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굿즈가 된 욕망, MZ·잘파세대의 '보여주기' 심리학[허태윤의 브랜드 스토리]
-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키링 하나에 담긴 정체성 마케팅
[허태윤 칼럼니스트]지난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은 책이 아니었다. 밈 키링이었다. “아직 읽는 중”, “독서는 취미가 아니라 생존” 같은 문구가 새겨진 작은 굿즈들이 책보다 빠르게 팔려나갔다. 아이러니한 풍경이지만, 이는 출판업계만의 고민이 아니다. 콘텐츠 소비의 본질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케데헌' 굿즈는 출시 직후 완판됐고, 재입고 때마다 품절을 반복하며 화제를 모았다. 중국에서 시작된 라부부 인형 열풍은 한국 MZ세대·잘파세대( Z세대와 알파세대를 아우르는10~20대) 세대를 사로잡으며 거리 곳곳에서 가방에 매달린 인형들을 볼 수 있게 했다. 카페 음료 하나를 사도 키링이 따라오고, 전시회에 가면 굿즈 매장이 본관보다 붐빈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최근 한국방문 잘파세대 외국인에게 올이브영, 다이소, 무신사에 이어 아트박스가 필수 방문지로 뜨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곳에 가면 각종 굿즈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이 작은 굿즈들을 가방과 파우치에 주렁주렁 다는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굿즈에 열광하는 걸까?
소유가 아닌 자기표현의 신호체계
굿즈 마케팅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MZ·잘파세대의 심리를 들여다 봐야 한다. 이들에게 굿즈는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다.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이자,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호체계다. 밈 키링을 가방에 다는 순간, 그것은 “나는 책을 읽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의 증거가 된다. 케데헌을 모으는 행위는 “나는 문화적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라부부 인형을 매달고 다니는 것은 “나는 트렌드에 민감한 사람”임을 보여준다.
흥미로운 점은 이 '보여주기'가 과시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명품 소비가 경제적 지위를 드러내는 방식이었다면, 굿즈 소비는 문화적 취향과 개성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가격은 중요하지 않다. 몇천 원짜리 키링이든, 한정판 피규어든 중요한 것은 그것이 '나'를 얼마나 잘 대변하느냐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정체성 소비’라고 부른다. 소비를 통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규정하고, 타인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의 발현이다. SNS 시대에 태어난 MZ·잘파세대에게 이런 욕구는 더욱 강하다. 인스타그램과 틱톡이 일상이 된 이들은 자신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관리하고, 큐레이션하며, 업데이트한다. 굿즈는 그 과정에서 가장 손쉽고 효과적인 도구다.
출판·문화계가 주목하는 이유
출판업계는 이 현상을 단순한 유행이 아닌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로 바라보고 있다. 책이 팔리지 않는 시대, 콘텐츠-IP-체험소비의 결합이라는 관점에서 굿즈는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실제로 일부 출판사들은 책 출간과 동시에 관련 굿즈를 기획한다. 소설 속 명대사를 담은 엽서, 주인공의 상징물을 형상화한 키링, 작가의 손글씨가 들어간 스티커 등이다. 독자들은 책을 읽는 경험을 넘어, 그 세계관을 소유하고 싶어한다. 굿즈는 그 욕망을 충족시키는 매개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케데헌 사례는 더욱 전략적이다. 전통 문화유산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디자인은 SNS에서 자연스럽게 확산됐고, '인증샷'을 찍기 위해 박물관을 찾는 2030세대가 늘었다. 굿즈가 박물관 관람의 동기가 된 것이다. 문화 소비의 순서가 바뀌었다. 콘텐츠를 경험하고 굿즈를 사는 것이 아니라, 굿즈가 탐나서 콘텐츠를 경험하게 되는 역전 현상이 일어난 셈이다.
남들과 같되 다르게, 다르되 같게
굿즈 소비의 또 다른 특징은 '같음'과 '다름'의 미묘한 균형이다. MZ·잘파세대는 트렌드에 동참하면서도 자신만의 개성을 표현하고 싶어한다. 라부부 인형 열풍을 보면 알 수 있다. 모두가 같은 인형을 매달지만, 어떤 색상을, 어떤 조합으로 다느냐에 따라 개성이 드러난다.
이는 마케터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굿즈는 표준화와 개인화를 동시에 충족시켜야 한다. 모두가 갖고 싶어하는 보편성과,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특수성이 공존해야 한다는 의미다.
케데헌이 성공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헤어핀이라는 아이템 자체는 누구나 사용하지만, 조선시대 유물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은 차별화된다. "나도 가지고 있어"라는 소속감과 "이건 나만의 스타일"이라는 차별감이 동시에 충족되는 것이다.
기업들이 굿즈 마케팅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굿즈는 브랜드 경험을 물리적으로 확장하고, 팬덤을 형성하는 강력한 장치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의 시즌 MD, 무신사의 한정판 굿즈,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콘텐츠 기반 상품들은 모두 같은 전략을 따른다. 브랜드가 제공하는 서비스나 콘텐츠를 넘어, 그 브랜드의 세계관에 소속되고 싶은 욕구를 자극하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굿즈의 질과 디자인이다. 값싸고 조악한 기념품은 오히려 브랜드 이미지를 해친다. MZ·잘파세대는 굿즈도 엄연한 '제품'으로 평가한다. 디자인이 세련되지 않거나, 실용성이 없거나, SNS에 올릴 만하지 않으면 외면받는다. 반대로, 잘 만들어진 굿즈는 브랜드의 자산이 된다. 굿즈를 매달고 다니는 사람들은 걸어다니는 광고판이 되고, SNS에 인증샷을 올리며 자발적으로 브랜드를 홍보한다. 이것이 진정한 팬덤 마케팅이다.
결국 굿즈 열풍의 본질은 '보여주고 싶은 욕구'다. 남들과 같아도, 달라도 그것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인정받고, 소속되고 싶은 심리가 작동한다. 빠르게 변하는 트렌드 속에서 기업들은 종종 방향을 잃는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사람들의 근본적인 욕망이다. 인정받고 싶고, 특별해지고 싶으며, 동시에 고립되고 싶지 않은 마음. 굿즈는 그 욕망을 가장 가볍고, 가장 트렌디하게 충족시키는 방법이다. 키링 하나에 담긴 것은 단순한 장식품이 아니다. 그것은 한 세대의 욕망이고, 새로운 시대의 마케팅 언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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