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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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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동거 1500만 시대…같이 살 집 구하기도 힘들어

부동산 일반

#최근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에서 나와 독립을 준비하던 윤모(32) 씨는 뜻밖의 난관에 부딪혔다. 전세를 알아보기 위해 부동산에 들렀다가 반려견이 있다고 하자 대부분 중개인이 계약이 어려울 것 같다는 답변을 내놨기 때문이다. 윤 씨는 “어릴 때부터 같이 산 반려견이고, 부모님도 연세가 있으셔서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10군데 중 7곳을 거절당하고 나니 독립을 포기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 반려동물 시장 확대 집주인·입주민 갈등도 늘어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고, 반려동물을 가족처럼 키우는 사람들이 늘었지만 여전히 내 집이 아닌 경우에는 동거가 어렵다. 2020년 기준 국내 반려동물 가구 수는 604만, 약 1500만명이 반려동물과 살고 있다. 지역별로는 서울에만 약 131만 마리, 경기와 인천에서는 약 208만 마리가 동거하고 있다. 그러나 임대차 계약 시 집주인은 냄새가 나고 집이 망가진다며 반려동물을 키우는 세입자를 거부하고, 세입자는 반려동물을 숨기거나 입주가 가능한 집을 찾아다니는 일이 계속된다. 지난해 KB금융그룹이 발간한 ‘한국 반려동물 보고서’에 따르면 반려 가구가 반려동물을 기르면서 타인과 분쟁을 한 경우는 56.9%로 절반이 넘었다. 분쟁 원인으로는 짖거나 걷는 소리와 같은 소음으로 인한 경우가 30%로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집 자체의 훼손 위험뿐 아니라 다른 입주민들과의 갈등도 임대인들이 반려인의 입주를 꺼리는 이유다. 서울대입구역에서 부동산 중개업을 하는 이모씨는 “반려묘는 대부분 소음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반려견보다는 계약이 수월한 편”이라고 설명했다. ━ 임대차계약 외 특약사항 걸어도 분쟁 소지 높아 “요즘 세입자 찾기도 어려운데 반려동물 키우는 사람이라도 받을까요? 보러 오는 사람이 많지 않아 고민이네요.” 부동산 관련 정보를 나누는 카페에 심심치 않게 올라오는 질문이다. 원래는 마루가 상하거나 냄새가 밸까 봐 반려견이 있는 세입자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역전세난이 심해지면서 관련 고민을 하는 임대인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댓글의 대다수는 “매매를 생각하면 받지 않는 것이 낫다” 혹은 “특약을 걸어서 키우게 해라”는 의견이다. 임대차 계약 시 임대인에게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실을 고지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에 추후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는 사실이 밝혀져 계약서에는 없었으나 퇴거를 고지할 경우 임대인과 임차인 사이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부지기수다. 임대차계약에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임차대상이 되는 목적물, 보증금과 월세, 계약 기간 등을 제외하고 쌍방의 합의 하에 특약사항을 넣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특약사항은 법률에서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또한 향후 분쟁의 소지가 일어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배포한 ‘임대주택 수선비 부담 및 원상복구 기준’에 따르면, 노후화나 자연재해에 의한 파손·훼손 등은 임대인이 부담한다. 임차인의 과실 혹은 비정상적인 사용으로 인한 파손·훼손은 임차인이 부담한다. 도배·장판의 경우 “애완동물에 의한 도배·장판 훼손”은 임차인의 부담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러나 일부 훼손으로 장판 전체나 벽지 전체 교체를 요구하거나 자연적인 마모도 반려동물로 인한 파손으로 복구를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해 허점이 존재한다. ━ 펫팸족 겨냥한 특화 주거공간도 증가 추세 한편 반려동물과 함께 거주할 수 있는 주거상품도 다양하게 출시되고 있다. 사회적으로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이 늘어 ‘펫코노미’ 시장이 커지는 것을 의식한 결과다. 서울 서초구의 한 공유 주거시설은 전체 378가구 가운데 98가구가 반려동물 특화공간으로 구성됐다. 해당 가구에는 발톱으로 인한 긁힘을 최소화하는 내구성이 강한 마감재를 사용하고, 미끄럼 방지를 위한 논슬립 바닥재를 적용하는 등 ‘펫 프랜들리’ (반려동물 편의를 반영한 설계) 트렌드를 반영했다. 지난해 분양한 천안의 한 아파트 역시 펫팸족(반려동물을 가족처럼 여기는 사람들)을 겨냥한 반려동물 놀이터와 루프탑 애견공원을 조성해 눈길을 끌었다.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서 중개업을 하는 김모씨는 “반려동물이 있으면 매물을 구하기가 까다로운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데도 “하루에도 반려동물이 있는데 입주가 가능한지 묻는 고객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임대인이 특약사항을 걸어주면 그나마 좋은 상황인 편”이라고 덧붙였다. 그만큼 반려동물을 동반한 세입자는 처음부터 받지 않는 곳들이 더 많다는 것이다. 임대인과의 갈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꼼꼼하게 원상복구 기준을 합의하고, 퇴거 후 특수 청소 비용 등에 대해서도 미리 정해두는 것이 현명하다”고 조언했다. 송재민 기자 (song@edaily.co.kr)

2022.10.13 18:00

3분 소요
[오대열 리얼 포커스] 주거공간, 애완동물에 맞춤 변화 중

부동산 일반

개나 고양이 등이 ‘반려동물’이 되면서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구가 큰 폭으로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밀집도가 높은 도심에서 주거공간과 생활환경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치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KB금융그룹이 발표한 2021 한국반려동물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애완동물을 기르는 가구는 604만 가구로 전체 가구의 29.7%를 차지하고, 1448만명이 애완동물을 양육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가운데 개를 기르는 가구가 80.7%, 고양이를 기르는 가구가 25.7%로 나타났다. 공원이나 길거리를 돌아다녀보면, 애완동물과 함께 산책하는 사람들을 이젠 흔하게 볼 수 있다. 애완동물을 기르는 사람들이 늘어남에 따라 애완동물과 관련된 산업도 급격하게 성장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산업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국내 애완동물 관련 시장 규모는 2015년 1조8000억원이었지만, 지난해에는 5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했으며 올해는 6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애완동물 관련 용품, 펫 케어 서비스, 펫 전용 공간 등 여러 분야에서 애완동물 관련한 상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이러한 애완동물 산업의 급성장은 애완동물과 함께 사는 사람들의 주거 공간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 집주인, 집 망가트리는 걱정에 애완동물 세입자 거부 애완동물을 인생의 반려자로 여기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관련 수요와 시장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반려동물로 인해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갈등도 역시 늘고 있다. 최근 집주인들이 애완동물이 집을 망가트린다는 걱정에 세입자를 들일 때 애완동물을 기르지 않는 세입자만 찾는 사례가 늘고 있는 추세다. 심지어 전세계약서 특약에 ‘반려동물 금지’를 명시하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세입자가 반려동물을 키울 수 없다는 특약을 무시하고 키우다가 집주인에게 발각되면 임대차 계약에 따라 계약 해지의 사유가 될 수 있다. 게다가 반려동물에 의해 손상된 집의 수리도 책임져야할 수 있다. 이런 이유들로 반려동물을 기르는 세입자들은 갈 곳이 점점 없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애완동물 갈등은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문제만은 아니다. 여러 가구들이 거주하는 공동주택에서는 애완동물의 냄새와 소음으로 이웃간에 불화가 생겨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택 중 아파트·연립·다세대주택처럼 여러 가구가 모여 거주하는 공동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한다. 이처럼 많은 가구가 거주하는 만큼, 애완동물로 인해 생기는 갈등과 피해도 수없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사람들이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애완동물로 인한 소음문제가 잦아지고 있다. 직장에 출근하는 대신 집에서 업무를 보는 재택근무 직장인이나 교실이 아닌 집에서 공부하는 학생 등이 이웃의 반려견이 짖는 소리 때문에 불편을 겪고 있다. 심지어 밤이나 새벽에도 강아지가 짖어서 생활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을 정도다. 서울시의 반려동물 관련 민원 건수는 1년에 4만여 건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이 조사도 2017년 현황이라 현재는 이보다 훨씬 늘어났을 것으로 추산된다. 애완동물 가구의 증가로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주택 시장에서도 이를 겨냥해 반려동물 관련 특화설계와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최근 주택 분양 단지에 '펫 파크', '펫 그라운드', '펫 케어 서비스' 등을 적용한 시설들을 함께 선보이며 차별화에 나섰고, 이를 토대로 인기를 끌고 있다. ━ 애완동물로 인한 이웃간 갈등 급증, 법은 저 멀리 반려동물 관련 소음은 아파트 층간 소음과 다른 점이 있다. 일반적인 층간소음의 경우 발소리가 주 원인이라 관리사무소를 통해 이야기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반려동물의 경우 통제하기가 어렵다. 아랫집과 윗집 사이에서는 강아지 때문에 잠을 잘 수 없다고 말하고, 반려동물을 기르는 이웃은 “내 자식을 버리란 말이냐”며 설전이 오간 사례를 종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볼 수 있다. 이 같은 문제는 동물 유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동물을 기르고 싶어 집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는데 동물의 소음이나 냄새 등의 문제로 이웃과의 관계가 악화되자 어쩔 수 없이 내버리는 경우가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애완동물로 인해 갈등이 커지고 있지만, 공동주택 내 애완동물 사육에 대해선 법적으로도 제재가 할 수 없는 상황이다.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 제19조(관리규약의 준칙) 2항에서는 ‘입주자 등은 가축(장애인 보조견 제외)을 사육하려면 관리주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를 강제할만한 법률적인 제재는 없다. ━ 반려동물 가구를 위한 신 주거 상품 호응 시세도 호조 애완동물 가구의 증가로 다양한 문제들이 불거지면서 주택 시장에서도 이를 겨냥해 반려동물 관련 특화설계와 서비스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건설사들은 최근 주택 분양 단지에 '펫 파크', '펫 그라운드', '펫 케어 서비스' 등을 적용한 시설들을 함께 선보이며 차별화에 나섰고, 이를 토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반려동물 관련 시설이 적용된 단지는 가격적으로도 강세를 보이고 있다. 반려동물 놀이터 '포레나 펫 파크'를 공개하며 화제를 모았던 한화건설 포레나 천안두정의 전용면적 84㎡ 분양권은 지난 3월 4억7090만원에 거래돼 전년 같은달 거래가(3억4880만원)보다 1억원 가량 상승했다. 이렇듯 반려동물과 함께 거주하는 가구가 증가할수록 반려동물 가구를 겨냥한 특화 상품을 갖춘 주거 상품이 앞으로 더욱 각광받을 전망이다. ※ 필자는 데이터를 기반으로 각종 부동산 통계를 분석, 제공하는 큐레이션 서비스 ‘경제만랩’의 리서치 팀장이다.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졸업 후, 언론사에서 취재기자로 활동하다가 경제만랩 리서치팀에 합류해 부동산시장의 변화를 분석하고 있다.

2021.05.03 06:00

4분 소요
[코로나19가 바꾼 소비동선과 상권] 강·산 옆에 가든식당 내면 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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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인구와 소비동선의 변화… 대면·접촉 피해 쾌적한 환경 찾아 이동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부동산 상권 지형에 일부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어 상권 변화는 지역·입지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전망이다. 생활 안정과 경제 회복을 위해 지급한 긴급재난지원금도 도심의 상권 변화를 부추길 것으로 보인다.최근 상권 변화를 일으키는 주 원인은 유동인구와 소비동선의 변화다. 코로나19 발발로 떠오른 쟁점들이 일상으로 파고들고 있어서다. 비대면, 비접촉, 자가격리, 원격, 거리두기, 개인 공간·차량, 자연환경, 재택근무, 추적시스템, 마스크, 확진동선, 온라인쇼핑, 레저 등의 키워드들이 소비동선을 바꾸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다.날이 더워지면서 인천 용유도는 주말마다 북적거린다. 해변은 인파로 피서철을 방불케 한다. 지척에 해변을 두고도 진입로가 북새통을 이뤄 접근하기 어렵고,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어 해변 간이도로까지 차량이 넘쳐난다. 마시안해변 도로엔 음식점을 드나드는 차량 행렬로 통행하기 어렵다. 점심시간 음식점들은 대기표를 받고 30여분을 기다려야 겨우 자리가 날 정도다. 음식점·커피숍 주인들은 “코로나 때문에 매출이 2월엔 바닥을 맴돌았는데 점차 회복하더니 5월엔 지난해를 웃돈다”며 “가족 단위 방문객이 늘어난 것도 한 몫 한다”고 입을 모은다. 코로나19 사태 발발 후 수도권과 대도시에선 ‘도심 탈출’이 두드러졌다. 이 현상은 휴일에 더 강하게 나타난다. ━ 근교 자연으로 이동, 인접상권 수요 증가 한국도로공사가 군자·동서울·서울·서서울 등 서울 외곽의 고속도로 영업소 4곳의 차량통행량을 조사한 결과 ‘대구 슈퍼전파’, ‘사망자 첫 발생’ 등 코로나가 빠르게 확산하던 2월말~3월초엔 통행량이 90만대 수준이었다. 이후 사태가 다소 진정되면서 3월말~4월초엔 100만대를 넘어 4월 중순엔 약 112만대까지 늘었다. 황금연휴로 나들이객이 급증한 5월엔 통행량이 더욱 급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대도시 인근 국립공원에도 코로나 사태 후 탐방객 수가 급증했다. 국립공원공단 집계 결과, 2월 23일~4월 19일 동안 북한산에는 123만7775명이, 계룡산엔 35만9410명이 찾았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각각 44%(37만9311명), 47%(11만5349명)나 늘어난 규모다. 서울교통공사 집계 결과 지하철 3호선 연신내역의 승·하차 인원은 1월 235만3684명에서 2월 198만2636명, 3월 170만1207명, 4월 180만8020명으로 ‘V’자 추세로 회복하고 있다. 3호선은 서울 강남·강북과 고양지역 주요 도심을 지나는 노선으로, 연신내역이 북한산 입구와 가까워 등산객이 많이 이용한다.북한산·계룡산 등은 다른 산과 달리 도심에서 가깝고 접근하기 편리한 도시형 국립공원이다. 서울·경기도나 대전·공주 주민이면 개인차량을 이용해 당일치기로 즐길 수 있어, 코로나를 피해 도시를 탈출한 레저인구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이 덕에 서울 도봉구 도봉동·쌍문동, 강북구 수유동, 은평구 갈현동·불광동 등 재래시장과 음식점들이 몰려있는 북한산 인접 상권은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매출 올리기에 선방하고 있다. 은평구는 도심 배후주거지여서 정주인구가 많은 점도 매출을 뒷받침해준다. 연신내 역세권의 한 분식가게는 “등산객이 늘면서 간식거리와 식사 수요가 지난해 이맘때보다 1.5배 정도 증가했다”며 “코로나 때문에 집에 머무르는 사람이 늘면서 동네 배달주문도 늘었다”고 말했다.주요 상권이자 유명 관광지인 명동·이태원·종로·홍대 상권은 코로나 직격탄을 맞았다. 높은 임대료와 경기 저성장도 코로나 피해를 부추겼다. 반면 주택가 골목상권이나, 교외지역, 자연과 인접한 변두리 상권 등은 활기를 되찾는 분위기다.국토연구원이 코로나 확진자 발생 전·후로 대전(2월 21일 첫 확진자 발생)의 도시 유동인구 변화를 측정했다. KT 유동인구 데이터를 활용해 ▷2019년 2월 대비 2020년 2월 주말 유동인구 변화 ▷2020년 2월 대비 3월 유동인구 변화의 지역별 증감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유동인구가 도심 속 공원에서 교외로 이동하고, 도시 근교 외곽지역에서 움직임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올해 2월 주말 유동인구의 대부분은 유림공원, 갑천변, 남간정사, 보문산, 화폐박물관 등 주로 도심 자연공원에 몰렸다. 한 달 후 3월 유동인구는 금강변, 대청호, 우암사적·세천공원, 만인산, 산서체육공원, 도솔산, 구봉산, 장태산, 계룡산 수통골, 금병산, 동화울 수변공원 등에서 급증했다. 이 지역들은 자연환경이 우거진 도시 외곽이다. 3월엔 대전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던 때였다. ━ 오프라인 매장은 방문횟수 줄고 한번에 대량구매 늘어 유동인구가 도시 외곽으로 이동하자 ‘가든식당’으로 불리는 전원형 음식점들과 근교 유원지 매장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장요한 국토연구원 국토지식센터 국토빅데이터팀장은 “3월 유동인구의 변화 모습을 보면 대청호를 둘러볼 수 있는 드라이브 코스를 중심으로 몰렸으며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두드러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에 대해 “비접촉 비대면을 유지하면서 동시에 자연을 즐기려는 욕구를 드러내고 있다”며 “코로나19 사태 장기화와 사회적 거리두기의 답답함이 동선에서 읽힌다”고 설명했다.통계청과 SK텔레콤이 모바일 빅데이터를 활용해 코로나19 발생 직후인 2월부터 5월까지 전국 SKT 가입자를 대상으로 국내 유동인구 동선을 추적했다. 분석결과 코로나19로 급감했던 인구이동량은 3월초부터 점차 증가해 5월 들어 전년 대비 약 83% 수준으로 회복했다. 시설유형별로 유동인구의 이동 양상을 살펴보면 5월 들어 관광지와 레저스포츠 쪽에선 급증했다. 상업지역, 대형 아울렛, 사무지역, 주거지역에선 이동량이 둔화되거나 감소했다. 사람간 접촉 가능성이 높은 곳은 피하고 쾌적한 환경을 찾으려는 심리가 강해졌음을 엿볼 수 있다.국토연구원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심리의 변화로 노래방·피트니스센터·영화·공연·숙박 등 다중집합·대면서비스 관련 업종의 매출 타격이 크고, 이들이 밀집한 도심 상권에 변화가 많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같은 도심이라도 골프연습장·동물병원·성형외과·슈퍼마켓·약국·애견숍·인테리어숍·정육점 등은 올해 1분기 매출이 지난해보다 증가했거나 향후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코로나19가 맹위를 떨쳤던 올해 1분기 신용카드 매출을 통해 소비행태의 변화를 추적했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해보니 유통 분야에선 코로나19 사태로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 올해 1분기 쇼핑 매출은 지난해 대비 온라인에선 인터넷쇼핑(41%)·홈쇼핑(19%)이, 오프라인에선 슈퍼마켓(12%)·편의점(6%)이 각각 급증했다. 반면 면세점(-52%)·아울렛(-31%)·가전제품전문매장(-29%)·백화점(-23%)·대형마트(-17%)은 급감했다.특이한 점은 오프라인 매장 이용시 구매행태의 변화다. 지난해보다 이용건수는 줄었으나 건당 이용금액은 늘었다. 비대면 쇼핑을 위해 매장 방문횟수는 줄이고, 한 번에 많이 사두려는 대량구매 심리가 강해진 것이다. 이와 함께 집과 가까운 골목상권 이용률도 늘어났다. 집과 집주변에 머무르면서 소비동선이 집과 가까운 도보권 거리 안에서 움직였기 때문이다. 국산 신차(-23%)나 중고차(-22%)의 소비는 줄었으나 자전거(45%) 소비가 크게 증가한데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식료품 소비에도 변화가 크다. 정육점·축산물(15%), 농협식품전문점(10%), 농산물·청과물(5%)의 올해 1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증가했다. 이는 외식을 줄이고 집에서 요리를 해먹는 일명 ‘홈쿡’으로 소비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유흥·사치재 분야에서 노래방(-26%)·단란주점(-21%)·안마시술소(-22%)·귀금속(-16%) 업종은 모두 매출이 하락했는데, 주류전문점(15%)만 증가한 점도 술을 집에서 마시려는 홈쿡 트렌드의 하나로 엿보인다.의료 분야에선 요양복지시설(-27%)·산후조리원(-20%)·일반병원(-10%)·대학병원(-8%)·한의원(-16%) 등 대면접촉이 불가피한 의료 업종 대부분의 매출이 감소했다. 하지만 안과(10%)·성형외과(4%)·수의과동물병원(9%)은 증가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늘면서 눈과 성형, 애완동물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레저·문화에선 영화관·공연장·테마파크·사우나·찜질방·헬스클럽·당구장은 매출이 떨어졌다. 하지만 골프장은 나 홀로 승승장구했다. 이상혁 더케이컨설팅그룹 상업용부동산센터장은 “코로나 사태가 길어지면 도심에선 소비성향이 강한 기업 업무지구로 상권수요가 기울 수 있다”며 “그러나 근로시간 단축, 재택근무 등이 확대되면 유흥문화가 줄어 저녁 매출이 감소할 수 있다”고 말했다. ━ 기존 고밀도·압축형 도시개발 정책과 마찰 우려 다만, 유동인구 동선과 상권 지형의 변화는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될수록 기존의 도시관리 정책과 갈등을 빚을 우려가 커진다. 예를 들어 사람간 교류를 촉진하는 공간 조성, 고밀도 압축 위주의 도시 개발, 불특정 다수가 몰리는 대중교통과 공공·공유시설 설치 확대에 대해 재논의가 불가피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김동근 국토연구원 도시연구본부 연구위원은 “당연시 여겼던 가로활성화, 관광도시, 압축개발 등의 도시개발 정책이 사회적 거리두기 같은 코로나19 대응책들에 밀려 표류하거나 제동이 걸릴 수 있다”며 “일례로 대중교통 이용률이 줄어 대중교통 수익률이 떨어지면 공공의 부담이 커지고 역세권 개발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0.06.06 15:40

6분 소요
[조원경의 ‘IF’ㅣ부자를 꿈꾸는 당신에게(17) 아이를 기부천사로 키우려면] 기부는 새로운 기회를 창출한다

전문가 칼럼

인생 굴곡 겪은 엔젤리나 졸리 기부와 나눔… 스스로의 힘으로 자산 모으고 기부하게 하는 유대인들 해마다 방송되는 MBC 이란 프로그램에 가수이자 배우 아이유가 출연한 적이 있다. 아이유가 어린이 합창단과 ‘뭉게구름’을 부르며 후원을 독려하는 공연을 펼쳤다. 그녀의 해맑은 목소리와 아름다운 미소는 저녁이 내리는 거리에서 마음에 주룩주룩 비가 내리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래서였나. 곡의 전주가 나올 때 불과 28만원이었던 모금액은 아이유의 노래가 끝날 때쯤 약 2000만원으로 늘었다. 모두가 동심으로 돌아가 천사 같은 미소를 짓는다. 국민 여동생의 위엄이 엄청나다는 반응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재능기부를 하며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유명인의 모습에 동화된 우리는 한통의 전화를 걸게 된다. 그런 행위를 하는 걸 보면 기부가 어렵다는 건 어쩌면 편견일 수 있다. 누군가는 그런 현상을 생각하며 어릴 적 구세군 자선냄비에 주머니 속 동전을 탈탈 털어 넣은 기억을 떠올릴지 모르겠다. 뭉게구름처럼 피어나는 예쁜 마음을 생각하며 부자가 막대한 유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것 못지않게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할리우드 스타 엔젤리나 졸리는 자신의 수입 중 어마어마한 액수를 자선사업에 기부하고 있다. 기부뿐 아니라, 봉사에도 발 벗고 나서 도움이 필요한 곳에서 구호활동을 펼친다. 어느 인터뷰에서 오드리 헵번과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그녀의 말을 들으며 아프리카 여행을 한 그의 책 을 읽어 본다. 그녀는 책에서 난민들을 찾아 떠난 여행의 일지를 어떻게 썼는지를 말한다. 그녀는 여행으로 그녀의 삶의 방향이 달라졌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다. 처음 그렇게 발을 내디딘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답을 써내려가며 한 가지 사실을 분명히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게 무엇일까? 더 많은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었을까? 누군가는 그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의외의 대답을 들려준다. 그건 ‘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신념이었다. 그녀는 삶에서 아프리카 여행길을 감사하게 여겼다. 그토록 대단한 사람들을 만나고 굉장한 경험을 했던 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겸손함을 보인다. 그녀는 870억원짜리 요트를 구입하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산 사치스런 인간이었다고 고백한다. 과거 그녀는 10대 시절에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외모 콤플렉스가 심해 심리치료를 받았다. 죽음의 이미지에 푹 빠져 장의사나 흡혈귀가 되고 싶다는 엉뚱한 꿈을 꾸기도 했다. 정신병원에 입원도 했다. 데뷔 초에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나쁜 여자로 통했다. 그러나 TV에서 본 난민사태를 좀 더 알아보고 싶어 공부를 시작한 후 다시는 예전 생활로 돌아가지 않았다. 이제는 죽을 때 여배우가 아니라 인도주의에 푹 빠진 봉사활동가로 기억되고 싶어 한다. 졸리는 할리우드 반항아의 상징이기도 했다. 애완동물로 뱀을 키웠다. 부모에 대한 반항으로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고, 자살을 시도하며 자기파괴를 일삼기도 했다. 그녀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졌음에도 우울과 자괴감에 사로잡힌 불행한 여배우였다. 그런 그녀의 변화 과정은 참으로 드라마틱했다. ━ 긴 머리 소녀들의 값진 행위 요즘 동네미용실에 가면 긴 머리를 주저 없이 기부하는 소녀나 여성을 본다. 물론 머릿결이 좋아야 한다. 그저 버려질 수 있는 긴 머리가 소아암을 앓고 있는 소녀들을 위해 사용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길이 25㎝ 이상 파마와 염색을 하지 않은 머리를 가진 여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중에 부자가 되면 기부를 많이 할 건데, 지금부터 기부 연습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따뜻한 말 한마디가 언어의 온도를 높입니다. 내 온기를 상대방에게 전해 주고 상대방의 온기가 다시 나를 따뜻하게 만드는 기분이랄까. 그게 바로 기부가 주는 미덕이 아닐까 생각해요.”빗소리 들리면 떠오르는 그녀, 반달처럼 가녀린 하얀 얼굴, 우연히 미장원에서 본 긴 머리 소녀. 우리에게 떠오르는 긴 머리 소녀의 이미지는 각기 다를 수 있다. 황순원의 단편소설 의 윤 초시네 증손녀일 수도, 국화꽃을 닮은 내 누이일 수도 있다. 여하튼 그녀들이 소중히 간직한 머리를 잘라 쇼트커트가 된 모습이 유난히 예뻐 보인다. 엄마 손을 잡고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싹둑 자르는 소녀의 아름다운 행위가 멋져 보인다. 살인·강도·강간 등 흉악범죄가 늘고 있지만 이처럼 보이지 않는 선행으로 우리네 마음을 녹여주는 미담을 들으면 마음이 훈훈해진다.어느 모습이 인간의 진짜 모습일까? 과학자이자 저술가인 리처드 도킨스는 에서 인간의 모습을 설명한다. 최초로 생겨난 단 하나의 유전자가 있었다. 그 유전자로부터 자기복제가 오랜 세월을 거쳐 시작된다. 각기 다른 형태로 돌연변이가 생겨나고 서로 경쟁을 거치면서 환경에 적응해 나간다. 그 결과 현재 존재하는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생겨나게 된다. 모든 생물은 최초의 유전자의 자기복제와 돌연변이가 오랜 세월 누적된 결과물이다. 그렇다면 우리 모습에는 두 얼굴이 존재한다는 것인가? 지킬박사도 하이드도 우리 자아의 이중주란 말인가? 리처드 도킨슨의 이기적 유전자를 읽으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게 숭고한 행위 같지만 최초의 유전자가 자기복제를 하며 자신을 전파시킨 행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행위도 입력된 프로그램에 불과하다면 지나친 말일까? 하긴 짐승들도 자기 새끼 돌보고 키우는 건 마찬가지다. 순간 자식을 막 대하는 반인륜적 부모들의 행위도 생각나서 그의 말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긴 그들은 돌연변이로 보면 될까? 아니면 사회의 부적응자로 봐야 할까? 리처드 도킨슨은 남을 돕는 이타적 행위, 평화에 대한 염원도 경쟁과정에서 어쩌면 자기 효용을 증가시키기 위한 행위일 뿐이라고 한다. 진화의 결과란 것이다.그게 진화의 결과이고 이기적 유전자의 존재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자신을 비우고 남을 헤아려 주는 미덕은 세상을 밝게 한다. 세상 모든 기부 행위는 다 아름답다. 성탄절 날 선물을 받기위해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주는 행위의 아름다움을 체험할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불행은 엄습할 수 있다. 영원히 살 것 같지만, 그렇지 못한 게 인간사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나며 정말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기 기부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며 코끝이 시큰해진다. 순간 죽어도 사는 법에 대해 깊은 사색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들은 세상을 떠나도 누군가 그들의 눈을 통해 세상을 볼 수 있다고, 그들의 장기를 통해 숨을 쉴 수 있다고 믿는다. 하긴 기부는 단순히 돈을 내놓는 일만은 아니다. 좋은 일을 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보람 있게 사는 법을 배우고 깨닫고, 의미 있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게 바로 우리가 이 땅을 떠나더라도 한동안 머물 수 있는 길이다. 그래서 장기기증센터에 전화를 걸어 등록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다. 이런 기부행위야말로 정말 어렵다. 그래서 연습이 필요하다.통상 선정 세계 50대 자선가 중에서 15명 이상이 유대인이다. 미국 인구의 2%인 유대인이 미국 기부금 전체의 약 30%를 차지한다. 은 100억원 이상을 기부한 거액 기부자 중 약 25%가 유대인이라고 한다. 유난히 기부를 많이 하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그런 습관을 키우게 됐는지 궁금해진다. ━ 유대인 경제활동의 기본 정신 ‘쩨다카’ 쩨다카는 가난한 사람을 돕거나 가치 있는 일에 돈을 기부하는 것을 일컫는 히브리어다. 이는 유대인 경제활동의 가장 기본적인 정신이다. 유대인들은 쩨다카를 당연히 감당해야 하는 의무이자 축복받는 비결로 여긴다. 그들은 쩨다카를 실천하기 위해 돈을 모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기부를 할 수 있는 금액이 커진다. 그러니 유대인은 부자가 되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게 된다. 한국에서 부자를 바라보는 시각과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한국인은 부자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볼까? 한국에서 미국 명문대학에 유학을 보내면 극성스러운 엄마로 여긴다. 어떤 부모는 아이들이 좀 더 넓은 무대에서 배우게 하고 싶어 유학을 보낸 것인데 ‘도피성 유학’이라고 폄하한다고 불평한다. 고급 주거지 근처에 살면 주민들이 주위 시선을 부담스러워 한다며, 어떻게 번 돈인데 하며 한탄하기도 한다. 그만큼 한국에서는 부자를 색안경을 끼고 바라본다. 혹자의 말처럼 ‘있는 것들이 더 해’라는 말이 무서워서일까? 한국에서는 떳떳한 부자라도 확실히 어깨를 활짝 펴기가 조심스럽다.어쩌면 그건 기부에 인색한 문화 때문이기도 하리라. 유대인 부모는 쩨다카의 정신을 알려 주는 것으로 본격적인 경제교육을 시작한다. 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자녀 스스로 돈을 벌어서 기부하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유대인들은 믿는다. 그들은 부모의 돈이나 남의 돈을 빌려서 하는 기부는 진정한 기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무런 노력 없이 얻은 돈은 결국 스스로에게 독이 된다고 가르친다. 그래서일까? 유대인 어린이는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대신, 노동의 대가로 받은 돈을 한푼 두푼 모아 사고 싶은 것도 사고 기부도 한다. 재활용품 분리수거, 화분 가꾸기, 신발장 정리, 고양이 먹이 주기 같은 집안일을 거드는 것을 시작으로 생활력의 중요성을 깨우치는 행위를 가르친다. 그 순간 공부만 하면 모든 게 다 이루어질 것처럼 키우는 한국의 부모 세대들과 아이들이 오버랩되어 고개를 떨구게 된다.유대인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자신들의 직업을 알려준다. 나아가 그 일을 옆에서 돕게 한다. 가족이 소비하는 돈이 얼마나 힘든 과정을 거쳐 얻어지는 것인지 알아야 자녀들의 경제관념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다고 본다. 자녀가 청소년이 되면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법을 가르쳐 준다. 사람들이 기피하는 힘든 일을 하나 정도 배우게 하는 것이 그들의 일반적인 관행이다. 그 순간 여러 나라에서 추방당하며 떠돌이 생활을 해온 유대민족의 DNA를 떠올리게 된다. 그게 그들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일 것 같다. 그들은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고, 누구에게나 불행이 닥칠 수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가르친다. 세상 어디에 가든 먹고 살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 자립 정신을 강조한다. 그게 세탁업일 수도, 청소업일 수도, 무엇을 고치는 수선업일 수도 있다. 남의 집 지붕에 페인트를 입힐 수도 있을 수 있고, 건축업을 배워 생계를 이어 나갈 수도 있다. 부모를 도와 용돈 벌고, 부모의 직업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리라. 3D 업종의 일을 배우는 동안, 유대인 아이들은 가정경제의 원리를 터득하게 된다. 자신의 미래 경제생활을 꾸려나가는 방법도 알게 된다.이런 교육 못지않게 투자법도 익힌다. 유대인 소년·소녀는 13세가 되면 성인식을 한다. 부모와 하객들로부터 받는 축의금은 평균적으로 5만 달러(약 5500만원) 정도다. 이날 받은 축의금은 부모와 상의해 투자처를 정한다. 이 돈은 투자해 종잣돈을 만든다. 이 종자돈을 훗날 경제적으로 독립할 시기에 활용한다. 순간 우리도 부모가 아이들이 지켜야 할 용돈 규칙과 기부의 중요성을 가르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부모가 자녀에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액수를 용돈으로 주되, 자녀에게 용돈 기입장 활용, 기부, 저축을 권유해 보면 어떨까? 용돈이 처벌이나 보상의 수단이 되는 것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자녀가 용돈을 100% 자율적으로 사용하되 용돈을 사용한 결과에 대한 책임 또한 100% 자녀가 지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신용카드를 사용하면 돈이 헤프기에 용돈은 반드시 현금으로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기부를 하게 하려면 먼저 자녀의 성향과 관심사부터 파악할 필요가 있다. 자녀들이 어떤 사회현상에 관심 있는지 관찰해야 지속가능한 기부가 가능하다.예를 들어 어린아이를 좋아하는 경우는 어린이 관련 단체, 강아지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동물보호단체에 기부하는 게 지속적인 기부활동을 위해 바람직해 보인다. 막연히 불우이웃 돕는 데 쓰기보다는 기부 대상 기관을 구체적으로 지정하고 기부 방법, 기간, 후속 조치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하도록 교육하는 게 좋겠다. 기부자인 아이들의 이름을 거는 것도 자긍심과 기부의 지속성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돈의 소중함을 아는 자녀들이 훗날 돈을 제대로 사용하고 기부도 제대로 할 수 있다. 만약에 아이를 기부천사로 키우려면, 쩨다카의 원리와 돈의 소중함부터 가르쳐야 할 것 같다. ━ 경제학에서 기부의 의미 경제학에서 기부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경제학에서는 기부를 어려운 불우이웃에게 경제적 도움을 줘서 자신의 효용을 증가시키는 행위로 이해한다. 어려운 이들과 나누는 행위로 도움 받는 사람도 행복해지고 도움 주는 사람도 행복한 상황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이 관점은 행복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절반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내 효용함수에 다른 사람의 효용을 포함한다는 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려는 노력이다. 한마디로 공감이다. 이런 해석은 기부가 이타적 동기에 의해서 발생하는 경우 성립한다.우리는 살면서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많은 경우 사회적인 갈등이 발생하고 많은 집단이 대립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결국 서로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공감능력을 어려서부터 키우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부는 사회 전체의 행복과 후생을 증가시킨다. 기부는 수혜자의 효용뿐만 아니라 기부자의 효용까지 증대시킨다는 점에서 공공재와 유사하다. 정부가 기부금에 세제혜택을 부여하면서 기부를 장려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실험 경제학에서 사람들이 경제학에서 가정하는 것처럼 인간이 이기적인지를 검증해 보자. 예를 들어 실험에 참여한 10명에게 5만원씩 나눠주고 자신이 갖거나 기부할 금액을 결정하도록 한다고 가정해 보자. 기부한 금액은 공공재 생산에 쓰여 2배의 가치를 창출하고 그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20%씩 돌아간다고 할 때 어떤 결과에 도달할까? 한 사람이 누릴 수 있는 효용의 크기는 아무도 기부하지 않으면 5만원인 반면, 모두가 5만원을 기부하면 20만원이 된다. 따라서 아무도 기부하지 않는 것보다 모두가 기부하는 게 더 나은 결과가 된다.경제학에서 가정하듯이 이기적인 사람들이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모두 5만원을 기부하고 있을 때 어떤 사람이 기부하지 않으면 그 사람이 누릴 효용의 크기는 25만원이다. 이는 기부했을 경우에 누릴 수 있는 효용인 20만원보다 크다. 만역 이 사람이 공공재에 무임승차하려는 유인을 갖게 된다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 생각을 해서 아무도 기부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결과 균형은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에 도달한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정말 이기적으로만 행동할까?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은 이론에서 예측한 것처럼 무임승차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소득 중 40∼60%를 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물론 이타심과 다른 관점에서 기부행위를 설명하는 예도 있다. “우리가 기부를 하면 각종 혜택을 줍니다. 기업도 기부를 하면 세금공제를 받고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됩니다. 세금 공제 혜택 같은, 겉으로 드러나는 동기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이른바 기부행위로 뿌듯한 자부심을 느낀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기부한 사람이라면 한번쯤 경험한 것이 아닐까요.”기업은 이익을 사회에 환원하기 위해 기부할 수도 있다. 만일 사람들이 뿌듯한 느낌을 얻기 위해 기부한다면 그 행위는 결코 순수한 의미의 이타심에서 우러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런 기부행위는 넓은 의미에서 경제학이 말하는 이기심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주고받는 게 확실히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별을 해소하기 위해 기부행위가 있었다. ‘부유한 시민의 공적인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부유한 시민들이 제공한 기부금은 주로 축제를 위해 사용됐다. 당시 아테네의 축제는 빈번해서 상당히 많은 비용이 필요했다. 부자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축제를 위해 음식, 음악대, 평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달리기, 노래, 춤, 항해 등을 위한 활동비를 지원했다.기부의 역사는 그만큼 실로 오래된 것이라 하겠다. 기부에 참여한 사람들은 아테네의 법원이나 집회에서 자신이 수행한 기부에 대해 자랑하는 관행이 있었다. 그리스 부자들은 금전적 기부를 통해 명예를 얻는 경제적 유인을 얻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기부의 공공재적 성격을 터득한 엔젤리나 졸리는 어린아이를 안고 이렇게 말한다. 저녁이 노을 져 내리는 길목에서 하늘에는 쌍무지개가 떠 있다. “아가야, 너는 불쌍해서가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 거야.” ━ 어떻게 버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 졸리의 빛나는 말에 로마의 휴일을 명작으로 만든 오드리 헵번의 말이 살짝 오버랩된다. 우리는 졸리처럼, 헵번처럼 세상의 모든 아이를 사랑할 의무가 있다. 그녀들은 굶주린 아이들에게 그렇게 달려간다. 우리도 졸리처럼, 헵번처럼 살 수 있을까. “어린이 한 명을 구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어린이 100만 명을 구하는 것은 신이 주신 기회입니다.” 헵번의 말이다.전 세계 억만장자의 수를 보라. 미국 경제지 이 선정한 100대 기업 소유주·CEO의 현황을 보라. 미국 최상위 부호 400명에서 유대인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라. 아마 그 숫자는 당신이 생각하는 규모나 비중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조지 소로스, 스티븐 스필버그, 세계적인 석유회사 쉘의 창업자 마커스 새뮤얼…. 각 분야의 대가이자 동시에 엄청난 부를 획득한 유대인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돈은 어떻게 버느냐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일찍부터 배웠다. 강인한 생활력과 제대로 된 재테크는 부의 창출과 더불어 세상을 사는 기부의 의미를 알게 하는 기본이 됐다. 그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 본다. 기부에 인색하지 말라. 부는 기부하는 자에게 있다.※ 필자는 국제경제 전문가로 현재 기획재정부 국제금융심의관이다. 대한민국OECD 정책센터 조세본부장, 대외경제협력관 등을 지냈다. 저서로 등이 있다.

2019.04.28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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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일을 사랑하라”

산업 일반

직업의 세계는 냉혹하지만 성실하고 주변 챙기고 경쟁에서 승리하면 남다른 차별성 갖게 된다 긍정적인 전망으로 시작하기로 하겠다. 젊은 세대에게 충고나 늘어놓는 꼰대처럼 보이고 싶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런 충고는 이 편지의 후반부에 가서 거론할까 한다.최근 고등학교·직업학교·전문대학·대학 또는 대학원을 졸업하고 직업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사회 초년병에게 우선 축하 인사를 전하고 싶다. 성인의 문턱에 선 여러분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으며 응원을 보낸다. 실제로 내 노후자금이 여러분에게 달렸다. 여러분과 나 모두에게 다행스럽게도 일자리를 구하기에 지난 수십 년래 요즘만큼 좋은 때도 없을 듯하다. 모두 대규모 감세, 그리고 나이 들고 막말하는 노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덕분이다.안다. 여러분은 그를 싫어하며 표를 주지 않은 것을.트럼프 대통령에게 표를 몰아준 많은 사람도 그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에게 투표한 건 기업인 대통령이 경제에 도움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민부터 프로미식축구(NFL) 선수들과의 갈등, 그리고 그의 불쾌한 트윗까지 온갖 문제와 관련해 그를 어떻게 생각하든 그가 서명한 감세가 효력을 발휘한 건 분명하다.트럼프 정부가 위험하고 불안정하리라는 온갖 예측에도 불구하고 경제만은 그런 논리 또는 언론의 호들갑과 무관하게 잘 돌아간다. 그건 경제가 더 높으신 분들의 요청에 응하기 때문이다. 바로 미국 국내총생산의 70%를 견인하는 전지전능하신 미국 소비자다.여름의 막바지 동안 여러분은 여느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카약과 배낭여행에 바빴을테니 최근 언론의 몇몇 헤드라인을 다시 소개할까 한다.“소비심리가 사상 최고 수준에 육박한다(Seekingalpha.com).”“미국 경제 성장률 4년래 최고 수준(AP 통신).”“스탠더드&푸어 지수와 나스닥 신고가로 마감(파이낸셜 타임스).”앞으로 은퇴할 때까지 다시는 누리지 못할 지난여름의 자유 시간 동안 다음 두 가지 헤드라인은 분명 놓쳤을 듯하다.“실업률, 지난 반 세기 사이 최저 수준에 도달(CNN 머니).”“미국 인력난, 임계점에 도달하다(CNBC).”이게 여러분과 무슨 관계가 있냐고? 소비자가 미래를 낙관하면 지출이 늘어 경제가 성장한다. 지난 10여년 간 보인 평균 2%씩의 무기력한 성장과 달리 요즘처럼 4%씩 성장하면 기업·근로자 그리고 미국 기업에 투자하는 모든 사람, 다시 말해 연금이나 기업연금 가입자에게 유리하다. 미국 전역의 교사·경찰관·소방관·간호사 등이 경제성장의 혜택을 보고 있으며 기업연금에 돈을 적립하는 미국인 5000여만 명도 마찬가지다.믿기지 않다면 부모, 조부모에게 물어보라. 역사적인 감세가 효력을 발하고 있으며 주식보유자만 혜택을 보는 건 아니다. 트럼프 취임 직후 언론매체에선 글로벌 경기침체를 예측하는 헤드라인을 올렸지만 경제는 호경기를 맞았고 성장을 계속했다. 워싱턴 정부의 정책 입안자들이 미국인의 세금부담을 줄여주면서 지출을 더 많이 할 수 있게 할 때 일반적으로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그래도 여러분은 여전히 “그것이 내 삶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묻는다. 조금만 기다려보라. 이제 거의 결론에 다가간다. 알다시피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들이 직원을 더 많이 뽑는다. 그리고 기업들이 채용을 계속하면 사람 구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그리고 곧 인력 수요가 공급을 초과한다. 혹시 수요·공급 이론 또는 수학에 익숙하지 않다면 어쨌든 좋은 일이라는 의미다. 수요가 공급보다 많은 시장에선 근로자가 칼자루를 쥐게 된다. 임금인상을 요구하거나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이직하기가 쉬워진다. 실업률이 높을 때는 임금인상을 요구하기는커녕 일자리를 지키는 것만도 다행으로 여겨야 한다.더 나이 많은 경력자와 일자리를 놓고 경쟁할 경우 젊은 근로자에게는 기회가 많이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수요초과 시장에선 훨씬 더 기회가 많아진다. 학벌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고용주가 더 큰 리스크를 감수한다. 청년 근로자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인 경험 쌓을 기회를 잡는다는 의미다. 현실세계에서의 실제 업무경험 말이다. 이는 곧 깨닫게 되겠지만 학교에서 배운 지식보다 더 소중한 자산이다.여기까지는 희망적인 얘기다. 이제부터는 냉엄한 현실 이야기를 하겠다. 현실의 직업 세계에 안전한 공간이란 없다. 마음에 위안을 주는 애완동물이나 훈장 또는 사회적 진급(학업이 부진해도 친구들과 함께 진급시켜 주는 것)은 없다. 승자 아니면 패자로 갈린다. 업무성과로 보상 받을 때도 있고 못 받을 때도 있다. 퇴짜를 맞기도 한다. 극복해야 한다. 오히려 즐기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종종 장애물과 맞닥뜨린다.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 정말로 불공평한 일을 겪게 된다. 피해자가 아니라 승자가 되는 쪽을 택하라. 이는 실상 선택의 문제다. 마음에 상처를 입을 때가 있다. 익숙해지자. 패할 때도 있다. 거기서 배워라. 무슨 일을 하든 불평하지 말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 가십을 하지 말자. 아무도 그것을 믿지 않는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권하는 사람도 있다. 위험한 충고다. 그보다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라.”사회정의의 투사 친구들이 스스로를 너무 싸게 팔아넘긴다고 놀릴 때는 그들에게 필요한 각종 사회 프로그램의 재원을 누군가는 마련해야 한다고 말해주자. 돈벌이는 나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생활비뿐 아니라 지역 학교·정부 그리고 주와 연방 정부의 재원까지 충당한다.진짜 첫 직장에 출근할 때 몇 가지 잘 생각해야 할 단어가 몇 가지 있다. 단순할 뿐 아니라 고리타분해 보이기까지 한 말들이다. 하지만 이는 자신을 남들 그리고 동료들과 차별화하는 요소가 될 것이다. 성실: 쉽지 않고 최신 유행도 아니지만 성실한 태도로 업무에 임하자.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자.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하며 일에 가치를 더하자. 가끔씩은 주말에도 일하자. 승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알면 스스로도 놀랄 것이다. 그 첫 일자리가 평생 직업이 될지 모른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기그 경제(gig economy, 일거리 중심의 일시적 계약근로)의 유혹을 피하자. 거기서 얻는 자유를 자랑하는 친구도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기그 일자리에선 경쟁력 있는 업무습관을 익히지 못한다. 그리고 자신에 관해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기그 경제는 스피드 데이팅(남 녀가 돌아가며 맞선을 보는 그룹미팅)과 비슷하게 생각하면 된다. 재미있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아무도 남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충실할 때만 사랑과 자신에 관해 배움을 얻는다. 틴더(데이팅 앱)와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성실하고 꾸준한 업무자세를 보인다면 돋보이는 존재가 될 것이다.챙김: 뉴욕시에서 파멜라 뉴먼 박사라는 훌륭한 여성을 알게 됐다. 엄청난 성공을 거둔 보험업계 중역이다. 그녀는 대범하게 챙기라(dare to care)는 단순한 모토를 바탕으로 뛰어난 팀(그리고 우수한 비즈니스 실적)을 구축했다. 자신의 일과 고객, 그리고 동료를 챙기려면 대범함이 필요하다. 비즈니스뿐 아니라 사람들, 그리고 주위와의 관계를 정말로 챙기자. 자신에 신경 쓰는 만큼 그들을 돌보자. 도전해보자. 셀카·자기홍보·이기주의의 시대에 주변을 챙기는 사람은 정말로 돋보인다.경쟁: 비즈니스 세계에선 어딜 가나 경쟁에 직면한다. 동료가 아니라 팀의 경쟁상대를 물리치는 데 전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사람이 되자. 한 가지 일화가 있다. 내 형은 펩시의 저돌적인 중역이었다. 맞수인 코카콜라와의 경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높은 자리까지 승진했다. 결혼식 날 아내가 하객에게 내놓는 음료로 코카콜라(코크)를 선택하려 했다. 자신의 결혼식이니 전혀 문제될 게 없는 판단이었다. 나는 코크를 내놓으면 형이 발끈해서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아내를 말렸다.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내를 설득했다. 결국 우리 음료로는 몰래 코크를 들여놓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펩시를 내놓기로 했다. 극단적인 사례인 듯하지만 여기서 얻는 교훈은 간단하다. 이기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동료가 아니라 경쟁자 말이다.끝으로 근로의 도덕적 중요성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근로는 좋은 것이다. 신성한 것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기억하건대 구약성서에서 하느님은 한 주에 이틀이 아니라 하루 휴식을 취했다. 근로는 세상에 가치를 창조한다. 삶에 의미를 부여한다. 일이 없으면 삶과 커뮤니티는 상상할 수 없다.마틴 루터 킹 목사가 일에 관해 설파한 적이 있다.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그의 가장 훌륭한 연설이지 싶다. 인생을 살아가다가 때로는 더 근사한 직업을 가졌으면 싶을 때 킹 목사만이 전할 수 있는 아래의 말들을 명심하자. 그리고 일자리가 생기고 원하면 구할 수 있는, 그리고 존중 받고 보상받는 나라에서 사는 데 감사하자.“거리 미화원 일을 맡았다면 미켈란젤로가 그림을 그리듯, 또는 베토벤이 음악을 작곡하듯 또는 셰익스피어가 시를 쓰듯 거리를 쓸어야 한다. 거리를 정성껏 쓸어 이승과 저승의 모두가 발길을 멈추고 ‘여기 자신의 일에 정성을 다한 훌륭한 거리 미화원이 살았다’고 말할 정도가 돼야 한다.”- 리 하비브 뉴스위크 칼럼니스트※

2018.10.15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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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시대 보험의 미래는 인슈어테크] 인공지능·블록체인·사물인터넷 바람 타고 진화

보험

보험에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 접목 … 위험 분석 넘어 위험 자체 줄이는 역할도 온라인 전업 보험사인 미국 클로버 보험(Clover Health)은 ‘인슈어테크(insurance+technology)’에서 선두 주자로 꼽히고 있다. 인슈어테크는 보험을 온라인·빅데이터·인공지능(AI) 등 다양한 정보통신기술(ICT)과 결합해 더 쉽고 알뜰하게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 클로버 보험은 이미 웨어러블(wearable) 장치를 통해 건강보험과 집보험, 애완동물 보험 등 다양한 영역에서 사물인터넷(IoT)을 이용하고 있다. 사물인터넷을 통해 보험계약자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한다. 특히 단순한 위험 분석을 넘어 보험의 본질인 위험 자체를 줄이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박소정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사물인터넷으로 단순히 빅데이터를 수집해 가격 결정에만 활용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슈어테크로 손실에 대한 보상에서 위험까지 관리해주는 방향으로 보험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 인공지능이 대신하는 보험금 지급 사정 사물인터넷·빅데이터·블록체인과 같은 기술의 발달로 세계 보험 업계에서 ‘인슈어테크’ 바람이 불고 있다. 특히 인슈어테크 관련 세계 스타트업의 투자는 2011년 750만 달러에서 지난해 5억 달러로 급증했다. 60%에 가까운 투자가 미국에서 이뤄지고 있고, 독일·영국·중국·일본에서도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인슈어테크는 먼 미래의 이야기거나,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여러 사례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인슈어테크가 가장 많이 쓰이는 곳은 판매 채널(판매망)이다. 온라인을 통한 판매 증가와 성공 사례가 여러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가격비교 사이트의 정착이다. 이에 따라 기존 보험사가 온라인 채널을 추가하거나, 온라인 전용사를 설립하고 있다. 클로버 보험과 같은 온라인 전용 보험사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다른 분야의 핀테크회사가 보험 상품을 금융상품과 함께 교차 판매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덕분에 고객과 거리를 좁히고, 비용을 낮춰 새로운 형태의 보험 상품과 보험사의 등장하고 있다.한국과 보험 환경이 가장 유사한 일본에서도 인슈어테크를 향한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잃어버린 20년’으로 불리는 장기 침체로 인해 일본에서는 2006년을 전후해 보험사의 보험금 지급 누락 사태가 일어났다. 여기에 예전에는 상상할 수 없는 지급 실수 문제까지 겹쳤다. 결국 일본 금융청은 보험사에 업무 개선 명령을 내렸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새로운 지급 시스템과 다중체크 시스템을 도입하고, 인력을 대거 투입하며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4년 후코쿠(富國)생명은 업무 프로세스 개선에 중점을 두고 인공지능(AI) 시스템인 IBM의 ‘왓슨 익스플로러’를 도입했다. 보험금 청구 직원을 대신해 병원 기록과 복용 의약품 등 관련 정보를 분석하며 실수 없이 보험금 지급 사정 업무를 해냈다. 하타 타카시 후코쿠생명 부장은 “앞으로 보험 전반에서 인공지능을 전제한 상품 설계가 이뤄져야 한다”며 “다만 사람만이 진행할 수 있는 일정 영역과 인공지능을 정확히 조합해야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점도 확인했다”고 설명했다. ━ 블록체인은 인슈어테크의 화룡점정? 하지만 국내는 어떨까. 아직은 보험이 국내 금융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인슈어테크는 걸음마 단계라는 게 중론이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슈어테크와 관련해 보험 업계의 노력에도 아직까지 새로운 사업 모형을 세우고 확장하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금융 당국과 업계가 유연성과 다양성을 현재보다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생명보험협회와 보험연구원은 지난 6월 28일 ‘4차 산업혁명과 인슈어테크 활용’이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열며 머리를 맞댔다.화제를 모은 것은 블록체인(Block chain)이다. 블록체인은 거래 정보를 특정 기업의 중앙 서버가 아닌 개인간 거래(P2P) 네트워크 형태로 분산시켜 계약 당사자 모두가 공동으로 거래 내역을 기록·관리하는 방식을 말한다. 최근 활발하게 유통되고 있는 디지털 화폐 ‘비트코인’이 대표적인 블록체인 기술이다. 가상 장부에 거래 내역이 실시간으로 기록되는데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사용자가 똑같은 거래 장부를 공유한다. 거래 때마다 이를 대조하기 때문에 보안에 강하다는 장점이 있다. 인슈어테크에서도 큰 활약이 기대되고 있다. 기존의 보험 계약은 서류 작업과 회계 등 거래 데이터를 중앙 집중형 서버에 보관했었다. 그런데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기존 방식과 달리 계약자가 모든 내용을 공유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교보생명이 소액 보험금 자동 지급 시스템에서 블록체인 기술을 일부 활용하고 있다. 가입자가 보험금을 청구하지 않아도 블록체인 시스템이 병원비 수납 내용과 보험계약 정보를 활용해 자동으로 보험금을 지급하고 있다. 세계 보험 업계도 지난해 10월 B3i(Blockchain Insurance Industry Initiative) 컨소시엄을 만들어 블록체인 기술을 보험에 활용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재보험사 RGA그룹의 조르지오 모시스 혁신 담당은 “컨소시엄 참가자의 첫 번째 프로젝트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며 “올해까지 보험 산업에서 이행 가능성을 점검하고, 내년부터 실제 보험 계약에서도 가능하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국내에서 인슈어테크가 가장 진화한 분야로 자동차 보험이 꼽히고 있다. 이는 수치로도 확인되고 있는데 외국 보험 업계도 그 성장 속도에 놀라고 있다. 자동차보험의 판매 채널은 보험 가입자와 대면 여부에 따라 대면 채널과 비대면 채널로 나눠진다. 설계사와 대리점을 통한 보험 가입은 대면 채널(오프라인), 전화 상담원을 통해 가입하는 텔레마케팅(TM)과 인터넷·모바일로 가입하는 온라인(CM)은 비대면 채널로 각각 불린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같은 회사에서 대면 채널의 보험료를 100이라 할 때 평균적으로 TM은 90, CM 84 수준이다. 현재 자동차보험을 판매하는 국내 11개사 모두 텔레마케팅과 온라인 채널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지난해 연말 기준으로 개인용 자동차 상품에 가입한 1524만대 중 266만대가 온라인(CM)을 통해 계약해 가입률은 17.5%를 차지했다. 2012년 온라인 가입률은 5.7%에 불과했으나 4년 만에 세 배 이상 커졌다. 대면 가입률은 2012년 61.9%에서 지난해 53.9%로 감소했다. 텔레마케팅(TM) 가입률 역시 2013년까지 꾸준히 늘었으나, 2014년 카드사 정보 유출 사태 이후 금융사의 개인정보 수집·보관·활용에 대해 엄격한 가이드라인이 마련돼 텔레마케팅 영업이 하락세로 변한 상황이다. 공진규 보험개발원 자동차보험통계팀장은 “인슈어테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온라인 보험슈퍼마켓 보험다모아(www.e-insmarket.or.kr) 효과로 지난해 온라인 가입률이 큰 폭으로 늘었다”고 분석했다.인터넷 강국인 한국의 위상에도 2010년대를 넘어서도 국내 자동차 보험사(손해보험사)는 기존 채널과의 갈등을 이유로 온라인 채널 도입에 소극적 입장이었다. 그런데 회사별 보험료가 손쉽게 비교할 수 있는 보험다모아 사이트가 2015년 말 문을 열며 온라인 판매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됐다. 1년여 만에 11개사 모두 보험다모아에서 자동차보험료를 비교할 수 있게 됐다.인증 수단 다양화 등 규제 완화도 인슈어테크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4월 인터넷에서 보험계약을 하는데 전자서명(공인인증서) 외에 안전성과 신뢰성이 확보된 다양한 인증 수단도 가능하도록 보험업법 시행령을 바꿨다. 이에 따라 휴대전화와 신용카드도 인증 수단에 포함됐다. ━ 낮은 보험료 덕분에 보장 더 늘려 인슈어테크의 발전은 소비자의 자발적 요구에 따라 힘을 얻었다. 최근 금융산업 환경이 인터넷·모바일 중심으로 재편되자 소비자도 온라인을 통해 보험에 접근하고 있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온라인(CM)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42.8세로 다른 채널보다 낮은 것이 특징이다. 오프라인과 텔레마케팅 가입자의 평균 연령은 각각 48.9세, 48.5세다. 연령대별로 봤을 때 30대가 온라인 가입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눈에 띄는 특징으론 수입차(외산차) 보유자의 온라인 가입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점이다. 오프라인과 텔레마케팅 가입에서 수입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각각 8.1%, 6.0%다. 그런데 온라인 내 수입차 비중은 12.6%로 텔레마케팅의 두 배 수준이다. 공진규 팀장은 “수입차는 차량 가격 등으로 보험료가 비싼 특징이 있어 온라인 가입을 통해 보험료 부담을 낮추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수입차 선호 계층이 젊은 것도 원인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기본 보험료가 저렴해진 대신 추가 보장을 늘리는 현상도 나타났다. 온라인 가입자의 대물 배상 가입 금액은 3억9000만 원으로 다른 채널보다 1억원가량 더 보장을 원했다. 또 자기차량 손해담보 가입률도 81.3%로 높았다. 온라인 가입자는 배터리 충전, 긴급 견인, 타이어 교체 등 긴급출동서비스특약에 96.8%가 들었다. 형사 합의금, 방어 비용, 벌금 등 형사 책임 관련 법률 비용을 담보해주는 법률비용지원특약도 마찬가지로 더 많이 가입했다. 온라인 가입자는 보험 보장의 필요성을 느껴 스스로 상품에 대해 정보를 파악하고 계약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추가보장특약 가입률이 다른 채널보다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성대규 보험개발원장은 “인슈어테크의 대표 사례인 ‘보험다모아’를 보다 개선하겠다”며 “온라인 가입자가 보다 높은 보장을 원하기 때문에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신규 시장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2017.07.15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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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북부의 미래 기술과 전문 인력 양성 책임진다

산업 일반

머지않아 ‘인서울대’는 옛말이 될지도 모른다. 서울 명문 4년제 대학을 나와도 취업난에 시달리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 이름보다는 취업률과 교육 성과가 더 우선시되면서 서울 밖의 실속 있는 강소대학이 주목 받는다. 경기도 양주시에 위치한 서정대학교도 그중 하나다. 서정대는 최고의 실무 전문가로 구성된 교수진과 뛰어난 시설을 바탕으로 전문 직업교육에 매진하는 한편, 높은 교육 역량으로 지역 개발에도 앞장선다.지역 대학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해당 지역 개발이다. 소위 ‘인서울대’라 불리는 서울 소재 4년제 대학 못지 않게 지역마다 위치한 전문대학교의 역할은 막중하다. 지역 전문대가 활성화돼야 그 지역 산업이 발전하고, 일자리가 창출되고 인재가 자라나는 선순환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전문 대학 없이는 모든 학생들이 교육을 받기 위해 서울로 상경하고 그 외 지역은 공동화·노령화하는 사태를 피하기 어렵다.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을 보면 예외 없이 명문대 못지 않게 지역 전문 대학도 발달했다.서정대는 지난해 전문 대학 최초로 ‘스마트 창작터’ 지원사업에 선정됐다. ‘스마트 창작터’는 중소기업청 창업진흥원이 지원하는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이다.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웹 콘텐트·소프트웨어 등 유망 지식서비스 교육·창업 인프라 우수기관만이 이 지원사업에 선정된다. 서정대의 전문지식 교육 역량을 인정받은 셈이다. 서정대는 지난해 1기 창업팀 12개를 배출한 데 이어 올해에도 2기 창업팀 12개를 선정해 육성 중이다.사실상 스타트업 불모지였던 경기 북부 지역에 처음으로 창업의 싹을 틔웠다. 서정대 측은 “경기도 북부는 창업 인프라가 부족한 편인데 스마트창작터 선정을 계기로 잠재력을 확인했다”며 “서정대가 지역창업의 거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창업 아이템도 섬유 클러스터가 있는 양주 지역의 특성에 주목해 버려지는 옷감을 활용한 사업, 학교 다문화가정센터와 연계해 이주여성·노동자들이 손쉽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한 온라인 교육콘텐트 등 지역 특색을 살릴 수 있는 것들이 많다. ━ 불합리한 평가에 굴하지 않고 자체 장학금 마련해 첨단기술 인력 양성은 지역 개발과 일자리 창출에 중요한 요소다. 서정대는 고용노동부·경기도 양주시와 함께 3D프린팅 기술인력 양성교육을 실시한다. 교육비와 재료비 등이 모두 무료로 진행되며, 아울러 과정을 수료한 경우 수료증과 함께 훈련 수당이 지급된다. 시 관계자는 “신성장 동력으로 급부상중인 3D프린팅 기술은 관련 분야에서의 높은 수요를 충족시키면서 일자리 창출 효과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며 “앞으로 3D프린팅 관련 산업이 양주시의 미래산업을 선도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그 밖에도 서정대가 지역 사회에 하는 공헌은 많다. 지난 6월엔 가평군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운영자로 선정됐다. 위생안전식단개발과 식사 지도·교육개발 활동을 통해 가평 일대 어린이들의 식생활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역할을 서정대가 맡았다. 또 올해 초엔 가평군과 전문기술인력 양성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주민과 구직자 및 산업체 근로자·군인 등 지역 주민에게 평생교육을 제공하기로 했다. 양주출입국관리소의 이민자 조기적응 프로그램을 위탁운영하고, 전국 최초로 가평군 군부대 간부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을 실시했다.이처럼 지역 사회의 협력 요청이 쏟아지는 것은 모두 서정대 전문교육 프로그램의 우수성 덕분이다. 서정대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전체 취업률 96%를 달성했다. 건강보험 가입자 수로 취업률을 산정한 2010년과 2011년엔 2년 연속 수도권 대학 취업률 1위를 차지했다. 2012년과 2013년에는 한강 이북 대학 취업률 1위였으니 8년 연속 전문대학 취업률 최상위권을 기록한 셈이다. 물론 취업률만이 교육 우수성을 평가하는 지표는 아니다. 서정대는 타 대학과의 차별화를 위해 2012년부터 단지 취업률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취업의 질에도 주목하기 시작했다. 산업기사 및 국가자격증 취득, 경진대회 수상을 업무 능력 지표로 설정하고 철저히 관리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소방공무원·응급구조사·간호사·산업기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합격자 수 1위 또는 최고 합격률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기능장·기사·산업기사 등 자격증을 취득한 학생 수는 누계 2만675명을 기록했다.뛰어난 실적의 밑바탕엔 명장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수준 높은 교수진이 있다. 서정대는 관련분야 최고 수준의 실무 전문가를 교수로 초빙해 차별화된 직업교육을 실시한다. 조리명장 문문술 교수, 자동차정비명장 김웅환 교수, 미용명장 정매자 교수로 구성된 국내 유일 ‘명장 트로이카’는 서정대의 자랑이다. 다른 학과에도 산업기능장 및 기술사·명인 또는 해당분야에서 기능장을 보유한 10년 이상의 실무경험을 지닌 전문가들이 교수로 재직 중이다.서정대는 지난 8월 교육부가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E등급을 받았다. 기준치를 상회하는 교지확보율(159.3%)과 교사확보율(131.5%), 졸업생 취업률, 학생 충원률, 장학금지급 등 정량지표는 환산점수 100만점에 91.9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취득했지만 평가위원의 주관에 따라 값이 달라질 수 있는 정성평가에서 실적에 비해 훨씬 낮은 46.5점에 그친 탓이다.대학 구조개혁 평가는 전국 대학가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교수신문이 전국의 대학교수 1180명을 대상으로 의견조사를 실시한 결과 92.5%가 ‘대학을 구조개혁하기보다 교육부를 개혁하는 일이 우선’이라고 응답했을 정도다. 권진헌 전국거점국립대교수회연합회장은 지난 11월 26일 개최된 ‘대학구조개혁법 개선인가 개악인가’ 토론회에서 “국립대와 사립대를 막론하고 교수들이 대학구조개혁에 문제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며 “대학 정책이 대학의 자율성과 공공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데 현재 정책은 거꾸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교육을 잘 한다는 이유로 재정 지원을 해놓고 정작 구조개혁 평가에선 낮은 점수를 주는 웃지 못할 사태까지 벌어졌다. 중앙일보의 보도에 따르면 대학 구조개혁 평가에서 D등급을 받아 내년까지 재정 지원이 중단되는 대학 53곳 중 19곳이 교육부의 특성화사업이나 학부교육 선도대학사업에 선정돼 올해 정부 예산 529억원을 받는다. 현실과 괴리된 구조개혁 평가로 인해 많은 대학이 높은 등급을 받으려 학과를 통·폐합하면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피해를 받기도 했다. 대학 구조개혁 평가 등급이 낮다고 해서 대학 재정이 불안하거나 교육 역량까지 낮은 것은 아니라는 방증이다.서정대는 2016학년도 국가장학금 및 학자금 대출 제한 조치에 따라 대상 신입생들에게 대체 장학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소득분위에 따라 입학 시 60~100만원, 매 학기 40~50만원의 대체 장학금을 지급한다. 기회균형 선발전형으로 지원해 입학한 기초생활수급자 및 차상위 계층엔 1학년 연 480만원, 2·3학년 때는 연 240만원의 장학금을 수여한다. 서정대 측은 “2016학년도 정시 1차는 입시제도 변경 및 대학구조개혁 평가 결과 발표로 인해 커트라인이 지난해에 비해 낮아질 것”이라며 “우수 교수진이 지도하는 선망 학과에 상대적으로 쉽게 합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니 수험생들의 많은 지원을 바란다”고 밝혔다.-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 모든 교육은 인성에서 출발한다 서정대 아동청소년보육과, 아동·청소년부터 군 간부까지 아우르는 인성지도 상담과정 특화시켜서정대학교 아동청소년보육과는 2014년 신입생 모집을 시작해 2016년 첫 졸업생을 배출한다. 이 학과는 현 정부의 보육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인성 및 감성에 특화된 심화 보충학습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자체 개발한 감성영어 프로그램과 인성지도상담과정을 특화시켜 지난 7월말 발효된 인성교육법에 발 빠르게 대처했다. 모든 교육은 인성을 기반으로 출발해야 아동학대 등의 사회문제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눈에 띄는 성과는 하계 방학기간을 이용해 경기북부지역의 군부대 초급간부와 장교들을 대상으로 ‘인성지도상담사’ 과정을 운영한 것이다. 지난 7~8월 중 4회에 걸쳐 무료로 인성지도상담 과정을 운영해 총 180여 명의 군 간부들이 장병들의 인성 지도 및 상담 능력을 갖추도록 기여했다. 최근 군부대에서 빈발하는 크고 작은 사건사고들이 인성교육 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주로 인간학·행복론·갈등관리·상담기법 등으로 구성됐다.서정대 주변 군부대 3곳은 전군 최초로 민간기관인 서정대 군사회연구소의 인성교육을 통해 초급간부 및 지휘관들의 인성지도 및 인성상담 능력을 함양하고 사고예방에 앞장서는 부대가 됐다. 뿐만 아니라 서정대 군사회연구소에서는 지난 전반기 동안 인근 군부대 여군 간부 및 지휘관을 대상으로 좌담회와 상담활동을 전개해 학·군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앞으로도 서정대는 군 초급 간부 및 지휘관들을 대상으로 인성교육과 상담기법 등을 지속적으로 전수해 군 장병들의 밝은 병영생활에 기여할 계획이다. 서정대 군사회연구소측은 “이번 교육을 이수한 대부분의 초급 간부 및 초임 장교들은 교육이 병사들을 통솔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혔다”며 “군에서 실시하는 교육은 딱딱하고 무미건조한데 반해 서정대의 교육은 현장에서 즉시 활용 가능한 실무 위주라 좋았다는 반응이 나왔다”고 전했다.또한 아동청소년보육과의 ‘방과 후 프로그램 지도사’와 ‘감성영재지도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도 주목할 만하다. 방과 후 프로그램 지도사는 기존의 아이돌보미 역할을 너머 다양한 프로그램을 활용, 아동의 지능을 높일 수 있는 놀이를 곁들이는 출장형 학습지도다. 감성영재지도사 프로그램 역시 스파르타식 공부 개념을 탈피, 아동들이 즐겁게 노래 부르고 실험하고 뛰노는 가운데 영어와 과학 지식을 자연스럽게 체득할 수 있도록 뇌 과학을 접목해 영재성을 자극하는 방식이다.아동청소년보육과는 학생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누린다. 특히 야간 산업체 위탁생들의 경우 군인들을 중심으로 청소년 지도에 관심이 높다. 특화된 인성 프로그램으로 우수 교사와 탁월한 지도자들을 배출하면서 취업에 대한 젊은 층의 고민을 해소하기 때문이다. 취업은 공·사립 어린이집교사, 방과 후 교사, 청소년지도사 등 다양한 분야로 가능하다. 김예림 아동청소년보육과 학부장은 “아동학과 청소년학 등의 학문도 중요하지만 이에 앞서 인성 및 감성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선행학습을 실시해 취업률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기준 뉴스위크 한국판 기자

2015.12.07 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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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s LITERATURE - 짧은 생애, 긴 여운…

산업 일반

‘오만과 편견’ 출판 200주년 맞아 발표된 신저 두 권 당시 사회 풍속과 제인 오스틴의 그칠 줄 모르는 인기 비결, 팬 산업 등 조명해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 출판 200주년을 맞아 두 권의 책이 새로 나왔다. 오스틴 마니아인 저널리스트 데보라 예피의 ‘어몽더 제인아이트(Among the Janeites)’, 그리고 역사저술가 로이와 레슬리 앳킨스가 쓴 ‘제인 오스틴의 영국(Jane Austen’s England)’이다.이 책들은 오스틴이 살았던 섭정시대 영국의 풍속을 파헤치고 오스틴의 열성 팬을 상대로 톡톡히 재미를 보는 사업들을 소개한다. 한편 BBC의 1995년작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주목을 끌었던 콜린 퍼스의 이른바 ‘젖은 셔츠 신’이 책 출판 200주년을 맞아 새롭게 관심을 모으고 있다.어린 시절의 제인 오스틴을 본 사람 중 누구도 그녀가 문학계의 거물이 될 줄은 몰랐다. 오스틴은 사후 거의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는 보기 드문 작가 중 한 명이다. 그녀는 성공회 목사의 일곱 번째 자녀로 태어났다.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가세가 기울어 매우 궁핍한 생활을 했으며 일생의 대부분을 햄프셔의 작은 시골 마을과 서머셋의 온천 도시 바스에서 보냈다.‘어 레이디(A Lady)’라는 필명으로 몇 편의 소설을 썼고 41세에 이름 모를 병으로 사망했다. 오스틴의 책은 당대의 몇몇 유명인사로부터 사랑받긴 했지만(월터 스콧경은 그녀의 “잘 쓰여진” 작품을 칭찬하면서 “이렇게 재능있는 작가가 그토록 일찍 세상을 떠나다니 유감”이라고 탄식했다) 그녀 생전에 발표된 작품 평은 10여 편에 불과했다.하지만 ‘오만과 편견’ 출판 200주년을 맞은 올해 우리는 도처에서 제인 오스틴을 만나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8월 16일 그녀를 주제로 한 영화 ‘오스틴랜드(Austenland)’가 개봉됐다. 케리 러셀이 오스틴을 주제로 한 판타지 리조트에서 자신의 ‘미스터 다시’(‘오만과 편견’에서 여주인공 엘리자베스가 사랑하는 냉담하고 오만한 신사)를 찾아나서는 오스틴의 열성 팬을 연기한다. 또 TV드라마 시리즈 ‘매드 멘’의 피트 캠벨 역으로 잘 알려진 빈센트 카테이저는 미네소타주 거스리 극단이 무대에 올리는 연극 ‘오만과 편견’에서 미스터 다시 역할을 맡았다.그런가 하면 런던 하이드파크 서펀타인 호수에는 유리섬유로 만든 높이 3.7m의 다시 동상이 세워졌다. 1995년 BBC 미니시리즈 ‘오만과 편견’에서 다시 역을 맡은 콜린 퍼스의 유명한 ‘젖은 셔츠 신’을 기리는 작품이다. 또 ‘웰컴 투 새니턴(Welcome to Saniton)’이라는 제목의 웹 시리즈는 오스틴의 열성 팬들로 하여금 그녀의 마지막 작품인 미완성 소설 ‘새니턴’의 줄거리를 완성하도록 한다.한편 영국 중앙은행이 10파운드짜리 지폐에 들어가는 초상화의 주인공을 찰스 다윈에서 제인 오스틴으로 교체하기로 한 결정은 큰 논란을 불렀다. 오스틴을 10파운드 지폐의 새 주인공으로 선정하도록 로비를 벌인 운동가들과 정치인들에 대한 살해 협박이 트위터에 올라오는 등 인터넷에 거센 반발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오스틴의 생애와 소설의 배경이 된 당시 영국의 실상(정치 풍토와 시골의 풍속, 계층간 갈등과 해외의 전쟁 등)과 지난 수십 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붐을 일으킨 거대한 오스틴 팬 산업을 조명하는 책 두 권이 나왔다. 오스틴 팬 산업에는 가장무도회와 연례회의, 오스틴이 살았던 영국 시골 지방 투어, 그녀의 작품을 바탕으로 한 선정적인 속편, 진정한 오스틴의 팬이 아니면 참여하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관리되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이 포함된다.두 신저 중 첫 번째 ‘어몽 더 제인아이트’는 극단적인 오스틴 중독증의 핵심을 파헤치는 재미있는 책이다. 일부 독자가 오스틴 소설 속 캐릭터와 섭정시대 영국 풍속에 왜 그렇게 열광하는지 답을 얻기 위해 “제인 오스틴의 소수 광팬”들의 비밀스러운 세계를 깊이 파고든다.제인 오스틴을 주제로 한 다양한 보드 게임, ‘위키드 위컴’ ‘미스터 나이틀리즈 리저브’ 등의 이름을 붙인 티백, 제인 마니아의 슬로건이 새겨진 티셔츠 등이 판치는 세계다.이 책에는 오스틴 큰오빠의 직계 후손이 소개된다. 길이 9m의 쌍동선 엘리자베스 베넷호를 소유한 그는 배타적인 영국 제인 오스틴 협회에 반기를 들어 북아메리카 제인 오스틴 협회(JASNA)를 설립했다.그밖에도 오스틴의 작품을 독서요법 그룹의 치료 수단으로 사용하는 전직 암 전문 간호사와 오스틴 소설의 숨겨진 이야기를 바탕으로 ‘다빈치 코드’ 스타일의 음모론을 쓴 전직 부동산 전문 변호사 등이 등장한다. 오스틴을 자신의 ‘마약’이라고 부르는 샌디 러너(글로벌 IT 업체 시스코의 공동설립자)는 오스틴의 오빠가 살았고 그녀가 말년의 걸작을 쓸 때 방문했던 초튼 하우스를 1000만 달러의 거금을 들여 복원했다.열성 팬들의 세계에서는 ‘맨스필드 파크’를 주제로 한 토론 모임에서 학자들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기도 하고, ‘미스터 다시 결혼하다(Mr. Darcy Takes a Wife)’ ‘의무와 욕망(Duty and Desire)’ 등 오스틴의 팬픽션이 수십 만권씩 팔려나간다.또 현실 세계의 미스터 다시로 자처하는 사람들을 온라인에서 만나고, 텍사스주의 평범한 주부가 정교한 조지 왕조 시대의 의상으로 유명인사가 되기도 한다. 그녀는 JASNA의 행사 때면 엠파이어 웨이스트(허리선이 가슴 바로 아랫 부분에 있는) 평상복 드레스와 보넷, 모피를 댄 여성용 외투, 멋진 실크 이브닝 드레스들로 눈길을 모은다.제인 (오스틴) 애호가라는 뜻의 제인아이트(Janeites)는 1894년 문학비평가 조지세인스베리가 만든 용어다. 당시 빅토리안 르네상스로 오스틴의 인기가 치솟았고 젊은 귀족들은 오스틴을 ‘신성한 제인’이라고 불렀다. 제인아이트들은 “탐닉에 가까운 열의”와 “다방면에 걸친 강렬한 열정”을 지녔다. 박사학위를 받은 종신직 교수, 고교 중퇴자, 텍사스주의 농부, 도시 상류층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포함된다.이들은 JASNA나 영국 제인 오스틴 협회에 소속돼 연례회의에 참석해 동료 추종자들과 교류한다. ‘센스 앤 센서빌리티’의 윌러비를 지지하는 그룹과 브랜든을 지지하는 그룹으로 나눠 토론을 벌이는가 하면 ‘설득’에서 앤 엘리엇이 웬트워스 대령과 결혼하면 행복할까를 놓고 의견을 주고받는다.또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와 다시가 처음 만났던 무도회를 흉내낸 행사에서 월츠를 춘다. 이들은 자신의 자녀와 애완동물에게 피츠윌리엄 다시, 피라인 등 오스틴의 작품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붙인다. 그리고 “친구와 친척들의 특성을 오스틴이 사용한 짧은 문구를 이용해 표현한다.” (노리스 아주머니 = “남에게 모욕감을 주고 강압적임” 매리앤 = “충동적이고 감정적임” 등) 중년의 백인 여성이 주를 이루는 제인아이트들은 영화 ‘로키 호러 픽처 쇼’의 팬들처럼 함께 모여 관객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오만과 편견’(주로 1995년 BBC 미니시리즈)을 감상한다. 또 대영도서관에 가서 오스틴의 휴대용 책상을 관람하고 그녀의 머리카락(과거에 소더비 경매장에서 경매품으로 팔렸다)을 보러 초튼 코티지를 찾아간다. 이들은 해마다 돌아가며 그녀의 소설 한편, 또는 전편을 읽는다.또 오스틴에게서 영감을 받아 스스로 글을 쓴다. 오스틴에 관한 역사적 안내서와 비평부터 제인 오스틴 뱀파이어 소설까지. 사실 오스틴과 관련된 것이라면 무엇에든 호들갑을 떨며 열광하는 이들의 경향은 토머스 하디나 조지 엘리엇 같은 18세기 영국의 다른 소설가들을 추종하는 사람들보다 ‘해리 포터’나 ‘트와일라잇’, ‘반지의 제왕’ 같은 대중문화 열성 팬들과 더 닮았다.하지만 제인아이트 그룹 내에서도 갈등과 격렬한 논쟁이 벌어진다. 헌신적인 오스틴 학자들은 모슬린 드레스를 차려입고 콜린 퍼스의 ‘젖은 셔츠 신’에 탄성을 지르는 경박한 팬들이 “논의의 수준을 떨어뜨린다”고 경멸한다. 또 오랫동안 오스틴을 숭배해온 열성 팬들은 엠마 톰슨의 ‘센스 앤 센리티’나 귀네스 팰트로의 ‘엠마’등 영화 한 편에 혹해 오스틴 추종자 대열에 합류한 사람들을 우습게 여긴다.예피의 말을 들어보자. “영화는 제인 오스틴을 과거 어느 때보다 대중과 가깝게 만들었다. 팬층의 기반을 확장하고 오스틴의 매력을 다각화했다. 하지만 난 고교 시절 자신이 속한 그룹에 아무나 들어오지 못하도록 신경을 곤두세우며 심통을 부리던 못된 여자애가 된 듯한 기분이다.”할리우드에 오스틴 열풍이 절정에 달했던 1998년 당시 JASNA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제인 열병은 즉흥적인 제인 전문가들을 생산했다. 오스틴에 관한 그들의 지식은 영화 한두 편을 보거나 소설 한 편을 읽은 게 전부다. 이런 부류를 조심해야 한다.”하지만 어떤 부류가 “제대로 된 제인아이트”인지에 관한 논쟁은 오스틴의 생애와 그녀가 만들어낸 캐릭터들의 진정한 내적 본성에 관한 논쟁에 비하면 약과다. 오스틴이 행복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란 “자신감 있고 삶에 만족하는” 여자였다고 생각하는 쪽과 경계성 인격장애를 앓는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분노에 차고 반항적인” 인물이었다고 보는 쪽이 팽팽하게 맞선다. 또 오스틴이 체제전복적인 사고를 지닌 여권주의자이자 “불안정한 아이러니”의 대가라고 생각하거나 “영국적 가치관”의 수호자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재치 넘치는 입담이 ‘리얼리티 바이츠’(1990년대 로맨틱 코미디) 세대를 연상케하는 그녀는 냉소적인 인물이었을까? 아니면 1·2차 세계대전 사이의 독자들이 생각했듯이 “강인하고 현실적인” 인물이었을까? 또 그녀는 캐릭터 창조와 플롯 구성의 대가였을까? 아니면 헨리 제임스의 비유대로 “정원 나뭇가지에 앉아 지절거리는 개똥지빠귀”처럼 그녀의 이야기들은 그저 타고난 재능의 결과일 뿐일까?오스틴이 창조한 등장인물들의 해석에도 유사한 논쟁이 따라다닌다. 다시는 잘난 척하는 특권층의 속물일까, 한 언어병리학자가 강력히 주장하는 대로 자폐증을 앓고 있었을까? 또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장한 대로 ‘맨스필드 파크’와 ‘설득’의 특정 캐릭터들이 서인도제도의 노예무역에 관여했을까? ‘맨스필드 파크’의 도덕적이고 바른 말만 하는 여주인공 패니 프라이스는 또 어떨까? 한 오스틴 리스트서브(특정 그룹 전원에게 메시지를 이메일로 자동 전송하는 시스템)는 신입회원들에게 이런 경고문을 보냈다.“미스 프라이스에게 다음과 같은 표현을 함부로 쓰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하찮은’ ‘고고한 척하는’ ‘나약한’ ‘따분한’ ‘자신감 없는’ 등등. 이런 표현이 꼭 객관적으로 틀렸다가보다는 미국 대법원에서 ‘도발적 언사’로 규정한 단어들이기 때문이다.”과거의 오스틴의 열성 팬들은 혼자 조용히 작품과 캐릭터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니면 기껏해야 몇몇이 모여 각자가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하며 공감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1995년 BBC 미니시리즈에서 체격 좋고 섹시한 콜린 퍼스가 다시 역을 맡으면서 제인아이트의 규모는 급증하기 시작했다(이 시리즈가 방영된 뒤 1년 동안 초튼을 찾은 관광객 수는 두배로 늘어 5만7000명에 달했다. 이들은 퍼스의 ‘젖은 셔츠 신’을 “숨막힐 정도로” 에로틱한 장면으로 꼽았다).그러나 제인 열병이 폭발적으로 확산된 것은 인터넷 덕분이다. 리스트서브 ‘오스틴-L’(진지하고 보수적인 오스틴 팬들을 위한 모임)과 웹사이트 ‘리퍼블릭 오브 펨벌리’(“퍼스의 젖은 셔츠 신”에 열광하는 팬들을 환영하며 15만 명의 방문객이 매달 500만~1000만회 방문한다)을 시작으로 인터넷 열기가 확산됐다. ‘오스틴프로즈’ ‘오스틴블로그’ ‘스티칭 위드 제인 오스틴’ ‘빗치 인 어 보넷’ 등의 블로그.‘퍽 예, 제인 오스틴’과 ‘제인 오스틴 라이언 고슬링’ 등 텀블러. (“이봐요 아가씨, 난 재산 많은 독신남이에요” 등의 메시지가 올라온다.) 그밖에 제인 오스틴 유튜브 드링킹 게임, 제인 오스틴의 파이트 클럽 비디오, ‘애스크 미스터 다시 매직 8-볼’ 앱도 등장했다. 또 다시와 엘리자베스 베넷, 대시우드 자매, 웬트워스 대령, 그리고 오스틴을 패러디한 트위터 계정도 수두룩하다. 오스틴은 ‘다크 제인 오스틴’, ‘제인 오스틴 NBA’ 등 다양한 아바타로도 등장했다.가족관계와 지역사회의 역학을 다룬 소설가 오스틴이 그와 유사한 동류의식을 지닌 온라인 세계를 탄생시킨 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예피는 이렇게 썼다. “이 웹 세계는 오스틴이 소설의 배경으로 삼은 시골 마을들과 유사하다. … 친절한 이웃과 불평 많은 괴짜들이 있는가 하면 수다스러운 주인공들과 아무 말 없이 지켜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웹사이트 ‘리퍼블릭 오브 펨벌리’의 설립자는 온라인이나 JASNA 무도회에서 다른 제인아이트를 만나는 기쁨을 “평생 알고 지낸 사람들을 처음으로 직접 만나는 기분”에 비유했다.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제인 오스틴 음모론을 쓴 플로리다의 변호사는 온라인 토론 그룹을 처음 발견했을 때의 기분을 이렇게 설명했다.“형언하기 어려운 황홀한 기분이었다. 마치 환각제를 먹은 듯한 기분이랄까? 다른 행성에 와 있는 듯 흥분됐다.” 오스틴 자신이 ‘설득’에서 썼듯이 “함께 하기에 가장 좋은 친구는 똑똑하고, 견문이 넓으며,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들이다.” 오스틴의 열성 팬 대다수가 인터넷에서 이런 사실을 통감한다.동시에 그들은 소설을 현실도피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오래된 충동에 빠진다. 1799년 오스틴이 23세가 된 지 한 달 뒤 에든 버러 매거진에 실린 글에 나와 있듯이 “우리는 똑 같이 반복되는 현실에서부터 소설이라는 구도 속으로 도망친다.”예피의 책에 등장하는 제인아이트 중 다수가 오스틴을 상상 속의 대안적 세계로 통하는 관문으로 이용한다. 그렇게 해서 그들은 경기침체와 실업, 학대 받는 결혼생활, 암으로 죽어가는 배우자, 자살한 부모, 외롭고 사랑없는 삶에서 도망칠 수 있다. (오스틴의 영국 투어에 나선 예피의 독신녀 동료 한명에게 한 학생이 “당신은 다시 같은 사람을 기다리는군요”라고 말한다.)오스틴의 작품 속에서 그녀의 팬들은 온갖 종류의 똑똑하고 대담한 여주인공과 가슴 뛰게 만드는 남자 주인공들을 만난다. 그 주인공들은 그들 내면의 최고의 자아를 반영하며, 그들이 애타게 찾는 강인하고 절조있는 남성과 순수하고 지적인 여성을 구현한다.젊은이들은 밀고 당기는 열정적인 구애에 마음을 쏟고, 남자들은 “당신이 내 영혼을 꿰뚫었소. 내 마음 속에선 고뇌와 희망이 교차한다오” 등의 문구로 이어지는 편지를 쓴다. 열정적이고 재치있는 농담과 아름다운 구애의 말이 오간다. 온라인 그룹 중에는 “제인 오스틴 소설에 나오는 남자 중 한 명과 결혼할래요” 혹은 “제인 오스틴이 내게 사랑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심어줬어요” 같은 이름이 수두룩하다.제인 오스틴 소설 속에는 “정신을 못 차리릴 정도로 한순간도 상대방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는, 매리앤과 윌러비 같은 수준의 사랑의 열병”이 많이 등장한다. 이런 사랑의 열병에 끌리는 쪽은 여자들뿐이 아니다. 예피는 여자들이 다시 같은 남자를 동경하듯이 남자들(물론 여자보다는 숫자가 적다)도 패니 프라이스 같은 여자를 찾아 헤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남자들은 또 메리 크로포드(‘맨스필드 파크’의 등장인물)를 수십년 동안 사랑해 왔다고 고백하는가 하면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자베스가 다시의 무례한 첫 번째 청혼을 신경질적으로 거절하는 장면을 자신이 읽은 책 내용 중 “가장 근사한 대목”으로 꼽기도 한다. 오스틴의 천재성은 캐릭터 창조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그녀의 캐릭터들은 복잡 미묘하면서도 생생해서 독자들의 마음 속에 살아 숨쉰다. 플롯 구성과 연인이 될 것 같은 캐릭터들을 계속 떼어 놓는 기술의 측면에서 오스틴은 음유시인들의 덕을 톡톡히 봤다.하지만 셰익스피어의 코미디 주인공들이 비극의 주인공들과 달리 입체감과 깊이가 없어 보이는 반면, 오스틴의 캐릭터들은 결혼이라는 필연적인 결과를 향해 달려가면서 다양한 측면으로 발전을 거듭한다. 그녀의 작품 속에서 결혼은 모든 마음의 고통을 달래주고 오해를 푸는 장치다. 주인공들은 꼭맞는 짝을 찾았다는 승리감에 기뻐한다.오스틴이 창조한 세계는 200년이 지난 시점에도 수많은 팬들이 한동안 살고 싶어하는 곳이다. 그곳엔 유머가 있고 감정이 넘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러트거스대의 한 학자는 예피에게 “제인 오스틴은 사람들이 반할 만한 글을 쓰는 뛰어난 문인”이라고 말했다. “문학작품은 읽혀지지 않으면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또 다른 학자가 말했다.궁극적으로 바로 이런 매력이 예피 같은 오스틴의 열성 팬들을 엘리자베스와 다시, 앤 엘리엇과 웬트워스 대령, 엘리노어와 매리앤 등에게 몇 번이고 되돌아가게 하는 힘이다. 예피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현실 세계에서 오스틴의 캐릭터들만큼 사랑하는 사람은 몇 안 된다. 난 그 친숙하고 멋진 이야기가 다시 한번 펼쳐지는 것을 보고 싶을 뿐이다.”오스틴의 캐릭터들은 21세기에도 여전히 잘 살아남을지 모르지만 젊은 시절 그녀가 살던 영국은 우리에게 아주 낯선 곳이다. 당시 영국은 오래 계속되는 전쟁(미국 독립전쟁과 나폴레옹 전쟁)에 연루돼 있었고, 정신병에 걸린 국왕(조지 3세) 밑에서 백성들은 가난과 계급 간 갈등으로 신음했다.로이와 레슬리 앳킨스는 ‘제인 오스틴의 영국’에서 이렇게 썼다. “목가적인 숲이 급속한 산업화로 변화를 겪은 시골 햄프셔(오스틴의 인생과 소설의 배경)부터 조지 왕조 시대의 시끌벅적한 런던까지 제인 오스틴의 영국은 결코 조용한 곳이 아니었다” ‘제인 오스틴의 영국’은 오스틴이 살았던 40년 동안 영국 사회의 풍속과 대변동을 추적한다.“산업화와 인클로저 운동, 그리고 무엇보다 높은 식료품 가격에 반대하는 폭동이 수없이 일어났다.” 정신병에 걸린 조지 3세를 대신해 “게으르고 제멋대로인 데다 낭비를 일삼는” 왕자가 나라를 다스렸다. 불만에 찬 운동가들은 프랑스 혁명을 지지했고 귀족들은 프랑스식 단두대 처형을 우려하며 두려움에 떨었다.이런 험한 사건들은 풍속과 결혼을 다룬 오스틴의 소설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 하지만 중상류층이었던 오스틴 집안의 오빠나 친척들이 해군에 징집되거나 정치적 사건에 휘말리는 등 이런 세태는 그녀에게도 분명히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제인 오스틴의 영국’은 섭정시대 영국의 역사를 학술적으로 다룬 서적이 아니다. 또 오스틴의 작품에 이런 거대한 변화들에 대한 그녀의 지식이나 의견을 나타내는 숨겨진 문구들이 있는지 분석하는 책도 아니다. 이 책은 제인이 잘 알았던 일들에 집중한다. 일상생활과 18세기 말~19세기 초 영국 시골에서 성장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회학적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 결혼식과 출산, 교육, 집안일, 패션, 교회 생활, 교통수단, 취미, 오락, 그 시대의 범죄와 의학, 장례의식 등을 상세히 다룬다.오스틴의 동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설교하고 기도했는지, 무엇을 먹고 즐겼는지 등을 보여주는 대목들이 흥미진진하다. 그 시대 여자들은 드레스 밑에 페티코트를 받쳐 입고 레이스 옷을 즐겨 입었다. 또 개가 울부짖으면 나쁜 일이 일어난다거나 하지 전날 밤 귀신들이 출몰한다는 미신을 믿었다. 경마와 투계 같은 스포츠를 즐기고 극장에 가서 연극을 보고 독서 클럽에 참여했다. 그리고 천연두와 말라리아 같은 전염병에 시달렸다. 오스틴과 그녀의 형제들은 그 시대의 풍습대로 마을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더 비셔의 제분소에서 아이들이 어떻게 착취당했는지, 펨벌리 같은 대저택의 살림은 어떻게 꾸려졌는지, 어떤 약초 치료법이 만병통치약으로 이용됐는지도 알 수 있다. 우리는 또 오스틴이 “패션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그녀는 런던에 갔을 때 포목점에 자주 들러 고급 모슬린과 실크, 다양한 색상의 리본을 구경했다. 그 시대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던 노상강도와 공개교수형 이야기는 등골을 오싹하게 한다.하지만 이 책의 진짜 강점은 오스틴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결혼식과 미혼 임신, 부와 사회계층의 복잡한 관계를 설명한 대목이다. 당시 영국에선 여성에게 토지 상속이 허용되지 않아 아버지가 갑자기 사망할 경우 미혼 여성은 빈곤층으로 전락할(오스틴도 이런 경우다) 가능성이 높았다.책은 이런 사회에서 결혼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녔었는지를 조명한다. 또 결혼시 부모의 동의가 필요한 나이에 부모의 허락을 받지 못해 스코틀랜드 그레트나 그린으로 도피한 커플들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오만과 편견’에서 베넷가의 막내딸 리디아도 이런 사랑의 도피를 계획한다.)이 책은 또 당시 미혼모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를 자세히 소개한다. 오스틴의 여주인공들에게 해를 입힌 위컴과 윌러비 같은 난봉꾼들의 피해자다. 그리고 자신보다 높거나 낮은 신분의 상대와 결혼하려 했던 남자와 여자들이 얼마나 심한 비난을 받았는지도 설명한다.여기서 우리는 오스틴의 캐릭터들을 움직이는 힘이 무엇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들이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는지, 또 평생 결혼하지 않고 오빠들의 도움도 받지 못했던 오스틴과 그녀의 언니 카산드라가 어떤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을지 말이다.갑자기 베넷가 딸들의 결혼 전망이나 에드워드 페라스와 프랭크 처칠의 약혼, 앤 엘리엇이 독신으로 살 가능성 등이 사랑과 실망, 기만의 문제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가난과 불명예, 파멸의 위협에 맞서 미래의 행복과 안정을 지키는 일과 관련된 문제였다.우리는 그 시대로부터 멀리 떨어진 곳에와 있다. 물론 심적 고통과 창피한 감정, 구애와 사랑의 스릴은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지만 말이다. 오스틴은 특정 시대와 장소의 상황을 정확하게 기록했다. 하지만 독자들이 비통한 마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사회적 풍자를 즐기는 한 그녀의 캐릭터들은 영원히 살아있을 것이다.오스틴은 세상을 떠나기 며칠 전 쓴 마지막 시에서 윈체스터의 수호성인이 자신의 축일에 추종자들이 경마를 보러 가버려서 화가 난 상황을 주제로 했다. 우스꽝스러운 주제처럼 보이지만 그 중 한 구절은 눈에 확들어온다. “사람이 땅속에 묻히면 영영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보라 나는 영원히 살지니!”오스틴은 2013년에도 분명 건재하다. 우리 모두 러드야드 키플링의 시구를 되새겨 보는 게 어떨까? “그녀를 만드신 주님을 찬미하고 그녀가 만든 모든 것에 대해 그녀를 찬양하라/ 윈체스터 거리에 돌멩이가 남아 있는 한/ 잉글랜드의 제인에게 영광과 사랑과 명예가 있으라.”

2013.08.27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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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맥주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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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덜란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그가 살던 레이던으로 가서 지내기로 합의를 봤다. 막상 가려니 덜컥 겁이 났다. 나로선 두 번째 이민이었다. 다섯 살 때 우리 가족은 홍콩에서 뉴욕으로 건너가 브루클린 빈민가에 정착했다. 방과 후 매일 차이나타운의 봉제공장에서 가족과 함께 일했다. 그런 까닭에 이민이라면 더는 환상이 없었다. 하지만 다시 낯선 곳으로 떠나게 됐다.이번엔 상황이 다르다고 나 자신을 타일렀다. 어쨌든내겐 하버드대 졸업장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진짜 두려움은 타지에 동화하는 나의 능력이 아니었다. 나는 얼마든지 적응할 수 있었지만 키152㎝의 자그마한 중국 여성을 네덜란드 사람들이 받아줄까?레이던은 키 큰 백인들로 가득해 보였다. 나무가 늘어선 운하 둑을 걸으면서 왜가리를 봤다. 왜가리라니! 나는 지하철을 타며 자란 도시소녀였다. 도시 생활의 잔인함과 삭막함에도 나는 뉴욕의 익명성과 거리를 가득 채운 다양성을 좋아했다. 내가 아는 동물이라곤 비둘기와 다람쥐 정도였다.남자친구는 중고 자전거의 짐 싣는 자리에 나를 태우고 자갈길을 달리며 레이던을 구경시켜주었다. 렘브란트의 생가를 보며 그는 “아주 오래 됐다”고 설명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살았던 클로크스테그 골목과 성베드로 교회 앞에서도 그는 “이곳 역시 아주 오래됐다”고 말했다. 많은 박물관, 성채, 식물원도 역사가 깊었다. ‘오래됐다’는 표현을 내가 어떻게 받아들였는지는 확실치 않다.그러나 길모퉁이를 돌자 기울어진 17세기 가옥 정면에 내가 너무도 좋아하는 E E 커밍스의 시가 손으로 크게 쓰여져 있었다. 그야말로‘오랜’ 친구를 만난 느낌이었다. 나는 레이던의 벽에 쓰여진 시와 사랑에 빠졌다. 셰익스피어, 릴케, 네루다 등의 시가 여러 집의 벽면을 장식했다.네덜란드 사람들은 분주한 쇼핑가를 거닐면서 간식을 즐겼다. 나도 그 맛을 알게 됐다. 파라핀 종이 고깔에 가득 찬 두꺼운 감자튀김.옥외 시장에서 갓 구워낸 커다란 웨이퍼(사이사이에 카라멜이 들어있었다).특히 나는 자동판매기 식당을 좋아했다. 슬롯에 동전을 넣은 뒤 유리 뚜껑을 열어 뜨끈뜨끈한 스낵을 꺼내 먹었다. 두툼한 쇠고기나 송아지고기 라구에 빵가루를 묻혀 튀긴 크로케트, 네덜란드식 소시지, 튀긴 치즈 페이스트리 등.레이던은 내 생각만큼 동질적인 사회가 아니었다. 레이던대학교의 영향이 큰 듯했다. 레이던이 스페인군의 포위공격을 받았을 때 그곳을 지켜낸 시민들의 공적을 기리려고 1575년 설립된 대학이었다.다양한 국가 출신의 학생들은 주민들과 갈등을 빚지 않았다. 양쪽 모두 파티를 좋아하기 때문인 듯했다. 10월3일(스페인군이 레이던 포위를 푼 날)이나 여왕의 날(4월 30일) 같은 축제일에는 모두가 거리로 나가 마시고 흥청댔다.하지만 나의 작은 키는 늘 신경이 쓰였다. 내 정수리는 화장실 거울의 아래쪽에 겨우 닿았다.붐비는 거리에서는 사람들의 머리를 거의 보지 못하고 몸통들 사이를 헤쳐가야 했다. 그러나 자전거에 올라타면 그들과 다를 바 없었다.네덜란드 사람들은 종종 식료품, 애완동물, 보행보조기를 자전거에 싣고 한 손으로 사과를 먹으며 달린다. 자전거 실력이 사람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그들은 이해하지 못하는듯 그들은 속도를 내며 나를 향해 돌진했다. 그러면 내가 피하리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나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다가 건물도 들이박고 교수님들도 치었다.한번은 장난감 가게의 선반도 들이받았다. 남자친구는 나를 ‘레이던의 공포’라고 불렀다.마침내 레이던과 나는 서로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시와 맥주의 도시, 전통을 끈질기게 고집하면서도 미래를 지향하는 도시. 미국 대통령 여러 명이 레이던 청교도의 후손이었다. 렘브란트가 태어나고 처음 작업했던 도시다. 나에게도 레이던은 재탄생의 도시였다.

2012.09.2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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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vertising] 입소문 마케팅이 대세

산업 일반

솔직히 광고 때문에 멕시코 요리 부리토를 먹고 싶어지진 않는다.치포틀레 멕시칸 그릴 광고는 썰렁하게 시작해 갈수록 삭막하다. 한 농부가 겨울이 다가올 즈음 돼지를 학대하고 물을 오염시키며 대형 영농업자가 되는 이야기다. 분량이 2분 20초에 달하며 완전히 스톱모션(사진을 이어 붙여 동영상처럼 만드는 기법) 인형극 형식이다(told entirely via stop-motion puppetry). 대화도 없이 컨트리 가수 윌리 넬슨의 으스스한 노래만 흐른다(only the spooky crooning of Willie Nelson). 치포틀레 로고는 끝에 가서 한번만 등장한다. 농장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 닭들이 햇볕 아래서 자유롭게 모이를 쪼아 먹는다. 농장을 떠나는 트럭에 그 멕시코 식당 체인의 로고가 새겨져 있다.어느 회사라도 그 광고를 퇴짜 놓을 이유는 수두룩하다(would have been killed for any number of reasons). 재미가 없고 정치적이다. 방송하는 데 돈이 많이 든다 등등.하지만 유행할 가능성 또한 있었다. 그래서 노련한 제작 책임자 마크 크럼패커(49, 지금은 그 회사의 광고 책임자가 됐다)는 값비싼 TV 광고로 도박을 하는 대신 유튜브에 먼저 올렸다. 그 동영상은 조용히 그리고 꾸준히 입소문을 탔다(went viral). 광고에서 넬슨이 부른 노래 ‘The Scientist’를 처음 발표했던 밴드 콜드플레이는 1800만 명에 달하는 페이스북 팬들에게 그 동영상을 추천했다. 트위터에서 화제에 올랐다. 음식 블로그, 음악 블로그, 이어 광고 블로그에서 모두 호평을 받았다(all chirruped their approval). 치포틀레가 지속가능한 농업을 중시한다는 메시지는 어쨌든 먹혀 들었다.온라인 반응에 고무된 크럼패커는 ‘다시 원점으로(Back to the Start)’라는 제목으로 미국 각지의 영화관에 그 광고를 올렸다. 관람객들의 박수갈채가 터졌다는 소식이 현장에서 들려왔다. 유튜브 시청건수가 500만 회를 돌파했다. 마침내 확신을 얻은 그 부리토 체인은 지난 2월 회사의 18년 역사상 처음으로 전국 TV 광고를 계약했다. 그래미상 시상식 중 3900만 명이 광고를 시청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치포틀레 광고가 인기를 독차지했다(stole the show)는 평가를 받았다.비록 정통은 아니지만 치포틀레 커머셜은 훌륭한 광고의 미래를 보여주는 하나의 전형으로 보인다. TV에는 조크, 활자매체에는 말장난(wordplay), 웹에는 애완동물 등 매체마다 효과적인 기법이 따로 있다는 기존 통념을 무시하고 대신 치포틀레는 모든 매체에 통하는 단 하나의 호소력 있는 아이디어에 초점을 맞췄다(focused on a single, piercing idea that works on all of them). 그리고 단순히 기발함과 익살뿐 아니라 가치 있는 작품을 시험하는 수단으로 인터넷을 활용해 위험부담이 있는 마케팅에서 위험요소를 제거했다.옛날에는 광고가 비교적 단순한 업무였다. 활자매체 지면과 방송시간을 사들이고 광고를 제작해 포로가 된 소비자(captive audience)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면 그만이었다. 요즘엔 상당히 복잡해졌다(it’s chaos). 수동적인 시청자는 여전히 있지만 대부분 DVR 리모컨으로 광고를 건너뛰며 무엇을 소비할지 직접 알아보고 선택한다. 광고가 콘텐트에 더 가까워졌다. 좋은 광고는 소비자를 참여시키는 데 목표를 둔다. 소비자가 e-메일, 트위터, 페이스북을 통해 광고를 친구들에게 전달하고 그들이 다시 친구들에게 전달하는 과정이 반복되며 퍼져나가기 때문이다. 광고업계에서 ‘입소문(viral)’은 사람에게서 사람에게로 전파되며 스스로 탄력이 붙는(acquiring its own momentum) 모든 광고를 묘사하는 모호하면서도 유용한 표현이 됐다.일부 업계 전문가들의 예측과는 달리 온라인 광고가 TV를 잠식하진 않았다. 하지만 TV에 손색없는 매체가 됐으며 여러 면에서 더 실질적이 됐다. 온라인에서는 고객을 단순히 돈을 주고 사는 게 아니라 확보해야 한다(the audience must be earned, not simply bought). 입소문 마케팅은 이제 우연히 운 좋게 되거나 지엽적인 전술이 아니다(Going viral is no longer a lucky accident or fringe tactic). 어떤 플랫폼을 이용하든 어떤 야심적인 캠페인을 실시하든 갖춰야 하는 기본조건이 됐다.“입소문을 타면 훌륭하고 ‘창의적인’ 광고라고 인정을 받는 셈(it’s ratification of it being good ‘creative,’)”이라고 크럼패커가 말했다. “하지만 입소문을 타지 못하면 ‘이런, 뭐가 잘못됐지?’ 하는 불안감이 생긴다.”글로벌 광고시장 규모는 5000억 달러로 추산된다. 그리고 생각해 보면 알겠지만 대부분 쓰레기다(dreck). 그런 허접스러운 메시지의 물결 속에서 눈에 확 띄는 광고(the ads that do break through the flood tide of pablum)는 몇몇 새롭게 뜨는 광고제작사에서 만들어 내는 경우가 많다. 오늘날의 스털링 쿠퍼 드레이퍼 프라이스(드라마 ‘매드맨’의 가상 광고대행사)인 셈이다. ‘위든 + 케네디’ 같은 몇몇 업체가 여러 해 동안 독창적인 인기 광고대행사들을 이끌어왔다(have led the “it” list of creative firms). 드로가5, 마더, 요하네스 리어나도 같은 후발 업체는 오늘날 아주 다양한 방식으로 미디어를 이용하는 소비자와 소통이 가능한 회사라는 믿음을 고객들에게 주느냐에 따라 순위가 오르내린다. 이는 2012년의 우수 광고대행사는 포천 500대 기업이든 신생 브랜드든 어떤 고객을 위해서든 온라인에서 인정 받는(get ratified online) 광고를 만드는 데 몰두한다는 뜻이다.지난 10여년 동안 입소문 광고는 이색 광고(버거킹의 맞춤 샌드위치를 광고하는 Subservient­Chicken.com 등)와 중저가 브랜드(downmarket brands)의 영역이었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2011년 가장 조회수가 많은 광고는 슈퍼볼 경기 때의 폴크스바겐 광고다. 유튜브에서 5200만 회의 조회를 기록했다. 이를 볼 때 입소문 마케팅이 비주류 기법은 아니라고 단언해도 무방하다.“입소문 마케팅은 일종의 틈새 전술(niche tactic)에서 시작해 모든 광고가 지향해야 할 이상적인 모델에 가깝게 진화했다(more of a statement about what all advertising should be). 그것은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공유하려는 광고를 의미한다”고 드로가5의 미술제작 책임자 데이비드 드로가가 말했다. 디지털 시대의 돈 드레이퍼(드라마 ‘매드맨’에서 광고사 중역으로 나오는 주인공) 격인 그는 실제로 수돗물(tap water) 광고로 상을 받은 호주 출신이다. 그의 광고대행사 고객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중동요리 후무스 제조사까지 다양하다. 활자매체로부터 TV, 광고판까지 모든 매체를 아우르지만 모두 기본적으로 온라인의 입소문 마케팅에 의존한다.이 광고대행사의 프루덴셜 광고를 살펴보자. 노후준비(수많은 광고가 난무하는 항목에서 몹시 따분한 주제) 광고를 어떻게 눈에 띄게 만들까? 드로가는 아이디어를 정한 다음 매체를 선택하는(to nail the idea, then pick the medium) 방식을 취했다. 우선, 인기 중장년 배우들이 골프를 치고 도표를 보며 미소를 짓는 흔해 빠진 이미지를 버리고, 실제 은퇴자(주름살이 있고 두려움과 희망을 가진 사람들)들을 찾았다.수백 명이 연금생활자가 된 첫날의 사진을 드로가5로 보냈다. 광고사는 그 사진들을 이용해 전국 TV 광고를 만들었다. 그 뒤 프루덴셜 개인 고객들을 소재로 한 웹사이트와 미니 다큐멘터리들을 제작했다. 온라인에서 100만 회에 가까운 조회수를 기록했다. 지난 2월 비영리단체 TED는 ‘첫날(Day One)’ 광고를 ‘보급할 가치가 있는 광고(Ads Worth Spreading)’ 콘테스트의 최우수작으로 선정했다.적합한 아이디어가 온라인에서 이룰 수 있는 성공 규모는 가늠하기 쉽지 않다. 2010년 위든 + 케네디의 마크 피츨로프와 수전 호프먼이 제작해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올드 스파이스 샤워 크림(body wash)의 예를 보자. 통상적인 TV 광고로 제작됐지만 유튜브에서 동영상을 찾는 사람이 늘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당신의 남자가 풍길 만한 남자 냄새(The Man Your Man Could Smell Like)’는 상당히 묘사하기가 어렵다.하지만 가슴근육이 탄탄한 남자가 타월을 두르고 나와 뛰어난 발성으로 입담을 자랑한다(a towel-clad man with great pecs and better elocution). 카메라를 뚫어지게 바라보는 그의 손에는 다이아몬드가 가득한 굴 껍데기가 들려 있다. 다이아몬드는 “당신이 좋아하는 것을 얻는 티켓 두 장”으로 변했다가 마지막으로 올드 스파이스 샤워 크림이 된다. 시시해 보이지만 이 광고 덕분에 올드 스파이스의 매출이 107% 늘어났다. 후속 광고에선 광고 캐릭터가 유튜브에 오른 개별적인 논평에 응답한다. 결과적으로 유튜브 사이트에서 그 브랜드의 총 조회수가 2억7900만 회를 돌파했다. 미국 프로 미식축구 슈퍼볼 시청자 수 2.5배에 약간 못 미치는 숫자다.입소문 정도를 측정하는 방법은 다수이며 어느 정도가 성공인지에 관해서는 의견이 제각각이다.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라는 평가가 50만 건에 달하면(또는 5만 심지어 1만 건이라도) 고객사의 제품광고 사이트가 입소문의 기본조건을 충족시켰다고 광고 대행사들은 자랑한다.유튜브 조회수가 100만 회인 동영상이나 1000만 회인 동영상 모두 입소문 마케팅의 성공을 인정받는다. 모두 상당히 자의적이지만 한가지 공통된 원칙이 있다. 그 마법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광고는(doesn’t pass the magic threshold)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간주된다는 점이다.광고제작자들은 메시지 전달이 주업이다. 따라서 내가 만난 거의 모두가 특정 어구(마치 모두 같은 메모를 읽은 듯)를 반복했다는 사실은 두 가지를 시사하는 듯하다. 입소문 마케팅이 대세이며 그들이 아직 그 의미를 제대로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광고는 이제 더는 일방통행이 아니다(is not just a one-way street anymore)”고 그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광고제작자들은 수십 년 동안 소비자의 귀가 따갑도록 메시지를 쏟아 부었다. 이제 소비자들의 손에도 맞고함 칠 메가폰이 생겼다. “전에는 편지에 ‘내가 산 포장 랩의 밀폐효과가 떨어진다. 제품이 엉망’이라고 써 보내는 게 전부였다”고 시애틀 소재 광고대행사 ‘웩슬리 스쿨 포 걸스(WSFG)’의 공동창업자 칼 매칼리스터가 말했다. “이젠 100만 명의 팔로어를 둔 사람이 그 내용을 트위터에 올리는 시대가 됐다.”라디오든 디지털이든 소변기 위의 스티커든 상관 없다. 광고가 어디에 등장하든 이제 소비자들은 소셜 미디어를 통해 반응한다. 동기만 주어진다면 소비자들이 한 브랜드를 장악하고 아무리 뛰어난 마케팅 전략이라도 무용지물이 되도록 이미지를 바꿔 놓을 수 있다. 기업들이 자기 브랜드의 유일한 주인 행세를 못 하게 되는 시대가 왔다.이는 기존 광고전략가들에는 겁나는 일이다. 그러나 아무리 겁나는 일도 일단 길들이면(once harnessed)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특히 그 매체가 디지털일 때는 더더욱 그렇다. 소비자 반응을 유도하는 광고를 냈는데 좋지 않은 쪽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다면 최악의 PR이다(a PR disaster). 그러나 소비자에게 호응을 얻는다면 다 죽어가던 브랜드도 살려 낸다(can defibrillate even the most listless of brands). 일례로 부진에 빠져 있던 스키틀 캔디도 TBWA\Chiat\Day의 이색 동영상 시리즈로 ‘무지개를 맛보자’ 슬로건이 활기를 되찾았다.입소문 관리(일종의 계획된 디지털 전파)가 경쟁력을 갖춘 모든 광고대행사의 기본 조건이 됐다. 요즘엔 대부분 ‘공동체 관리자(community managers)’를 둔다. 직함은 따분하지만 소셜 네트워크를 병적으로 추적하는 일을 맡는다. 고객 브랜드의 인지도가 높아지면 우호적인 내용을 부각시키고(가령 긍정적인 블로그 메시지를 퍼뜨린다), 고객의 이미지가 나빠지는 내용은 진화하려 애쓴다(트위터에 비난 메시지를 올리는 고객에게 즉석 환불을 해주는 식이다). 그들의 청진기는 대단히 감도가 높다. “단 하나의 트위트로 제품이 흥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한다(We have won and lost business based on a single tweet)”고 매칼리스터가 말했다.카지노 같은 매력(casino allure)을 지닌 소셜 미디어 광고는 디지털 전문 광고대행사의 젊은 세대에게는 유망한 특기 분야다. 하지만 디지털을 전문으로 하는 데는 한가지 문제가 따른다. 옛날 사람들 말마따나 망치 하나만 손에 들고 있으면 모든 문제가 못으로 보이게 된다는 점이다(if all you have is a hammer, every problem looks like a nail). 잰 제이컵스(41)와 레오 프레머티코는 2007년 광고대행사 요하네스 리어나도를 설립했다. 당시 그들은 여느 디지털 광고대행사와는 다르다는 점을 중점적으로 부각시켰다. “이 문제가 10년 동안 고객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다. ‘디지털 광고대행사에는 어떤 일을 맡기고 전통 광고대행사에는 어떤 일을 맡기지?’” 어느 날 아침 뉴욕에서 아침식사를 함께 하며 듬성듬성 턱수염이 난 제이컵스가 말했다. “그런 사고방식으로 광고에 접근하지 않으며 지향하는 방향이 우리와 같은(we’d like to think we’re a part of) 현대적인 광고제작사들이 있다. 사람들은 디지털 광고대행사라면 해법도 디지털 방식이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사치&사치 제작팀 출신인 두 사람은 소비자가 바로 매체라고 공언하며 시대의 유행에 휩쓸리지 않으려 노력한다. 창업 4년째인 이 회사는 코카콜라, 구글, 바카디, 샤넬 등을 고객으로 뒀다.그들의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 중 하나는 디스카운트 의류 체인 대피스 광고다. 포르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미지를 흔한 풍경 속에 숨겨놓았다(hiding a borderline-pornographic image in plain sight). 이미지 조각들을 뉴욕시 지하철역 곳곳의 40개 포스터에 흩어 놓았다. 지하철 통근자들이 트위터에서 그 조각들을 다시 조합해 원래 이미지를 알아냈다. 몸이 후끈 달아오른 커플이 “스타일은 더 근사하고 값은 더 싼(More Bang/Less Buck)” 제품을 갖춘 대피스에서 구입한 옷을 막 벗어 던진 이미지였다. 유치하지만 이는 실제로 요하네스 리어나도의 고상한 이론과 맞아떨어진다(gibes with Johannes Leonardo’s lofty theory). “소비자의 호응을 얻는 작품을 만들어내면 야외광고가 디지털 작품이 될 수 있다. 소비자가 그것을 한 매체에서 다른 매체로 옮기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라고 프레머티코가 말했다.이런 사고방식이라면 요하네스 리어나도 같은 작은 광고사가 매출액이 십억 달러가 넘는 마틴 에이전시 같은 훨씬 더 큰 광고사와 결합할 수 있다.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 본사를 둔 마틴은 광고업계의 과거와 미래의 많은 부분을 보여준다. 1970년대와 80년대 메디슨가(뉴욕의 광고가)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걸작이 나올 수 있음을 입증한 광고제작사 중의 하나였다. 이들의 최대 걸작은 가이코(GEICO)라는 소규모 지역 보험사를 전국적인 대형 보험사로 키운 광고였다. 도마뱀붙이 한 마리와 차별에 민감한 혈거인 두어 명의 역할이 컸다(with the help of a spokes-gecko and a pair of politically correct cavemen).“‘광고’란 단어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우리가 광고를 만드는 건 분명하지만 지금은 하는 일이 훨씬 더 많아졌다”고 마틴의 최고제작책임자 존 노먼은 말했다. 찢어진 청바지, 턱까지 내려오는 로커 헤어스타일, 짙은 회색 아르마니 스카프 차림의 이 45세 남자는 실존 인물이라기보다 광고 속에서 광고제작책임자 연기를 하는 모델 같은 인상을 준다. “우리는 전에는 광고를 통해 스토리를 전달했다. 지금은 스토리를 만들어간다. 가상공간에 뭔가를 내놓으면(set something out there in the ether) 사람들이 그 위에 더 쌓아 올리고 추가하거나 가져가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더 큰 스토리가 만들어진다.”광고는 예술과 상업의 교차로에 존재한다고 알려졌다. 그리고 이 교차로에선 고속충돌이 많이 일어난다.혁신적인 광고의 제작은 실망과 피로와 논쟁이 되풀이되다가 마침내 환희에 찬 완성에 이르는 오랜 과정이다(long, discouraging, bleary, quarrelsome work, until it is joyously complete). 게다가 고객들이 “아냐, 너무 이상해, 너무 위험해”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광고제작책임자와 고지식한 기업 관리자 사이의 갈등은(conflict between the brilliant creative director and the stodgy business folks) 광고업계와 역사를 같이 한다. ‘매드맨’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줄거리이며 현실세계에서 매일 일어나는 일이다.“많은 브랜드가 지극히 평범한 광고에 만족한다(are most comfortable with sure mediocrity)”고 웰슬리의 매칼리스터가 말했다. 그의 광고대행사는 길거리에서 보면 중국집처럼 보이는 사무실에서 대형 고객사 대상의 톡톡 튀는 광고제작을 전문으로 한다. 가령 마이크로소프트의 직원모집 광고에는 자쿠지 욕조, 샌드위치 맨 광고, 베이컨을 굽는 포장마차를 등장시켰다. “모두가 안정적인 타율을 원한다(is looking for a guaranteed batting average). 높든 낮든 상관 없이 0.270의 타율을 기준으로 광고계획을 짜고자 한다. 좋은 점은 우리 같은 대행사들이 재미있고 눈에 확 띄고(break through the clutter) 보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 광고를 제작하기가 더 쉽다는 점이다. 따라서 우리는 홈런을 노리게 된다(That lets us swing for the fences).”디지털 기술은 신문 광고, 30초짜리 TV 광고 등 광고업계 인프라의 많은 부분을 파괴했다. 하지만 그만큼 광고가 좋아질 가능성도 더 커졌다. 신기술의 등장으로 보잘것없는 30초 광고를 건너뛸(fast-forwarding through crappy 30-second spots) 수 있게 됐지만 유튜브는 좋아하는 광고를 다시 불러내는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했다.“디지털 기술은 광고의 근본적인 역할을 바꿔놓는다. 광고가 그동안 2차적인 위치에 있었지만 이젠 1차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드로가5의 CEO 앤드류 에섹스가 말했다. “광고가 역설적으로 콘텐트에 더 가까워진다. ‘재미있고 흥미롭고 공유 가능하고, 사람들이 ‘야, 마음에 든다’는 말을 하도록 해야 한다. 광고가 더는 사람들에게 공해가 돼서는 안 된다(can’t be about bombarding people with pollution anymore).”결과적으로 광고업계는 이미 예전에 생각했던 산업이 더 이상 아니다. 그런 변화는 알고 보면 튀는 아이디어를 가진 광고제작 책임자와 고지식한 기업 관리자 모두에게 바람직했다.“전통적으로 보수적인 회사들이 지금은 좀더 모험을 감수해 평소 같으면 외면했을 아이디어를 시도하려 한다(try ideas they wouldn’t usually go for)”고 광고대행사 BFG9000을 설립해 프록터&갬블과 제과업체 마스(독창적인 스키틀즈 캔디 광고) 같은 기업들의 광고를 제작한 제리 그래프는 말했다. “10년 전의 프록터&갬블을 생각해 보라. 그렇게 보수적이었던 회사가 올드 스파이스 샤워 크림 광고를 승인했다. 실로 큰 변화다.”광고업계에 발을 들여놓으려는 창의적인 두뇌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The creative minds on the precipice of joining the industry like the sound of that). 리치먼드 소재 버지니아 코먼웰스 대학에 자리잡은 브랜드센터는 미국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광고학 대학원 프로그램이다. 종종 ‘포트폴리오 스쿨(portfolio school)’이나 ‘교양학교(finishing school)로도 불리는 이 학교에서는 커뮤니케이션학이나 미술사 등을 부전공한 학생들에게 광고계의 실무를 가르친다(how ad agencies actually work). 이곳의 졸업자는 BBDO나 매캔 에릭슨 같은 글로벌 광고제작사들에게 인기가 높다. 반면 학생들은 위든, 드로가5, 마더, BFG9000 등 새로이 뜨는 더 소규모의 광고제작사에서 일하기를 원한다.브랜드센터의 벽돌 건물은 19세기의 마차보관소(carriage house)다. 건물 내부를 감각적인 예술작업 공간으로 개조했다. 칸막이를 없애고(with open floor plans) 독창적인 학습 과제물을 벽에 걸어놓았으며, 애플 제품과 학생의 비율이 3대1에 가깝다. 지난 1월의 어느 날 아침 학생 40명이 이번 학기의 첫 디지털 포트폴리오 학습에 참석했다. 평균 나이 25세에 대부분 격자 무늬 셔츠 차림이었다. 학생들의 아마추어 작품들을 전시할 개인 웹사이트 구축법을 배우는 시간이다.이들은 수업을 제쳐두고 앞으로의 희망사항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애플과 나이키 광고 같은 명예의 전당 광고에 버금가는(rates with the hall-of-fame stuff) 독창적인 작품을 만들고 “남다르고 영감을 주는 작품을 만드는 능력”을 원한다고 한다. ‘판에 박힌 작업(hack work)’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at all costs) 피하고 싶어한다. “전에 봤거나 모방하거나 반복되거나 진부한 것, 실망스러운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다.무슨 뜻인지 감이 오지 않아(is not clear to me what that means) 구체적인 사례를 요구했다. 제프 비트컨(25)이 기다렸다는 듯이 답변을 한다. “TV를 켜보세요.” 학생들이 고개를 끄덕인다.그렇다면 좋은 작품은 어디서 찾나? “유튜브에 가서 광고를 본 적이 있나요?” 존 랜섬(27)이 물었다. “말하자면 일부러 어떤 광고를 보려고 간 적이 있냔 말이죠.” 물론 ‘올드 스파이스’ 광고. 나이키의 프로농구 직장폐쇄(the NBA lockout) 광고다.“그것을 보려고 일부러 찾을 만한 광고라면 필시 좋은 작품인 거죠.” 그가 말했다.번역 차진우

2012.03.28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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