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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게임쇼 총 출동한 국내 게임사들, 그 이유는?[서대문 오락실]
- 본토 팬심 잡아야 글로벌 통한다…TGS를 글로벌 시험대로 택한 K-게임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국내 게임업계의 시선이 서울 판교나 부산 벡스코가 아닌 바다 건너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 지난 17일 막을 올린 ‘도쿄게임쇼’(TGS) 현장은 그야말로 한국 게임사들의 뜨거운 각축장이 됐다. 국내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에서도 동시에 한자리에 모이기 힘들었던 넥슨, 넷마블, 엔씨 등 일명 ‘3N’과 스마일게이트를 비롯해 수많은 중견·인디 게임사까지 대거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올해 도쿄게임쇼에서 한국 기업의 참가 규모는 지난해 대비 약 2.5배 급증한 127개사에 달해, 개최국 일본을 제외하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중국 대형 게임사들이 현지 외교 갈등 및 내부 사정으로 대거 불참한 공백을 한국 게임사들이 완벽하게 파고든 모양새다. 하지만 단순히 자리를 채우는 수준을 넘어, 각 사가 품고 있던 회심의 신작들을 대거 들고 나왔다는 점에서 이번 TGS 참가는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국내 게임사들이 안방인 지스타를 제쳐두고 도쿄게임쇼로 총출동한 배경은 무엇일까.
3N·스마일게이트의 ‘도쿄 진격’, 무엇을 들고 갔나
이번 도쿄게임쇼에서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현지 시장의 취향을 정확히 저격한 대형 신작들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간 MMORPG 중심의 개발 공식에서 벗어나 체질 개선을 이뤄낸 결과물을 선보인 것이다.
넥슨은 넥슨게임즈 IO본부가 개발 중인 차기작 ‘파레이돌리아’의 시연 빌드를 최초로 공개했다. 과거 ‘프로젝트 RX’로 알려졌던 이 게임은 아시아권 서브컬처 시장에서 폭발적인 흥행을 거둔 ‘블루 아카이브’ 성공 신화의 주역들이 대거 포진해 개발 초기부터 전 세계 애니메이션풍 게임 팬들의 이목을 집중시킨 작품이다.
파레이돌리아는 PC·콘솔·모바일 기반 미소녀 게임으로, 언리얼 엔진 5 기반의 고품질 3D 그래픽으로 구현한 생생한 일상의 분위기, 다이내믹한 전투가 특징이다. 플레이어는 ‘타소가레관’이라는 이름의 공간에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메이츠’들과 함께 일상을 보내며, 이상현상 및 침식이 발생할 경우 함께 탐험과 전투를 하는 등 어려움을 극복해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캐릭터와의 깊이 있는 관계, 그리고 턴제 전투의 장점과 실시간 전투의 감각을 결합한 긴장감있는 전략성이 파레이돌리아의 매력이다.
넥슨은 전시장 내에 게임 속 공간인 ‘타소가레관’을 모티브로 한 2층 대형 부스를 꾸미고, 인공지능(AI) 기반 음성 기술과 캐릭터 교감 요소를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았다.
일본의 유력 게임 전문매체 4Gamer는 시연 후 “귀여운 2D 일러스트가 그대로 3D가 되어 움직이는 듯한 완성도”라며, 특히 타소가레관에서 메이츠의 이름을 불러 교류하는 기능에 대해 “목소리에 반응해 다가와 주는 모습은 버튼을 누를 때와는 전혀 다른 기쁨을 준다”고 평가했다.
엔씨의 행보도 파격적이다. 엔씨는 국내 개발사 디나미스원이 개발 중인 신작 ‘아스트라에 오라티오’를 대형 부스를 통해 최초로 선보였다.
가상의 1989년 도쿄를 배경으로 한 이 게임은 넥슨의 ‘파레이돌리아’와 함께 이번 TGS 서브컬처 대전의 가장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으며, 두 타이틀 모두 개막 직후부터 현지 관람객들이 2시간 이상 대기 줄을 서는 기염을 토했다.
넷마블은 일본 인기 만화·애니메이션 IP를 활용한 ‘샹그릴라 프론티어: 일곱 최강종’을 비롯해 ‘나 혼자만 레벨업: 카르마’, 수집형 RPG ‘펄인블루’ 등을 대거 출품했다. 스마일게이트 또한 ‘미래시: 보이지 않는 미래’와 일본 만화 원작의 팀 로그라이트 RPG ‘데드 어카운트: 두 개의 푸른 불꽃’을 선보이며 서브컬처 및 콘솔·PC 접목 타이틀 공략에 가세했다.
왜 국내 대신 ‘도쿄게임쇼’인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일본의 게임 시장은 약 220억 2900만 달러(약 29조6600억원) 규모로, 중국과 미국에 이은 세계 3위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게임 시장 점유율이 10%에 이르는, 그야말로 게임 대국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서브컬처 게임의 경우 일본은 ‘종주국’으로 평가받고 있으며, 전 세계 모바일 서브컬처 게임 매출에서 일본 시장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정도로 장르의 인기가 높다. 시장조사업체 센서타워에 따르면 지난 5년 간 전 세계 서브컬처 모바일 게임 매출의 약 54%가 일본에서 발생했다. 또 각종 굿즈와 컬래버레이션, 코믹스, 애니메이션 등 IP 확장을 위한 인프라는 물론, 2차 창작 생태계도 폭넓게 구축돼 있다.
이런 다양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일본 게임 시장은 자국 IP 중심으로 팬덤이 견고하게 형성돼 있어 외산 IP의 진입 장벽이 높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2021년부터 넥슨게임즈의 ‘블루 아카이브’와 시프트업의 ‘승리의 여신: 니케’ 등 한국산 서브컬처 게임이 일본에서 연이어 출시돼 큰 성공을 거두며 글로벌 흥행작으로 성장,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바 있다.
국내 게임사들이 이처럼 국내 최대 게임쇼인 지스타를 두고 도쿄게임쇼를 신작 데뷔 무대로 낙점한 이유는 명확하다. 바로 이번에 출품한 차기작들의 핵심 장르가 ‘서브컬처’이기 때문이다. 과거 애니메이션 감성의 미소녀 게임이나 수집형 RPG는 국내 시장에서 비주류나 마니아층 전용 장르로 취급받았으나,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 잡았다.
특히 ‘블루 아카이브’, ‘니케’ 등이 일본 시장에서 거둔 막대한 성공은 국내 게임사들에게 ‘서브컬처로 성공하려면 기획 단계부터 일본 감성을 완벽히 만족시켜야 한다’는 공식을 심어줬다.
이러한 맥락에서 도쿄게임쇼는 글로벌 미디어와 까다로운 일본 현지 게이머들에게 직접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이고 상징적인 테스트베드다. 한국에서 신작을 먼저 공개하고 순차적으로 해외에 진출하던 과거의 관행에서 벗어나, 애초에 타깃 시장인 일본 현지에서 가장 먼저 반응을 살피는 전략을 택한 것이다.
체질 개선 나선 K-게임, 글로벌 스탠다드 향한 도약
이번 도쿄게임쇼에 총출동한 국내 게임사들의 면면을 보면 한국 게임산업이 마주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이 읽힌다. 오랫동안 국내 모바일 시장의 캐시카우였던 확률형 MMORPG 공식에서 탈피해, 글로벌 이용자들이 열광하는 서브컬처와 독창적인 IP 확장에 전사적 역량을 투입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특히 대형 퍼블리셔인 엔씨가 내부 개발 스튜디오뿐만 아니라 유망 개발사의 신작까지 적극적으로 퍼블리싱하며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는 것도 주목할 만한 변화다.
도쿄게임쇼를 거점으로 삼은 K-게임의 이번 총공세는 단순한 해외 전시회 참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까다로운 본토 시장의 검증을 정면으로 돌파해 글로벌 메이저 플레이어로 도약하겠다는 한국 게임사들의 체질 개선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이번 TGS 무대에서 울린 서브컬처 신작들이 향후 글로벌 게임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뒤흔들지 업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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