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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LEGO - 레고가 아이들 놀이라고?

CULTURE LEGO - 레고가 아이들 놀이라고?

2013년 5월 뉴욕 타임스 스퀘어 광장에 전시 된 스타워즈 비행기 ‘X-윙 스타파이터’ 레고 모형. 500만 개가 넘는 블럭으로 이뤄졌다.



최근 세 살짜리 조카를 찾아갔을 때였다. 나는 거실에 어지럽게 널린 파스텔색 레고 블럭 앞에 앉았다. 조심스럽게, 거의 집요하게 공주의 성을 쌓으려 애쓰고 있었다. 테이블 전체에 미니 인간과 애완동물들이 흩어져 있었다. 그 주위를 갖가지 형태와 크기의 블럭들이 에워싸고 있었다.

이 둥근 블럭들로는 꽃을 만드는 걸까? 녹색은 잎사귀?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더없이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십 년 동안 보지도 갖고 놀지도 못했던 레고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지금 내게 있는 건 시간뿐이었다. 자정 가까운 시각이었고 조카는 몇 시간 전에 잠자리에 든 참이었다.

레고 완구 박스에 손을 찔러 넣은 성인은 나뿐이 아니다. 이들 미니 컬러 블럭들은 1958년 덴마크에서 처음 현재와 같은 형태로 등장했다. 그뒤로 아동의 놀이에서 성인의 갖가지 도전과제로 진화했다. 건축가와 예술가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수학자들을 쩔쩔매게 하고, 세계적인 팬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자폐아동들을 위한 혁신적인 치료법까지 낳았다. 새 다큐멘터리 ‘레고의 기록(Beyond the Brick: A Lego Brickumentary)’은 이 같은 예상을 뛰어넘는 여정을 추적한다.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대니얼 영이 감독과 아카데미상 후보였던 키프 데이비슨 감독의 작품이다.

“거대하고 다루기 힘든 주제다. 여러 모로 언어에 관한 영화를 제작하는 격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하지? 그보다, 어디서 끝내지?” 영이 감독의 말이다.

뉴욕시의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레고의 기록’이 초연된 다음 날이었다. 맨해튼 중부의 한 회의실에 영이와 데이비슨이 앉아 있다. 그들 앞 테이블 위에 4통 분량의 레고 블럭을 쏟아 놓은 참이다. 그야말로 장관이다. 빨강·노랑·초록·파랑·갈색·검정·하양 블럭들이 숱하게 널려 있고 핑크색도 제법 많다. 영이는 낮고 넓은 구조물을 만들고 있다.

데이비슨은 직사각형 타워를 맡았다. 영이가 블럭을 쌓으며 말한다. “또한 골수 팬 커뮤니티가 저변을 이룰 만큼 사랑 받는 주제를 다루는 책임도 따랐다.” 성인 레고 팬(AFOL)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소년층과 노년층뿐 아니라 잘 모르는 그룹과 너무나도 잘 아는 그룹에게 모두 어필하는 주제를 다루는 건….”

“진짜 팬들의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엔 볼 장 다 본 거지.” 데이비슨이 말했다. 영이와 데이비슨은 색다르게 그러면서도 존중하는 자세로 그 주제에 접근했다(내레이터라는 이름의 매력적인 노랑 미니인형으로 영화를 해설하는 제이슨 베이트먼도 마찬가지다). 영화는 12개국에서 촬영됐다. 얼핏 보면 AFOL은 약간, 음, 한심해 보일지 모른다. ‘스타트랙’ 성인 팬들의 먼 사촌처럼 말이다. 영이와 데이비슨은 이 같은 ‘폐인’ 이미지가 빛을 발하게 한다.

그들은 시애틀에서 해마다 열리는 레고 박람회 브릭콘(BrickCon)으로 관객을 이끈다. AFOL들이 작품을 출품하고 레고보트 레이스, 눈 감고 조립하기, 지정 레고 조립하기 경연대회에 출전한다. 브릭콘(브릭월드 또는 브릭페어로도 불린다)의 수준을 따라가려면 또 하나의 언어에 정통해야 한다. 영화는 레고 어휘 입문 강좌를 제공한다. KFOL(어린이 레고 팬), NLSO(비 레고계 중요한 타자) MOCs(내 자신의 작품) POOPs(다른 부품으로 만든 부품) LUGs(레고 이용자 그룹) 등이다.

그들은 체코 공화국도 방문했다. 그곳에서는 완구 메이커 레고 그룹의 달인 조립 팀이 실물 크기의 스타 워즈 X-윙 파이터 전투기를 만드는 중이다. 이 모델은 500만 개가 넘는 블럭으로 이뤄졌다. 2013년 5월 뉴욕시의 타임스 스퀘어 광장에도 전시됐다. 코네티컷주 엔필드에선 거장 빌더들이 영화 ‘레고 무비(The Lego Movie)’의 세트에서 작업 중이다. 이 영화는 지난 2월 출시 첫 주말 691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린 콘텐트 마케팅의 아성이다.

레고 팬들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 친구와 타인, 전업주부와 기업체 임원들이다. 영화에서 모두 돌아가며 한 마디씩 한다. 인기 코미디 애니메이션 프로그램 ‘사우스 파크’ 제작자 트레이 파커와 프로농구 휴스턴 로켓츠의 센터 드와이트 하워드가 레고 블럭에 대한 애정을 말한다. 덴마크 코펜하겐대의 수학자 소렌 에일러스는 6개의 레고 블럭으로 쌓을 수 있는 방법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답은 9억1510만3765).

AFOL 윌 채프먼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탄성을 올리게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레고 미니 인형들의 손에 들어맞는 미니 무기들을 만든다(엽총·소총·총검·바주카포를 생각하면 된다). 그의 회사 브릭암스는 레고 그룹 계열사는 아니지만 레고 전투장면 세트를 조립하는 AFOL들을 주 고객으로 삼는다. “무기는 네덜란드 회사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채프먼이 영화에서 말했다. 레고 그룹의 마이클 맥닐리 브랜드 PR 선임 국장은 뉴스위크에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런 것들을 만들지 않는다. 하지만 문제 삼지는 않는다. 그런 무기를 원하는 소비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 네이선 사와야가 등장한다. 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없다면 레이디 가가의 ‘G.U.Y’ 뮤직 비디오를 보면 된다. 변호사에서 블럭 아티스트로 변신한 사야와는 레고 블럭으로 거대한 티라노사우루스 공룡으로부터 모나리자,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까지 온갖 모형을 조립했다. 북미·아시아·호주를 돌며 ‘블럭 아트(Art of the Brick)’ 순회전을 갖기도 했다.

“초기에는 가치를 이해하지 못한 화랑과 미술관으로부터 문전박대를 당하기도 했다. 그들은 레고 아트는 전혀 흥미를 가질 만한 소재가 아니라고 단정했다.” 사와야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오늘 밤 소더비에서 내 작품 한 점이 제프 쿤스(현대 미술계의 거장)의 작품과 함께 경매된다. 내가 이 정도까지 인정받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4월 22일 동물이 알을 깨고 나오는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1만6000달러에 팔렸다.)

“사람들이 레고에 큰 매력을 느낀다. 자신의 창의성을 발휘하고 싶어한다”고 데이비슨이 말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런 흥미를 잃은 사람이 많다. AFOL들은 그 기간을 암흑기라고 부른다. 자신의 창의성 발휘하기를 중단하고 더 이상 레고 놀이를 하지 않는 기간이다. 창의성을 잃는 건 아니지만 더는 거기에 신경 쓰지 않게 된다.”

레고 그룹은 1932년 덴마크 빌룬트에서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이라는 목수가 설립했다. 회사명은 ‘잘 논다’는 뜻의 덴마크 단어(leg godt)에서 따왔다. 1940년대 후반 레고 블럭의 초기 버전을 선보였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대적인 형태의 모델은 1958년 등장했다. 뉴욕 완구박람회에서 바비 인형이 데뷔하기 1년 전이었다.

1970년대와 1980년대 미국에서 레고의 인기가 상승했다. 상당부분 마을·성·우주 세트 덕분이었다. 미니 인형들은 1978년 등장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회사가 경영난에 빠졌다. “모든 사람의 취향을 맞추려 애쓰다가 죽도 밥도 안 됐다. 모든 방향과 체험으로 브랜드를 확장했다”고 맥낼리가 말했다. 전 세계에 레고랜드 테마 파크를 세워 운영하고 사내에 비디오 게임 팀을 신설했다. “그러는 동안 조립 체험을 등한시하게 됐다. 그 기간 동안 어느 누구도 제대로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레고 그룹은 회사의 주력 사업에 다시 역량을 집중했다. 조립완구를 개발해 판매하는 사업이다. 그러는 동안 표적 고객 층의 절반을 외면해 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로 여자아이들이다. 2012년 1월 레고 프렌즈를 선보였다. 확실하게 소녀 친화적인 레고 세트 모델들이다.

형형색색의 블럭, 그리고 ‘스테파니의 야외 베이커리’ ‘안드레아의 버니 하우스’ 등 소녀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테마로 삼았다. 그 모델들이 성차별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레고 프렌즈 세트는 예상을 뛰어넘어 2배나 팔려나갔다. 가디언 신문에 따르면 2012년 상반기 레고의 순이익은 35%, 매출은 24% 증가했다.

“내 딸이 프렌즈 세트를 좋아한다”고 영이가 말했다. “아이가 과학·공학·건축·디자인에 흥미를 갖는 계기가 된다면 더 바랄 게 없다.” “레고 프렌즈는 아이들 손에 블럭을 쥐어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AFOL인 앨리스 핀치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일단 한 두 개, 나아가 12개의 세트까지 갖게 되면 제 맘대로 쌓아 올리기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내가 레고에 열광하는 점이다. 여자아이들이 나도 이것을 조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시애틀에서 사는 두 아이 엄마 핀치가 그 산 증인이다. 그녀는 레고 세계의 최고봉이다. 40만 개의 블럭으로 만든 호그와트 모형은 해리 포터 영화의 마법학교를 기가 막히게 재현했다. 브릭콘 2012에서 인기상과 최우수상을 받았다. 그뒤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속 엘프들의 성역인 리븐델을 지어 올렸다. 동료 레고 조립가 데이비드 프랭크와 팀을 이뤄 20만 개 가량의 블럭을 이용해 만든 합작품이다. 영화에서 핀치가 말했다. “집에서 빨래나 하다가 어느 날 내 플리커(온라인 사진공유 서비스) 페이지 조회수가 250만 건을 넘게 됐다.”

불가능한 듯하지만 핀치는 작품구상을 할 때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는다. “정말로 머리 속에서 구상해 몇 번 스케치 한 뒤 말 그대로 바닥에 블럭을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녀가 뉴스위크에 말했다.

입이 딱 벌어지는 레고 디자인을 구상하는 일 외에도 핀치는 실러그(SeaLUG, 시애틀 지역 레고 이용자 그룹)의 열성 회원이자 총무이기도 하다. 레고 건축에 초점을 맞춘 아킬러그(ArchLUG)도 창단했다. 그녀의 다음 프로젝트? ‘반지의 제왕; 왕의 귀환’의 마지막 전투에 등장하는 중간계 속 상상의 도시 미나스 티리스의 건설이다.

“솔직히 말해 그녀는 록스타다. 사람들은 그녀의 작품이 경이적이라고 생각한다. 소녀와 여성들에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욕을 불어넣었다”고 데이비슨이 말했다. ‘레고의 기록’은 유쾌하고 위트 있는 짤막한 문장, 매혹적인 애니메이션, 레고 유니버스의 컬러풀한 캐릭터들로 가득하다. 그러나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영화 끝부분에 나온다. 레고 치료법이다.

아이들이 3명씩 무리 지어 레고 블럭 놀이를 하는 장면. 모두 자폐아동이라고 의사가 설명한다. 각자 엔지니어, 부품 공급자, 건축가 역할을 맡았다. 아이들이 집중하고 협력하고 상호작용하도록 도우려는 목적이라고 의사는 말한다. 모두 레고 블럭을 조립해 쌓아 올리는 놀이를 통해서다. 이어 뉴욕시의 아드리안 피트가 등장한다. 이런 치료법의 혜택을 본 소년이다.

침실 바닥에서 놀이를 하고 있다. 꼼꼼히 사용설명서를 따라 가며 레고 블럭으로 X-윙 스타파이터를 조립한다. “집중력을 키워준다”고 그가 영화에서 말한다. 그뒤 아버지가 소년을 데리고 타임스 스퀘어를 찾아가 실물 크기 스타 워즈 X-윙 파이터를 보여준다. 그 거대한 물체를 보는 아드리안의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내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가장 멋져요.” 소년이 말한다.

56년 된 완구가 자폐아동부터 농구 스타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어린 시절 이후로 레고 블럭을 갖고 놀아본 적이 없는 두 영화제작자를 위해서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내 아이와 유대감을 형성해주고 아이의 창의적 잠재력을 보여준 것만으로도 레고는 내게 새로운 세상을 열어줬다.” 6살짜리 아들을 둔 데이비슨이 말했다.

“레고로 만든 놀라운 작품들을 아주 많이 봤다. 덕분에 이 주변에서 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6살과 1살짜리 딸들을 둔 영이가 말했다. “어느 면에서 해방감을 느낀다. 블럭을 갖고 놀 때는 반드시 천재가 아니어도 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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