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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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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날아 멀리 보라’ 동북아 국제무역 갑부 김기덕 [김준태 조선의 부자들 (23)]

전문가 칼럼

Q: 사업적 견지에서 만주로의 진출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A: 퍽 유망하다고 봅니다. 조선 안에서 어디 큰 사업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이미 다 자리를 잡은 셈이니까요. 지역이 넓은 만주 방면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Q: 앞으로 문화사업이나 교육사업에 얼마나 힘을 기울이실 작정이십니까? A: 지금에야 다하고 싶지만 어디 그렇게 됩니까? 나는 무슨 일이든 다 그러하지만, 그때를 당해서 일을 해놓은 뒤에야 이렇다 저렇다 말하지, 그전에는 입 밖에다 말을 꺼내지 않으렵니다. Q: 지금 가진 재산이 얼마나 되십니까? A: 글쎄요. Q: 토지는 얼마나 되십니까? 전 재산의 반 이상이 토지겠지요? A; 네 역시 토지가 많은 편이지요. Q: 돈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흔히 백만원, 천만원 대에 이르는 거부가 되면 재물에 관한 자신만의 철학이 생긴다고 들었습니다만. A: 돈이란 1000~2000원, 1만~2만원 때는 개인의 재산입니다. 하지만 백만원, 천만원이 되면 사회의 공재(公財)를 내가 잠시 맡고 있을 뿐인 거죠. Q: 그렇다면 지금 그 많은 재산을 자손에게 물려주실 건지요? 유산 상속을 어떻게 하실 건지, 그리고 유산에 관한 동양의 도덕과 습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A: 자손에게 많은 재산을 물려준다는 데 찬성하지 않으며 결코 좋은 일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손에게는 교육을 주고, 인격을 줄 일이지 돈을 물려줄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1935년에 발간된 잡지 에 실린 대담 기사를 요약해 현대어로 옮긴 내용이다. 이 대담의 인터뷰이 대상자는 김기덕(金基德 1892~1953년)이다. 그는 조선-만주-러시아를 잇는 중개무역을 통해 큰돈을 벌었다. ‘대담하며 의협(義俠)의 기풍이 풍부한 통쾌한 성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 그는 독립운동에도 자금을 댔다. 또한 함경북도 청진에 청덕학교와 청덕전기학교를 세우고, 서울 한성실업학교에 자금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교육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 당시 자수성가한 부자들의 공통점이기는 하지만, 김기덕의 어린 시절은 매우 가난했다. 함경북도 부령의 한미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인근 청진으로 옮겨 살았는데, 1908년 개항 이후 청진은 동북 지역을 대표하는 국제 항구로 성장하고 있었다. 이 청진에서 김기덕은 국제무역과 해외 나라들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특히 일본어가 관건이라는 생각에 일본어 공부에 매진했다. 덕분에 그는 일본 상선회사의 측량기사로 일할 수 있었고, 오사카로 건너가 약 2년간 머물면서 일본 상인들과 폭넓게 교류하기도 했다. 이때의 경험이 그에게 큰 자산이 된다. 1915년 조선으로 돌아온 김기덕은 청진에 해산물무역회사를 설립하였고, 북만주 지역에는 목재회사를, 다롄에는 곡물무역회사를 세워 무역업에 뛰어들었다. 그는 연해주와 함경도 연안에서 잡히는 해산물을 내륙에 팔아 이윤을 남겼고, 만주 평야의 곡물을 수입해 판매했다. 1932년 일본의 괴뢰국가인 만주국이 수립되면서 만주 일대에 건설 붐이 일고 목재 수요가 급증하자, 북간도지대의 광대한 숲에서 나무를 벌채하여 수출하기도 했다. 특히 두만강과 압록강 연안에 대규모로 목재회사와 제재(製材)회사를 운영했는데, 철도국에 다량의 침목과 전주를 납품하여 큰돈을 벌었다. ━ 일본 북진정책 고려, 전략 요충지 선점 그런데 김기덕이 벼락부자 중에서도 최고의 벼락부자라 불릴 정도로 막대한 재산을 갖게 된 것은 이들 사업 때문이 아니었다. 그는 사업을 통해 얻은 이익 대부분을 토지에 투자했다. 당시 동아시아의 국제 질서와 무역 환경을 면밀하게 관찰한 그는 러시아와 만주·한반도·일본을 잇는 새로운 거점 항구가 신설될 것으로 예상하고, 청진에 인접한 지역이자 대초도와 소초도 두 섬이 천연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나진에 주목했다. 그리고 10여 년에 걸쳐 나진 일대의 땅을 사들였다. 그러던 1932년 8월 25일, 일본 정부는 “대륙정책을 결행하는 최대의 관문”으로 나진항 건설을 결정했다. 이에 김기덕이 소유한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오르게 된다. 당시 언론의 평가를 보자. 김기덕과 함께 나진의 땅을 양분하고 있던 인물이 홍종화였는데, 다음과 같은 기사가 남아있다. ‘이는 김기덕과 홍종화 양씨가 남보다 일본을 잘 연구하고 이해하였기 때문이다. 〈중략〉 만주와 몽고가 일본의 유력한 시장이 되고 일본의 북진주력의 경도점(傾到點)이 된다면, 지리상으로 보아 본토와 연락하는 주요 지점으로 두만강 남단이 선정될 것이라고 미리 짐작하고 십 수 년을 두고 나진, 웅기의 땅을 사 모으기에 열심이었던 것이니 선견지명이 있었다 할 것이다.’ (* 웅기는 오늘날 선봉 지역이다. 북한이 1993년부터 2010년까지 동북아시아의 국제적인 무역, 금융, 관광 기지로 건설하기 위해 ‘나진 선봉 경제 무역 지대’를 만들었을 정도로, 천혜의 항구이자 요충지였다) ━ 시대 변화 꿰뚫고 대비하는 통찰력 갖춰 아무튼 이때 김기덕은 나진에 150만 평, 웅기에 300만 평의 토지를 소유하고 있었다고 한다. 나진항의 방파제 노릇을 하는 대초도와 소초도도 김기덕이 미리 사들였는데, 직접적으로 항구로 사용할 땅이 모두 그의 것이었다. 항구 건설용 토지 수십만 평은 일본 총독부에 의해 수용되면서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을 보상받긴 했지만, 그조차도 처음 구매한 가격에 비하면 몇 십 배에 이르는 액수였다. 더욱이 나진항이 국제적인 무역도시·경제도시·군사도시로 개발되리라는 기대에 주변 땅값은 백배가 넘게 폭등했는데, 그가 가진 토지가 300만 평이 넘었으니 시세차익이 막대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김기덕에 대해 서두에 소개한 잡지 〈삼천리〉는 “미지수의, 무한대의 금(金)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 반도를 들썩이게 하는 분으로” “만주국이 성립하고 관북의 나진항이 극동의 중요한 국제무역항이자 군항이 되면서 거부로 떠올랐다.” “광막한 인생의 벌판에 빈주먹만 들고 나서서, 앞날을 내다보는 밝은 안목과 남보다 뛰어난 지략과 여기에 천재일우의 기회가 한데 뭉쳐서 일약 백만장자 소리를 듣게 되었다.”라고 극찬한다. 이후 김기덕은 해방 후 남쪽으로 내려와 고려흥업주식회사를 창립, 중석(重石)을 해외에 수출하여 성공했다고 하는데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다른 행적도 불분명한 상태여서 안타까움이 남는다. 요컨대 김기덕이 사업에 성공하고 많은 재산을 모을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의 변화를 읽어내고 선제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당시 동북아시아 국제무역의 핵심 조건이라 할 수 있는 일본어 실력과 일본에 대한 경험을 쌓았고, 만주국 건국과 철도 부설로 목재 수요가 폭증하리라는 것을 예측했다. 이 중 백미는 나진항 개발을 예상하고 십 년을 준비했다는 점이다. 동북아 국제정세와 경제 질서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 치밀한 분석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 필자는 칼럼니스트이자 정치철학자다. 성균관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같은 대학의 한국철학인문문화연구소에서 한국의 전통철학과 정치사상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 역사 속 정치가들의 경세론과 리더십을 연구한 논문을 다수 썼다. 저서로는 등이 있다. 김준태 칼럼니스트

2022.07.18 11:51

5분 소요
[짐 로저스 앞으로 5년 한반도 투자 시나리오] “북한은 몇 남지 않은 매력적 투자처”

국제 이슈

내년 말까지 남북 교류 본격화 기대… 전설적 투자가의 첫 한국어 출간본 워런 버핏, 조지 소로스와 함께 세계 3대 투자가로 이름을 날렸던 짐 로저스 로저스홀딩스 회장은 한반도 정세에 관심이 많다. 특히 경제 관점에서 북한의 잠재력을 높이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북한 통화를 사들인다면 언젠가 모두 부자가 될 것이다.” “북한의 개혁과 개방 움직임은 투자자들에게 굉장한 기회다.” 그가 수년간 공식 인터뷰에서 수차례 주장한 내용들이다. 심지어 “통일된 한반도는 세계 2위 경제대국이 될 것”이라고 호언장담했다. 지난 7월 포브스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도 그는 “휴전선에서 무장 병력이 철수하고 있는 등 남북한 국경은 이미 개방되기 시작했다”며 “내년 말이면 남북 간 교류가 본격화할 것”으로 낙관했다.근거가 뭘까. 낙관할 만하다면, 앞으로 북한엔 어떻게 투자해야 할까. 이 책은 명투자가의 심중을 일부 확인하면서 가까운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신간이다. 그가 낸 첫 한국어 출간본이기도 하다. 언론인 출신의 백우진 번역가가 공저자로서 가독성 있게 담아냈다. 책에서 로저스는 대중이 궁금해 하는, 그가 ‘대북 투자론’을 계속 설파하는 이유를 조목조목 설명한다. 2007년과 2014년 직접 북한을 방문했던 일, 그 내부에서 시장경제 체제로의 변화에 대한 강렬한 열망을 확인한 일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특히 2011년 말 김정일이 사망하고 젊은 지도자 김정은이 등장하면서 과거 물밑에서 흐르던 체제 전환 움직임이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 2014년 북한 재방문에서 영감 함경북도 나진-선봉을 시작으로 13개 자유무역지구에서 조심스럽지만 적극적으로 상거래가 진행됐다. 투자 규모는 제한적이고 거래량은 적었지만 로저스는 여기에 주목했다. 비공식적 이야기도 들려왔다. 2014년 북한 재방문 때 그는 확신했다. ‘7년 전과 전혀 달라져 있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역동적인 기운이 넘쳐흘렀다.’ 경제특구에 대한 외자 유치를 적극 꾀하고 있었고, 여행객은 자전거 투어나 영화 투어도 할 수 있었다. 마주친 북한 주민의 20%가량은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사용 중이었다. 과거 폐쇄적이던 북한 관리들도 태도가 개방적으로 바뀌었다.북한은 문을 열 준비가 됐다. 동시에 전 세계에 남은 몇 안 되는 매력적인 투자처다. 지리적 이점을 지닌 나진항 같은 곳은 아시아 최대 항구인 싱가포르의 뒤를 이을 만한 잠재력을 갖췄다. 이곳을 통하면 아시아 생산품을 열차에 실어 독일 베를린으로 지금보다 2주나 앞당겨 보낼 수 있다. 결국 빠른 투자로 선점 효과를 거두는 것이 최선책이다. 그가 내린 결론이다.문제는 방법론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진행 중이다. 북한의 금과 은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북한의 금·은화는 본연의 가치 외에 희소성도 지녔다. 지금 사야 가장 싸다. 만일 북한이 붕괴되더라도 북한의 금·은화는 세계 곳곳의 수집가들에게 매력적인 투자 대상이 된다. 부르는 게 값이 될 것이다. 잘 알려진 철도와 천연자원도 매력적이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적극 투자 중이다. 제재가 풀리고 교류가 활성화하기를 바라는 수밖에 없다.로저스와 공저자는 북한 달러화 시장의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도 진단하고 있다. 북한 사람들은 세계에서 손꼽힐 만큼 달러를 좋아하는데, 경제 개발이 미흡하고 심한 인플레이션을 겪은 데다 2009년 화폐개혁 실패로 자국 화폐를 더 불신하게 돼서다. 전문가들이 북한을 ‘달러화 경제(총통화에서 달러화 등 외화가 차지하는 비중이 30%가 넘는 경제)’로 분류하는 이유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는 북한 내 달러화 등 외화 비중이 64%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했다(올해 2월 기준). 이에 자국 통화 대신 미국 달러가 광범위하게 통용되고 있다. 속칭 ‘돈주(돈의 주인을 뜻하는 북한 신조어)’라고 하는, 달러를 많이 보유한 계층도 부각돼 예의 주시하게 만든다.로저스는 늦어도 내년 말 남북 교류 본격화를 예상하는 이유도 책에서 전하고 있다. 공동경비구역(DMZ)의 일부 관측 초소 시범 철수와 지뢰 제거가 시작됐고, 우호적인 외교 환경이 꾸준히 조성되고 있다. 다만 그는 남북한 정부가 경제 개발을 위해 정부 주도로 협력을 추구하는 시도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라고 전제한다. 역사적으로 봐도 투자자들에게 활로를 열어주는 것 외에 직접 개입은 좋지 않아서다. 종전 선언 후 민간 주도로 경제 교류를 본격화하면서 북한 내 인프라 건설 등에 매진해야 한다는 시각이다. 그 이전엔 남북한 모두 체질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 있다. 한국으로선 각종 규제와 행정법 완화 및 개선, 외부 자본의 적극 활용이 필요하다.개성공단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공저자는 “중국이나 한국보다 생산 효율과 품질이 우수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한다. 화장품 용기 생산 업체인 태성산업이 한 예다. 태성산업은 중국 칭다오에 신규 공장을 짓기로 추진하다가 2005년 개성공단에 제2공장을 짓고 가동했다. 2006년부터 이익이 꾸준히 났다. 2005년 483명이던 고용 인원이 2014년 873명으로 늘어났다. 2014년 공저자와 대화한 오성창 전 태성하타(태성산업과 일본 기업 하타가 합작으로 설립한 개성공단 제2공장 법인) 법인장은 “개성공단 노동자들은 10년 가까이 같은 작업을 하다 보니 숙련공이 된 데 비해 남쪽 노동자는 대부분 외국인으로 이직이 잦아 생산성이나 품질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2014년 설문조사에서 입주기업의 92%는 개성공단이 해외는 물론 국내 공단보다 경쟁력이 매우 높거나 다소 높다고 응답했다. 현재 개성공단은 폐쇄된 상태이지만,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 확인했던 중요한 경험이므로 미래에 잘 살려야 한다고 분석한다. ━ 북한 ‘장마당’과 개성공단 경험에 주목 이 외에 이 책은 북한에서 90년대부터 생겨난 ‘장마당’에 왜 주목해야 하는지, 북한이 정말 핵을 포기할 것인지 등을 짚었다. 장마당은 허가를 받지 않은 비공식 시장인데, 북한 정부의 배급 시스템이 무너지자 북한 사람들은 자생적으로 이런 시장을 만들어냈다. 2003년 종합시장으로 합법화하면서 지역 특성에 따라 전문화하고 있다. 이미 국영 매장에선 휴대전화 등 고급 소비재가 거래될 정도다. 국가정보원에 따르면 2017년 기준 400여 곳의 종합시장이 존재하는데 상인만 최소 110만 명이다. 또 전체 인구 2500만 명 중에 18%가량은 이 종합시장에 생계를 직접 의지한다. 북한 경제의 핏줄인 셈이다. 북핵 문제는 좀 까다롭다. 장기화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게 로저스의 분석이다. 주한 미군이 변수인 가운데 노련한 협상 전문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젊은 지도자인 김정은의 ‘빅딜’이 중요해졌다.1942년 미국 앨라배마주에서 태어난 로저스는 예일대와 영국 옥스퍼드대 배일리얼컬리지에서 역사학·철학·정치학·경제학을 두루 공부했다. 어린 시절 땅콩을 팔고 야구장에서 빈병을 모아 돈을 번 일화로 유명하다. 나이 스물둘에 미국 금융계의 심장 월스트리트에 진입해 1969년 소로스와 함께 헤지펀드 투자 회사 퀀텀펀드를 설립했다. 퀀텀펀드는 10년간 4200%의 전무후무한 수익률을 기록해 월가가 발칵 뒤집혔다. 1979년 월가에서 떠난 그는 후학 양성과 두 차례의 세계 일주로 견문을 쌓은 뒤 명사로서 독자적 투자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2019.12.01 19:23

5분 소요
[장밋빛 남북경협의 허와 실] 북한 비즈니스 ‘약속의 땅’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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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일 기업에 자본력·기술력 밀려…전문 인력 양성하고 구체적 플랜 세워야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과 함께 남북관계와 북한을 둘러싼 국제정세가 급변하면서 한반도는 봄을 맞이했다. 4월 27일 11년 만의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되면서 그동안 단절되고 경색됐던 남북관계는 철도·도로 연결, 산림협력, 체육행사, 이산가족 상봉 등 교류·협력을 서서히 심화시켜가고 있다. 또 6월 12일에 개최된 역사적인 북·미 정상회담으로 은둔의 국가를 자처했던 북한은 국제사회에 화려하게 등장하면서 선대가 가지 않았던 새로운 길을 모색 중이다. 특히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중국 시진핑 주석과 3번을 만나고 북중협력을 가속화하고 있다. 아직까지 북·미 간에는 북한의 안전보장과 북핵 해결을 위한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둘러싼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북한의 핵 폐기를 향한 제스처가 가시화되지 않고 대북제재는 여전히 유효한 상황이다. 그러나 국내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북한을 새로운 ‘기회의 땅’으로 바라보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앞으로 북핵 문제 해결이 가시화된다면 미지의 미개척 시장인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 국제금융 활용한 개발사업 경험 적어 다만 정부와 기업들은 ‘대북 투자’가 한국에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오히려 북한의 가장 큰 ‘파트너’는 중국일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대외 무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에는 24.8%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대 초 일본과의 무역이 끊기고, 2010년 우리 정부의 5·24 조치가 시행되면서부터 대중 의존도는 가파르게 상승해 2016년에는 92.5%를 기록했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거세질수록 북한의 대중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 동참에 대한 압박으로 주춤한 상황이지만, 중국은 북한과 무역 뿐만이 아니라 훈춘·단동 등 북·중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인프라, 임·가공, 관광 등의 사업을 추진해왔다. 14억 인구로부터 나오는 대륙의 자본 조달력도 무시할 수 없다. 러시아 역시 나진항 개·보수 사업과 북한 철도 현대화 사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북 투자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접경국의 지리적 이점과 동맹국이라는 우호적인 파트너십을 구축하며 초기 시장에 대한 주도권을 선점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 기업은 객관적인 전력에서 북한 사업에서 중국과 러시아 기업에 밀린다고 봐야 한다. 더구나 앞으로 미국과 일본 기업과의 경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세계 시장에서 원천 기술력을 독점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기업이 뛰어들게 된다면 우리 기업의 입지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한국의 자본 조달력에도 한계가 있다. 북한의 경제 개발에는 막대한 돈이 든다. 통일부에 따르면 남북교류협력기금 총 예산은 1조6182억원이다. 이 가운데 남북경협을 위해 조성된 기금은 개성공단 운영대출금과 기반조성금 311억원 등을 포함해 3445억원이다. 지난 3월 말까지 경협기반조성, 개성공단, 남북사회문화교류 등 총 374건에 465억원이 지출됐다. 산업은행은 최근 연구에서 북한의 경제를 통일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10년 간 최소 705조원이 필요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북한과 경제협력이 성사될 경우 앞으로 10년 간 최소 27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에는 남북협력기금뿐만 아니라, 인접국 공적개발원조(ODA)를 적극 활용하고 아시아개발은행(ADB),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세계은행(WB) 등 국제금융기구와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다양한 자본 조달 방안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북한 개발을 위한 막대한 재원을 모두 남북협력기금으로만 충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기업이 이런 다자개발은행(MDB)를 활용한 개발사업 및 ODA 활용을 통한 개발사업에 참여한 사례는 많지 않다. 이와 달리 다른 선진국의 개도국 개발사업 사례들을 살펴보면 ODA 및 국제금융기구와의 성공 케이스가 많다. 특히 일본의 일본국제협력기구(JICA)는 동남아·중남미·아프리카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에 양자 간 ODA를 통해 협력사업을 추진해 대상국 인프라를 건설하고 그와 관련한 개발사업권을 확보하며 투자를 성공시킨 경험이 있다. 독일의 지멘스 역시 독일국제협력공사(GIZ)와 개도국 개발협력 사업을 위한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자국 기업이 강점을 보유한 분야를 중심으로 개도국 역량 개발, 도시개발 마스터 플랜 수립, 지식공유워크샵 등을 지원하며 해당 수원국 정부와 네트워크를 구축해 사업을 성공시켰다. 국제사회와의 개발사업 경험 부족은 자칫하면 북한 개발에서 소외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국제기구와 함께 북한 개발을 진행할 수 있는 역량 개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기업들의 준비도 필요하다. 먼저 장밋빛 전망으로만 접근하기보다는 냉정한 사업 검토가 필수적이다. 대북 사업은 기회만큼이나 많은 위험이 존재한다. 대북 투자를 경험했던 많은 실패 사례가 보여주듯이, 투자를 집행하기 전에 신중한 사업 검토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의 해결을 전제함은 물론, 북한의 정치·산업·제도 등 다방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 요인에 대한 면밀한 파악이 병행돼야 한다. 지금은 정치 리스크가 남북관계 회복에 따라 점차 완화되고 있지만 투자·노동·조세·토지와 관련한 규제 측면에서의 불확실성은 남아있다. 북한의 ‘북남경제협력법’과 ‘외국인투자법’ 등에 기초해 정치·경제적 리스크를 최소화할 방법을 찾는 게 바람직하다. 이를 통해 투자 가능 여부, 토지 이용 권한, 분쟁 해결 절차 등 구체적인 리스크를 따져봐야 한다. 리스크 점검과 함께 투자비 회수 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하는 것도 중요하다. ━ 북한 ‘북남경제협력법’ ‘외국인투자법’도 검토해야 북한 경제의 문이 언제 어떻게 열릴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 문이 열렸을 때를 대비한 준비를 하지 않는다면 남들보다 늦을 수밖에 없다. 북한 투자를 위해 관련 전문 인력을 미리 육성해야 하고, 어느 지역, 어느 부분에 투자를 집행할 것인지, 투자를 위한 자본은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실행해야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이보다 앞서 정부와 민간 투자자의 상호협력 하에 한국이 앞으로 경제협력과 개발사업 진행에서 최적의 파트너라는 신뢰를 북한 당국에 심어주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 기업과 투자자들 역시 지금부터라도 북한에서의 비즈니스에 관심을 갖고 과거의 경험, 북한의 현재 상황, 내가 가진 자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투자 및 진출 전략을 사전에 수립할 필요가 있다.

2018.07.14 16:10

4분 소요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

국제 이슈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인 블라디미르 야쿠닌 러시아 철도공사 사장이 지난 5월 27일부터 29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국제철도협력기구(OSJD) 사장단 회의 참석차 방한했다. 포브스코리아는 28일 오전 기자간담회 직후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야쿠닌 사장과 단독으로 만나 ‘나진~하산 프로젝트’ 등 남북철도와 대륙횡단철도 연결 프로젝트에 관련된 알려지지 않은 비화를 청취했다. “남북 간 철도 연결이 언제쯤 가능할까?” 답하기에 꽤 까다로운 문제다. 하지만 블라디미르 야쿠닌(Vladimir Yakunin, 66)사장은 “시기는 정확하게 말할 수 없지만, 남북 간에 ‘정치적인 결정’이 이뤄지기 전에 철도가 먼저 달릴 것”이라고 답했다. 이미 그런 문제에 대해 충분히 고민했다는 듯 철도 전문가로서 자신있게 말했다. 그는 기자간담회장에서 쏟아진 그 어떤 질문에도 별다른 주저함 없이 답했다. “이건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사장으로서 내가 한 말은 회사의 입장을 대표한다고 봐도 된다”는 말도 했다. 직설적이고 거침없는 그의 답변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 중의 한 명이다. 푸틴과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레닌그라드주(州)에 함께 다차(별장)를 두고 가족처럼 친하게 지낸다고 한다. 1995년 첫 방한을 했을 때도 푸틴과 동행했었다. (당시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었다.) ━ 러시아 연방 내 최대 국영기업 레닌그라드공과대학 기계공학과를 졸업한 그는 1985년 주UN 러시아대사관에서 2등 서기관으로 일했다. 2000년에 러시아로 돌아간 뒤에는 교통부, 통신부 차관을 지냈다고 한다. 그는 “UN 근무 때 처음 일했던 분야가 미사일 발사 (경로)개발”이었다고 털어놨다. UN본부는 남북한 외교전의 최전선이다. 그의 UN경력은 남한과 북한의 독특한 비즈니스 문화를 이해하고 입장차를 조율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공대출신의 외교관’이라는 이색적인 경력 또한 철도회사 사장인 그에게 철도 외교(Railway Diplomacy)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게 만든 원인이 됐다.야쿠닌 사장이 대표로 있는 러시아철도공사(JSC Russian Railways)는 시베리아 횡단 철도 등을 운영하는 국영 회사다. 수권자본금 규모만 1조9194억 루블(한화 약 120조원)에 이른다. 코레일의 수권자본금 규모가 1조원대 수준임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러시아 철도공사의 자산도 상당하다. 러시아 연방 소유의 철도기업 987개 조직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2003년 설립됐고, 정부(러시아 연방)가 단일주주다. 러시아 연방 내 최대 납세자이기도 한 철도 공사는 2003년 이후 납세액 규모만 2조 루블(한화 약 41조원)을 상회했다. 야쿠닌 사장은 그런 러시아 철도 공사의 사장직을 벌써 4번째 연임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의 깊은 신임이 없다면 쉽지 않은 일이다.야쿠닌 사장은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유라시아 국가의 철도 모임인 OSJD를 주도하는 야쿠닌 사장은 “제가 코레일과는 11년을 이어온 관계”라며 “고속철도 관련 정보교환과 과학기술 분야에서 많이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방한 때 OSJD 서울 사장단 회의의 공동의 장을 맡은 그는 지난 5월 27일 유라시아 국가의 철도 회사 대표들과 함께 남북 철도 연결을 지지하는 ‘서울선언문’을 발표했다. 그는 이미 수 차례 한-러와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TKR(Trans-Korean Railway, 한반도종단철도)-TSR(Trans Siberian Railway, 시베리아횡단철도)의 연계’ 제안을 이끌어낸 주역이다. 특히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TKR복원 사업, 연계 사업의 첫 번째 단계가 될 것이라고 줄기차게 주장해왔다. 그는 북한 나진과 러시아 하산 간 철도를 복원해 석탄을 수송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주도했고, 최근에는 북한 내 철도 복원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나진~하산 프로젝트는 한국과 북한, 러시아 3국이 합의해 추진하는 과정을 밟았다. 2001년 8월 푸틴 대통령은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모스크바 선언서에 서명한 적이 있다. 남북한과 러시아 및 유럽을 연결하는 철도교통 루트를 창설하는 데 ‘합의' 한 것이다. 이후 2006년 극동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3국의 철도당국 대표회담을 통해 우선 나진~하산 구간을 시범사업으로 추진하는 데 ‘합의’가 이뤄졌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4월, 야쿠닌 사장은 북한 김용삼 철도상과 함께 나진항과 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54㎞의 현대화 프로젝트에 공식 서명했다. 야쿠닌 사장은 “우리는 이 순간을 위해 7년을 달려왔다”는 한마디 말로 당시의 벅찬 감격을 함축했다.하지만 프로젝트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야쿠닌 사장은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러시아철도공사 본사에서 열린 ‘한-러 대화(KRD) 포럼에 참석한 한국 언론인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러시아철도공사가 지녀야 했던 부담도 매우 컸음을 밝혔다. 그는 “당사자 간 이익을 조율하는 외교관의 역할을 해야 했고 실질적으로 러시아철도공사가 재정적 부담을 담당할 수밖에 없는 고충이 있었다”고 말했다.야쿠닌 사장의 아쉬움은 클 수밖에 없었다. 그간의 수많은 노력들이 물거품이 됐기 때문이다. 나진~하산 구간 시범 사업 추진에 대해 실무자들의 ‘합의’가 이뤄졌던 것은 2006년이었다. 야쿠닌 사장은 당시 자신과 각별했던 이철 전 한국철도공사 사장과 북한의 김용삼 전 철도상과의 친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2006년 3월, ‘한-러 철도협력 양해각서 체결’을 위해 ‘남-북-러 철도 회담’을 성사시켰다. 남북러 3국 철도 수뇌부의 첫 회동이었다. TKR-TSR 연결 사업을 둘러싸고 한국-러시아, 북한-러시아 고위 철도 당국자 간 2자 회담은 있었지만 3개국이 동시에 한자리에서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 경직된 분위기를 전환시킨 한 마디 야쿠닌 사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 “남북한 대표들이 처음 모였을 때 얼마나 서로가 낯설었는지 얼굴도 쳐다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이철 전 사장도 기자에게 “처음에 김용삼 철도상에게 말도 붙이지 못하겠더라고요. 어깨를 꼿꼿이 직각으로 펴고, 바늘 하나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딱딱하게 말하더라고요”라고 전했다. 당시 상황은 김 전 철도상이 자율적으로 판단해서 서류에 사인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다고 한다. 젊고 건장한 수행원이 늘 김 전 철도상의 곁을 지키고 있어서 합의서에 서명하는데도 평양에 그 내용을 보낸 뒤 회신을 받아야만 사인을 할 정도였다.“저로서는 그때 나진~하산 철도를 구상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일이었는데, 컨퍼런스가 끝나갈 무렵에도 그 분위기로 봐서는 절대 성사될 것 같지 않은 분위기였습니다.” 공식적인 컨퍼런스가 끝나고는 회담 관계자를 개인적으로 바이칼로 초청해 대화하는 자리가 마련돼 있었다. 이때 사장단의 부인도 초청을 받아 동석을 하도록 돼 있었다고 한다. 그때 야쿠닌 사장에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여성의 ‘부드러운 힘’을 빌려보기로 한 것이다.야쿠닌 사장은 “당시 이철 사장의 부인이 한국 만화 회사의 대표를 지낸 분이었어요. 상당히 쾌활하고 마음씨도 착하면서도 지적인 분이라 부탁을 드렸지요.” 라며 당시 이철 코레일 사장의 아내에게 어려운 상황에 대한 해결을 부탁하기로 마음 먹은 배경을 설명했다. 이철 사장의 아내 전명옥씨는 코코엔터프라이즈의 대표이사 사장직을 역임한 여류 기업인으로 워너 브라더스, 디즈니 등 미국 메이저 영화사로부터 주문을 받아 배트맨, 슈퍼맨, 달마시안 같은 만화영화를 한국에 소개한 주역이다.바이칼 호수를 배경으로 남북러 3국의 철도 수장과 그 부인들이 마주 앉았다. 야쿠닌 사장이 정적을 깨뜨리며 입을 뗐다. “지금 남자들 간에 전혀 이야기의 진척이 없는데, 여성분들께서 어떻게 좀 도움을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러자 전명옥 씨가 이렇게 건배제안을 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가장 연장자를 존중하고 존경합니다. 저희에게는 연장자란 아버지나 아니면 오빠라던가 그런 분들을 연장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사장님을 오빠에게 말하듯이 대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야쿠닌 사장이 그 대목에서 흥분하며 말했다. “그렇게 하면서 딱딱하게 굳어있던 북한의 철도상에게도 말을 건 셈입니다.”흥미있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기자에게 야쿠닌 사장이 물었다. “그런데, 아주 인텔리한 남성분에게 젊은 여성이 ‘오빠~’라고 말했을 때 느낌이 어땠을까요?” 기자가 대답을 하기 전에 야쿠닌 사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전명옥씨는 김 전 철도상에게 ‘제가 오빠라고 불러도 될까요?’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김 철도상이 ‘그렇게 하셔도 됩니다’고 답하더군요. 그것이 남북한의 철도수장이 처음 손을 맞잡고 악수하게 된 순간이었습니다.”야쿠닌 사장은 나중에 TKR-TSR 연계 사업의 시작점을 ‘2006년 바이칼 회의에서 남북한 인사들이 악수를 한 시점’으로 밝힌 바 있다. 당시의 감격적인 순간이 이뤄지기까지는 야쿠닌 사장의 이런 노력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야쿠닌 사장은 기자에게 “그래서 저는 이철 전 사장의 부인을 정말로 존경하며, 지금까지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김 철도상에게도 3자가 협력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될 수 있게 ‘결정’한 그 용기에도 감사 드리고 싶다”는 말도 덧붙였다. 북한에서 ‘오빠’라는 별칭은 핏줄로 이어진 친혈육이나 형제처럼 가까운 지인들에게만 해당된다. 대부분의 북한 여성들은 연인이나 남편을 보고 ‘오빠’라고 부르지 않는다. 그런데도 김 철도상이 흔쾌히 ‘오빠’라고 부를 것으로 허락해주면서 남북러 3국 간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는 것이다. ━ 남북러 간의 3각 협력에 얽힌 비화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이후 급물살을 탔다. 한국 철도국 수장이 러시아를 방문한 데에 대한 야쿠닌 사장의 답방은 이후 ‘한-러 철도운영자 회의’로 이어졌다. 2006년 7월 중순 제주도에서 열린 이 회의에서는 TKR-TSR의 연계수송 활성화 방안을 비롯해 나진~하산 철도 공사 추진현황 파악, 양국 철도공사간 상호협력 방안 등을 논의했다. “제주도에서 이철 부부와 우리 부부가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고 추억하던 야쿠닌 사장은 그때를 회상하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같은 달 북한을 방문한 야쿠닌 사장은 김용삼 철도상과도 회담했다. 북한 철도상 부상 등이 맞이했고 북한 철도상은 이날 저녁 러시아 대표단을 위해 연회를 마련했다. 야쿠닌 사장은 당시 인터뷰에서 “이번 북한 방문에서는 러시아가 국제 컨소시엄의 조정자 역할을 하기로 돼 있는 나진~하산 철도공사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시킬지에 대해 많은 논의가 있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이후 남북러 간의 3각 협력은 순풍에 돛을 단 듯 보였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아 2007년 5월 17일, 남북은 56년 만에 철도를 잇는 1회성 이벤트를 열 수 있었다.같은 해 9월, 야쿠닌 사장과 김 전 철도상은 경의선(서울~개성~황해도 평산), 청년이천선(평산~강원도 세포), 경원선(원산~함흥~청진)을 통해 TKR-TSR를 연결하기로 합의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마침내 2007년 12월, 끊어져 있던 경의선·동해선 두 군데 개통식이 진행됐다. 하루에 1편 정도 문산과 개성공단 바로 밑의 봉동역 간 운행(2008년 11월 남북 관계로 인해 운행중단)까지 이뤄냈다. 그리고 2008년 4월 24일. 야쿠닌 사장과 김 전 철도상은 54㎞의 나진∼하산을 연결하는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에 공식 서명했다.하지만 북한의 내부 사정이 발목을 잡았다. 2008년 6월 우크라이나에서 열린 철도협조기구 제36차 장관회의에 참석한 이후 웬일인지 김 전 철도상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1998년 9월부터 약 10년 간 철도상으로 일해 온 김 전 철도상이 정책실패 책임 등을 이유로 공개처형 됐다는 외신의 보도가 나올 뿐이었다. 야쿠닌 사장은 2006년 블라디보스톡에서 남북러 3국이 만났던 얘기를 이어가는 중간중간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김 전 철도상이 내렸던) 큰 결정과 용기를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제안(오빠라고 불러도 괜찮느냐는)에 대해서도 점잖게 생각해준 것에 대해 고맙다”고 했다. ━ ‘개방적 협력관계’강조하는 CEO 야쿠닌 사장은 러시아 철도공사의 CEO다. 그는 이 거대한 국영기업을 어떻게 운영하고 있을까? 야쿠닌 사장이 철도공사 사장으로 취임했다고 큰 아들에게 설명하자 아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 러시아 철도공사는 젊은이들이 가고 싶어하는 100대 기업에도 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말은 그에게 영감을 줬다. 러시아의 철도산업은 그 산업구조 자체가 경직돼 있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기에 원활한 곳은 아니었다. 야쿠닌 사장의 표현에 따르면 ‘기관의 장만을 바라보는 권위적인 곳’이었다. 그는 변화를 모색했다. 대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한 청년을 인력관리부서에 보내 직책을 맡기며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고 한다. “어떻게든 철도공사를 러시아에서 젊은 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하는 5대 기업 중에 하나가 되도록 만들라.”현재 러시아 철도공사는 2007년 이래로 매년 ‘Youth Meeting’을 매년 개최한다. 참가국만 22개국으로 기업 업무에 대한 해결책(혁신활동 포함) 발견 및 국제적 협력개발을 위해 전 세계의 젊은 인력이 참여하도록 기획하고 있다. 행사 참가자는 업무관련 프로젝트를 책임지는 중간 간부급으로 키워지는데, 실질적 ‘인력양성풀(pool)’로 활용된다. ‘New Link’라는 포맷의 프로그램도 실시하는데 이것은 팀을 구성해 프로젝트를 관리하고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기술 등을 겨루기도 한다. 지금까지 1만 명 이상의 젊은 인재가 참가해 5000여 건의 프로젝트를 진행했다고 했다.이런 ‘개방적 협력관계’는 야쿠닌 사장이 추구하는 ‘남북철도협력산업’에서도 핵심적인 가치다. 그는 TKR 재건을 도모하는 나진∼하산 프로젝트가 이 같은 협력의 일부라고 강조했다. 나진∼하산 프로젝트는 러시아산 유연탄을 러시아 하산과 북한 나진항을 잇는 54㎞ 구간 철도로 운송한 뒤 나진항에서 화물선에 옮겨 실어 국내 항구로 가져오는 복합물류 사업이다. 야쿠닌 사장은 “나진∼하산 철도망을 깔고, 나진항 터미널을 짓는데 3억5000만 달러를 들였다”면서 “처음 한국과 협상할 때는 공동으로 투자를 하자고 시작했지만 한국에서는 지금까지 전혀 자금투입이 없다”며 한국의 미온적 태도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 북-러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 진행중 야쿠닌 사장에 따르면, 러시아와 북한 관계는 국가적 차원에서 큰 진전을 이뤘다고 한다. 2014년 12월 북한이 구소련에 진 부채 중 약 98억7000만 달러의 부채를 탕감하는 내용의 협정을 비준했다. 러시아 정부가 발표한 비준 내역에 따르면, 채무탕감 규모는 총 채무액인 약 109억6000만 달러의 약 90%로 나머지 10%(약10억 9000만달러)는 20년 동안 6개월마다 분할 상환된다. 채무 중 일부를 북한 영토를 통과하는 남-북-러 가스관 및 철도 건설에 필요한 토지 확보에 사용한다.현재 진행중인 ‘북-러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는 기존 철도망을 재건할 뿐만 아니라 남북 양쪽에서 평양 주변을 통과하는 화물 수송용 구간도 새로 건설하게 된다. 프로젝트 실행을 위해 북한의 철도망을 10개 구간으로 구분했고, 사업 추진 비용은 석탄과 비철금속, 희귀금속, 희토류 등 북한의 풍부한 지하자원 개발을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북-러 철도 현대화 프로젝트 추진은 러시아에서, 비용은 북한의 지하자원 개발로 충당하게 되는 셈이다. 극동에서의 대규모 건설 사업에 현장 노무 인력이 부족하게 될 경우 일회적으로 북한의 노동력을 공급받는 방안도 협의됐다. 아직 중국 기업인도 받지 못한 장기 복수비자, 인터넷과 모바일 통신 사용 등 각종 특혜도 러시아 기업인들이 제공받는다고 한다.이를 두고 북한의 ‘철도 주권’이나 ‘자원 주권’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국내의 여러가지 상황은 녹록지 않아보인다. 러시아산 석탄을 북한을 거쳐 우리나라로 들여오는 남북러 3각 물류협력사업인 나진~하산 프로젝트를 위해 2013년부터 포스코, 현대상선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지만, 현재 본계약 협상조차 진행되지 않은 상태다.다행인 것은 적어도 당분간은 러시아의 대북사업 협력 희망 1순위는 여전히 한국이라는 점이다. 러시아 과학아카데미의 세계경제·국제관계연구소의 세르게이 루코닌 선임연구위원은 e메일 인터뷰에서 “한국-러시아-유럽을 잇는 사업에서 러시아는 적극적으로 한국에 대한 관심을 여전히 표명하고 있다”고 전했다. 서울대 신범식 교수는 “러시아는 중간행위자(균형자)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우리는 남북러 협력의 고리를 어떻게 활용할지를 고민해야한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친 야쿠닌 사장 역시 대륙횡단철도 연결사업에 대해 한국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을 촉구하며 의미심장하게 “씨앗을 뿌려야 열매가 나온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다시 기자에게 이렇게 되물었다. “한국 기업은 지금 어떤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까?”- 글 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사진 오상민 기자

2015.06.24 2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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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경제는 어디로-남북 경제교류 물꼬 틀까? | 교류·협력 실마리는 5·24 조치 해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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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년 통일 한국의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8만1000달러, 독일과 일본 제치고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의 부자 나라 될 것’ ‘만약 한반도 통일이 된다면 전 재산을 북한에 투자하고 싶다’…. 최근 통일 경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 바 있다. 첫 번째는 골드먼삭스의 전망이며, 두 번째는 ‘투자의 귀재’라 불리는 짐 로저스의 언급이다. 최고의 투자 전문가들이 한국의 ‘통일’에 대해 큰 기대를 표명한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2015년에는 과연 남북한의 실질적 교류·협력의 실마리가 마련될까?통일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남과 북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만들어야 하는 과정이다. 그렇다면 경제적인 측면으로 볼 때 우리는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가장 시급한 문제는 갈수록 확대되는 경제력의 격차를 좁히는 일이다. 통일되기 직전의 독일과 비교한다면 그 심각성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통일을 앞두고 있을 당시 서독과 동독의 국내총생산(GDP) 격차는 약 10배 정도였다. 우리의 경우는 2013년 기준으로 43배나 차이 난다. 1인당 GNP도 북한은 우리의 21분의 1 수준이다. 무역 규모는 무려 188배나 차이가 난다. 이런 격차를 줄여나가고 이질성을 극복하는 것은 가장 시급한 문제 가운데 하나다.개성공단은 그런 점에서 희망의 시작이자 대안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개성공단을 필두로 시작된 남북 경제협력은 어둠의 터널에 갇혀 있다. 지난 2010년 남북교류 및 교역이 전면 차단된 이후 우리의 경제협력은 개성공단을 제외하고는 모두 정지돼 있다. 그나마 인천아시안게임 폐막식에 북한의 실세 3인방이 참석하면서 대화의 물꼬가 터질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북한은 돌연 태도를 바꿨다. 2차 고위급 회담 무산, 대북전단 살포 등 잇단 대치상황 지속, 북한 인권문제 부각 등 냉온 기류가 번갈아 우리 주변을 감싸고 있다.또 다시 화해의 손길을 내밀 것이 분명하지만 여전히 쉽지 않은 것이 북한과의 대화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2015년에는 남북 경제의 돌파구 마련과 통일 준비를 위해서라도 과거보다는 남북 대화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시간은 우리 편이지만 기다리는 전략에서 벗어나 북한을 대화의 테이블로 이끌기 위한 좀 더 적극적인 대북정책이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 남북관계 해빙 무드 조성 움직임 2015년에는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에 급격한 변화가 있을 것이다. 미국·중국·러시아·일본 등 주변의 열강들도 좀 더 적극적인 대북정책을 구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때일수록 남북이 갈등과 대립으로 치닫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남과 북이 힘을 모아 난국을 헤쳐 나갈 디딤돌을 놓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2015년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매우 중요한 해가 될 것이다.물론 2015년에도 남북관계의 급진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경제를 중심으로 새로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재의 남북관계 수준이 100점 기준으로 할때 40점이라면 2015년에는 최소한 낙제 점수는 넘어서고, 하반기에 들어서면 60점 이상까지도 개선될 수 있을 것이다.북한 내부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2015년은 김정은 정권의 홀로서기 첫 해로서 가시적인 경제적 성과를 내야 한다. 따라서 경제 회생을 위해 다양한 조치가 시행될 전망이다. 우선 농업 및 기업소 등의 자율경영제 등 각종 경제개혁 조치와 지역별 경제특구(경제개발구) 개발 등 내부적인 개혁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대외적으로는 외자 유치와 경제협력 다변화 전략 등이 적극 추진될 방침이다. 물론 중국과 러시아 등에 경제적으로 의존하겠으나 결국 경제계획의 실질적인 성과는 남한과의 협력이 있어야 가능할 것이다.북한과의 협력을 추구해야 하는 것은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장기 저성장 구조에 빠져들고 있는 우리나라 경제도 북한과의 협력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다. 특히 광복 70주년, 통일 준비의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더 적극적인 자세로 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의 수용력과 진정한 성의 등에 따라 때로는 냉온탕을 오갈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본다면 해빙 무드가 한반도를 뒤덮을 것으로 전망된다. 2015년은 한반도를 둘러싼 지형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남북한의 문제를 넘어 중국과 러시아 등 동북아 경제협력의 통로가 열릴 전망이다. 우선 북한의 나선경제무역지대에서 훈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지역은 중국과 러시아, 몽골 등이 의욕적으로 투자에 적극 나서는 곳이다. 이미 나진항 개발, 철도와 도로 등 물류망 구축, 관광 활성화, 다양한 기업 진출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2015년에 나선특구 관문인 신두만강대교가 완공되면 한국이 참여하고 있는 나진-하산프로젝트도 본격 가동되면서 실질적인 성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현장실사가 끝난 상태이며 지분 투자가 확정되면 러시아 극동에서 석탄을 가득 실은 선박이 나진항을 거쳐 포항 등지로 들어오게 될 것이다. 이런 훈풍이 지속적으로 불어온다면 신(新)북방 및 대륙 진출의 교두보를 열기 위한 추가 협력사업이 진행될 수 있다. 더 나아가 남북한과 러시아를 잇는 전력·가스 등 에너지망 연결에 대한 논의도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들은 얼어붙은 남북 경제협력 상황을 녹이는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만약 전력선과 가스관은 철도 노선을 따라 남쪽으로 오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시베리아 철도 연결사업도 활발하게 논의가 될 것이다. ━ 동북아 경제협력의 통로 열릴 가능성 이와 같은 해빙 분위기 조성을 위해 우리는 하루 빨리 나진항 2호 부두 사용권을 확보해야 한다. 이미 1호 부두는 중국이, 3호 부두는 러시아가 독점권을 확보했다. 4~6호 부두 또한 중국이 50년 임차권을 얻고 개발에 착수했기 때문에 만약 2호 부두권 마저 빼앗긴다면 중국과 러시아에 끌려 다닐 수밖에 없다. 북한 신의주를 중심으로 남북한과 중국의 협력사업도 적극 모색될 전망이다. 이미 중국 단동과 북한 신의주를 연결하는 신압록강 대교가 완공됐다. 신의주 지역의 개발이 지연되면서 개통이 늦어지고 있지만 중국은 곧 신의주 지역까지 추가 투자를 시행할 예정이다. 신압록강 대교가 개통되면 신의주 개발은 급물살을 탈 수밖에 없다. 실제로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2013년 11월 11일 ‘신의주 경제특구 개발’, 2014년 7월 23일 ‘신의주특수경제지대를 신의주국제경제지대로 결정’ 등의 조치를 발표했다.‘국제’라는 단어는 북한 입장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해외 투자가의 입장을 반영한 개방특구로 만들겠다는 속내다. 북한이 발표한 신의주국경지대는 투자액만 1000억 달러에 달하는 거대 프로젝트다. 면적만 82km²에 이르고 산업, 첨단 기술, 금융, 무역, 관광 등 복합형 경제특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압록강·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관광·농업 등의 경제개발구까지 착수되면 GTI(광역두만강개발계획) 차원의 다자간 개발협력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이다. 특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한국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다. 북한 민생 인프라 개선을 위한 조사는 국제기관과 공동으로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 나아가 복합농촌단지 조성 등 일부 사업은 실질적인 협력 수준까지 논의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신의주 중심으로 남·북·중 협력사업 추진 남북 간의 직접적인 경제협력은 개성공단의 변화로 이어질 수있다. 다양한 경제협력이 가시적인 성과를 내면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국제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 개성공단 전자출입체계(RFID)를 통한 상시 출입 체계 개선, 개성공단관리위원회사무실의 인터넷 설치 등 전향적인 발전도 기대된다. 북한 근로자들의 출퇴근을 위한 도로 보수, 기숙사 건설 등도 활발하게 논의될 수 있다.개성공단이 이와 같이 정상화의 길로 달려간다면 이 지역에서 발생하는 상사분쟁 사건을 처리할 남북공동기구인 상사중재위원회 회의도 가동되고,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외국 기업의 참여 논의도 본격화될 것이다. 한·중 FTA 체결에서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으로 개성공단 기업의 수출 확대가 기대될 뿐 아니라 중국 기업의 개성공단 입주도 가시화될 전망이다. 북한의 태도에 따라 개성공단 기업의 개성시내 외주 생산도 재개될 수 있다. 분양 받은 업체의 개성공단 투자가 허용되면 개성공단은 다시 활기를 찾게 될 것이다.금강산 관광은 2015년이 되더라도 당장 재개는 어렵지만, 문제 해결의 실마리는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마식령 스키장 등 원산 종합개발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금강산 관광 재개가 필요하다. 우리도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금강산 관광 재개를 좀 더 전향적으로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금강산 관광 재개는 우리에게도 이익이 많다. 강원도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며 이른바 북한 리스크도 약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국제 사회의 시선이다. 대북제재에 대한 국제 공조가 이뤄지는 가운데 대량의 현금이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다는 점은 다소 부담스러운 입장이다.이런 장밋빛 희망을 품기 위해서는 5·24 대북경제제재 조치의 벽을 넘어야 한다. 이 조치가 풀리지 않는 한 남북 경제협력을 진척시키기란 쉽지 않다. 천안함 사건 등 일련의 사태에 대한 북한의 공식 사과가 없는 상황에서 5·24 조치를 무조건 해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2015년에는 5·24 조치에 대한 근본적인 돌파구가 마련될 것으로 전망된다. 5·24 조치의 완전 해제는 어렵겠지만, 남북이 경제협력을 부분적으로 재개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해결될 것으로 예상된다.정부도 이 점을 인식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2014년 10월 13일 통일준비위원회 2차 회의를 통해 5·24 조치에 대해 언급했다. 취임 이후 처음으로 5·24조치에 대해 언급하면서 ‘남북당국이 책임 있는 자세로 만나 진정성 있는 대화로 문제를 해결하자’고 촉구했다. 우리에게는 자존심만큼이나 중요한 남북관계 개선, 통일경제 실현이라는 책무가 주어져 있다.5·24 조치 - 2010년 3월 26일 천안함 폭침이 북한의 소행으로 밝혀진 이후 같은 해 5월 24일 취한 우리 정부의 대북 제재 조치이다. 제주해협 포함 우리 측 해역에 북한 선박의 운항과 입항 금지, 남북 간 일반교역은 물론 위탁가공교역을 위한 모든 물품의 반· 출입 금지,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북한 지역에 대한 우리 국민의 방북불허 및 북한 주민과의 접촉 제한 등의 내용을 담았다.

2014.12.28 12:12

7분 소요
남북경협 어디로 -  남북경협 공든 탑 ‘중·러’에 넘겨줄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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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0월 5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외통위) 회의실. 박주선 외교통상통일위원회(민주당) 위원이 김영현 현대아산 관광사업본부장에게 물었다. “2008년 7월 박왕자씨가 민간인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갔다는 이유로 피격돼 사망했습니다. 이후 금강산 관광사업이 중단되고 현대아산은 50년간 획득했던 독점 관광권을 몰수당했죠.”2011년 11월 화해 제스처 보냈지만…김영현 본부장은 어두운 표정으로 답했다. “북측에서 (독점 관광권 몰수조치 관련) 법적 조치가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박 위원이 다시 물었다. “해결 방법은 무엇입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김 본부장은 이렇게 답했다. “국제사회가 중재노력을 할 수 있고 국제사법재판소로도 갈 수 있어요. 하지만 궁극적으로 북한의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사법재판소로 가든, 중재절차를 거치든 말입니다.”남북경협의 열쇠는 북측이 갖고 있다. 박 위원과 김 본부장의 문답에서 이를 쉽게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남북경협에 대한 북측의 태도는 일관성이 없다. 2008년 7월 남측 관광객을 별다른 이유 없이 죽인 북측은 2010년 4월 금강산에 있는 남측 재산을 몰수·동결 조치를 했다. ‘금강산국제관광특구법’은 남측과 상의 없이 제정했다. 올 3월 북측이 자행한 천안함 사태의 책임을 묻겠다면서 한국정부가 ‘5·24 조치’를 단행하자 남북경협은 걷잡을 수 없이 얼어붙었다. 5·24 조치는 남북교류협력과 관련된 인적·물적 교류를 잠정 중단한 것을 말한다.1차 피해자는 북한에 진출한 국내 기업이다. 현대그룹이 2011년 10월 말까지 금강산 관광사업에서 입은 손실은 4482억원이다. 개성관광까지 포함하면 손실액은 5105억원으로 늘어난다. 현대아산은 2008년 3분기부터 13분기 연속 적자행진 중이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DJ(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 진행된 경협사업이 현 정부 들어 타격을 받았다”며 “남북경협은 개성공단 하나만 남고 나머지 사업은 궤멸상태”라고 지적했다.개성공단의 상황도 좋지 않다. 북측은 남북경협의 상징이라는 개성공단까지 대남 압박전술의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 2008년 3월 북측은 “북핵 문제가 타결되지 않으면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김하중 당시 통일부 장관의 발언을 꼬투리 잡아 남측 당국 인원의 철수를 요구했다. 같은 해 12월에는 개성공단 상주 체류 인원을 일방적으로 880명으로 제한했다. 2009년 3월 한·미 양국이 합동군사훈련을 하자 육로통행을 전면 차단했다. 그 해 5월 개성공단 법규·계약의 무효를 통보하기도 했다.그 결과 개성공단의 입주율은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개성공단의 부지는 총 6600만㎡(2000만평). 이중 공업단지는 2805만㎡(850만평), 배후도시는 3795만㎡(1150만평)다. 공업단지는 3단계로 건설되고 있는데, 1단계는 330만㎡(100만평), 2·3단계는 2475만㎡(750만평)다. 1단계 330만㎡의 입주율은 2011년 10월 현재 37%에 불과하다. 류우익 통일부 장관은 “1단계 입주율이 100% 도달할 시기를 현재로선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최근 열린 ‘남북경협효과 분석 및 경협 정상화를 위한 정책 토론회’에서 “5·24 조치가 단행된 이후 1년 반 동안 개성공단에 입주한 남한 기업은 11조7000만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을 봤다”고 주장했다. 강창범 개성공업지구기업책임자회의 기획재정분과위원장은 “5·24 조치로 개성공단의 추가투자가 금지돼 후발 기업들의 평균 공장 가동률이 35%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2011년 9월 이후 한국 정부는 북측에 화해의 제스처를 보냈다.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재개, 개성공단 활성화 조치 등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모색했다. 북한은 오랜만에 호응했다. 익명을 원한 현대아산 관계자의 말이다. “2011년 11월, 금강산관광 재개와 재산권 문제를 협의하는 과정에서 북측이 먼저 ‘남측이 당국간 회담을 제안하도록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이런 화해 물결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으로 다시 가라앉았다. 양문수 교수는 “2011년 9월 류우익 장관의 취임 이후 대북정책이 유연성을 찾고 있었는데, 김 위원장 사망이라는 돌발변수가 터졌다”고 말했다. 김규철 남북경협시민연대 대표는 “북측이 빗장을 다시 열지, 그렇지 않을 지는 예측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철기 동국대(국제관계학) 교수는 “김 위원장의 사망으로 정책결정구조가 복잡해 질 것으로 보인다”며 “얼어붙은 남북경협이 신속하게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망했다.남북경협이 재개될 가능성은 물론 있다. 북한은 경제난이 심각하다. 1인당 국민총생산(GNP)은 124만원에 불과하다. 한국의 약 19분의 1이다. 2010년 경제성장률은 마이너스 0.5%로 2009년(마이너스 0.9%)에 이어 2년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김 위원장의 후계자 김정은은 경제 살리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의 유훈이기도 하다. 김규철 대표는 “김 위원장이 생전 목표로 내걸었던 강성대국의 꿈은 물거품이 됐다”고 말했다.북 개혁·개방, 남한에 도움 줄까강성대국은 김일성 주석 사망 4년 뒤인 1998년 권력을 장악한 김 위원장이 내건 청사진이다. 목표는 사상정치의 강국, 군사강국, 경제강국이다. 강성대국의 원년은 2012년이다. 황진하 외통위(한나라당) 위원은 “김 위원장이 원했던 사상정치의 강국, 군사강국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섰다”며 “남아 있는 목표는 경제강국뿐이었다”고 말했다. 조동화 이화여대(북한학) 교수는 “경제적 강성대국 건설이라는 김 위원장의 유훈 때문에 북한은 경제를 개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정은이 김정일의 유훈과 거리를 두는 모험은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태양절(김일성 주석의 생일·4월15일)이 지나면 김정은이 경제 분야에서 새로운 것을 모색할 것”이라며 “김 위원장이 추진한 나선이나 황금평 등 지역 중심의 개혁·개방에 나설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조 위원은 “김정은이 2010년 후계자로 공식 부상한 후 북한경제정책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며 “북한의 외자유치를 담당하는 국방위원회 산하 조선대풍국제투자그룹이 2010~2020년 1000억 달러를 유치해 나선·청진·김책·남포지역을 중점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세운 것은 대표적인 변화”라고 강조했다.문제는 ‘김정은이 개혁·개방정책을 펼치면 한국에게 기회가 오겠느냐’는 것이다. 대부분의 북한 전문가는 “남북경협이 활성화할 가능성은 희박하다”며 “김정은은 중국·러시아와의 경협에 매진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북한과 중국은 최근 들어 경제적으로 밀착하고 있다. 2011년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도발로 남북경협이 주춤하는 사이 속도가 더 붙었다. 코트라는 “2011년 북·중 교역이 사상 최대치인 60억 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11년 1월~10월 양국의 무역 규모는 46억7365만 달러로 2010년 같은 기간보다 73.5% 늘었다. 무역규모가 늘면서 북한의 대중 무역의존도 역시 커지고 있다. 코트라에 따르면 2010년 북한의 대중국 무역비중은 57%다. 한국과 25%포인트 이상 차이가 난다.북·러 경협의 물꼬도 터졌다. 김 위원장은 2011년 8월 9년 만에 러시아를 방문해 소원했던 북·러 관계를 회복시켰다. 러시아는 김 위원장 방문 이후 북한을 통과하는 가스관 건설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러시아~북한~남한을 잇는 가스관 건설이 실제로 이뤄지면 북한은 가스관 통과료만으로 연간 1억 달러를 벌 수 있다. 조봉현 연구위원은 “북·중, 북·러 경협은 김정은의 강력한 후원자로 알려진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이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북·중, 북·러 경협이 탄력을 받을 가능성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남북경협 뒷전으로 밀려날 위기유승경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후계자로 지목된 김정은은 김 위원장만큼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렵다”며 “북한의 경제난을 장성택 부장의 도움을 받아 북·중, 북·러 경협을 통해 풀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채텀하우스(왕립국제문제연구소)의 케리 브라운 아시아 담당 수석연구원은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정권 초기에는 장성택 부장이 섭정을 할 수 있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말했다.이런 상황에서 김정은이 남북경협을 정상화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김규철 대표는 “남북경협의 키는 북한이 쥐고 있기 때문에 현재로선 5·24 조치를 완화해 북한을 유인하는 게 능사”라며 “민간 차원의 경협을 확대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철기 교수는 “우리 정부가 인도적 차원의 대북지원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한국 정부가 대북 기조를 전환해야 할 이유는 많다. 무엇보다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경협이 난관에 부딪혀 있다. 개성공단·금강산 관광사업은 물론 광역두만개발계획(GTI) 역시 차질을 빚을 공산이 크다. 북한에 진출한 국내기업의 경영 악화도 문제다. 남북경협시민연대의 자료를 보면 일반·위탁가공 남북경협업체 154곳 가운데 19곳이 사업을 중단했다. 일시 중단한 업체는 102곳에 이른다. 더구나 남북 교역액이 갈수록 줄고 있다. 2011년 1~10월 남북 교역액은 14억2522만 달러로 2010년 같은 기간보다 12.6% 감소했다. 최성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2~3년간 경색된 남북경협에 비해 북·중 경협은 크게 활성화했다”며 “우리는 이런 흐름에 위기의식을 갖고 대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오정근 고려대(경제학) 교수는 “자칫 잘못하다가는 북한경제의 패권을 중국에 완전히 빼앗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중국 자본은 이미 북한 경제의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있다. 최근 서해에서 중국어선의 불법조업이 문제가 된 이유는 북한이 중국에 어업권을 일부 팔아서다. 지하자원은 더 심각하다. 중국은 함경북도 회령시 오룡광산, 함경남도 덕성광산, 평안남도 용흥탄광 등의 철·몰리브덴·금·동의 채굴권을 확보했다. 나진항 부두 확장, 압록강 황금평 자유무역지구 개발 등 인프라 구축에도 중국 기업의 자금이 유입됐다.중국의 대북 투자는 2003년 110만 달러에서 2008년 4100만 달러로 크게 늘었다. 자본 투입의 증가는 중국의 경제적 장악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미국 닉슨센터의 드류 톰프선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북한과 중국의 관계를 ‘침묵의 파트너’라고 표현하면서 “양국의 경제적 관계는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 제재를 복잡하게 하는 효과를 낸다”고 분석했다.독재자가 사라지면 개혁·개방정책을 택한 사례가 많다. 중국 모택동 이후 권력을 잡은 등소평이 그랬다. 김정은도 개혁·개방정책을 펼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그의 후원자 장성택 부장의 움직임도 개혁·개방 쪽에 맞춰져 있다. 우리 정부의 과제는 이런 개혁·개방의 물결은 서둘러 남북경협 쪽으로 돌려놓는 것이다. 조치가 늦으면 중국이 가장 큰 이득을 볼 게 분명하다(금융연구원 이명활 국제거시금융연구실장). 그 다음 수혜자도 우리가 아니다. 러시아다.이윤찬 이코노미스트 기자 chan4877@joongang.co.kr

2011.12.26 1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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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淸·論·濁·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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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한반도에 새로운 정세 변화를 가져올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주목할 사안이다. 중국 방문에서 논의될 의제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는 한반도 문제를 풀어가는 첫 단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회담에서는 일단 정치적 현안인 북한의 6자회담 복귀와 평화협정 체결 방안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북·중 간 정치적 현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지면 방중 이후 6자회담의 재개와 평화 협정 논의가 활발해질 것이다. 북한의 경제난이 가중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제적으로도 구체적인 협상이 진행될 게 분명하다. 무엇보다 중국 동북 3성 개발과 연계된 양국의 경제 협력 방안이 상세히 그려질 수 있다.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은 중국을 방문한 이후에는 매번 경제 개방을 위한 굵직한 조치를 발표했다. 이번에도 중국의 대북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다양한 개방 정책이 강구되리라 본다. 북한과 중국의 대화와 협상은 순조롭게 진행될 공산이 크다. 북·중 간 상생 요인이 충분하기 때문이다.북한은 현재 정치·경제적으로 고립돼 있다. 중국만이 유일한 후원자인 셈이다. 중국 입장에서는 자국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중국의 동북 3성 개발 성과를 높일 수 있고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더욱 확고히 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전략적 요충지인 나진항을 통해 출해로를 확보하고, 북한은 부족한 도로와 항만 등 사회간접자본(SOC)을 구축하고 외자유치 기반을 조성할 수 있다.단둥과 신의주를 거점으로 한 교역 확대, 위화도와 황금평 자유무역지대 건설을 위한 대규모 인프라와 배후산업단지 조성도 추진될 수 있다. 이대로 가면 북·중 접경지역이 중국 경제권으로 편입되고 북한 지하자원 개발을 중국이 독식하며 북한 물류 및 유통 시장은 중국 자본에 의해 독점될 우려가 커진다.물론 실제 자금이 투자되기까지는 더 많은 협상과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한과 중국의 경제적 유대 관계는 이념적 혈맹 관계만큼이나 갈수록 견고해질 것이다. 북·중 관계 심화가 남한에 주는 득실은 무엇일까? 일단 북·중 회담 이후 6자회담이 재개되고 북한의 경제 개방이 확대되면 한반도 긴장 상태는 훨씬 완화될 것이다.문제는 북한과 중국이 주도하는 한반도 정세 변화는 득보다 실이 더 클 수 있다는 점이다. 우선 한반도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남한은 주도권을 잃을 것으로 염려된다. 미국과 협력해 북·중의 일방적인 요구를 막고 우리 입장을 관철할 수 있겠으나 당사자로서 입지는 좁아진다.두 번째로 걱정되는 것은 남북한 경제 협력 관계가 약화될 공산이 큰 점이다. 중국 투자와 지원이 커질수록 한국과 경제 협력 필요성은 약해질 것이다. 남한이 북한과 경제 협력 관계가 단절된다고 해서 당장 큰 손해를 볼 일은 없다. 규모도 작고 일방적인 성격이 강한 까닭이다.남북 간 경제 협력의 단절이 주는 피해는 미래적이다. 북한의 개방 정책이 계획대로 추진된다면 한국의 지분과 협상력은 중국보다 못할 것이고, 북한에 예상치 못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에는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할 수 있다.더 큰 우려는 북한이 중국과 협력하면서 아쉬운 것이 없어질수록 남북 긴장 상태는 더욱 고조될 수 있다는 점이다. 북한과 중국이 당면 과제를 해결하면서 미래를 기약하는 상황에서 남한은 어떤 한반도 책략을 수립해야 하는 것일까?

2010.04.0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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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이 북방 경제 ‘심장’을   깨우다

산업 일반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중국 속의 거대한 코리아 타운이다. 중국 동북3성 가운데 하나인 지린성 동부에 있는 이곳은 인구 220만 명 중 38%가 조선족(중국 교포)이다. 전 세계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 한민족) 중 유일하게 한민족이 자치권을 행사하는 땅이기도 하다. 언어·문화·교육 면에서 거의 완벽하게 한민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옌볜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조선족은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접속하는 인터페이스다. 특히 중국의 거대 IT시장에 우회 진출하는 ‘트로이의 목마’가 될 수 있다. 옌볜은 또 남북 경협으로 태동 중인 북방경제의 거점이다. 남북이 통일되면 중국의 변방에서 동북아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한·중 수교 15돌, 옌볜조선족자치주 창립 55돌을 맞아 ‘기회의 땅’ 옌볜을 현지 취재했다. “앞으로 2년 후 이런 가게 사장 되는 게 꿈이야요.” 중국 옌지시 서시장(西市場) 327호점에서 청 의류를 파는 리은영(20)씨는 자신이 일하는 가게를 운영해 보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한 달 봉급이 600위안(7만2000원)인 그가 혼자 힘으로 임차보증금 20만 위안(2400만원)인 가게의 주인이 되려면 20년은 족히 걸릴 것이다. 주말도 없이 매일 오전 8시30분에 출근한다는 이 조선족 여성은 그러나 아랑곳하지 않는 듯했다. 기자가 60위안(7200원)이라는 여아용 청 반바지를 골라놓고 “안 깎아 주느냐”고 묻자 대뜸 “155위안부터 시작하는데 남자분이라 제값을 불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베이징에서 만들었다는 반바지는 디자인이 퍽 세련돼 보였다. 그는 “60위안에 팔면 5위안의 마진이 남는다”고 했다. 맞은 편에서 구두 가게를 하는 김선자(53)씨는 “있는 사람들 중엔 백화점을 둘러보고 물건은 여기 와서 사는 사람도 있다”면서 “그러면 100위안(1만2000원)은 더 싸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물건을 볼 줄 알면 이렇게 싸게 살 수 있다”고 귀띔했다. 옌볜조선족자치주는… ▶ 창립 1952년 9월 3일(1955년 12월 자치구에서 자치주로 전환) ▶ 인구 220만 명(조선족 인구 비율은 38%) ▶ 면적 4만2700km2(남한의 약 절반, 지린성의 약 4분의 1). 위치는 동북3성 중 하나인 지린성 동부. ▶ 주도 옌지시(인구 42만, 조선족 인구 비율은 57.7%). 기타 둔화, 룽징, 투먼, 훈춘, 허룽 등 5개시와 안투현, 왕칭현 등 2개 현으로 구성. ▶ 역내총생산액 243.4억 위안(2조9208억원, 전년비 12.1% 증가, 2006년 기준) ▶ 무역액 11.1억 달러(1조323억원, 전년비 54.7% 증가, 2006년 기준) ▶ 역내소비액 119.3억 위안(1조4316억원, 전년비 16.4% 증가, 2006년 기준) ▶ 실업률 7% ▶ 주택보급률 12% 전주 김씨라는 그에게 기자가 “나는 전주 이씨”라고 했더니 “두 집안은 성은 달라도 본관이 같아 혼인을 못한다”고 농을 했다. 말씨만 북한 주민에 가깝지 주고받은 대화 내용은 한국의 여느 재래시장 상인과 차이를 느낄 수 없다. 옌볜대 의학원을 나왔다는 자신의 딸은 옌볜인민제2병원에 인턴으로 근무한다고 했다. 7년 전 퇴직했다는 그는 “딸이 대학에 진학하면서 훈춘시에서 이사를 왔는데 거기에도 집이 있다”고 자랑했다. 월 수입은 3000~4000위안(36만~48만원). 옌지시 해방로에 자리 잡고 있는 서시장은 한국의 밀리오레 같은 실내시장이다. 나선형 계단을 따라 올라가 위에서 내려다보니 ‘시장의 활력’이 느껴졌다. 천장에선 일정한 간격으로 달려 있는 선풍기가 부지런히 돌아가고 있었다. 3층 문해서점 서가엔 한국 책들이 꽂혀 있었다. 『존 템플턴의 성공론』 『직업과 건강을 알면 미래가 보인다』 『존경 받는 리더는 어딘가 특별하다』. 한국의 성공학 교범들이 옌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었다. 50대로 보이는 조선족 교포 여직원은 “특별히 잘나가는 책이 있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60,70년대 남대문시장을 연상시키는 서시장은 실내시장으로는 중국에서도 큰 축에 속한다. 하루 유동인구는 5만 명, 연간 거래액은 7억6018만 위안(912억2160만원. 2002년 기준)에 이른다. 옌지시를 벗어나 맞닥뜨린 옌볜 농촌은 한국과 닮은꼴이었다. 승용차로 30여분 달려 투먼시 용가 2대에 접어들자 조선족 여성들이 담뱃잎을 따고 있었다. 처녀 때 왕청현 백초구진에 살았다는 최영순(48)씨는 기자가 말을 건네자 대뜸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테레비를 보면 한국 실정을 알 수 있는데 위성 안테나를 못 달아 못 보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마을에서 마주친 김철국(34)씨는 “농촌은 낙이 없다”고 했다. 그는 “저녁이면 한국 TV 드라마를 보거나 동네 선후배와 어울려 술을 마신다”고 했다. 밭이 3ha에 소도 세 마리 키운다는 그는 “부모들이 세상을 떠나면 도시로 나가겠다”고 말했다. 중국 속의 거대한 코리아 타운 지린성 동부에 있는 옌볜조선족자치주는 중국 속의 거대한 코리아 타운이다. 우리에겐 만주와 북간도란 이름으로 더 익숙한 곳이다. 이곳에 1952년 9월 3일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우대 정책에 따라 옌볜조선족자치구가 설립됐다. 55년엔 자치주로 전환됐다. 옌볜은 전 세계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 한민족 또는 이산 한민족 거주지역) 중 유일하게 한민족이 자치권을 행사하고 있는 땅이다(같은 지린성 백두산 서쪽에 장바이조선족자치현이 하나 더 있다). 더욱이 언어·문화·교육 면에서 거의 완벽하게 한민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른바 ‘황제시각’이라는 베이징 시각을 사용해 한국보다 1시간 늦지만 백두산 동북쪽에 위치해 대부분의 지역이 한국보다 해가 먼저 뜬다. 과거 부여·고구려·발해가 지배했던 옌볜에 한민족이 본격적으로 이주한 것은 19세기 초 이후. 220만 명인 옌볜 인구의 38%, 83만여 명이 조선족 교포다. 역외에서 이주해 온 소수 민족인 조선족이 자치권을 받은 것은 중국의 건국 과정에서 크게 기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자적인 말과 글, 문화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은 민족적 자부심도 강하다. 조선족 교포인 옌지시 아이엔티그룹의 박권일 회장은 “조선족은 문맹이 없는 민족”이라고 말했다. 옌볜이란 이름은 주도(주정부 소재지)인 옌지시와 그 주변 지역을 한꺼번에 일컫은 데서 유래했다. 면적은 지린성의 4분의 1 정도로 남한의 절반에 가깝다. 옌볜 경제는 오랫동안 낮은 성장에 그치고 있다. 변경 지역이라서 불리한 물류 여건, 상대적으로 빈약한 지하자원 등이 주 요인이다. 심지어 중국 평균에 비해서도 성장률이 낮은 실정이다. 옌볜의 1인당 GDP는 2000년 이후 중국 평균보다 1000위안(12만원) 이상 낮다. 중국의 개혁·개방 후에도 이어진 이 같은 부진엔 옌볜의 보수적인 경제체제도 한몫했다. 옌볜의 제조업은 또 다른 지역에 비해 비중이 작고 기술집약적이라기보다 자원지향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한국 붐에 조선족 사회 해체 위기 옌지(延吉)란 지명에 대해 옌볜 작가 류원무는 자신이 편저한 『연변취담』에서 ‘상서로움을 맞는 도시’ ‘길이 길할 도시’라고 풀이했다. 옌지가 맞고 있는 상서로운 기운은 한국에서 발원한 것이다. 박권일 회장은 “옌볜 사람들의 생활이 5년 전보다 윤택해졌다”고 했다. 한국 등 역외에서 막대한 돈이 유입되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외부경제다. 박 회장은 “옌볜의 일반적인 가정의 경우 가계 수입의 60%가 한국에서의 송금으로 충당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농촌의 경우 이런 경향이 더욱 두드러지다고 덧붙였다. 옌볜과기대 출신인 김호남 LG전자중국유한회사 부장은 그러나 “한국에서 돈이 유입되면서 소비성향이 높아져 옌지의 경우 한 달에 5000~6000위안(60만~72만원) 못 벌면 살 수 없는 도시가 돼 버렸다”고 개탄했다. 도시가 기형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금호연건유한회사 양균호 부총경리는 “한국으로의 노무 송출로 가족과 함께 사는 조선족 직원이 5% 미만”이라며 “이렇다 보니 가족 모임을 한국에서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한국 바람’이 조선족 사회의 해체 위기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노무 송출을 둘러싼 피해도 속출하고 있다.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의 조선족 기업인을 취재하고 돌아오는 길에 옌지행 야간열차에서 만난 마영철 옌볜동방화원무역유한회사 총경리 등도 방문취업 사기에 걸려 막대한 피해를 보았다고 호소했다. 쌍태전자실업유한회사 정강환 동사장이 이사장을 맡고 있는 하얼빈시의 쌍태어언문화학교 측이 한국 방문취업 알선을 미끼로 20일짜리 한국어 과정을 개설하고 최고 5000위안(60만원)의 수강료를 챙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학교 측 위탁을 받아 수강생을 모집했는데 학교에서 약속한 지난해 말까지 한 명도 취업이 안 됐으며 약속과 달리 수업료도 반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정 이사장은 이에 대해 기자와의 통화에서 “문서로 취업을 보장한 일이 없으며 ‘열심히 공부시키는데 왜 취업이 안 되겠느냐, 시험에 떨어지면 수업료를 돌려주겠다’고 한 일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9월 16일 첫 한국어 시험을 치렀는데 등록 인원이 적어 응시한 쌍태학교 수강자들은 다 합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무 송출 경제는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옌지진달래민족찬음유한책임회사 고봉열 총경리는 “옌볜 경제가 IMF 전 한국과 흡사하다”고 말했다. “임금은 낮은데 물가는 지린성 성도인 창춘보다도 비쌉니다. 부동산도 올랐습니다. 거품이 낀 거죠. 노무 송출로 한국에 나간 가족이 부쳐주는 돈을 조선족 교포들이 탕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물가가 뛰면 공무원 봉급이 오르고 그에 따라 임금이 오릅니다. 위안화 가치가 계속 상승하고, 현재 3000위안인 공무원 봉급이 7000위안까지 뛰면 한국에 안 갈 겁니다. 비용까지 감안하면 실익이 없기 때문이죠. 그렇게 돼 한국에 간 사람들이 다 돌아왔을 때가 문제입니다. 전부 공무원이 될 수도 없고.” 조선족 교포들의 국내 취업이 중단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는 그 시점을 길어야 3년 후로 내다봤다. 코리안 드림의 시효가 3년이 채 안 남았다는 주장이다. 옌볜 사람들이 해외 노무 송출로 벌어들이는 돈은 지난해 10억6000만 달러에 달했다. 옌볜조선족자치주 재정 수입의 3배가 넘는 규모. 고 총경리는 노무 송출 경제에 대한 옌볜의 의존도를 90%로 평가했다. 이 수입이 머지않아 끊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옌지 서시장의 리은영씨(오른쪽)는 이런 가게 사장이 되는 게 꿈이다. 조선족 교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것도 문제다. 이렇게 되면 옌볜이 조선족자치주로서의 지위를 잃을 가능성이 있다. 교포 수가 줄어드는 것은 무엇보다 조선족의 출산율이 낮기 때문이다. 2000년 현재 배우자가 있는 15~50세 조선족 여성의 평균 출생아 수는 1.02명에 불과하다. 권태환 서울대 교수(사회학)는 자신이 편저한 『중국 조선족사회의 변화』에서 “조선족의 출산율은 세계적으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최근 10년간의 이런 추세는 조선족 사회의 해체 위기에 대한 우려를 낳을 만하다”고 강조했다. 젊은 세대의 도시행과 그에 따른 만혼 풍조도 출산력을 떨어뜨렸다. 이 같은 출산의 감소엔 또 조선족 여성의 한국으로의 출가도 영향을 미쳤다. 결혼을 목적으로 한국으로 이주한 조선족 여성은 15~24세 한국 여성 인구의 20%가 넘는 4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추산된다(통계청 ‘인구동태통계:혼인이혼편,2000’). 권 교수는 그래서 조선족의 이동을 부추긴 변수를 ‘한국열’과 ‘도시열’로 규정한다. 조선족이 줄어드는 것은 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외지로 빠져나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박권일 회장은 “한국 기업들이 중국의 대도시와 연해 지방에 진출하면서 생긴 일자리를 이렇게 빠져나간 교포들이 채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기업에서 통역과 현장 관리는 교포들이 도맡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족이 떠난 빈자리는 타지에서 유입된 한족이 채우고 있다. 이래저래 조선족 비율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2010년 조선족 비율이 20%대로 떨어질 것이란 성급한 전망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자치주의 지위를 상실하고 옌지를 중심으로 한 자치시로 격하될 가능성을 점치기도 한다. 경제 살아나면 U턴할 것 조선족 교포의 옌볜 엑소더스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시각도 있다. 고봉열 총경리는 “옌볜의 젊은이들은 대도시의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이거나 또는 아무런 계획 없이 고향을 떠나는데 무턱대고 떠났다가 성공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조선족 교포인 최선 지린성배달창업투자유한회사 동사장은 “옌볜으로 U턴하려는 교포들은 많은데 이들을 수용할 산업이 없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역시 조선족인 김란수 옌볜신광국제경무유한회사 동사장도 “옌볜 경제가 살아나야 외지로 나간 교포들이 회귀한다”고 말했다. 옌볜은 한국 기업의 중국 진출 교두보가 될 수 있다. 조선족 교포는 한국 기업이 중국 시장에 ‘접속’하는 데 필요한 인터페이스 같은 존재다. 중국과 한국을 이어주는 다리랄까? 조선족 교포에 대해 김한수 옌볜과기대 교수(경영정보관리학과)는 “정체성 면에서 옌볜의 명물인 사과배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한국어와 중국어를 구사하고 중국의 주류사회에도, 한반도의 한민족에게도 동화되기 어려운 마지널한 집단이기 때문이다. 사과배는 70여 년 전 옌볜의 한 조선족 농민이 북한의 함경남도 북청에서 들여온 배나무를 옌볜의 야생 돌배나무에 접목시켜 만들어낸 품종. 외관은 사과와 흡사한데 맛은 배에 가깝다. 이들은 그러나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중국 국적의 한국 전문가 집단이기도 하다. 한국은 한국대로 이들을 중국의 지한파로 만들 수 있다. 사과도 되고, 배 행세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옌볜의 경제적 비전은 무엇인가? 노무 송출 경제 이후 옌볜이 주력할 산업은 무엇인가? 고봉열 총경리는 무역과 관광이 옌볜의 살길이라고 주장했다. “북한·러시아와의 무역, 장백산(백두산)을 중심으로 한 관광이 활로입니다. 제조업은 물류망이 취약해 어렵고 농업도 고도가 높은 데다 분지라 한계가 있어요. 옌지시도 홍콩 같은 소비 도시로 나아가야 합니다.” 박권일 회장은 “녹용·웅담·버섯 등 특산물, 냉면·개량한복 등 전통 상품을 브랜드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상품은 우리만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물류비에도 영향 받지 않습니다. 자체 브랜드가 없는 건 아니지만 현지 브랜드에 그치고 있죠.” 김란수 동사장은 물류 애로가 절대적인 장벽은 아니라고 말한다. “물류상 애로는 넓히면 됩니다. 북한의 나진항·청진항, 러시아의 자루비노항·블라디보스토크항을 이용하고 러시아 철도를 통해 유럽으로 뻗어나갈 수 있어요. 북한의 체제 내지는 정책이 변수지만 변화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현재도 이용하고 있는 나진항의 부두도 우리가 임차하는 겁니다. 북한의 회령과 마주보는 지역엔 지금 보세창고를 짓고 있습니다. 길은 뚫으면 돼요. 옌볜은 뱃길을 뚫어야 삽니다.” ▶(좌) 투먼시 농촌 마을의 조선족 여성들. (우) IT밸리가 자리 잡고 있는 옌지시 경제개발구. 한·중·러 교차 지역 여건 활용 그 역시 무역이 옌볜의 주력 산업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무역할 만한 산업이 있어서가 아니라 무역이 산업을 이끌도록 해야 합니다. 중국·북한·러시아 3국의 교차점으로서의 지경학적 여건을 활용해 북한·러시아 무역이 제조업을 견인하도록 하는 겁니다. 장차 동북아 시대의 물류 거점으로 발돋움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중국 내수시장으로의 운송도 해운을 이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린성을 포함해 중국의 동북 3성은 전국적인 콩·옥수수·쌀 산지입니다. 곡물을 실어나를 때 철도를 이용하면 해운 요금의 2배가 들어요. 이 역시 북한·러시아의 항구를 통해 배로 남방으로 실어내는 겁니다.” 김호남 부장도 역발상으로 물류망을 확충해 동북아의 물류 허브로 부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성 옌지시 IT밸리투자관리위원회 총경리는 “IT가 옌볜의 미래”라고 주장했다. 그는 “IT야말로 옌볜 조선족 사회의 미래 먹을거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족 교포들은 3D 업종을 기피합니다. 한국 사람들처럼 막말로 노가다 일을 싫어하죠. 그러니 한국 기업이 제조업 공장을 지어봤자 조선족은 안 들어갑니다. 그런데 한국보다 길게는 30년 뒤진 나라에 사는 조선족이 신기하게도 인터넷 사용능력이 뛰어납니다. IT 업계로서도 조선족을 필요로 하고요.” 더욱이 IT 산업은 물류의 영향을 덜 받는다. 옌지에 중한(中韓) IT합작기지 건설을 추진 중인 조철학 옌지시장도 “IT 업종은 물류비용과 별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조선족 교포들이 인터넷에 능한 것은 이들이 한국의 사이트를 드나들며 스스로 훈련을 쌓았기 때문이다. 국내 사이트들이 교육 인프라 구실을 한 셈이다. 양철형 금호연건개발유한회사 총경리는 “조선족은 창의력이 뛰어나고 벤치마킹에 능해 IT 업종이 적성에 맞는다”고 말했다. 그는 “초급 기술자로서는 탁월하다”고 덧붙였다. 옌볜과기대 김한수 교수는 “한국 IT 기업이 옌볜을 중국 IT 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옌볜의 저가 ‘메이드 인 차이나’를 중국의 거대 IT 시장에 우회 수출하는 겁니다. 더욱이 한국과 일본은 IT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2003년 정통부 자료에 따르면 이후 5년간 부족한 IT 인력이 10만 명입니다. 이공계 기피의 부산물이죠. 일본도 2005년 이후 6년간 50만 명이 부족합니다. IT 산업은 기질적으로도 한민족과 잘 맞습니다. 당연히 조선족 교포에게도 잘 맞죠.” 그는 나아가 한국 IT 기업이 해외개발센터(ODC)를 중국 동북지역에 둘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려면 조선족 IT 전문 인력을 양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기업이 옌볜의 코리안 디아스포라를 IT 인력으로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양철형 총경리는 “옌볜은 콜 센터의 입지로도 상당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김호남 부장은 한국이 비교 우위에 있는 애니메이션과 패션 디자인도 유망하다고 주장했다. 한국 기업에 옌볜은 과연 ‘기회의 땅’인가? 옌지에 현지법인을 두고 있는 이정기 기림세미텍 대표는 옌볜의 장점으로 언어와 문화가 같은 조선족 사회라는 점 외에 ▶습도 등 기후 조건이 좋고 ▶공항이 가까우며 ▶주변에 대학이 많다는 점을 꼽는다. 정당하게 취득한 이익금을 송금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 해고도 쉬운 편이다. 옌지에서 만난 한국 기업의 한 간부는 “여기 공인들은 노동법을 따질 만한 그런 수준은 아니다”고 말했다. 김한수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옌볜자치주, 나아가 지린성을 한국의 농산물 공급기지로 활용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잔류 농약 기준을 표준화해 농약 사용량을 통제할 수 있다면 이곳에서 나는 안전한 농산물을 한국에 들여갈 수 있습니다.” 한계도 있다. 우선 물류망이 취약하다. 이 같은 약점은 물류비 비중이 큰 제조업체에 특히 불리하게 작용한다. 옌지기림반도체유한회사 서재형 과장은 “한국과의 거래는 괜찮지만 남방에서 원자재를 육상 운송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납기가 길어지는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양철형 총경리는 원자재 물류보다 판매 물류가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주변에 판매 시장이 없다 보니 판매 물류 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옌볜의 낙후된 이미지도 발목을 잡는다. 양철형 총경리는 “한국 사람들이 서울에서 만들었다고 해야 신뢰하듯이 여기서도 옌볜 제품을 못 믿는다”고 말했다. ▶금호연건개발유한회사에서 조선족 교포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여기서 제조업이 안 되는 이유죠. 완제품은 제조 지역의 네임 밸류가 중요합니다. 가령 ‘메이드 인 인제(강원도)’라고 하면 한국 사람들이 사겠습니까?” 그래서 “옌볜엔 네임 밸류에 영향 받지 않고 기업간 전자상거래(B2B)로 거래되는 IT 중간품 공장을 세워야 한다”고 그는 제안했다. B2B 거래는 전문가들이 제품 검사를 하기 때문에 네임 밸류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다는 것. 그는 또 옌볜은 임금·물가 등 비용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다고 지적했다. 조선족 프리미엄 등으로 거품이 끼어 있다는 것이다. 금호연건의 경우 조선족은 인건비가 50% 더 든다. 문화 공간도 부족하다. 변변한 영화관조차 없다. 한 곳뿐인 골프장은 한국이나 중국의 남방보다도 그린피(900~1100위안)가 비싸다. 서재형 과장은 “유흥업소만 있지 술 안 마시고 시간 보낼 곳은 한국 당구장 한 곳과 볼링장 정도”라고 말했다. 인천 직항 항공료도 비싸다. 성수기 요금(80만원)은 인천~베이징 간 항공료의 4배에 이른다. 직항 항공료가 비싼 것은 늘 수요 초과 상태이기 때문이다. 옌지에서 만난 한 한국 기업인은 “인천~옌지 노선 증편이 안 되고 있는 것은 중국 당국이 속도 조절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중국 정부는 조선족이 한국 사람과 많이 접촉하면 그 고유의 민족성이 약해진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동북아경제공동체 중심축 예약 옌지경제개발구고신기술산업국 원일 과장은 옌볜에 진출하는 기업은 “현지인 사장을 잘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사업 파트너를 만나야죠. 경제개발구 같은 정상적인 통로를 이용하면 좋은데 더러 아는 사람에게서 소개 받았다 낭패를 봅니다.” 옌볜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보다 이곳이 장차 열릴 북한 시장의 전진기지이기 때문이다. 옌볜과기대 김한수 교수는 “한국 기업들이 통일시대, 동북아시대를 내다보고 미래에 투자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옌볜에 대한 투자는 말하자면 통일시대·동북아시대에 대비한 포석이죠.” 같은 대학 정진호 교수는 “지금은 옌볜이 변방의 소외지역이지만 남북이 통일되면 동북아 경제공동체의 중심축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땐 변방이 아니라 동북아 기업이 중동·유럽으로 뻗어나가는 길목이 될 겁니다.” 양철형 총경리는 “옌볜이 북한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의 근거지”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지금은 북한 시장으로 들어가는 관문이지만 앞으로 북한 시장을 노리는 한국 기업들이 근거지를 옌볜으로 옮길 거예요. 북한 시장도 조만간 열릴 겁니다. 그때에 대비해 다소 손해를 보더라도 조선족을 고용하고 이 지역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해야 합니다.” 그는 옌볜에 투자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물류비를 지원하는 등 정부 차원의 지원책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국에서 올린 매출에 대한 법인세를 면제해 줄 수도 있고요. 어떤 식으로든 수익성을 보전해 주는 거죠. 그러다 보면 민간 기업들이 옌볜에 구축한 교두보를 우리 정부가 활용할 날이 올 겁니다.” 한국의 자본·기술, 옌볜의 인프라, 북한의 인력이 결합한 한민족 경제권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옌지기림반도체 서재형 과장은 “옌볜은 은퇴하면 와서 살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노후에 연금 수입만으로 살아가야 한다면 은퇴 이민 후보지로 옌지를 고려해 볼 만하다는 것.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 비하겠습니까? 치안이 엉망이라는 것도 잘못 알려졌습니다. 밤에도 나다니고 밤길에도 택시 타고 다닙니다. 지난 2년 동안 신변의 위협을 느낀 적이 없어요. 중학교 3학년인 큰 애의 교육 문제가 걸리지만 옌볜의 명문인 옌볜일중에 사실상 한국 학생을 위한 외국인반이 있습니다. 7명의 한국 학생이 다니고 있죠.” 부인이 동의하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막상 와서 보면 생각이 바뀔 수도 있을 것”이라고 답했다.

2007.10.01 15:18

14분 소요
“IT공단 만들어 美대학 유치”

산업 일반

▶유대진 주임조리는… ·1959년 충남 논산생 ·경원대 국문과ㆍ한국방송통신대 교육학과 졸, 미 캘리포니아국제대 심리교육학과 수료 ·대원종합학원ㆍ상아탑입시학원 원장 ·1993년 12월 미국 이민 ·1994~2006년 미 샌프란시스코 한미라디오 아나운서, 미 샌프란시스코 한미TV 앵커, ‘일요시사’ 발행인 ·1999년 미 샌프란시스코 한인체육회장 ·2001~2006년 미 샌프란시스코 한인상공회의소 부회장ㆍ회장 ·2003~2006년 미 샌프란시스코 한국무역박람회 조직위원장 겸 대회장 ·현 중국 옌지경제개발구관리위원회 주임조리(부시장급), 중국 옌지IT밸리유치관리위원회장, 중국 옌볜대진투자기획자문유한공사 대표, 중국 옌지시 해외홍보대사, 중국 투먼시 해외통상대사 “저도 조선족입니다. 신조선족이죠. ”재미 한국교포 출신으로 옌지(延吉)시에 부시장급으로 영입된 유대진 중국 옌지경제개발구관리위원회 주임조리는 조선족을 자처했다. “이렇게 말하면 여기 동포들이 시큰둥해 합니다. 그럼 ‘당신들은 언제부터 조선족이었느냐? 나는 조선족이 된 지 얼마 안 됐다’고 하죠. 한 핏줄에 한마음이면 같은 조선족 아닙니까?” 입국 비자를 받을 필요없는 명예시민증을 옌지시에서 받은 그는 옌지의 공무원이 되기 위해 미국 시민권을 포기했다. 그 바람에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미국 영주권자로서 옌지시 공무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 이것이 그의 정체성이다. 유 주임은 2005년 7월 2일 백두산 천지와 처음 마주 섰을 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민족의 영산 백두산은 오히려 실망스러웠다. 지프를 타고 산을 오르는데 울창하지 않고, 기껏 들꽃이 하늘거렸다. 차에서 내려 정상까지 100여m를 걸었다. 구름 한 점 없었다. 순간 파란 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지였다. 주변의 봉우리들이 물에 비쳤다.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가슴이 벅차다 못해 미어지는데…, 나도 모르게 울먹이고 말았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라서였는지, 여기가 기회의 땅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서서히 기운이 차 올랐습니다. ” 그로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영하던 작은 신문사를 정리하고 홈쇼핑 사업도 접었을 때였다. “미국 등 선진국은 빈틈이 없지만 여기는 돈 벌 구멍이 있습니다. 지금은 경제적 안정도 찾았고 여기 경제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어 보람도 큽니다.” 유 주임은 1959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났다. 5형제 중 셋째라 중학교를 마친 후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거들어야 했다. 공부가 하고 싶었던 그는 1년 후 집을 뛰쳐나와 연산상고에 진학했다. 1회 입학생에 웅변 장학생이었다. 중학교 때 학교 대표로 웅변대회에 나가 상을 휩쓴 것이 발판이 됐다. 고2 때는 6·25 기념 반공웅변대회에서 통일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해 말 그는 아예 웅변학원을 인수했다. 빚더미에 앉은 원장이 강사였던 그에게 학원을 넘긴 것. 고교 때 이미 웅변학원장 3학년 2학기 취업차 상경한 그는 웅변학원 강사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 날 한 중년 여성이 그를 찾아왔다. “웅변학원을 차리려고 하는데 원장을 맡길 유능한 강사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이후 그는 대원웅변학원 대리원장으로 일하면서 경원공전 경영학과 야간부에 진학했다. 졸업 후엔 경원대 야간부에 편입학해 국문학을 전공했다. 그새 학원은 종합학원으로 바뀌었고, 투자자의 딸이 학원에 나와 피아노를 가르쳤다. 대학 3학년 시절 한양여대 응용미술과 출신의 재원인 그녀에게 그는 프러포즈를 했다. 1남5녀의 막내딸인 그녀와의 결혼에 언니들이 일제히 반대했다. 예비 장모였던 투자자만이 그의 편이었다. “돈과 학벌이 전부가 아니다. 있으면야 좋지만 그보다 사람 됨됨이를 봐야지. 평생 속 썩이지 않을 사람”이라고 딸을 설득한 장모는 그에게 금반지 값으로 20만원을 꿔주며 두 사람의 결혼을 후원했다. ▶(위) 2003년 겨울 미 샌프란시스코 한인상공회의소 회장 취임사를 하고 있는 유대진 주임조리. (아래) 유대진 주임조리의 가족. 뒷줄 왼쪽부터 시곗바늘 방향으로 유 주임조리, 옌지에서 햄버거 가게를 하는 동갑내기 부인 오민자씨, 딸 햇살, 아들 태원. 83년 결혼에 골인한 그는 장모에게서 독립했다. 사채 등을 얻어 서울 독산동에 대원웅변미술학원을 차렸다. 부부가 각각 웅변과 미술을 가르치고, 밤이면 책상을 붙여 침상으로 썼다. 그때부터 지역을 옮겨다니면서 학원을 했다. 학원을 다른 사람에게 넘길 때마다 권리금을 챙겼다. 딸 햇살이가 다섯 살 되던 해엔 수유동에 유치원을 냈다. 유치원 정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그는 방송통신대 유아교육과에 입학했다. 늦깎이로 들어갔지만 학생회장을 했다. 학생회장 자격으로 대만 등 아시아권을 돌면서 견문도 넓혔다. 상계동으로 옮기면서 이번엔 입시학원을 차렸다. 수강생이 많을 때는 600명에 달했다. 고교 진학이 불투명한 아이들에게 전 과목을 지도해 인문계 고등학교에 보내는 특수과외도 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내달리던 그는 1993년 결혼 10주년을 맞아 부인과 미국 여행을 떠났다. 미국은 교육 환경이 좋았다. 아이들은 기를 펴고 살았다. 한국 땅에서 앞으로 고생스럽게 공부할 초등학교 4학년 딸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미국 이민을 결심했다. 2년 만에 취업 비자를 받고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샌프란시스코에 정착해 기념품 가게를 거쳐 수퍼마켓에서 일했다. 그러나 평생 안 해본 육체노동은 그로서는 힘겨웠다. 마침 현지 한인방송인 한미라디오에서 아나운서 겸 기자를 뽑았다. 2~3일 발음 교정 훈련을 받은 후 곧바로 뉴스에 투입됐다. “어찌나 떨리던지 일주일 동안 매일 우황청심환을 서너 알씩 먹었습니다. 그랬는 데도 ‘왜 그렇게 떠느냐’는 둥 ‘발음이 안 좋다’는 둥 항의전화가 왔습니다.” 기자로서 취재를 나갈 때면 영어 잘하는 동료를 따라나섰다. 영어를 제대로 공부하기 위해 캘리포니아국제대 2년 과정에 입학했다. 아나운서 일에 웬만큼 이력이 붙자 역시 한인방송인 한미TV에서 스카우트를 제의했다. 앵커 겸 기자였다. “본래 꿈이 영화배우나 탤런트였습니다. KBS·MBC 탤런트 시험도 봤는데 면접에서 떨어졌죠. 반도패션의 양복 모델도 했습니다. ” 어릴 때 꿈은 배우아니면 탤런트 한인단체 활동도 열심히 했다. 샌프란시스코에 진입한 지 이틀 만에 가입한 샌프란시스코한인볼링협회에서는 이듬해 회장을 맡았다. 샌프란시스코한인체육회 사무총장을 거쳐 99년엔 한 표 차로 한인체육회장에 당선됐다. 그의 나이 서른여덟 살 때였다. 30대 젊은 회장에 대해 반발이 심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언론에 매력을 느낀 그는 방송국을 그만두고 ‘일요시사’라는 주간 신문을 창간했다. ‘시사포커스’란 주간신문도 발행했다. 신문사 운영에 돈이 많이 들어 대영무역이란 회사도 차렸다. 한국에서 건강식품 등을 수입해 팔고 브라질·아르헨티나 등지에서 곡물도 수입했다. 홈쇼핑에도 손을 댔다. 번 돈을 신문사에 털어넣었지만 운영난은 계속됐다. 결국 신문사를 넘기고 무역업에 치중하는 한편 현지 한인상공회의소 일에 몰두했다. 이사·부회장을 거쳐 2003년 겨울 그는 미 샌프란시스코한인상공회의소 회장에 무투표 당선됐다. 사실상 추대였다. 이듬해 역점 사업으로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을 유치해 한국무역박람회를 열었다. 720만 달러의 수출 계약이 체결됐다. 이사 전원이 반대한 이 행사의 적자는 그가 개인적으로 메웠다. 2005년 계약액은 1280만 달러에 달했다. 20여 만 달러의 흑자도 냈다. 지난해엔 계약액을 지급 기준으로 산정해 800만 달러로 줄었다. 거품을 뺀 것이다. 2004년 초겨울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조선족자치주 옌지시의 조철학 시장이 샌프란시스코를 찾았다. 이후 샌프란시스코한인상공회의소는 옌지시 경제개발구와 자매결연을 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옌지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그 후 한 달에 두 번씩 옌지를 찾았다. 같은 옌볜자치주의 투먼(圖們)시는 그를 해외통상대사로 임명했다. 2005년 그는 옌지시의 세계한인상공인대회 유치를 성사시켰다. 그 후 옌지시는 미국시민권자인 그에게 공무원으로 일하자고 제의했다. 부시장급인 8급의 주임조리로 지린성에서 인준까지 받은 후였다. 연임해 임기가 올 12월까지인 샌프란시스코한인상공회의소 회장을 사임하고 그는 옌지로 근거지를 옮겼다. 26층짜리 IT빌딩 연내 완공 초청 공무원인 그의 월급은 2650위안(한화 31만8000원), 판공비가 따로 나온다. 옌지의 사무직 임금은 1500~1600위안 수준. 옌지시 측은 그에게 연금까지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초청 공무원으로서는 지린성에서 두 번째 케이스지만 부시장급 고위직은 그가 처음이다. 그는 올 8월에 있을 옌지국제투자무역박람회의 공동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행사의 준비를 맡으면서 그는 조 시장에게 옌지 IT밸리의 조성을 제안했다. “옌지는 물류 면에서 불리해 제조업 기지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관광에 매달릴 수도 없는 형편이죠.” 중국 정부는 바이산시에 백두산공항을 건설 중이다. 이 공항은 이르면 올해 말 준공된다. 공항이 개장되면 비행기를 이용하는 백두산 관광객은 더 이상 옌지를 경유할 필요가 없다. 옌지시 정부는 경제개발구에 있는 애득자동차매매센터 2~3층을 임차해 그에게 관리권을 넘겼다. 그는 이 두 층을 IT밸리(IT산업원)로 명명하고 한국 기업을 유치했다. 네이버 옌지센터가 이곳에 입주해 있다. 여기서 자동차로 10분 거리의 IT전용공단엔 26층 규모의 IT대하가 완공을 앞두고 있다. 연내 준공 예정인 이 빌딩 말고도 7개 동의 高신기술센터가 들어선다. 첫 동은 6월이면 완공된다. “테헤란밸리보다 규모가 크죠. 이 공단에 외국 대학을 유치하기 위해 미국 대학들과 접촉 중입니다. 스탠퍼드대·북버지니아대·남가주대 등이 그 대상이죠.” 교육 이민에 동기를 제공한 그의 딸은 올해 스물넷.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한국에서 영어 강사를 하고 있다. 이민 1.5세로서 갈등은 겪었겠지만 즐겁게 공부했고 티없이 컸으니 그의 이민은 성공한 셈이다. 네 살 아래인 아들은 미국에서 경제경영학을 전공하고 있다. 노후는 한국에서 보낼 생각이다. 그는 “의정부에 집 지을 돈만 있으면 된다”며 밝게 웃었다. 한국기업 중국 진출 교두보 노리는 옌지 값싼 고급 인력에 세금 혜택까지 ▶공사 중인 IT대하와 조감도. 옌지시는 이 건물 뒤편에 조성 중인 IT 전용공단에 미국 대학을 유치할 계획이다. “말이 통하는 고급 인력을 저비용에 고용할 수 있습니다. ” 동포(조선족) 출신인 김성철 옌지경제개발구관리위원회 부주임은 옌지의 이점을 이렇게 뭉뚱그렸다. 백두산 북쪽 지린성 동부에 자리 잡은 옌지는 옌볜조선족자치주의 주도다. 인구는 42만 명. 옌볜자치주의 조선족 비율은 38.1%, 옌지시는 58.1%가 조선족이다. 이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이중언어로 영어나 일어를 배운다. 물론 한국어와 중국어는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한국의 지상파 TV 네 채널과 위성방송을 일상적으로 실시간 시청해 말씨도 한국식 한국어에 동화돼 가고 있다. 유대진 옌지경제개발구관리위 주임조리는 콜센터 요원 양성원을 IT밸리 안에 세울 계획이라고 했다. “옌지 사람들은 한국 TV를 틀어 놓고 살뿐더러 한 집에 한 명꼴로 가족이 한국에 가 있습니다. 2~3개월 교육을 받으면 한국 기업의 콜센터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과거와는 달라요.” 옌지의 주요 산업은 공업ㆍ무역ㆍ관광 등이다. 물류는 나진항을 통해 속초ㆍ부산항과 연결되고 다롄(大連)항을 거쳐 인천에 닿는다. 개발구 안 IT밸리에 입주하면 2년 동안 임차료가 면제된다. 이후 3년간은 절반으로 감면된다. 전기요금을 제외한 거의 모든 비용을 포괄하는 관리비는 ㎡당 10위안. 임차료의 3분의 1 수준이다. 임금은 청소ㆍ보안 등을 맡고 있는 인력이 월 800~1200위안을 받는다. 최저임금은 월 460위안, 베이징의 최저임금은 640위안, 상하이는 750위안이다. IT분야의 인건비는 베이징의 3분의 2, 일반 공장은 그 절반 수준이다. 토지는 투자 규모에 따라 우대 가격이나 무상으로 제공된다. 시에 내는 세금은 5년간 환급된다. 환급 혜택 기간이 1~3년인 다른 도시들에 비해 유리하다. 컴퓨터 프린터용 토너 카트리지, 반도체 장비용 핵심 부품인 실리콘 캐소드 등을 생산하는 기림세미텍의 이정기 대표는 옌볜의 장점으로 한국어를 쓰고 문화가 같은 것을 꼽기 전에 습도 등 기후 조건이 좋은 점, 공항이 가깝고 주변에 대학이 여럿이라 인재가 많은 것 등을 지적했다. 인재의 산실은 단연 연변과학기술대학이다. 이 대학 경영정보관리학과 김한수 교수는 연변과기대 출신 취업률은 120%라고 말했다. “중국 대학의 평균 취업률은 40% 수준입니다. 우리 대학 졸업생에 대해서는 20%의 초과 수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120%죠.” 이 대학의 김진경 총장은 이 학교 출신들이 “동북아 시대의 리더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중언어로 일본어를 배우고 들어온 동포 학생들이 영어를 필수적으로 하기 때문이다. 옌지경제개발구가 한국 기업을 겨냥해 내건 캐치프레이즈는 ‘중국 진출의 교두보’다. 유 주임은 “옌볜이 발전하면 중국 전역의 조선족들이 가족과 재산이 있는 이 땅으로 U턴할 것”이라는 기대 섞인 전망을 내비쳤다.

2007.05.07 11:50

8분 소요
중국, 북한 경제 포섭 본격화 … 中, 백두산 공항 내년 6월 착공

산업 일반

북한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10월 29일 중국의 무상지원으로 건설된 대안친선유리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대안친선유리공장. 중국이 2400만 달러를 무상 지원해 북한 평안남도 대안군에 건설한 유리 공장이 ‘21세기 조·중 친선의 상징’이 되고 있다. 북한 조선노동당 창당 60주년 기념일(10월 10일) 하루 전날 열린 준공식에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우이(吳儀) 중국 부총리가 참석했다. 지난 10월 28일부터 2박 3일간 북한을 방문한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도 김 위원장의 직접 안내로 이 공장을 둘러보았다. 판유리를 하루 최고 200만t 생산하는 이 공장은 컴퓨터로 모든 생산공정을 제어할 수 있는 최첨단 시설을 갖추고 있다. 북한은 이 공장 유리 제품의 60%를 러시아에 수출하고, 나머지는 국내용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지난달 7일 준공된 평진자전거합영공사도 북한과 중국의 톈진디지털무역유한책임공사가 공동으로 출자한 기업으로 자전거와 리어카 등을 생산한다. 자전거는 에너지가 부족한 북한에서 필수적인 교통수단이다. 북한과 중국의 경제협력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특히 중국은 후 주석의 방북을 계기로 북한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무역협회와 통일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의 대북 투자는 2000년 100만 달러보다 50배 늘어났으며, 북·중 간 교역 규모도 13억8500만 달러로 북한 총 교역 규모(28억5700만 달러)의 48.5%를 차지했다. 북한 소비재 시장은 이미 중국제로 넘쳐나고 있다. 중국 제품은 북한 시장의 80% 정도를 차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에 주재하는 중국 기업인만 4000명이 넘고, 중국의 위안화가 정식 화폐로 통용될 만큼 중국 제품이 활발하게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중국 기업들은 지금까지 주로 소비제품 위주로 북한 시장을 공략해 왔다. 中 위안화 북한에서 화폐로 통용 그런데 중국이 대북 경제 진출 전략을 바꾸고 있다. 올 들어 자원개발과 항구, 철도 등 인프라 건설 분야에 대규모 투자를 모색하고 있다. 또 중공업 분야에도 적절한 규모의 투자를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이 부총리는 지난달 10일 박봉주 내각 총리를 만나 북한의 자원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참여할 의사가 있다고 처음으로 밝혔다. 이와 관련, 홍콩 문회보(文匯報)도 중국이 최근 북한에 광산 개발, 제철공업, 항구 개발 등 3대 영역에서 대규모 지원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10월 23일자). 이 신문은 우이 부총리가 북한과의 중공업 개발 지원도 합의했다면서 개발 지역은 기존 중공업 밀집 단지 및 함경북도 등 중국과 북한의 접경지역이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이 같은 지원은 향후 북한에 투자하는 중국 기업들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속셈은 한마디로 ‘꿩 먹고 알 먹자’는 전략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함경북도 무산 광산개발이다. 무산 광산의 철광석 매장량은 확정분만 22억t이며 추정 분까지 합치면 50억t에 달한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수입한 철광석이 4400만t이었다는 사실로 볼 때 엄청난 규모다. 무산 철광석은 순도 66%로 채광 즉시 고로에 넣어도 될 정도로 품질이 우수하다. 하지만 무산 광산은 그동안 전력 부족과 자연재해 등으로 생산량이 저조했다. 중국이 현재 이 광산에 잔뜩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서로 합작 투자를 선점하기 위해 쟁탈전까지 벌이기도 했다. 중국은 지난해 북한 무산광산연합기업소와 함께 철광석 개발에 5000만 달러를 투자한 데 이어 지난 5월에도 설비 현대화에 1500만 달러를 투입했다. 이처럼 자원 개발은 잘만 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수 있다. 북한의 지하자원 중 경제성이 있는 광물은 43종으로 추정된다. 마그네사이트의 경우 매장량이 30억~40억t으로 세계 3위 규모지만 낙후된 채굴 기술과 자금 부족으로 제대로 캐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북한은 광산개발 활성화를 통한 경제회복을 위해 외국기업의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서고 있다. 자원 개발은 중국과 북한 모두에 이익인 셈이다. 중국은 또 북한의 사회간접자본 투자에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항만과 철도에 대규모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중국 지린(吉林)성 훈춘시의 둥린무역공사와 훈춘 국경경제협력기구 보세공사는 지난 9월 나진항 2개 부두의 50년간 독점 운영권을 확보했다. 중국의 숙원사업인 동해로의 출구가 마련된 셈이다. 중국은 내년 중 투먼(圖們)에서 시작해 함경북도 남양, 나진을 거쳐 청진까지 연결되는 철도를 착공할 계획이며 총 투자액은 30억 달러 규모로 추정된다. 수심이 깊은 청진항은 대형 선박이 정박할 수 있어 중국 동북지역 경제개발을 위한 주요 항구가 될 수 있다. 또 함북 무산과 중국 허룽(和龍)을 연결하는 무산~남평 국경다리가 지난 8월 완공되는 등 국경교역을 위한 각종 시설도 중국의 투자로 건설 또는 확장되고 있다. 이와 관련, 홍콩 시사주간지 아주주간(亞洲週刊)은 북한이 중국과 합작으로 설립하는 철도운수 주식회사에 북한의 모든 철도를 개방하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10월 23일자). 이 잡지는 이에 따라 평양에서 선양(瀋陽) 등 중국 전 지역에 이르는 새로운 북한~중국 무역노선이 출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북·중 간의 투자를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되고 있다. 지난 3월 투자보장협정을 맺었고, 10월 경제기술협력협정도 체결했다. 중국은 이와 함께 북한과의 접경지대에 대규모 역사를 벌인다. 중국은 내년 7월부터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에서 출발해 지린성과 랴오닝(遼寧)성의 북한 접경지대를 거쳐 다롄(大連)까지 이어지는 총 1380㎞의 동변도 철도를 착공, 2008년 12월 개통할 예정이다. 중국 철도부에 따르면 동변도 철도는 동북 3성 10여 개 시와 30여 개 현을 지나며, 연간 1800만 명을 수송할 계획이다. 이 공사는 중국에서 상대적으로 경제가 낙후한 동북 3성의 경제성장을 촉진하고, 북한과의 교역 활성화에 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중국은 동북 3성을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보고 있다. 중국 수출의 40%를 차지하는 주장(朱江) 삼각주 지역은 노동력 부족과 에너지난, 인건비 상승으로 성장 속도가 둔화되고 있다. 이 때문에 동북 3성을 육성하려면 앞으로 북한 경제의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중국이 북한의 자원 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는 것도 북한으로부터 각종 자원을 신속히 동북 3성으로 이동시키고, 반대로 동북 3성에서 생산한 제품을 원활하게 수송하고 이를 해외에 수출하기 위한 것이다. 동북 3성 위해 북한 개방시킨다 중국은 심지어 백두산 지역의 투자환경 조성을 위해 지린성의 두 번째 민간공항인 창바이산(長白山·백두산의 중국 이름) 공항을 내년 6월에 착공해 2009년 문을 열 예정이다. 중국은 또 북핵 문제가 완전 타결된 이후도 대비하고 있다. 지린성 동북아연구중심 첸룽샨 연구원은 “북한이 일단 개혁·개방에 나서면 수백억 달러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며 “미국과 일본의 자본이 대거 유입될 경우도 중국은 염두에 두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정치·군사적 측면에서 ‘혈맹’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또 중국은 북한이 부족한 에너지와 식량의 40%를 지원해 주는 등 경제적 영향력도 막강하다. 중국은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면서 교역과 투자의 기회를 선점,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후 주석은 이번 방북에서 김 위원장에게 “중국과 북한 기업의 투자협력을 고무하고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후 주석의 말처럼 앞으로 중국과 북한은 새로운 방향으로 경제 협력을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의 자본이 북한의 자원 개발과 인프라 건설에 대거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우리나라로서는 북한이 개혁·개방 정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러다 북한 경제가 중국에 종속될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고구려사를 왜곡하고, 이를 통해 북한과 간도지방에 대한 자신들의 지배권을 정당화하려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이 전략 목표를 가장 쉽게 달성할 수 있는 수단이 바로 경제 협력이다. 경제 대국으로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이 북한 경제를 거대한 원심력으로 끌어들인다면 북한이 중국의 ‘동북 4성’이 될 수도 있다. 후 주석이 북·중 친선을 상징하는 ‘우의탑’을 찾아 헌화하고 방문록에 ‘어깨를 함께하면서 평화를 수호하고 손잡고 미래를 개척하자’고 쓴 글귀가 예사롭지 않다.

200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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