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시 ‘절약이 미덕’인 시대로!
요즘 미국에선 국내총생산(GDP)이 줄고 경제 낙관론자들이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 미국인들은 과소비의 미몽에서 깨어나 차입과 낭비 대신 저축과 투자를 시작하라는 얘기를 듣는다. 사람들은 워런 버핏의 충고를 더 경청하고 도널드 트럼프의 말은 덜 듣는다. 물론 호시절이 되돌아오면 절약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잦아든다.
1994년 기업 구조조정 한파가 불어 닥쳤을 때 나는 미국인들이 구두쇠로 변해 가는 경향을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지출을 극도로 줄이던 풍조는 닷컴 붐이 일면서 다시 사라졌다. 2001년 9·11 테러와 겹친 경기침체 땐 사람들이 절약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TV에 나와 국민에게 여행을 다니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뉴욕 시민들은 침체된 도심 상권의 식당을 자주 이용하는 게 ‘시민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역사학자 바브러 대포 화이트헤드는 최근 발표한 논문 ‘새로운 절약 운동을 위해(For a New Thrift)’에서 이렇게 썼다. “최근 몇 년간 미국 지도자들은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대응으로 지속적인 과소비를 국민에게 권장하기로 작심한 듯하다.”
화이트헤드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미국인의 저축을 어렵게 만드는 정부와 기업의 반(反)절약 캠페인 사례를 예시한다. 예컨대 신용카드 사용 권유, 도처에 생겨난 카지노, 주정부의 복권사업, 초단기 고리대금업자 등이 “압도적으로 많이 늘어났다.” 대형 은행들은 마구잡이로 대출해 주면서도 학생들의 절약정신을 고취하는 저축통장은 발급하지 않으려 한다.
저축을 가로막는 거시경제적 장애물들은 더 견고한 듯하다. 1999년 이래 평범한 가정의 실질 소득은 높아지지 않은 반면 건강보험, 에너지, 식품, 주택 등 기초 상품의 가격은 치솟았다. 뉴욕 소재 두뇌집단인 데모스의 정책 담당 책임자 태머러 드라우트는 “각종 설문조사에 따르면 신용카드 부채가 증가한 이유의 상당 부분은 일자리 상실, 주택 수리비, 건강보험 등과 관련 있다”고 말한다.
드라우트는 ‘허리끈 졸라매기(Strapped: Why America’s 20- and 30-Somethings Can’t Get Ahead)’의 저자이기도 하다. 게다가 호황에는 자산 가치도 부풀기 때문에 사람들은 저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일반 가계와 비영리단체의 순자산은 2002년 말 39조2000억 달러에서 2007년 3분기 58조7000억 달러로 급증했다.
반면 개인 저축은 극히 저조해 2003년 1749억 달러에서 2007년 574억 달러로 급감했다. 그러나 장부상 이득에만 의존하는 사람은 바로 그것 때문에 망할 수도 있다. FRB에 따르면 2007년 9월~2008년 6월 미국인들의 순자산 가치는 2조7000억 달러 줄었다. 그 후엔 훨씬 더 줄었을 것이다.
분명히 우리는 더 많이 저축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위대한 경제학자 존 메이나드 케인스가 말했듯이 수요가 약한 시절엔 절약이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경제활동에서 소비활동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70%나 된다. 여행, 주택 재단장, 외식 등으로 돈을 쓰면 우리의 친구와 이웃들의 일자리가 보전된다.
국민에게 세금을 환급해 주는 경기부양책에서 가장 크게 우려되는 부분은 미국인들이 환급 받은 300달러를 곧바로 지출하지 않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저축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하지만 글로벌 시민을 자처하는 미국인들은 절약을 삼가야 할 이유도 있다. 수입 상품에 대한 미국인들의 왕성한 소비 욕구 덕분에 중국에선 매년 수천만 명의 농민이 최저 생활 수준에서 벗어나 공장 일자리를 찾는다.
국가적 위기가 저축 심리를 자극한 때가 있었다. 화이트헤드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저축률이 25%로 치솟았다고 소개한다. 정부가 “시민사회의 지도자들과 협력해 전쟁 수행을 위한 저축의 중요성을 적극적으로 강조하면서 전시공채 (戰時公債) 형태로 구체적인 저축 수단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엔 절약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이 있다. 삶을 즐길 줄 모르는 수전노라는 인식이다. 그러나 미국가치연구소(IAV) 소장이자 ‘절약 백과사전(Thrift: A Cyclopedia)’의 저자인 데이비드 블랭큰혼은 “절약의 목적은 무조건 지출을 줄이는 게 아니라 인생을 즐기는 데 있다”고 말한다.
‘절약 백과사전’은 절약의 미덕을 강조한 수많은 명언을 집대성한 매력적인 책이다. 요즘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절약정신을 되찾을 이유가 있을까? 있을 것이다. 자기 집의 가치 상승과 황금 노년을 보장하는 401(k) 은퇴연금을 믿고 소비를 주도해 왔던 베이비붐 세대는 저축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씀씀이 큰 태도 역시 미국의 문화유산 중 하나다. 가장 위대한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은 엄청난 재산을 모은 뒤 보란 듯이 써 버린다. 힘들게 번 돈으로 주식을 매입해 참을성 있게 재산을 모은 워런 버핏 같은 사람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빌린 돈으로 상식을 벗어날 정도로 화려한 빌딩을 지으며 참을성 없게 재산을 모은 도널드 트럼프 같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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