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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진정 원하는 건 ‘집 밖 나만의 공간’

Essay | 김갑수, 新중년의 이 몹쓸 사랑! - 진정 원하는 건 ‘집 밖 나만의 공간’

‘방구들 귀신’ 그녀들의 반란 속편 … 혼자만의 공간에서 시작된 사랑



사랑은 교통사고처럼 찾아온다고 했다. 우연한 돌발사건. 그러나 단지 그렇게 보일 뿐 사랑의 교통사고는 돌발사건일 수가 없다. 준비된 사람에게만 찾아오기 때문이다. 거리의 돌멩이처럼 흔하디 흔한 외로움·공허감·호기심·모험심…. 이런 것들이 준비의 내역서다.

무언가를 배우러 다니고 작품을 만들어 선물하고 특정 분야 전문인들 특유의 코스튬을 흉내 낼 수 있게 됐을 무렵 그녀에게 간절해진 것은 나만의 공간이었다. 집이 좁아서도, 갈만한 카페나 동호인들의 공방을 몰라서도 아니었다. 작가의 집필실이나 화가의 아틀리에 같은 공간을 만들어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콕 박혀 있고 싶다. 식구들이 다 외출한 빈집의 적요로움 속에서 그녀는 속으로 외치고 외쳤다. 나만의 공간, 가족으로부터 벗어난 나만의 삶이 있는 장소. 그곳에 가고 싶다!



언젠가부터 기다린 그의 방문처음 에어로빅 댄스를 배우겠다고 남편의 ‘허락’을 얻어낼 때의 난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기 미칫나?” 집 근처에 혼자 공부할 방을 얻어야겠다고 말을 꺼냈을 때 남편이 보인 첫 반응이었다. 여보 당신도 아니고 ‘이기(이게)’였다. 머리가 돈 사람 취급이었다. 이후부터 전개된 꽤 긴 공방과 냉전과 포기, 재도전의 과정은 생략하기로 하자. 남편은 별도의 자기 공간을 필요로 하는 ‘여편네’를 죽어도 이해할 수 없어했다. “니가 뭔 공부를 한다는 건데?” “니 바람 났나?” “할 일이 그렇게도 없나?”

그녀는 지금 한 여대 앞에서 작은 선물가게를 운영한다. 학교도 작고 가게도 작다. 댄스강사나 양초공예가를 꿈꾸어 봤을지언정 장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모든 과정이 우연처럼 여겨진다. 남편 친구의 부인이 가게 문을 닫게 된 사정을 건네 들었고, 친정 아버지로부터 자금을 융통할 기회가 있었고, 무엇보다 완강했던 남편의 태도가 느슨해진 것이 기회였다. 애초 집밖에 나만의 공간을 꿈꾸었을 때는 막연하나마 어떤 공부나 작업 하는 것을 떠올렸다. 펄펄 뛰는 남편의 기세 앞에 오금을 펼 수 없게 되자 파출부든 식당일이든 바깥에 출퇴근하는 생활이 꿈처럼 되어버린 터였다.

그러다 낙착된 것이 선물가게 인수였다. 남편과 의논없이 가계약을 마치고 사후통고를 했다. 친구 부인이 운영하던 가게라 남편은 계약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예상보다 큰 파장 없이 그녀는 가게 주인 아줌마가 됐다. 그리고 그를 만났다.

그는 그녀가 운영하는 선물가게 앞 여대의 교수다. 교수이긴 한데 시간이 아주 많은 교수다. BK니 HK니 하는 설명을 들어보니 교수 자리도 여러 종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자기 연구실도 있는 진짜 교수이긴 한데 학교 나오는 날이 일주일에 몇 차례 되지 않았고, 학교 근처 오피스텔에서 빈둥거리는 날이 더 많아 보였다. 더욱이 무슨 과 교수인지가 애매했다.

애초에 듣도 보도 못한 전공이었고 교양학부 담당이라는 건 그녀에게 생소했다. 처음의 그는 각기 다른 여자친구들에게 줄 선물을 사러 가끔 들르는 고객에 불과했다. 그는 각각 다른 여친들의 특성을 상세하게 설명하며 왠지 우쭐거리는 느낌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그 ‘우쭐’에 박자를 맞춰 주는 것에서 출발했다.

그의 말은 정말 거침이 없었다. 몇 차례 조용히 물건만 사가던 그가 어느 날 입을 열었다. “이거 제 여친과 할 때 걸어 주려는 건데 괜찮겠어요?” 유아용 느낌이 물씬 나는 유치한 이미테이션 목걸이였다. 그녀는 깔깔대며 웃었다. “할 때요?” “네, 한창 할 때 목을 조이듯이 탁 걸어 줄려고요.” 대략 이런 식의 대화가 오간 것 같다. 여자와 ‘할 때’를 떠올리는 그의 천연덕스러운 말이 전혀 불쾌하지 않았던 것이 이상했다. 그냥 재미있었고 별 경계심도 들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 후 어쩌면 그녀가 먼저 도발한 셈인지도 모르겠다. 다음에 찾아온 그에게 그 유치찬란한 목걸이에 대해 여친이 뭐라더냐고 먼저 물어봤으니까.

“망했어요.” 망했다는 이유가 걸작이다. 원래 주려던 여친이 있었단다. 그런 장난에 아주 재미있게 반응할 사람이어서. 그런데 어쩌다 보니 전혀 다른 기질의 여친과 하면서 불쑥 걸어줬더니 웬 잡동사니냐 하는 식으로 귀찮아만 해서 아무런 재미를 못 봤다는 것이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녀가 물어봤다.

“도대체 여자친구가 몇 명이나 되세요?” 그의 답변 겸 질문이 돌아왔다. “하는 친구만이요? 아니면 아는 여자 다요?” 이거 안 되겠다 싶은 생각이 그녀에게 퍼뜩 들었다. “아뇨, 아아뇨, 됐어요.” 서둘러 말미를 닫자 그도 더 이상을 말을 하지 않았다. 8000원짜리 중국산 싸구려 향초를 사들고 그는 서둘러 나가 버렸다.



바깥 일 시작하자 몸도 변해그가 바람둥이 인상이던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나를 희롱하려는 투인가. 그것도 그렇지 않다. 이상한 사람인가, 조심해야 할 인간인가, 무슨 사기꾼 같은 자인가. 속으로 온갖 질문을 던져봤지만 그는 그저 선선하고 어깨가 좁은, 비교적 작은 키의 평범한 사내였다.

외국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티가 약간 풍길 뿐 도무지 위험스러운 구석이 느껴지지 않는 그였다. 꽤 오랫동안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날 무안하게 말문을 막아버린 탓이 틀림없다. 혹시 그가 지나가지 않는지 윈도우 밖을 자꾸만 내다보는 자기를 향해 그녀가 외쳤다. ‘으이그, 내가 미쳤지!’

여기까지가 사랑의 교통사고가 일어나기 전 단계의 풀 스토리다. 그녀는 자기 가게를 사랑했다. 매출이랄 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수입이었지만 열심히 대차대조를 냈고 반포 터미널 상가를 누비며 열심히 새 아이템을 찾아 다녔다. 남편도 서서히 적응이 되는 듯 늦은 귀가에 적응을 해나갔고 아이들은 일하는 엄마를 더 좋아하는 듯했다. 바깥 일을 하니 확실히 몸에도 변화가 오는 것 같았다.

자꾸만 벌어지는 듯한 어깨살이 줄어드는 것 같고 기능성 콜셋으로 배와 갈비뼈를 조이지 않고도 탄력이 생겼다. 장사를 잘해서 가게를 늘리거나 큰 돈을 만지고 싶다는 욕심도 없다. 그녀가 꿈꾼 것은 오로지 나의 일, 나만의 생활을 갖는 거였다. 콧구멍만한 그녀의 선물가게는 딱 안성맞춤의 집이었다. 그러나 교통사고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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