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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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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미술관,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 개최

유통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이 2024년 상반기 첫 전시로 현대미술 기획전 ‘스티븐 해링턴: 스테이 멜로(STEVEN HARRINGTON: STAY MELLO)’를 개최한다고 5일 밝혔다. 이번 전시에서는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중심으로 활동해 온 스티븐 해링턴(Steven Harrington)의 작업 세계를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작가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해링턴은 캘리포니아의 풍경과 문화가 스민 작업 세계로 주목을 받고 있다. 다채로운 색감으로 시각적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의 이면에는 작가가 오랜 시간 고민했던 삶의 균형, 불안, 잠재의식 등에 대한 사색이 담겨있다. 잠재의식을 상징하는 캐릭터인 ‘멜로’와 야자수를 모티프로 한 ‘룰루’가 작품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기도 하다.이번 전시에는 10미터 크기의 대형 회화를 비롯해 ‘Getting Away(2021~2023)’, ‘Stop to Smell the Flowers(2022~2023)’ 등 대표적인 연작도 선보인다. 이외에 초기 판화 작업, 종이와 디지털 형태의 드로잉, 작가의 스케치북, 관련 영상 등을 전시해 작가의 작업 세계를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작품 속의 캐릭터 ‘멜로’를 전시실 곳곳에서 거대한 조각으로 만나볼 수 있다.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는 디자이너 스티븐 해링턴의 작업도 함께 조명한다. 나이키(NIKE)의 한정판 운동화 및 베이프(BAPE)의 베어브릭 피규어, 몽클레르(Moncler), 이케아(IKEA), 유니클로(UNIQLO), 이니스프리(Innisfree) 등과 함께한 여러 작업물을 만날 수 있다.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이번 기획전은 누구나 공감할 만한 주제들을 독창적인 감각으로 풀어내는 작가이자 디자이너인 스티븐 해링턴의 작품 세계를 국내 최초로 만나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한편,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은 작가가 대중과 직접 소통하는 ‘아티스트 토크’를 3월 8일 개최하는 것을 비롯해 다양한 전시 연계 이벤트를 계획 중이다. 또 뮤지엄 샵에서는 전시 기념 한정판 아트 토이와 함께 글로벌 아웃도어 브랜드 헬리녹스(Helinox)와 협업한 아트 상품을 순차적으로 공개할 예정이다.

2024.03.05 08:59

2분 소요
33년 만에 ‘빅토리 바자렐리’ 전시회 국내에서 다시 열린다

전시

문화콘텐츠 전문기업 가우디움어소시에이츠가 한국-헝가리 수교 33주년을 기념하는 ‘빅토르 바자렐리:반응하는 눈’ 전시회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회는 12월 21일부터 2024년 4월 21일까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층 제1~2전시실에서 열린다. 빅토르 바자렐리(Victor Vasarely, 1906-1997)는 20세기 추상미술의 한 장르인 옵아트를 대표하는 화가로 손꼽힌다. 헝가리 태생의 프랑스 화가로 그의 전공은 의학이었으나 데생과 드로잉을 배우고 헝가리의 바우하우스로 불리는 ‘뮤힐리 아카데미’(Budapesti Műhely)에 입학하면서 아티스트의 길을 걷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말레비치, 몬드리안, 칸딘스키, 그로피우스 등 당대 가장 신선하고 파격적인 추상 예술가의 작품을 접한다. 1930년 파리로 이주한 그는 그래픽 디자이너와 상업 광고 디자이너로 성공한다. 그러나 화가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기성 미술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에 나선다. 추상미술의 시대를 거쳐 마침내 자신만의 조형 언어를 발견하는 데 성공한다. 옵아트의 대표적 작가로 명성을 얻게 된 작가는 엄격한 구성에 의한 기하학적인 추상을 추구해 간다. 그의 작품은 단조로운 도형의 나열에 그치지 않고, 부분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변화와 착란을 통해 화면에 생생한 움직임을 주어, 보는 이로 하여금 시각적 모호성과 분산을 느끼도록 만든다. 이번 전시는 그래픽 아티스트로 출발해 광고 디자이너와 추상미술 작가, 공공미술 프로젝트 개발자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동한 빅토르 바자렐리의 총체적 면모를 보여준다. 아직은 잘 알려지지 않은 옵아트에 대한 이해와 추상미술의 전개 과정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에는 국내 최초로 헝가리 국립 부다페스트 뮤지엄과 바자렐리 뮤지엄이 소장한 140여 점의 작품이 선보인다. 이번 전시의 얼리버드 티켓은 11월 넷째 주부터 네이버에서 단독으로 판매되는 얼리버드 티켓으로 가장 빠르게 만나볼 수 있다. 바자렐리 전시는 1990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전시회 이래 33년 만에 다시 열린다.

2023.11.14 16:29

2분 소요
[선데이 갤러리] 1년7개월 만에 오픈한 리움미술관 “시각적 호사를 누리다”

전문가 칼럼

1년 7개월의 공백을 딛고 8일 재개관한 리움미술관을 찾은 것은 지난 5일. 리움(LEEUM)이라는 영문 글자 다섯이 각기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모양의 새 로고부터 색달랐다. 마리오 보타·장 누벨·렘 쿨하스라는 건축 거장 세 명이 각각 만들어낸 공간을 새롭게 단장한 인물은 패션과 무대와 디스플레이를 오가는 ‘재주꾼’ 정구호다. 화이트큐브라는 미술관의 상식을 뒤집고 온통 블랙으로 꾸민 상설전시관은 관람객의 집중력을 배가시켰다. 로비에 마련한 미디어 월부터 압도적이다. 11.3 x 3.2 m(462인치)라는 거대한 화면에서 선명하게 뿜어나오는 제니퍼 스타인캠프의 미디어 아트는 관람객의 시야를 순식간에 지배했다. 화질이 5000만 화소가 넘는단다. 작품 앞에서 자동으로 설명이 나오는 ‘디지털 가이드’를 목에 걸고 현대미술 상설전시관부터 들렀다. 층마다 주제가 다르다. B1층은 ‘이상한 행성’, 1층은 ‘중력의 역방향’, 2층은 ‘검은 공백’이다. 총 76점이 전시돼 있는데 “출품작의 반 이상이 처음 공개되는 작품”이라는 게 미술관측 설명이다. 검정색에 대한 다채로운 해석, 물질과 비물질의 경계를 넘나드는 질문, 상식을 뒤집는 기발함을 쉽게 보여주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세계적인 건축가 프랭크 게리가 만든 빛을 품은 물고기 조각 ‘무제-로스엔젤레스 IV’(2012~2013)도 눈길을 끌었는데, “이전 전시가 미술사적 의미에 치중했다면, 이번에는 주제를 다채롭게 구분했기에 수장고에서 색다른 작품들을 꺼내올 수 있었다”는 게 곽준영 책임연구원의 귀띔이다. B1층으로 나와 맞은편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으로 올라가면 한국 고미술의 향연이 시작된다. 역시 층마다 주제가 다른데, 4층은 고려청자를 다룬 ‘푸른 빛 문양 한 점’, 3층은 분청사기와 백자를 모아놓은 ‘ 흰빛의 여정’, 2층은 글씨와 그림에 치중한 ‘감상의 취향’, 그리고 1층은 고려불화를 중심으로 꾸민 ‘귄위와 위엄, 화려함의 세계’다. 현대미술 전시실과 마찬가지로, 그동안 공개하지 않은 유물들을 많이 꺼내 놓았다. ‘청자상감 국화모란문 호’나 ‘청자양인각 모란문 방형 향로’이 대표적이다. 청자 소품들을 모아 관람객 눈높이에 맞춘 아담한 유리 진열장에 집중 배치한 디스플레이에서는 정구호 감독의 감각이 물씬 느껴졌다. 층마다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을 배치해 현대와의 연관성을 떠올리게 한 것도 신선했는데, 백자가 있는 3층에 박서보의 흰색 ‘묘법’을 같이 걸어놓는 식이다. 다양한 모양의 연적을일렬 배치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2층 입구에서는 조선을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의 대표작 ‘군선도’가 관람객을 맞는다. 원래 다 이어져 있는 작품을 배접을 새로 하면서 셋으로 구분했는데, 장쾌한 맛은 이전보다 덜했다. 1층의 ‘나전 국화당초문 팔각합’은 고려 말 혹은 조선 초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인데, 이 시기에 만들어진 팔각합으로는 유일한 것이다. 화려하고 세밀하기 이를 데 없는 한국 고미술의 극치다. 그라운드 갤러리와 블랙박스에서는 기획전 ‘인간, 일곱 개의 질문’이 펼쳐졌다.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이유에 초점을 맞췄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7개 섹션으로 구분돼 있는데, 그림과 사진과 조각과 설치 작품 130여 점은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누구인가,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쉬지 않고 던진다. 어린이는 관람이 제한되는 작품도 일부 있다. 아트숍을 없애고 이전 카페 위치에 마련한 ‘리움 스토어’에는 6인의 공예작가들이 제작한 미니어처 가구 등을 모아놓았다. 로비에 마련된 ‘휴대용 해시계’는 정교한 미감 덕분에 굿즈로 만들어놓는다면 내게도 지름신이 강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홈페이지를 통한 사전예약제로 운영되며 월요일은 휴관. 상설전은 항상 무료, 기획전은 연말까지 무료로 운영된다. 정형모 전문기자/중앙 컬처&라이프스타일랩 hyung@joongang.co.kr

2021.10.10 16:13

3분 소요
안 보면 후회할 세계의 신축 미술관 10선

산업 일반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유형의 전시관이 대거 등장해 역사 깊은 명소에 도전장 던져좋은 미술관은 흥미롭다. 그러나 훌륭한 미술관은 우리의 생각을 고양시키고,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며, 관점 전체를 변화시킬 수 있다.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박물관 같은 상징적인 뮤지엄은 전 세계에 잘 알려졌지만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유형의 전시관이 대거 등장해 그들에게 도전장을 던질 태세다. 가보지 않으면 후회할 새로운 미술관 10곳을 소개한다. ━ 루브르 아부다비 |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프랑스 파리에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전초기지다. 미술을 통해 인류사에 바치는 헌사이자 세계화와 무역로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보내는 경의다. 2017년 개관한 이 박물관은 르네 마그리트와 알베르토 자코메티의 주요 작품을 소장한다. ━ 크리스털 브릿지 미술관 | 미국 아칸소주 벤턴빌 유명 건축가 모셰 세프디가 설계한 미술관으로 2011년 아칸소주에서 개관했다. 이 미술관은 미술과 건축을 통해 미국 정신을 찬양한다. 메리 매클리어리, 윈슬로 호머, 재스퍼 존스 등 식민시대부터 현재까지 다양한 미술가의 작품을 상설 전시한다. ━ 소우마야 박물관 | 멕시코 멕시코시티 2011년 플라사 카르소로 자리를 옮겨 신축 개장한 이 박물관은 내부와 외부 모두 멋지다. 프랑스를 제외한 지역 중에서 이곳이 로댕의 조각품을 가장 많이 소장한다. 이 박물관을 세운 멕시코의 억만장자 카를로스 슬림의 방대하고 다양한 컬렉션도 전시한다. ━ 이브 생 로랑 박물관 | 프랑스 파리 여성의 옷 입는 방식을 영구히 바꿔놓은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을 기리는 박물관이다. 파리에 마련된 오리지널 박물관은 2017년 9월 개관했다. 그 후 1개월 뒤 북아프리카 모로코 마라케시에 그 전초기지가 문을 열었다. ━ 누산타라 현대미술관 |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2년 전 개관한 이 미술관은 인도네시아와 다른 여러 나라의 미술 작품을 전시하며 소장품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미술관 중 하나로 인정받는다. 일본의 유명 작가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방-영혼의 광채’를 포함해 상설 전시품이 800점이 넘는다. ━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 남아공 케이프타운 아프리카인과 전 세계에 흩어진 그들 동포의 현대미술을 전시하는 이 미술관은 2017년 개관했다. 메리 시반데, 난디파 음은탐보, 세템빌레 음세자네의 작품들을 상설 전시한다. ━ 뉴욕 현대미술관(MoMA) | 미국 뉴욕주 뉴욕 뉴욕 현대미술관은 현대미술의 기준을 세운다. 오는 10월 확장된 전시실이 문을 열면 그 기준이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새로운 공연 공간과 전시실을 갖추면 뉴욕 현대미술관은 도널드 저드, 도로시아랭, 윌리엄 포프. L., 베티 사 같은 현대미술가들의 작품을 탐구할 것이다. 확장 공사 중에도 전시실은 개방한다. ━ 드리샤칼라 미술관 | 인도 뉴델리 올해 문을 연 이 미술관은 18세기부터 지금까지 인도 미술의 발전상에 초점을 맞춘다. 난다랄 보스, M. F. 피타왈라,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등 인도의 유명한 미술가 작품을 상설 전시한다. ━ GES-2 | 러시아 모스크바 발전소를 현대미술관으로 개조했다. 공식 개관은 내년으로 연기됐다. 하지만 유명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이 공간에서 2017년 팔방미인 아티스트 마크 펠이 주최한 미술·음악 페스티벌 ‘현재의 기하학(Geometry of Now)’이 열렸다. ━ 울렌스 현대예술센터(UCCA) | 중국 베이징 중국의 현대미술관으로 2017년 대규모 구조조정에 따라 상업적인 기능과 비영리적 기능이 분리됐다. 류웨이·왕젠웨이·류샤오둥 같은 유명 미술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이곳은 중국 미술가들을 세계적인 미술 담론의 중심에 둔다.- 폴라 프롤리크 뉴스위크 기자

2019.07.01 15:46

3분 소요
범주화 거부했던 예술가

산업 일반

시인 겸 뮤지션 레너드 코언의 1주기 맞아 고향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전시회 열려 … 10개국의 예술가 40명이 그의 작품 재창조해 캐나다 출신 싱어송라이터 레너드 코언의 묘는 몬트리올 마운트 로열 공원 꼭대기에 있는 샤르 해쇼마임 묘지의 가족 묘역에 자리 잡았다. 그의 묘비는 꽃과 팬아트(팬들이 그린 그림), 유대교식 애도의 양초로 둘러싸여 마치 작은 사원처럼 보인다(그 근처에 1세기 전에 세상을 떠난 그의 증조부가 묻혀 있다).하지만 이런 광경이 아니더라도 이곳이 코언의 묘라는 걸 알 수 있는 표지가 또 있다. 바로 묘비에 새겨진 코언의 ‘통합된 심장(Unified Hearts)’이다. 하트 모양 2개를 겹쳐(하나는 위쪽이 아래로 가게) 만든 이 기호는 그가 1984년 펴낸 시집의 표지를 위해 디자인한 것으로 다윗의 별(정삼각형 2개를 겹쳐서 별 모양으로 만든 유대인의 상징)을 연상시킨다.지난 11월 첫째 주에는 몬트리올 시 어디를 가나 이 기호가 눈에 띄었다. 지난해 마지막 앨범 ‘You Want It Darker’를 발표한 지 몇 주일 만에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코언의 1주기를 추모하기 위해서다.그의 아들 애덤이 르-플라토-몽-루아얄 구역의 발리에르 거리에 있는 가족 소유의 집으로 돌아와 추모 행사 준비를 도왔다(지난 11월 6일 몬트리올 벨 센터에서 열린 헌정 콘서트도 그 행사의 일환이었다). 뮤지션인 애덤은 코언의 마지막 순회공연 때 ‘웹 시스터즈’와 함께 반주와 화음을 맡았다. “이 집에 오면 할아버지의 초록색 벨벳 의자 위에 놓인 아버지의 기타를 볼 수 있다”고 애덤은 말했다. “그리고 난 할머니의 카펫이 깔린 아버지의 방에서 잠을 잔다. 가보와 가족의 사연이 담긴 물건들이 가득한 이 집은 아주 친숙하고 낭만적이며 달콤하면서도 씁쓸한 느낌을 준다.”애덤은 몬트리올의 ‘마술’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랐다. “우리 가족은 모두 이 도시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진 않았다”고 그는 말했다. “외국에 사는 유대인이 으레 그렇듯이 우리는 고향에 사는 사람들보다 더 전통적인 가치를 좋게 생각하고 철저하게 지켰다.”흔히 그렇듯이 고향에서 벗어나고픈 욕망은 나이가 들면서 수그러든다. 코언은 2006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몬트리올에 오면 다른 어떤 곳에 있을 때보다 마음이 편하다. 그게 정확히 뭔진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이런 감정이 더 강해진다.” 코언은 시인으로 활동하다가 30대가 돼서야 음악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최고(The Best)’라는 제목의 시에 이렇게 썼다.난 몬트리올을 떠날 때 이미 죽었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여자들을 만났고 낯선 음식에 관심 있는 척했다 하지만 그건 모두 눈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모든 게 하느님의 뜻이었다 심장이 몸의 다른 기관들을 모조리 삼켜버렸다 재닛 카디프와 조지 부어스 밀러의 ‘포이트리 머신(The Poetry Machine)’이라는 작품에서 이 시를 깊은 생각에 잠긴 듯한 코언의 목소리로 들을 수 있다. 몬트리올 현대미술관(MAC)에서 열리는 ‘레너드 코언: 모든 것의 틈(Leonard Cohen: A Crack in Everything) 전’ (내년 4월 19일까지)에 전시된 작품 20점 중 하나다. MAC의 전시실 6곳에서 펼쳐지는 이 전시회는 10개국의 예술가 40명이 참여해 코언의 작품을 재창조하는 대규모 프로젝트다. 음악·비디오·저술·가상현실·공연이 어우러진 이 프로젝트는 코언이 세상을 떠나기 훨씬 전인 3년 전부터 계획됐다.코언의 해외 생활은 산체스 브라더스의 ‘나도 곧 당신을 따라갈 거요(I Think I Will Follow You Very Soon)’라는 작품에 묘사됐다. 그가 말년을 보낸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의 방을 재현해 놓았다. 마이클 래코위츠의 ‘사랑도 증오도 선수인 나는 그 중간에서 오도가도 못한다(I’m Good at Love, I’m Good at Hate, It’s in Between I Freeze)’는 1970년대 욤 키푸르 전쟁 당시 코언의 이스라엘 체류를 묘사한 영화다. 그가 유대인으로서 느끼는 강한 정체성과 평화주의를 신봉하는 마음이 갈등을 일으킨 내적 위기의 시기였다. 18명의 뮤지션이 ‘Hey, That’s No Way to Say Goodbye’ 같은 코언의 명곡을 리메이크한 작품도 있다. 행위예술가 클라라 퍼리는 코언의 시 ‘웬 이븐 더(When Even The)’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선보인다. 진바지만 입은 그녀는 몸을 천천히 움직이면서 코언 작품의 두 축을 이루는 주제, 관능과 죽음에 관한 명상을 표현한다.전시회의 다양한 표현수단과 분위기가 단순화된 정의를 초월하는 코언의 다원예술적 스타일을 설명해준다. “이 전시회에 코언을 미화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고 존 제페텔리 MAC 관장이 말했다. “우리는 그를 멋진 정장 차림의 근사한 신사로 묘사할 생각이 없었다.” 이 전시회에 관여한 애덤은 이 프로젝트가 평생 비정통성을 추구한 아버지의 인생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아버지는 자신의 저술이나 음악을 범주화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어떤 측면에서든 장르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고 애덤은 말했다.이 말은 코언이 왜 요즘 시대에 잘 어울리고 선견지명이 있는 인물이었는지를 깨닫게 해준다. 그는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전 날인 11월 7일 사망했다. “아버지는 모든 걸 예견했다”고 애덤은 말했다. “1970년대부터 사회 질서의 붕괴를 내다봤다."- 저스틴 조프 뉴스위크 기자

2017.12.18 11:24

4분 소요
박물관으로 떠나는 시간 여행

전문가 칼럼

고대유물부터 현대미술까지 놀라운 볼거리가 가득한 세계 최고의 박물관 8곳시간 여행에 관심 있는가? 티라노사우르스 렉스의 턱뼈를 바라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지는 경험을 하고 싶은가? 혹은 라이트 형제가 첫 비행에 성공했을 때의 기쁨을 상상해 보고 싶은가? 그렇다면 박물관으로 가라! 세계 최고의 박물관 8곳을 소개한다. ━ 루브르 박물관(프랑스 파리) 늘 관람객으로 붐비는 루브르 박물관은 인기 전시품 관람을 위해서뿐 아니라 입구에서 입장권을 살 때도 긴 줄에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 박물관은 중세 시대 프랑스 국왕의 요새와 궁전을 개조해 만들었다. 가장 인기 있는 전시품은 이집트 타니스에서 출토된 ‘대(大) 스핑크스’와 밀로의 ‘비너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등이다. ━ 스미소니언 박물관(미국 워싱턴 DC)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벤 스틸러는 박물관이 흥미진진한 곳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줬다. 스미소니언 박물관은 19개의 박물관과 갤러리, 연구소 등으로 구성됐다. 이곳에는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제작한 세계 최초의 비행기부터 아폴로 11호(달 탐사선) 사령선까지 미국 역사와 관련된 전시품 약 1억3700만 점이 소장돼 있다. ━ 아크로폴리스 박물관(그리스 아테네) 현대적 건축물 안에 유명한 고대문명의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다. 마크리아니 유적 위에 자리 잡은 아크로폴리스 박물관은 그리스 역사의 풍요로움을 간직한 곳이다. 그리스의 신과 여신들을 묘사한 대리석 조각과 파르테논 신전의 프리즈(건물 윗부분을 띠 모양으로 두른 그림이나 조각 장식)를 가까이서 감상해 보자. ━ 대영박물관(영국 런던) 이집트 이외 지역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물을 감상하기에 가장 좋은 곳은 대영박물관이다. 유명한 로제타석과 아멘호테프 3세(BC 14세기의 이집트 파라오)의 화강암 두상, 고양이 미라 등이 전시됐다. 호아 하카나나이아(이스터섬에 있던 거대 석상), 그리스에서 가져온 ‘엘긴 마블’도 인상적이다. ━ 예르미타시 미술관(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네바 강변의 건물 6채로 이뤄진 예르미타시 미술관은 세계 각지에서 온 미술작품을 소장한다. 렘브란트, 루벤스, 티에폴로, 티티안, 다빈치, 피카소, 고갱, 세잔, 반고흐, 고야 등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화가들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 프라도 미술관(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에는 스페인 왕실이 수세기에 걸쳐 수집한 다양한 미술작품이 소장돼 있다. 루벤스의 ‘미의 세 여신’, 프란치스코 데 고야의 ‘옷을 벗은 마야’와 ‘옷을 입은 마야’ 등이 유명하다. ━ 바티칸 박물관(이탈리아 바티칸 시티) 이탈리아가 역사·문화의 보고라는 사실은 박물관에 가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하지만 박물관에 가보면 그런 인상이 훨씬 더 깊게 남는다. 바티칸 박물관은 역사적인 건축과 미술작품으로 세계 최고의 박물관으로 꼽힌다. 시스틴 예배당부터 라파엘 룸까지 라파엘의 작품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카라바조의 회화 ‘그리스도의 매장’과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후 성녀 헬레나와 딸 콘스탄차의 석관도 놓치지 말자.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은 루브르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미술관이다. 고대 이집트의 유물부터 이슬람 미술과 미국 현대미술까지 다양한 작품 약 200만 점을 소장하고 있다. 이슬람 미술 부문의 ‘블루 코란’과 키프로스에서 가져온 ‘아마투스 석관’, 가츠시카 호쿠사이(일본 에도 시대의 목판화가)의 채색 목판화 시리즈 ‘가나가와의 큰 파도’ 그리고 약 4만 년 전 제작된 호주 원주민의 바위 그림 등이 유명하다. 부설 의상연구소 미술관은 패션 역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지만 상설 전시가 없다. ━ 함께 읽으면 좋은 책: 예술의 문턱이 낮아지고 있다. 미술 투자가 아니더라도 전시 회를 찾거나 좋아하는 그림을 집에 걸어 놓는 일은 일상이 됐 다. ‘취미는 전시회 관람’의 저 자인 대림미술관 한정희 수석 에듀케이터는 미술 감상에 대 한 친근한 접근 방식을 제안한 다. 전시 만드는 사람들의 속마 음, 재밌고 특이한 전시 사례, 전문 지식 없이도 ‘인생 작품’ 만나는 법 등이 미술관으로 우리를 유혹한다.- 라라 레벨로 아이비타임즈 기자

2016.05.30 11:43

3분 소요
뉴욕 여행은 1월이 최고!

전문가 칼럼

12월의 미국 뉴욕은 겨울 휴가철의 세계 수도라 할 만하다. 5번가를 대표하는 색스 피프스 애버뉴 백화점의 화려한 진열장, 길 건너편 로커펠러 광장의 아이스링크, 통로마다 맛있는 냄새가 코를 찌르는 어퍼 웨스트 사이드의 전문 식품 매장 제이바스 등 볼거리와 먹거리가 가득하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 이 시기의 뉴욕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가는 곳마다 사람이 넘쳐난다. 보도는 행인으로 붐비고 지하철도 만원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려고 나섰다가도 호텔 방으로 돌아가 인터넷 쇼핑을 하는 편이 낫겠다는 마음이 절로 든다.재미없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1월에 뉴욕에 가보라. 뉴욕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훨씬 더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게다가 1월은 세계 최고의 쇼핑 도시답게 바겐세일이 한창이다. 맨해튼 페닌슐라 호텔의 수위 프레드릭 비글러는 “(1월이 되면) 갑자기 숨통이 트인다”고 말했다. “모든 일의 속도가 조금씩 느려지고 호텔 지배인도 우리에게 답신 전화를 걸어줄 만큼 여유가 생긴다. 게다가 여기저기서 바겐세일을 하니 금상첨화다.”뉴욕의 백화점들은 수시로 ‘깜짝 세일’을 하지만 1월에는 대폭 바겐세일이 많다. 색스 피프스 애버뉴, 로드 & 테일러, 바니스, 버그도프 굿먼, 블루밍데일스 등 고급 백화점들이 유명 디자이너의 제품을 최고 50%까지 세일한다. 일례로 J 크루의 뉴욕 매장과 영국 런던 매장 제품가를 비교해 보면 유럽인이 뉴욕에서 쇼핑하면 돈을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런던 매장에서는 J 크루 V넥 캐시미어 스웨터의 가격이 228파운드(약 40만원)인데 비해 뉴욕 맨해튼 매장에서는 228달러(약 27만원)다. 또 여성용 누비 퍼퍼 재킷은 런던에선 168파운드(약 250달러)지만 뉴욕에선 168달러다. 노르딕의 남성용 다운 파카는 런던에서 425파운드(약 632달러), 뉴욕에선 450달러다(하지만 뉴욕에선 의류와 신발 가격이 110달러 이상인 경우 판매세 8.8%를 추가로 내야 한다).난 메이시 백화점에서 리바이스 진바지 한 벌을 61달러에 샀다. 유럽에서라면 적어도 85유로(약 92달러)는 줘야 했을 것이다. 메이시 백화점에서는 1월에 토머스 핑크, 랠프 로렌, 토미 힐피거 같은 유명 브랜드들이 대폭 세일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고 매주 돌아가면서 특정 제품을 아주 싼값에 판매한다. 맨해튼에 2개 매장을 갖고 있는 센트리 21 백화점은 할인 폭이 더 크다. 물건이 산더미처럼 쌓인 판매대를 뒤질 용의가 있는 쇼핑객은 구치나 프라다, 돌체 & 가바나 제품을 정상가의 3분의 1에 구입할 수 있다.난 뉴욕에 가면 9번가에 있는 대형상점 B&H 포토-비디오에서 사진 관련 장비를 구입한다. 유명 브랜드의 카메라 가격은 유럽과 비슷하지만 그 밖의 장비는 훨씬 더 싸다. 내가 갖고 있는 니콘 카메라용 샌디스크 32기가 콤팩트 플래시 메모리 카드가 영국에서는 54유로(58달러)지만 B&H에서는 38달러다.비용을 절약하려는 사람들이 1월에 뉴욕에 가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항공료가 비교적 저렴하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미국 동해안 지역까지 항공료는 이때가 연중 가장 싸다. 1월에 버진 어틀랜틱의 이코노미석 항공료는 500유로(약 546달러, 12월엔 637유로)에서 시작한다. 알리탈리아의 로마발 항공권 최저가는 838유로(약 915달러, 12월엔 1015유로)이며 에어프랑스의 파리발 항공권은 1142유로(약 1247달러, 12월엔 1540유로)에 구입할 수 있다.1월의 뉴욕은 숙박료도 저렴하다. 맨해튼의 호텔들은 객실 요금을 할인하고 특별 패키지를 제공한다. 난 렉싱턴 애버뉴의 로저 스미스 호텔에 묵었는데 가족이 운영하는 자유분방한 분위기의 매력적인 곳이었다. 성수기에는 싱글이나 더블 객실 요금이 369달러지만 1월에는 150달러까지 내려간다.1월에 뉴욕에 가면 비용을 절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모든 시설을 더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다. 랠프 로렌의 폴로 바 같은 멋진 레스토랑에서 식사하고 싶다면 1월 초에 예약하라. 이 시기는 뉴요커들이 저녁에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 도심이 조용해지는 때다.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공연 관람도 이때가 적기다. ‘파리의 미국인(An American in Paris)’이나 ‘섬싱 로튼(Something Rotten)!’ 등의 인기 뮤지컬도 표를 구하기가 비교적 쉽다.1월에는 뉴욕의 미술관을 돌아다녀도 연중 어느 때보다 훨씬 더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 걸린 마크 로스코의 작품 앞에서 그림이 잘 보이는 위치를 차지하려고 다른 관람객과 경쟁을 벌이지 않아도 된다. 또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된 ‘덴두르 신전’ 앞에서 가두축제라도 벌어진 듯 인파에 파묻히는 일도 없다.요즘 뉴욕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미술관은 렌조 피아노의 설계로 신축된 휘트니 미술관이다. 갱스부르 거리에 있는 이 미술관은 2015년 5월 문을 열었다. 빛으로 가득한 6개 층의 전시실과 4개의 야외 테라스가 있다. 현재 이곳에서는 재즈 시대(제1차 세계대전 후부터 1920년대의 향락적이고 사치스러웠던 재즈 전성기) 화가 아치볼드모틀리(1월 17일까지)와 추상표현주의 화가 프랭크 스텔라(2월 7일까지)의 전시회가 열린다.산책하고 싶다면 하이라인으로 가라. 갱스부르 거리의 휘트니 미술관 옆에서 시작해 34번가까지 이어지는 이곳은 예전의 고가 철로를 이용한 공중공원이다. 녹지가 부족한 뉴욕에서 보물 같은 곳이다. 하지만 햇빛이 좋거나 크리스마스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시내에 모여들 때면 탑승 중인 여객기 통로처럼 붐빈다. 그러나 1월의 추운 날 사람이 뜸할 때 가면 여유롭게 산책을 즐길 수 있다.- GRAHAM BOYNTON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2016.01.11 16:55

4분 소요
화력발전소에서 피어난 희망

산업 일반

현재 영국 런던의 테이트 모던 미술관 터바인 홀에서는 멕시코 미술가 아브라함 크루즈비예가스의 전시회(내년 4월 3일까지)가 열린다(그는 2012년 양현미술상을 수상했다). 전시회 개막을 2주일 앞둔 지난 10월 초까지도 작품 설치가 끝나지 않아 건설 인부들이 전시회장 안을 분주히 오갔다. 하지만 크루즈비예가스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뒤샹은 자신의 작품이 미완성이라고 말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고 크루즈비예가스는 말했다. 프랑스계 미국인 개념기술가 마르셀 뒤샹(크루즈비예가스는 종종 이 미술가에 비견된다)을 두고 하는 말이다.전시회는 지난 10월 13일 공식 개막했지만 크루즈비예가스의 조각 작품 ‘빈 터(Empty Lot)’는 여전히 미완성이다. 비계(scaffolding) 위의 경사면에 설치한 2개의 대형 삼각형 구조물 위에 흙을 채운 삼각형 상자들을 배치한 작품이다. 한 경사면은 터바인 홀의 발코니에서 시작해 바닥과 만나고 또 다른 경사면은 바닥에서 시작해 뒤쪽 벽과 만난다. 상자 속의 흙은 크루즈비예가스와 이 프로젝트의 큐레이터 마크 갓프리가 런던 곳곳에서 채취했다. 하이드파크와 런던 남부에 있는 호니먼 박물관, 버킹엄궁, 갓프리의 자녀들이 다니는 학교 정원 등등.크루즈비예가스는 상자 속 흙에 곡물이나 꽃의 씨앗을 심지 않았다. 하지만 전시회 기간 내내 이 흙에 물을 준다. 갓프리는 관람객이 흙 상자에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이 뿌리를 내려 성장할 가능성을 생각한다. 하지만 크루즈비예가스는 흙 속에 들어있을지 모르는 뭔가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터바인 홀의 공간 맞춤형 설치미술 전시회 시리즈는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연 2000년 유니레버의 후원으로 시작돼 12년 동안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많이 남겼다. 루이스 부르주아의 대형 거미 조각부터 올라푸르 엘리아손의 인공태양, 도자기로 만든 해바라기 씨앗을 카펫처럼 깔아놓은 아이웨이웨이의 작품까지. 관람객은 아이웨이웨이의 도자기 씨앗이 깔린 전시회장 바닥에 드러눕거나 엘리아손의 인공태양에서 쏟아져 나오는 빛을 듬뿍 쪼이고 카스텐 횔러가 설치한 거대한 미끄럼틀을 탔다. 3000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 모은 유니레버의 전시회 시리즈는 테이트 모던이 영국 최고의 현대미술 전시관으로 자리 잡는 데 일조하면서 현대미술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2012년 영국계 독일인 미술가 티노 시걸의 라이브 아트 작품(‘These Associations’)을 끝으로 시리즈가 막을 내렸을 때 영국과 유럽의 미술계에 큰 구멍이 뚫린 듯 허전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크루즈비예가스의 ‘빈 터’로 테이프를 끊은 새 전시회 시리즈는 테이트 미술관 그룹(런던의 테이트 브리튼, 리버풀과 세인트 아이브스의 갤러리 2곳 포함)의 중요한 변화와 맞물려 시작됐다. 이 미술관 그룹의 고향인 테이트 브리튼(테이트 모던에서 템즈강 상류 쪽으로 3.2㎞ 지점에 있다)은 2년 전 6800만 달러 규모의 보수공사를 마쳤다. 같은 시기 테이트 모던 역시 전시 공간을 60% 늘리는 확장 공사를 거의 끝마쳤다. 규모는 뉴욕 현대미술관 (MoMA)의 절반에 불과하지만 관람객 수는 그 2배에 달했던 테이트 모던으로선 절실하게 필요한 공사였다.본관의 리모델링을 감독한 스위스 건축가 자크 헤어조크와 피에르 드 뫼롱이 신관을 설계했다. 이전에 이 건물이 화력발전소로 쓰일 당시 연료를 저장했던 탱크를 ‘세계 최초의 라이브 아트와 행위예술 전용 미술관’으로 개조하는 작업을 포함한 대규모 프로젝트다. 일부는 이미 완공됐고 ‘스위치 하우스’라고 불리는 벽돌 건물은 내년 6월 문을 연다.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터바인 홀은 문을 닫았었다. 기존의 전시관 4층에서 새로운 다리를 통해 증축된 공간으로 연결되며 남쪽 벽에 연결 문이 설치됐다. 현대자동차가 2025년까지 터바인 홀의 새 전시회 시리즈를 후원하기로 계약했다. 이 계약은 테이트 역사상 최장기 기업 후원 사례이며 MoMA나 로스앤젤레스 현대미술관 같은 다른 대형 미술관들을 상대로 경쟁력을 갖추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테이트가 이렇게 미래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가운데 영향력 있는 미술 전문지 ‘아트 리뷰’는 니콜라스 세로타 테이트 미술관 총관장을 2014년 ‘세계 미술계 파워100’의 1위로 선정했다. “테이트의 국제적 영향력과 권위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설명이 따랐다. 다시 문을 연 터바인 홀의 규모와 명성도 한몫했다. 크루즈비예가스는 터바인 홀의 새 전시회 시리즈 첫 번째 주자로서의 부담감을 별로 느끼지 않는 듯 보인다. 그의 이런 의연함은 어쩌면 이번 작품이 그가 오랫동안 작업해온 ‘자아구성(autoconstrucción)’ 연작의 최신작일 뿐이라는 생각에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아구성’은 지난 10년 동안 조각·비디오·음악·설치미술 등 여러 형태로 제작됐다. 하지만 언제나 아유스코(그가 자란 멕시코 시티의 한 지역)의 삶에 초점이 맞춰졌다.크루즈비예가스의 부모는 1960년대에 아유스코에 정착했다. 그들은 법을 어겨가며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화산 지대에 집을 짓고 살았다. “그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그는 말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그곳에 집을 만들었다. 구할 수 있는 재료는 무엇이든 이용해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지었다. 우리 가족은 가난했지만 어떤 면에서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부자였다. 돈이 아니라 연대감을 자본으로 한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부모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그의 말투에서 대단한 애정이 묻어났다. 하지만 그는 작품 속에서 그들의 삶을 재현하거나 아유스코의 생활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려고 하진 않는다고 말한다. 대신 역사 속 특정 순간의 경험을 되살리고자 한다. 발전과 개발의 약속이 무너졌을 때, 그리고 사람들이 임시변통으로 삶을 꾸려갈 수밖에 없을 때 등등. “에너지가 시간과 공간에 따라 각기 다른 재료를 이용해 얼마나 다양한 형태를 띠게 되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고 그가 말했다.기이한 잡종처럼 느껴지는 ‘빈 터’의 의미를 짐작하게 하는 설명이다. 런던 곳곳에서 퍼온 흙이 담긴 거친 나무 상자들과 크루즈비예가스가 길거리나 쓰레기통에서 찾은 재료로 만든 여러 개의 가로등으로 이뤄진 이 작품에서는 남미의 빈민가와 채소밭을 합쳐놓은 듯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크루즈비예가스가 이곳에서 찾은 재료 중 그를 가장 매료시킨 것은 삼각형 구도의 조형물을 받치고 있는 비계다. “이전에 난 ‘자아구성’이 비계라고 여러 차례 말했다. 그때는 비유적으로 한 말이었지만 지금은 현실이 됐다. 내 비유를 눈앞의 현실로 만들어준 이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든다. 내 모든 작품을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종합한 작품이다.”크루즈비예가스는 헤어초크와 드 뫼롱이 증축한 전시 공간의 뒷벽에 비계가 설치된 것이 “훌륭한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다. 터바인 홀에 전시된 설치미술이 단지 예술작품일 뿐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도시 런던의 일부라는 사실을 강조해주기 때문이다. 그는 또 ‘빈 터’의 전시가 끝나 작품이 철거될 날을 기대한다. 나무 상자 속의 흙이 런던의 공원과 정원으로 되돌아가고, 비계도 해체돼서 또 다른 형태로 거듭나 이 도시의 일부로 되돌아가게 될 생각을 하면 기분이 좋아진다.작품의 일시성이 그를 희망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 “자신을 회복하는 희망”이다. 하지만 그는 재개관한 터바인 홀의 첫 전시작인 ‘빈 터’에 대해 어떤 해석을 내리기는 원치 않는다. 그 작품을 볼 수백만 명의 관람객 각자가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주고 싶어서다. 그는 “어떤 해석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EDWARD PLATT NEWSWEEK 기자 / 번역 정경희 ━ 현대미술로 현대자동차 알린다 영국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11년 장기 파트너십 맺고 자동차에 문화·예술적 가치 불어넣어현대자동차는 영국의 세계적인 현대미술관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2015년부터 2025년까지 11년 간의 장기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문화예술과의 만남을 통해 자동차에 이동수단 그 이상의 가치를 불어넣기 위해서다. 이번에 현대차가 테이트 모던 미술관과 체결한 후원 기관은 이 미술관이 체결한 협약 가운데 역대 최장 기간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10년 이상의 장기간 지원해야 문화예술의 육성과 저변 확대에 기여할 수 있고, 현대차 입장에서도 기업경영 전반에 문화예술의 가치를 제대로 접목시키려면 그만한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현대차가 여러 문화예술 분야 가운데 현대미술에 주목한 이유는 기존의 관습에서 벗어나 혁신을 추구하는 현대미술의 가치가 현대차의 브랜드 방향성인 ‘모던 프리미엄’과 부합되기 때문이다. 2011년에 발표된 현대차 브랜드 방향성 모던 프리미엄은 현대라는 기업명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으로,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경험과 가치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것을 뜻한다.현대차와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협업을 통해 가장 혁신적인 현대미술을 발굴해 전 세계인에게 선보이는 것은 물론 한국 현대미술의 세계화도 추진하는 등 현대미술 저변과 한·영 문화교류의 확대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이 파트너십에 따라 현대차와 테이트 모던 미술관은 2025년까지 초대형 전시실 터바인 홀에서 현대커미션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인 현대미술과 최신 트렌드를 선보인다.— LEE KI JUN

2015.11.09 19:04

6분 소요
미술관에 초대받은 패션

산업 일반

━ THE HOTTEST SHOW IN THE WORLD The Victoria & Albert museum show ‘Savage Beauty’ dedicated to Alexander McQueen.It is probably the hottest museum show in the world right now. Unless you have been living marooned in solitude like some Dark Ages anchorite, you will be aware that Savage Beauty, the Victoria & Albert museum show dedicated to Alexander McQueen, is packing them in.Savage Beauty Ver 1.0 was staged at the Met in New York in 2011 and proved such a hit that visitors queued for six hours in the blistering heat of a Manhattan summer to see the show. It closed at No 8 in the charts of top shows ever at the Met, with total turnstile of 661,509, propelling the late fashion designer into the company of Leonardo da Vinci, Picasso and King Tutankhamen.Now London has got a chance to see what all the mania was about... if you can get a ticket that is. When I turned up my press ticket and catalogue had already been swiped by some enterprising blagueur and it was only after some explaining that I was let in.Savage Beauty is fascinating and not just for the clothes on display. The way the show is staged over 10 discrete and varied rooms explores McQueen’s remarkable scope with commendable thoroughness. Pause long enough in front of certain garments to examine them closely and one gets a sense of not merely the creative exuberance but also the intricately detailed craftsmanship, testifying to McQueen’s early years on Savile Row, first as an apprentice at Anderson & Sheppard then at Gieves & Hawkes. At the latter he would have come into contact with the tradition of military tailoring that is a familiar refrain throughout his work.But stand back and it is the sense of spectacle that is the overwhelming impression, a sense enhanced by the setting, some of which is reminiscent of a traditional British fairground. One is dazzled, diverted and driven to ask the question whether this really should be in a museum at all.As the Met’s statistics show, big box office in museums used to be the preserve of Impressionists, Modern Masters and the occasional Pharaoh. Now the cultural consecration of a museum show is bestowed on everyone from David Bowie (whose Union Jack coat was by McQueen) to the costume departments of Hollywood movie studios.The idea of what constitutes art has shifted so much that there is very little that, with strong cultural tailwind, cannot qualify. The result is that a show like this appears scholarly in its curatorial rigour.So what if you can buy clothes made under the McQueen name in the shops? The soaring prices paid for status-conferring big brand art such as Picasso or Warhol demonstrate that the therapeutic pleasures of shopping are not restricted to high fashion.Moreover, like it or not, McQueen was a figure of considerable cultural moment: after all, almost two-thirds of a million Met visitors cannot be wrong. He was undeniably a master showman, preternaturally gifted and endowed with an extremely fecund imagination.He also commanded the respect of Daphne Guinness and the late Isabella Blow, intelligent and culturally sophisticated women, neither of whom conforms to the “pink is the new black” airheadedness of the stereotypical fashionista.If you can get hold of a ticket you really should go to the V&A and see it. This is fashion that transcends fashion and there are real fragments of magical beauty amid the gimp masks and body armour. Even so I would be intrigued to know whether McQueen will still be big box office in the museums of 50 or one hundred years from now... but that is for future generations to decide. ━ 미술관에 초대받은 패션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알렉산더 매퀸 의상 전시회, 다빈치·피카소에 버금가는 인기로 관객몰이 성공해영국 런던 빅토리아&앨버트 미술관(V&A)에서는 2010년 세상을 떠난 패션 디자이너 알렉산더 매퀸에게 바치는 전시회 ‘야성의 미’가 오는 8월 2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회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졌다. 2011년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에서 열린 ‘야성의 미’ 버전 1.0 역시 인기가 대단했다. 전시회를 보려는 사람들이 맨해튼의 찜통 더위 속에 6시간씩 줄 서서 기다렸다. 당시 총 관람객 수는 66만1509명으로 Met 전시회 역사상 8위를 기록했다. 매퀸이 레오나르도 다빈치, 피카소, 투탕카멘(BC 14세기 이집트 국왕)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순간이었다.이번 전시회를 통해 사람들이 매퀸에게 열광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관람권을 구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전시회장에 도착해 보니 내 이름으로 된 기자출입증과 카탈로그를 누군가가 교묘하게 가로채 갔다. 난 한참 동안 설명한 뒤에야 전시회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야성의 미’는 매혹적인 전시회다. 단지 전시된 의상 때문만은 아니다. 10개의 개별 전시실로 이어지는 전시는 매퀸의 광범위한 패션 세계를 샅샅이 탐험한다. 의상들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풍부한 창의력뿐 아니라 정교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매퀸이 초창기에 새빌로(런던의 고급 맞춤 양복점 거리)에서 실력을 쌓은 장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앤더슨&셰퍼드와 기브스& 호크스 같은 유명 양복점에서 견습생으로 일했다. 기브스&호크스에서 익힌 군복 재단의 특성은 그의 작품에서 쉽게 볼 수 있다.하지만 몇 발짝 뒤로 물러서서 보면 매우 인상적인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영국의 전통 축제 마당 등을 연상시키는 배경이 감흥을 더해준다. 눈이 부실 정도로 황홀한 광경이지만 패션 작품을 미술관에 전시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Met의 통계에 따르면 미술관 전시회에서는 인상파 화가와 현대미술의 거장들, 그리고 고대 이집트 왕과 관련된 전시가 흥행에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요즘은 데이비드 보위 같은 뮤지션부터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의 의상부서까지 다양한 인물과 주제로 미술관 전시회가 열린다.‘무엇이 예술인가’에 대한 개념이 크게 변화하면서 문화계의 든든한 뒷받침만 있다면 예술로 인정받지 못할 분야가 거의 없다. ‘야성의 미’처럼 패션을 주제로 한 전시회도 미술관의 엄격한 잣대를 통과하면서 학구적으로 비쳐진다.그렇다면 상점에 가서 돈을 내고 매퀸의 이름이 들어간 의상을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여기서 우리는 피카소나 앤디 워홀 등 사람들이 지위를 과시하기 위해 사들이는 유명 미술가들의 작품 가격이 나날이 치솟는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쇼핑의 즐거움이 주는 치료 효과는 고급 패션이나 미술이나 매한가지라는 사실이다.게다가 매퀸은 문화적으로 한 획을 그은 인물임에 틀림없다. 무엇보다 66만여 명이라는 Met 전시회 관람객 수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그는 불가사의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과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대프니 기네스(흑맥주로 유명한 기네스 가문의 상속녀이자 세계적인 패션 아이콘이다)와 이사벨라 블로(영국의 유명한 패션지 편집자로 매퀸의 친구이자 후원자였으며 2007년 세상을 떠났다) 같은 지적이고 문화적으로 세련된 여성들로부터 존경 받았다.어떻게든 관람권을 구할 수만 있다면 V&A 전시회에 꼭 가보기를 권한다. 패션을 초월한 패션을 볼 수 있는 기회로 얼굴을 뒤덮는 마스크와 갑옷을 연상시키는 의상 등에서는 마술적 아름다움마저 느껴진다. 난 앞으로 50~100년 후에도 매퀸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큰 인기를 끌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하지만 그건 미래의 세대들이 결정할 일이다.- 번역 정경희

2015.06.29 20:59

6분 소요
돈 되는 ‘문화’에 투자한다

산업 일반

중국 요리 인양유(陰陽魚, yin-yang fish)는 제대로 됐을 경우 조리를 마치고 손님 상에 올린 뒤에도 한참 동안 눈알을 움직일 정도로 오래 살아 있다. 이 요리는 생선 대가리와 아가미를 젖은 수건으로 감싼 채 나머지 부분을 튀겨서 만든다. 잔인한 조리법 때문에 요리가 처음 개발된 대만을 비롯해 호주, 독일 등지에선 금지됐지만 중국 본토에서는 최고급 요리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뉴욕의 미술상 엘리 클라인은 상하이의 한 음식점에서 처음 이 요리를 대했을 때 그것이 하나의 시험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자신의 미래가 결정되리라는 걸 알았다.당시 클라인은 중국의 유명 미술상 샤나 선과 뉴욕에 중국 미술을 전문으로 하는 갤러리를 설립하기 위해 논의 중이었으며 그 음식점에서의 만남은 매우 중요했다. 클라인은 선에게 신뢰감을 줘 자신과 손잡고 수백만 달러어치의 중국 미술품을 서양에 수출하도록 만들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침착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고통에 시달리는 물고기를 먹으면서 미소 지었다. 사실 그가 십대 때 홍콩에서 먹어 본 개고기보다는 훨씬 더 맛있었다. 현재 뉴욕 맨해튼의 갤러리와 베이징의 전시실을 운영하는 클라인은 애초에 구세계 미술상과 경쟁하기를 바라지 않았을 뿐 아니라 흥미조차 없었다. 그들은 한때 앤디 워홀(미국 팝아트의 거장)을 ‘앤디’라고 부르고 장-미셸 바스키아(미국 그래피티 아티스트)가 마약을 과다 복용해 쓰러질 때마다 구급차를 불렀던 사람들이다. 약 10년 전만 해도 중국 미술품은 골동품 경매장 한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는 비인기 품목이었다. 하지만 그때 이미 클라인은 중국 현대미술의 잠재력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감지했다. 그리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자신의 능력을 바탕으로 그 시장을 장악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클라인의 생각은 적중했고 이제 그는 부자가 됐다. 클라인 선 갤러리는 지난 5년 동안 중국 미술시장의 부상에 힘입어 매출이 치솟았다.난 20년 전 맨해튼의 한 공립학교에서 클라인과 그의 쌍둥이 형제 데이비드를 만났다. 그들의 가족은 홍콩에서 1년 살다가 뉴욕으로 막 돌아온 참이었다. 클라인 형제는 나나 샌님 같은 내 친구들보다 훨씬 더 멋지고 터프하고 야망이 컸다. 그들은 로워 맨해튼을 마피아 단원처럼 휘젓고 다녔다. 거리낌없이 마리화나를 피웠고 사적인 대화를 할 때는 광둥어를 사용했다. 그들 형제는 우리에게 신처럼 보였다. 마치 비기 스몰스(1990년대에 유명했던 미국 래퍼)의 랩에서 튀어나온 사람들 같았다. 레게머리에 진바지를 엉덩이에 걸쳐 입었던 엘리 클라인은 아주 터프했다. “난 마리화나를 피우고 세상 물정에 아주 밝은 위협적인 인물이었다”고 그는 회상했다.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했다.”클라인의 아버지는 홍콩에서 법학 강의를 하게 돼 가족을 데리고 그곳에 갔다. 홍콩에 사는 외국인의 자녀들은 거의 다 영국 학교에 다녔지만 클라인의 아버지는 두 아들을 공립학교에 보냈다. 쌍둥이 형제가 홍콩에서 학교 다니는 동안 얻은 큰 교훈은 독립심이었다. 학교 구내식당에 갈 때면 유일한 서양인 학생이었던 클라인은 늘 괴롭힘을 당했다고 말했다. 싸움에서 늘 이기지는 못했지만 뒤로 물러선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했다.그건 클라인이 통과한 또 하나의 시험이었다. 그 대가로 그는 중국인 여자친구를 얻었는데 그 아버지가 삼합회(중국 마피아)의 일원이었고 오빠는 그의 절친이 됐다. 클라인은 여자친구 가족과 어울려 지낸 시간이 서양인이라면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보는 중국인의 편견으로부터 자신을 해방시켜 줬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그는 중국인이 말하는 ‘하얀 악마(white devils)’라는 굴레에서 벗어났다. “중국에서 사업하려면 중국인이 돼야 한다”고 클라인이 설명했다. “난 격식을 갖추려고 통역사를 쓰기 때문에 언어는 문제가 안 된다. 문제는 사고방식이다. 미국에서 잔인하게 여겨지는 것이 중국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 서양식 도덕관을 고집하면 불리하고 비위가 약하거나 까다롭게 굴면 끝장이다. 중국의 사업은 변덕스런 관료주의의 지배를 받으며 서양인이 이해할 수 없는 모호한 시간 관념에 따라 움직인다. 인내심과 뛰어난 수완, 인맥, 존경심 등의 기본기를 갖춰야 하며 무엇보다 언제 어떤 기술을 사용해야 하는지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절대 체면을 잃어서는 안 된다.”2012년 브라보 TV에서 방영된 리얼리티 프로그램 ‘갤러리 걸스(Gallery Girls)’는 뉴욕 소호에 있는 클라인의 갤러리를 배경으로 했다. 클라인은 거기서 여자 뒤꽁무니를 쫓아다니는 냉담한 남자의 이미지를 보여줬다. 체면을 잃는 가장 확실한 방법처럼 보일지 모른다. 클라인 정도의 위치에 오른 대다수 미술상이 그런 저질 오락물에 참여해 그동안 애써 관리해 온 이미지를 망치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클라인은 그런 행동이 자신이 거래하는 중국 미술가들을 즐겁게 하고 중남미와 옛 소련 국가의 고객에게 깊은 인상을 주리라는 걸 알았다.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평단의 반응은 엇갈린다. 전통주의자들은 새로울 것 없는 일시적 유행이라고 보는 반면 진보주의자들은 혁명이라고 주장한다. 경매 업체 소더비는 후자 쪽을 지지한다. 러시아와 인도 등 신흥국 고객이 서양보다 중국 미술가를 더 좋아하고 그쪽에 돈을 투자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일부 추산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서 작품이 가장 잘 팔리는 미술가 10명 중 절반이 중국인이다. 클라인은 그중 2명인 리홍보와 류볼린의 작품 판매를 대행한다. 최근에는 스티븐 윈, 스탠리 호 같은 노련한 수집가들도 아시아 미술에 거액을 투자하기 시작했다.서양 미술과 중국 현대미술 사이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유럽인은 여전히 고독한 천재에 열광하지만 불교 문화와 공산주의 사회에서 자란 중국 미술가들은 개성을 중시하는 전통을 부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또한 그들의 고객 대다수가 그런 성향을 건방지다고 여긴다. 중국 미술계에서는 단독 작업보다 공동 작업을 선호한다. 지난해 가을 클라인의 갤러리에서 78명이 3시간 동안 꼼짝 않고 서 있느라고 애쓴 것도 그래서인 듯하다. 그들은 가만히 선 채 류볼린 작품의 일부가 됐다. 류볼린은 자원봉사자들의 몸에 물감을 칠해 기발한 배경 이미지와 하나가 되도록 만들고 사진을 찍었다. 사람들을 그림 속에 숨김으로써 개인의 자아를 주변환경 속에 녹아들게 한다. 그는 이 과정을 적절한 ‘균형’의 회복이라고 설명했다.서양의 문화적 우선순위는 정반대다. 서양에서는 자연이나 사회와의 조화보다 개인의 영광을 찬양한다. 하지만 패션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 안젤라 미소니, 억만장자 투자자 윌버 로스 등 유명인사들이 류볼린의 작품에서 화폐와 벽돌 벽 등의 배경과 하나가 됐다. 록 밴드 본 조비는 류볼린에게 앨범 커버의 디자인을 의뢰했다. 중국 현대미술은 요즘 미술계의 전형적인 스타일과는 다르다. 클라인 또한 평범한 미술상이 아니며(“내 마리화나 담배 마는 솜씨는 완벽하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고객들 역시 여느 고객과는 다르다. 고객 대다수가 신흥 경제의 신예 수집가다. 그중 미국인은 3분의 1에 불과하며 나머지는 뉴욕이나 파리·베를린으로부터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거리가 먼 지역 출신이다. 그들은 서양에서 이상적으로 여겨지는 작품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또 원하는 건 뭐든 척척 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을 지녔지만 작품을 구입할 때 가슴보다는 머리를 쓰는 사람들이다.“그들은 작품을 사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것”이라고 클라인은 설명했다. 그래서 그는 고객이 유전 하나와 맞먹을 만큼 비싼 유화를 계속 사들이도록 새로운 홍보 방식을 개발했다. 클라인은 중국 미술이 완벽한 투자 대상이라고 주장한다. “번영을 향해 치닫는 문화 전체에 투자하고 싶다고 치자. 예를 들면 중국에 말이다. 중국 인구는 10억 명이 넘는다. 지구상의 인간 5명 중 1명은 중국인이다. 중국에 돈을 투자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기존의 투자 경로 대다수가 막힌 상황에서는 문화로 눈을 돌리게 된다.”통화 투기가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중국 중앙은행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중앙은행이 중국 상품의 수출 경쟁력을 세계 최고로 만들기 위해 위안화의 가치를 인위적으로 낮추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미술 시장은 지구상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 중이다. 미국 시장이 여전히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중국이 빠른 속도로 그 뒤를 쫓고 있다. 이제 더는 부가 유럽의 백인에게 집중되지 않는다. 클라인은 모나코 고객의 전화도 받는다. 하지만 그의 고객 대다수는 새롭게 미술품 수집에 나선 신흥부자다.기성 미술계는 중국 미술 붐을 탐탁치 않게 여긴다. 포브스의 알렉산더 에레라는 중국 미술이 “마오저뚱과 문화혁명에만 초점을 맞춘 단조롭고 질 낮은 작품”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클라인에겐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 사업은 사업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업에 성공하려면 돈을 따라가야 한다. 장난기 많고 화려하며 접근하기 쉬운 중국 미술 작품은 러시아 올리가르히(신흥재벌)의 집 벽에 걸어놓기에 안성맞춤이다. 또 브라질의 콩 재벌들은 추상표현주의를 좋아하지 않는다.클라인은 14세에 홍콩에서 중국인 급우들과 싸우다 코피를 흘린 이후 줄곧 중국 문화의 부상에 대비해 왔다. 그는 베이징에서 재능 있는 미술가를 발굴하고 그곳에 갤러리도 갖고 있지만 사업상 홍콩과의 연계를 유지한다. 20년 전 여자 친구의 아버지는 삼합회의 중간 간부였지만 지금은 홍콩에서 합법적인 사업으로 거물이 됐다. 현재 그는 클라인 선 갤러리 사업이 문제 없이 돌아가도록 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혹시 파리에서 장 폴 고티에가 클라인에게 전화를 걸어 류볼린이 자신을 베르사이유 궁전의 일부가 되도록 그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면? 클라인은 그런 일도 주선할 수 있다.- 번역 정경희

2015.05.18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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