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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환율이 던진 질문, 한국경제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스페셜리스트 뷰]
- [고환율 나비효과]③
달러로 재편되는 글로벌 자본·투자 흐름
기업·가계·정책 당국에 남은 과제
고환율 국면의 배경…금리 차를 넘어선 구조적 요인들
이번 원화 약세를 단순히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고금리 기조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물론 정책금리 기준으로 보면, 한국과 미국의 금리차는 여전히 의미있는 수준이다. 미국 정책 금리가 한국보다 1%포인트(p) 이상 높은 상태가 이어지면서, 달러 자산의 상대적 매력이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환율 국면의 특징은 금리 차 외에도 달러 수요를 구조적으로 키우는 요인들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요인은 대미 투자 확대다. 최근 한미 관세 및 투자 협상 결과에 따라 한국은 향후 10년간 최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펀드 조성을 약속했고, 여기에 더해 선박·방산·에너지 분야에서 추가로 100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일본 역시 미일 협정을 통해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했고, 유럽연합도 미EU 합의에서 6000억 달러 수준의 투자 계획을 제시했다. 이는 향후 수 년동안 한국·일본·EU의 제조업 금융 자본이 지속적으로 달러를 매입해 미국 실물 프로젝트로 이동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이 글로벌 차원에서 달러 수요가 구조적으로 고착되는 배경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자본 흐름도 원화 약세에 힘을 보태고 있다.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투자자들의 해외 주식 투자가 빠르게 늘었다. 2025년 11월 중순까지 개인투자자의 해외주식 순매수는 300억 달러를 넘어섰고, 투자 대상의 상당 부분은 미국 빅테크와 인공지능(AI) 관련 종목에 집중됐다. 해외 주식과 채권을 포함한 해외 증권투자 잔액은 1조2140억 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내에서 벌어들인 원화를 달러로 바꿔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흐름이 상시화되면서, 외환시장에서는 달러를 사려는 수요가 구조적으로 우위에 서는 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이처럼 대내외 구조적 요인까지 겹치면서 최근의 원화 약세는 무역시장 보다는 자본과 투자의 흐름이 달러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의 한 단면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하다. 실제로 한국의 수출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상 최대 수준을 기록했고, 무역수지도 흑자를 이어가고 있다. 그럼에도 환율이 약세를 보인다는 것은 ‘수출은 잘 되는데 자본계정에서는 달러가 빠져나가는 나라’라는 새로운 리스크가 부각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고환율이 작동하는 경제적 경로와 기업 활동 영향
고환율이 기업 활동과 국민 일상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몇가지 기본적인 환율이 경제에 미치는 경로들을 하나씩 짚어볼 필요가 있다.
우선, 구매력 평가 관점을 살펴보자. 장기적으로 환율은 각국의 물가 수준 차이를 반영한다. 물가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의 통화 가치는 하락하는 것이 구매력 평가의 이론적 귀결이다. 문제는 최근 한국의 상황이 다소 역전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달러 표시 기준으로 국제 원자재 가격은 안정되거나 하락했지만, 원화 약세로 인해 원화 기준 수입가격은 오히려 상승하고 있다. 실제로 10월 수입물가지수는 전월 대비 1.9% 상승했다. 국제유가가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평균 환율이 한 달 사이 2% 이상 오르면서 수입가격을 끌어올린 결과다. 이번 국면에서 ‘물가가 오르니 환율이 약해지는’것이 아니라, ‘환율이 약해져 물가를 밀어 올리는’ 경로가 작동하고 있다.
둘째, 환율 전가 효과 측면이다. 환율 변동이 기업의 생산비와 최종 판매 가격에 얼마나, 그리고 얼마나 빠르게 반영되는지를 설명하는 개념이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가격 경쟁이 치열한 수출 구조를 갖고 있어 환율 상승분이 최종 가격에 완전히 전가되지 못하는 ‘부분 전가’ 특성을 보여 왔다. 그러나 원자재와 부품을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하는 중소·중견 기업의 경우 상황은 다르다. 환율 상승분을 자체적으로 흡수하기 어려워 비용 부담이 고스란히 실적에 반영된다. 한국은행과 재정경제부가 원화 약세를 수입물가를 거쳐 생산자 물가와 소비자 물가로 이어질 압력이 커졌다고 경고하는 배경이 바로 이 경로다.
세 번째는 소위 ‘J-커브 효과’라는 것이 있다. 이론적으로는 환율 상승이 수출 경쟁력을 높여 무역수지를 개선해야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이미 체결된 계약과 고정된 물량 탓에 가격만 먼저 반응하고 물량 조정은 지연된다. 그 결과 무역수지가 일시적으로 악화될 수 있다. 최근 한국의 무역수지는 흑자를 유지하지만, 미국향 수출은 관세 인상 여파로 일부 산업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철강과 석유화학처럼 미국과 유럽 의존도가 높은 업종은 환율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목하고 있다. 즉, 환율이 올랐다고 해서 모든 수출 기업이 단기적으로 혜택을 보는 것이 아니게 된다.
네 번째는 대차대조표 효과를 보자. 달러로 부채를 지고 있는 원화로 수익을 내는 기업에게 환율 상승은 곧바로 부채 부담 확대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원화 가치가 10% 하락하면 동일한 달러 부채의 원화 환산액은 10% 늘어난다. 대기업들은 외화 조달 비중을 줄이고 환헤지 비율을 높여왔지만, 중견·중소 기업이나 해외 프로젝트 파이낸싱에 노출된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글로벌 신용평가사들이 최근 한국 기업을 평가하면서 환차손과 이자 비용 증가를 주요 리스크로 지목하는 이유가 바로 이 경로다.
국민 일상과 한국 경제에 남는 과제
이러한 다양한 경로들을 한국 현실에 대입해 보면 위험의 윤곽이 보다 분명해진다. 기업 측면에서는 수출 대기업과 중소 및 내수기업 간의 격차가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반도체와 자동차처럼 달러 매출 비중이 높은 업종은 환율과 가격 상승의 이중 효과를 누리고 있다. 반면 원자재를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 하는 기업, 달러 차입 비중이 높은 기업은 원가와 금융 비용이 동시에 상승하며 마진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
국민 일상에서도 고환율의 영향은 이미 체감되고 있다. 수입물가는 지난 2025년 7월부터 11월까지 연속 상승했고, 연간 기준으로도 플러스로 전환됐다. 국제 원자재 가격이 안정된 상황에서 나타난 변화라는 점에서 환율의 영향은 분명하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4% 수준으로 기록했는데 농산물과 석유류, 수입 가공식품의 기여도가 높다. 장바구니 물가·외식비·물류비가 동시에 오르는 이유가 바로 고환율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해외여행·유학·송금 비용 부담도 커졌다. 같은 2000달러라도 환율이 1300원일 때와 1500원일 때의 체감 차이는 크다. 해외 주식 투자까지 겹치면서 달러는 소비와 투자 전반을 관통하는 필수 경제 변수로 자리 잡고 있다. 개인의 해외 주식 순매수가 연간 300억 달러를 웃도는 상황에서, 달러가 국내를 떠나 장기간 해외 자산에 묶이는 구조가 고착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지금 한국에서 가장 현실적인 위험 시나리오는 세 가지다. 첫째, 수입물가로 이어지며 실질 소득을 잠식하는 경로다. 만약 임금 상승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 체감 경기 악화는 불가피하다. 둘째, 중소 및 내수기업의 대차대조표 리스크 확대다. 환율과 금리가 동시에 부담으로 작용할 경우 고용과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셋째, 대규모 대미 투자에 따른 장기적 달러 수요 증가는 환율 상향 변동성을 구조적으로 키울 가능성이 있다.
기업과 가계의 대응을 위해서, 우리는 결국 기본적인 것부터 돌아보아야 한다. 기업은 환위험 관리의 기본전략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가계 역시 고환율을 일시적 현상이 아닌 환경 변화로 인식하고, 해외 소비와 투자에서 쏠림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정책 당국의 역할은 더 중요하다고 본다. 단기적 변동성과 완화도 필요하지만, 더 근본적인 과제는 한국경제를 ‘만성 약세 통화’ 구조로 고착시키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성장 잠재력과 생산성, 인구 구조와 재정 기반이 약해지면 환율은 결국 이를 반영하게 된다. 지금의 환율을 단순한 외부 충격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다.
고환율은 분명히 불편하고 때로는 고통스럽다. 그래서 빨리 없애고 싶은 충동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고환율은 동시에 한국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비추어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수출에만 의존해 온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내수와 서비스, 혁신 역량을 키우고 해외 투자와 국내 투자 간의 균형을 회복할 수 있다면 환율은 다시 안정의 영역으로 돌아올 수 있다. 한국 경제는 고환율 시대를 피하기만 할 것인지, 아니면 더 강한 경제로 가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 그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필자는 서강대에서 경제학 학사와 석사 과정을 거친 뒤, 미국 위스콘신대 매디슨 캠퍼스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국제무역을 주요 연구 분야로 삼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학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2025년에는 한국국제통상학회 제30대 회장을 맡아 학술 교류와 국제통상 연구의 확산에도 힘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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