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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업주의 vs 겸업주의 논쟁 [전성인의 퍼스펙티브]

8일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통해 ‘겸업주의’ 논쟁 불거져
유니버설 뱅킹, 은행 재무적 건전성에 악영향 우려 있어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8월 8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금융위원회 업무보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8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금융위원회 업무보고를 했다. 이날 배포된 보도자료에 의하면 별다른 내용은 없다. 다행이다. 무엇인가 ‘이상한 짓’을 하겠다는 ‘금융위의 불장난’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보여주기 식 행정보다는 그래도 그동안 문제로 지적된 부분에 대한 보완을 추가한 점도 평가해줄 만하다.
 
물론 문제점이 전혀 없다는 말은 당연히 아니다. 금산분리 원칙을 완화해서 은행의 업무 영역을 넓히겠다는 것 말이다. 가히 ‘김주현표 불장난’이다. (이것이 원래부터 김 위원장의 소신이었는지, 아니면 정치권 윗선의 찍어누르기나 은행권 로비의 결과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일단 김 위원장이 총대를 멨으니 이 글에서는 ‘김주현표’라고 표현한다)
 

커머셜 뱅킹, 유니버설 뱅킹 논쟁 오래 전부터 지속

이 불장난은 업무보고에서 “디지털 유니버설 뱅크”라는 멋있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김 위원장은 마치 무슨 새로운 정책인 것처럼 포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전업주의(소위 커머셜 뱅킹) 대 겸업주의(유니버설 뱅킹) 논쟁은 해묵은 논쟁이다.
 
은행이 좁게 정의된 은행업만 할 것인지, 은행업은 아니지만 다른 금융업권 업무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심지어는 전혀 금융업이 아닌 다른 비금융업(즉 소위 산업자본) 업무도 함께 할 수 있도록 할 것인지 하는 논쟁이다. 업무 범위를 좁게 정하자는 것이 전업주의이고, 넓게 이것저것 다 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 겸업주의이다. 겸업주의의 경우 비은행 금융업까지만으로 넓힐 것인지, 아니면 산업자본 업무까지 허용할 것인지 그 범위도 논란이다.
 
우리나라에서 전업주의 대 겸업주의 논쟁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었던 때는 금융지주회사 제도를 도입하던 1990년대 말, 2000년대 초였다. 은행 차원에서 비은행 금융업무를 이것저것 하게 해 달라는 소위 ‘인-하우스(in-house) 겸업’ 주장이 그 핵심이다. 감히 산업자본 업무도 하게 해 달라는 말은 입도 뻥끗 못했고.
 
이것저것 다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주장의 논거는 범위의 경제였다. 함께 하면 효율성이 올라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 논거는 이해상충이었다. 이것저것 하다보면 이쪽 손실을 저쪽에 떠넘기거나 하여 특정 이해당사자들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논쟁을 거쳐 최종적으로 도달한 사회적 합의는 ‘인-하우스 겸업은 불허하고, 그 대신 다른 금융업무는 동일한 금융지주회사 체제 내에서 별도의 자회사 형태로 수행하고, 산업자본 업무는 불허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2000년대 초 금융지주회사 탄생의 핵심 논거가 되었다. 
 
물론 현실에서 약간의 예외도 있었다. 은행이 전통적인 예·적금 상품만 파는 것이 아니라 보험도 팔고(방카슈랑스), 금융투자상품도 팔았다(라임·옵티머스를 상기하라). 그 대신 이해상충을 방지하기 위해 적절한 방화벽(소위 ‘chinese wall’)을 쌓고, 설명의무 등 금융소비자 보호 의무를 부담해야 한다는 전제가 추가되었다. 다만 라임·옵티머스 사건에서 보듯이 아직도 이해상충의 문제점은 현실에서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유니버설 뱅킹은 이해상충 문제 외에 은행의 재무적 건전성에도 중대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왜냐하면 은행의 연결 재무제표 상에서 엄격하게 그 위험이 통제되지 않는 자산의 범위와 규모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우리금융지주회사 민영화 과정에서 일시적으로 금융지주회사가 지배하던 카드사와 종금사 등을 은행의 자회사로 억지로 편입한 바 있다. 그 결과는 재무 건전성 악화였다. 우리은행의 BIS 자기자본 비율은 은행업권의 평균 비율 이하로 하락해서 2015년 가을에 있었던 케이뱅크 예비인가 심사에서 사실상 대주주 적격성을 충족하지 못했다. 금융감독의 대상이 되는 카드사와 종금사 등 금융 계열사 편입이 이런 결과를 가져 왔는데, 만일 은행의 연결 재무제표에 일반 산업자본 활동이 가미될 경우 그 위험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지 가늠하기 쉽지 않다.
 
규제 체제의 측면에서 보면 이런 전업주의 원칙은 은행법, 금융지주회사법,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금산법) 등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특히 은행의 업무는 원칙적으로 예금, 대출 업무와 환업무 등 고유업무(은행법 제27조)와 그에 부수하는 업무(은행법 제27조의2)로 제한된다. 은행이 겸영할 수 있는 업무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도 제한된 범위의 금융(관련)업무여야 한다(은행법 제28조). 금융지주회사와 그 자회사등은 산업자본 회사의 주식 소유 또는 지배가 금지되고(금융지주회사법 제6조의3 및 동법 제19조), 금융지주회사는 금융관련 자회사등을 지배하는 것 이외에 스스로 다른 영리활동을 할 수 없다(금융지주회사법 제15조). 한편 모든 동일계열 금융기관은 산업자본 회사 주식을 20% 이상 보유하거나, 5% 이상 보유하면서 사실상 지배할 수 없다(금산법 제24조).
 

유니버설 뱅킹 도입 위해선 은행법·금융지주회사법 개정 필요

이런 규제체계 하에서 유니버설 뱅킹을 도입하려면 은행법을 개정하거나 금융지주회사법을 개정해야 한다. 산업자본 업무가 은행업의 부수 업무라고 주장하기는 쉽지 않으므로 아마도 겸영 업무라고 강변하면서 도입하려고 할 것 같다. 이 경우 은행법 제28조를 개정하여 현재 금융(관련)업무 중에서만 겸영 업무를 선정하도록 한 제한을 없애려고 할지 모른다. 또 다른 방식으로는 은행이나 은행을 보유한 금융지주회사의 자회사등의 주식 보유 제한을 풀어서 은행이 산업자본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할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뜬금없이 취임 일성부터 금산분리 완화를 외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지금 은행이 수익률이 악화되어 소위 ‘다른 먹거리’를 찾기 위한 비상 수단을 써야 할 때가 아니기 때문이다. 지주회사 체제 내의 대형은행들은 대략 분기에 1조원씩 이익을 내고 있다. 이익이 오히려 너무 많이 나서 뒷말이 무성한 상태다. 그렇다고 은행이 여타 금융업도 아닌 산업자본 업무를 반드시 겸영해야 할 무슨 설득력 있는 논거를 떠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필자는 처음에 은행의 업무영역 확대 주장이 빅테크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편파적 사랑에 불만을 느낀 ‘은행권의 소원수리’라고 이해했다. 그러나 과연 그렇게만 볼 수 있을까? 왜냐하면 업무영역 확대는 은행뿐만 아니라 카카오가 지배하는 인터넷전문은행에도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이런 겸업 주장은 현재 전자금융업자의 탈을 쓰고 사실상의 은행업을 노리고 있는 네이버에게 완벽한 규제 면제 논거가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전자금융업자들은 “은행도 산업자본 업무를 겸영하는데 우리가 은행업을 못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주장하면서 은행업에 대한 무혈입성을 노릴 수 있다.
 
이제 김주현표 불장난이 얼마나 번질 지는 국회 정무위에 달렸다. 국회가 소방수 역할을 제대로 해야 한다.
 
* 필자는 현재 홍익대학교 경제학부 교수를 지내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미국 MIT 대학원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텍사스 오스틴 대학에서 강의하다 귀국한 후에는 한국금융소비자학회 회장, 한국금융정보학회 회장, 한국금융학회 회장, 한국금융연구센터 소장 등을 역임해 다양한 외부 활동을 하는 지식인으로 꼽힌다. 저서로는 [화폐와 신용의 경제학] 등이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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