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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계 좌지우지한 점쟁이 김자명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⑦]

점괘 능력 내세우며 상품가 조장해 부 축적
선 지키지 못하고 아들 교육 실패해 1대 만에 폭망

 
 
조선 점쟁이 김자명은 일부로 곶감 가격을 올려 부를 축적했다.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조선 인조에서 효종 대에 이르기까지 한양의 상계(商界)를 좌지우지하던 인물이 있다. 시각장애인에 점쟁이였던 김자명(金自鳴)이다. “(한양의) 남북시장에서 모두 김자명의 돈으로 장사를 했으니, 김자명이 돈을 풀면 저자에 돈이 흔하고 그가 돈줄을 죄면 도성 안의 물건값이 달라지는 지경”이었다고 한다. (이하 직접 인용 표시는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
 
그런데 아무리 김자명의 점치는 실력이 유명하고 복채가 비싸다고 하더라도, 그것만으로는 한양의 상계를 장악할 정도의 자본력을 갖출 수 없었을 것이다. 김자명은 큰 부자였던 역관 이형장의 재산을 가로챔으로써 종잣돈을 만들었다고 한다. 중국을 오가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이형장은 김자점 사건으로 목숨을 잃었다. 그 직전에 김자명이 이형장의 점괘를 뽑아 준 적이 있었는데 앞으로의 운세가 깜깜하여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죽는다는 뜻이었다. 김자명은 “지금껏 그대의 뒷배가 되어주던 귀인이 이제는 그대를 해치는 재앙이 될 것”이라며 경고했다고 한다. 이형장은 인조 말기의 최고 실력자 김자점의 총애를 받아 승승장구했는데, 바로 그 김자점으로 인해 발목이 잡힌다는 것이다. 놀란 이형장이 어떻게 해야 액운을 벗어날 수 있겠냐고 물었다. 김자명은 “혹시라도 꼬투리를 잡히면 안 되니, 평소 모아둔 금은보화를 ‘신당(神堂)’에 숨겨 놓으시오. 그러면 조정에서도 이를 찾아내지 못할 것이고 그대도 이내 곤란한 처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오.”라고 답한다. 압수수색을 당해 부정하게 축적한 재물이 발견되면 더욱 힘든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니, 미리 찾기 힘든 곳에다 감춰두라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이 벌어졌다. 효종이 즉위하면서 실각한 김자점은 당시 조정에서 논의되었던 ‘북벌(北伐)’ 계획을 청나라 사신에게 누설했다. 청나라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위상을 되찾고 눈엣가시였던 산림(山林)을 제거하기위해서였다. 하지만 김자점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영의정 이경석과 예조판서 조경이 책임을 떠안고 의주 백마산성으로 귀양을 감으로써 사건이 무마되었기 때문이다(청나라 사신에게 막대한 뇌물을 주기도 했다).  
 
이때 김자점의 사주를 받아 북벌 계획을 누설한 사람이 이형장으로, 청나라 사신이 귀국하자마자 체포된다. 그러자 그의 아내가 전 재산을 궤짝에 담아 몰래 김자명이 점을 치는 신당으로 옮겨왔다. 남편이 자신의 신상에 무슨 일이 생기면 모두 김자명에게 맡기라고 했다면서 말이다. 김자명이 이 재산을 꿀꺽한 것인데, 본인은 “나라에 알렸다가는 자기도 연루될까 두려웠다.”라고 변명하지만, 이후의 행적으로 볼 때 재물에 대한 욕심이 앞섰던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었다면 귀양을 가거나 관노가 된 이형장의 일가를 도와줘야 했을 것이다. 이형장과 얽힐까 봐 걱정됐다고 하더라도 그가 마음만 먹었다면 얼마든지 몰래 도와줄 수 있었을 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김자명은 이렇게 얻은 재산에다 복채 수입과 고리대 이자 수익을 더해 막강한 자금을 확보했다. 그런데 그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김자명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기만과 협잡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산지와 시장의 시세 차이가 큰 물품, 오래 보관할 수 있으며 양반이나 부자들이 주로 찾는 상품을 독점했다. 예컨대 곶감이 막 생산되었을 때는 가격이 싸다. 김자명은 곶감을 모두 사들여 창고에 보관한 후 꽁꽁 묶어 두었다. 사람들이 명절 차례상을 준비하고 수정과를 만들려는데 곶감을 구하고 싶어도 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로 인해 가격이 몇 배나 폭등하니 김자명은 그제야 상품을 내어놓는다.
 
그런데 그가 단순히 사재기만으로 돈을 번 것이 아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여 사람들을 속이고 자기 뜻대로 상황을 조작했다. 우선 돈을 꾸러 온 상인에게 올해 곶감을 사면 운수가 대통할 거라는 점괘를 준다. 더불어 자금을 듬뿍 보태 자신이 시키는 대로 곶감을 모두 사들이라고 요구했다. 이렇게 하면 신통한 점쟁이 김자명이 곶감을 점지했다는 소문이 퍼지고 상인들은 너도나도 곶감을 사겠다며 달려들게 된다. 이때 김자명이 넌지시 제안한다. 자기가 돈을 빌려줄 테니 많이 사들이라고. 채무를 상환할 때도 돈 대신 곶감으로 하면 된다고. 넙죽 받아들인 상인은 이내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 가격을 기준으로 상환할 곶감 물량을 정했는데, 김자명의 싹쓸이로 인해 가격이 크게 올라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요 산지의 곶감이 모두 씨가 말라버린 상태여서 전국 구석구석을 찾아다녀야 했다. 김자명은 사람들을 속여 몇 배의 이득을 거두고, 본인이 놓쳤던 곶감까지 모두 거둬들이는 효과를 거두게 된다.  
 

불과 1대 만에 무너진 김자명의 욕심  

이것으로 끝인가? 아니다. 김자명은 자신의 점치는 능력을 다양하게 악용했다. 혼인날을 받으러 온 사람에게 폐백에 쓸 밤과 대추는 부정을 타지 않은 물건을 써야 한다며, 넌지시 자신이 물건을 대는 상점을 추천한다. “고부간에 뜻이 맞으려면 폐백에 정성이 있어야 하네. 소문내지 말고 조용히, 내일 아침 동쪽 어느 건어물 전에 가서 밤과 대추를 사게. 기운이 좋은 물건을 파는 곳이니 효험이 있을 걸세. 부정을 탈 수 있으니 절대로 값을 깎아서는 안 되네.” 과연 소문이 안 날까? 저 상점이 물건이 좋다며 삽시간에 퍼질 것이다. 또한, 과거시험 답안지로 쓸 ‘명지(名紙)’는 반드시 어느 지물전에서 사야 행운이 따른다는 점괘를 주기도 한다. 그러면 너도나도 그 지물전으로 몰려가 종이를 사느라 금세 동이 나게 마련. 상황이 이와 같으니, 김자명의 가게가 큰돈을 벌었을 뿐 아니라, 상인들도 너도나도 김자명을 찾아와 자기 가게를 잘 봐달라며 뒷돈을 바치고 아부하게 된다.  
 
하지만 정도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돈을 모으느라 정신이 팔렸기 때문일까? 그는 아들 교육에 실패했다. 사치와 향락에 빠진 외아들이 돈을 펑펑 써대 집안이 흔들릴 정도였다. 더는 두고만 볼 수 없었던 김자명이 기와집도 팔고 비단옷도 벗어버린 채 점치는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장사에 나서야 할 정도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김자명은 세상을 떠났고 그의 아들은 버릇을 고치지 못한 채 흥청망청하다가 이리저리 떠돌며 밥을 구걸하는 처지로 전락했다고 한다. 불과 1대 만에 망해버린 것이다.
 
이상 김자명은 큰 부를 일궜다는 점에서 자신의 고유한 능력을 성공적으로 활용한 사례다. 점을 치는 능력이 그저 점쟁이라는 직업 안에서만 머물렀다면 그는 단지 부유한 정도였을 뿐, 수도 한양의 상계를 뒤흔드는 위치에까진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미래예측능력을 상업에 접목함으로써 시너지를 발휘한 것이다. 시장 상황을 자신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효과도 가져왔다. 다만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을 기만하고, 작은 이익에 집착하여 쪼잔하게 행동한 점은 그가 가진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아들 교육을 잘못시킨 탓이 크긴 하지만, 만약 그가 선을 지키며 미래예측능력과 상업을 접목했다면, 불과 1대 만에 몰락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왕의 경영] [군주의 조건] [탁월한 조정자들]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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