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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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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시장 마찰’ 넷플릭스, 입지 좁아지자 달래기로 선회하나

산업 일반

넷플릭스(Netflix) 자회사 ‘스캔라인 VFX’가 한국에 1억 달러(약 1278억원) 규모의 영화제작시설 투자를 진행하기로 했다. 이를 두고 환영과 비판의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이번 투자 계획은 한류 문화 콘텐트가 세계적인 자본력·공급망·기술력을 만나 한차원 더 품질 향상을 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거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또 한편으론 넷플릭스가 해외 시장을 넓히는 과정에서 확대된 외국 업체들과의 갈등을 달래기 위한 포석이라는 시선도 받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20~22일)하고 있는 가운데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넷플릭스 자회사인 스캔라인 VFX가 한국에 6년간 1억 달러를 투자하는 내용의 사업계획을 밝혔다. 스캔라인 VFX는 시각특수효과(VFX) 기술로 영화·드라마 등 영상 콘텐트를 제작하는 전문 기업으로 워너브러더스·마블스튜디오·DC코믹스 등 세계적인 영화 제작사에 영상기술을 공급하고 있다. 최근 대표작으로 영화 ‘어벤져스’, ‘툼레이더’, ‘트랜스포머’, 이터널스,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 등이 있다. 넷플릭스 ‘카우보이 비밥’과 ‘기묘한 이야기’에서 선보인 특수효과 기술은 시청자들의 뇌리에 화제의 장면으로 기억되고 있을 정도로 업계에선 선두로 꼽히는 기업이다. 산업부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를 통해 스캔라인 VFX에 한국의 투자환경과 지원제도를 계속 알리며 투자를 제안해왔다. 산업부는 특히 한국의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상을 안내하며 콘텐트 제작 환경의 우수성을 강조해온 결과라고 설명했다. 산업부는 이번 투자는 시각특수효과 기술을 활용한 아시아 최초의 특수효과 영화제작 시설 투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이 이를 기반으로 콘텐트 제작의 아시아 허브로 성장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안덕근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은 “한류 콘텐트의 세계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이번 시각특수효과 투자 유치가 한국을 미디어 제작 강국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 한국에선 망 사용료 지급 문제로 법정 공방 중 하지만 스캔라인 VFX가 한국 투자를 결심한 배경엔 외국에서 망 사용료, 영업이익 해외 유출 등의 갈등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넷플릭스가 코로나19 대유행 상황과 맞물려 전세계에서 거액의 이윤을 빨아들이고 있으면서도 영업의 장이 된 해당 국가엔 재투자를 하지 않아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처럼 자금만 빼가고 있다는 불만을 사고 있어서다. 넷플릭스는 국내에선 망 사용료 지급 여부를 두고 SK브로드밴드와 팽팽한 법정 공방을 벌이고 있다. 넷플릭스 측은 망 사용료를 지급하라고 요구하는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 지난해 6월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한 상태다. 넷플릭스는 오픈커넥트(OCA 자체 콘텐츠전송망 시스템)를 통해 비용 지불 없는 방식으로 연결되므로 망 이용대가를 낼 법적 의무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SK브로드밴드는 기업 간의 거래는 유상 행위를 바탕으로 이뤄지므로 콘텐트 제공 업체가 인터넷서비스 제공 업체에게 망 사용료를 내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 스위스 자국 문화산업 투자 강제하는 법적 규제 외국에선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넷플릭스 같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기업이 이윤의 일부를 영업 대상이 된 국가에 재투자하도록 강제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스위스는 일명 ‘넷플릭스 법’을 마련해 국민투표에 부쳤다. 이 법은 지난 15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유권자 58%의 지지를 얻어 통과됐다. 넷플릭스 법은 스위스의 방송·영화·콘텐트 산업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다. 이 법은 넷플릭스 같은 세계적인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가 매출의 일부를 스위스 내 콘텐트 제작 관련 분야에 투자하도록 의무화하는데 초점을 두고 있다. 법은 이를 위해 OTT 업체가 스위스에서 올린 매출의 4% 정도를 스위스 내 영화 제작과 관련해 투자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스위스 현지에서 만든 콘텐트를 구입하거나, 스위스 현지에서 콘텐트를 만들거나, 스위스 현지에서 관련 투자에 참여하는 식이다. 법은 또한 OTT가 제공하는 콘텐트의 30% 정도를 유럽에서 만든 영화·드라마 등으로 채우도록 규정했다. 이 같은 스위스의 법적 규제에 넷플릭스는 “우리는 과거에도 스위스 콘텐트에 투자한 적이 있다”며 “규제 시행을 위해 정부와 협조하겠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아마존과 디즈니는 공식 반응을 내놓지 않고 있다. 박정식 기자 park.jeongsik@joongang.co.kr

2022.05.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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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혈과 순익

산업 일반

가족은 아시아에서 널리 영향력을 행사하는 거대 기업집단과 유명 상표의 핵심이다. 대한민국 삼성 그룹과 이 씨 가문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국경을 넘어 뻗어가는 자신들의 기업 제국을 이용하여 본국에 광범위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가 가문은 많다. 포브스는 이들 가문의 영향력을 알아보고, 또한 승계 및 경영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살펴보자는 의미에서 아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50개 가문의 목록을 만들었다.여기에서는 최소한 3대에 걸쳐 부를 형성한 가문만을 다루었다. 따라서 최초로 공개되는 이 목록에서는 홍콩의 리자청 일가처럼 한 나라 안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가문도 제외된다. 리자청의 아들들은 경영 일선에 있지만 손주들 중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이 목록에 포함된 가문 중 대부분은 세대 교체시에도 집단을 유지했지만, 기업을 분할하거나 서로 완전히 등을 돌린 가문도 있다. 예컨대 인도의 암바니 가문 항목에서는 2002년 부친의 사망 후 유산 대부분을 상속한 무케시와 아닐 형제를 묶어 설명했지만, 이 둘은 사업(및 기타 여러 가지)을 분할하기로 결정했다. 인도 가문은 50개 중 14개를 차지하여 어떤 기준에서 보든 가장 높은 비율을 보인다.본지는 이 목록을 만들기 위하여 500개 이상 가문의 정보를 면밀히 검토하고 수십 개 가문을 평가했다. 순자산 기준은 29억 달러 이상이 되었다. 자산 가치 평가에 적용된 주가와 환율은 9월 25일자 기준이다.해당 기업의 주식은 대부분 상장되어 있어, 한 가문이 경영권을 확보한 경우에도 여전히 외부 주주에게 책임을 진다. 인도 부르만 가문처럼 전문경영인을 영입한 경우라 해도 세대간 승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50개 가문 중 거의 반은 중국계지만, 개방경제 체제 안에서 수십억 달러를 동원할 수 있게 된 첫 번째 세대가 역사가 일천한 기업집단을 경영하고 있는 중국 본토를 주 무대로 활동하는 가문은 이 중에 없다. 중국에서든 다른 곳에서든, 앞으로도 이들 가문은 부를 유지하고 계속 키워나가야 한다는 과제에 직면할 것이다. ━ 1. 삼성 이병철 가문 266억 달러대한민국삼성 창업주 이병철의 장남인 이맹희가 폐암으로 사망한 지난 8월, 이 씨 일가는 그를 추모하기 위하여 한데 모였다. 이들 대가족이 한 곳에 모이는 일은 드물었다. 삼성의 역사는 부유한 지주의 아들인 이병철이 1938년에 대구에서 작은 상회를 설립했을 때 시작되었다. 창업주가 1987년 사망한 후 아들 이건희가 회장이 된 삼성그룹은 1990년대 들어 삼성그룹, CJ그룹, 신세계그룹, 한솔그룹 등 오늘날 이 씨 일가의 2·3세대가 경영하는 4개 기업집단으로 분할되었다. 일가 15명 이상이 경영하는 55개 기업의 매출액은 총 3350억 달러다. ━ 2. 리 가문 241억 달러홍콩광동주에서 태어나 1948년 홍콩으로 이주한 리자 오지가 처음 손댄 사업은 귀금속 거래와 환전이었다. 그는 다른 7명과 함께 자신의 첫 부동산 회사인 이터널 엔터프라이즈를 설립하고 샤틴 호텔 재개발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이후 그는 궈더성(5위), 펑징시와 함께 순훙카이를 세웠다. 1973년에는 스스로 헨더슨 개발을 설립했다. 1976년에 설립된 자회사 핸더슨 부동산은 이후 홍콩과 중국 최대 부동산회사로 성장했다. 관광, 가스, 투자 역시 그의 관심분야다. 자녀인 피터, 마틴, 마거릿은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피터는 중국 본토 사업을 관장하고, 마틴은 홍콩을 담당한다. 외손녀 크리스틴 리가 헨더슨의 포트폴리오 리스 부서 임원으로 근무하는 등 3세대가 경영 수업을 받는 중이다. ━ 3. 암바니 가문 215억 달러인도장남인 무케시가 뭄바이에 세계에서 가장 비싼 집을 짓기 몇 십 년 전, 디루바이 암바니는 더 나은 삶을 꿈꾸며 예멘의 한 주유소에서 일했다. 그는 1957년 인도로 돌아와 향신료와 실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그의 회사인 릴라이언스 텍스타일 인더스트리가 1968년에 출시한 섬유 브랜드 비말은 큰 인기를 끌었다. 2002년 디루바이가 사망한 후 두 아들 무케시와 아닐은 서로 불화를 겪고, 이후 제국은 분할되었다. (도입부 참조) 무케시의 쌍둥이 자녀인 아들 아카시와 딸 아이샤는 통신회사인 릴라이언스지오인포컴과 릴라이언스리테일의 이사로 일한다. 아닐의 아들인 자이 안몰은 릴라이언스캐피탈에서 일한다. ━ 4. 체아라와논 가문 199억 달러태국세계 최대급의 사료 및 가축 공급자인 차른 뽁판드(약자 CP) 그룹은 방콕의 차이나타운에서 시작되었다. 치아 엑 초르와 촌차른 체아라와논 형제는 처음으로 자기 가게를 열고 중국에서 수입한 종자를 태국 농가에 판매했다. 지금은 치아 엑초르의 아들인 다닌이 그룹을 이끌며 그의 세 형제 및 기타 친척이 일가의 재산을 나눠 갖는다. 그의 세 아들 모두 활동 중이며, 앞으로 다닌의 자리를 이어받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수빠끼찌는 CP그룹의 부회장으로서 중국 영업과 투자부문을 관장한다. 마찬가지로 CP그룹 부회장인 수파차이는 태국 3위 통신사업자인 트루코퍼레이션의 사장 겸 CEO이며, 나롱은 CP로터스코퍼레이션의 부회장이다. 다닌과 사촌지간인 끼앗 체아라와논 역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 5. 궈 가문 195억 달러홍콩궈 가문의 부동산 제국은 홍콩의 마천루에서 중국 본토 내 700만㎡ 이상의 부동산에까지 뻗어 있다. 궈더성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 본토에서 홍콩으로 이주하여 1969년에 펑징시, 리자오지(리쇼키)와 함께 순훙카이를 창업했다. 1972년에는 순훙카이부동산을 상장했다. 1990년 그가 사망한 후에는 아들들이 회사를 물려받았다. 장남 월터는 CEO 겸 회장을 역임하다 2008년에 가족들의 압력을 받아 사임했다. 그 후에는 그의 동생인 토머스와 레이먼드가 함께 회장 자리에 앉아 공동 경영했다, 2014년 12월에는 토머스가 시 공무원을 매수한 죄로 5년형을 선고받고 사임했다. 지금은 모든 혐의를 벗은 레이먼드가 그룹의 유일한 회장이다. 레이먼드의 아들 궈하오리가 그룹의 영업 및 프로젝트를 관리하며, 토머스의 아들 궈지후이는 전무이사다. ━ 6. 궈 가문 189억 달러싱가포르, 말레이시아1928년, 빈털터리 10대이던 궈팡펑은 중국 한 작은 마을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그는 1941년에 세 형제와 함께 홍룽을 창업했다. 현재는 이들의 자녀와 손주들이 자산 280억 달러를 보유하고 세계 각지에 영업망을 갖춘 기업집단 홍룽 그룹 지분 과반을 보유 중이다. 홍룽 그룹이 보유한 150개 호텔은 세계 20개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린다. 홍룽 그룹의 포트폴리오에는 아시아 최대급 금융서비스 회사, 최대의 소비재 및 산업용품 상사가 포함된다. 궈팡펑의 장남 궈링밍은 싱가포르 영업을 관장한다. 조카 궈링찬은 말레이시아 법인 대표다. 손자 셔먼과 궈이성은 계열사 고위경영진이다. ━ 7. 프렘지 가문 170억 달러인도프렘지 가문의 기업 와이프로의 역사는 현재 회장인 아짐 프렘지의 부친 모하메드 하샴 프렘지가 1945년에 웨스턴인디안베지터블프로덕트를 설립하고 땅콩으로 식용유를 생산하면서 시작했다. 1966년 모하메드가 사망하자 아짐은 학업을 포기하고 가업을 이었다. (나중에는 공학 학위를 취득한다) 이후 비누 같은 품목을 새로 취급하기도 했지만, 가문이 부유해진 것은 사업영역을 소프트웨어 산업으로 적시에 확장한 덕분이었다. 아짐은 회사 이름을 와이프로로 바꾸고 데스크탑 컴퓨터 조립과 소프트웨어 서비스 공급을 시작했다. 전 세계의 관심이 컴퓨터의 Y2K 문제 해결에 집중되던 2000년까지 와이프로는 인도 첨단기술 업계 전체가 그랬듯 큰 이익을 거두었다. 그 해 아짐은 뉴욕 주식거래소에 와이프로를 상장했다. 아들인 리샤드는 와이프로의 이사로 재직하며 전략 부문을 이끈다. ━ 8. 차이 가문(금융) 151억 달러대만거대 금융서비스사 푸본금융은 창업주 차이완차이가 작년 10월 사망한 이후부터 그의 아들들인 대니얼과 리처드가 이끌고 있다. 이들과 사촌지간인 차이홍투는 형 차이정다 및 다른 가족과 함께 대만 최대 대출기관인 캐세이파이낸셜홀딩의 지분을 공유하고 경영한다. 형제 중 넷째인 T. Y. 차이는 2010년에 소유 지분을 형제들에게 매각한 후 자기 회사인 호맥스 이쿼티를 통하여 부동산에 투자한다. 홍투와 형제들은 부친 차이완린이 사망한 2004년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가난한 농가 출신인 완차이·완린 형제는 1962년 캐세이 보험를 개업했다가 1979년에 캐세이와 푸본을 나누어 가지며 서로 갈라섰다. 지금은 3세대가 떠오르고 있다. 홍투의 아들인 차이종셴과 차이종한은 캐세이의 부사장이고, 리처드의 아들 크리스는 푸본스포츠앤엔터테인먼트 사장이다. ━ 9. 힌두자 가문 150억 달러인도, 영국금융, 교통, 에너지, 첨단기술, 언론 등 다양한 영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집단 힌두자그룹의 경영자는 네 형제다. 힌두자그룹의 역사는 이들 형제의 부친인 파르마난드 딥찬드 힌두자가 인도 신드주(현재는 파키스탄 영토)에서 장사를 하다 1919년 이란으로 이주한 후 시작되었으며, 그룹 본사는 줄곧 이란에 있다가 1979년 아들들이 런던으로 옮겼다. 오늘날 그룹은 스리찬드와 고피찬드 형제가 런던에서 공동으로 경영한다. 프라카시는 제네바에, 아쇼크는 인도에 있다. 스리찬드의 딸 샤누와 비누, 고피찬드의 아들 산제이와 디라지, 프라카시의 아들 아제이와 람크리샨은 모두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 10. 미스트리 가문 149억 달러인도올해는 거대건설기업 샤푸르지팔론지그룹 창립 150주년이다. 팔론지 미스트리가 리틀우드팔론지 앤코를 설립한 1865년이 그룹의 시작이다. 회사는 1881년 주민에게 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뭄바이에 있는 말라바르 언덕에 저수지를 건축했다. 팔론지의 아들 샤푸르지는 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회사에서 일했으며, 타타그룹의 지주사인 타타선즈에 그가 투자한 소수 지분은 가문이 현재까지 부를 쌓는데 가장 크게 기여했다. 할아버지와 같은 이름을 지닌 3세대 승계자 팔론지는 인도와 페르시아 만에서 벌어지는 공사를 수주하여 큰 이익을 냈으며, 특히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는 술탄의 궁전을 짓기도 했다. 그는 2012년 아들인 샤푸르에게 일을 물려줬다. 작은아들 사이러스는 타타그룹 회장이다. ━ 11. 현대 정주영 가문 135억 달러대한민국정 씨 가문의 사업영역은 자동차, 선박, 건설, 보험, 유통업을 포괄한다. 가난한 소작농 가정에서 성장한 정주영은 1940년대에 서울에 자동차 정비소를 세우면서 왕조를 만들기 시작한다. 그는 전후 복구과정의 기회를 활용하여 1946년에는 현대자동차를, 1947년에는 현대건설을 설립한다. 한때 대한민국 최대 기업집단이던 현대는 현대자동차그룹, 현대중공업그룹, 현대그룹으로 분할되었다. 일가 재산 중 반 이상은 정주영의 차남인 현대자동차 회장 정몽구와 아들 정의선이 보유한다. ━ 12. 하르토노 가문 127억 달러인도네시아황웨이위안은 1950년에 자와틍아 주 쿠두스 시에 위치한 파산 직전의 담배 회사를 인수하고 이후 회사 이름을 자럼으로 바꾼다. 웨이가 1963년 사망한 후 아들인 로버트 부디와 마이클 하르토노가 기업을 승계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최대급 담배 제조사인 자럼의 COO는 부디의 장남 빅터 하르토노다. 시가총액 기준 인도네시아 최대 대출 기관이자 자산 기준 2위 은행인 뱅크센트럴아시아 역시 가문의 부를 구성한다. 하르토노 가문은 파린도인베스트먼트를 통하여 총 주식 중 47%를 통제한다. ━ 13. 시 가문 123억 달러필리핀헨리 시는 젊어서부터 가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했다. 그는 이후 조그마한 신발 가게를 열고, 이를 필리핀 최대의 쇼핑몰 개발운영기업 SM프라임으로 키워낸다. 현재 가문의 관심사는 금융에서 소매업까지 아우르며, 기존 쇼핑몰 주변에 ‘소도시’를 짓는 방식 등으로 성장 중이다. 시 가문은 필리핀 전역에 전기를 공급하는 민영 전력회사 내셔널그리드에도 지분이 있다. 자녀들 모두 경영에 참여하며, 매주 만나 다 같이 사업을 논하는 점심 식사 자리에는 모친도 가끔 참석한다. 손주 세대 역시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 14. 치라티왓 가문 117억 달러태국치라티왓 가문은 센트럴그룹을 통하여 소매, 부동산, 관광, 요식업을 영위한다. 가문의 부 중 65% 이상을 차지하는 센트럴리테일은 태국 최대급 소매업체다. 그룹은 2013년에 경영권을 잡은 최고경영자 토스 치라티왓의 지휘 하에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에서 점포를 열며 지역 내 영향력을 넓혀 왔다. 토스의 조부이며 중국 출신 가난한 이민자였던 띠앙 치라티왓은 방콕에서 처음 개업한 자기 가게에 켕셍레(바구니 판매)라는 이름을 붙였다. 20년이 지나 띠앙과 자녀들은 가게를 방콕 오리엔탈 호텔 근처로 이전하고 센트럴트레이딩 스토어로 개명한 후 신문, 잡지, 기타 상품을 판매했다. 띠앙의 아들 삼릿은 1957년 방콕 프라나콘에 태국에서 최초로 백화점을 열었다. ━ 15. 고드레지 가문 114억 달러인도118주년을 맞은 매출 41억 달러 짜리 소비재 기업 집단 고드레지그룹에서 일하는 고드레지 가문 사람은 9명이며, 그 중 아디 회장은 이 유명 그룹을 이끄는 3세대 경영인이다. 그룹의 역사는 1897년 아르데시르 고드레지가 변호사를 그만두고 자물쇠를 만들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918년에 식물성 기름으로 만든 비누를 세계 최초로 출시했다. 그 후 경영권을 이어받은 동생 피로즈샤가 뭄바이 교외에서 확보한 광대한 토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문 최대의 자산이다. MIT 출신인 아디는 1963년 입사하여 2000년 회장으로 취임했다. ━ 16. 정 가문 111억 달러홍콩정위통 가문은 홍콩 최대급 기업집단 저우다푸를 소유한다. 여기에는 아시아 최대의 귀금속 소매 업체와, 정위통이 1970년에 설립한 부동산 대기업 뉴월드디벨롭먼트 등이 속한다. 아들인 헨리가 사업을 주도하며 손자인 애드리언이 3세대 계승자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하나의 각광받는 인재인 손녀 소냐는 가문의 호텔 왕국을 이끈다. 정위통은 최근 건강이 좋지 않다고 한다. ━ 17. 궈 가문 109억 달러말레이시아, 싱가포르궈허녠은 1949년 말레이시아 조호르바루에서 설탕, 쌀, 밀가루를 거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오늘날 그의 궉 그룹에는 고급 호텔 체인 샹그릴라, 아시아 최대의 석유·가스 탐사 해양플랜트 운영 기업인 싱가포르의 PACC오프쇼어서비스홀딩스, 한때 일간지 중 세계에서 가장 많은 수익을 내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 수많은 기업이 속한다. 싱가포르 국적인 조카 궈콩펑이 운영하는 윌마르인터내셔널은 야자유를 생산하는 대기업이다. 궈허녠의 아들 중 궈콩옌은 샹그리라아시아 대표이며 궈콩청은 케리 그룹(그룹의 홍콩 및 중국 영업을 담당)의 부회장이다. 이 둘의 자녀들은 여러 그룹사에서 일한다. ━ 18. 사지 가문 108억 달러일본산토리 회장 사지 노부타다는 2014년 유력 주류 업체 산토리홀딩스의 CEO를 사임하고, 회사의 116년 역사상 처음으로 외부인에게 자리를 넘겼다. 산토리의 역사는 도리 신지로가 일본에서 서양식 주류를 생산하기 시작하던 189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리의 아들 사지 게이조는 1961년 회사를 이어받아 산토리를 음식점, 생수, 골프장, 영화제작, 포도원, 그리고 무엇보다도 주류로 사업영역을 넓힌 거대기업으로 변혁한다. 1990년부터는 조카 도리 신이치로가 경영권을 이어받아 11년 동안 경영했다. 자신은 비록 최고경영자를 사임했지만, 산토리 창업자의 증손자이자 상속자 자리가 한때 확고했던 도리 노부히로가 경영 경력을 더 쌓은 후에는 사지 가문이 다시 회사를 통제하는 것이 노부타다의 바람이다. 노부히로는 비알콜음료 및 식품업체인 산토리식품의 대표다. ━ 19. 미탈 가문 101억 달러인도라자스탄 주 출신인 모한 랄 미탈은 1950년대부터 제철업체를 가족끼리 경영하기 시작하였으며, 이 시기에 그의 아들인 락시미 미탈도 산업을 배우기 시작했다. 1976년 가문 안에 갈등이 발생하자 모한 랄은 아들 락시미를 인도네시아로 보냈다. 이곳에서 제철소를 세운 락시미는 이후 형제들과 결별하고 설립한 미탈스틸을 2006년 아르셀로와 합병하여 세계 최대의 철강회사(시가총액 90억 달러)인 아르셀로미탈을 만든다. 락시미의 딸인 바니샤는 스테인레스스틸 제조사 아페람의 최고전략책임자이며 아들 아디티아는 아르셀로미탈의 최고재무책임자다. ━ 20. 바오 가문 90억 달러홍콩해운업계 거물 바오위강의 후손이다. 바오위강이 사망한 1991년에 장녀 애너가 월드와이드해운(현재 BW그룹)을 상속했다. 그녀의 남편인 헬무트 조먼이 2010년까지 회사를 경영하며 가스, 해양 석유생산 및 저장으로 사업을 다각화했다. 현재는 이들의 아들 안드레아스가 경영을 담당한다. 바오위강의 차녀 베시는 부동산 및 인프라회사 워프를 물려받았으며 경영은 남편 피터 우가 담당한다. 예상 후계자는 지주회사인 휠록앤코의 회장인 아들 더글러스다. 삼녀 시시와 남편 와타리 신이치로는 기업보험, 무역, 고급승용차 판매업을 영위하는 일본사업부를 소유한다. 사녀 도린과 남편 정웨이젠이 물려받은 월드와이드인베스트먼트는 가문의 사적 자금도 관리한다. 바오위강은 상하이에서 은행원으로 경력을 시작한 후 고속 승진을 거듭하다가 1949년 공산당이 본토를 장악하자 홍콩으로 피난하여 해운회사를 세웠다. ━ 21. 카두리 가문 89억 달러홍콩카두리 가문의 관광 및 전력 사업은 바그다드에서 홍콩으로 이주한 유대계 이라크인 엘리 카두리 경이 지금으로부터 100년 이상 전 상하이에서 시작한 것이다. 아들인 로렌스와 호러스 카두리가 사업을 물려받아 제2차 세계대전 후 가문의 부를 재건하고 로렌스의 아들 마이클 카두리에게 물려주었으며, 현재 마이클은 홍콩앤상하이호텔과 CLP홀딩스의 회장이다. 처남인 로널드 매컬리는 홍콩상하이호텔의 이사이며 상당한 지분을 보유중이다. 카두리 가문은 유명한 페닌슐라 호텔과 빅토리아피크를 운행하는 피크트램의 지배 주주다. 이들은 자선사업으로도 유명하며 홍콩과 네팔의 댐, 교량, 농업 프로젝트와 학교 운영에 자금을 지원해 왔다. ━ 22. 비를라 가문 78억 달러인도간샴 다스 비를라가 방적공장을 건설한 1919년은 비를라 가문이 제조업으로 진입하는 분기점이었다. 이후 가문은 매 세대마다 새로운 사업으로 진출하며 확장과 분열을 거듭했다. 간샴 다스의 증손자 쿠마르 비를라는 선친의 이름을 딴 아디티아비를라그룹의 대표로서 지금까지 20년 이상 경영하며 금속·화학업체를 인수했다. 오늘날 매출액 410억 달러를 자랑하는 이 그룹은 여러 상표를 통하여 시멘트 제조에서 의류에 이르는 다양한 사업을 영위한다. ━ 23. 황 가문 77억 달러싱가포르황팅팡은 1934년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했다. 그가 엘리야 탐비(말레이시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한 사람인 아난다 크리슈난의 먼 친척)의 도움을 받아 세운 시노그룹은 3개 상장사와 다양한 비상장 기업의 지주회사 역할을 한다. 황팅팡은 2010년 사망할 때까지 오랜 세월에 걸쳐 싱가포르와 홍콩에 호텔, 쇼핑몰, 콘도 700개 이상을 지었다. 장남 로버트는 시노그룹 소속사로 홍콩에 상장된 침사추이부동산 회장이며, 차남 필립은 시노그룹의 자매사인 싱가포르 부동산회사 파이스트오거나이제이션을 경영한다. 로버트의 아들 대릴 황용광은 시노그룹 전무이사다. ━ 24. 차이 가문(식품) 69억 달러대만차이옌밍의 부친은 1962년 농산물통조림을 수출하는 소기업 이란식품공업을 창업했다. 이 회사는 이후 현재 차이옌밍이 회장으로 있는 스낵·음료 대기업 왕왕그룹으로 성장한다. 차이옌밍은 1996년 왕왕홀딩스를 싱가포르에 상장했다가 2007년 상장폐지하고, 2008년에 홍콩에 상장한 신설기업 왕왕차이나로 음식료사업으로 이전했다. 왕왕은 2009년 모국인 대만에 상장했다가 2013년에 상장폐지했다. 차이옌밍의 차남 차이왕자는 회사의 COO고 장남 차이샤오종과 외조카 정원셴은 이사다. 회사 주식은 홍콩증시에 상장되어 있다. ━ 25. 모리 가문 61억 달러일본도쿄 출신 교수였던 모리 다이키치로는 소규모 부동산 회사를 부친으로부터 물려받고 1959년 모리빌딩을 설립했다. 회사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이용하여 상업용 및 주거용 건물을 다수 건축했다. 다이키치로는 포브스 선정 1991년·1992년 세계 최고의 부호이기도 하다. 그가 1993년 사망하자 아들인 미노루와 아키라가 회사를 물려받았으나 이 둘은 1999년 회사를 분할한다. 미노루는 회사 이름을 승계하여 아시아 부동산 시장의 유력인사로 활동하다 2012년 사망했다. 재산 일부는 그의 부인 모리 요시코가 상속했다. 아키라는 도쿄 샹그리라 호텔 등 호텔 30개와 임대건물 88개를 운영하는 모리트러스트를 경영한다. 딸 다테 미와코는 모리트러스트의 호텔리조트 부문 대표다. ━ 26. 추 가문 60억 달러싱가포르추더바는 1986년 영국 스탠다드차타드은행을 로이드은행에 인수될 위기에서 구한 세 투자자 중 하나이며, 1960년에 말레이시아 메이뱅크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하다. 부친인 추양전이 투자한 싱가포르 은행들은 1933년 OCBC와 합병하였으며 추더바는 부친의 발자취를 따라 화교은행에 입사하여 은행업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호텔들을 매입하였으며, 이 중 싱가포르의 역사적 건축물이기도 한 굿우드파크는 지금도 그의 후손이 운영 중이다. 추 가문은 은행 관련 지분을 스탠다드차타드에 매각했지만 호텔 사업은 계속 보유하고 있다. 추더바의 딸인 메이비스는 추더바가 사망한 2004년 이후 현재까지 굿우드 회장이다. ━ 27. LG 구 씨 가문 59억 달러대한민국전자, 화학, 통신 등을 영위하는 대한민국 4위 기업집단 LG그룹 가문이다. 구인회가 1947년에 허만정과 공동 설립한 락희화학공업사는 원래 가정용품 제조사였다. 그룹 회장인 구본무는 창업주 구인회의 손자다. 구본무는 외아들이 1990년 대에 사망하자 동생 구본능의 아들 구광모를 양자로 들였으며, 지금은 구광모가 회장을 승계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본능은 LG그룹의 관계기업 집단으로서 전자 산업을 하는 희성그룹 회장이다. 구본무의 사촌들은 의류업을 하는 LF를 경영한다. 창업주의 조카들은 전력, 기계에 특화한 LS를 이끈다. ━ 28. 위자야 가문 58억 달러인도네시아으카 칩타 위자야는 어렸을 때 중국에서 인도네시아로 이주했다. 17살부터 과자를 팔던 그는 이후 1962년에 시나르마스를 창업한다. 현재 인도네시아 최대급 기업집단인 시나르마스는 펄프, 제지, 농업, 식품, 부동산, 금융, 에너지, 인프라, 통신 사업에 진출했다. 으카의 삼남 프랭키 위자야가 경영하는 골든아그리리소스는 야자유를 생산하는 대기업으로, 가문 소유 지분 중 가장 큰 수익을 낸다. 차남 황홍녠은 싱가포르에서 독자적으로 투자한다. 3세대 중 4명 이상이 그룹 안 다양한 분야에서 일한다. ━ 29. 바자즈 가문 56억 달러인도바자즈그룹은 마하트마 간디의 측근인 잠날랄 바자즈가 1926년 설립했다. 잠날랄의 장남 캄라나얀은 1942년 경영권을 승계하여 스쿠터 등 제조업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창업주의 손자인 라훌은 하버드에서 MBA를 취득한 후 1965년에 고향으로 돌아와 이륜차 사업을 담당했다. 그의 사업 감각 덕분에 인도인이라면 누구나 바자즈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라훌의 사촌인 니라즈, 셰카르, 마두르를 포함한 바자즈 가문은 여러 기업집단을 운영하다 2008년 라훌의 남동생 시시르가 설탕과 소비재 부문 경영권을 가지고 독립하면서 분할되었다. 현재는 라훌의 장남 라지브가 대표기업인 바자즈오토를, 차남 산지브가 금융을 담당한다. 시시르는 비를라 가문(22위) 출신 여성과 결혼한 아들 쿠샤그라에게 경영권을 이양하는 중이다. ━ 30. 부르만 가문 55억 달러인도 ━ 31. 로히아 가문 54억 달러인도네시아, 태국인도 출신 직물 거래업자 모한 랄 로히아는 1973년에 아들 스리 프라카시 로히아와 함께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1976년에 방적사 생산업체인 인도라마신시틱스를 창업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업영역은 석유화학으로 확장되었다. 환갑을 앞둘 무렵 모한은 기존 인도네시아 회사만으로는 세 아들에게 충분치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따라 장남 옴 프라카시는 인도 법인을 맡았고, 막내 알로케는 태국으로 떠나 현재 석유화학 대기업인 인도라마벤처스를 경영 중이다. 스리 프라카시는 2008년에 철강계 거물이자 처남인 락시미 미탈이 사는 런던으로 이주한 반면 아들인 아밋은 싱가포르에 자리 잡았다. 아밋은 그룹 이사로서 신규 프로젝트와 기업인수를 책임지게 되었다. 인도라마의 아프리카 지역 사업도 그의 관할이다. 인도라마가 나이지리아 등 서부 아프리카에 투자한 약 20억 달러는 해당 지역 석유화학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액 중 최고액이다. ━ 32. 워노위조요 가문 49억 달러인도네시아워노위조요 일족은 1927년 중국에서 이주했다. 친척이 운영하던 담배 회사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알려진 수르야는 1958년에 크레텍(정향담배) 제조사 구당가람을 세웠다. 그로부터 사반세기 후수르야의 장남 라크만 할림이 경영권을 승계했고, 그가 사망한 2008년부터 동생인 수실로 워노위조요가 경영에 참여했다. 지금도 수실로는 인도네시아의 주요 크레텍 생산기업으로서 약 60억 달러(시가총액 기준) 규모인 이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 33. 파텔 가문 48억 달러인도약학 교수였던 라만바이 파텔은 친구 인드라바단모디와 함께 1952년에 카딜라연구소를 설립했다. 이들의 첫 일은 빈혈치료용 비타민 생산이었다. 1975년에는 라만바이의 아들이며 약학을 전공한 판카즈가 카딜라에 합류했다. 모디의 아들이 입사하자 동업자들은 1995년에 분사하기로 결정했다. 파텔 가문이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를 참고하여 이름붙인 자이두스 그룹의 주력사는 카딜라헬스케어다. 2001년에 부친이 사망한 후 판카지가 회장이 되었다. 카딜라는 현재 매출액이 13억 달러로, 인도에서 손꼽히는 복제약 제약사다. 판카지의 아들로서 3세대인 샤르빌은 2007년부터 카딜라에서 일하기 시작하였으며, 현재 유명한 설탕대체품 슈거프리를 생산하는 자이더스웰니스의 회장이다. ━ 34. 황 가문 44억 달러싱가포르황칭창은 동업자 여섯 명과 함께 1935년 유나이티드차이니즈뱅크(현 유나이티드오버시스뱅크)를 설립했다. 아들 황주야오는 회장 및 CEO로 38년을 재직하며 UCB를 싱가포르의 지방 은행에서 동남아시아 제3의 대출기관으로 끌어올리고 2012년 회장에서 사임했다. 그의 장남 황이종은 지점 484개를 보유한 동남아시아 최대급 은행 UOB의 CEO다. 차남, 삼남인 황이차오, 황이린은 자회사를 경영한다. 현재 회장은 가문 외부인이다. ━ 35. 소벨 가문 42억 달러필리핀필리핀에서 역사가 오랜 기업집단 중 하나인 아얄라 그룹을 이끄는 것은 가문의 7세대다. 181년 전 마닐라에서 작은 증류소로 시작했던 아얄라는 현재 아얄라랜드, 뱅크오브필리핀아일랜즈, 글로브텔레컴, 마닐라워터 등 상장사의 지주사이자 필리핀 최대급 기업집단이다. 일곱 형제가 아얄라의 지분 3분의 1 이상을 보유한다. 장남인 하이메 2세가 회장 겸 CEO고, 그의 아들 페르난도는 사장 겸 COO다. 8세대 중 경영에 참여하는 사람은 3명이다. 소벨 가문이 보유한 아얄라 재단은 마카티 시의 아얄라 박물관에 재정을 지원하는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 36. 린 가문 41억5000만 달러말레이시아린 가문의 부는 말레이시아의 외딴 산지에 있는 빽빽한 열대우림을 유명한 휴양지로 바꿔놓은 故 린우통의 비전으로부터 나왔다. 1968년 창립했을 때 겐팅 그룹에는 호텔 및 카지노 하나밖에 없었다. 현재 그룹은 여러 나라에서 야자유, 전력발전, 석유가스, 부동산, 크루즈 사업 등에 다각화했다. 영국, 미국, 한국, 싱가포르 등 전 세계에 있는 카지노로 가장 유명한 겐팅 그룹은 현재 2세대인 린궈타이가 지휘한다. 그의 아들이자 승계 예정자인 린공후이는 겐팅홍콩의 최고정보책임자 겸 비서실장이다. 린우통의 부인을 포함하여 5명 이상이 재산을 공유한다. ━ 37. 살림 가문 41억2000만 달러인도네시아안토니 살림이 이끄는 살림 그룹의 사업 영역은 식품, 플랜테이션, 자동차, 부동산, 소매, 은행업이다. 안토니의 부친 린샤오량은 중국 푸젠성 출신으로, 1938년 인도네시아로 이주하여 의류를 방문판매하기 시작했다. 수하르토가 대통령이 되기 전인 1967년에 그를 만나면서 얻은 관계는 이후 오랫동안 린샤오량에게 큰 이익이 되었다. 수하르토가 1998년 하야하자 살림 그룹은 파멸할 뻔했다. 시간이 흘러 그룹은 재건되었고, 안토니의 아들이며 세계 최대의 인스턴트 라면 생산자인 인도푸드수크세스마크무르의 이사이자 유제품 부문 자회사 대표인 액스턴이 승계를 준비 중이다. ━ 38. 뤄 가문 41억 달러홍콩케네스 로는 부의 기원을 부친 뤄딩방이 세운 의류 대기업 보시니에서 찾는다. 케네스는 1970년 부인 이본과 함께 스웨터 공장을 세웠다. 지금 케네스는 세계적인 의류업체인 크리스탈 그룹의 대표이고 아들 앤드루는 CEO다. 반면 뤄자바오는 부동산에서 부를 일궜다. 주룽에 있는 파크 호텔 등이 그의 값진 재산이다. 변호사인 딸 웬디는 백화점 사업을 운영하고, 아들 앨런은 호텔을 경영한다. 지난 5월에는 다른 딸이 납치당했다가 몸값을 내고 돌아왔다. ━ 39. 궈 가문 40억5000만 달러싱가포르궈 가문은 폰티악랜드그룹을 통하여 싱가포르 리츠칼튼, 파티나, 카펠라, 콘라드센테니얼 등 고급 호텔과 밀레니아워크, 밀레니아타워, 센테니얼타워 등 최고급 상업시설을 소유한다. 궈량겅, 궈량더, 궈량청, 궈량핑 형제는 인도네시아에서 싱가포르로 1958년에 이주한 직물 상인 겸 부동산업자였던 부친 헨리 궈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았다. 궈량더 회장의 외아들인 에번은 카펠라호텔그룹 아시아의 이사다. ━ 40. 랄 가문 40억 달러인도랄 가문이 소유한 아이허모터스(Eicher Motors)는 로얄엔필드(Royal Enfield) 모터사이클로 유명한 인도 제3의 상용차 제조사다. 그룹의 기원은 만 모한(Man Mohan) 랄이 수입 트랙터 판매 및 서비스 회사 굿어스(Goodearth Co.)를 설립한 194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사는 1958년 독일 아이허 사와 합작하면서 아이허트랙터(Eicher Tractor)로 이름을 바꿨다. 만 모한이 독일에 유학 보낸 아들 비크람(Vikram) 랄은 30년 동안 그룹을 이끌었다. 이후 비크람의 아들 시다르타(Siddhartha)는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 모터사이클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당시 15개에 이르던 실적 부진 자산 대부분을 처분하고, 볼보와 합작하여 트럭을 만들었다. 그가 경영하는 동안 로얄엔필드 판매량은 2000년 2만4000대에서 작년에 30만대로 늘어나, 미국 대기업 할리데이비슨의 전 세계 판매량을 앞질렀다. 현재 회사의 모터사이클 부문은 전체 매출액 14억 달러 중 1/3, 순이익 중 70%를 차지한다. 비크람의 아내 아니타(Anita)와 딸 심란(Simran)은 인도에서 유명한 가정용품 상점 굿어스(Good Earth)를 경영한다. ━ 41. 펑 가문 39억 달러홍콩토미힐피거, 아베크롬비앤피치, 에어로포스테일 같은 서양 브랜드의 중개상으로 유명한 세계적 무역회사 리앤펑이 펑 가문 소유다. 가문이 중개자 역할을 한 지는 오래되었다. 1906년, 영어 교사였던 펑바이랴오는 지금의 광저우에 수출회사 리앤펑을 공동 설립한다. 영어가 유창했던 그는 중국 제조업자와 서양 구매자 사이에서 핵심 중개자가 되었다. 아들인 펑한주는 1937년 홍콩에 리앤펑의 첫 지사를 열었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펑바이랴오의 동업자는 자기 지분을 펑 가문에 되팔았다. 작년 매출액 197억 달러를 달성한 상장사 리앤펑의 경영자는 펑바이랴오의 손자 윌리엄으로, 형 빅터가 사임한 2012년에 회장이 되었다. 빅터의 아들이며 작년 중역이 된 스펜서는 이익이 2011년 정점에 이른 후 줄어드는 상황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임무를 맡았다. ━ 42. 반구르 가문 38억5000만 달러인도콜카타 재계에서 유력한 가문인 반구르 가문의 뿌리는 상품과 주식을 거래하기 시작한 문지 람과 람 쿠와르 반구르 형제로 거슬러 올라간다. 2·3세대가 경영에 참여하는 동안 그룹은 인도의 황마, 제지, 시멘트, 발전 등 분야에 진출하여 성과를 거두었다. 1991년 후계자 5명이 이 거대한 기업집단을 각자 나누면서 가문의 자산도 분할되었다. 후계자 중 가장 성공한 사람은 베누 고팔이며, 아들 하리 모한은 이익을 내지 못하던 회사를 인도에서 손꼽히는 시멘트 제조사 시리시멘트로 키워냈다. 하리 모한의 아들 프라샨트는 시리의 전략부서를 총괄한다. ━ 43. 진달 가문 38억 달러인도진달 그룹의 사업영역은 철강, 발전, 시멘트, 인프라, 소프트웨어다. 그룹 회장은 10년 전 헬리콥터 사고로 사망한 창업주 옴 프라카시 진달의 부인 사비트리 진달이다. 농가 출신인 옴 프라카시는 1952년부터 양동이를 만들었다. 1964년에는 히사르에 진달인디아라는 파이프 공장을 세웠고, 5년 후에는 진달스트립스라는 대규모 공장을 건설했다. 그가 사망한 직후 회사들은 네 아들 각각에게 분할 상속되어 독립적으로 경영되지만 모두 소속은 여전히 진달그룹이다. 아들 중 사지안은 뭄바이에 있는 자회사 JSW에너지를, 프리드 비라즈와 라탄은 각각 진달SAW와 진달스테인리스를 경영한다. 전직 국회의원이며 진달스틸앤파워를 운영하는 막내 나빈은 자르칸드 지역 석탄 광산 배정 비리 사건과 관련하여 인도 중앙수사국에게 고발당했다. 그는 혐의를 부인했으며 현재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옴 프라카시의 손자 파르드는 부친 사지안이 첨단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하려고 만든 신생 벤처캐피탈사 JSW벤처펀드를 운영한다. ━ 44. 아보이티스 가문 36억 달러필리핀세부에 본사를 두고 발전, 교통, 금융, 식품, 부동산 사업을 영위하는 상장 기업집단 아보이티스에 쿼티벤처스(AEV)가 이 가문 소유다. AEV는 스페인 농가 출신인 파울리노 아보이티스가 필리핀으로 이주한 후 19세기 후반에 세운 회사다. 회사 사업영역은 마닐라삼 매매 및 일반 상거래로 시작하여 이후 비사야 제도 사이에서 상품을 운송하는 국내 해운업으로 옮겨갔다. 아보이티스 가문은 1994년 AEV를 필리핀 증시에 상장했지만 건설과 조선업체는 비상장을 유지했다. 영업에 일상적으로 관여하는 가족 19명 중 대부분은 4·5세대다. 이 가문은 400명이 넘는 친척과 친목모임을 갖는다고 알려졌으며, 이들의 채용과 승진에 대해서는 규정에 따라 정식 절차를 밟는다. ━ 45. 라따나락 가문 35억 달러태국채널7 방송국이 소속된 곳이 바로 끄릿 라따나락이 경영하는 이 가문 소유 방콕브로드캐스팅앤티비다. 끄릿과 모친, 여동생 다섯, 아들 차촌이 나누어 가진 부는 끄릿의 중국 태생 부친 추안 때부터 쌓인 것이다. 6세일 때 방콕으로 건너온 추안은 항만노무자로 일을 시작했다. 이후 그는 아유디아은행와 시암시티시멘트의 주주가 되었다. 이 가문에도 2006년에 설립한 똔손프로퍼티라는 부동산 회사가 있다. 차촌은 가문 소유의 투자회사들을 경영한다. ━ 46. 문잘 가문 32억 달러인도92세인 히어로그룹(Hero Group) 창업주 브리즈모한 랄(Brijmohan Lall) 문잘은 현재 인도 최대 모터사이클 제조사인 히어로모터코퍼레이션(Hero MotoCorp) 명예회장이다. 브리즈모한은 1947년 펀자브 주에서 세 형제와 함께 자전거 부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들이 세운 히어로사이클(Hero Cycles)은 한때 세계 최대 자전거 제조사이기도 했다. 이후 이들의 사업영역은 자전거에서 모터자전거로 이동했다가, 1984년에 혼다(本田)와 합작하면서 모터사이클이 되었다. 이 가문이 2010년에 넷으로 나뉘면서 브리즈모한 집안은 혼다 합작법인을 맡아 경영하게 되었다. 1년 후 문잘 가문은 27년에 걸친 혼다와의 협력 관계를 청산했다. 현재 브리즈모한의 아들 파완(Pawan)이 회장으로서 경영을 담당하며, 손자들은 녹색에너지 및 금융서비스 벤처기업을 경영한다. ━ 47. 히라난다니 가문 31억 달러싱가포르나라인다스 히라난다니는 1947년에 현재 파키스탄에 속한 지역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고 직물업체인 로열실크스토어를 창업했다. 그가 당뇨 합병증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했을 당시 13세에 불과했던 장남 라즈 쿠마르가 경영에 갑작스레 참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동생 아소크 쿠마르가 합류한 후 형제는 회사를 번창하는 의류점 체인으로 성장시켰다. 임차료 상승 때문에 부동산을 처음으로 매입해 본 형제는 가게에서 힘들게 일하기보다 공간을 임대할 때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들의 회사 로열브라더스를 통하여 인도에서 손꼽히는 쇼핑몰을 여럿 소유하게 된 라즈와 아소크 쿠마르가 ‘쇼핑센터의 왕’으로 불리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형제는 6년 동안 복잡한 구조조정을 거친 후 원활한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기 위하여 2011년에 자산을 분할했으며 그 결과 회사는 둘로 나뉘었다. 라즈가 운영하는 로열홀딩스는 라즈의 아들 키신 R. K.의 RB캐피탈과 합병 예정이다. 부자는 함께 싱가포르에서 가장 높은 사무용 빌딩을 건축하고 있다. 아소크와 아들 바비가 이끄는 로열 그룹은 최근 힐튼 호텔로부터 객실 540개짜리 더블트리 호텔을 1억1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 48. 뤄 가문 30억 달러홍콩 ━ 49. 효성 조 씨 가문 29억5000만 달러대한민국조 씨 가문은 세계 7위 타이어제조사 한국타이어를 보유할 뿐 아니라, 이와 별도 기업집단인 효성그룹을 통하여 산업자재, 건설,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사업을 영위한다. 한국타이어는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 조홍제가 인수한 허름한 타이어 가게에 뿌리를 두고 있다. 1966년 조홍제는 섬유·직물 전문회사 동양나이론을 설립했다. 그는 사업 초기 여러 가지 시도를 했으며, 한 예로 현재의 삼성물산은 원래 1948년에 삼성 창업주 이병철과 함께 창업한 건설사였다. 현재 조홍제의 차남 조양래가 한국타이어 회장, 장남 조석래가 효성그룹 회장이다. 작년에는 원래 승계 예정자였던 조현문이 형 조현준을 횡령 혐의로 고발하는 등 조석래의 아들들 사이에 분쟁이 격화되었다. 효성 대변인은 혐의가 사실이 아니라고 밝혔다. ━ 50. 하미에드 가문 29억 달러인도마하트마 간디를 따르던 크와자 압둘 하미에드는 인도가 필수 의약품을 자급하게 만든다는 목표를 세우고 1935년 뭄바이에 시플라를 설립했다. 가장이던 그가 1972년 사망한 후 아들 유수프와 무스타파가 회사를 이어받았다. 유수프가 회장이던 시절, 회사는 AIDS 등 질병 관련 저가 복제약을 공급하며 대형 제약사와 경쟁했다. 유수프는 2013년 퇴임했지만 권한 없는 명예회장 자리는 유지했다. 1년 후 무스타파는 부회장 자리를 사임했다. 그의 딸 사미나 바지랄리는 7월에 이사회에 합류한 후 경영상 담당 분야를 넓혀가는 중이다.- KEREN BLANKFELD, GRACE CHUNG, JUSTIN DOEBELE, RUSSELL FLANNERY, NEERJA PAWHA JETLEY, NAAZNEEN KARMALI 포브스아시아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10.28 16:16

22분 소요
엔리케 라존 주니어 블룸베리 회장

CEO

블룸베리 그룹의 엔리케 라존 주니어 회장은 최근 필리핀에서 열린 포브스 글로벌 CEO 콘퍼런스에서 ‘부자가 되는 길’이라는 세션의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은 길을 가고 있다. 10~20년 뒤에는 내가 가는 이 길이 돈을 버는 길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마닐라에서 그를 만나 최근 그의 관심사가 된 복합 리조트 사업과 관련, 한국을 첫 투자지로 선정하게 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필리핀 최대 항만운영업체 국제컨테이너터미널서비스(ICTSI)와 복합 리조트 개발업체 블룸베리리조트코프(블룸베리 리조트)의 엔리케 라존 주니어(Enrique Razon Jr., 55) 회장은 올해 초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순위에서 52억 달러의 재산으로 291위에 올랐다. 필리핀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들던 이 억만장자는 하지만 6개월 만에 재산이 34억 달러(10월 18일 주식가치 기준)로 줄어들었다.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인한 항만의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 둔화로 ICTSI 주식이 올해만 36% 가까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존 회장은 이런 재산의 증감에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펀드 매니저에게 돈을 왜 맡깁니까? 그 돈으로 사업을 하면 내가 버는 돈이 더 많은데.”그는 돈이 있으면 그 자신이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한다. 라존 회장은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음에도 17살 때 학교를 자퇴하고 화물선적 회사에서 최저임금을 받으며 일한 것으로 유명하다. 필리핀과 사우디아라비아의 항만에서 현장 노동자로 일하다 꽤 빠른 나이에 승진을 했고, 20년 전인 1995년 지금의 ICTSI 회장직에 올랐다. 라존 가문은 제2차 세계대전 무렵부터 필리핀 항구에서 화물적재(cargo-loading)사업으로 부를 일군 재벌이다. 그리고 라존의 아버지는 그가 대학에 가길 원했지만, 라존이 “내가 하고 싶은 건 내가 안다. 교수들이 항만 사업에 대해 나에게 알려주진 못한다”고 학교를 박차고 나가자 아들을 최저임금을 받는 항만 노동자로 고용했다. 라존 회장은 1987년 ICTSI 창업 당시 부사장으로 근무를 시작했다. ━ 아무도 가지 않은 길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른다 항만에서 컨테이너와 선박을 관리하는 일을 배운 라존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가장 큰 교훈으로 “사람과 함께 일하는 법을 배운 것”을 꼽았다. 그가 최근 주력하는 대규모 리조트 관리는 ‘사람’을 관리하는 일이라 선박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힘들다고 했다. 유머러스한 그는 “컨테이너는 떨어뜨려도 불평하지 않는다”라는 명언을 남겼다. “많은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있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그는 카지노를 찾는 부유한 타짜 무리에게 반갑게 손을 흔드는 것보다는 항만 크레인을 운전하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공공연하게 밝혀왔다.그런 그가 카지노 사업에 진출한 까닭은 무엇일까? 바로 기회를 보면 놓치지 않는‘승부사 기질’ 때문이다. 필리핀의 카지노 사업은 그에게 기회였다. 2010년 싱가포르 정부가 마리나베이샌즈, 센토사 등 2개의 카지노 복합 리조트를 성공시켜 마카오에 이어 아시아 카지노관광 2위 국가로 부상하자, 아시아 각국마다 카지노 복합 리조트를 새로 건설하는 등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에 따르면 2010년 이후 아시아지역 카지노 사업 성장률은 27.4%로 세계 카지노 산업 성장률 5.5%의 다섯 배를 넘어섰다. 라존 회장 역시 VIP와 일반인 시장 양쪽에서 고른 매출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마닐라의 카지노 시장을 일찍부터 성공의 열쇠로 여기고 주목해왔다. ━ 필리핀에 ‘솔레어 리조트&카지노’ 개장 성공 2013년에 접어들자 필리핀 정부는 피라냐케 시와 마닐라베이 해안선을 따라 거대한 복합 리조트 타운인 엔터테인먼트 시티(Entertainment City)를 본격적으로 조성하기 시작했다. 인천 영종도처럼 인근 바다를 매립해 120만㎡의 부지에 마카오처럼 카지노를 포함해 MICE 산업과 레저를 한데 묶을 수 있는 대규모 복합 리조트를 도시 규모로 개발한다는 취지였다. 여기에는 국영기관인 파코(PAGCOR, The Philippine Amusement and Gaming Corporation)로부터 게임 라이선스를 취득한 복합 리조트 4곳이 입주할 수 있었다. 필리핀 정부는 마닐라 니노이 아키노국제공항(NAIA)을 중심으로 공항에서 리조트까지 1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직행 도로까지 계획했다. 마카오는 39%인 반면, 엔터테인먼트 시티는 15~27%로 비교적 낮은 세금률 역시 큰 장점이었다.세계를 여행하며 사업 아이디어를 수집하던 라존은 2007년 이 프로젝트를 진지하게 구상해야겠다고 결심했고, 이후 성공적으로 총 4개의 게임 라이선스 중 하나를 취득해 가장 먼저 엔터테인먼트 시티에 들어서게 됐다. 카지노 사업은 그가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분야지만, 그는 눈에 보이는 성공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고 했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에는 당연히 위험이 따릅니다. 위험이 따르지 않는 선택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총 비용 6억8400만 달러를 들여 건설을 시작했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라존 회장은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부호 쉘던 애덜슨이 마카오에 샌즈 마카오(Sands Macau)를 세울 때 영입했던 디자이너 폴 스틸맨(Paul Steelman)을 기용했고, 마침내 2013년 ‘솔레어 리조트&카지노(솔레어)’를 개장했다. 2014년에는 리조트 면적을 약 2배 증가시키는 스카이 타워(Sky Tower)를 완공하며 카지노게임과 무관한 시설까지 추가했다. 라스베이거스의 유명 디자인 회사 코헨트 디자인(Cohent Design)을 초청해 176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더 시어터도 개장했다. 뮤지션 스티비원더의 공연 뿐 아니라 한국 인기가수 빅뱅의 월드투어 콘서트 장소로도 쓰였다. 지금은 카지노와 호텔을 결합한 라스베이거스 초기 모델보다 가족단위의 관광객을 확보할 수 있는 복합 리조트로 기능을 강화하고 있다. 라존 회장은 “사람들이 솔레어라는 브랜드를 보면 우수한 품질과 서비스를 떠올리기 바란다”고 말했다. ━ 한국을 통해 글로벌 성장동력 확보 기대 그는 국제적으로 입지를 굳힌 ICTSI처럼, 필리핀에서 성공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솔레어’ 브랜드를 ‘세계적 수준의 카지노 리조트’로 키우고 싶었다. 한국, 일본, 아르헨티나 등에서 글로벌 확장을 계획하고 있던 그는 글로벌 성장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첫 해외 관문으로 한국을 선택했다.본격적으로 한국의 복합 리조트 사업에 뛰어들기 위해 블룸베리 리조트의 한국 현지법인 솔레어코리아를 설립했고, 데이비드 심(David Shim)을 대표로 영입했다. 심 대표는 삼성그룹, CJ 엔터테인먼트 총괄본부장을 지낸 인물로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사 스튜디오인 드림웍스 설립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최초의 멀티플렉스 극장인 CGV를 론칭한 인물이다.“한국은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는데, 그 중 제주와 인천에서 큰 가능성을 본다”는 라존 회장은 더 호텔 카지노를 운영하는 지앤엘의 지분 92%를 매입해 사명을 ‘제주 썬 호텔&카지노’로 바꿔 외국인 전용 카지노로 재개장할 예정이다. 제주 국제공항에서 5분 거리에 위치한 이 호텔은 2차 개보수가 12월에 끝나면 그랜드오픈할 예정이다. “한국에서도 특히 인천은 아름다운 주변관경이 가장 큰 경쟁력”이라고 말한 라존 회장은 올해 초 인천 경제자유구역(IFEZ)에 포함된 실미도(20만9600㎡ )와 무의도(12만2000㎡)의 너른 토지를 사들였다. 그가 추진하고 있는 ‘무의도 복합 리조트 개발 프로젝트’에는 한국의 계절성을 고려해 실외존(4만㎡)과 실내존(1만7000㎡)으로 구분한 테마 시설부터 실미-무의 지역의 자연환경을 만끽할 수 있는 다양한 스포츠 시설 도입까지 계획돼있다. 그는 “잠진-무의 연도교(섬과 섬을 잇는 다리)가 완공하면 본격적으로 공사를 시작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숙박·상업·문화예술·위락(카지노)·헬스·의료·테마 어트랙션· 회의시설 등을 포함한 ‘솔레어 인천 IR프로젝트’는 올해 상반기 골드만 삭스와 크레딧 스위스로부터 사업 2단계까지의 자금조달에 대한 투자의향서(Letter of Intent)도 받아냈다.마닐라 솔레어의 라존 회장 집무실은 1만8500㎡의 카지노 구역 위에 있다. 그렇다면, 라존 회장도 가끔은 내려가서 게임을 할까? 답은 “안 한다”였다. 그는 슬롯머신·바카라·블랙잭·폰툰 같은 게임의 ‘룰’은 잘 안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이 썩 훌륭한 게임 플레이어는 아니라는 걸 자신이 더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라존 회장은 언제나 이길 확률이 높은 게임에 승부수를 띄운다. 그게 사업이든, 도박이든 말이다.- 마닐라(필리핀)=임채연 포브스코리아 기자

2015.10.26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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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50대 부자] 50대 부자에게 닥친 중년의 위기

산업 일반

건국 50주년 기념 준비에 여념이 없는 싱가포르에 중년의 위기가 닥치고 있는 듯하다. 지난 분기 싱가포르 경제는 4.6% 하락했다. 제조업과 서비스업 모두 타격을 입었다. 특히 싱가포르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는 관광산업이 위축됐다. 2014년도 외국인관광객 수는 중국 관광객 수의 급격한 감소로 예상했던 1700만 명에서 3% 못 미치는 1500만 명을 기록했다. 지난 12개월 동안 싱가포르 달러의 가치는 9% 하락했다. 싱가포르 주식시장도 정체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싱가포르 50대 부호의 전체 자산 역시 경제위축에 타격을 입어 일 년 전보다 5% 가까이 하락한 923억 달러를 기록했다. 부동산재벌 로버트 응(Robert Ng)과 필립 응(Philip Ng) 형제가 경영하는 파 이스트 오거나이제이션(Far East Organization) 및 시노 그룹(Sino Group)의 매출은 2012년 이래로 무려 4분의 1이 곤두박질쳤다. 싱가포르의 거주용 부동산 부문은 정부가 지속해서 규제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 가운데 침체국면에 머물러 있다. 자산 규모가 41억 달러 가량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응 형제는 6년 연속 싱가포르 최고의 부호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싱가포르 내수 시장의 침체에 맞서, 응 형제는 지난 2년간 과시용인 트로피 자산을 사들이는 데 10억 달러를 지출하는 등 호주에서 닥치는 대로 자산을 매입해왔다.부호 순위에 오른 재계 거물 중 절반 이상이 응 형제와 마찬가지로 일 년 전보다 자산의 감소를 겪었다. 이 중 몇몇은 자산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경우로, 릉벵(Kwek Leng Beng, 2위), 쿠(Khoo) 가문(4위), 퀴(Kwee) 형제(7위) 그리고 호비 랜드(Ho Bee Land)의 추아티안포(Chua Thian Poh, 26위)가 포함된다. 이들의 자산이 감소한 데는 부분적으로 싱가포르 달러의 평가절하가 요인으로 작용했다.이처럼 암울한 상황에서 페인트 재벌 고청량(Goh Cheng Liang)의 약진은 주목할만하다. 올해 가장 높은 자산증가를 기록한 고청량은 보유하고 있던 일본 니폰 페인트(Nippon Paint)의 주식이 작년 한 해 무려 62% 상승하면서 3위에 올랐다. 소매유통업을 하는 림혹치(Lim Hock Chee, 36위)는 슈퍼마켓 체인 생시옹(Sheng Siong)이 신규매장을 열면서 자산규모가 증가했다. 싱가포르 달러의 절하에도 불구하고, 1년 전보다 억만장자 수는 26명에서 28명으로 증가했다. 보건의료기업 래플즈 메디컬 그룹(Raffles Medical Group)을 창업한 루춘용(Loo Choon Yong, 28위)은 아시아지역의 의료 중심지인 싱가포르의 위상을 십분 활용해 처음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올해 리스트에는 세 명의 부호가 새로 이름을 올렸는데, 작고한 홍콩 영화계 거물 런런쇼(Run Run Shaw)의 아들 쇼비멩(Shaw Vee Meng, 31위), 그리고 미국과 캐나다 이중국적으로 싱가포르에 거주하고 있는, 광산업에서 잔뼈가 굵은 기업인 로버트 프리들랜드(Robert Friedland)가 있다. 작년에 순위에 올랐으나 올해 탈락한 부호는 네 명으로, 이 중 한 명인 팽요크민(Pang Yoke Min)의 경우 유가의 대폭 하락에 따라 그의 소유하에 있는 해상선박 공급업체 퍼시픽 래디언스(Pacific Radiance)의 주가가 곤두박질쳤다.▲ 증가 , ▼ 감소, ◀▶ 변화 없음, ★ 순위 첫 입성, ∽ 순위회복1. 로버트 응 & 필립 응87억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63세, 기혼, 자녀 6명, 연령: 56세, 기혼, 자녀 6명싱가포르 부동산 시장 약세 및 홍콩 매출 감소로 부동산 재벌 형제의 자산은 40억 달러 이상 감소했다. 부동산 개발업체 파 이스트 오거나이제이션과 시노 그룹 부동산 제국은 2012년 이후 수입이 25% 감소하며 41억 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년간 형제는 호주에서 기업 대표자산이 될 만한 부동산을 낚아채며 사업 확장 중이다.2. 릉벵72억 달러 ▼ 수입원: 다양한 사업, 연령: 74세, 기혼, 자녀 2명자산시장이 침체기를 겪는 와중에도 그가 운영하는 시티 개발기업(CDL)은 2014년 28억 달러의 최고 연수입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17%나 상승한 금액이다. 해외 호텔에서의 매출 강세가 큰 힘이 됐다. 그러나 회장은 정부가 계속 자산시장을 규제한다면 고가의 호화 부동산을 급매 처리하겠다고 경고했다. CDL이 말레이시아 IOI 그룹과 함께 개발 중인 주상복합 프로젝트는 건축가 필립 스탁이 디자인한 654개 객실의 사우스 비치 호텔을 포함하고 있다. 호텔은 곧 완공된다.3. 고청량69억 달러 ▲ 수입원: 페인트 사업, 연령: 88세미디어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페인트 기업 재벌이 순위에서 네 계단 뛰어오르며 3위를 차지했다. 일본의 닛폰 페인트 홀딩스 보유 지분을 39%까지 늘린 후 주가가 급등한 덕분이다. 그의 아들 헙진(Hup Jin)은 닛폰 페인트 상무직을 역임하며 페인트 및 코팅 제품을 생산하는 비상장기업 닛폰 JV 닙시를 경영하고 있다. 닙시는 15개국에서 50여 개 생산공장을 두고 1만600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으며, 중국과 말레이시아, 인도 및 베트남 등의 시장에도 진출했다.4. 쿠 가문64억 달러 ▼ 수입원: 금융말레이시아에서 가치가 가장 높은 은행은 시가총액 230억 달러의 메이뱅크(Maybank)다. 메이뱅크 설립자인 작고한 은행가 쿠 텍 푸앗의 자녀 14명은 10년 전 스탠다드차타드 은행 보유 지분을 40억 달러에 매도한 후, 굿우드 호텔 그룹 경영과 자선활동에 집중하고 있다.5. 위 초 야우54억5000만 달러 ▼ 수입원: 은행, 연령: 86세, 기혼, 자녀 5명지난해 싱가포르 3위 은행 UOB 주가가 5% 하락하며 명예회장 위 초 야우의 순위 또한 5위로 떨어졌다. 자산시장 약세와 중국 성장률 둔화로 UOB는 역풍을 맞았다. UOB에서 그와 가족이 보유한 지분은 11% 정도다. UOB는 인도네시아 억만장자 모흐타 리아디가 보유한 릿포 그룹 자회사를 상대로 1억8100만 달러의 소송을 제기했다. 릿포 그룹 자회사가 매입자와 공모해 담보주택 가치를 높이 평가해서 더 많은 대출을 받아갔다는 주장이다. 릿포는 어떤 부정행위도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6. 에드와도 새버린54억 달러 ▲ 수입원: 소셜 미디어, 연령: 33세, 기혼브라질 출신의 페이스북 공동창업자 새버린은 2012년 미국 시민권을 포기한 후 싱가포르 주민이 됐다. 소셜미디어 부문의 거물 페이스북의 주가가 상승하며 그의 자산가치도 10억 달러 이상 상승했다. IT 벤처업체 투자자로 활동 중인 새버린이 최근 투자한 기업으로는 온라인 뉴스사이트 테크 인 아시아, 공항 렌터카 서비스 실버카, 인도 온라인 아동복 쇼핑몰 홉스카치 등이 있다. 6월에는 싱가포르에서 활동하는 인도네시아계 중국인 엘레인 안드리에잔센과 프랑스 남부에서 결혼식을 올렸다.7. 퀴 형제52억 달러 ▼ 수입원: 부동산형제 4명이 지분을 보유한 비상장 부동산 및 호텔 그룹 폰티악 랜드(Pontiac Land)는 현재 공사가 진행 중인 맨해튼 럭셔리 주거 프로젝트 53W53의 아파트 판매를 시작했다. 폰티악은 뉴욕 현대미술관 옆에 위치한 부지에 82층짜리 건물을 짓기 위해 휴스턴에 본사를 둔 부동산 개발업체 하인즈 및 골드만 삭스와 손을 잡았다. 폰티악이 보유한 139세대 아파트는 각 300만 달러에서 5000만 달러까지 가격이 책정되어 있으며 2018년부터 입주가 가능하다. 열렬한 예술품 수집가이기도 한 퀴 형제는 시드니 서큘러 키에 위치한 역사적인 토지국(department of Lands) 건물을 손에 넣기 위해 잉 형제의 파 이스트와 경합 중이다.8. 리처드 챈들러26억 달러 ▼ 수입원: 투자, 연령: 56세, 미혼뉴질랜드 시민이었다가 2006년 싱가포르로 이주해서 챈들러 코퍼레이션(Chandler Corp.)을 세웠다. 그가 운영 중인 투자펀드는 에너지와 금융서비스, 의료보건 부문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눈에 띄는 보유 자산으로는 뉴욕증시 상장기업 인터오일 코퍼레이션의 지분 19%가 있다. 인터오일은 파푸아뉴기니에서도 사업을 진행 중이다. 그 다음으로 유명한 보유 자산은 런던증시에 상장된 중국 가스업체 그린 드래곤 가스의 지분 25%다. 최근 중남미 에너지 개발을 위해 석유 및 가스 탐사업체 오리온 에너지를 공동 설립했다.9. 곽쿤홍25억5000만 달러 ▲ 수입원: 야자유, 연령: 65세, 기혼, 자녀 4명매출액 430억 달러의 농산물 대기업 윌마르 그룹(Wilmar International)은 원당(raw sugar)을 6억7000만 달러어치 대량 구매하며 다사다난했던 상품 시장에 파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최고경영자인 그는 미얀마와 에티오피아, 짐바브웨 등의 신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위해 합작사를 설립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상장 부동산 개발기업 페레니얼 리얼 에스테이트 홀딩스에 갖고 있는 지분이 증가하면서 그의 자산가치 추정치도 이전보다 상승했다.10. 라즈 쿠마 & 키신 RK24억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61세, 기혼, 자녀 1명, 연령: 32세, 미혼아버지와 아들은 각자의 소유 기업 로얄 홀딩스와 RB 캐피탈을 합병하는 과정에 있다. 2020년까지 총 보유자산을 80억 달러로 올리겠다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다. 부자가 함께 진행한 최근 프로젝트 중에는 싱가포르 최고층 건물 중 하나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60층짜리 사무용 건물이 있다. 로얄 홀딩스 본사 부지에 들어설 이 건물은 래플즈 플레이스 사무지구 중심에 위치해 있다. 내년 개장될 건물로는 300개 객실을 갖춘 파크 호텔과 파러 파크 메디컬 스위트가 있다. 두 건물 모두 리틀 인디아에 위치한다. 이 외에도 로버슨 키에는 227개 객실을 갖춘 5성급 인터컨티넨탈 호텔과 10만 제곱피트의 쇼핑몰이 함께 들어설 예정이다.11. 창윤충23억 달러 ▲ 수입원: 해운, 연령: 97세, 기혼, 자녀 14명순위에 오른 부호 중 최고령자다. 1967년 퍼시픽 인터내셔널 라인(Pacific International Lines)을 공동 설립했고, 이를 세계 최대 선사 중 하나로 키워냈다. 퍼시픽 인터내셔널이 현재 보유한 선박은 180척에 달한다. 창은 비상장 기업 퍼시픽 인터내셔널의 지분 94%를 보유하고 있고, 실제 경영은 아들 티오 시옹 센이 맡았다.12. 삼 고이20억5000만 달러 ◀▶ 수입원: 냉동 식품, 연령: 66세, 기혼, 자녀 4명싱가포르 ‘포피아 킹(포피아는 밀전병에 갖가지 야채와 해산물을 넣은 스프링 롤)’으로 불리는 그는 지난 18개월간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의 최상급 부동산에 4억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투자는 그가 회장으로 있는 상장기업 GSH를 통해 이루어졌다. 4월에는 GSH가 이끄는 컨소시엄이 에쿼티 플라자로 알려진 도심 사업지구에서 28층짜리 GSH 플라자를 재단장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가 가진 자산의 상당 부분은 식품 대기업 티이지아푸드(Tee Yih Jia Foods)에서 창출되고 있다.13. 피터 림20억 달러 ▼ 수입원: 투자, 연령: 62세, 기혼, 자녀 2명싱가포르 상장기업 로우슬리(Rowsley)를 통해 말레이시아 이스칸다르 지역에서 대규모 투자를 진행했으며, 최근 부동산 포탈 디엣지프로퍼티닷컴의 지분 20%를 인수했다. 새로운 투자사를 설립 중이라는 보도도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자신이 구단주로 있는 축구팀 발렌시아의 라이벌인 레알 마드리드 소속 축구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의 초상권을 매입했다.14. 옹벵셍 & 크리스티나 옹17억5000만 달러 ▼ 수입원: 다양한 사업, 연령: 70세, 67세, 기혼, 자녀 2명싱가포르의 ‘파워 부부’다. 호텔에서 패션까지 다양한 부문에서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홍콩의 휠록 그룹과 파트너십을 맺은 그의 회사 호텔 프로퍼티는 테마섹 홀딩스 등과 팀을 이루어 칼라일 그룹으로부터 4억5800만 달러에 런던 도심지구 부동산 두 개를 매입했다. 옹의 회사는 사무용 건물과 최고급 주거지구로 개발될 부지의 지분 30%를 보유하고 있다.15. 림 운 쿠인17억 달러 ▼ 수입원: 석유 거래, 연령: 71세, 기혼, 자녀 3명비상장 석유거래기업 힌렁 트레이딩(Hin Leong Trading)은 지분 65%를 보유한 원유저장시설 유니버설 터미널의 상장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시장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계획을 연기했다. 유니버설 터미널의 나머지 지분은 페트로차이나가 보유하고 있다. 힌렁 트레이딩이 사모를 통한 투자금 모집을 시도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16. 리셍위15억5000만 달러▼ 수입원: 은행업, 연령: 84세, 기혼오버시차이니즈 뱅킹 코퍼레이션(OCBC)의 전임 회장이자 주주인 리셍위는 가장 최근 분기에 7억3500만 달러의 순수익을 보고했다. 지난 8월 홍콩의 윙항은행을 회사 역사상 최대 금액 50억 달러에 인수한 결과다. 그러나 회사는 이런 성공에도 불구하고 중국 성장률 둔화가 향후 역풍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리는 50년 가까이 OCBC 이사회에 소속되어 있다.17. 아속 쿠마르 히라난다니14억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60세, 기혼, 자녀 2명10위에 오른 형 라즈 쿠마르와 4년 전 다른 길을 가기로 한 아속 쿠마르는 로얄 그룹 홀딩스를 빠르게 확장 중이다. 4월에는 아들 바비와 함께 콸라룸푸르 힐튼호텔 540개 객실 더블트리를 블랙록으로부터 1억1000만 달러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이들 부자가 가진 해외 부동산 포트폴리오에는 호주와 인도네시아 등의 자산이 포함되어 있다. 2년 전 매입한 215개 객실의 센토사 호텔은 소피텔 리조트로 대대적 리노베이션을 완성한 후 올해 재개장할 예정이다.18. 탕위킷13억7000만 달러 ▼ 수입원: 리테일, 연령: 60세, 기혼, 자녀 4명가족 자산을 관리하는 사모 투자사 탕 홀딩스(Tang Holdings) 회장이다. 가장 규모가 큰 보유 자산으로는 싱가포르 최고(最古) 백화점 탕스, 정자 모양 지붕으로 유명한 탕 플라자, 393개 객실의 메리어트 호텔 등이 있다. 탕 플라자 개장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탕 가문은 저소득층 아동교육 등 다양한 캠페인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19. 리엔 가문13억5000만 달러 ▲ 수입원: 은행업리엔 가문은 작고한 은행가이자 가문의 수장이었던 리엔잉초우의 이름을 딴 사모투자사를 통해 UOB 소수지분을 획득했다. 외부에서 리엔 가문을 대표하는 사람은 리엔 재단의 수장으로 있는 로렌스 리엔이다. 사촌 마이클 또한 사회운동가로 활발히 활동하며 인도차이나 지역 농부 소득이 하루 2달러 빈곤선을 넘도록 지원하는 비영리 재단 리프 201을 설립했다.20. 호 가문13억 달러 ▲ 수입원: 은행업작고한 은행가 호심관(Ho Sim Guan)으로부터 UOB 지분을 상속 받았다. UOB 지분을 보유한 사모투자사 타이탁 에스테이트에 대한 가문의 지분이 늘어나면서 이들의 재산 또한 증가했다. 지난해 이들은 중국에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개발사 퍼스트 스폰서 그룹을 상장시켰다. 호 가문은 가문의 홍렁 그룹과 함께 퍼스트 스폰서 그룹을 공동 소유하고 있다.21. 추 총 응엔12억5000만 달러 ▼ 수입원: 호텔, 연령: 62세, 기혼, 자녀 4명섬유 사업을 시작했다가 부동산 개발로 사업을 확장하고 이후 호텔 산업에까지 뛰어들었다. 가격에 민감한 여행자를 대상으로 한 저예산 호텔의 선두주자다. 그가 보유한 호텔 제국은 싱가포르 전체에 무려 5000개에 가까운 객실을 가지고 있다. 올해에는 싱가포르 경영대학 장학 기금에 150만 달러를 기부했다.22. 론 심12억 달러 ▼ 수입원: 리테일, 연령: 56세, 기혼, 자녀 3명가정용 마사지 의자를 대중화시킨 오심 인터내셔널(OSIM International)의 주가는 아시아 주요 시장에서의 매출 둔화로 46%나 하락했다. 1분기 매출은 13% 하락해 1억1100만 달러를 기록했고, 순수익은 53% 급감해 1000만 달러로 떨어졌다. 중국 매장은 전 세계 560개 오심 매장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부동산 지분 또한 보유하고 있다.23. 코위멩11억7000만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52세, 기혼, 자녀 1명호주에서 부동산 매입으로 1억5000만 달러를 투자한 부동산 재벌 코위멩은 지분 85%를 보유한 상장사 프래그런스 그룹에서 호주 부동산을 분리시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회사는 최근 주거용 아파트와 호텔로 구성된 멜버른 프리미어 타워 아파트 판매를 시작했다. 2월에는 동생 코위셍(42위)의 회사 아스피얼 코퍼레이션과 손 잡고 싱가포르에 상장된 LCD 글로벌 인베스트먼트를 2억3000만 달러에 매입하는 계약을 체결했다.24. 종 셩 지엔11억6000만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57세, 기혼, 자녀 5명중국에서 태어나 싱가포르 시민권을 얻은 그는 싱가포르에 상장된 얀로드 랜드(Yanlord Land)의 지분으로 지금의 부를 축적했다.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업체 중 하나인 얀로드 랜드는 10개 도시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중국 경제성장 둔화로 얀로드 주가가 하락하면서 그의 재산 또한 1년 전보다 감소했다. 3월 스탠다드앤푸어스(S&P)는 얀로드 신용등급을 BB-에서 B+로 하향 조정했다.25. 테이 가문11억5000만 달러 ▲ 수입원: 리테일, 자산인도네시아 혈통을 가진 가문이다. 비상장기업 메모코프(Memocorp.)를 통해 싱가포르와 호주에서 부동산을 매입했다. 가문의 수장으로 있는 테이 티 팽은 셔츠 생산업체 오션 가먼트와 OG백화점으로 대표되는 유통 대제국을 설립했다.26. 추아 티안 포11억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67세, 기혼, 자녀 4명부동산 개발 대기업 호비 랜드는 최근 분기 매출액이 81% 급증하며 2300만 달러를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싱가포르 사무용 건물 2채와 런던 사무 건물 2채의 임대 수입이 증가한 덕분이다. 그러나 싱가포르 센토사 코브에 럭셔리 주택을 건설하기 시작한 선구자 중 한 명인 추아의 보유 자산은 회사 주가와 함께 하락했으며, 싱가포르 주거용 부동산 시장이 “계속 도전을 받게 될 것”이라 인정했다.27. 우이 홍 렁10억1000만 달러 ▲ 수입원: 투자, 연령: 67세, 기혼, 자녀 4명인도네시아 억만장자 에카 트집타 위드자자(Eka Tjipta Widjaja)의 아들 우이는 5월 지분 30%를 가진 부동산 기업 IPC 코퍼레이션 인수 입찰에 뛰어들었지만 실패했다. 싱가포르 증시에 상장된 IPC는 일본에서 호텔을 소유하고 재정난에 빠진 건물을 재개발한다. 13개 국가에서 30개 단과 및 종합대학 네트워크를 보유한 래플즈 에듀케이션의 소수 지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싱가포르에서는 5만 개 유물이 있는 불교 예술 박물관 또한 보유하고 있다.28. 루춘용10억 달러 ▲ 수입원: 헬스케어, 연령: 66세, 기혼, 자녀 2명의료서비스 사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면서 래플즈 메디컬 그룹 회장이자 공동창업자인 루춘용은 처음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올랐다. 싱가포르 전역에 100개 클리닉을 두고, 홍콩과 상하이에 5개 병원을 가진 래플즈의 주가는 지난해 이후 18% 증가했다. 그룹은 현재 래플즈 병원 네트워크를 확장하기 위해 2억2200만 달러를 지출하고 있다. 상하이에서 현지 파트너기업과 함께 400병상의 병원을 설립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29. 림 찹 후앗8억5000만 달러 ▼ 수입원: 자산 개발, 연령: 61세, 기혼, 자녀 3명인력거꾼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수학 과외교사로 일하면서 공과대학 등록금을 마련했다. 22세가 된 1976년에는 그동안 모은 돈으로 2명의 파트너와 건설사를 공동 창업했다. 그렇게 세운 소일빌드 그룹을 계속 확장해서 자산 개발사 및 상장 부동산투자신탁(REITs)으로 키웠고, 결국 파트너 기업의 주식을 모두 인수했다. 소일빌드는 현재 회사 최초의 해외 프로젝트로 미얀마에서 24층짜리 주거용 건물을 건설 중이다.30. 로버트 프리드랜드8억4500만 달러 ★ 수입원: 광산업, 연령: 64세, 기혼, 자녀 3명싱가포르에서 거주 중인 미국의 광산 재벌이다. 싱가포르에서 그는 에너지 및 광물에 집중하는 투자사 아이반호 캐피탈 경영을 총괄하고 있다. 보유 자산 중 상당 부분은 토론토에 상장한 아이반호 마인과 리오 틴토 자회사인 터커이즈 힐 리소스(Turquoise Hill Resource) 광산업체에 연동되어 있다. 두 회사 모두 그가 설립한 기업이다. 밴쿠버에 본사를 둔 원유 탐사업체 아이반호 에너지는 유가 하락에 타격을 입고 6월 파산을 선고했다. 그는 형제 에릭이 보유한 페레그린 다이아몬드에도 지분을 가지고 있다. 지리학자인 아들 고빈드는 우라늄 채굴업체 고비엑스 우라늄을 설립했다.31. 쇼비멩8억3500만 달러 ★ 수입원: 영화, 연령: 82세영화계 거물 런런쇼의 장남이다. 지난해 아버지인 런이 106세 나이에 타계했다. 쇼비멩은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가족 소유의 지주사 쇼 오거나이제이션의 회장을 맡고 있다. 1920년대 이후 쇼 가문은 아시아에서 할리우드 영화와 중국어 영화제작 및 배급에서 상당한 역할을 담당했다. 형제해롤드와 삼촌 런미의 아들 쇼비킹과 싱가포르 영화관 50여 개를 공동 소유하고 있다.32. 탄 보이 티8억3000만 달러 ▼ 수입원: 해운, 연령: 66세, 배우자 사망, 자녀 2명석유 및 가스 사업지분을 가진 해운업 거물이다. 최근 아들 토마스와 테리가 운영하는 베스트포드 캐피탈을 통해 호텔로도 사업을 다각화했다. 과거에는 캐나다 그룹과의 파트너십을 통해 워싱턴 D.C.의 파크 하얏트 등 6개 호텔을 인수하기도 했다. 2월에는 보스턴에 있는 배터리 와프 호텔을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33. 존 추앙8억500만 달러 ▼ 수입원: 초콜릿, 연령: 67세, 기혼, 자녀 2명2014년 그가 소유한 초콜릿 기업 페트라 푸드(Petra Foods)는 달러 강세와 유통비 상승에 타격을 받아 매출과 수익이 하락했다. 6월부터는 손실을 기록 중인 페트라의 싱가포르 유통 부문을 매도하고 주요 시장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페트라의 ‘테이크잇(Take It)’이 킷캣(Kit Kat)과 비슷하다고 네슬레가 제기한 소송에서 2014년 11월 싱가포르 법원은 페트라 승소를 선고했다.34. 마이클 쿰8억 달러 ◀▶ 수입원: 호텔, 연령: 70세, 기혼, 자녀 3명브뤼셀과 런던에서 새로운 부동산을 매입하고 맨체스터 대학 캠퍼스 내에 2개 호텔을 개장하며 M&L 호스피탈리티 사업을 확장 중이다. 시드니 달링 하버에 위치한 쉐라톤 호텔 포 포인츠를 보유하고 있다. 2016년 확장 공사가 마무리되면 포 포인츠 객실은 900개 이상으로 늘어날 예정이다. 그의 자산 포트폴리오에는 일본과 뉴질랜드, 싱가포르 부동산도 포함되어 있다. 딸 조슬린이 회사 상무 이사로 있다.35. 청위강6억7500만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64세, 기혼, 자녀 3명그의 회사 윙 타이 홀딩스(Wing Tai Holdings)는 럭셔리 콘도인 르 누벨 아드모어 펜트하우스를 중국인에게 3800만 달러라는 최고가에 판매하는 데 성공하며 침체기에 빠진 주택시장에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일부는 싱가포르 부동산 시장에 외국인이 돌아오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아파트 미분양 벌금을 내지 않기 위해 자사주를 다 매입하고 비상장기업으로 돌릴 거라는 추측이 나돌면서 윙 타이의 주가가 상승한 적도 있었다. 세련된 주거지역 나씸 로드에 위치한 그의 저택은 2년간 매물로 나와 있었음에도 아직 구매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36. 림혹치6억3500만 달러 ▲ 수입원: 리테일, 연령: 53세, 기혼, 자녀 4명형제 두 명과 함께 싱가포르 3위 슈퍼마켓 체인 생시옹 그룹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 둔화 속에서도 2014년 슈퍼마켓의 매출과 순수익은 증가했다. 신규 매장 개점과 비용 통제 덕분이다. 슈퍼마켓의 상품은 온라인에서도 판매된다. 1985년 작은 돼지고기 가게에서 시작한 슈퍼마켓 체인은 현재 싱가포르 전역에 38개 매장을 두고 있으며 이 중 29개는 24시간 운영된다. 싱가포르 최대의 민간 태양광 패널 시스템 중 하나를 가지고 있기도 하다. 태양광 패널은 유통센터 지붕에 설치되어 있다.37. 피터 푸총청6억2500만 달러▼ 수입원: 다양한 사업14위에 이름을 올린 옹벵셍의 사위다. 가족이 소유한 석유 거래기업 쿠오 인터내셔널이 유가 변동으로 큰 타격을 입으며 자산이 하락했다. 형제 데이비드와 주아니타 등 가족은 상장 가족기업 호텔 프로퍼티(Hotel Properties) 지분 25%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축적했다. 호텔 프로퍼티를 경영하는 사람은 옹벵셍이다.38. 호 키안 관6억2000만 달러 ▼ 수입원: 다양한 사업, 연령: 69세, 기혼야자유와 부동산 개발로 엄청난 부를 축적한 그는 홍콩증시에 상장된 격성투자(Keck Seng Investments)의 지분 75%를 가족과 함께 보유하고 있다. 회사는 소피텔 뉴욕과 스프링힐 스위트 등, 2개의 맨해튼 미드타운 부동산 자산을 인수했다. 이로써 캐나다와 중국, 일본에 이르는 호텔 포트폴리오는 더욱 다양해졌다. 그룹은 말레이시아 이스칸다르 지역 최대 토지은행 중 하나를 보유하고 있으며, 마카오와 베트남에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39. 부펜드라 쿠마르 모디6억1500만 달러 ▼ 수입원: 이동통신 사업, 연령: 66세, 기혼, 자녀 3명인도 출신의 싱가포르 시민이다. 그가 싱가포르에서 운영하는 스마트 글로벌(Smart Global) 그룹은 최근 고국 인도에 투자를 시작했다. 스마트 글로벌은 이동통신, 의료서비스, 엔터테인먼트 등에서 수익을 얻고 있다. 상장기업 스파이스 모빌리티는 온라인 교육기업 애니타임 러닝과 텔레콤 소프트웨어업체 크리에이티브 펑션앱스 랩을 인수했다. 모디는 부유한 아시아 가문을 겨냥해 IPO 기업에 투자하는 ‘K2 글로벌’ 펀드 투자도 지원 중이다.40. 헨리 응6억 달러 ▼ 수입원: 다양한 사업, 연령: 57세, 기혼, 자녀 4명건설업 침체로 콘크리트 수요가 감소하면서 콘크리트를 생산하는 가족기업 팬 유나이티드(Pan United) 또한 타격을 받았다. 회사 주가는 지난 12개월간 25% 가량 급락했다. 지난 해에는 중국에 본사를 둔 창수싱화 항구 보유 지분을 늘리는 등, 항만업 진출도 진행하고 있다.41. 추객킴5억9000만 달러 ▼ 수입원: 다양한 사업, 연령: 53세작고한 은행가 탄 친 투안의 손녀이며, OCBC 전임 회장이다. 지금은 스트레이츠 트레이딩을 주석 제련 및 광산업체에서 부동산 및 호텔에 중점을 둔 투자사로 변모시키는 과정에 있다. 2008년 기업 지배권을 손에 넣은 이후 존 림(44위), 응 가문(1위)과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1월 스트레이츠 트레이딩은 도쿄 사무용 부동산 매입 펀드를 통해 일본 부동산 시장에도 진출했다.42. 코위셍5억8000만 달러 ▼ 수입원: 보석, 연령; 46세, 기혼, 자녀 3명호텔 사업가 코위멩(23위)의 남동생이다. 2명의 여자형제와 지분 82%를 공동 보유한 보석 판매 기업 아스피알(Aspial)의 주가가 전년대비 20% 하락하면서 그의 보유자산도 함께 하락했지만, 호주 사업 확장으로 자신의 투자를 헤징했다.43. 로이 카이 멩5억6500만 달러 ▼ 수입원: 물류, 연령: 76세, 기혼, 자녀 3명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물류 기업가 로이 카이멩은 운송 및 물류, 창고 사업을 운영하는 비상장 기업 C&P 지분 30%에서 재산의 절반 이상을 축적했다. C&P는 그가 1970년 스탠리 리오(48위)와 함께 공동 설립한 회사다. 로이는 항만 동력실을 운영하는 상장기업 CWT의 지분 25%를 보유하고 있으며, 회사 경영은 10년 전부터 아들 로이폭 옌이 맡고 있다. 차남 로이 윈 옌은 싱가포르의 페라리 소유자 클럽 사무장으로 있다.44. 존 림5억4500만 달러▼ 수입원: 부동산, 연령: 59세, 기혼, 자녀 2명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운용자산이 200억 달러에 달하는 ARA 자산관리(ARA Asset Management) 지분 19%를 보유한 사업가로 성장했다. 2013년 추객킴(41위)과 함께 설립한 합작사 스트레이츠 리얼 에스테이트의 지분 10%도 함께 보유하고 있다. 1981년 DBS 랜드에 첫 직장을 잡은 그는 2002년 홍콩 억만장자 리카싱의 CK 프로퍼티와 함께 ARA를 공동 설립했다.45. 세르게 푼5억500만 달러 ▼ 수입원: 다양한 사업, 연령: 62세, 기혼, 자녀 4명버마 출신의 세르게 푼은 싱가포르에 상장된 요마 스트래티직 홀딩스(Yoma Strategic Holdings) 소유주다. 회사는 2015년 3월 마감된 회계연도 동안 순수익이 62% 상승하며 2900만 달러를 기록했다. 순수익의 대대적 상승은 자동차 및 관광사업 수입 증가에 힘 입은 바 크다. 새로 진행하는 인프라 및 물류 프로젝트는 아시아개발은행으로부터 1억 달러의 자금을 지원 받았다. 최근에는 미얀마 양곤에 KFC 매장 1호점을 오픈했다. 요마는 주주에게 미얀마 프로젝트를 직접 보여주는 미얀마 방문 기회를 매년 제공한다.46. 윌리엄 추아4억7000만 달러 ★ 수입원: 자동차, 연령: 59세순위에 첫 입성한 윌리엄 추아는 싱가포르 산업용 자동차 최대 배급업체 중 하나인 골드벨 코퍼레이션(Goldbell Corp.)에 대한 지배권과 함께 골드벨 타워(Goldbell Tower)를 소유하고 있다. 아버지 추아 킴 청이 처음 설립한 회사는 트럭 운수업체였다. 윌리엄은 이후 물류사업과 함께 중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호주 등의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지금은 승용차와 자동차 부품 사업도 진행 중이다. 아들 알렉스는 일상적인 회사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골드벨은 6월 개최된 동남아시아 경기 대회에서 싱가포르 여성 세일링 대표팀을 후원했다.47. 스탠리 리아오4억4500만 달러 ▼ 수입원: 물류, 연령: 78세, 기혼, 자녀 3명비상장 물류기업 C&P와 동남아시아 최대 상장 물류업체 CWT 지분으로 지금의 자산을 축적했다. 1970년에는 로이 카이 멩(43위)과 C&P를 공동 설립했다. CWT는 포브스 글로벌 2000대 기업 순위와 올해 아시아태평양 고성장 기업 ‘Fab 50’의 순위에 이름을 올렸다.48. 사틴더 가르차4억4000만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44세, 기혼, 자녀 4명인도 출신의 닷컴 사업가였던 그는 최고급 부동산 개발 및 부티크 호텔 사업가로 변신했다. 2년 동안 순위에서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가르차 호텔의 가치 상승에 힘입어 올해 순위에 재입성했다. 지난 수년간 싱가포르 및 산티아고에서 문화 유산적 가치가 있는 부동산을 매입해 고급 호텔로 바꾸는 사업에 2억5000만 달러를 투자했다.49. 아우 치오 킷4억3000만 달러 ▼ 수입원: 호텔, 연령: 70세, 기혼, 자녀 2명지분 40%를 보유한 최고급 부동산 개발업체 스탬포드 랜드(Stamford Land)는 싱가포르와 호주, 뉴질랜드에서 호텔 및 주택을 보유하고 있다. 시드니에 있는 역사적 써 스탬포드 호텔을 허물고 그 곳에 19층 아파트를 지으려던 프로젝트에 지난 5월 시드니 토지개발법원은 프로젝트 진행에 반대하는 판결을 내렸다.50. 칭 치앗 쾅4억2000만 달러 ▼ 수입원: 부동산, 연령: 50세, 기혼전직 경찰이었다가 부동산 개발업자로 변신해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42%의 지분을 가진 옥슬리 홀딩스(Oxley Holdings) 주가가 부동산 시장 약세 속에 40% 하락하면서 그의 재산도 감소했다. 싱가포르 닭장 아파트 건설로 유명한 옥슬리는 아일랜드와 일본, 인도네시아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해외사업을 확장했다. 최근에는 싱가포르 이비스 호텔과 노보텔 호텔을 통해 호텔 사업에도 진출했다. 두 호텔 모두 2017년 영업을 시작할 예정이다. 캄보디아에서도 최초의 상그릴라 호텔을 건축 중이다.- NAAZNEEN KARMALI 포브스 기자, 추가 조사 CAROLINE CHEN, RUSSELL FLANNERY, SEAN KILACHAND, SUZANNE NAM, NEERJA PAWHA JETLEY, ANURADHA RAGHUNATHAN, JANE ROBERTS, MARY E. SCOTT, JESSICA TAN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08.28 11:50

19분 소요
인공 ‘남근’ 비즈니스 점점 커진다

산업 일반

신작 영화 ‘디 오버나이트(The Overnight)’에 화제를 모으는 장면이 있다. 애덤 스콧과 제이슨 슈워츠맨이 연기하는 인물들이 풀장가에서 바지를 벗고 알몸으로 춤추는 장면이다. 알렉스(스콧 분)가 자신의 물건 크기에 당혹스러워 하며 그 장면이 하나의 전기가 된다. 슈워츠맨 캐릭터 것에 비해 “쪼그맣다”고 그는 말한다. 슈워츠맨 캐릭터의 물건을 “엄청 큰 말” 페니스라고 부른다.영화는 올해 초 선댄스 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인 뒤 지난 6월 19일 미국에서 개봉됐다. 나이가 들어가며 새로운 삶을 실험하고 싶은 젊은 커플을 중심으로 줄거리가 전개된다. 제작 책임자 제이 듀플라스와 마크 형제 작품들의 전형적인 구도다. 알렉스와 그의 아내 에밀리(테일러 쉴링 분)가 친구 집에 저녁 식사를 하러 간다. 밤이 깊어지면서 성기들이 고개를 내민다.영화의 풀장가 노출 장면에는 매튜 멍글의 손길이 많이 갔다. 아카데미상과 에미상을 수상한 메이크업 아티스트다. 할리우드 배우들에게 성기를 맞춰 주는 데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문가가 됐다. 인공 페니스 비즈니스가 번창한다고 그가 말했다. “아마 5~6년 전쯤 시작됐지 싶다. 사람들이 영화에 그런 코미디적 요소를 가미하려 한다. 그저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시도인 것 같다.” 그의 인공 남근이 등장한 코미디 영화는 적지 않다. ‘원더러스트(Wanderlust)’ ‘겟 하드’ ‘스텝 브라더스(고환만)’ ‘리틀 브리튼 USA’ 등이다. 그뿐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남자 동성애자들을 그린 HBO의 코미디 드라마 ‘루킹(Looking)’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개봉 예정인 코미디 영화에도 예약돼 있다. 하지만 영화 이름은 밝히지 않기로 앞서 약속했다고 한다. 그는 노스 할리우드 작업실에 5~6개의 페니스를 항상 준비해 둔다. 개당 1000달러 선이며 맞춤 제작 비용은 5000달러다.멍글은 미국 오클라호마주의 한 목장에서 자라는 동안 ‘해양괴물(Creature From the Black Lagoon)’ ‘라오 박사의 일곱 얼굴’ 같은 판타지 영화에 푹 빠져들었다. 자신과 여동생을 상대로 무대 분장 연습을 했다. 영화 잡지 ‘영화 속 유명한 괴물들(Famous Monsters of Filmland)’을 그대로 따라 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연습 상대가 돼주려 하지 않았다”고 그가 말했다. 훗날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한 뒤 캘리포니아주로 건너가 조 블래스코 메이크업 아티스트 교육센터에서 공부했다. 할리우드에서 착실하게 경력을 쌓아 1980년대 후반 파트너 존 잭슨과 W M 크리에이션스를 차렸다. 훗날 클린턴 웨인도 파트너로 합류했다. 그가 이끄는 제작팀은 총 650㎡의 시설에서 인공장구들을 만들어 쌓아둔다. 몸통 없는 머리와 기타 신체 장기 수백 개가 벽에 가득 걸려 있다. “재고가 얼마나 되는지 짐작도 할 수 없다”고 그가 말했다.영화 제작자들로부터 성기 주문이 들어오면 사진 확인 작업부터 시작한다. 때로는 NSFW(not safe for work, 직장에서 열어보기 민망한) 사진들도 있다고 한다. 다른 일반 직장인들의 경우에 말이다. 그를 비롯해 제작팀의 오무라 코지, 아우렐리오 구즈만은 인공장구를 어떤 형태로 만들지 영화제작자들과 상의한다. 얼마나 커야(또는 작아야) 하는지, 고환이 필요한지, 그 부분이 처져야 하는지 곧추서야 하는지, 포피를 덮어야 하는지 벗겨야 하는지 등이다. “때때로 전화를 해놓고는 몹시 쑥스러워 말을 제대로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간다”고 그가 말했다. 폼 라텍스(foam latex)나 실리콘을 이용하고 발기 부위에는 철사를 넣는다. 내의를 입을 경우 옷에 들어가는 밴드에 인공장구를 봉합한다. 헤어누드(full frontal, 음모 노출)일 때는 인공장구의 윗부분에 털을 아교로 붙인 뒤 ‘배우 사타구니의 면도한 부분’에 붙인다. 엉덩이 사이에 받침대를 끼워 엉덩이 윗부분에 부착한다. “상당히 기술적인 작업”이라고 그가 말했다.‘디 오버나이트’의 패트릭 브라이스 감독은 제작자들과 “성기 사진이 첨부된 이메일을 교환했다”고 한다.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이미지를 찾으면 멍글에게 보냈다.” 브라이스 감독은 성기(그리고 부속) 제작에 얼마가 들었는지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영화 제작 예산이 넉넉하지 않았다.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했다”고 털어놓았다.코미디 영화에서 남성의 헤어누드가 새로운 현상은 아니다. 근 20년 전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에도 그런 장면이 등장했다. 하지만 지난 몇 년 사이 페니스의 등장 회수가 크게 늘었다. 몇몇 인상적인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로는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Forgetting Sarah Marshall)’ ‘보랏’ ‘행오버2’ ‘위 아 더 밀러스(We’re the Millers)’ ‘언피니시드 비즈니스’ ‘아메리칸 파이: 19금 동창회’ 등이 꼽힌다. 브라이스 감독은 2011년작 ‘홀 패스(Hall Pass)’에서 본 헤어누드 장면을 떠올린다. “‘좋아, 나도 할 수 있어. 문제없어. 안 된다는 법은 없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5.07.06 16:40

3분 소요
자본주의자들이 이룬 코뮌

산업 일반

미국의 거대 부동산 기업인 보스턴 프로퍼티스(Boston Properties)의 모트 저커맨(Mort Zuckerman·78) 회장은 뉴욕과 워싱턴, 샌프란시스코 등의 대도시에 시가 196억 달러(약 19조 6000억원)에 달하는 고급 오피스 빌딩들을 보유하고 있다.2013년 6월 어느 날이었다. 그는 아담 노이만(Adam Neumann·34)과 그의 동업자 미구엘 맥켈비(Miguel McKelvey)가 성장시킨 부동산 임대사업체 위워크(WeWork)를 소개 받아 둘러보게 됐다. 노이만은 이스라엘 출신으로 해군장교로 전역했다. 그는 뉴욕 소호에 위치한 위워크 두 번째 사무소 엘리베이터 앞에서 저커맨을 기다리고 있었다. “뻔하지. 사무실 임대 사업 좀 해보려는 애송이야” 저커맨은 이렇게 혼잣말을 했던 자신을 기억한다. 저커맨과 만난 노이만은 자신의 사업모델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낮은 가격에 건물 한두개 층 전체를 임대하고 이를 작은 공간으로 나눠 벤처회사나 소규모 기업에 월세로 임대해주는 방식이었다.노이만은 저커맨에게 3530㎡ 면적의 위워크 사무실을 보여줬다. 유리벽으로 구획된 작은 사무실에는 청년 벤처 사업가들로 꽉 차 있었다. 커피 라운지는 해피아워 시간이면 청년 벤처사업가들이 함께 모여 맥주와 와인을 마시는 공간으로 변했다. 회의실은 화상회의 장비로 가득 차 있었으며, 사무실 관리자들은 미소를 지으며 배달소포를 처리하거나 무료 커피, 레이저 프린터 관련 사무용품을 채워 넣고 있었다. “대기자 명단이 길어서 입주하려면 수개월 넘게 기다려야 한다”고 노이만이 말했다. 지난해만 7개 도시의 새로운 건물 12개에서 이 분위기를 그대로 이어갔다.저커맨의 기분은 달아올랐다. 뉴욕의 파크 애비뉴에 있는 보스턴 프로퍼티스 건물의 세입자들과는 완전히 다른 니즈를 가진 업체가 수십 개나 몰려 있었다. 이 벤처회사들은 서로를 필요로 하고 서로가 든든한 방어막이 되어주고 있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소속되길 원했다. “새로운 기업문화가 시작됐다는 걸 노이만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고 저커맨은 말했다. “업계에서 까마득한 세월(공식적으로 50년 남짓)을 일한 내가 보기에도 대단히 창조적이고 독창적인 사업이었다.”저커맨은 노이만을 점심식사에 초대했다. 그리고 다음 점심에 또 초대했다. 4번째 만남을 가질 때쯤 저커맨은 다음 투자금을 모집할 때 자신이 위워크의 개인 투자자가 되겠다고 약속했다. 저커맨의 첫 투어 이후 2년이 지난 올해는 보스턴 프로퍼티스가 공동 소유한 브루클린 네이비 야드의 3억 달러짜리 재개발 건물 1만8580㎡ 면적에 위워크가 대표 임차인 자격으로 들어설 예정이다. 샌프란시스코 건물에서도 동일한 파트너십을 맺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고, 보스턴에도 위워크가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올해 말이면 위워크 회원 수는 1만4000명에서 4만6000명으로 3배 이상 증가할 것이다. 2013년만 해도 9개였던 사무실은 현재 21개이고 올해말에는 60개로 늘어날 예정이다. 4년 전 뉴욕 소호에 문을 연 278㎡ 첫 사무실의 경우,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상태였고, 창업자들이 직접 벽을 청소해야 했다. 그러나 지금 위워크는 뉴욕의 신규 오피스 시장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임차인이 됐다. 오스틴, 시카고 등의 다른 도시로 사업을 확장하게 될 올해는 미국 전역을 통틀어 최고로 빨리 성장하는 임차기업이 될 전망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런던, 암스테르담, 텔아비브에도 위워크 사무실이 문을 열 예정이다. ━ 위워크 장점은 ‘커뮤니티’ 형성 위워크는 올해 매출을 4억 달러 이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지난해 2월 JP모건은 (비공개로) 무려 1억5000만 달러를 하버드 코퍼레이션, 저커맨, 벤치마크 캐피탈과 함께 위워크에 투자했다. 위워크의 가치를 15억 달러로 평가 하고 내린 투자 결정이었다. 창업자들은 올해 다시 투자금을 모집하게 된다면 기업가치가 60억 달러는 족히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각각 2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노이만과 맥켈비는 서류상 엄청난 주식부자가 된다.위워크는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사무실 공유 트렌드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는 5900개의 공유 사무실 임대업체가 있다. 공유 사무실 트렌드를 분석하는 데스크매그닷컴(Deskmag.com)에 따르면, 6년 전에는 공유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의 수가 전 세계를 통틀어 1만 명 미만이었지만, 현재는 26만 명에 달한다. 틈새업체도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라인드(Grind)는 연속 벤처 창업자나 전문직 사업가를 위한 사무공간을 제공한다. 헤라 허브(Hera Hub)는 캘리포니아에서만 여성 기업가 전용 사무실을 3곳에서 제공한다. “사람들은 답답하거나 지루하지 않은 사무 공간을 원한다.” 공간을 최대한 유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사무공간을 제공하는 임대업체 브리더(Breather)의 줄리엔 스미스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브리더는 바쁘게 돌아다니다 사무실에 잠깐만 들르는 사람들을 위해 시간 단위로 임대를 해준다.위워크 회원들은 ㎡당 임대료가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을 흔쾌히 인정한다. 사무책상 1개의 월 사용료는 350달러이고 5.9㎡ 사무실 월세는 1인당 650달러다. 그러나 가장 최근 개장한 위워크 런던 사우스엔드 사무실은 개장 때부터 이미 80% 분양을 달성했고, 2개월이 지나자 다른 사무실과 마찬가지로 100% 가까운 임대율을 기록했다. 이는 보안이나 리셉션, 초고속 인터넷, 인쇄비 등의 잡다한 서비스 비용을 계산했을 때 세입자가 매달 수백 달러의 돈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위워크의 진정한 특혜는 바로 내 사무실 바로 옆에 만들어질 ‘커뮤니티’다. 위워커(WeWorker)들은 매주 베이글과 칵테일 파티를 통해 인연을 맺어간다. 파티에 오면 회사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줄 수 있는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찾을 수 있고,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표할 수도 있다. 사무시간에는 광고대행사 등의 외부 파트너로부터 무료 자문을 받을 수도 있다. 회원들의 열렬한 반응 속에 비공식적 계약을 체결하거나 일자리를 알선하는 경우도 있다.페이스북과 구글을 비롯한 다른 실리콘밸리 기업에서도 넓은 사무공간에 직원들을 몰아넣는 방식을 수년 전부터 애용해왔다. 위워크는 대기업도 이런 흐름에 합류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일례로, 펩시코(PepsiCo)는 2011년 위워크 소호 건물에 사무실을 열고 직원을 파견했다. 펩시코는 직원들이 다른 중소 입주기업에 자문을 제공하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보다 큰 그림을 위한 헌신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위워크 공동창업자 맥켈비는 말했다.공유 사무실이 지역 경제에 가져오는 이점을 잘 알고 있는 시정부는 매우 적극적이다. 에드 리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위워크가 어두침침하고 허름한 텐더로인(Tenderloin) 지구에 사무실을 열자 그곳에 입주한 업체 직원의 안전을 위해 경찰 순찰노선을 새롭게 변경했다. 람 엠마누엘 시카고 시장은 미공개 자전거 도로 계획과 벤처회사를 위한 다른 프로젝트를 노이만에게 직접 설명하며 웨스트 루프(West Loop)에 위워크를 유치하기 위한 설득에 나섰다. 마틴 J. 왈쉬 뉴보스턴 시장은 취임 이후 첫 대중연설 장소 중 하나로 위워크 신규 사무실을 고르기도 했다. “혁신 경제는 보스턴에 다소 생소한 개념이지만, 위워크가 내세운 새로운 방식을 많은 사람이 보게 될수록 창업 활동도 활발해지리라 생각된다”고 왈쉬는 말했다.“위워크는 동전의 양면을 모두 충족시킨다”고 JP 모건 체이스 부회장인 제임스 리는 말했다. “벤처 지원기관에도 청년 사업가가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지만, 이들은 자신의 사업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진행하고 싶어한다. 위워크는 이들에게 머물 장소를 주고 ‘여기 있어주면 좋겠다. 우리가 당신의 성장을 돕겠다’고 말해준다.”노이만과 맥켈비는 지금도 신입사원을 뽑을 때면 직접 면접을 본다. 위워크를 단순한 부동산 사업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힘을 진심으로 믿는 이들은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노이만과 맥켈비는 둘다 아버지 없이 각자의 ‘코뮌’에서 자라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노이만은 의사였던 이스라엘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어머니가 인디애나폴리스 병원 레지던트로 일하던 2년간 영어를 배울 기회가 있었다. 이후 모자는 이스라엘로 돌아와 가자지구 근처 니림 키부츠에 둥지를 틀었다. 아이들은 부모와 떨어져 기숙사 공동생활을 하는 곳이었다. 그곳에서 그와 여동생 아디는 힘들게 공동체 생활을 배워나갔다. 키부츠에서 단단한 결속을 맺고 있던 아이들은 수개월간 노이만 가족과 어울리지 않았다. “어떻게든 나의 소속집단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가장 들어가기 힘든 그룹 이었다”고 노이만은 말했다.난독증이 심했고 다른 사람에게 흥미가 없었던 노이만은 뛰어난 윈드서퍼가 되어 학교에서 허락하지 않은 과외활동을 조직하면서 아이들의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어 병역의 의무를 이행할 때가 되자 그는 엘리트 집단인 해군 장교학교에 지원했다. 그러나 수천 명의 지원후보 중 그는 몸놀림이 가장 둔한 편에 속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수주에 걸친 체험과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팀을 만드는 미션이 주어지자 노이만이 앞에 나서 리더십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600명의 합격자를 호명했을 때 노이만은 가장 나중에 불린 이름 중 하나였지만 5년 뒤에는 3등으로 성공적인 군복무를 마쳤다.위워크의 공동창업자 맥켈비가 자란 곳은 오리건주 유진(Eugene)이다. 5명의 어머니가 모여서 만든 공동체에서 6명의 아이 중 하나로 보살핌을 받았다. 행복한 어린 시절이었고, 사람들은 정원을 가꾸거나 정부가 준 식량배급표로 생계를 이어갔다. “가난한 어린 시절이었지만, 당시에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고 맥켈비의 공동체 ‘누이’ 치아 오키프(Chia O’Keefe)는 말했다. 위워크 초창기부터 함께 한 그녀는 현재 혁신 총괄직을 맡고 있다. 맥켈비는 재능 있는 학생이었지만 학교에서는 쉽게 지루함을 느꼈다. 1980년대에 그는 침울한 고향 도시에 서 텅 빈 가게나 문 닫힌 건물을 되살려낼 방법을 상상하곤 했다. 오레곤 대학에서 농구선수 생활을 하며 건축학사 학위를 딴 그는 1990년대 닷컴붐에 뛰어들어 일본과 영국 사람들을 펜팔로 연결시켜주는 웹사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브루클린 건축회사에 취직했다. ━ 맥켈비와 노이만의 운명적 만남 그 사이 노이만은 ‘미스 틴 이스라엘’에 뽑힐 정도로 재원이었던 동생 아디를 따라 뉴욕으로 왔다. 아디는 모델이 되고자 했다. 이후 5년간 노이만은 아디의 집에서 함께 머물며 뉴욕시립대학 바루 칼리지(Baruch College)에서 경영학을 수강하고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동생의 수입을 관리했다. 벤처사업을 여러 번 시도했는데, 무릎 보호대가 들어간 아기용 멜빵바지는 대실패였지만 아동용 고급의류를 판매하는 온라인 쇼핑몰 에그 베이비(Egg Baby)는 꽤 괜찮은 성공을 거두었다.맥켈비와 노이만은 파티에서 만나 친구가 됐다. 노이만은 맥켈비에게 자신의 새로운 사무공간을 설계해 달라고 부탁했다. 맥켈비는 사무실을 브루클린 덤보(Dumbo)로 옮기라고 그를 설득했다. 공유 사무공간을 제공하면 좋겠다는 ‘감’을 잡은 건 2008년 1월이었다. 건물주인 조슈아 구트맨이 길 아래쪽에 위치한 빈 건물을 노이만에게 보여줬다. 그는 5000 평방피트의 건물 각 층을 평방피트당 1달러에 임대해줄 예정이라고 말했다. 노이만은 “나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다. 한 층 전체를 우리한테 임대해달라. 15개 사무실로 공간을 쪼개서 각 사무실당 월세 1000달러를 받으면 층당 매달 1만 5000달러의 돈을 벌 수 있다. 건물주에 7500달러, 리셉션 담당자한테 2500달러를 지불하고 남은 수익은 우리가 갖겠다”고 제안했다.노이만은 그날 오후 맥켈비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를 얘기했다. 올빼미 타입인 맥켈비는 다음 날 아침 사업 이름과 로고를 정하고 웹사이트를 구축해서 나타났다. 처음 지은 이름은 그린 데스크(Green Desk)였다. 자유무역 커피와 청정세제를 사용하는 친환경 사무실 컨셉이었다. “우리가 보기에 다른 임대 사무공간들은 아주 형편 없었다.” 구트맨도 결국 제안에 동의했다. 대신 조건 하나가 붙었다. 한 층이 아니라 모든 층에 같은 임대방식을 적용해 운영비를 더 감축하라는 조건이었다.노이만은 그린 데스크 사업을 구축하는 와중에도 에그베이비를 계속 운영했다. 맥켈비는 직장을 그만두고 영화제작자로 있는 노이만의 부인 레베카 펠트로 노이만(배우 기네스 펠트로와 사촌 관계)과 함께 건물 리노베이션에 나섰다. 주말이면 그는 지프 차량을 몰고 이케아로 가서 사무실 책상을 만들 수 있는 원목판을 잔뜩 사가지고 왔다. 그런데 2008년 첫 입주 날짜가 다가왔을 때, 금융위기로 경제가 주저앉았다. “이 사업은 실패할 게 분명해. 불경기에는 사람들이 임대를 하지 않는다네’라고 구트맨이 말했다”고 노이만은 설명했다.그런데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크레이그리스트에 7개 광고를 내고 입소문을 퍼뜨렸을 뿐인데 사모펀드 투자사 부터 고다미스트(Gothamist) 블로그 웹사이트까지 다양한 업체들이 줄을 서기 시작했다. 그러나 당시 그린 데스크는 지금의 위워크 보다 시가총액 20억에 달하는 리저스(Regus)처럼 중역을 위한 고급사무실 임대업체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공동 공간도 없었고, 창업주들이 좋아했을 프로그래밍 회의실도 없었다. “그때는 글로벌 브랜드가 되겠다는 목표가 있었다”고 노이만은 말했다. 이를 위해선 사무실마다 특색에 맞는 차별화된 구조를 가지고 여러 이벤트나 편의시설에 훨씬 더 많은 예산을 지출해야 했다. 노이만에 따르면, 구트맨은 다른 곳에서 이미 검증된 모델을 브루클린에도 그대로 적용하길 원했다. 그 결과 지금은 7곳에서 같은 모델의 사무실이 운영되고 있다. 다만 노이만이나 맥켈비가 함께하지 않을 뿐이다.둘은 구트맨에게 300만 달러에 그린 데스크를 매각했다. 초기 현금으로 30만 달러를 받았고, 향후 2년간 단계적으로 돈을 받으며 필요한데 사용했다. 한꺼번에 받은 매각대금은 소호 건물에 코뮌 개념의 사무실을 열기 위한 보증금으로 사용했다. 나머지 돈은 신용카드 대출과 친구들에게 받은 투자금을 긁어 모아 충당했다. “내 아파트에서 2주간 지내다 가라”는 초청과 함께 무료 항공권을 받은 아담의 이스라엘 친구들은 신나서 왔다가 어느 순간 석고판이나 판재를 옮기는 자신들을 발견하게 됐다. “잔뜩 들떠서 왔는데 일주일 중 7일을 일하다 갔다”고 노이만이 말했다. 시작하고 한 달이 지난 2010년 2월, 처음 순수익을 내기 시작한 위워크는 이후 기세를 멈춘 적이 없다. 이후 초기 투자자인 부동산 개발업자 잭 슈라이버(Jack Schreiber)가 엠파이어 스테이트 건물 건너편에 페르시아계 삼형제가 소유한 저렴한 사무공간을 찾아냈다. 그 곳을 임대하려면 100만 달러를 지불해야 했는데 위워크에게는 그런 돈이 없었다. 슈라이버는 노이만에게 뉴욕에 살고 있는 형제 중 한 명의 마음을 사면 해외에 있는 가족들이 알아내기 전 형제의 허락을 받을 수 있다고 귀띔을 해주었다.“소호에 있는 위워크 라운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들떠 있었다”고 노이만은 회상했다. 이스라엘 출신 사업가와 이란인 건물주는 수시간 동안 이야기를 나누며 위스키 반 병을 함께 해치웠다. 그는 끊긴 필름과 서명한 계약서를 남기고 떠났다. 노이만은 다음 날 그가 돌아와서 가족이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것을 예상했다. 예상은 적중했다. 그는 “형제들로부터 ‘페르시아 남자들은 자신의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해주었다.” 그 말 한 마디로 상황은 해결됐다. 위워크는 29일 만에 한 층의 준비를 마쳤다. ━ 지나친 확장 전략은 최대 리스크 2012년에는 3개 사무실이 더 개장했고, 그 때쯤 되자 벤치마크 캐피탈이 위워크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를 좋아하지 않는 벤처투자사 ‘벤치마크 캐피탈’은 이베이와 트위터, 우버를 선택해낸 안목을 가지고 있다.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벤치마크 캐피탈의 설립 파트너 브루스 던레비(Bruce Dunlevie)는 위워크가 왜 그렇게 특별한 지 확인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오기도했다. “1997년 이베이를 처음 봤을 때가 생각났다”고 던레비는 말했다.“무언가 특별한 조짐이 느껴졌지만, 그게 뭔지는 정확히 콕 집어 설명할 수 없었다.” 당시 벤치마크가 주도한 투자금 모집에서 1억 달러로 평가 받았던 위워크 기업가치는 투자은행 제프리스(Jefferies)가 합류한 2013년 4억5000만 달러까지 치솟았다고 노이만은 말했다. 이 때 JP모건은 투자기회를 고사했지만 이후 입장을 바꾸었다.물론 위워크보다 좋은 혜택을 주는 일은 가능하다. 조슈아 애브람과 앨런 뮤레이가 공동 소유한 뉴욕의 노이에 하우스(NeueHouse)는 고급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워크의 경쟁자다. 이들은 입주업체를 위한 작은 방송 스튜디오를 마련해 놓고 뉴욕에 카페를 두고 있으며 로스앤젤레스에 새로 열게 될 사무실에는 서비스를 완비한 레스토랑까지 열 예정이다. 그러나 2020년까지 사무실 20개를 개장할 노이에하우스의 성장 속도는 의도적이긴 하지만 훨씬 느리다. 반면, 위워크는 빠르게 몸집을 불리고 있다.위워크는 신규 건물이나 새롭게 재단장한 구역, 혹은 빈곤지역에 사무실을 여는 걸 선호한다. 이런 곳에서는 위워크가 10%의 할인을 받아서 대표 임차업체로 들어서는 계약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자사에 더 유리한 조건을 요구한다 하더라도 위워크가 건물에 들어서면 근처 층이나 다른 건물의 가치가 함께 올라가는 장점이 있다.위워크의 최대 리스크는 사업의 지나친 확장 가능성이라는데 창업진과 투자자는 동의한다. 지금은 관리가 가능한 규모라서 브랜드 가치와 높은 고객서비스를 유지하는 게 가능하다. 그러나 커뮤니티 매니저의 무능, 지나친 자동화로 인한 서비스 저하, 엘리베이터 고장 등이 발생한다면 무료로 도넛을 나눠주는 것만으로는 결코 감당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코치(Coach)전임 CEO를 정식 고문으로 고용해서 급성장 속에서도 기업문화를 유지하는 방법에 대해 창업자들이 직접 배우는 중이다. 모건스 호텔그룹의 CEO였던 마이클 그로스를 CFO로 영입해서 예산을 벗어나지 않고 시설에 너무 많은 돈을 투자하지 않으면서 세련되고 쾌적한 분위기를 만드는 노하우를 배우고 있다. 그러나 위워크가 미국 25개 대도시와 유럽 십수 개 대도시에 사무실을 다 열고 나면 신시내티나 브뤼허 등의 소도시까지 사업을 확장할 지에 대해서는 이들도 알지 못한다.언젠가 오게 될 부동산 침체기를 살아남을 수 있을 지 의심하는 실리콘밸리 투자자들도 있다. 임대료가 한창 높았을 때 건물주들과 장기임대계약을 체결한 위워크는 평방피트당 높은 임대료를 세입자에게 적용한다. 한 투자자는 위워크 기업가치가 높게 책정됐기 때문이라기보다 불경기나 저렴한 경쟁기업의 출현으로 세입자들이 물밀 듯이 빠져 나갈까봐 위워크 투자기회를 그냥 넘겼다고 말하기도 했다.노이만은 전에도 이런 우려를 들은 적이 있다. 그러나 그린 데스크를 통해 그는 기업의 예산이 부족할 때가 되면 공유 사무실에 대한 수요가 급증함을 직접 경험했다. 위워크가 건물주와 체결한 임대계약의 경우 임대세가 사상 최저를 기록하지만 않는다면 뉴욕 등의 대도시에서 충분히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라고 노이만은 말했다. 설사 임대세가 사상 최저수준으로 떨어진다 하더라도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입과 자기자본이 수백만 달러로 충분하니 월세를 올리지 않더라도 불경기를 버틸 수 있다고 노이만은 주장했다.위워크의 회원 기반은 제법 안정되어 있고, 매출의 28%는 소기업이 차지한다. 이들은 덩치가 큰 다른 기업들이 독립 사무실을 차려서 나가거나 위워크의 새로운 사무실로 더 큰 공간을 세내어 나가면 이들의 자리로 업그레이드해서 옮겨간다. “위워크에 있으면 훨씬 많은 사업기회를 누리기 때문에 월세를 2배로 올려도 경쟁업체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고 위워크 원더브레드 사무실에 입주한 광고 에이전시 브릴리언트 콜라보레이션의 CEO 조나단 스몰리가 말했다.노이만과 맥켈비는 의료보험이나 회계, 법무, 클라우드 컴퓨팅 등의 서비스를 입주기업에 제공하면서 매출을 창출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입주업체는 위워크가 트라이넷(TriNet)을 통해 제공하는 건강보험으로 매달 200달러의 비용을 아낄 수 있다. 아마존 웹서비스의 경우 첫 1년간 웹호스팅 비용을 5000달러 할인해준다.위워크도 올해는 새로운 투자금 모집이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의 식량배급표로 음식을 구매하며 자라난 맥켈비는 인생을 바꿔줄 수도 있는 IPO를 고려하기도 했다. 서류상으로 존재하는 엄청난 재산이 현금으로 바뀌게 된다면 아이티 같은 개도국에 위워크 비영리 사무실을 열어 경제성장을 지원하는 게 맥켈비의 꿈이다. 그러나 미래 계획에서 맥켈비는 노이만을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 노이만은 테슬라(Tesla) 전기차와 스페이스X 로켓을 만든 엘론 머스크(Elon Musk)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혹시 머스크와 다시 만나게 된다면 노이만은 우주에 위워크 사무실을 열겠다는 사업제안을 할 예정이다. “머스크가 화성에 사람들을 데리고 간다면 그 곳에 누구도 보지 못했던 커뮤니티를 구축할 것”이라고 노이만은 말했다. “끝내줄 것이다. 그냥 우리를 거기 데리고 가주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우리가 다 알아서 할 수 있다. 절대 그럴 거라 맹세한다.”- ALEX KONRAD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수 있습니다.포브스 코리아 온라인 서비스는 포브스 본사와의 저작권 계약상 해외 기사의 전문보기가 제공되지 않습니다.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2015.01.28 09:25

13분 소요
축구의 인기를 능가하는 스포츠는? 종합격투기!

산업 일반

여자들이 처음에는 짐짓 따분한 표정을 짓는다. 하지만 하나 둘씩 경기 속으로 빠져든다. 얼굴이 점차 벌겋게 상기되며 폭력에 몰입한다. 이날 밤의 두 번째 대결이다. 그들의 시선은 영국 뉴캐슬 출신의 앤디에게 고정돼 있다. “파이팅, 앤디!” 평범한 체격에 조각 같은 몸매를 가진 ‘작은 도끼(The Little Axe)’라는 닉네임의 선수에게 그들이 소리친다. 그의 몸 앞쪽 왕자 복근 위로 커다란 문신 두 개가 새겨져 있다. 옆구리에는 1900년대 초 미국 대통령을 지냈던 시어도어 루스벨트의 명언을 새겨 넣었다. 140단어를 빠짐 없이 왼쪽 옆구리 아래까지 새겨 넣을 만큼 그가 좋아하는 동기유발 문구다.“비평가는 중요하지 않다. 강자가 얼마나 비틀거리는지, 또는 선수가 무엇을 더 잘 할 수 있었는지 평가하는 사람은 주인공이 아니다. 실제로 현장에 있는 사람, 얼굴이 먼지와 땀과 피로 뒤범벅 된 사람이 진정한 영웅이다….” ‘작은 도끼’가 고전 중이다. ‘적어도 큰 뜻을 품고 도전했다면 실패해도 후회하지 말라’는 격언이 그의 허리 바로 위에 새겨져 있다. 루스벨트의 그와 같은 격려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바로 지금의 앤디 오글(25)이다. 그의 저녁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수초 만에 상대가 날린 플라잉 킥으로 시작됐다. 킥은 그의 머리를 빗나갔지만 그 의도는 그의 뇌리 속에 정확히 박혔다. 상대는 막시모 블랑코라는 베네수엘라인이다. 곧장 그에게 달려들었고 그뒤 오글은 ‘그라운드 앤드 파운드(ground-and-pound)’라는 상태에서 25초를 보냈다. ‘그라운드’는 공격을 피하려 애쓰며 바닥을 기어 다니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파운드(‘마구 때리다’는 의미가 있다)’는 험악한 표정의 레슬러가 상대방을 그라운드에 눕혀 놓고 주먹세례를 퍼부어 의식을 잃게 만들려 하기 때문이다.오글의 얼굴이 피범벅이다. 결과가 뻔한 듯하다. 패배의 문턱에 선 남자의 등에 용 문신이 새겨져 있다.“내게는 매일 오전 9시에 출근해 5시에 퇴근하는 직장인과 다른 점이 딱 하나 있다. 안정된 삶을 뿌리치고 주먹으로 살아가겠다는 꿈을 실현하려 노력한다는 점이다.” 앞서 fightstorepro.com에 그가 올린 글이다. 이제 베를린에 모인 8000명의 관중 앞에서 그의 꿈이 실현되고 있다. 모두 그를 큰소리로 응원하는 듯하다. 대전료로 근근이 생활해가는 한 선수가 그를 가리켜 말한다. “순수한 근성과 결기를 가진 조디(잉글랜드 북동부 지방) 사나이가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 보여주고 있다.”오글은 그럭저럭 기운을 되찾아 몸을 일으킨다. 블랑코의 목에 한 팔을 감아 그의 허파로 들어가는 공기를 차단하고 뇌에 피가 공급되지 않도록 막으려 한다. 하지만 역시 힘에 부친다. 곧 다시 주먹 세례를 받는다. ━ 스포츠계의 신성 얼티미트 파이팅 챔피언십(UFC)의 41일째 대결이 베를린에서 진행 중이다. UFC는 종합격투기(MMA)의 최대 대회다. 대히트작 중의 대히트작이다. 축구 팬이라면 이젠 월드컵이 열리는 해에도 MMA 중계 화면 앞을 떠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MMA는 권투·주짓수·유도·킥복싱을 비롯한 기타 격투기를 검투사의 대결로 혼합한 경기방식이다. MMA의 최고 조직인 UFC는 세계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스포츠 대회가 됐다. 그들의 데이터에 따르면 연간 이벤트 관객 수가 2001~2013년 12배나 증가했다.적어도 영국 슈퍼마켓에 가면 일반적으로 고가의 비디오 게임 2종이 나란히 진열돼 있다. 월드컵의 인기를 반영한 FIFA(국제축구연맹)가 그 하나이며 나머지 하나는 UFC다. 브라질에서 캐나다, 그리고 영국에서 저 멀리 동쪽 일본에 이르기까지 MMA는 불과 10년 만에 종종 보잘것없는 변두리 스포츠 이벤트에서 비즈니스 성공사례로 부상했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지금은 세계적으로 프리미어 리그 축구의 인기를 능가한다.이 스포츠의 가장 유명한 대회인 UFC의 경우 TV 시청자 수가 150개국에서 14억 명 안팎에 달한다. 2001년 페르티타 형제가 UFC를 2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그 뒤로 이 대회의 가치가 1000배나 뛰었다. 세계의 양대 명문 축구 클럽 레알 마드리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합친 것보다 주가가 높다.이 스포츠의 엄청난 인기는 때로는 그 관계자들에게도 수수께끼다. 예컨대 여성 팬들은 어디서 나타났는가? 팬 10명 중 4명 가량이 여성이다.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이다. “세계적으로 프리미어 리그보다 더 많은 시선을 끌어 모은다.” 리버풀대 축구 비즈니스 전문가 로건 테일러 박사가 말했다. “하지만 축구와는 달리 MMA는 현대적인 스포츠 형식이라는 측면에서 역사가 아주 일천하다. 어느 날 혜성처럼 불쑥 나타난 듯하다.”축구와 MMA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높은 TV 스포츠다. 하나는 구기 종목이고 다른 하나는 다양한 기술을 가진 개인끼리 기량을 겨루는 종목이다. 그들은 혼자서 하나의 팀을 이룬다. 인간의 이 두 가지 경쟁 방식은 인류의 존재만큼이나 유서 깊은 논란을 대변한다. 인간은 협력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무자비한 경쟁자인가? 한 종목은 전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을 구현하고, 다른 하나는 개인적인 완성을 추구한다. MMA 인기의 이해는 21세기 인류에 대한 작은 통찰을 얻는 길이기도 하다. ━ 인간의 닭싸움 서로 다른 격투기를 혼합하는 아이디어는 처음에는 단순히 누가 더 센지 알아보려는 목적이었다. 마치 일곱 살 배기 꼬마가 생각해낸 스포츠 같다. 가라데 고수가 쿵후 실력자를 만나면 어떻게 될까? 고릴라 같은 체격의 권투선수와 작은 주짓수(실전 유도) 고수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 선수마다 제각기 특정 기술을 몇 년씩 걸려 단련하기 때문에 그 분야에선 남들보다 더 강하다. 따라서 저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전략으로 경기를 주도하려 애쓰는 경기로 진화했다.“그 기술은 완성하기가 대단히 어렵다.” 베를린 대회의 메인 이벤트 출전 선수인 필리핀계 미국인 마크 무노스가 말했다. “아주 많은 격투기가 관련됐기 때문이다.” 합기도, 그레코로만형 레슬링, 태권도 등이 거기에 포함된다. 합기도는 공격자의 동작을 역이용해 그 에너지를 적에게로 돌리는 기술이다. 그레코로만형 레슬링은 나폴레옹 시대의 전쟁 중 개발된 그래플링(grappling, 잡기) 스포츠다. 태권도는 화려한 발차기 기술로 유명한 한국식 격투기다. 무노스는 집요한 ‘그라운드 & 파운드’ 기술로 불도저라고 불린다. 하지만 스탠딩으로 경기가 전개될 때는 곧잘 KO를 당한다. 입식 타격기에 약점이 있다.난폭해 보이기는 해도 소문만큼 잔인하지는 않다. 아마추어 권투선수 출신의 존 매케인 미국 상원의원은 MMA를 ‘인간 닭싸움(Human cockfighting)’으로 불렀다. 20년 전 케이블 TV 방송금지 캠페인을 전개할 때였다. 이 경기는 오랫동안 무규칙 싸움(no-holds-barred fighting)으로 알려졌다가 그뒤 철조망 링 대결(cage fighting)로 불렸다. 극한의 폭력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독일은 그런 이벤트를 개최해야 할지 확신을 갖지 못했다. 한편 미국 뉴욕주에선 프로 MMA가 금지됐다.그러나 MMA는 매케인의 금지 캠페인으로 봉변을 당한 뒤 오래 전에 변화를 추구했다. 요즘의 ‘얼티미트(궁극의)’ 파이팅은 케이지 파이팅에서 ‘건강과 안전’을 강화한 버전이다. 이젠 경기가 끝날 때까지 선수들이 사지 멀쩡하게 돌아다닌다. 많은 공방전을 심판들이 판정한다. 그밖에 한쪽 선수가 너무 큰 위험에 처해 있다고 간주될 때는 일찍(때로는 너무 일찍) 경기를 중단시킨다.눈 찌르기는 파울이다. 신체의 구멍에 손가락을 넣거나 베거나 찢어서도 안 된다. 사타구니 공격은 실격이며 목을 조르거나 바닥에 쓰러진 상대의 몸 위에서 발을 구르는 행위도 금지된다. 뒤꿈치로 콩팥을 차거나 또는 놀이터에서 꼬마들이 흔히 그러듯 피부를 할퀴거나 꼬집거나 비틀어도 안 된다. 실제로 22번 규칙에선 부상을 유발하는 스포츠맨답지 않은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 그 어느 때보다 ‘닭싸움’을 엄격하게 감독한다.한 가지 인기 비결은 시금치를 먹기 전의 뽀빠이처럼 마른 체격이라도 크게 불리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 스포츠는 깡마른 싸움꾼이 새 기술을 필요로 할 때 가장 빨리 진화한다. 20세기에는 한 브라질 가문이 MMA를 지배했다. 매 세대마다 호리호리한 체격의 선수를 최소한 한 명씩 배출하는 전통이 있었다. 그런 체격으로 무지막지한 완력에 맞서려면 흠잡을 데 없는 테크닉이 필요했다.“내 새끼 손가락 힘이 당신의 손 힘보다 세다.” 지금은 고인이 된 엘리우 그레이시가 언젠가 한 영화제작자에게 말했다. “그것은 당신의 손과 내 손가락의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공격이든 시작할 때와 끝날 때 사이에 약해지는 순간이 있다. 나는 누구나 그런 순간으로 몰아간다.”심오한 폭력이다. 이 같은 싸움꾼-철학자가 깜짝 놀랄 정도로 흔하다. 이 선수들은 몇 수 앞을 내다보며 작은 실수라도 하면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을 안다. 이 경기를 가리켜 그들은 팔 다리가 말 역할을 하는 인간 체스로 부른다. 근육질에게든 약골에게든 똑같이 어필한다. “놀랍다! 이것은 체스다, 과학이다.” 1970년대 그 동작들을 지켜본 미국인 레슬러 밥 앤더슨이 말했다. ━ 파이터-철학자 그 결과 사람들의 예상을 뛰어넘는 2000년대의 손꼽히는 비즈니스 스토리가 탄생했다. “나는 11년 동안 이 일을 해 왔다.” 런던의 어번 킹스 도장에서 MMA를 가르치는 파이터 애슐리 그림쇼가 말했다. “나이트클럽에서, 복싱 링에서 경기가 벌어질 때 지켜봐 왔다. 사람들이 철조망 링 뒤에서 담배를 피워댔다. 그냥 링에 올라가 싸우고 운 좋으면 대가를 받았다.”“요즘에는 젊은이들이 이 스포츠로 성공하겠다고 하루에 두 번씩 트레이닝을 한다. 온 몸을 던진다. 전에는 모두 축구선수가 되려 하지 않았나? 지금은 사람들이 MMA 파이터가 되고 싶어한다. 사실상 세계 최고의 격투기 스포츠다. 이기는 방법이 부지기수다.”안전하다고 반드시 유순하지는 않다. 베를린에선 1차전에서 손에 골절상을 입은 한 선수가 그냥 계속 링에 올랐다. 나머지 선수들도 완전히 녹초가 되어 관중에 겨우 알은체를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한 선수는 경기 후 두 눈 위를 몇 바늘씩 꿰매고 기자회견을 할 때 온 몸에 성한 구석이 거의 없었다. 승자이면서도 불 속에서 3도 화상(피부 전층이 손상되는 괴저성 화상)을 입고 살아남은 사람만큼 간호를 받아야 했다. ━ 소유주들 선수들에 주는 보수는 권투나 축구의 인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최고 소득자의 경우 2014년 들어 이제껏 70만 달러 안팎의 소득을 올렸다. 하지만 몇몇 슈퍼스타들은 얼굴만 비치고도 500만 달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최근 갑자기 인기가 폭등했다. 너무 급속히 성장해 대다수 유럽인들은 아직 얼티미트 파이팅 챔피언십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정도다. 독자의 사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바로 5분 전에 이 스포츠를 처음 알게 됐을 확률이 85~90%는 될 듯하다. 대다수 신문은 아직 이 경기를 보도하지 않는다. 하지만 MMA를 설명하는 특집 기사들이 앞으로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스토리는 191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본 유도 챔피언이 라틴아메리카로 건너갔다. 그가 브라질의 주짓수를 확 뜯어고쳐 놓았다. 그것이 나아가 종합격투기의 밑거름이 됐다.그뒤 세기가 바뀔 때까지 그레이시 가문이 주도권을 쥐게 된다. 그레이시 스타일의 주짓수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권투도 마찬가지였다. 무하마드 알리의 등장으로 문화적 장벽이 모두 붕괴됐다. 하지만 오래 가지 않았다. 복싱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사로잡고도 다시 원래 팬들의 기반으로 되돌아갔다. MMA의 기획자들은 그런 운명을 만나지 않기 바란다.그리고 그들이 MMA를 운영하는 사람들, 아니 그보다는 그 안에서 가장 유명한 리그인 UFC를 좌지우지하는 인물들이다. 뉴스위크는 처음엔 대나 화이트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가 거절 당했다. 카지노 이권을 가진 두 시칠리아계 미국인 형제를 대신해 UFC를 운영하는 직설적이고 엉뚱한 면이 있는 45세의 남자다. (화이트는 “뉴스위크에 비우호적”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베를린에서 그를 따라잡는 데 성공했다). 매케인의 보이콧 캠페인으로 어려움을 겪으면서 파산 직전까지 몰린 뒤 UFC 인수를 제안한 사람도 그였다.로렌조와 프랭크 페르티타 형제는 그의 제안에 관심을 보였다. 그들은 세계의 격투기 수도인 라스베이거스에서 성장했다. LA에서 자랐다면 아버지가 그들을 구기 스포츠 경기로 데려갔을 것이다. 예를 들면 프로야구 LA 다저스 등이다. 라스베이거스에는 스포츠 구단이 없었다. 아버지 페르티타는 아들들을 격투기 경기에 데려갔다.성인이 됐을 때 로렌조는 복싱을 하나의 사업으로 생각했다. 그만큼 수십 억 달러의 현금을 쏟아내면서도 브랜드가 없는 다른 산업은 또 없는 듯했다. 복싱의 브랜드는 알리나 현 세계 챔피언인 플로이드 메이웨더 같은 사람들이었다. 바로 거기에 약점이 있었다. 스타들이 빛을 잃으면 복싱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도 시들해졌다. 모든 게 일회성 이벤트를 중심으로 이뤄졌다.종합격투기는 다른 시도를 해볼 만한 기회였다. 그러나 당시 큰 어려움에 처해 있었다. “UFC는 끝장난 브랜드였다.” 올해 런던의 한 기업계 오찬에서 로렌조가 말했다. “그와 관련된 이미지가 아주 나빴다. 처음 시작할 때 사실상 아무런 규칙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곤경에 처한 리그 가격이 2001년에 200만 달러였다. 그 돈을 주고 얻은 건 철자 3개 UFC가 전부였다고 로렌조(현재 순자산 13억 달러)는 즐겨 말한다.페르티타 형제는 머독 일가 같은 사람들이나 읽어낼 만한 사업성을 재빨리 간파했다. 스포츠는 사람들의 심리에 불을 지펴 미디어 업체에 돈을 지불하도록 한다. 그에 따라 미디어 업체들도 스포츠에 돈을 쓸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단발성 이벤트로 끝나는 권투와 달리 UFC는 규모를 더 키울 수 있다. 챔피언십 대회를 열고 정규 대전 일정을 수립해 TV 업체에 판매할 수 있다. 그와 같은 농구 또는 축구의 비즈니스 모델을 그 격투기 종목에 적용했다. 먹혀 들지 않았다. 페르티타 형제가 UFC에 4000만 달러를 쏟아 부었지만 거의 효과가 없었다. 로렌조는 화이트에게 전화를 걸어 발을 뺄 때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 그때 세상이 바뀌었다. 2005년 미국 내 모든 TV 방송사에 보낸 사업제안이 줄줄이 퇴짜를 맞던 중 한 곳이 관심을 보였다. 스파이크 TV가 리얼리티 TV 프로그램 구상에 호의적으로 반응했다. 일종의 테스토스테론(남성 호르몬) 흘러 넘치는 빅 브러더 프로그램이었다. 선수들이 함께 생활하며 승자가 가려질 때까지 싸우는 구조다. 스파이크 TV는 그 시리즈의 비용은 부담하려 하지 않았다. 따라서 페르티타 형제가 추가로 1000만 달러를 투자했다. “우리가 한 일 중에 가장 잘한 일로 드러났다”고 로렌조 페르티타가 말했다. “우리가 돈을 댔기 때문에 우리 소유가 됐다. 모든 권리가 우리 손에 남아 있었다.”당장 큰 히트를 쳤다. 그 네트워크 TV의 최고 인기 프로그램이 됐다. 그 프로는 UFC 관계자들이 흥행수입에 영향을 미치는 선수들을 가려내는 데도 도움이 됐다. 그들과 계약을 맺어 대결의 마케팅에 활용할 수 있었다.페르티타 형제는 성공 방정식을 정말 운 좋게 손에 넣었다. 권투는 미국 채널 HBO에 어울리게 진지한 방식으로 제작됐다. 그와 달리 UFC는 그런 제약이 없었다. 모든 이벤트에 요란한 음악이 깔린다. 곧 페이퍼뷰(유료 방송) 시청자 수 세계 1위로 올라섰다. 게다가 대다수 UFC 팬이 30세 이하다. 몇몇 스포츠보다 팬의 연령이 한 세대만큼이나 낮았다(소치 올림픽 TV 시청자의 평균 연령은 55세였다). 사업의 관점에서 볼 때 UFC는 사실상 기획업체라기보다는 미디어 업체다. ━ 철조망 링 밖에서 조앤 캘더우드는 스코틀랜드 출신의 요양시설 보조원이었다. 올 여름 라스베이거스의 한 주택에 입주했다. 그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20번째 시리즈에서 UFC 최초의 여성 스트로급(최경량급 47.6kg 이하) 챔피언 자리를 두고 경합을 벌이는 16명의 여성 중 한 명이다. “전에는 얼마나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모른다. 샌드백을 치기 시작한 뒤부터 훨씬 기분이 좋아지고 차분해지고 행복하게 느껴졌다.” 캘더우드가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교외 지역에서 생활한 어린 시절은 평범했다. 그러던 중 13세 때 어린 남동생을 킥복싱 도장에 데려다 주면서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그녀는 돌이켰다.2년 전 그녀는 세인트루이스 카운티 경찰관인 애슐리 ‘스매슐리’ 커민스와 대결을 벌였다. 얼굴에 통렬한 오른 무릎 공격을 가해 그녀를 안와 골절로 나뒹굴게 만들었다. “나는 싸울 때 거의 온전한 내가 된다. 케이지를 벗어나면 진짜 내가 아니다.”유럽에 UFC를 정착시키는 일은 개리 쿡에게 맡겨졌다. 맨체스터 시티 축구팀의 전 CEO다. “경기 장면이 우리에게 약간 거부감을 준다”고 그가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역할을 사실상 폭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것을 판매하는 일로 정의한다. “우리에게는 유쾌한 광경이 아니다. 섬뜩한 괴기 쇼 같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파이터가 되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파이터가 되는 데 필요한 노력을 이해해 달라고 요구한다.” 전에도 비슷한 일을 한 경력이 있다. 쿡은 나이키에서 경력의 꽃을 피웠다. 그 스포츠용품 메이커가 미국 시장의 48%를 점유하고 세계로 뻗어나가고자 했을 때다. 그는 한 농구선수에게 그의 차와 조화를 이루는 운동화를 제공했다. 그것이 크게 히트 쳤다.“마이클 조던은 나이키 성장의 촉매제였다”고 쿡이 말했다. “조던은 자신이 아니었다면 나이키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성싶다. 나이키 역시 자신들이 아니었다면 마이클 조던도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할 듯하다. 영원히 논란이 될 만한 문제다.” 그의 UFC 홍보 전략은 영웅 만들기다. 유럽에서 대회를 많이 여는 식으로는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고 그는 말한다. 성장은 스토리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에서 시작된다. “어느 스포츠나 세계 수준에서 3~4명의 스타가 있을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국가 차원에선 6, 8 또는 10명 정도다. 그리고 지방차원에서도 저마다 스토리가 있다.”2012년 그 일을 맡았을 때 쿡은 선수들에게 잠재력이 있음을 알았다. 2년 전 맨체스터 시티 구단과 투어를 하던 중 평소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하면 팀 선수들을 즐겁게 하느냐는 문제에 직면했다. 축구 선수들은 헤드폰이나 X박스 게임기를 들고 자기 방에 틀어박히기 일쑤였다. 미술관에 흥미를 보이는 부류는 분명 아니었다.그중 한 선수인 크레이그 벨라미가 인근 도장에서 몇몇 UFC 선수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뜻밖에도 구단 전용 버스 좌석이 남아돌던 평소와 달리 추가로 차량이 필요했다. “뭔가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만인의 스포츠 스타들에게 또 다른 스포츠 영웅들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거느린 선수들은 전도 유망한 원석들이다. 베를린의 메인 이벤트 출전선수 중 하나인 무노스가 대표적이다. 캘더우드와 마찬가지로 인상과 달리 조용한 음성을 갖고 있다. “뭐랄까, 우리는 무식한 사람들이 아니다”고 그가 말했다. “링 안에서는 사납지만 밖에서는 부드럽게 행동하는 법을 안다. 부드러움은 억제된 강인함이다.” 그는 격투기 재능 덕분에 사람 목숨도 구 할 수 있었다고 한다.생명을 구한다고? 무노스(36)는 괴롭힘을 당한 뒤 운동을 시작했다. 불량배들이 그의 조던 운동화를 빼앗아갔다. 쿡이 크게 유행시키는 데 기여한 바로 그 운동화다. 그는 꾀병을 부려 학교에 결석했다. 그뒤 한 친구가 그를 종합격투기 도장으로 이끌었다. 무노스는 현재 캘리포니아주 오렌지 카운티에 있는 자신의 도장에서 갱단 아이들을 제자로 받아 운동을 가르친다. “주먹·발·팔꿈치·무릎을 사용하는 법만 가르치지 않는다. 아이들을 정중하게 대하며 묻는다. “내가 이런 식으로 대할 때 어떤 기분이 드는가? 자신의 가치를 알겠는가?”“큰 힘을 갖고 있으면 그만큼 큰 책임이 따른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런 힘을 부여할 때 그도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도장 밖에서는 사람들을 부드럽게 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도장의 문하생들이 직장과 가족을 갖고 지역사회 자원봉사 활동을 하며 허튼 생각 하지 않고 성실하게 살아간다고 그는 말한다. 한편 무노스는 다른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고 코치에게 지청구를 들었다. 베를린에선 경기에 패해 크게 낙담한 표정이었다.영국에는 루크 바냇이 있다. 쓰리 피스 정장과 스토리를 좋아하는 매력 있는 파이터다. 아마추어 시절 데뷔 전 1라운드에서 턱뼈가 부러졌다. 입을 벌려 코치 로비 올리버에게 보여줬다. “이빨 몇 개 부러진 정도야.” 코치가 말했다. “다시 가서 싸워.” 그 대전에서 바냇이 승리했다. “잘 했어, 친구.” 올리버가 말하면서 그가 앞서 무시했던 부상을 인정했다. “턱뼈가 부러졌어. 병원에 가보는 게 좋을 거야.”아일랜드에는 코너 맥그리거가 있다. 어린 시절 파이터를 꿈꿨으며 이제 격투기로 실업자 신세를 벗어날 기회를 잡았다. 스웨덴에는 니클라스 백스트롬이 있다. 베를린에서 승리 후 이제 집세를 낼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감격해 눈물을 쏟아냈다. “향후 5년 동안 이 선수들의 비상과 그들의 스토리가 UFC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쿡이 말했다. 유럽에서 도장 사업 계획도 세워 놓았다. ━ 동조자 세대 런던 중심부 킹스 크로스 인근에 어번 킹스라는 도장이 있다. 종합격투기 훈련을 하는 수련생 중에 변호사와 패션 디자이너가 있었다. “정말 희한하다.” 온라인 광고업에 종사하며 싸움꾼 부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히렌 랙스먼이 말했다. “MMA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무뢰한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수련자들은 대부분 정말 친절하다. 육체적 장벽을 거의 허물고 사람들과 금세 친해지게 된다.”“마음 속 깊숙이 저마다 수련을 하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사범인 조시 팔머가 말했다. “기본적으로 허영심에서 찾아오는 사람도 있다. 나머지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사람들이다. 일부 괴롭힘을 당해 좀더 자신감을 가지려는 사람도 있는 반면 그냥 싸움이 좋아서 오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 마지막 그룹은 “술집 이외에 불법이 아닌 곳에서 싸움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라고 그는 덧붙인다.MMA의 부상은 우리에 관해 무엇을 말해 주는 걸까? 리버풀대의 학자인 테일러에 따르면 그 인기는 요즘의 트렌드를 반영한다. 일부 조사에선 대학생들이 구기 종목보다 개인 종목을 선호했다.“우리가 속한 세대는 동조하는 세대에 속해 있다”고 쿡이 말했다. “팀 세대. 뭐랄까, 프로그램된 TV, 한정된 채널!” 스노보딩과 바이시클 모터크로스(BMX) 같은 개인 종목 스포츠가 성장한다. “개성 표현의 문제다. MMA는 그런 세대 흐름의 일부라고 생각한다.”“따지고 보면 우리는 감정을 판다”고 로렌조 페르티타가 말했다. “우리는 아드레날린으로 장사를 한다. 우리가 더 젊은 세대와 소통하는 까닭이다.”지난 5월 쿡은 그리스의 TV 네트워크 방송 관계자들과 만났다. “전투를 탄생시킨 시조들의 고향인 아테네에서 정말로 경기를 갖고 싶다고 말했다”고 쿡은 돌이켰다. “또는 로마의 콜리시움 앞에서나.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말할 것이다. 야, 저것 봐. 2000년 역사가 지난 뒤 다시 출발점에 섰네.”

2014.12.29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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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RISCOPE | ENVIRONMENT - 유행병의 근원은 기후변화?

산업 일반

풀숲이 무성한 어느 이름 모를 정글 한가운데를 정비해 만든 육군기지가 있다. 이 기지엔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고 있는 병사들과 지역 주민들이 가득하다. 밖에는 시체더미가 불타고 있다. 미군 항공기 소리가 들려오자 미국인과 아프리카인이 천막에서 뛰어나와 하늘 위로 손을 흔들며 항공기를 맞이한다. 그러나 기쁨의 미소를 짓던 한 사람의 얼굴은 항공기에서 떨어지는 것이 치료제나 보급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공포로 일그러진다. 폭탄이 터지면서 사람들과 주변 나무들을 태워버린다. 폭발 뒤 폐허 속에서 머리가 흰 꼬리감는원숭이 두 마리가 도망친다.이상은 1995년 개봉한 영화 ‘아웃브레이크’의 첫 장면이다. 에볼라와 유사한 바이러스가 미국 땅에 유입되면서 무시무시한 살인 바이러스가 되어가는 내용을 그렸다. 이 영화는 문제의 바이러스를 서구 군의 무차별한 벌목과 직접 연결시킨다. 지역 보건소 직원은 미군 바이러스학자에게 원주민들은 “인간이 나무를 베는 바람에 신들이 잠에서 깨어나 분노했으며, 이 병은 신들이 내리는 벌”이라 믿는다고 말한다.2011년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컨테이전’은 세계적 유행병을 다른 관점에서 조명한 영화다. 여기서도 영화제작자는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살인 바이러스 발생 원인은 산업을 위한 벌목이라는 것이다. 이 21세기 유행병 영화에선 다국적기업의 불도저가 중국의 한 야자나무 숲을 밀어버리면서 그곳에 살던 박쥐들의 터전까지 없애버린다. 그 박쥐들은 근처 양돈장으로 날아가 감염된 과일을 우리 안에 떨어뜨린다. 돼지가 과일을 먹고, 사람이 돼지를 먹고, 그렇게 바이러스는 퍼진다.이 영화들을 비롯해 대중문화에서 묘사되는 유사 에볼라 바이러스들은 세계화와 인간의 무분별한 자연파괴로 인해 발생한다. 인류를 위협하는 요인이 인류라는 믿음은 할리우드만의 상상이 아니다.“인간은 최근 발병하는 질병들의 주요 원인”이라고 역학자 조너선 엡스타인은 말했다. 엡스타인은 비영리기구 에코헬스 얼라이언스에서 에볼라 등 유행병을 연구한다. “농업의 확장과 벌목, 여행과 무역 같은 요소들이 우리 환경에 변화를 가하면서 병원균들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옮겨오도록 만든다.”2012년 출판된 한 연구는 30개국의 유행병 전문가들에게 기후변화가 유행병의 양상을 바꿔놓으리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대다수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럼에도 이런 믿음이 올바른 과학에 기초한 것인지 아니면 맬컴 글래드웰이 1995년 주장했듯이 죄책감 탓에 “질병을 처벌로 간주하려는 생각”인지는 확실치 않다.최근 에볼라 바이러스가 창궐한 서아프리카는 지난 몇 년 동안 명백한 환경 변화를 겪었다. 국제식량정책연구소(IFPRI)는 2013년 한 보고서에서 시에라리온의 기후변화가 “계절성 가뭄, 강풍, 뇌우, 산사태, 폭염, 홍수, 강우량 변화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최근 세계 곳곳에 창궐하는 유행병은 기온 상승과 연관됐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둘 사이의 직접적 인과관계는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또 한 가지 요인은 식량 부족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감염된 동물과의 접촉을 통해 인간에게 전염된다고 알려져 있다. 이 바이러스는 박쥐나 원숭이 같은 동물 체내에선 숙주에 해를 입히지 않고도 수 년을 산다. 인간이 감염된 야생동물 고기를 먹었을 경우에만 위험해진다. 가난하고 자원이 부족한 지역에 사는 인구는 에볼라 바이러스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먹고 살기 위해 야생동물 고기에 의존하기 때문이다.2013년 IFPRI 보고서에 따르면 “가난한 집단이 기후 변화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는다.” 이런 집단이 가난해질수록 야생동물을 식량으로 삼으리라는 사실을 추정하기란 어렵지 않다. 인간 행동의 변화는 결국 자연환경에 영향을 미친다. “숲을 침범하는 만큼 에볼라에 더 많이 노출된다”고 컬럼비아대 역학 전문가 스테판 모스는 말했다. “그 결과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확실하지 않다.”모스는 기후 변화가 미래의 에볼라 발병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추측할 유일한 방법은 과거 에볼라가 창궐했던 아프리카 특정 지역을 대상으로 한 정밀 미기후(지표면과 1.5m 이내로 인접한 대기층의 기후) 분석이라고 믿는다. 에볼라를 비롯한 유행병이 최근 몇 년 간 아프리카 대륙 곳곳에서 새로 발병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미기후 분석도 충분한 해법은 아니다. 뿐만 아니라 연구는 지구온난화가 말라리아 같은 매개인자성 감염질병을 확산시키리라는 사실을 강하게 시사한다. 모기처럼 그런 질병을 옮기는 매개는 대개 더운 기후에서 번성하기 때문이다.지난 수 세기 동안 해양 온도는 10년 당 평균 0.13도 정도로 크게 상승했다. 콜레라균은 따뜻한 물을 좋아하기 때문에 연구는 바다 온도 상승이 콜레라 발병 확률 증가와 연관됐다는 점을 입증했다. 게다가 기온이 높아지면 남극과 북극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상승한다.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더 큰 문제다. 세계화는 아프리카의 인구통계를 크게 바꿔놨다. 갈수록 많은 사람이 시골 지역을 떠나 도심지로 이동한다. 그로 인해 공중보건 문제가 향후 더 심각해질 전망이다.“해안 지역 대도시로 이사하면 유행병에 취약해진다. 위생시설과 깨끗한 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스테판 모리슨 국제전략연구소 세계보건정책센터 이사는 말했다. “기후 변화 탓에 해안 지역은 범람 위험이 더 커졌다. 그에 따라 콜레라 같은 유행병이 창궐할 가능성도 높아진다.”말라리아와 콜레라는 에볼라보다 훨씬 더 공중보건에 큰 영향을 미치는 질병들이다. WHO는 연간 콜레라 사망자를 약 11만 명으로 추산한다. 말라리아 사망자는 2012년에만 62만7000명으로 추정된다. 반면 에볼라가 처음 확인된 1976년 사망자는 1600명에 그쳤다. 인류 생존에 좋은 소식은 아니다. 현대 사회가 지구 환경에 미치는 영향으로 에볼라가 크게 유행할 일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공포스러운 다른 질병이 창궐할 확률이 높아진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2014.08.25 17:11

4분 소요
CRYPTOCURRENCY - '비트코인은 ― ― ― 다'

가상화폐

피츠버그에서 일하는 프로그래머 댄 므로스는 2011년 처음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그 뒤로 그 논란 많은 오픈소스(소스 프로그램 공개) 디지털 통화의 가능성에 매료돼 왔다. 댄은 틈만 나면 영화감독인 동생 닉을 붙잡고 비트코인에 관한 복음을 전도했다. 닉도 곧 비트코인에 관심을 갖게 됐다.영화 제목이 말해주듯 ‘비트코인의 부상(The Rise and Rise of Bitcoin)’은 므로스 형제가 비트코인에 보내는 러브레터다. 글로벌 경제에 혁신을 가져올 잠재력을 찬양한다. 다큐멘터리는 특이하면서도 성장하는 비트코인 하위문화에 대한 전례 없는 통찰을 제공한다. 그리고 비트코인을 대중화하기 위해 자신의 생계와 자유를 걸었던 몇몇 기업가들을 소개한다.닉과 댄 므로스 형제가 2014년 트라이베카 영화제에서 ‘비트코인의 부상’을 선보이기 위해 4월 말 뉴욕을 방문했다.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스가 그들을 만나 난해한 비트코인의 세계에 관해 질문을 했다.비트코인의 부상’은 비트코인이 정확히 무엇이냐는 어려운 문제를 다룬다. 영화는 비트코인의 난해함을 인터넷 초창기에 비유했다. 그것을 설명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정말 적절히 묘사했다. 지금도 우리 대다수는 인터넷이 정확히 무엇인지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것이 우리 삶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인데도 말이다. 비트코인이 우리 문화 속에 아주 깊게 뿌리를 내려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필요가 없는 때가 오리라고 생각하는가?댄: 그렇다. 우리가 인터넷을 할 때는 DNS 시스템을 이용한다. 하지만 대부분 그것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비트코인은 현재 프로토콜(컴퓨터 통신규약)이다. 그 토대 위에 아무 것도 세워지지 않았다. 가공되지 않은 원료를 다룬다. 지금은 비트코인을 사용하려면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상당히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앞으로 신생 벤처기업들이 누구나 그것을 쉽게 이용하도록 만들어나갈 것이다.전에는 비트코인이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통화의 자리를 ‘접수하려’ 한다는 생각도 가졌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공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전에는 비트코인이 연방정부가 보증하는 통화의 자리를 ‘접수하려’ 한다는 생각도 가졌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난 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지 않은 듯하다. 공존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댄: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비트코인에 관해 많은 사람이 그런 말을 듣기 때문이다. 이들 무정부주의자 단체가 비트코인으로 은행을 쓰러뜨리려 한다고 말이다. 뉴스를 보면 그런 인상을 받는다. 아니면 돈세탁 수단이라든가. 하지만 비트코인은 그냥 프로토콜이다. 우리는 바로 그런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닉: 비트코인은 도구다. 많은 사람이 다른 목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악의를 가진 사람이 있다 해도 비트코인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우리는 바로 그런 점을 영화에서 보여주고자 했다. 비트코인은 이런 기술이며 사실상 어느 하나에만 연결돼 있지 않다. 전 세계에서 비트코인과 중앙통제형 통화가 어떻게 공존해 나가는지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선 현 금융시스템 내에서 조화를 이뤄나가는 길을 찾기 기대한다.비트코인은 오픈소스 기반이다. 오픈소스는 대부분 아주 안전하다고 간주된다. 그러나 최근 발견된 하트블리드 버그(인터넷 보안인증 체계의 취약점)는 단순한 오자 하나가 얼마나 쉽게 심각한 재앙을 초래할 수 있는지 드러냈다. 하트블리드로 인해 비트코인 커뮤니티 사람들이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를 재고하게 됐을까? 최악의 시나리오는 무엇인가?댄: 하트블리드 보안 버그는 대단히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보안결함은 개방형이든 폐쇄형이든 모든 소프트웨어에서 발생한다. 오픈소스 소프트웨어는 아주 많은 이용자가 심사하고 테스트할 수 있다. 따라서 그것이 더 우수한 개발방법이라는 믿음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 비트코인은 글로벌 통화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특성을 지닌다. 그것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고는 다른 방법으로 악용하기는 불가능하지 싶다.비트코인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는지 아직 완전히 감이 잡히지 않는다. 뉴욕 어디서도 비트코인으로 커피 한 잔 사먹을 수 있는 곳을 못 봤다. 그게 미래의 모습인가?댄: 지역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발전해 나간다. 미국에선 사람들이 그것을 이용해 금융 소득을 얻기 위한 투자수단으로 이용한다. 한편 (영화 속에 소개된) 뉴햄프셔 내슈아에서 열린 비트코인 박람회에 갔을 때 모든 판매사가 비트코인 결제를 받았다. 한 주 동안 비트코인으로 생활했다.비트코인은 나온 지 5년밖에 되지 않은 신생 통화다. 그리고 2013년에야 사람들에게 그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했다. 닉: 사람들이 벌써부터 답을 원한다. 하지만 그것은 1985년의 시점에서 미래의 인터넷이 어떤 모습일지 묻는 격이다. 답을 알려면 시간이 걸린다. 아직 답이 나오지 않았다.‘비트코인의 부상’에서 인터뷰한 사람 중 여성은 극히 드물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실제로 영화 속에 등장한 유일한 여성은 비트코인 커뮤니티 사람이 아니었다. 비트코인 커뮤니티는 얼마나 남성 위주의 사회인가?닉: 우리 다큐멘터리는 주로 미국 이야기를 다뤘다. 우리 눈 앞에 펼쳐지는 모습 그대로 스토리를 담았다. 지금은 비트코인 사회가 주로 남성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이는 기술업계와 금융업계 전체의 남녀 구성과 비슷하다. 비트코인 자체는 항상 공적인 영역에 있었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어느 한쪽 성에 치우치도록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모두가 비트코인을 더 잘 이해하도록 돕는 영화를 만들려고 많은 애를 썼다. 그리고 그것이 성별과 배경을 초월해 모든 사람에게 알리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믿는다.영화는 안정적인 중앙통제형 통화가 없는 개발도상국에서 비트코인이 얼마나 가치 있게 쓰일지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러나 비트코인을 사용하려면 스마트폰이 있거나 이동통신 망에 접근해야 한다. 이 문제는 어떻게 조정하나?닉: 개도국 사람들은 다른 건 별로 없어도 휴대전화는 갖고 있는 편이다. 휴대전화를 손쉽게 구하며 은행에 가서 계좌를 개설하기보다 온라인 금융 시스템에 가입하는 편이 더 빠르다.댄: 개도국이 성장하는 동안 금융 인프라를 갖추지 못했다면 이젠 그럴 필요가 없다. 당장 그 단계를 뛰어넘을 수 있다.스마트폰으로 모든 거래를 할 수 있게 된다면 대단히 편리할 것 같다. 하지만 약간 겁이 나기도 한다. 가령 9·11 테러 같은 재앙이 일어나 도시의 어느 누구도 전화가 되지 않을 경우에 말이다. 모두가 디지털 통화를 사용한다면 그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겠는가?댄: 보완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비트코인을 사용하면서 동시에 달러를 보유하는 방법도 있다.영화에서 지적하듯 도난 당한 비트코인을 회수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대규모 절도 행위에 더 취약하다고 생각하는가?댄: 절도는 언제나 일어나게 마련이다. 하지만 비트코인의 경우엔 대규모 절도를 방지하기가 쉽다. 최근 대형 유통체인 타겟의 보안 시스템에 구멍이 뚫려 수백 만 건의 카드 번호와 개인정보가 도난 당한 일이 대표적이다. 비트코인 분실을 막는 최선의 도구는 적절한 보안관행의 교육과 우수한 지갑 소프트웨어다. 비트코인을 더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온갖 방법을 시도하는 기업들이 많다. 지갑 서비스로부터 오프라인 저장(cold storage) 시설까지 다양하다. 비트코인 소프트웨어 자체도 갖가지 유형의 절도로부터 더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결제가 이뤄지도록 만드는 최신 기능들이 계속 추가된다.댄은 비트코인 채굴자다. 비트코인 채굴이 정확히 뭔지 말해줄 수 있나? 그것이 생계수단인가?댄: 내 본업은 소프트웨어 개발자다. 비트코인은 취미다. 비트코인의 경우 거래 처리과정은 크라우드소싱(불특정 다수에게 일을 맡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따라서 비트코인 채굴자는 비트코인 네트워크에서의 거래 처리과정에 전 세계에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렇게 발급된 비트코인으로 보상받는다. 비트코인은 이처럼 머리가 없이 분산된 네트워크다. 운영에 필요한 모든 작업을 크라우드소싱으로 수행하며 그 작업의 대가로 비트코인을 지급한다.다큐멘터리에서 나카모토 사토시가 여러 차례 언급됐다. 그리고 한 번은 그를 찾아냈다고 주장한 뉴스위크 기사를 다룬다(IB타임스와 뉴스위크는 같은 모기업 아래 있다). 영화를 보면 당신들은 그 기사에서 언급된 남자가 나카모토 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듯하다.댄: 아니라고 생각한다.닉: 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가 과거에 비트코인과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영화제작의 관점에서 (그 스토리를 포함시킨 건) 비트코인이 이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수준에 도달했음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더 컸다…. 그 스토리가 1년 전에 터져 나왔더라면 그처럼 반응이 뜨거웠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나카모토가 왜 숨어 있다고, 다시 말해 정체를 밝히려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댄: 비트코인이 얼마나 커지고 있는지, 사람들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얼마나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지 보라. 그들이 누구이든 간에 암호화에 관해 많이 알고 있었다. 어쩌면 국가안보국(NSA)에 근무하는 사람이 부수적 프로젝트로 이 작업을 한 뒤 그로 인해 말썽에 휘말리기를 원치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다른 나라 정부 소속인지도 모른다.그게 누구든 프라이버시를 상당히 중시하는 사람들이다. 자신의 신원을 감추려고 그렇게 도를 넘게 애를 쓰더니 왜 자신의 이름을 쓰는지 이해가 안 간다. 그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나카모토는 사람들이 오래 전부터 풀려고 애써 왔던 컴퓨터 과학 문제를 해결했다. 누군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세상에 알린 뒤 입을 다문 채 음지에 남아 있으려 했다.당신인가? 당신이 나카모토 사토시인가?닉: 늦은 밤 편집실에서 우리 편집자가 때때로 나를 바라보며 “댄이 나카모토 아냐?” 라고 묻곤 했다. 그건 필시 농담이었다. 물론 아니다.댄: 공식적으로 아니다.

2014.05.13 15:31

6분 소요
일본의 작은 마을에 트윗이 날았다

국제 이슈

어촌 다이지의 돌고래 몰이 사냥에 전 세계에서 비난이 쏟아져…트윗이 일으킨 전격 공습이다 이소다 교코는 왜소한 체구의 할머니다. 일본 서부의 작은 어촌 마을 다이지에서 정갈한 시골 여관을 운영한다. 영국 코미디언 리키 저베이스가 뜨거운 녹차 한 주전자를 할머니의 무릎에 엎지른다 해도 아마 그가 누군지 모르지 싶다. 그러고 보면 캐나다 록가수 브라이언 애덤스나 미국 여배우 헤이든 파네티어 같은 스타들도 마찬가지다. 또는 일류든 삼류든 이 조용한 마을에서의 연례 행사를 목청 높여 규탄한 다른 많은 유명인사들도 알 턱이 없다. 이들이 올해 초 소셜미디어에 메시지를 띄우면서 예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다이지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마을이 됐다.이들 스타 중 일부는 다이지까지 찾아가 이 작은 마을에서 자신들이 목격한 장면에 얼마나 경악했는지 소셜미디어에 묘사했다. 록그룹 건즈&로지즈의 전 드럼 주자 매트 소럼은 2013년 9월 다이지를 방문했다. 그뒤 ‘끔찍한 악몽’을 꾸거나 미스터리를 다룬 TV 드라마 ‘환상특급(The Twilight Zone)’의 한 편을 관람한 기분이라고 트위터에 올렸다.그가 목격한 ‘악몽’은 다이지 어민들의 이른바 돌고래 몰이 사냥(drive hunt)이었다. 매년 여러 달에 걸쳐 돌고래를 작은 만으로 몰아넣어 가둔다. 일부는 포획되어 전 세계 수족관으로 팔려나간다. 나머지는 어민들이 휘두르는 긴 작살에 전신이 찔려 죽는다. 죽은 돌고래는 지역 시장에서 식용으로 팔린다.여관 주인인 이소다는 그런 논란을 잘 알고 있다. 마을 주민 3400명 모두 마찬가지다. 유명한 캐럴라인 케네디가 세계적인 분노에 불을 댕긴 장본인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 일본 주재 미국 대사가 지난 1월 17일 띄운 트윗이 발단이 됐다. 그 사냥의 “비인간성”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이소다는 현지의 대다수 어민들과 마찬가지로 아무런 문제도 없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자신의 작은 어촌 마을이 전 세계의 유명인사들과 민간인들에게 악당 취급을 받게 된 데 조용히 불만을 토로한다.연례적인 돌고래 사냥을 향한 이번의 세계적인 분노는 첨단기술이 사회운동을 어떻게 바꿔놓는지 보여주는 가장 최근의 사례다. 소셜미디어는 세계 각지에서 극적인 정치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유명해졌다. 아랍의 봄으로부터 지난 2월 빅토르 야누코비치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몰락까지 계속 큰 영향력을 발휘했다.더 미시적인 개혁 캠페인에서도 역할을 맡는다. 예컨대 중미와 남미의 우범지역 주민들은 문자 메시지와 트위터 덕분에 지역사회 감시를 더 효과적으로 수행한다. 뿐만 아니라 멕시코 시우다드 후아레스와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 같은 도시의 개탄스러운 사법 실태에 항의하는 집회를 조직하기도 한다.고래와 돌고래 사냥 금지 캠페인을 벌이는 사람들뿐이 아니다. 환경운동 및 자연보호 단체들도 소셜미디어 활용법을 적극적으로 교육하고 있다. 지자자들이 자신들의 운동에 대한 일반인들의 열렬한 지지를 끌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일례로 그린피스는 2013년 전 세계 180명의 회원을 대상으로 소셜미디어 우수 활용사례에 관한 강습을 실시했다. 그리고 가장 최근의 디지털 전략에 관한 노하우 공유 연례 세미나에는 40개국에서 130명이 참석했다.전통 vs 트윗이소다의 집안은 대대로 고래사냥을 업으로 삼아왔다. 아버지는 남자들을 바다로 실어 나르는 배를 설계했다. 남편은 고래를 사냥해 22년 동안 가족을 부양했다. 그녀는 어릴 때부터 고래와 돌고래를 먹기 시작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마을 사람 다수가 그 고기를 먹으며 목숨을 부지했다.케네디 미국 대사의 아버지 존 F 케네디 대통령은 그 전쟁 중 태평양 전역의 솔로몬 제도에서 고속 어뢰정의 정장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은 일본에 무자비한 폭탄 세례를 퍼붓고 있었다. 대도시 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다이지 마을도 폭격을 받았다.오늘날 이소다는 자택에 앉아 당시를 회고한다. 전쟁이 끝나갈 무렵에는 식량이 귀했다. 전시 중 굶어 죽을 가능성은 이소다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악몽이었다. 그들의 굶주림을 달래준 게 고래와 돌고래 고기였다. “그 고기마저 없었으면 우리는 살아남지 못했다”고 그녀가 말했다. “그들이 우리를 살렸다. 좋은 때나 힘든 때나 항상 함께 했다.”이소다를 비롯한 다이지 주민들은 그런 고통스러운 한때를 견뎌냈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본 적도 없는 사람들, 그녀의 여관이나 마을에 발을 디딘 적도 없는 사람들이 다이지를 해상 도살장으로 묘사한다. 그 귀엽고 똑똑하고 작은 병코 돌고래들을 수백 마리씩 궁지로 몰아넣고 마구 학살해 바다를 핏빛으로 물들이는 곳으로 말이다.다이지 사람들은 수세기 전부터 돌고래와 고래를 사냥해 왔다. 산겐 카즈타카 다이지 읍장에 따르면 정확히 1675년부터다. 그는 어떤 방문자에게도 기꺼이 현지의 고래사냥 전통이 기록된 책자를 나눠준다.그와 같은 역사 주장은 사냥과 관련된 다른 많은 사실들과 함께 갈수록 뜨거워지는 싸움의 불쏘시개가 됐다. 고래와 돌고래 사냥이 다이지의 전통이라는 어민들의 주장은 터무니 없는 과장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몰이 사냥이 1969년부터 시작됐다고 동물보호 단체와 기타 고래사냥 금지 운동가들은 반박한다.많은 마을 주민들은 그런 주장이야말로 무지나 악의의 증거라고 흥분한다. 지난 10년 동안 그런 주장으로 끈질기게 자신들을 괴롭혀 왔다고 주장한다. 1969년은 돌고래 몰이 조업이 ‘제도화된’ 해라고 산겐 읍장은 말한다. 어민들이 조합을 형성해 그 조업을 더 조직적인 행사로 만들었다는 의미다. 그때부터 돌고래 몰이 조업이 시작됐다는 주장은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그들은 말한다.다이지 마을에서 돌고래 몰이 조업이 언제 시작됐는지를 둘러싸곤 많은 논란이 있지만 그에 관한 싸움이 언제 시작됐는지에는 이론이 없다. 2003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조용히 어업을 하며 살아 왔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그 때 해양생물보호단체 ‘시셰퍼드’의 선박 한 척이 다이지를 찾아왔다. 오래 전부터 일본을 비롯한 고래사냥 국가들과 투쟁을 계속해온 단체다.처음에는 거리를 돌아다니는 이방인들을 보고 그냥 관광객들이려니 생각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그러나 그 방문객들이 단순히 휴가를 즐기러 온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점차 깨닫기 시작했다. 다이지 어민조합의 스기모리 미야토 특별 고문은 그 운동가들이 현지 어민들을 괴롭혔다고 주장한다.카메라 삼각대로 어민들을 치고 찍지 말라는데도 동영상을 촬영했다는 주장이다. 운동가들이 작살을 부러뜨리고 그물을 찢었다고 스기모리가 말했다. ‘시셰퍼드’와 기타 포경반대 운동가들이 다이지 도처에 부쩍 늘어났다. 주민들의 프라이버시가 침해 당한다는 푸념이 터져나올 정도였다. 한 번은 마을 주민의 장례식에 운동가들이 불쑥 들이닥쳤다. 그 모임이 돌고래 사냥과 관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산겐 읍장은 익명의 살해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현지 어민들의 얼굴 사진이 박힌 서방식 ‘현상수배’ 포스터들이 마을 주위에 나붙기도 했다고 한다. 다이지가 “잔인하고 미개한 공동체”로 낙인 찍혔다고 그는 분통을 터뜨린다.운동가들이 괴롭혔다는 주장은 “뻔한 거짓”이라고 ‘시셰퍼드’의 멜리사 세갈 선임 만안 지역 보호팀장은 말한다. 그 단체의 회원들은 “하루 24시간, 1주일 중 7일 내내 경찰의 감시를 받는다”고 그녀는 말한다. “우리는 현지 주민들을 괴롭히려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우리의 방문 목적은 현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기록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편향된 다큐멘터리릭 오배리는 과거 1960년대 인기 TV 프로그램 ‘플리퍼(Flipper)’에 동원된 돌고래들의 조련사였다. 그가 이끄는 팀이 2009년 그 돌고래 사냥을 다룬 ‘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The Cove, 이하 코브)’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몇 부작으로 구성된 그 영화는 일방적이고 도를 넘었다.제작자들은 많은 첨단기술 장비를 들여와 매년 돌고래 몰이가 이뤄지는 만의 음향과 영상을 녹음하고 촬영했다. 다큐멘터리 속에선 그들이 밤중에 몰래 나가 그런 작업을 하고 워키토키로 교신을 한다. 그리고 마치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하는 미국 해군 특수부대 네이비씰 요원들처럼 행동한다. 현지 경찰차로 간주되는 표식 없는 차량의 추적을 받자 그들은 황급히 작전을 포기한다.그뒤 호텔로 돌아간 오배리는 일본이 자유롭고 평화주의적인 서구식 민주주의 체제보다는 마치 사담 후세인 치하의 이라크와 더 공통점이 많은 나라인 양 묘사한다. 아무런 혐의도 없이 체포되어 28일 동안 억류되는 일이 숱하게 일어난다고 팀원들이 믿게 만든다. 그런 이유에서 경찰이 대다수 범죄를 자백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다. 고로, 일본에선 ‘고문’이 일상사라고 그는 결론 짓는다.다큐멘터리는 또한 일본 국민들이 돌고래 고기를 먹고 수은중독에 걸리는 도발적인 전망을 노골적으로 제기한다. 일부 돌고래의 수은 농도가 대단히 높은 듯하다는 이유에서다. ‘코브’는 다이지에서 일어나는 일을 끔찍한 미나마타병의 발생에 비유한다. 미나마타병은 1950년대 그 병이 발생한 일본 도시에서 이름을 따왔다. 당시 산업폐수에 오염된 물고기를 통해 수천 명이 수은에 노출됐다. 그 기간 중 태어난 일부 아기에게서 심한 기형이 나타났다. ‘코브’는 흑백 필름으로 그 모습을 보여준다.미나마타는 아마도 일본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공업중독 사례일 성싶다. 그러나 다이지에 대한 비유는 지나치게 아전인수 격이라고 영화에 출연한 한 학자가 말한다. 홋카이도 대학의 엔도 테츠야 보건학 조교수는 다큐멘터리에서 수은에 심하게 오염됐다고 알려진 돌고래 고기 조각을 들고 출연한다. 그러나 엔도는 자신이 카메라 앞에서 한 말은 돌고래의 간에 수은 농도가 높다는 것이었지 상점에서 판매되는 돌고래 고기의 이야기는 아니었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다이지의 어민조합은 부분적으로 엔도의 촉구에 따라 2003년 돌고래 간의 판매를 중단했다).엔도는 인터뷰가 자신이 의도한 내용과 달리 편집됐음을 보고는 자신이 등장하는 부분을 영화에서 삭제해 달라고 제작자들에게 요청했다고 한다. 그 요청이 거부당하자 그는 영화 배급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온갖 결함에도 불구하고 ‘코브’는 가슴을 에이는 듯한 충격을 안겨준다. 특히 다이지 어부들이 연거푸 돌고래들을 작살로 찔러댈 때보다 더 고통스러운 장면은 없다. 상처를 입고 죽어가는 동물들이 물 위로 뛰어오르며 발버둥치다가 마지막에는 축 늘어지며 수면으로 떠오른다.영화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다. 다이지 돌고래 사냥에 대한 세계적인 인식(그리고 그에 대한 공분)을 이끌어냈다. ‘코브’는 2009년 아카데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다. 루이 시호요스 감독과 피셔 스티븐스 제작자에게 맷 데이먼이 아카데미상을 전달했다. 2010년에는 제니퍼 애니스턴, 고(故) 제임스 곤돌피니, 로빈 윌리엄스, 우디 해럴슨 등을 포함한 유명인사들이 ‘코브’와 관련된 공익광고 방송에 출연했다. 그 연례적인 사냥 관련 “소식을 널리 퍼뜨리도록” 사람들에게 촉구했다.그 작은 마을의 문제가 세계의 주목을 받는 사건으로 확대됐다. 오배리가 원한 그대로였다. 그는 매일 돌고래와 함께 일하는 유명한 직업을 거쳐 이 운동에 뛰어들었다. 인기 프로 ‘플리퍼’에 등장하는 돌고래 조련사 역을 맡아 미국의 비공식적인 ‘미스터 돌핀’으로 불렸다. 사랑스러운 주인공 역의 동물들이 당시엔 큰 인기를 끌었다(‘래시’의 콜리종 개, ‘린틴틴’의 독일 셰퍼드도 인기를 모았다). 그리고 사랑스러운 돌고래 ‘플리퍼’가 또 다른 TV 아이콘이 됐다. 매주 영리하거나 아슬아슬한 묘기로 인간들을 위기에서 구해냈다.특정 세대의 미국인들, 또는 어린이 방송 니켈로디언이나 TV 랜드에 중독된 사람들에게 돌고래는 모두 플리퍼다. 그리고 플리퍼를 죽이는 건 절대 안 된다. 오늘날 오배리는 시월드나 다른 수족관 같은 시설에서 돌고래를 사육하는 행위에 반대하는 유력한 운동가로 자리 잡았다. 수십년 전 그가 돌고래 사육사로 첫발을 내디딘 곳 말이다. 피바다트위터를 통한 캠페인이나 그 영화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는 불가능하다. 하지만 다이지 돌고래의 환경이 개선되고 있다. ‘코브’의 출시 전부터 그 마을 주변 해역에서 죽거나 포획되는 돌고래 숫자가 감소하기 시작했다. 매년 9월에 시작돼 4월 말까지 계속되는 다이지 돌고래 몰이에서 2000년 포획된 돌고래가 2009마리였다. 고래 및 돌고래 보호협회가 수집한 데이터다. 가장 최근 데이터가 집계된 해인 2012년에는 포획되거나 죽임을 당한 돌고래가 899마리에 불과했다. 그러나 식육 생산 목적의 돌고래 살육 감소율은 그만큼 크지 않았다.다이지의 어민들은 전 세계에서 비판의 화살이 빗발치듯 쏟아지기 오래 전에 이미 그 동안의 관행을 바꿨다. 이런 변화는 인정받지 못하고 묻혀 버린다고 그들은 푸념한다. 영화 ‘코브’에선 어민들이 긴 작살로 돌고래들을 연거푸 찌르면서 우리 안의 물이 시뻘건 피로 물든다. 그러나 그런 끔찍한 살육방식은 ‘코브’가 개봉되기 전인 2008년에 중단됐다. 요즘 다이지 어민들은 다른 유형의 작살을 사용한다.작살을 척추에 한 번만 찔러 넣으면 돌고래가 더 빨리 그리고 피를 적게 흘리며 죽는다고 어민조합의 스기모리가 말했다(일부 어민은 돌고래를 죽이는 동안 물이 그렇게 시뻘겋게 물들지 않는다며 영화 제작자와 사냥반대 운동가들을 의심한다. 제작자들이 나중에 특수효과를 이용해 더 시뻘겋게 보이도록 만들었다고 믿을 정도로 불신이 크다. 영화제작자들은 이를 단호히 부인한다).다이지의 어민들도 마찬가지로 강경하다. 국제사회의 압력이 아무리 거세도 자신들이 오랜 세월 해온 일을 중단할 마음이 없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난 9월에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전통에 따라 연례 돌고래 몰이가 시작됐다. 상거래보다 자신들의 생활양식이 훨씬 더 중요한 문제라고 많은 주민들은 말한다. “우리 지역의 문화를 사거나 팔 순 없다.” 지역 와카야마현 관계자 호리에 야스히로가 말했다.어민들은 또한 마을 주민 자신들의 판단에 따라 밥벌이를 할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돌고래 판매의 경제성이 돌고래 사냥의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된다고 강조한다. 다이지는 ‘부자 마을’이 아니라는 사실을 외부세계가 이해해야 한다고 호리에는 말한다. 이 지역의 토지는 농사를 지을 만큼 비옥하지 않다. 오사카에서 기차로 4시간을 가야 하는 고립된 지역이다. 따라서 최근의 관광진흥 노력도 썩 효과를 보지 못했다.올 초 몰이에서 다이지의 만에 백색 알비노 돌고래 새끼 한 마리가 끼어 들어 왔을 때 현지 어민들에게는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 격이었다. 고래보호 단체인 훼일맨 재단의 제프 팬투코프에 따르면 알비노 고래 새끼는 대단히 희귀해 최대 50만 달러를 받고 수족관에 팔아 넘길 수 있다고 한다(다이지의 한 현지 관계자는 알비노 돌고래를 그처럼 터무니 없는 고가에 팔 순 없다고 반박한다. 알비노는 “병 때문에” 피부가 희며 따라서 바다에서보다는 오히려 우리 안에서 더 오래 살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인다).앤젤이라는 닉네임을 얻은 그 돌고래는 현재 다이지의 고래박물관에 수용돼 있다. 오배리가 그 돌고래 사진을 인스램(사진 공유 서비스)에 올리면서 사이버 공간에 비난의 소용돌이가 급속도로 확대됐다. ‘코브’가 불러일으킨 부정적인 이미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같은 날 캐럴라인 케네디 대사가 돌고래 사냥에 대한 반대 메시지를 트윗에 올렸다. 그 직후 일본 주재 영국대사도 비슷한 내용의 트윗을 띄웠다. 케네디 대사의 트윗은 “돌고래 몰이 사냥의 비인간성에 깊은 우려를 나타낸다. 미국 정부는 몰이사냥 조업에 반대한다”는 내용이었다. 이는 4509회 리트윗됐으며 5일 뒤 미국 국무부의 한 대변인도 그녀의 발언을 지지했다.3일 뒤 오노 요코는 일본정부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자신의 구글 플러스 프로필에 올렸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 다이지의 돌고래 사냥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 모두가 소셜미디어 전격 공습의 밑바탕을 이뤘다. #tweet4taiji라는 해시태그(주제어)는 2011년 ‘시셰퍼드’ 트위터 계정에서 처음 사용된 이후 끝없이 줄기차게 등장하는 듯하다. 분석 사이트 톱시에 따르면 지난 2월 12만7000건의 트윗이 전송됐다. 그중 돌고래 사냥을 규탄하는 저베이스의 트윗은 5903회 리트윗됐다.이 같은 찬동 트위트 물결은 “여러 변수가 한꺼번에 맞아떨어졌기” 때문에 생겨났다고 팬터코프가 말했다. 올해 다이지의 돌고래 몰이에선 한 번에 병코 돌고래 250마리를 만으로 몰아넣었다. “전례 없는 숫자”라고 그가 말했다. 반면 캘리포니아주 남부 해안 앞바다의 병코 돌고래 개체 수는 250~300마리로 추산된다고 그가 지적했다. 트위터 세계가 돌고래를 구할까? “아직 판단하기엔 이르다”고 팬터코프가 시인한다. “이런 문제 중 다수가 사실상 언론에서 반짝 하곤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고래 영혼 위령제이 같은 트위터 맹공격은 다이지 주민들의 반감 그리고 외부인들에 대한 불신을 더 키웠을 뿐이다. 주민들은 인종차별이라고 반발한다. 사냥을 중단하라는 요구는 대부분 미국과 유럽의 비교적 부유한 백인들에게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돌고래가 똑똑하고 귀엽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동물을 그런 자질에 따라 등급을 매기는 건 “오만한” 생각이라고 비난한다. 다이지 고래 박물관의 기리하타 테츠오 부관장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동물은 저마다 특별한 능력과 개성을 갖고 있다.”다이지 주민들은 매년 4월말이면 산꼭대기의 고래 기념비 앞에 모여 엄숙한 의식을 치른다. 현지 불교 사원의 승려들이 의식을 거행한다. 그들은 불경을 낭독하고 주민들은 고래 기념비 제단에 헌화한다. 그들은 이것을 다이지의 고래와 돌고래들을 기리는 연례 위령제라고 부른다. 자신들이 먹는 음식에 사의를 표하고 고래와 돌고래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기도를 한다.이소다 교코는 아주 어릴 때부터 그래 왔듯이 그 의식에 참석할 계획이다. 이소다의 집 그녀가 앉는 자리 뒤의 벽에는 “고래와 함께 살아간다”고 적힌 붓글씨 작품이 걸려 있다. “나는 이 문구가 좋다”고 그녀가 쾌활하게 말한다. 그러나 잠시 후 고래와 돌고래 사냥을 중단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운동가들에 관해 묻자 표정이 어두워진다.그 논란으로 이미 다이지 마을은 경제적인 타격을 입었다. 고래 박물관은 일본 전역의 수족관에 돌고래를 판매해 가외 수입을 올린다. 하지만 요즘엔 가끔씩 그들을 운반하기 위한 지역 페리 해운 서비스를 구하지 못하기도 한다. 해운사 경영진은 운동가들의 해꼬지를 두려워한다. 그러나 이소다가 느끼는 분노는 더 개인적이다. 그녀가 바닥을 응시하며 물었다. “자신이 먹는 음식에 관해 비판 받는 일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모욕적인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얼굴에 노기가 서려 있지만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요즘 이 작은 지역 공동체 전반에 깔린 분노다. 그리고 그 분노가 고조되고 있으며 단시일 내에 수그러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이 말을 트윗해도 좋다. 140자에 훨씬 못 미친다.

2014.04.09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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