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원화 스테이블코인 도입과 골든타임 [EDITOR’S LETTER]

[이코노미스트 권오용 기자] 2880억달러(402조원). 우리나라의 올 한 해 예산의 60%가량(673조원)에 해당하는 이 금액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장의 규모(추산치)입니다. 스테이블코인은 미국 달러화나 유로화, 또는 미국 국채 같은 실물 자산에 가치를 고정해 안정성을 높인 디지털화폐(코인)를 말하는데요, 테더와 서클이 대표적입니다. 테더(USDT)의 경우 다른 디지털화폐와 달리 가치가 시시때때로 오르락내리락하지 않고 언제나 ‘1테더=1달러’가 되도록 설계돼 있습니다.
스테이블코인은 이 같은 가격 안정성으로 기존 디지털화폐 시장에서 기축통화 역할을 하던 비트코인을 대체하는 거래단위로 사용될 수 있으며, 24시간 운영, 빠른 송금 속도, 저렴한 전송 비용 등의 장점도 갖고 있어 주류 코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더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을 ‘세계의 암호화폐(디지털화폐) 수도’로 만들겠다고 약속한 데 이어 지난 7월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지니어스 법’에 서명하면서 달러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런 흐름이 계속된다면 스테이블코인을 적극 활용해 달러 패권을 강화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구상으로만 그치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달러 스테이블코인’이 국제적 송금·결제 수단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면 전자 결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우리나라에서도 빠르게 자리 잡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데요, 통화 주권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화 기반의 스테이블코인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요,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습니다. 글로벌 안전자산인 달러를 기반으로 한 스테이블코인을 놔두고 누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쓰겠느냐는 것입니다. 또 다른 스테이블코인과 교환이 쉬워 달러 스테이블코인의 시장 우위를 강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발행사의 운용 실패나 외부 충격 시 대규모 상환 요구에 따른 코인런으로 금융시장이 불안해질 수 있다는 점과 외환 규제를 우회해 불법 자금세탁 용도로 쓰일 수 있다는 문제점 등도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반대하는 이유입니다.
반대 이유도 일리가 없지는 않지만, 유럽연합·싱가포르·일본 등 주요국들이 미국처럼 스테이블코인을 제도권으로 편입하기 위해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는 만큼 우리만 한가롭게 도입 찬반 논쟁을 벌이고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을 전제로 어떻게 할 것인지 치열하게 논의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하나씩 정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통화당국과 입법부가 ‘누가 발행 주체가 되어야 하나’, ‘비은행 민간기관의 발행 허용 범위를 어디까지 할 것인가’ 등 여러 쟁점에 대해 결론을 내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이에 원화 스테이블코인 발행의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어 걱정입니다.
어찌 보면 이런 혼란은 당연합니다.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디지털화폐 시대의 첫발을 내딛고 길을 내야 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과 부작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요, 그렇다고 뒷걸음칠 수 없습니다. 언젠가는 현실로 다가올 미래이기 때문입니다. 세밀하게 준비하되 적기를 놓치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당신이 좋아할 만한 기사
브랜드 미디어
브랜드 미디어
‘2차 가해 논란’ 최강욱, 민주당 교육연수원장 사퇴…“최소한 도리”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이데일리
李대통령, 박찬욱 감독 영화 두고 한 평가는…
대한민국 스포츠·연예의 살아있는 역사 일간스포츠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일간스포츠
'6조 투자' 美 당국 이민단속 나간 배터리 공장은 어떤곳
세상을 올바르게,세상을 따뜻하게이데일리
이데일리
이데일리
6년 만에 中서 완전 철수한 한화비전, 美법인 정리한 대교
성공 투자의 동반자마켓인
마켓인
마켓인
서보광 유빅스테라퓨틱스 대표 "BTK 분해제 글로벌 기술이전 도전"
바이오 성공 투자, 1%를 위한 길라잡이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
팜이데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