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
엔진 정비 연 134대→500대…대한항공, 아시아 ‘비행기 병원’ 노린다
- [비행기·군함 고치러 韓 온다] ①
영종도에 5780억원 규모 엔진정비공장…2027년 가동 목표
해외로 빠진 국내 물량 되찾고 델타·남방·위즈에어 등 외항사 공략
국내 항공 MRO 산업은 해외 의존도가 높다.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따르면 2024년 국내 항공 MRO 시장 약 3조9000억원 가운데 2조4000억원가량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항공이 국내 정비 물량을 되찾고 델타항공과 중국남방항공 등 외항사 엔진까지 한국으로 끌어올 수 있을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부천·영종도에 흩어진 엔진 정비 한곳으로
대한항공은 인천과 김포, 부산에 정비시설을 두고 있다. 인천에서는 중·대형 항공기를, 김포에서는 중·소형 항공기를 주로 정비한다. 부산은 기체 정비와 항공기 도색 등에 특화돼 있다. 1969년 부품 정비를 시작해 항공 MRO 분야에서 50년 넘게 경험을 쌓았다.
최근 가장 힘을 주는 분야는 엔진이다. 항공 MRO는 크게 운항·기체 정비와 엔진 정비, 부품 정비로 나뉜다. 이 가운데 엔진 정비는 높은 기술력과 오랜 경험이 필요한 고부가가치 분야다. 엔진을 항공기에서 떼어낸 뒤 완전히 분해하고 세척·검사·수리한 다음 다시 조립해 성능시험까지 거쳐야 한다. 대한항공은 1972년 국내 항공당국과 미국 연방항공청(FAA)의 인가를 받아 엔진 수리를 시작했다.
현재 엔진 정비의 중심은 경기 부천과 인천 영종도다. 부천공장에서 엔진을 정비하고 영종도 운북지구 엔진 테스트셀(ETC)에서 성능을 시험한다. 영종도에서는 2016년부터 제1 ETC를 운영하고 있다. 가로·세로 각각 14m 규모로 최대 15만파운드급 초대형 엔진까지 시험할 수 있다. 대형 항공기 엔진을 해외로 보내지 않고 국내에서 시험할 수 있는 시설이다.
지난해에는 바로 옆에 제2 ETC를 추가했다. 제2 ETC에서는 대한항공이 운용하는 에어버스 A321neo에 장착되는 프랫앤휘트니 PW1100G 엔진 등을 주로 시험한다. 제1 ETC가 초대형 엔진에 초점을 맞췄다면 제2 ETC는 차세대 고효율 엔진 정비 수요에 대응한다.
대한항공은 ETC 인근에 5780억원을 투입해 신규 엔진정비공장을 짓고 있다. 연면적은 14만㎡가 넘는다. 축구장 약 20개를 합친 규모로 2027년 가동이 목표다. 공장이 완공되면 현재 부천과 영종도로 나뉜 엔진 정비 과정의 상당 부분을 한곳에 모을 수 있다.
자체 정비 수요도 적지 않다. 아시아나항공과 통합하면 한진그룹 소속 항공기는 300대 안팎으로 늘어난다. 아시아나항공을 비롯해 진에어와 에어부산, 에어서울의 정비 수요까지 고려하면 그룹 내부 MRO 물량만으로도 상당한 규모다.
대한항공의 연간 엔진 정비 능력은 올해 134대에서 2030년 500대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정비할 수 있는 엔진 모델도 6종에서 12종으로 확대된다. 자체 항공기뿐 아니라 다른 항공사의 엔진을 정비해 수익을 내는 사업으로 MRO를 키우기 위해서다.
해외 물량을 끌어오기 위한 기반도 갖췄다. 대한항공은 국내 항공당국을 비롯해 미국 FAA와 유럽항공안전청(EASA), 중국 민용항공국(CAAC) 등 국내외 12개 관계 당국으로부터 항공기와 엔진, 부품 정비 인가를 받았다. 안전과 직결되는 MRO 특성상 각국 당국의 인증과 정비 이력은 외부 물량 수주의 중요한 조건이다.
외항사 물량 확보도 시작됐다. 대한항공은 2004년부터 다른 항공사의 엔진 정비를 수주해 왔다. 델타항공과 중국남방항공 등의 엔진을 정비한 경험이 있다. 최근에는 헝가리 저비용항공사 위즈에어가 보낸 PW1100G 엔진의 MRO와 성능시험을 영종도 시설에서 진행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과의 통합으로 양사의 정비 인력과 시설을 함께 활용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그룹 내부 물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면서 외부 고객을 늘릴 기반이 마련되는 셈이다.
MRO 확대 효과는 국내 항공산업 전반으로 이어질 수 있다. 대한항공은 엔진과 부품 정비 기술을 국내 중소 협력업체에 전수하고, 수입 부품의 국산화와 관련 인증을 지원하고 있다. 국내 업체가 생산한 항공기 부품을 직접 구매하며 공급망 확대에도 나섰다. 9만개가 넘는 항공기 자재를 판매·대여하고 정비 장비와 공구도 공급한다.
정비 인력 확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국토교통부 인가를 받은 항공기 정비 교육과정을 통해 정비사 양성 과정과 정기·특수 과정, 관리자 훈련 등을 운영한다. 대규모 시설을 갖춰도 숙련 인력이 부족하면 처리 물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인력 양성도 MRO 경쟁력을 좌우한다.
과제는 해외 고객을 지속해서 확보하는 것이다. 항공사는 정비 기간에는 항공기나 엔진을 운용할 수 없어 소요 기간과 비용에 민감하다. 기술력뿐 아니라 부품 조달 능력과 숙련 인력, 엔진 제작사와의 관계, 각국 항공당국의 인증이 함께 뒷받침돼야 한다. 싱가포르와 중국 등 기존 아시아 MRO 거점과의 경쟁도 피할 수 없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MRO는 대한항공이 노릴 수 있는 유망 사업이자 고부가가치 산업에 대한 투자”라며 “엔진 MRO는 내부 정비 수요를 소화하면서 외부에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당장 해외 고객이 확보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동안 축적한 역량이 성과로 이어질 수 있는 만큼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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