유럽 출신 유명 건축가들도 중국에서 굵직굵직한 사업을 수주했다. 스위스의 헤르조그&드 뫼롱 건축회사 팀이 설계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과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가 설계한 거대한 CCTV 건물이 좋은 예다. 지난 1월 과감한 문화지구 조성 계획을 발표한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수도)도 이젠 유럽 출신의 유명 건축가를 끌어들인다. 미국의 게리뿐 아니라 런던의 자하 하디드, 파리의 장 누벨이 설계한 건물도 그곳에 들어선다. 이들 건축가는 세계 고객들에게 선보일 재능과 경험을 고국에서 쌓았다. 유럽이 사회 기반시설에 엄청난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자한 덕분이다(지금도 마찬가지다). EU 회원국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상상도 못할 파격적인 설계를 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공항과 기차역(로저스가 설계한 마드리드의 새로운 바라하스 터미널과 니컬러스 그림쇼가 설계한 런던의 워털루역), 교량(다수를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멋지게 설계했다), 문화센터(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로마의 콘서트홀 ‘파르코 델라 뮤지카’와 누벨이 설계한 파리의 새로운 브랑리 미술관)가 좋은 예다. 단지 현지 주민들이 파격적인 건축물을 좋아하기 때문만도 아닌 듯하다. 이를테면 포스터가 설계한 물방울 모양의 런던 시청사나, 피터 쿡이 설계한 파란색 미술관 쿤스트하우스(오스트리아 그라츠 소재)처럼 튀는 건축물 말이다. 실은 기술이나 새로운 소재를 시험하면서 준비된 관람객을 찾는 건축가들의 도전 정신도 마찬가지로 파격적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선 젊고 지명도가 떨어지는 건축가들이 설계를 다량 수주하는 경우가 잦다. 설계 공모전이 자주 열리기 때문이다(이런 공모전 중 하나인 ‘유로팬’에는 40세 미만의 건축가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로저스도 첫 행운을 그렇게 잡았다. 1971년 그가 당시 파트너인 렌조 피아노와 함께 작업한 대담하고 다채로운 설계가 681명의 쟁쟁한 건축가를 제치고 선정됐다. 곧 쓰러질 듯한 케케묵은 건물들로 가득한 곳에 들어선 그 건물은 한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퐁피두센터는 오랜 친구 같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유럽의 좋은 예다. CATHLEEN MCGUI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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