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경제
건물 복원한 삼성·재개발 막은 현대차…‘상하이 임정 청사’ 지킨 숨은 주역들
- 李대통령 7일 방문하는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이코노미스트 원태영 기자]이재명 대통령이 중국 국빈 방문의 마지막 공식 일정으로 7일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를 방문할 예정인 가운데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뻔했던 청사를 복원하고 한국의 ‘독립혼’을 보존한 삼성그룹과 현대자동차그룹의 민간외교가 주목받고 있다.
6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물산은 중국과 정식 수교(1992년 8월) 이전인 1990년부터 중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던 중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가 흔적마저 사라질 위기에 처한 것을 알고 복원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때 복원된 청사는 1926년 7월부터 임시정부가 항저우로 옮겨간 1932년 4월까지 약 6년간 임시정부의 심장부 역할을 했던 곳이다. 오랫동안 민가로 방치되면서 원형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각하게 훼손돼있었다.
삼성물산은 1990년 12월 '잘못 소개된 우리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자를 발간한 것을 계기로 문화사업 확대를 위해 사내에서 '이벤트 현상공모'를 실시했다.
당시 중국 상하이 출장에서 돌아온 유통본부 영업담당 이재청 부장이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복원 건'을 제안했고, 대상으로 선정된 해당 사업이 본사 경영회의를 통과하며 '숭산(嵩山) 프로젝트'로 명명됐다. 한국의 정통성을 드높이고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계승하자는 고취하자는 취지였다.
삼성물산은 당시 문화부, 독립기념관의 협조를 얻어 1991년 중국 상하이시 측과 복원합의서를 채택했다. 그 건물에 거주하고 있던 주민들에게 이주 비용을 지원하고 계단, 창틀 등 세세한 부분을 손질했다. 수소문 끝에 1920년대에 사용하던 탁자, 의자, 침대 등을 수집해 회의실, 부엌, 접견실, 집무실, 숙소 등을 임시정부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했다.
1993년 준공식에 김구 주석 아들·윤봉길 의사 손자 등 참석
1993년 4월13일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에 맞춰 진행된 준공식에는 김구 주석의 아들 김신 전 교통부 장관, 안중근 의사의 조카 안춘생 전 광복회장, 윤봉길 의사의 손자 윤주웅 씨, 최창규 독립기념관장, 삼성물산 신세길 사장 등 100여명이 참석했다.
윤주웅 씨는 당시 삼성물산에 보낸 감사 편지에서 "할아버지가 비감한 마음으로 수시로 드나들었을 임시정부 청사가 복원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설렘을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며 "참으로 다행히 이 건물이 이렇게 보존될 수 있게 노력해 준 삼성물산과 독립기념관, 우리 정부 관계자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삼성물산은 상하이 임정 청사 복원사업과 함께 중국 내 산재해 있는 한국 문화재 실태조사를 시행해 1400여건의 문화재를 발굴하고 이를 종합해 중국과 국내에서 관련 책자를 발간했다.
아울러 임시정부 청사가 상하이 도심 한복판에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재개발로 청사가 훼손되는 것을 막아낸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의 민간외교 활동이 있었다.
현대차 지속가능성 보고서 등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은 지난 2004년 5월 중국 상하이시 정부 청사에서 한쩡(韓正) 상하이 시장과 면담하고 상하이 임시정부 청사 보존을 위한 차원에서 청사가 있는 상하이 로만구 지역 재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상하이시는 2010년 엑스포를 앞두고 로만구 일대를 재개발하는 계획을 세웠다. 비교적 낙후된 청사 일대 약 4만6000㎡(1만4000평)를 쇼핑센터와 위락공간을 갖춘 상업지구로 탈바꿈하려는 프로젝트였다.
그러자 국내에서는 재개발 프로젝트를 외국 기업이 맡게 되면 임시정부 청사의 온전한 보존이 위협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고, 우리 정부도 상하이시에 청사 주소지인 '306롱(弄) 3∼5호와 318롱 전체'의 보존을 요청했다.
정몽구 명예회장, 2004년 상하이 시장 만나 재개발 유보 이끌어내
하지만 상하이시는 청사 부근만 재개발에서 제외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이에 상하이시와 경제협력 방안을 논의하던 현대차그룹의 정 명예회장이 상하이시 측에 직접 한국 기업이 사업을 담당할 수 있도록 협조를 촉구했다.
정 명예회장은 "첨단의 미래와 옛 황금기 중국의 모습이 공존하는 국제도시 상하이의 임시정부 청사는 한국의 독립혼과 정통성의 상징으로 대한민국 국민에게 그 의미가 남다른 장소"라며 "청사에 대한 한국 정부와 국민의 지대한 관심을 감안해 한국이 재개발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지원을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후 한쩡 시장과 이창동 당시 문화부 장관의 면담이 성사됐고, 결국 상하이시가 추진하던 재개발 프로젝트가 유보되면서 임시정부 청사는 온전한 모습으로 보존될 수 있었다.
신현택 당시 문화부 기획관리실장은 언론 인터뷰에서 "국제 공개입찰을 실시하고서도 계획 자체를 전면 보류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중국 정부에서 이 일을 중대하게 봤기 때문"이라며 "(청사 보존에) 민관이 혼연일체로 협력해 범국가적인 과업으로 추진했는데, 이런 우리 측의 노력이 중국 정부에 충분히 전달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현대차그룹은 이후에도 독립에 헌신한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기리기 위해 다양한 독립유공자 보훈 사업을 진행해 왔다.
지난해 8월에는 국가보훈부와 '국가보훈 사업 활성화를 위한 업무협약'을 맺고 독립운동 사료 전산화와 유해 봉환식 의전차량 지원 및 국립현충원 셔틀버스 기증 등을 통해 독립유공자 보훈 사업에 힘을 보탰다. 유해 운구 차량 및 유가족 이동에는 제네시스 G90 등을 의전차량으로 제공했다.
올해부터는 전 세계 독립운동 사적지 보존에도 본격적으로 나선다. 해외 독립운동 사적지 현황을 파악하고 개보수가 필요한 사적지에 대해서는 필요할 경우 정부 협의를 통해 보존 작업을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앞으로도 인적·물적 자원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국가보훈부와 보훈 활동에 적극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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