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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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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른 근로자 사망사고에 현대엔지니어링 흔들…신임 대표, 위기 관리 능력 시험대

부동산 일반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4위에 이름을 올렸던 현대엔지니어링이 최근 위기에 빠진 모습이다. 지난 2월 서울세종고속도로 공사 교량 붕괴 사고에 이어 2건의 근로자 사망 사고가 더 발생하면서 지난해 11월 취임한 주우정 대표 역시 중대재해 리스크에 봉착하게 됐다.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엔지니어링 실적 개선을 위해 그룹의 대표 재무통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주우정 대표를 신임 대표로 선임했다. 주 대표는 기아 부사장(재경본부장) 재임 시절 수익성과 재무구조를 크게 개선한 인물이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해 영업손실 1조2401억원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는데 이는 23년만에 최대 규모 적자였다. 이런 상황을 만회하기 위해 주 대표가 현대엔지니어링의 방향키를 잡게 된 것이다. 당시 현대자동차차그룹은 “실적 부진 타개와 함께 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조직 전반의 체질 개선을 가속화할 예정”이라며 주 대표의 선임 이유를 밝혔다.연이은 근로자 사망 사고 발생주 대표는 1964년생으로 서강대 경제학과 졸업했다. 현대자동차그룹 산하 계열사에서 재무관리 전문가로 활약했다. 기아에서는 ▲슬로바키아법인 경영관리실장 ▲유럽법인 재무실장 ▲본사 재무관리실장을 맡았다. 이후 현대제철로 이동해서 ▲재무관리실장 ▲원가관리실장 ▲경영관리실장을 지냈다. 2019년부터는 기아 재경본부장으로 임명돼 CFO로 활약했다. 주 대표는 기아 CFO 재직시절 기아가 코로나 위기 등을 거치면서도 호실적을 유지한 1등 공신으로 꼽힌다. 주 대표는 철저한 재무 관리를 바탕으로 기업의 전반적인 살림을 책임지며 기아가 역대 최고 실적을 달성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그러나 취임 100일도 지나지 않아 대형 안전사고가 잇따라 발생하면서 ‘비건설인’ 출신인 주 대표의 경영능력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올해 들어서만 3건의 대형 사고로 13명의 사상자를 냈다. ▲세종-안성 고속도로 붕괴(2월) ▲평택 주택공사 추락 사고(3월) ▲아산 오피스텔 공사 추락 사고(3월) 모두 현대엔지니어링이 주관한 현장에서 벌어진 일이다.앞서 주 대표는 지난 2월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건설 현장 붕괴 사고와 관련해 직접 사과했다. 그는 “회사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해 피해자 지원 및 사고 수습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필요한 조치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 대표는 “공사 현장에서 소중한 생명을 잃고 부상을 입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사고가 발생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빌며 유가족분들께 머리 숙여 사죄를 드린다”고 했다. 그는 “모든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향후 이런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수립하고 철저히 이행토록 하겠다”고 말했다.현대엔지니어링은 유가족에 대한 장례절차와 정신적 충격 완화를 위한 심리 상담 지원, 부상자를 위한 부상 및 재활치료 지원 계획을 밝혔다. 피해 가구당 300만원의 긴급 생계비를 지원하고 인접 가옥의 피해를 조사해 불편 사항을 해소하는 등 주민 지원에도 나서겠다고 밝혔다.이후 지난 3월 국회에 출석한 주 대표는 교각 재시공 계획과 관련해 “사고조사 결과에 따라 저희가 책임져야 할 부분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또 주 대표는 추후 대응에 대해 “사고 이후에 계속 조사를 하고 있다”며 “안전사고가 없도록 내부적으로 고민하고 있고, 근본적인 변화를 만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하지만 주 대표의 사과와 국회 출석 이후 또다시 근로자 사망사건이 발생하면서 현대엔지니어링은 사면초가에 빠진 모습이다. 고용노동부는 현대엔지니어링 본사와 전국 건설 현장을 대상으로 4월 말까지 기획 감독을 실시, 최근 일어난 사망사고에 대해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수사할 예정이다. 감독 대상은 현대엔지니어링이 현재 시공 중인 87개 현장 중 25곳이다. 고용부는 사망 사고 발생 시 ▲경고 공문 발송 ▲일부 현장 점검 ▲전국 단위 기획 감독 등 단계적으로 대응하는 방식으로 안전 관리 수준을 점검하고 있는데, 이번 조치는 가장 강도 높은 조치에 해당한다.중대재해처벌법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발생 ▲동일한 사고로 6개월 이상 치료가 필요한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 ▲동일한 유해요인으로 급성중독 등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직업성 질병자가 1년 이내에 3명 이상 발생 중 한 가지를 충족하면 중대산업재해로 본다. 이 법은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고 예방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신용등급 전망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이런 상황에서 현대엔지니어링의 신용등급 전망까지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됐다. 대규모 해외 사업 손실과 잇따른 건설현장 사고 여파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NICE신용평가는 현대엔지니어링의 기업신용등급(원·외화 기준) AA-를 유지하면서도 등급전망을 기존 ‘하향검토’에서 ‘부정적’으로 변경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이는 ▲높은 원가 부담으로 예상되는 중단기간 낮은 영업 수익성 ▲최근 국내 사업 환경 저하세 ▲대규모 손실로 저하된 재무 안정성 ▲낮은 현금 창출력에 따른 차입 부담 증가 추세 등의 원인에 따른 것이다.또한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사고 등 산업 재해 발생으로 인한 국내 사업 환경 저하도 지적됐다. 보고서는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의 경우 도급액 2053억원으로 회사 참여 지분(62.5%) 고려 시 사업 규모는 크지 않다”면서도 “향후 조사 결과에 따라 영업 정지 등 행정 처분 발생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로 인한 대외 신인도 및 수주 경쟁력 저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2025.04.20 09:01

4분 소요
[단독]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기로에 선 HD현대重...쟁점은 ‘작업계획서’와 ‘신호수’

산업 일반

HD현대중공업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기로에 섰다. 앞서 지난 14일 HD현대중공업 울산 조선소에서 노동자 1명이 사망했다. 피해자는 조선소 내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이동하던 중 우회전하던 트레일러에 치여 사망했다. 당시 트레일러에는 족장(발판)이 가득 실려 있었다. 이번 사고를 두고 노조는 ‘중대재해’를 주장하고 있다. 반대로 사측은 조사 결과를 지켜보자는 입장이다. 핵심은 해당 사안에 대해 ‘법적’으로 다툴 쟁점이 명확하다는 점이다.1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이번 사고의 핵심 쟁점은 ‘작업계획서’와 ‘신호수’와 두 가지다. 먼저 작업계획서다.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중대 재해를 야기하는 고위험 작업에 대해 재해유형·안전조치 등을 담은 작업계획을 수립하도록 정하고 있다. 작업계획서에 노동자의 안전이 담보된 만큼, 이를 작성하고 준수하는 행위는 작업자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수단인 셈이다.작업계획서 작성에 관한 규정은 ‘산안법’에 관한 규칙 제38조에 명시돼 있다. 해당 조항에 따르면 차량계 하역운반기계 등을 사용하는 작업일 경우 작업계획서를 작성하고 그 계획에 따라 작업을 해야 한다. 트레일러는 ‘차랑계 하역운반기계’에 속한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기준 20조 7호를 보면 지게차·구내 운반차·화물자동차·고소 작업대 등을 ‘차량계 하역운반기계’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트레일러를 활용한 작업을 수행할 경우 ‘작업 계획서’를 사전에 작성해야 한다. 단 예외는 있다. 해당 작업이 ‘화물자동차를 사용하는 도로상의 주행 작업’일 경우다. 단순히 주행작업만 수행할 경우 작업계획서 작성은 제외된다.이에 대해 김형기 노무사는 “단순 도로상의 주행작업은 조선소 외부에서 일반 화물자동차에 적용되는 사안”이라며 “트레일러를 통해 조선소 내부에서 화물을 상·하차 할 뿐만 아니라, 산업안전보건기준에관한규칙 제38조 별표 4에 따르면 차랑계 하역운반기계 등을 사용하는 작업을 수행할 시 운행경로 및 작업 방법이 담긴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한다”고 설명했다.문제는 HD현대중공업이 이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됐다는 점이다. 노조 관계자와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HD현대중공업이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HD현대중공업 노조 관계자는 “사측은 해당 작업 시 필요한 ‘작업계획서’를 마련하지 않고 일을 진행했다”며 “작업계획서는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안전장치인데, 이를 작성하지 않고 업무를 강행했기 때문에 사측의 책임이 분명히 존재한다”고 지적했다.익명을 요구한 회사 관계자는 “사측이 ‘작업지시서’를 작성해 물류회사에 전달한 것은 맞으나, 별도의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진 않은 것으로 파악 된다”며 “해당 작업의 경우 일상적으로 매일 반복되는 작업이기에, 현장에서 바로 상차작업을 진행했다. 별도의 작업계획서는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고 말했다.사고 사안을 살펴본 전문가는 작업계획서를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 HD현대중공업이 산안법 위반과 함께 중대재해처벌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고용노동부도 작업계획서 작성이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 산안법 위반에 해당된다고 말했다.김현우 법무법인 한결 변호사는 “당초 작업계획서의 내용 등 구체적 사정과 조사 내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으나, 작업계획서 미작성은 중대재해처벌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관련 볍령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향후 노동청과 경찰에서 이 부분에 대해 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고용노동부 관계자는 “산업안전법이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달리는 부분까지 규율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조선소 내부에서 하역 작업을 실시할 경우 시행하기 전 작업계획서를 작성해야 하는 것은 맞다. 만일 이를 작성하지 않았을 경우 산업안전법 제 38조에 위배된다”고 설명했다.또 다른 쟁점은 ‘신호수’다. 사고가 발생한 지점은 출·퇴근 시 급증하는 교통량을 관리하기 위해 별도 관리자가 배치되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업무 시작과 동시에 해당 관리자들은 현장에서 철수한다. 조선소 내부 도로에 관리자를 상시 배치할 의무는 없기 때문이다. 별도 작업이 이뤄질 경우 상황은 달라진다.산안법 제172조(접촉의 방지)에 따르면 차량계 하역운반기계 등을 사용해 작업할 경우 사업주는 노동자가 위험해질 수 있는 장소에 노동자의 출입을 막거나 유도자를 배치해야 한다. 최소한의 안전장치인 셈인데, 노조 관계자는 “당시 사고 장소에는 출입을 막거나, 유도자를 배치하는 행위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물론 예외는 있다. 산안법 제39조(작업지휘자의 지정)다. 산안법 제39조에 따르면 차량계 하역운반기계 등을 사용하는 작업에서 작업 장소에 다른 근로자가 접근할 수 없거나, 주위에 근로자가 없어 충돌 위험이 없는 경우 작업지휘자를 지정하지 않을 수 있다. 다만, 해당 장소는 모든 근로자가 접근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충돌 위험도 도사리고 있었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또 호황기를 맞은 조선소 내부의 물류 이동량을 지적했다. 이들은 조선업 호황에 따라 사내 물류 이동이 늘어나면서 이 같은 유사 사고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노조 관계자는 “출·퇴근시에는 오토바이 등으로 출근하는 인력이 모여 관리자가 교통을 통제하지만, 사고 당시에는 어떤 관리자도 존재하지 않았다”며 “이번 사고와 같이 유사한 사고는 과거에도 계속해서 반복됐다”고 지적했다.그러면서 “사고가 발생한 삼거리에는 이동하는 차량과 기계, 보행자 등의 안전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없었다”며 “특히 도로 구조 자체가 트레일러 등 조선소에서 주로 사용되는 차량용 하역운반기계 등이 운행하기 위험한 구조”라고 덧붙였다.해당 사안을 살펴본 변호사도 “평소 출·퇴근 시 신호수를 배치하는 구간일 경우 사측도 위험성을 어느 정도 인지했을 것”이라며 “이를 토대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신호수를 배치해야 한다고 평가될 수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HD현대중공업은 조사 결과를 지켜본다는 입장이다. 사고 경위를 파악하고 있는 만큼, 해당 사안에 대해 세부적으로 안내가 어렵다고 덧붙였다.HD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해당 사안에 대한 사고 경위 및 자세한 사항들을 조사 중”이라고 말했다.

2025.01.16 15:19

4분 소요
산업 현장 사망사고 80%는 신입사원…명장이 만든 묘안은 [대한민국 명장]

산업 일반

그들은 남들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묵묵히 한 자리에서 15년 이상을 일했다. 분야도 다양하다. 한복 생산부터 제빵·금형·석공예·용접 등 한국 사회가 움직이는 데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흔히 말하는 3D 업종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들은 일이 어려워도 편법 대신 원칙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맡은 바를 끝까지 해낸 장인들이다. 그들에게 한국 사회는 ‘대한민국 명장’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기꺼이 부여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창간 40주년을 맞이해 꽃보다 아름다운 명장의 인생사를 담은 ‘대한민국 명장’ 시리즈를 시작한다. 대한민국 명장은 고용노동부가 고시한 38개 분야 92개 직종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이들 중에서 대통령 명의로 선정된 기능인을 말한다. 지금까지 699명이 대한민국 명장으로 선정됐다. <편집자주> 중대재해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이 2022년 2월 시행된 지 2년이 지났다. 산업현장에서 발생한 인명피해가 경영자의 책임으로 돌아오는 만큼, 경영계와 노동계 모두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안전보건 활동에 만전을 기울이고 있다.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의 갈 길은 멀다. 고용노동부(노동부)가 발표한 2023년 산업재해 현황 부가통계(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598명이다. 2022년 숨진 644명을 더하면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 1200여 명이 일터에서 사고로 숨졌다.산업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제로’(0)로 만들 수 없다. 다만 경영자와 근로자가 안전 관리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이 수치에 가까이 갈 수는 있다. 부산 강서구 KOC전기 본사에서 만난 김진현 산업안전 분야 명장은 중대재해로 이어질 ‘위험인자’를 줄여야 한다고 말한다. 김 명장은 “산업현장에 위험인자가 남아있다면 반드시 사고로 이어진다”며 “근로자의 안전의식이 높고, 안전 관리에 힘을 쏟아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 명장이 위험인자를 찾아내 ‘도려내기’를 안전 관리의 핵심으로 꼽는 이유다. 그는 “위험 요인을 그대로 둔다면 안전 관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없애고, 줄이고, 지키게 하고김 명장은 2013년 대한민국 명장이 됐다. 산업안전 분야의 두 번째 명장이다. 명장은 산업현장에서 최고 수준의 숙련 기술을 보유한 사람만 선정된다. 단순히 기술의 수준이 높아선 안 된다. 해당 분야에서만 15년 이상 경력을 쌓아야 한다. 해당 기술의 발전을 위해 강의·교육 등을 통해 후학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김 명장은 산업현장의 안전을 관리하기 위한 지침으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없애고, 줄이고, 지키게 하고”다. 김 명장은 “안전 관리의 첫째는 위험인자를 ‘없애기’고 둘째는 위험인자를 ‘줄이기’”라고 했다.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입해야 하는 단계는 근로자가 안전 수칙을 스스로 ‘지키게 하기’다.김 명장은 “안전 관리 담당자가 근로자에게 안전 수칙을 지켜야 한다고만 지적해선 안 된다”며 “근로자가 토로하는 현장의 문제를 해결해 작업 현장의 효율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안전 관리 담당자의 업무가 근로자의 작업 등에 도움이 돼야 이들이 안전 관리 담당자를 믿고 안전 관리 수칙을 준수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실제 김 명장은 국내 한 기업에 컨설팅을 제공하며 수년에 걸쳐 신뢰를 쌓는 과정을 거쳤다. 근로자가 스스로 안전모를 쓰고, 사고에 주의하며 작업에 몰입하도록 ‘의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김 명장은 “직원들이 안전모를 ‘쓰게’ 만드는 데만 8년이 걸린 곳도 있다”며 “근로자 스스로 안전 수칙을 지키도록 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라고 했다.김 명장이 근로자와의 신뢰를 쌓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복지 개선’이다. 그는 “모 기업에는 구내식당과 직원 숙소를 리모델링하는 등 복지부터 신경을 쓰라고 조언했다”며 “근로자들이 근무 환경 변화를 바라보며 자신이 더 청결하고, 안전하고, 효율적인 환경에서 일할 수 있다는 점을 알려주기 위해서”라고 말했다.다른 기업에서는 김 명장이 직접 작업 현장을 찾아 곳곳에 안내문을 붙이고 공정을 손봤다. 근로자가 물건을 들고 옮겨야 하는 불편함은 작은 구체(球體)가 여럿 달린 원판을 만들어 해결했다. 공장 바닥에도 지게차와 직원이 다니는 길을 구분하는 선을 그었다. 크레인이 가동될 때는 근로자가 위험을 감지할 수 있도록 알람이 울리도록 했다. 김 명장이 안전 관리 담당자가 현장실무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사고는 항상 현장에서 발생하지만 정작 현장실무 경험이 없는 안전 관리 담당자가 많다”며 “안전 관리 담당자가 근로자의 근무 환경과 방식을 모르니 사고가 나면 바로 조치하기보다 임시방편만 세워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김 명장은 안전 관리 담당 인력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고도 역설했다. 그는 “중대재해처벌법 이후 기업에서 안전 관리 담당자 채용이 의무화됐다”면서도 “중소기업이 전문 인력을 확보하기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기업의 상황을 잘 아는 안전 관리 인력을 정직원으로 채용·교육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꼬집었다.현행법상 직원이 50명 이상인 기업은 산업 안전 관리의 자격이 있는 인력을 채용해 안전 관리 업무를 전담하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중소기업에서 이를 실제 수행하기 어렵다. 정부는 이를 고려해 기업이 지정된 전문 기관에 안전 관리 업무를 위탁할 수 있도록 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안전 관리 인력의 위탁 체계로 제도를 준수하고, 비용도 줄일 수 있다.하지만 기업마다 상황·체계가 달라 해당 기업의 현장을 잘 아는 사람이 안전 관리 업무를 맡아야 한다고 김 명장은 지적했다. 그는 “안전 관리 분야 전문가가 컨설팅을 제공하는 제도가 있지만 (전문가라도) 특정 기업의 작업 특성과 환경, 조건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다”며 “전문가들이 기업에 제공하는 컨설팅의 기간과 횟수도 적어 효율도 낮은 편”이라고 꼬집었다.‘용접공’에서 ‘명장’으로특정 분야에서만 15년 이상의 경험을 쌓아야 하는 만큼 명장의 무게는 남다르다. 김 명장이 처음부터 산업안전 분야의 명장으로 성장하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니다. 4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는 용접공이었다. 용접 실력도 좋았다. 김 명장은 1986년 삼성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한 당시를 돌아보며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용접을 배웠다”며 “베테랑이었고, 지금도 (용접을) 잘 한다”고 했다.용접기를 잡던 손으로 산업현장 곳곳을 손보기 시작한 이유는 동료의 죽음 때문이다. 김 명장의 지척에서 일하던 동료가 작업 중 사고로 사망하면서다. 김 명장은 당시를 “다시 발생해서는 안 될 처참하고 불행한 사고”라고 표현했다. 그는 “조선업은 업무 환경 때문에 중대재해가 많이 발생하는 업종”이라며 “하지만 산업현장에서 안전 관리 체계는 전무했다”고 말했다.김 명장이 산업안전 분야에 뛰어든 이유도 자신과 동료를 사고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시작은 단순했다. 작업 현장에 치워지지 않은 도구를 정리하거나 추락이 염려되는 공간에 주의 문구를 잘 보이게 적어두는 식이다. 작업에 몰두하기보다 환경 관리에 힘을 쏟는 모습에 김 명장을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래도 그는 꿋꿋했다. 김 명장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피드백을 받았지만 평가를 낮게 받으면서도 안전 관리를 계속했다”라며 “다른 동료에게도 힘이 닿는 대로 안전 관리를 권한 결과 1~2년 뒤 부서의 사고 건수는 크게 줄었다”고 했다.김 명장이 성과 평가에 연연치 않고 안전 관리를 도맡은 기간만 2년이다. 부서의 사고 건수가 줄자 김 명장의 노력을 눈여겨보던 부서장이 김 명장을 불러 용접 대신 안전 관리에 집중하길 요청했다. 김 명장은 “동료의 건강과 생명을 챙기면서 월급도 받는다니 한번 해보자고 생각했다”고 술회했다.부서장의 요청으로 김 명장과 안전 관리를 담당하게 된 직원은 당시 1명. 김 명장은 여러 특허와 개발로 더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며 삼성중공업 내 안전 관리 담당자를 300여 명으로 늘렸다. 김 명장이 속한 라인에만 있던 안전 관리 직원은 삼성중공업의 여러 조직으로 투입됐다. 김 명장이 1993년 현장 라인 안전지역장을 맡은 이후의 일이다.현장서 특허 아이디어 얻어 김 명장이 낸 특허와 실용신안도는 현장의 목소리를 담은 결과물이다. 김 명장은 3건의 특허와 3건의 실용신안을 등록했다. 선박 블록 작업 장치와 이동식 발판 장치, 사다리 고정구, 고압 기둥을 설치할 때 쓰는 이동식 지그, 램 고정용 지그 등이다. 모두 김 명장이 삼성중공업에 재직할 당시 근로자의 애로사항을 듣고 직접 고안에 참여한 특허와 실용신안들이다.김 명장은 “고압 기둥 설치를 위한 이동식 지그는 700~800kg 정도인 고압 기둥을 근로자 6명이 세워야 하는 고강도 작업의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개발했다”며 “이 장비를 현장에 도입한 이후 작업자의 수는 6명에서 1명으로 줄었고 여러 기능을 넣어 작업자가 간단하게 작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작업의 효율도 높였다”고 했다.김 명장이 산업안전 분야에서 경험을 쌓은 지는 30년이 넘었다. 사실상 한국 조선업의 산업현장 내 안전 관리의 변천사를 모두 경험했다. 산업안전 관리의 수준은 1980년대와 비교하면 크게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 산업현장에서 안전 관리 활동이 잘 수행되고 있지 않다고 김 명장은 평가했다. 기업도 근로자도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실제 안전 관리를 위한 여러 수칙은 지키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김 명장은 “1980년대까지만 해도 안전 관리는 곧 사후관리였다”며 “이제는 기업과 근로자 모두 안전한 작업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전관리가 중요하다는 점을 잘 안다”고 했다. 다만 김 명장은 “문제는 현장에서 ‘액션’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정부가 법안 등을 통해 안전 관리 제도나 체계를 전파해도 현장에서 실천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선 근로자의 의식 변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김 명장은 말한다. 김 명장이 삼성중공업에서 신입사원을 대상으로 한 안전체험관을 만든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 명장은 “안전체험관 운영 전에는 사망사고의 80%가 입사한 지 반년도 안 된 신입사원”이라며 “신입사원을 작업장에 바로 내보내니 위험한 작업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이어 “신입사원만이라도 작업 현장과 유사한 환경에 노출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 위해 안전체험관을 만들기 시작했다”며 “안전체험관 운영 5년이 지났을 시점 입사 반년이 되지 않은 신입사원의 사망 등 중대재해는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웃었다.

2024.07.28 10:00

7분 소요
[단독] 연이은 산재 지적한 기아 노조...노동부, 현장 감독 추진

산업 일반

고용노동부가 기아 오토랜드(생산공장) 현장 감독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현장에서 연이은 사건·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지난달 기아 노동조합은 고용노동부에 특별 안전점검까지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본지 취재 결과 고용노동부는 기아 오토랜드에 대한 현장 관리·감독을 검토 중이다.최근 전국의 기아 오토랜드에서 산업재해가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가장 최근인 지난 9월 기아 오토랜드 광명에서는 차량 해제 작업 중이던 40대 노동자가 배터리 추락으로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지난 8월에는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했다. 현장에 출동한 소방당국의 진화 작업으로 사고 발생 약 2시간 만에 불이 꺼졌고, 이로 인한 인명 피해도 없었다. 다만 도장 설비가 불에 타면서 일부 라인의 가동이 중단됐다.이에 기아 노조는 지난 9월 22일 고용노동부 안양지청장에게 ‘중대재해 발생 사업장 특별 안전점검 요청’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기아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발송한 공문에서 “각 사업장 사업주가 산재예방 활동을 펼치고 있으나 대기업이라 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면서 “자동차 생산 제조업 사업장의 자동화·프레스·로봇·도장 등 전 공정에 대해 법적 안전기준을 제대로 준수하고 있는지 사업장 특별 안전점검을 해달라”고 요구했다.고용노동부 관계자는 기아 노조 측이 요구한 특별 안전점검에 대해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다”면서 “특별 감독은 아니지만 향후 감독 계획은 갖고 있다”고 말했다.업계에서는 고용노동부가 노조의 요청에 곧바로 응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특별 안전점검을 요청했다고 해서 관련 부서가 곧바로 움직임을 가져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다만 외부로부터 요청이 있었고, 최근 현장에서 사건·사고가 있었던 만큼 절차에 따라 수개월 뒤 통상적인 현장 점검 등에 나설 수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기아 측은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입장이다. 특히 안전 리더십, 교육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기아에 따르면 전 사업장은 매주 월요일 최준영 기아 대표(부사장) 주관으로 안전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의 로봇개 스팟(SPOT)은 현장을 순찰하며 화재 상황 탐지 등에 나서고 있다. 이외에도 지게차 등에 안전장비를 필수적으로 설치해 혹시나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예방하고 있다.기아 관계자는 “안전강화 교육, 경각심 부여 강화 방안 등을 통해 산업재해 예방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한편 산업재해는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홍석준 국민의힘 의원이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산업재해 재해자 수는 2014년 9만909명에서 지난해 13만348명으로 43.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산업재해로 사망자 수는 1850명에서 2223명으로 20.2% 늘었다. 근로자의 생명과 신체 보호를 위한 중대재해처벌법이 마련됐지만, 실효성 없는 대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023.10.10 15:32

2분 소요
CEO가 반드시 알아야 할 중대재해법 A to Z[스페셜리스트 뷰]

전문가 칼럼

‘스페셜리스트 뷰’(SPECIALIST VIEW)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경영자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제공하는 코너입니다. 첫 번째 필자인 임영섭 피플 미래일터연구원장은 고용노동부 산업안전과장 등을 지낸 ‘중대재해처벌법’전문가로 기업 경영자들이 꼭 알아야 할 중대재해법 관련 지식과 정보를 전달합니다. # 2022년 5월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요양병원 증축 공사 현장에서 자재를 옮기던 하도급 근로자가 5층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안전대가 설치되지 않은 고층에서 90kg이 넘는 철제 앵글을 옮기던 중 발생한 사고였다. 근로자의 추락 사고와 관련해서 안전대 부착이나 작업계획서 작성 등의 안전보건 규칙상 조치가 없었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지난 4월 6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온유파트너스 대표에게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사건에 대한 첫 판결로, 회사 대표에게 책임을 물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 2022년 3월 경남 함안군에 있는 한국제강 공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60대 근로자가 크레인에서 떨어진 1220kg 방열판에 다리가 깔려 사망했다. 한국제강 공장에서 설비보수를 담당했던 협력업체 근로자가 크레인을 운행하던 중 벌어진 사고다. 중량물 취급 작업에 필요한 작업계획서도 없는 상황에서 작업하면서 벌어졌다. 한국제강은 이미 2011년과 2021년 정부 안전 점검에서 안전조치 의무 위반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지난 4월 26일 창원지방법원 마산지원은 한국제강 대표이사인 B씨에게 산업안전보건법위반 및 업무상과실치사, 중대재해법위반 등으로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작업복을 입고 피고인석에 있던 한국제강 대표는 법정 구속됐다. # 2022년 3월 인천 중구 을왕동의 근린생활시설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청업체 소속 40대 중국인 노동자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중국인 노동자 A씨는 공사 현장 지하 1층에서 거푸집을 받치는 동바리(가설 지지대)의 높낮이를 조정하고 있었다. 이때 동바리가 쓰러지면서 그는 가슴을 맞았고, 그 충격으로 뒤로 넘어졌는데 적재된 철근 더미에 머리를 부딪치는 2차 사고가 발생했다. 그는 병원으로 이송됐지만 사망했다. 지난 6월 3일 인천지방법원은 시너지건설 C씨에게 경영책임자로서 재해예방에 필요한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이행에 관한 조치를 취하지 안았고, 이를 중대재해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이 세 개의 사건은 원청사인 건설사 대표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처벌받았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밖에도 우리는 사회적인 이슈가 된 사건·사고를 많이 겪었다. 현대중공업 아르곤 가스 질식 사망사고, 태안화력발전소 압사 사고,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 물류창고 건설현장 화재 사고 등 현장에선 끊임없이 사망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현장 사고 발생시 고위경영진 책임 물어야 한다는 의견 높아 하지만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벌어져도 현장의 안전 관계자만 처벌받고, 고위경영진은 처벌되는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원인을 제공한 해당 기업도 대부분 수백만 원의 벌금형에 그쳤다. ‘솜방망이 처벌’이자 ‘공정하지 않은 처벌’이라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러한 비판은 고위경영진에게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직접 부여하고 이를 위반하여 중대재해를 일으키면 강한 처벌을 하는 새로운 형태의 법 제정 요구를 불러왔다. 사업주나 법인 또는 공공기관 등이 운영하는 사업장 등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하는 중대산업재해의 경우 사업주와 경영책임자 및 법인 등에 책임을 물 수 있도록 요구한 것이다. 2021년 1월 26일 제정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 흔히 말하는 중대재해법 제정 배경이다. 이 법은 2022년 1월 27일부터 시행됐다. 중대재해법 제정 과정에서 여러 의견이 논의됐다. 가장 먼저 안전 안전조치에 대한 경영책임자의 관리 실패는 중대재해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안전법령 위반죄를 교통사고 유발죄나 형법상 과실치사죄와 같은 범주로 취급하는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는 의견이 거세게 나왔다. 현장에서 안전보건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면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관리 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이 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현장의 구체적인 안전보건 조치는 여전히 산업안전보건법의 적용을 받았다. 중대재해법을 제정해 그런 안전보건 조치들이 이뤄지도록 시스템을 갖추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또한 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발생했을 때 현장의 중하위직급 직원이 아닌 고위경영진이 위법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근원적인 책임이 있는 고위경영진에 대한 처벌이 그동안 이뤄지지 않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기업을 경영할 때 구조적이고 시스템적인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갖추게 강제하는 법의 필요성도 나왔다.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무조건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이 법에서 정하는 ‘안전보건 확보’ 조치하지 않았을 때 처벌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이 거셌다. 중대재해법 제정 과정에서 이런 목소리들이 나왔고, 이런 사회적 인식을 중대재해법에 담았다. 중대재해법과 시행령이 기업의 최고경영자(CEO)에게 부여하고 있는 의무는 모두 15가지다. 크게 보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 ▲재발 방지 대책 수립 ▲감독기관이 명하는 사항 이행 ▲안전보건법령이 정하는 의무 이행 ▲수급인에 대한 조치가 CEO의 의무다. 중대재해법의 핵심은 CEO가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해야 하는 의무가 있음을 명시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안전보건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종사자의 의견을 들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위기관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수급인의 안전보건 능력 평가 등의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고 못 박고 있다. CEO 안전보건 조치에 필요한 인력 및 시설 등 확보 의무안전보건에 관한 목표와 경영방침의 내용은 산업안전보건법 제14조가 정하는 대표이사의 안전보건계획을 참고할 수 있다. 안전보건에 관한 경영방침, 안전보건관리 조직의 구성・인원 및 역할, 안전보건 관련 예산 및 시설 현황 그리고 안전보건에 관한 전년도 활동 실적 및 다음 연도 활동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안전보건관리 인력은 산업안전보건법에서 규정하는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안전보건담당자 및 산업보건의 등 전문인력을 법에서 정하는 수 이상으로 배치해야 한다. 이들 전문인력의 수가 3명 이상인 경우 본사에 안전보건 전담 조직을 두어야 한다. 또한, 현장에서 작업자들을 지휘하는 입장에 있는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관리감독자 및 안전보건총괄책임자에게 안전보건 조치를 위한 권한과 예산을 줘서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한 여건을 확보해 줘야 한다. 또한 업무 수행에 대한 평가를 통해서 검증 의무를 경영책임자가 져야 한다. CEO는 안전보건 조치에 필요한 인력 및 시설 그리고 장비에 드는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현장에서 비용이 없어 기본적인 안전시설조차 설치하지 못하거나 비교 대상이 되는 타 사업장에 비해 예산이 턱없이 부족해 안전보건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면 ‘필요한’ 예산을 편성했다고 보기 어려운 것이다. 또한 CEO는 현장에서 위험성 평가가 제대로 시행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고 집행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건설 현장이나 공장 등 생산 현장마다 그 특성에 따라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점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업무처리 절차를 마련하고 이행 상황을 점검하는 것도 CEO의 역할로 정의하고 있다. 종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항이 있으면 개선 조치를 취하는 것도 CEO의 역할이다. ‘필요한지’ 여부의 판단 기준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개선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CEO는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위기관리 대책 마련을 위해서는 위험 요인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재해 발생 상황 보고 및 전파, 임시적 위험 요인 제거 및 근로자 대피 방안, 추가 피해방지 방안을 포함한 비상조치 계획 등이 포함된다. 이를 주기적으로 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 또한 CEO는 수급인 등의 안전보건 능력 평가, 안전 비용 및 수행 기간 보장 의무를 지고 있다. 평가 결과 안전보건 수준이 낮다면 계약을 체결하지 않아야 한다. 계약을 체결할 때 안전보건관리규정 제출, 작업절차 준수, 정기 안전보건교육 실시, 위기 대응훈련 참가 등에 대한 사항을 명시하는 것도 좋다. 이때 업종의 특성 등을 감안해 안전보건 확보에 지장이 없도록 충분한 비용과 생산기간을 보장하는 것도 CEO의 역할이다. 재해 재발 방지대책 수립도 CEO의 의무다. 재해가 발생했을 때 조사하고,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서 발생 원인을 파악한 후에는 동일한 재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종합적인 개선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같은 종류의 재해가 발생하면 CEO는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감독기관이 요구하는 사항을 이행하는 것도 CEO가 해야 할 일이다. 감독기관이 명령한 사항을 이행하지 않으면 그 자체로 관계 법령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미이행 사항이 원인이 되어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중대재해법에 따라 강력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안전보건법령이 정하는 의무이행을 점검하고 조치를 하는 것도 CEO의 의무에 속한다. 의무이행 여부에 대한 점검은 물론이고 이행하지 않은 사항이 있으면 필요한 인력 배치와 예산을 확보하도록 강제하고 있다. 중대재해법은 도급·용역·위탁 등 형식을 가리지 않고 근로자의 안전보건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무를명시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 여부가 의무의 관건이기 때문에 근로자와 계약을 맺을 때 권한 관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만약 실질적으로 지배・운영・관리한다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수급인 종사자에 대해서도 자기 종사자처럼 안전보건 확보 조치를 해야 한다. 2022년 현장 사고사망자 874명, 중대재해법 적용대상 229건에 달해2022년 현장에서 발생한 사고사망자는 874명이고 이 중 중대재해법 적용대상 사고는 229건이다. 고용노동부는 52건(22.7%)에 대해 수사를 마쳤고 이 중 24건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같은 해 11건을 기소하였다. 7월 현재까지 중대재해법 위반 사건에 대한 3건의 판결이 있었는데 모두 CEO의 유죄를 인정했다. 온유파트너스, 한국제강, 시너지건설 등의 사건에서 법원은 도급업체 CEO가 경영책임자 및 산업안전보건법상 안전보건총괄책임자에 해당한다고 봤다. 중대재해법상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했고, 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법상 구체적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수급업체 근로자가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판단했다. 중대재해법의 시행으로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와 도급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진 셈이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사업장 종사자들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반복되는 중대재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공통으로 판단했다. 재판부 판결문 통해 CEO의 의무 강하게 물어 판례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중대재해법과 법원의 판단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다.온유파트너스 사건의 경우 재판부는 대표가 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는 업무절차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이 해당 업무를 충실하게 수행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을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고 봤다. 또한 작업 중지 및 근로자 대피, 위험 요인 제거 등 중대재해 발생이나 급박한 위험에 대한 대응 조치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았다고 인정한 것이다. 안전보건확보 미조치가 사망사고 위험을 제거하지 못한 원인이 됐다고 본 것이다. 또한 현장의 안전보건 조치 위반과 경영책임자의 안전보건 확보 의무 위반 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했다. 안전대가 지급되지 않았고, 안전대 부착설비 미설치가 사고의 원인이 된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CEO가 위험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하지 않았고, 비상대응 매뉴얼을 마련하지 않아서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본 것이다. 한국제강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대해서도 법원은 온유파트너스 사건과 비슷하다고 판단했다. 현장에서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한 결과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판단한 것이다. 무엇보다 수년 동안 한국제강이 안전조치 의무를 위반한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된 것에 대해서 엄중하게 판결했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한국제강 사업장에서 수년간에 걸쳐 안전조치 의무 위반 사실이 여러 차례 적발되고 산업재해 사망사고까지 발생한 것은 위 사업장에 근로자 등 종사자의 안전권을 위협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음을 드러내는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대표이사는 종전에 발생한 산업재해 사망사고로 형사재판을 받는 와중에 2022. 1. 27. 중대재해법이 시행되었음에도 경영책임자로서 안전보건 확보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2022. 3. 16. 재차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하기에 이르렀다"고 실형 선고 이유를 설명했다. 동종전과와 안전조치의무 위반의 반복이 실형 선고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다. 시너지건설 사건에서도 법원은 CEO가 안전보건관리체계를 구축하고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했고, 이로 인해 근로자가 사망하게 됐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돌이킬 수 없는 중대한 결과가 발생해 죄책이 무겁다"며 "사업장 종사자들의 안전권을 확보하고 안전관리 시스템 미비로 반복되는 중대재해 사고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는 엄중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지금까지 나온 중대재해법 관련 판례는 향후 법원의 중대재해법 위반죄의 판단과 관련, 일정한 정도의 기준이나 방향타가 될 것이다. 기업에 최고보안책임자(CSO·Chief Security Officer)가 선임되어 있더라도 CEO가 중대재해법상 경영책임자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중대재해법의 입법목적과 제정 경위를 감안해 기존 산업안전보건법 위반보다 중한 형을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법원은 사고의 인과관계 입증에서 CEO의 인력 및 예산 확보 등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하지 않은 것 때문에 근로자가 사망하게 됐다는 단계적 논증 방식을 택했다. 즉, 위험성 평가·작업계획서 작성· 근로자 의견 청취·작업 중지 등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중대재해가 발생한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법원은 안전보건관리책임자 등에 대한 평가 기준, 도급 시 평가 기준, 중대재해 대비 매뉴얼 마련 등 중대재해법이 정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는 것이 사업장의 안전조치 미비의 근본 원인으로 판단했다. 비록 유족과의 합의 및 처벌불원 의사가 유리한 양형 인자로 작용하지만, 중대재해 사고가 발생한 전력이나 산업안전 범죄 전력이 있는 경우는 불리한 양형 인자로 작용했다는 것도 눈여겨봐야 할 것이다. 중대재해법은 산업안전보건법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포괄적인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여러 사정을 종합해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고 양형에서도 다양한 요인을 참작하게 된다. 3건의 판례를 분석하면 산업재해에 대해 사업주 및 도급인에게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법에서 규정하는 업무상 의무 중 일부만 이행해도 중대재해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법원은 판단하고 있다. 중대재해 발생 전력이 있거나 안전조치를 여러 번 위반한 것도 양형에서 크게 불리할 수 있다. 또한 안전전문가나 종사자가 재해 위험성을 지적한 사항을 고치지 않거나, 중대재해의 발생 원인으로 꼽히는 위법행위가 관행적으로 이뤄지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무거운 양형으로 처벌받게 된다. 안전난간을 설치하지 않거나 기본적인 안전조치를 하지 않는 경우나 이익 때문에 안전보건 조치를 소홀히 하면 처벌을 강하게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 나온 중대재해법 관련 3건의 판례에서 양형에 유리한 요인이 있다. ▲피해자 유족과의 원만한 합의 ▲잘못된 관행 등 근로자의 실수가 사고의 일부 원인으로 작용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 수립 ▲관계 당국의 시정명령 이행과 과태료 납부 ▲안전보건 확보 의무 일부 이행 등이다. CEO 선제적 대비 마련 필수중대재해가 발생하기 전 CEO가 선제적으로 하면 좋은 게 몇 가지 있다. 가장 먼저 안전보건경영시스템(OSHMS)의 인증을 획득하는 것이다. 이 인증을 획득했다고 해서 중대재해법을 준수한다는 것으로 간주하지는 않지만, CEO의 법 준수 노력을 보여줄 수 있다. 공정거래 자율준수(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것도 법 위반에 대한 사전 검증 기능과 함께 사후적으로 기업의 법 준수 의지를 보여주는 데 유리할 것이다. 안전조치 사항을 기록하고 유지하는 것과 만일 사고가 났을 때 현장을 보존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도 CEO가 지켜야 할 것으로 꼽힌다. 중대재해법이 시행되고, 판례가 나오면서 일부에서 “사고 나면 CEO가 감옥 간다”, “자의적 해석과 기소가 남발할 것이다”, “너무 추상적이어서 지킬 수 없다” 등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간의 수사 과정을 보면 일정 부분 사실이 아닌 것도 있고 이 법이 갖는 특성에 기인한 것도 있다. 법원이 판결을 통해 이 법의 법리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우려가 법 개정을 통해서 해소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대재해법이 정하는 의무는 상대적으로 포괄적이고 추상적이다. 산업안전보건법 규정이 객관식이라면 중대재해법 규정은 주관식 내지 논술식이라 할 수 있다. 안전난간을 매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난간을 맬 수 있도록 인력과 예산을 투입했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안전난간 외에도 위험성 평가 등을 통해 추락을 방지하기 위한 ‘적절한’ 조치했는지를 평가할 것이다.업종과 사업장의 특성을 감안하여 위험의 크기와 이를 통제하는 데 필요한 기술·비용·시간 등의 곤란함을 비교하고 그 결과에 따라 조치하는 노력을 다했음을 보여줘야 한다. 이러한 면에서 예산의 적절성 등에 대한 사법적인 판단도 금액의 절대적인 크기보다 적절한지 여부가 중요한 근거가 될 수 있다. 이제는 기업 CEO들이 막연한 우려에서 벗어나 이 법의 취지와 이 법이 정하는 의무 사항을 제대로 이해하고 이행해야 한다. 안전보건 관리체계를 구축하고 대비하면 산업재해를 예방할 수 있고 불가피하게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처벌받지 않게 될 것이다.

2023.09.1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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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적자 위기 사회...기초부터 새롭게 다져야 [임무송의 시사논평]

전문가 칼럼

‘신뢰’는 자유민주와 시장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사회적 자본이자 경제적 번영의 필요 조건이다. 일찍이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1995년 그의 대표작 ‘트러스트’에서 한 국가의 복지와 경쟁력은 그 사회의 신뢰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그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신뢰는 혈연· 지연·학연 등 개인적 연고를 초월해 사회적 범위에서 통용될 수 있는 ‘공적인 신뢰’를 의미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믿을 수 있을 때 활발한 경제행위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경제가 발전한다는 것이다. 일본과 달리, 저신뢰 국가로 분류한 ‘한국의 경제발전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라는 점에서는 논란의 소지가 있지만, 요즘 우리 사회 모습을 보면 그의 주장을 마냥 내치기도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유엔(UN)에 의해 선진국으로 인정된 것이 무색하게 곳곳에서 신뢰의 붕괴가 잇따른다. 최근에 벌어진 몇 가지 사태만 손꼽아봐도 아찔하다. 아파트 공사에서 철근을 빼먹고 축제에서는 한탕주의 바가지 씌우기가 반복되고 은행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수백억짜리 사고가 터진다. 이른바 ‘묻지마 폭력’이 전염병처럼 번지며 외국인 혐오증(제노포비아·Xenophobia)과 광장공포증이 현실화하고 있다. 이태원에 이은 오송 참사와 새만금 잼버리 파행, 그리고 예외 없이 이어지는 네 탓 공방은 온 국민에게 절망감을 안긴다. 중대재해처벌법에도 불구하고 일터에서는 죽음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특검의 몰락과 판사의 일탈로 다시 한번 확인된 사법부의 도덕성위기, 시민의 삶에 직결된 부동산, 일자리 등 국가통계 왜곡 혐의를 받는 정부의 일탈도 그 심각성에서 뒤지지 않는다. 한국, ‘공적인 신뢰’ 붕괴…“국가 시스템 혁신해야”미국의 홍보 컨설팅 기업 에델만이 매년 주요 국가의 여론주도층과 일반 대중에게 사회 주체들에 대한 신뢰도를 물어보는 ‘에델만 신뢰도 지표 조사’에서도 우리의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2023년 한국 기업의 신뢰도는 38, 정부의 신뢰도는 34로 모두 하위권이다. 인도네시아는 각각 83, 76으로 우리보다 훨씬 높고, 싱가포르는 기업(62)보다 정부(76)의 신뢰도가 높다. 우리나라 사회지도층 가운데 신뢰도가 가장 낮은 그룹은 2022년에는 언론인, 2023년에는 정부 지도자라니 뉴스도 정부 발표도 믿음을 잃었다. 사회적 불신이 커질수록 양극화도 심한데 한국은 영국·독일·일본 등과 함께 위험국가군에 속한다. 윤리성과 신뢰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정부가 아무리 좋은 정책을 선한 의도로 추진해도 국민이 불신하고, 국민이 믿지 않으면 정책은 실패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말하는 전형적인 ‘신뢰적자의 위기’ 모습이다. 최근에 “우리도 답 없다”는 현직 경찰관의 글이 언론에 보도되며 주목 받았다. 소신 행정을 뒷받침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호소에는 전적으로공감하지만, 자칫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것 같아 염려된다. 만인 대 만인의 투쟁으로 인한 공멸을 막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국가이고, 현대국가는 법치·민주·공화의 사회계약 위에 서 있다. 계약이 지켜진다는 믿음이 없으면 국가도, 경제도 존립할 수 없다. 우리 모두 K시리즈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고 사회적 신뢰의 기초부터 새롭게 다져야 한다. 부패의 카르텔을 혁파하기 위한 외부통제와 엄벌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현상보다 원인을 치유하고 내부통제 기제가 작동될 수 있도록 하는 근원적인 조치가 절실하다. 첫째,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국가의 시스템을 일대 혁신해야 한다. 흉악범죄자에 대한 확실한 처벌, 그리고 집시법 개정을 통해 집회와 시위 대처에 쏠린 치안 자원을 민생치안으로 돌릴 수 있도록 여야 정치권의 협력과 사회적 지지가 필요하다. 둘째, 직업윤리·공직윤리·기업윤리 등 윤리적인 ‘올곧음’을 확립해야 한다. “윤리적 정부는 공무원의 부적절한 행동을 억제하고, 부적절한 행동을 발견하며, 도덕적 분위기를 증진시키는 유리온실과 같은 개방된 정부이다”라는 발언처럼 올곧음이 요구되는 것은 언론·기업·노조도 마찬지다. 개혁 대상 1호는 정치라는데 이견이 없을 것이다. 공직자를 악의적 반복 민원으로부터 보호하고 법을 엄정하게 집행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장치도 필요하다. 최근 고용노동부에서 출범한 ‘특별민원 직원보호반’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 낼지 기대된다. 셋째, 도덕적 의무의 실천을 사회지도층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주요 주체들로부터 수많은 결의와 선언이 있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핵심은 언행일치이다. 공약(公約)이 헛약속(空約)이 되면 아니 되듯이, 실천이 따르지 않는 말의 성찬은 불신과 냉소만 키울 뿐이다. 아시타비(我是他非)가 습관화되면 서로 물어뜯다가 공멸에 이르게 된다. 넷째, 규제혁신과 민주적 책임정치이다. 현대적 의미의 직업윤리는 부패하지 않고 맡은 일을 하는 것을 넘어서, 창의성·적극성·유능함을 요구한다. 실상을 감추는 허위의식과 ‘우리끼리’ 문화, 시대변화와 동떨어진 규제는 무능과 부패의 온상이다. 노동, 안전 등 사회적 규제도 혁신의 예외가 될 수 없다. 권한과 책임은 함께 가야 한다. 가톨릭 미사 전례 중 자기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내 탓이오. 내 탓이오”하고 크게 뉘우치는시간이 있다.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큰일이 터져도 책임은커녕 반성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편을 갈라 남 탓만 해대니, 거대한 빙하가 깨지듯이 공동체가 밑바닥부터 갈라지고 부서진다. 신뢰공영(信賴共榮), 불신공멸(不信共滅)이다. 임금과 고관대작들은 도망가고 백성은 외적을 피해 각자도생해야만 했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신뢰자본 축적을 위해 시민은 각성하고, 정부를 비롯한 국가의 중추 조직은혁신하고 사회지도층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 사람 ‘인’(人) 자가 의미하듯이 우리는 서로를 믿고 기대어 사는 존재이다.

2023.09.03 16:00

4분 소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1년, 사고나면 ‘CEO’부터 수사

산업 일반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는 중대재해에 대한 수사기관의 판단을 토대로 기업들의 법 준수방안과 재해발생시 대응 방안을 담은 ‘중대산업재해 단계별 대응방안’보고서를 발간했다고 12일 밝혔다.보고서에는 ▶중대산업재해 현황 및 수사동향 ▶중대재해 예방 및 법 준수 단계에서의 대응 ▶중대재해 발생 시 대응 ▶중대재해 재발 방지 대책 ▶입법적 개선에 대한 제언 등을 담고 있다.대한상의 관계자는 “중대재해처벌법은 중대재해 예방을 통한 종사자의 생명과 신체의 보호를 목적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산업현장에서는 CEO에 대한 강력한 처벌을 위한 법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법 시행 후 1년이 지났는데도 법의 모호성으로 인해 막막하다는 기업들의 호소가 이어져 법무법인의 자문을 통해 대응 방안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법 시행 이후 발생한 중대산업재해는 211건, 이 가운데 현재 수사 중인 사건은 163건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위반으로 기소된 사건은 31건으로 집계됐다. 보고서는 안전보건최고책임자(CSO)가 있더라도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수사기관은 대표이사를 의무이행주체로 보고 적극 수사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다고 전했다. 또 수사과정에서 CSO를 내세우는 것에 대해 대표이사를 보호하려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있어 CSO를 세우는 경우 CSO가 실질적 권한 행사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수사기관들은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안전보건확보의무 이행여부를 따지는 경향을 보인다고도 했다. 위험성평가에서 지적된 사항을 개선하지 않았다가 사고가 난 경우에는 처벌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종사자가 위험성을 고지한 경우 이를 검토해 개선하고 대표이사에게 보고했는지도 법 위반을 판단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대한상의 관계자는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기본적으로 대표이사에 대한 수사와 처벌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며 “중대재해에 해당하지 않는 경미한 재해 등 중대재해의 전조증상이 나타나는 때에는 반드시 종사자 의견 청취와 현장 조사를 하고 개선하여 중대재해로 이어지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일호 대한상의 고용노동정책팀장은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상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다”며 “올해 안에 입법 보완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2023.01.12 12:05

2분 소요
삼성생명, '중대재해처벌법 대비' 산업재해보험 판매

보험

삼성생명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산업재해와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등에 대비할 수 있게 산업재해를 종합 보장하는 산업재해보장보험(무배당)을 21일부터 판매한다고 밝혔다. 산업재해보장보험은 올해 시행한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인해 늘어난 기업의 배상 책임을 대비할 수 있게 개발됐다. 이 상품은 단체보험으로 주보험에서 가입 근로자의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을 보장하며, 가입금액이 2000만원일 경우 재해로 인한 응급실 내원시 1회당 응급환자는 최대 5만원, 비응급환자는 최대 3만원의 진료비를 지급한다. 또한 이 상품은 ‘산업재해장해특약’ 가입 후 산업재해로 인해 장해 상태가 된 경우 1~14급까지의 장해등급에 따라 가입금액의 100%~10%까지 보험금이 지급된다. 한편 2017년 이후 산업재해로 인한 요양재해율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고 특히 91일 이상 요양자 비중이 58%를 넘어서는 점을 고려해 ‘산업재해요양특약’을 신규로 개발했다. 특약 가입금액이 2000만원일 경우 산업재해로 인해 4일 이상 계속 요양시 최초 3일을 제외한 요양일수 1일당 2만원(180일 한도)을 보장한다. 업계 최초로 91일 이상의 장기 요양에 대해서도 추가 보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종업원이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사업 환경을 형성하고 사업주의 리스크도 분산했다. 아울러 이 상품은 산업재해가 발생해도 만기까지 보험료 상승없이 정액의 보험금을 보장하며 가입근로자가 만기시점까지 생존시에 사업주에게 기납입보험료의 50%를 환급해줘 사업자의 부담을 덜어준다. 이 상품의 가입 나이는 만 15세부터 최대 75세까지이다. 보험기간은 5,7,10,15년 중 하나로 선택이 가능하며 5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회사가 가입할 수 있다. 김정훈 기자 jhoons@edaily.co.kr

2022.09.20 08:40

1분 소요
중대재해처벌법 완화 움직임에 국민의힘·노동계 충돌하나

정책이슈

정부의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개정 움직임에 노동계와 여당이 결국 첫 충돌했다. 국민의힘이 기업의 요구를 반영해 중대재해처벌법 수위를 낮추는 개정안을 추진하자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이 14일 반발하며 철회를 요구했다. 국민의힘이 개정을 밀어붙이면 노동계와의 갈등 파장은 더 확산될 전망이다. 새 정부의 노동계 출신 고용노동부장관이 ‘친(親) 기업’을 표방한 윤석열 대통령과 자신의 친정인 노동계 사이에서 어떻게 조율할지 대해서도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새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을 총괄할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정식 전 한국노총 사무처장을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대선 경쟁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월 윤 대통령의 경쟁자인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후보에 대해 공개 지지를 선언했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당선 후 지난 4월 한국노총을 찾아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동호 사무총장 등 한국노총 수뇌부와 만났다. 이어 윤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에 노동계 출신 인사를 앉힌 것이다.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안은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사업장에 작업환경 표준을 적용하고 예방 감지 관련 정보통신 시설을 설치하는 등의 조치를 취한 경우 처벌 형량을 줄여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함께 법무부 장관에게 중대재해 예방 기준 고시, 처벌 형량 감경 등을 맡기는 방안을 포함하고 있다. 개정안은 박대출 국민의힘 의원이 13일 발의하고 권성동·김상훈·박덕흠·이명수·이종성·이주환·정진석·조명희·지성호 의원이 공동 발의에 이름을 올렸다. 개정 배경에 대해 국민의힘 측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외면하자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자는 전제를 담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어 “사업주와 경영책임자가 법이 규정한 의무를 지켰을 때 그에 맞춰 처벌 수위를 조절하자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사업주·경영자가 충분한 조치를 취했는데도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형량을 감경 받아 억울한 피해를 받지 않게 하자는 의미다. 이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개악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측은 “사업주·경영자에 대한 처벌을 줄여주기 위한 행태”라고 비난했다. 한국노총도 14일 성명을 발표 “이번 법 개정 시도가 사용자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형을 감경·면제받을 수 있게끔 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의 핵심을 사문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개정안은) 윤석열 정부,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재계가 삼각편대를 이뤄 노동자의 목숨을 팔아 사용자 배를 불리겠다는 의도”라며 “정경 유착의 포문을 연 것”이라고 항의했다. 또한 “중대재해처벌법 개악 저지를 위해 강력히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에도 대기업 산업재해 여전 국민의힘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시동을 건 것은 윤석열 정부의 행보에 보조를 맞추기 위한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시절부터 중대재해처벌법을 반(反)기업 규제로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거듭 내비쳐왔다. 윤 대통령은 대선 토론 때 ‘(사업주·경영자) 구속 요건이 애매하다’, ‘형사 기소할 경우 여러 법적 문제에 걸릴 수 있다’, ‘기업인들의 경영의지를 위축시키는 메시지를 강하게 주는 법’이라고 언급했다. 즉, 처벌 여부를 판가름해야하는 법 기준부터 모호해 기업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고 지적한 것이다. 윤 후보는 대통령이 된 직후 ‘친(親) 재계’ 성향을 드러내며 기업에 적극 다가섰다. 그러자 재계는 윤 대통령과 만날 때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사업주·경영자를 옥죈다며 불안감을 호소하고 처벌 수위를 낮추는 법 개정을 계속 요구해왔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는데도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고 발생했다. 특히 대기업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연이어 발생했다. 법 시행 후 지금까지 발생한 주요 대형 사고로는 ▶1월 29일 삼표산업 양주 채석장 토사 붕괴로 근로자 3명 매몰 사망 ▶2월 8일 요진건설산업의 판교 제2테크노밸리 업무시설 공사장 작업자 2명 추락 사망 ▶2월 11일 여천NCC 열교환기 폭발로 근로자 4명 사망 4명 부상 ▶2월 14일 한솔페이퍼텍 고형 연료 운반작업 중 트럭 전복으로 근로자 1명 사망 ▶3월 2일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도금 공정 작업 중 대형 도금용기에 빠져 근로자 1명 사망 ▶3월 3일 LG디스플레이 P9 공장에서 고압 전선 시설 부스덕트 설치 중 LS전선 근로자 4명 감전사고 ▶3월 13일 DL이앤씨(옛 대림산업 건설·플랜트 사업부문)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A노선 5공구 공사 중 대형 전선드럼 이탈로 하청업체 근로자 1명 충격 사망 ▶4월 9일 코오롱글로벌의 대전 중구 주상복합 건설현장에서 콘크리트 타설 작업 중 바닥판 붕괴로 추락한 하청업체 근로자 4명 중경상 ▶5월 19일 에쓰오일 울산공장 폭발 사고로 10명 사상자 발생 등이 있다. 한편, 윤 정부와 국민의힘이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에 나서면서 고용노동부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노동계가 주목하고 있다. 또한 노동계를 끌어안겠다고 밝힌 윤 정부가 이번 법 개정에 어떤 반응을 내비칠 지에 대해서도 시선이 쏠리고 있다. 윤 대통령이 새 정부의 고용노동정책을 총괄할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정식 전 한국노총 사무처장을 임명하는 파격 인사를 단행했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대선 경쟁이 시작되기 전인 지난 2월 윤 대통령의 경쟁자인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후보에 대해 공개 지지를 선언했었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당선 후 지난 4월 한국노총을 찾아가 김동명 한국노총 위원장과 이동호 사무총장 등 한국노총 수뇌부와 만났다. 이어 윤 정부의 고용노동부 장관에 노동계 출신 인사를 앉힌 것이다. 문재인 정부 때 마련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사업주·경영자에게 최고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의 형사처벌을 내린다는 내용이다. 상시근로자가 50인 미만, 공사금액이 50억원 미만인 소규모 사업과 사업장엔 2024년부터 적용한다. 박정식 기자 tango@edaily.co.kr

2022.06.14 20:00

4분 소요
'밥솥 명가' 쿠쿠 직원 자살…'팀내 괴롭힘' 논란 일파만파

유통

가전제품 기업 쿠쿠가 직장 내 괴롭힘 논란에 휩싸였다. 지난 5일 쿠쿠홈시스(옛 쿠쿠전자) 중앙기술연구소에 근무하는 직원이 경기도 시흥시 사택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에 대해 동료 직원들이 '직장 내 괴롭힘에 의한 사건'이라고 주장하면서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쿠쿠 제보합니다. 고인이 된 동료직원의 억울함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제목의 글과 함께 사측을 비난하는 댓글이 잇따라 게재됐다. 8일 와 통화한 쿠쿠홈시스 제보자 A씨에 따르면 고인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까지 사내에서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해왔다. A씨는 “고인은 8년 간 함께 근무한 동료였다”며 “평소 상사로부터 모멸감을 느끼는 언행을 겪는 것을 많이 목격했다. 고인은 타 팀원 대비 과도한 업무 지적은 기본이고 말투까지 지적 받으면서 면박을 당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또 “특히 상사는 여러 팀원들이 있는 곳에서 큰 소리로 지적했다”며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고인을 괴롭히던 직원들은 아무일 없다는 듯이 출근하고 근무하는 모습을 보며 제보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제보자 B씨는 “고인은 온화한 성품으로 평소 후배들이 많이 따르던 선배였다”며 “개성공단 운영 당시에 자진해서 개성공단 근무를 수년간 할 정도로 희생정신이 있으셨던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B씨는 또 “영업지원팀, 해외영업팀, 상품개발팀 등 쿠쿠의 다양한 부서에서 일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신 분인데 최근에는 상사로부터 인신공격을 지속해서 심하게 당하면서 불면증을 비롯한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한다”고 전했다. ━ “사측이 알고도 방관”…중대재해처벌법에도 적용되는 ‘산재’ 제보자들이 한 목소리로 지적하는 부분은 ‘막을 수 있었던 일이었지만 사측에서 방관했다’는 것이다. 고인의 마지막 근무 팀의 괴롭힘은 지난 2020년부터 내부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팀이다. 제보자는 블라인드에서 쿠쿠 임직원만 볼 수 있는 회사라운지 글을 공개했다. 2년 전부터 ‘0000팀의 사람들이 불쌍하다’ ‘0000팀 사람들이 계속해서 우르르 나가는데 그 이유를 사장만 모른다’는 등 비난의 글이 여럿 올라왔다. 제보자 B씨는 “중학생 자녀가 있는 고인은 마지막까지 괴로워하며 근무했지만 회사에서는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며 “지금도 회사는 공식 입장을 발표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서로 감추려고만 하고 있어서 더욱 화가 났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쿠쿠전자의 이 사건이 지난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이 될 지 주목하고 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직장 내 괴롭힘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은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에 따라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근로기준법을 위반한 범죄다.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일어난 사고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상 산업재해로 인정받는다. 고용노동부 해설서에 따르면 ‘우울증과 직장 내 괴롭힘이 업무에 관계되는 유해, 위험요인이거나 작업이나 업무로 인해 발생한 경우라면 산재가 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 쿠쿠 측 “재발 방지방안 수립해 나갈 것”…직원소통 채널 확대 방침 쿠쿠 측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재발 방지방안을 함께 수립해 나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실질적인 직원 소통 채널을 신설 및 확대하고 외부 노사 전문가들의 의견수렴을 이어 나가겠다는 방침이다. 쿠쿠 관계자는 와 통화에서 “고인과 관련해 직장 내 괴롭힘 논란이 있는 걸 알고 있다”며 “지난 7일부터 내부적으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상황을 파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상황의 심각성을 엄중하게 여기고 있고, 정확한 파악을 위해 진상조사위원회에 내부 인력뿐 아니라 외부 전문인력까지 투입한 상황”이라며 “긴급회의를 거쳐 최대한 고인의 억울한 부분을 풀 것”이라고 밝혔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 예방 핫라인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라예진 기자 rayejin@joongang.co.kr

2022.02.08 1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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