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점포는 줄어도 접점은 늘린다”…오프라인 오픈뱅킹과 ‘시니어 특화’의 진화
- [시니어 파이낸스] ②
“주거래 은행 아니어도 OK” 창구 한 곳에서 업무 본다
자산가 PB센터부터 IT 교육까지
[이코노미스트 이병희 기자] 대한민국 금융 시장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은행들의 서비스도 변화하고 있다. 디지털 서비스 확대와 동시에 시니어 고객 접점 확대로 서비스를 차별화하고 있는 것이다. 주요 은행들은 지난 5년간 점포 1000여곳을 정리하며 디지털 전환을 가속화했다. 이 때문에 디지털 기기 이용에 익숙하지 않은 노년층의 ‘디지털 소외’ 문제가 대두되자, 은행들은 오프라인 인프라를 ‘시니어 고객’을 위한 핵심 거점으로 재설계하고 있다.
‘내 손안의 은행’ 대신 ‘동네 은행’…오프라인 오픈뱅킹
2025년 11월, 금융위원회가 도입한 ‘오프라인 오픈뱅킹’은 시니어 금융 생활의 판도를 바꿨다는 평가다. 신분증 하나만 들고 가까운 은행 창구를 찾으면 해당 은행의 계좌가 아니더라도 본인의 모든 금융 자산을 통합 조회하고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점포 폐쇄로 불편을 겪던 지역 주민과 고령층에게 실질적인 ‘안전망’이 펼쳐진 것이다. 주거래 은행이 멀리 있더라도 집 근처에 있는 아무 은행 점포나 방문하면 업무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은행들이 온라인 서비스를 강화하면서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의 편의성만 높였다는 지적을 받았지만, 오프라인 오픈뱅킹 정책은 금융 서비스에 대한 ‘심리적·실질적 접근성’을 강화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시연회에서 “기술 발전의 성과를 모든 구성원이 함께 나누는 ‘포용적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점포 운영 방식에서도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은행은 오후 4시에 닫는다’는 공식이 시니어와 직장인 고객의 요구에 맞춰 유연하게 변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여의도와 강남 등 주요 거점 지점에서 ‘점심시간 집중 근무제’를 시행하며 대기 시간을 30% 이상 줄였다. 시니어 고객들이 자녀의 도움 없이 은행을 방문할 때 가장 곤혹스러워하는 긴 대기 시간을 해결하기 위한 조치다. KB국민은행은 영업시간을 오후 6시까지 연장한 ‘여섯시은행’을 82곳으로 확대했고, 신한은행은 화상 상담이 가능한 ‘디지털 라운지’를 81개로 늘려 오후 9시까지 운영하며 시간적 제약을 허물고 있다.
단순 입출금 업무는 고도화된 키오스크와 AI가 맡고, 영업점 직원은 상속·증여·연금 등 고령층에게 꼭 필요한 심층 상담에 집중하는 구조로 개편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은행 점포를 ‘업무 처리 공간’에서 ‘전문 자산관리 라운지’로 탈바꿈시키려는 전략적 선택으로 풀이된다.
최근 은행권의 오프라인 전략 중 눈에 띄는 대목은 ‘사회적 가치’와의 결합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서울 용산, 영등포, 경기 의정부 등 5개 지역에 ‘우리 어르신 IT 행복배움터’를 추가 개소했다. 이곳은 AI 스피커, 키오스크, 스마트 테이블 등 시니어들이 실생활에서 어려움을 겪는 디지털 기기를 직접 체험하고 익히는 ‘현장 중심 교육장’이다. 우리금융이 여주에 선보인 ‘굿윌브랜치’는 영업점 유휴 공간을 발달장애인 일자리 창출 공간인 ‘굿윌스토어’와 결합했다. 점포 폐쇄 예정지를 없애는 대신 규모를 최적화하고 지역 주민과 상생할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시니어들은 이곳에서 금융 상담을 받고 기부와 쇼핑을 즐기며 자연스럽게 지역 공동체의 일원으로 머물게 된다.
하나금융그룹 역시 사단법인 대한노인회와 손잡고 시니어 전용 금융 지원에 나섰다. 대한노인회 회원 전용 제휴카드를 출시하고, 연금 수급 계좌 지정 시 캐시백 혜택을 주는 등 시니어 고객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한 맞춤형 혜택을 강화하고 있다.
“50만부자를 잡아라” 시니어 유치 경쟁
은행들이 시니어에 공을 들이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고액 자산가 시장이 팽창하고 있기 때문이다. KB금융 경영연구소의 ‘2025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한 인구는 5년 만에 35만4000명에서 47만6000명으로 12만명가량 늘었다. 자연스럽게 이들의 자산을 관리해 주는 WM(자산관리) 사업도 은행권의 핵심 수익원으로 부상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실버타운인 ‘KB골든라이프케어 평창 카운티’ 내에 자문센터를 열었다. 세무 전문가가 상주하며 상속과 증여를 즉각 상담해 주는 시스템이다. 외국계인 SC제일은행은 강남 압구정에 대규모 PB센터를 신설하며 한국 자산가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NH농협은행은 조직을 개편해 WM 사업부를 고도화했다. 기존 WM사업부를 WM사업부와 투자상품부로 분리해 전문성을 강화한 것이다. 이처럼 은행들이 PB센터를 신설하고 조직을 개편하는 이유는 이자 이익 중심의 수익 구조에서 벗어나, 장기적으로 자산 관리 수수료라는 ‘비이자 수익’을 확보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시니어 고객의 자산은 곧 은행의 미래 생존과 직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시니어 파이낸스의 핵심은 단순히 ATM기기 화면의 글자를 키워주는 것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따뜻한 상담과 자산관리처럼 고객이 원하는 핵심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다”며 “시니어들이 ‘디지털에서 소외된 계층’이 아니라, 은행의 수익성과 공익성을 동시에 견인하는 핵심 고객으로 재평가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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