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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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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S 2023] 조주완 LG전자 사장 “혁신의 답 고객에게 있다”

산업 일반

조주완 LG전자 사장이 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신념으로 혁신을 지속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조 사장은 CES 2023 개막을 하루 앞둔 4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 만달레베이 호텔에서 ‘Life’s Good’을 주제로 열린 ‘LG 월드 프리미어(LG WORLD PREMIERE)’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날 프레스 콘퍼런스에는 국내외 기자, 업계 관계자, 관람객 등 1000여 명의 청중이 참석했다.그는 “지난 3년, 우리는 많은 일들을 겪어왔지만지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다”며 “항상 답은 고객에게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이어 “모든 혁신의 시작과 끝은 고객”이라며 “우리는 그 혁신을 통해 세상을 미소 짓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객 경험 확장 이룬 혁신 성과 소개조 사장은 LG전자가 고객 경험 확장을 위해 이룬 혁신 성과들을 소개했다. ▶출시 10주년을 맞은 올레드 TV ▶10년여에 걸친 도전 끝에 미래 성장 동력으로 본궤도에 오른 차량용 부품 솔루션 사업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진화하는 UP가전 ‘무드업 냉장고’ 등을 사례로 들었다.조 사장은 “우리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올레드 TV를 처음 시작했고, TV 시청 경험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며 “그 결과 올해 LG 올레드 TV 10주년을 맞이했고, 이제는 또다른 10년을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조 사장은 지난 약 10년간의 적자에도 흔들림 없이 도전한 차량용 부품 솔루션 사업 또한 미래 성장 동력으로서 본궤도에 올라왔다고 평가했다. 차량용 부품 솔루션 사업은 가전을 중심으로 집 안에 그쳤던 고객 경험의 영역을 차량으로까지 확장했다.그는 “세계를 선도해 온 생활가전 분야에서도 혁신의 또 다른 장을 열고 있다”면서 무드업 냉장고의 사례를 들었다. 이미 사랑받는 제품이라도 깊이 들여다 보며 새로운 혁신을 하고, 기존 제품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냈다고 설명했다.조 사장은 앞으로도 이처럼 ‘더 나은 삶(Better Life)’을 실현하기 위해 최고의(First), 차별화된(Unique), 세상에 없던(New) F·U·N 고객경험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또 이를 통해 더욱 다양한 스마트 라이프 솔루션을 선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포트폴리오 고도화 계획조 사장은 LG전자 임직원들은 더 넓은 영역에서 실험적인 아이디어로 고객 가치를 만들기 위해 도전하고 있다고도 설명했다. 사내 독립 기업인 CIC(Company In Company), 사내외의 실험적인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제품·서비스·마케팅활동을 아우르는 프로젝트 ‘LG Labs’ 등이 그 사례다. 조 사장은 이날 콘퍼런스에서 핵심기술에 대한 투자는 물론 외부와의 협력을 지속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한층 고도화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그는 “인공지능(AI), 6G 등 핵심 기술을 위한 투자도 늘리는 동시에 전기차 충전, 디지털 헬스, 웹오에스(webOS) 기반의 콘텐츠 서비스 등 많은 영역으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장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어 “그 어떤 회사도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전 세계의 전략적 파트너와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며 북미이노베이션센터(이하 LG NOVA)의 사례를 들었다.LG전자는 전사 관점의 미래 준비를 위해 2020년 말 美 실리콘밸리에 CSO(Chief Strategy Office)부문 산하로 LG NOVA를 신설했다. 세계 각국의 스타트업과 다양한 협업을 진행해 전기차 충전, 디지털 헬스, 차량용 부품 솔루션 등의 분야에서 미래를 위한 새로운 사업화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조 사장은 콘텐츠 측면에서 즐길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글로벌 리더들과 긴밀히 협력해 오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이 분야에서 최고의 파트너 중 한명이라며 파라마운트스트리밍 최고경영자(CEO) 톰 라이언(Tom Ryan)을 소개했다.무대에 선 톰 라이언 CEO는 “LG전자는 존경받는 글로벌 스마트 TV 선두주자”라며 “양사는 파트너십을 확대하며 글로벌 시장에서 콘텐츠 서비스를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기업 시민으로서 책임 강조조 사장은 글로벌 기업 시민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도 강조했다. 그는 “LG전자는 우리의 기술을 통해 인류가 당면한 시급한 문제를 해결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LG는 2011년부터 장애 청소년들이 정보 활용 능력을 높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글로벌 IT 챌린지를 개최, 지금까지 세계 각국 40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가했다.또 LG전자는 ‘장애인 접근성 자문단’의 조언을 바탕으로 장애인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배리어 프리(barrier-free) 제품을 내놓고 있다. 지난해부터는 장애인과 접근성 전문가로 구성된 ‘장애인 접근성 자문단’을 운영하며, 이들의 자문을 받고 있다.조 사장은 지속가능성을 추구하기 위해 ‘라이프스굿 어워드(Life’s Good Award)‘를 개최했다고 밝혔다. 그는 “세계가 안고 있는 사회·환경적 문제 해결을 위한 ‘라이프스굿 어워드’에 아이디어를 제안한 61개국 334팀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라며 본선에 진출한 최종 4개 팀을 발표했다. 본선에 진출한 팀들은 접근성과 환경 문제 해결을 위한 솔루션을 제안했다. 끝으로 조 사장은 “혁신은 그 자체를 위한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더 나은 삶을 제공함으로써 고객을 미소 짓게 하는 것”이라며 “LG전자는 답은 언제나 고객에게 있다는 믿음으로 혁신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2023.01.05 13:39

4분 소요
영화와 꼭 닮았네…치열한 정치와 다툼이 있는 월트디즈니컴퍼니 [한세희 테크&라이프]

IT 일반

디즈니 영화 속 세상에서는 영웅들이 힘을 합쳐 어려움에 맞서 싸우고 결국 정의가 승리한다. 하지만 꿈과 환상의 세계를 만들어내는 디즈니 회사 내부는 현실의 다른 모든 대기업과 마찬가지로 치열한 내부 정치와 다툼이 있다. 승자가 있고 패자가 있다는 점만은 디즈니가 만드는 영화와 같다. ━ 잘 가요 밥, 또 뵙네요 밥 월트디즈니컴퍼니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밥 차펙 CEO가 물러나고 밥 아이거가 다시 CEO를 맡는다고 급작스럽게 발표했다. 아이거는 2005년부터 CEO로서 디즈니를 이끌다 2020년 차펙에게 자리를 넘겼다. 자신이 정한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었다가, 그를 제치고 다시 최고경영자 자리에 돌아왔다. 사실 그는 퇴임 후에도 이사회 의장 자리를 올해 초까지 유지하며 회사에 영향을 미쳐왔다. 15년 간 CEO로서 디즈니의 부흥을 이끈 그의 유산은 여전히 디즈니 회사는 물론, 디즈니 팬들 사이에 짙게 드리워져 있다. 그는 2005년 CEO에 오른 후 이듬해 스티브 잡스가 창업한 애니메이션 제작사 픽사를 74억 달러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2009년과 2012년 마블과 루카스필름을 각각 40억 달러에 인수했다. 2019년에는 20세기폭스스튜디오와 내셔널지오그래픽 등을 거느린 폭스를 713억 달러에 인수하는 초대형 거래를 성사시켰다. 1990년대 ‘인어공주’와 ‘라이온킹’ 등 명작 애니메이션을 잇달아 내놓은 황금기 이후 부진하던 디즈니는 아이거의 공격적 인수합병 전략을 통해 어벤저스와 스타워즈, 심슨 가족 등 현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대표 콘텐트를 손에 쥔 초거대 미디어 기업으로 완벽히 부활했다. 무엇보다 이들 콘텐트는 디즈니가 넷플릭스에 대항하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를 런칭하기 위한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1951년 태어난 아이거는 1974년 미국 ABC 방송국에 입사해 경력을 시작, 1996년 ABC가 디즈니에 인수된 후 ABC 회장이 되었다. 주요 의사결정을 임원진에 과감히 맡기는 경영 스타일과 공감과 소통에 능한 성품으로 엔터테인먼트 업계 거물로 자리잡았다. 또 다른 밥, 차펙은 1960년생으로, 1993년부터 디즈니에서 일한 디즈니맨이다. DVD 유통 등의 사업을 맡기도 했으나 주로 디즈니랜드 등 테마파크 부문에서 잔뼈가 굵었다. ━ 테크 기업처럼 일하는 콘텐트 기업? 공교롭게도 차펙이 취임한 직후 코로나19 팬데믹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디즈니 경영자로서는 최악의 시기라 할 수 있다. 디즈니랜드 테마파크와 크루즈 여행 등 주력 상품들의 운영을 기약 없이 중단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국장 수익도 당연히 줄었다. 한편 이 시기는 비대면 디지털 서비스들이 약진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영상 스트리밍 서비스도 성장 기회를 맞았고, 방대하고 다양한 콘텐트를 가진 디즈니플러스는 가장 유리한 입장이었다. 이런 중요한 때, 차펙의 디즈니는 몇 가지 일로 구설수에 오른다. 2021년 스칼렛 요한슨 주연의 영화 ‘블랙 위도우’를 극장과 디즈니플러스에서 동시 개봉했다가 “5000만 달러 수준의 극장 수익 러닝 개런티를 손해 봤다” 등의 이유로 고소를 당했다. 또 초등학교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동성애 관련 교육을 금지하는 플로리다주의 새 법에 대해 침묵해 시민단체의 비판을 받다가, 급작스레 이 법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공식적으로 밝혀 주 의회의 분노를 샀다. 디즈니는 플로리다주 올랜도에 있는 디즈니랜드 운영을 위해 거의 자치구에 가까운 혜택을 받고 있는데, 이번 일로 주 의회는 혜택을 박탈하는 절차에 들어갔다. 영화나 TV 콘텐트 제작에 대한 예산 권한을 제작 책임 임원들에게서 빼앗아 자신의 심복인 카림 다니엘서에 몰아준 것도 내부의 불만을 샀다. 경기 침체를 맞아 정리해고와 채용 동결, 출장 자제 등의 조치를 취했는데, 이는 요즘 주요 테크 기업들에서 모두 취하는 조치지만 그간 불만이 쌓인 내부 분위기에 불을 지르는 결과로 이어졌다. 더구나 차펙은 물러난 아이거가 상왕 노릇을 하려 한다며 불만을 드러내 둘 사이도 소원해졌다. 이런 일들이 쌓이며 결국 차펙은 계약 기간을 못 채우고 CEO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리고 왕이 돌아왔다. 특히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임원들의 콘텐트 제작 예산 권한을 빼앗은 그의 조치는 창작자를 중시하는 디즈니의 문화에 반하는 것이라는 반발을 샀다. 다니엘의 부서는 이뿐 아니라 스트리밍 서비스도 담당했기에, 다니엘은 갑자기 미디어 업계에서 가장 강력한 권한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크리에이티브 분야 경험은 없었다. 차펙은 억울할 수도 있다. 그의 결정은 콘텐트 제작과 행정, 재무, 마케팅, 광고 판매 등의 업무를 분리해 창작자는 창작에 집중하도록 하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이는 유튜브에서도 쓰는 방식으로, 사실 아이거 역시 유튜브와 넷플릭스 등에서 일한 스트리밍 사업 전문가의 조언을 받아 비슷한 방침을 도입한 바 있다. 핵심은 디즈니가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 변신하려면 넷플릭스나 유튜브 같은 테크 기업처럼 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스트리밍 중심으로 제작과 유통의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헐리우드 배우와 감독들을 만나 자신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도록 설득해야 하는 크리에이티브 부서 임원들 입장에선, 돈에 대한 최종 결정을 스스로 하지 못한다면 ‘말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더구나 스트리밍 시장에 대한 의구심이 강해지는 상황이다. 파라마운트, 애플, CBS 등 거대 기업들이 잇달아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경쟁은 치열해지고 콘텐트 제작 단가는 치솟고 있다. 지난 3분기 디즈니의 스트리밍 서비스 가입자는 시장 전망을 뛰어넘어 150만명 가까이 늘어나며 2억 3500만 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스트리밍 부분 손실 역시 2배 가까이 늘어 14억 7000만달러에 달했다. 아이거는 디즈니에 복귀하며 2년 계약을 맺었다. 이 기간 중 디즈니의 전략적 방향을 설정하고 다음 CEO도 찾아야 한다. 아이거는 CEO 재직 중 3번이나 승계 계획을 추진하다 엎은 바 있다. 콘텐트 기업을 테크 기업으로 바꾸는 일, 그리고 적합한 새 CEO를 찾는 일도 결코 쉬워 보이진 않는다. 한세희 IT 칼럼니스트

2022.11.26 18:00

4분 소요
美 OTT 파라마운트플러스, 오는 6월부터 국내 서비스 시작

IT 일반

미국 파라마운트글로벌(옛 비아콤CBS)의 OTT 플랫폼 '파라마운트플러스'가 오는 6월부터 국내 서비스를 시작한다. 넷플릭스, 디즈니플러스, 애플TV플러스처럼 자체 플랫폼이 아닌 CJ ENM의 OTT 플랫폼 '티빙'의 '파라마운트 플러스 브랜드관'을 통해 콘텐트를 공급할 예정이다. 지난 3일(현지시간) 파라마운트는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을 열고 다음달부터 한국에서 파라마운트플러스를 서비스한다고 밝혔다. 밥 바키시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는 "파라마운트플러스를 6월 영국과 한국에 출시하고, 하반기에는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스위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주요 시장으로 확대할 것"이라고 했다. 파라마운트플러스는 오는 6월 22일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서비스를 시작한다. 아시아 국가 중에선 한국에서 처음으로 콘텐트를 공급한다. 국내 서비스 일정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파라마운트플러스는 미국의 인기 콘텐트 '스타트렉'과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 '스폰지밥', 음악전문 채널 MTV 등을 서비스하고 있다. 지난해 3월 출시 이후 올해 1분기 기준 약 4000만명의 구독자를 모으며 빠르게 성장 중이다. 회사는 오는 2024년까지 구독자를 1억명 이상 확보하기 위해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선모은 기자 seon.moeun@joongang.co.kr

2022.05.06 11:26

1분 소요
OTT 시장 파티는 끝났다…넷플릭스의 역성장이 상징하는 것들

IT 일반

OTT 시장에 위기감이 팽배하다. 업계 1위 넷플릭스가 심상찮은 실적을 발표하면서 시장이 성장 한계에 직면한 게 아니냐는 거다. 올해 1분기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 수는 20만명 감소했다.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가 감소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직전 분기만 하더라도 828만명의 가입자를 추가했는데, 올해 들어 역성장을 기록했다. 수익의 근간인 가입자 수가 줄어들면서 실적도 주춤했다. 이 회사의 순이익은 지난해 1분기와 견줘 6.4% 감소한 15억9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넷플릭스의 전체 가입자 수가 2억명이 넘는 가운데 고작 20만명이 줄어든 건 언뜻 사소한 일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시장은 이 지표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350달러 수준이던 이 회사의 주당 주가가 실적을 발표한 이후엔 200달러대 붕괴를 앞둔 건 이 때문이다. 주가가 700달러를 웃돌던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이 회사의 미래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는 게 잘 드러난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올해 2분기엔 가입자 수가 최대 200만명 감소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가입자 감소 폭이 갈수록 더 커질 거란 얘기다. ━ 계속 성장할 줄 알았는데…충격의 가입자 감소 회사의 가입자 수 역성장이 비단 넷플릭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OTT 시장이 구조적인 한계에 부딪혔다는 거다. 이런 비관론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넷플릭스는 OTT 산업의 선구자이자 스타였다. 오프라인 DVD 렌털 사업을 하던 이 회사는 2007년에 OTT 서비스를 처음 시작하고 10년 만에 2억명이 넘는 유료 가입자를 끌어모았다. 그사이 신흥 5대 빅테크를 뜻하는 ‘FAANG(메타,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의 일원이 됐다. 이 회사의 성장 방정식은 남달랐다. 벌어들인 돈의 상당한 비중을 콘텐트를 제작하는데 투자했다. 그리고 이 콘텐트를 넷플릭스에서만 독점적으로 볼 수 있게 했다. 오리지널 콘텐트를 통해 ‘락인 효과’를 꾀하기 위해서다. 볼 만한 콘텐트를 늘려 더 많은 가입자를 모으고 매출을 끌어올리면, 콘텐트에 투자하는 비용도 덩달아 늘렸다. ‘콘텐트 투자→콘텐트 흥행→가입자 증가→매출 증가→콘텐트 투자 확대’라는 선순환 구조가 매년 이어졌다. 특히 넷플릭스의 가입자 수 증가는 코로나19 팬데믹 시작과 함께 더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외부 활동이 어려워지자 사람들이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된 까닭이다. 이 회사는 2020년에만 3700만명이 넘는 가입자를 새롭게 확보했다. 상황이 바뀐 건 전 세계적으로 방역 조치 강도가 한풀 꺾인 지난해부터였다. 2021년 1분기엔 398만명이 넷플릭스에 새롭게 가입했는데, 1580만명이 순증했던 전년 1분기와 비교하면 둔화 폭이 상당했다. 2분기에 추가된 가입자 숫자도 154만명에 불과했다. 이 역시 2020년 2분기 순증 실적(1010만명)과 견줘보면 형편없이 줄어든 수치였다. 4분기의 가입자 순증도 전년과 비교해 낮았다. 이 기간 넷플릭스에서 볼 게 없었던 건 아니다. 지난해 이 회사는 콘텐트 투자 규모를 새롭게 경신했다. 그런데도 가입자 수 증가세가 주춤했다. 넷플릭스는 올해에도 역대급 콘텐트 투자를 공언했는데, 되레 가입자 수가 줄었다. 콘텐트 투자를 늘리는 게 가입자 수 증가로 이어지던 선순환 고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얘기다. 이 선순환 고리에 의지하고 있는 건 넷플릭스만 아니다. 전통의 미디어 공룡 기업과 빅테크 기업이 OTT 시장에 뛰어들었고, 넷플릭스의 전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디즈니플러스와 HBO맥스, 아마존 프라임비디오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오리지널 콘텐트를 기반으로 빠르게 세를 늘리며 넷플릭스식 성장 방식을 쫓았다. 자금을 쏟아 독점작을 확보하고, 여러 기업과의 제휴를 통해 콘텐트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쏟았다.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더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점유율 높이기에 집중했다. 이들 기업도 콘텐트에 투자하면 유료 가입자 확대로 보상받을 수 있을 거란 선순환 고리를 믿었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식 선순환 고리 붕괴의 이유는 가입자 포화 현상이 두드러진 북미와 유럽 시장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지역에선 넷플릭스의 경쟁 서비스가 존재감을 크게 드러냈다. 디즈니플러스는 출시 1년 만에 가입자 1억명을 모았고, 워너브러더스의 OTT인 HBO맥스의 성장세도 심상치 않았다. OTT 시장이 각자 고유의 영역을 지켜가며 시장을 더욱 키워나가는 ‘플러스섬’일 줄 알았는데, 가입자가 모일 대로 모인 포화 시장에선 정해진 파이를 나눠 먹는 ‘제로섬’ 게임이 됐다. ━ OTT 시장의 치열한 제로섬 게임 콘텐트 투자가 항상 가입자 증가로 이어지지 않는다는 걸 넷플릭스의 실적이 시사하자 경쟁 기업의 주가도 흔들렸다. 넷플릭스가 실적을 발표한 날엔 월트디즈니컴퍼니, 워너브라더스, 파라마운트, 스포티파이 등 다른 미디어 업체의 주가도 약세를 보였다. 기존의 수익모델과 생태계론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넷플릭스도 기존의 경영 방침을 과감히 수정할 계획을 밝혔다. 그간 광고도 없이 오로지 콘텐트로만 승부를 했던 넷플릭스의 최고경영자(CEO) 리드 헤이스팅스는 콘퍼런스 콜에서 “광고 기반 요금제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철회하고 도입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넷플릭스는 가족 이외의 사용자에게 계정을 공유하는 것을 암묵적으로 용인해왔지만, 앞으론 가족 이외 계정 공유도 제한할 계획이다. 성장 정체를 해소하기 위해 새로운 먹거리도 찾고 있다. 바로 게임이다. 플랫폼 내 게임을 출시하고, 게임회사를 줄줄이 인수했다. 콘텐트 투자를 통해 가입자 수를 끌어올려 매출을 늘리는 게 여의치 않자 전략을 수정한 것이다. 전호겸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구독경제전략연구센터장은 “경쟁 사업자가 난립하고 막대한 투자가 당연시되면서 이제 넷플릭스의 지난 10년과 같은 폭발적인 성장을 OTT시장에서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이라면서 “넷플릭스가 게임, 이커머스 등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고 계정 공유를 제한하면서 수익성 제고에 힘을 쏟는 것도 시장의 무한 경쟁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설명했다. 김다린 기자 kim.darin@joongang.co.kr

2022.04.30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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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50대 부자 리스트] 말레이시아 부자 35위 패트릭 그로브 캣차그룹 창업자

산업 일반

VOD(video-on-demand)를 둘러싼 가입자 유치경쟁에 불이 붙었다. 온라인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업가 패트릭 그로브는 쿠알라룸푸르에 소재한 자신의 스타트업 아이플릭스가 아시아를 포함한 여타 지역에서 그 경쟁의 승자가 될 것이라 말한다.쿠알라룸푸르 미드밸리 쇼핑몰에 자리한 캣차그룹 본사. 패트릭 그로브(Patrick Grove·41)는 당구대에 몸을 기대고 서 있다. 연달아 스타트업을 창업한 인터넷업계의 선구자 패트릭 그로브지만 오늘은 현지의 한 맞춤양복점을 홍보하며 본업과는 다소 동떨어진 업무를 보는 중이다. “지난 5년 동안 양복을 입은 것은 두 번입니다.” 직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패트릭 그로브는 특유의 쉰 듯한 목소리로 농담을 던진다. “한 번은 결혼식에서, 그리고 다른 한 번은 이혼하는 자리에서였지요.”그 날 밤 그로브는 공식만찬에서 상을 수상할 예정이었지만, 단벌 양복을 싱가포르에 있는 집에 두고 온 터였다. 맞춤양복점에 전화를 하자, 양복점은 패트릭 그로브가 홍보용 동영상을 찍어주면 대신 맞춤양복을 무료로 제작해주겠노라는 제안을 했다. 이리하여 촬영장에 모습을 드러낸 패트릭 그로브는 카메라맨으로부터 자기 소개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저는 자랑스러운 동남아시아인입니다. 저는 인생을 제가 기업가가 된 시점을 기준으로, 24세 이전 그리고 그 이후의 두 시기로 나눕니다.” 그가 갖고 있는 삶의 목표는 무엇일까? “저는 전 세계를 무대로 사업을 벌이며 산업 전체에 와해적 변화를 불러오는 위대한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이 위대한 기업이란 사업 2년차에 접어든 월정액 VOD제공업체 아이플릭스를 두고 하는 말이다. 패트릭 그로브는 개발도상국을 겨냥하고 있으며, 그가 소유한 캣차그룹 산하의 아이플릭스는 현재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필리핀 등지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아이플릭스에 가입하면 불법복제 DVD 한 개를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월사용료를 내고 2만 시간 분량의 영화·TV 콘텐트를 언제든지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 월사용료는 국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3달러 내외이다. 디즈니, 파라마운트, 소니, BBC, 미디어프리마 등 100개가 넘는 영화사와 배급업체의 콘텐트가 각국 언어의 자막 또는 더빙으로 제공된다. ━ 개도국 대상 VOD 제공업체 ‘아이플릭스’ 창업 잠재 투자자들에게 아이플릭스를 홍보하기 위한 엘레베이터 피치는 보통 ‘신흥시장을 겨냥한 넷플릭스(the Netflix for emering markets)’라는 말로 시작할 법하다. 그러나 패트릭 그로브와 아이플릭스의 최고경영자 마크 브릿은 왜 아이플릭스가 정말 넷플릭스와 다른지 그리고 왜 미국시장을 염두에 둔 넷플릭스가 자신들의 주요 경쟁상대가 아닌지 그 이유를 먼저 명확히 짚고 넘어간다. 아이플릭스의 경쟁상대는 불법복제 콘텐트다. 이 둘의 추산에 따르면 신흥시장에서 매년 불법복제 DVD 구매에 지출되는 금액은 대략 60억 달러에 이른다. 이는 불법 콘텐트를 스트리밍하는 온라인 비디오 채널, 이른바 ‘토렌트(torrent)’ 사이트에서 불법으로 다운로드하는 콘텐트에서 발생하는 손실은 포함하지 않은 금액이다. “우리는 인터넷 TV에 혁명을 불러오고자 합니다.” 패트릭 그로브의 말이다. “불법복제, 유튜브, 공짜 인터넷 TV, 케이블 등의 생태계를 보면, 이는 그야말로 망가진 시스템입니다. 앞으로 20년은 걸리겠지만, 저는 우리가 신흥시장에서 온라인으로 영화와 TV 컨텐츠가 소비되는 방식에 혁명적인 변화를 불러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패트릭 그로브는 이제 41세의 나이지만, 마치 오래전부터 이 업계에 몸담아왔다는 느낌이 든다. 닷컴 열풍이 불던 시기 사업의 첫 걸음을 뗀 패트릭 그로브는 2000년 파산을 경험했고 결국 다시 온라인 업계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 돌아왔다. “매일 기존의 것을 와해하자 (Disrupting Things Daily, 자신의 이메일에 덧붙인 태그라인이기도 하다)”라는 자신의 신념을 몸소 실천하고 있는 패트릭 그로브는 호주 주식거래소에 4개, 말레이시아주식거래소에 1개의 말레이시아 기업을 상장시켰다. 2015년 11월 패트릭 그로브와 여타 투자자들은 이 중 한 곳을 5억3400만 달러의 평가액에 뉴스코퍼레이션에 매각했다. 아이플릭스 및 캣차그룹 산하의 온라인 기업 3곳에 보유한 지분 및 다양한 자산매각에서 창출된 현금을 기반으로 패트릭 그로브는 포브스아시아가 발표한 말레이시아 최고부자 순위에서 35위에 이름을 올렸다. 패트릭 그로브의 순자산은 4억 달러로 추산된다.아이플릭스가 외부투자자들로부터 유치한 투자액은 적어도 1억8000만 달러에 이르는데, 이 중 1억 달러는 곧 발표될 예정이다. 쿠웨이트의 자인그룹, 로스앤젤레스에 소재한 에볼루션미디어캐피털 그리고 모기업인 캣차그룹이 이번 투자 라운드에 참여했으며, 이 밖에 지난 3월 4500만 달러를 투자한 후 투자액을 더욱 늘린 유럽의 스카이TV로 포함된다. 패트릭 그로브의 말에 따르면 아이플릭스의 평가액은 현재 “5억 달러 후반대”에 이른다.그러나 수억 달러가 추가로 수혈되어야 할 것이다. 런던에 소재한 디지털TV리서치사에 따르면, 전세계 월정액비디오콘텐트산업 매출은 2021년경 257억 달러에 이를 것이며, 시장점유율을 늘리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동아시아지역에서 아이플릭스의 경쟁사는 싱텔-소니의 후크, PCCW의 뷰 및 여타 거대기업들의 지원을 등에 입은 기업들이다. 그러나 이중 아이플릭스처럼 2020년까지 가입자수를 10억 명까지 늘릴 것이라 공언한 기업은 없다. (현재 가입자수는 400만 명에 불과하다.) 수년이 시간이 걸릴 수도 있지만, 패트릭 그로브와 마크 브릿은 2~3개의 거대기업을 제외할 경우 개도국의 신흥중산층에게 더 저렴한 가격으로 로컬 콘텐트를 제공할 수 있는, 좀 더 작은 몸집의 글로벌 기업은 많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플릭스는 이같은 기업이 되어 전세계 50개 국가 이상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구축할 계획이다. (현재로서는 기업들이 자사의 핵심적인 통계자료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에 국가마다 어떤 업체가 1위를 차지하고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다.)현재 미국 투자자들은 해외로 사업확장을 꾀하고 있는 넷플릭스가 시장의 선구자라고 생각하지만, 이미 로컬시장에는 경쟁사들이 포진하고 있다. “더 빠르고 더 민첩하게 사업을 실행한다면, 모두들 자기 시장에 들어올 것이라 두려워하는 미국 기업들보다 분명 더 훌륭한 사업을 구축할 수 있습니다.” 패트릭 그로브의 말이다. “우리는 각각의 시장에 맞춤화되어 있습니다. 모든 인구 계층에 어필하고 있지요. 인도네시아의 경우, 우리가 제공하는 영화 및 TV 프로그램의 50%는 인도네시아의 로컬 콘텐트입니다. 파키스탄과 인도네시아는 이슬람국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두 국가에서 소비되는 아이플릭스 콘텐트 중 중복되는 것은 20%에 불과합니다.”아시아 몇몇 지역에서는 인터넷 속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패트릭 그로브는 2015년 아이플릭스 서비스를 처음으로 출시했을 때부터 스트리밍의 대안이 될 수 있는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즉 동영상을 휴대폰이나 태블릿에 다운로드받아 이를 오프라인으로 휴대폰, 태블릿 혹은 TV에서 시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이러한 다운로드 기능은 패트릭 그로브 자신의 말에 따르면, “하나의 컨셉이 전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것이라고 믿는 서구권의 기업들은 생각해내지 못할 아이디어”였다. “저희는 세계 최초로 다운로드 기능을 제공한 기업 중 하나입니다.” 작년 초 기준으로 전세계 대부분의 시장에 진출한 넷플릭스는 지난 11월에서야 다운로드 기능을 선보였다. ━ 콘텐트에 뮤지션과 연예인들의 파워를 적극 이용 동시에 넷플릭스는 아직 진출하지 않았던 거의 모든 국가에서 정부승인을 받지 않은 채 검열위원회의 절차를 밟거나 지불 및 스트리밍과 관련된 기술적 난관을 다루며 1개월 무료사용 프로그램을 시작했으나, 여기서 반발에 부딪혔다. 넷플릭스는 코멘트 요청에 응답하지 않았다. 반대로 아이플릭스는 진출하기 이전 해당 국가의 규제 및 검열당국과 협력한다. 향후 몇 개월 안에 서비스를 개시할 것으로 계획하고 있는 베트남의 경우, 아이플릭스는 모든 TV 시리즈물의 모든 에피소드마다 일일이 검열당국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한편 독자적인 로컬 TV 시리즈와 영화를 제작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아이플릭스는 넷플릭스의 모델을 따르고 있다. 아이플릭스 아라비아는 몇 달 후 아이플릭스 최초의 자체 제작물 두 편을 상영할 계획이며, 여기에는 중동의 톱스타가 출연한다. 소비자들이 보고 싶어하는 콘텐트를 지속적으로 제공하기 위해, 아이플릭스는 필리핀 가수 케이릴 타트롱하리, 인도네시아 여배우 미쉘 지우딧(Michelle Ziudith), 태국의 코디미언 노트 태파니치(Note Taepanich), 그리고 말레이시아의 뮤지션 아프드린 샤우키(Afdlin Shauki) 등 연예인들의 파워를 이용하고 있다. 이들 연예인은 자신이 좋아하는 콘텐트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팬들에게 지속적으로 최신정보를 제공하며, 그 대가로 소정의 아이플릭스 지분을 취득한다.그러나 패트릭 그로브와 마크 브릿은 콘텐트, 가격 및 기술과 같은 자세한 사항에 대해 논의하기 이전, 우선 투자자들에게 자신들의 사업 아이디어가 잠재력을 갖고 있음을 설득시켜야 했다. 이 사업의 기회는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시청하기보다 자신이 원할 때 콘텐트를 시청하고 싶어하는, 그리고 최초이자 가장 기본적인 인터넷 연결의 매개체로 모바일 기기를 사용하는 개도국의 젊은이들에게 있었다. 마크 브릿의 말에 따르면 모로코, 미얀마, 파키스탄 및 나이지리아와 같은 시장은 서로 매우 다른 특성을 보이지만, “유료 TV의 보급률이 낮으며 인터넷 연결이 한 번에 더 높은 단계로 도약(어떤 경우는 연결이 전무한 상태에서 바로 4G로 직행한다)하고 있다”는 점에서 유사하다.호주 TV 방송국 및 온라인콘텐트업체에서 일하다 아이플릭스에 합류한 마크 브릿은 불법복제품이 판치는 국가의 소비자들이 정품을 구매하는 데 돈을 지불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 코웃음을 친다. “그야말로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입니다.” 아이튠스와 스포티파이의 성공은 가격만 합리적이라면 고품질의 콘텐트를 소비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기꺼이 지갑을 열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작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및 베트남에서 모바일 인터넷 사용자 40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애널리시스메이슨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중 무려 1970명이 이미 온라인으로 동영상 콘텐트를 구매한 경험이 있었다. 애널리스트 하쉬 우파드예(Harsh Upadhyay)에 따르면 응답자들이 가장 애용하는 벤더는 구글플레이와 아이튠스였으며 그 다음으로 넷플릭스와 아이플릭스가 인기순위에 올랐다.그러나 캣차그룹이 운영하는 성공적인 온라인 안내광고기업 아이프로퍼티와 아이카아시아 그리고 실패로 끝난 전자상거래기업 엔소고 등을 지원한 호주와 싱가포르의 투자운용사들은 이같은 사업모델을 이해하지 못했고 혹은 로컬업체가 글로벌한 사업을 구축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지도 않았다. 150차례 전화를 돌린 끝에야 그로브는 “산업 참여자”들 가운데서 호응해주는 투자자들을 만날 수 있었으며, 여기에는 EMC, 스카이TV, MGM, 인도네시아의 TV업체 엠텍 그리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하고 있던 이동통신사들이 포함되었다. 사실 최초의 투자라운드에서 유치한 1500만 달러는 인터넷서비스제공업체와 전화사업부를 모두 거느린 필리핀의 PLDT가 투자한 것이었다.싱가포르 정글벤처스의 매니징파트너인 데이비드 가우디는 3000만 달러 규모의 시리즈 A라운드에 투자했다. 가우디는 NBC유니버설 및 폭스네트웍스의 전 회장을 포함해 이후 아이플릭스에 합류한 임원, 디렉터 및 고문들의 숫자를 보며 안심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이플릭스는 낮은 대역폭과 낮은 신용카드 보급률 등 사용자들이 너무나 자주 직면하는 제한요소에 대응할 수 있도록 조직화되었습니다. 그 어떠한 업체도 아이플릭스만큼 경쟁에 최적화된 입지를 구축하지는 못했습니다” 가우디의 말이다. ━ 휴대전화료에 서비스요금을 함께 청구하는 시스템 경쟁 기술은 어떠한가? 케이블과 위성TV는 현재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는 지역에서조차도 아이플릭스가 겨냥하고 있는 국가들에서 그다지 높은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지 못하다. 한편 패트릭 그로브는 이제까지 항상 인프라기업으로 기능해왔던 이동통신사들이 아마 일부는 시도할지 모르나 자체적으로 최상급의 콘텐트 서비스를 제공하지는 못할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기존의 무료 공중파 TV는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예를 들어 말레이시아의 미디어제국 아스트라TV는 스포츠 라이브 방송 및 높은 인기를 누리는 한국의 새로운 TV 프로그램과 같은 온디맨드 콘텐트를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트라이브를 운영하고 있는데, 트라이브는 작년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이동통신사들과 연합해 이들 시장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이에 브릿은 아이플릭스가 이미 필리핀의 ABS-CBN 및 GMA TV 네트워크와 파트너십을 체결했으며, ‘유익한 파트너십’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다고 대답한다.현재 아이플릭스는 이동통신사 아홉 곳과 계약을 맺고 있는데, 이들 이통사는 보통 고객들에게 몇 달 혹은 일년에 걸친 시험사용기간을 제공한 후 이들을 유료사용자로 전환시켜 휴대전화요금에 서비스요금을 함께 청구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이같은 방식으로 사용료를 청구한다는 면에서 아이플릭스는 스마트한 기업입니다.” 파크스어소시에이츠의 리서치담당 시니어디렉터인 브렛 새핑턴의 말이다. 패트릭 그로브의 말에 따르면 신용카드나 은행계좌가 없다하더라도, 누구나 전화요금은 낸다는 이야기이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아이플릭스 사업에 전념하고 있는 그로브는 이 사업을 키워 예를 들어 또 다른 루퍼트 머독의 사업체에 매각할 생각은 없노라고 이야기한다. “저는 아시아에서도 위대한 글로벌 인터넷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습니다,” 패트릭 그로브의 말이다. “저희는 그 무엇이 되었던 매각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은퇴한 미국 농구스타) 마이클 조던에게 ‘5000만 달러를 줄테니 결승전에서 뛰지 말아라.’라고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것이죠.”패트릭 그로브의 꿈은 언제나 기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자부심이 강하며 쾌활한 중국계 싱가포르인인 그로브의 어머니 다이애나는 “컴퓨터 같은 것”에 대해서 잘 모르며 아들이 이같은 신념을 갖게 되기까지 전적으로 찬성한 것도 아니었다. 다이애나는 어린 아들을 장난감 가게인 토이자러스에 데리고 갔던 때를 회상한다. “아들은 장난감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주식을 살 수 있는지 알고 싶어하더군요.” 패트릭 그로브의 주장에 따르면 캣차그룹을 시작한 지 처음 10년 동안 어머니 다이애나는 아들이 사업을 접고 대신 싱가포르 대기업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기를 바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오늘날 다이애나의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지난 6월 쿠알라룸푸르에서 패트릭 그로브가 개최하는 연례행사인 와일드디지털 컨퍼런스에서, 그는 어머니를 무대에서 소개하고 아들이 여는 행사에 어머니가 참석하신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 캣차그룹 창업 후 실패 딛고 채권자 설득해 재기 패트릭 그로브의 아버지 필립은 호주 출신으로 미국 석유기업 유노컬의 변호사로 일했으며 이에 그는 자주 이사다녀야 했다. 패트릭 그로브와 두 명의 남자형제들은 싱가포르, 로스앤젤레스(이곳에서 거주하는 동안 강한 북미식 영어 악센트가 몸에 배었다), 그리고 자카르타에서 자랐다. 패트릭 그로브는 호주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시드니 대학에서 무역을 전공했으며 부업으로 친구들과 함께 휴대폰 가게를 두 곳 운영했다. 졸업 후 그는 부모님에게 2년 동안 기업에서 일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부모님은 현재 이혼한 상태로 아버지 필립은 시드니에 거주중이다) 아서앤더슨 시드니 지부에서 일했다. 하지만 더 오래 머무는 것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 때는 1999년으로 닷컴거품이 한창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패트릭 그로브는 디지털 골드러시에 뛰어들기 위해 싱가포르의 집으로 향했다.패트릭 그로브는 오랜 친구인 루크 엘리엇과 함께 1999년 6월 캣차그룹을 창업했다. 캣차그룹은 야후 포털과 같은 방식으로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그리고 호주에서 현지어로 6개의 검색엔진 웹사이트를 운영했다. 그 다음해 4월, 캣차그룹은 3200만 달러의 자금을 유치하기 위한 5일 예정의 로드쇼의 일환으로 홍콩에서 두 번째 날 행사를 개최하고 있었고 이미 2000만 달러를 모은 상태였다. 주식공개이전 거물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판매하는 중이었고, 5일 후면 싱가포르주식거래소에 상장될 예정이었다. 그런데 나스닥이 급속도로 하락하기 시작했다. 로드쇼는 중단되었고 아시아의 기술주는 급락했으며 캣차그룹의 주식공개는 보류되었다. 캣차그룹은 이미 200만 달러의 적자를 기록한 상태였고, 부채의 상당부분은 대대적으로 광고캠페인을 펼치느라 광고대행사 및 ‘동남아시아의 모든 TV방송국’에 빚진 것이었다.이사들과 여타 직원들은 파산선고를 할 것을 조언했지만, 패트릭 그로브는 채권자들이 현재 달러당 5센트의 비율로 채권을 회수하기보다는 3년 이후 완전히 빚을 청산하는 것을 선호하리라 생각했다. 이에 자신의 주장을 납득시키기 위한 개인적인 로드쇼에 나섰다. 그 당시 자신이 보여주었던 대범함에 웃음을 터뜨리면서도, 패트릭 그로브는 여전히 “사업계획보다 열정이 우선해야 한다”라고 주장한다. 캣차그룹이 당면한 불운에 대해 연일 부정적인 뉴스기사가 쏟아져나왔지만, 채권자들은 그의 주장에 동의했다. 6개국에 300명 직원을 거느렸던 조직은 곧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두 국가의 25명 직원으로 축소되었으며, 2001년 본사를 쿠알라룸푸르로 이전했다.패트릭 그로브와 루크 엘리엇은 얼마 남지 않은 자금을 탈탈 틀어 캣차그룹의 온라인 콘텐트 일부를 담당했으며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던 싱가포르의 라이프스타일 잡지 를 사들였다. 그 후 몇 년 동안 이 둘은 와 같은 잡지의 현지판을 운영했고 아시아 지역에서 독자적인 잡지를 창간해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기도 했다. 잡지의 광고수입으로 닷컴시절 진 채무를 상환했을 뿐만 아니라 온라인 사업이 실패를 거듭한 7년의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둘의 인터넷 사업에 행운은 쉽사리 찾아오지 않았다. 그러나 드디어 2007년 말레이시아 부동산 포털의 지분을 매입하면서 반전의 기회가 찾아왔다. 캣차그룹의 미디어사업부는 현재도 운영되고 있다. 레브아시아라는 이름으로 불리우며 2011년 말레이시아 주식거래소에 상장되었다. 레브아시아는 현재 5개의 온라인 웹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 말레이시아의 ‘볼레(할 수 있다) 정신’으로 성공 쿠알라룸푸르로 본사를 이전한 것은 비용문제 때문이었다. 지금까지도 말레이시아의 임금과 렌트비용은 싱가포르의 3분의 1 수준이다. 캣차그룹의 직원 수는 창업 이후 최고치인 2000명으로 이들은 35개국에 분포되어 있지만, 본사를 다시 이전할 계획은 없다. 사실 패트릭 그로브는 첨단기술 스타트업들이 둥지를 틀 수 있는 곳으로 말레이시아를 강력히 지지하게 되었다. 그는 정부지원, 훌륭한 인프라, 그리고 다개국어에 능통한 해외유학생들에게 어필하는, 영어를 사용하는 대학 등을 이유로 꼽는다. 그리고 패트릭 그로브의 말에 따르면 싱가포르와 대조적으로 가장 똑똑한 말레이시아 대학졸업생들이 갈 수 있는 다국적 기업 혹은 대규모 국영기업의 일자리가 많지 않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볼레(boleh, 말레이시아어로 “할 수 있다”라는 뜻) 정신일 것이라 그는 덧붙인다. “말레이시아 사람들, 특히 중국계와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어릴 적부터 정부에 의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어쩌면 나도 나만의 기업을 창업할 것이다’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볼레 정신은 응석받이로 크는 것과는 정반대이지요.” 말레이시아 부자 순위에 데뷔했다고 해서 패트릭 그로브의 추진력에 힘이 빠진 것은 아니다. 많은 기업가와 마찬가지로 그는 일주일 7일 내내 일하며, 이는 맞춤양복점에서 촬영기사에게 이야기했듯이 자신의 일을 즐기기 때문이다. 패트릭 그로브는 캣차그룹에 8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외 발리 해변가에 외딴 주택을 한 채 소유하고 있다. 이 밖에는 그 어떤 호화로운 장난감, 예술품 혹은 독특한 패션스타일도 찾아볼 수 없다. 2013년 그는 필리핀계 미국 가수 크리스타 클라이너와 결혼했으나 1년도 채 가지 못했다(그 자신은 “너무 오래” 유지했다라고 말한다). 어머니의 바람과는 달리, 현재 재혼할 계획은 없다. 패트릭 그로브의 계획에 항상 존재하는 것은 비행기 여행이다. “저는 비행기 타는 것을 정말 좋아합니다.” 하루 반마다 한 번 꼴로 패트릭 그로브는 동남아시아 어디론가를 향하는 비행기를 탄다. 2~3주마다 장거리 여행에 나서는데, 요새는 종종 투자자금 유치를 위한 여행이 주를 이룬다. 비행기 여행이 커다란 즐거움을 주는 이유는 사무실 생활의 온갖 훼방거리와 회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패트릭 그로브는 비행기 안에서 영화를 보는 법이 없다. 대신 전자책으로 항상 들고 다니는 사업가들의 전기를 읽는다. 최근 가장 재미있게 읽은 자서전은 소프트뱅크의 손 마사요시를 주제로 한 『에이밍 하이』이다. 또한 비행기 여행은 패트릭 그로브가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해 주며, 이는 그 자신이 생각하기에 스스로가 아이플릭스와 캣차에서 맡은 주요 역할이기도 하다. 패트릭 그로브는 스스로를 형편없는 CEO라 부른다. 그의 경영철학은 CEO로서의 적임자를 고용해 이들을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현재 패트릭 그로브는 아이플릭스가 스포츠 콘텐트도 제공해야 할지 숙고하는 중이다. 그는 축구를 직접 하고 경기를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정작 자신이 스포츠로서 주로 즐기는 것은 축구가 아니라고 말한다. “저는 기업가정신이 제가 즐기는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사업을 하는 이유는 훌륭하고 스마트하며 재능있는 사람들과 함께 와해적 변화를 불러오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 좋기 때문입니다. 저는 경쟁심이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이 일을 정말 잘 하고 싶습니다. 이것이 제가 즐기는 스포츠입니다.” - SUSAN CUNNINHAM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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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24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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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파워피플 [23] - 애니메이션 역사 다시 쓴 살아 있는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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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드림웍스에서 빅히트작 잇따라 만들어 아시아시장 공략에 공 들여 미국 애니메이션 제작자 제프리 카젠버그(63)는 애니메이션 분야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35세에 영화와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대표를 맡은 뒤 업계 꼴찌로 거의 빈사상태에 있던 스튜디오를 업게 1위로 돌려놨다. 10년간 그 자리를 지켰다.그런 다음 1994년 드림웍스 SKG를 창업해 새로운 애니메이션으로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하고 있다. 재산도 8억6000만 달러나 된다. 창조산업의 하나인 애니메이션으로 부자가 되고 파워 인물이 됐다. 10월에 한국을 방문해 박근혜 대통령과 창조경제를 주제로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자세히 살펴보면 그의 삶 자체가 창의, 그 자체다. 카젠버그는 미국 뉴욕 출신의 유대인이다. 뉴욕의 사립학교인 ‘에시컬 컬처 필드스턴 스쿨’에서 고교 과정을 마쳤다. 대학은 다니지 않았다. 대신 파라마운트 스튜디오에서 제작자들의 보조로 일을 시작했다.1974년 마케팅 부서에 배치된 그는 TV시리즈였던 ‘스타 트렉’을 영화로 다시 살리는 임무를 맡았다. 그 결실이 1979년 나온 극장 영화용 ‘스타 트렉’이다. 그는 일을 계속해 파라마운트 회장인 마이클 아이스너 밑에서 프로덕션 부장으로 일했다. 아이스너는 카젠버그와 평생 애증의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1984년 아이스너가 디즈니 본가인 ‘월트디즈니 컴퍼니’의 최고경영자로 옮기면서 카젠버그는 함께 자리를 이동했다. 아이스너는 1984년부터 2005년까지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최고경영자를 지냈다. 아이스너는 카젠버그를 자회사인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의 대표에 임명하고 디즈니의 영화 부문을 맡겼다. 불과 35세의 카젠버그에게 핵심 부문 대표를 맡긴 것이다.카젠버그는 1984년부터 1994년까지 10년간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 대표를 지냈다. 그가 재임하는 동안 디즈니 스튜디오에는 혁명이 일어났다. 그는 과감한 아이디어 채택과 함께 적극적인 투자로 한동안 자신감을 상실한 채 무너져가던 디즈니 스튜디오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1970년대 이후 침체를 면치 못했던 극작용 장편 애니메이션 시장을 복구시켜 디즈니의 명성을 재현했다. 미디어에선 이 시기를 ‘디즈니 르네상스 시대’ 또는 ‘디즈니의 부활기’라고 부를 정도다.카젠버그가 옮겼을 당시 월트 디즈니 스튜디오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 중에서 매출이 최악이었다. 카젠버그는 자회사인 터치스톤을 통해 당시로선 신선한 성인용 코미디를 연속으로 제작해 성공을 거뒀다. ‘베벌리 힐의 낮과 밤’(1986), ‘세 남자와 아기 바구니’(1987), ‘굿모닝 베트남’(1987) 등 명작 코미디가 줄이어 나왔다. 이에 힘입어 1987년에 디즈니는 최고 흥행의 스튜디오로 거듭났다. 카젠버그는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 부문도 맡았다. 이 분야에서 카젠버그는 천재적인 제작 능력을 보였다.1988년 그는 실사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결합한 판타지 애니메이션 영화인 ‘누가 로저 래빗을 모함했는가’를 7000만 달러를 들여 제작해 3억2980만 달러를 벌어들였다(이 영화는 애니메이션이 아닌 일반 영화로 분류된다). 월트디즈니 스튜디오 대표로 있던 시기에 그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작품이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알라딘’ ‘라이온 킹’ 등이다.하나같이 애니메이션의 역사를 다시 쓴 역작이자 대성공작이다. 그는 자신의 애니메이션을 그림이 신기하게 움직이면서 위트 넘치는 코미디 정도나 연출하던 이전의 애니메이션과 철저히 차별화했다.10년간 디즈니 부활 이끌어소재·스토리·캐릭터·주제가·색채·음성 연기 등을 종횡무진 결합해 애니메이션의 수준과 재미를 총체적으로 끌어올렸다. 그 결과 작품성과 흥행 모두에서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1989년 나온 ‘인어공주’는 디즈니 스튜디오의 부활을 알리는 축포 구실을 했다. 4000만 달러의 제작비를 들여 모두 2억1134만 달러의 수입을 올려 흥행기록을 새롭게 수립했다. ‘인어공주’는 1988년 개봉한 애니메이션 ‘올리버와 친구들’이 기록한 7400만 달러를 깨고 1억 달러 매출을 넘어서며 ‘블록버스터 애니메이션’ 시대를 열었다.1941년 개봉한 ‘밤비’와 1961년 개봉한 ‘101마리 달마시안’에 이어 당시까지 역대 애니메이션 흥행 3위를 차지했다. ‘인어공주’는 평단의 반응도 좋았다. 이 작품은 아카데미상에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라 1977년 작인 ‘생쥐구조대’ 이후 디즈니 애니메이션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최종적으로는 최우수 음악상과 최우수 주제가상을 받았다. 당시 이 애니메이션의 주제가인 ‘언더 더 시’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카젠버그는 그 여세를 몰아 1991년에는 2500만 달러를 들여 ‘미녀와 야수’를 제작해 4억2496만 달러를 벌어들였다. 이듬해엔 2800만 달러를 들인 ‘알라딘’을 개봉해 5억400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했다. 1994년에 내놓은 ‘라이온 킹’은 애니메이션 흥행의 역사를 아예 새로 쓰게 했다. 4500만 달러라는 당시로선 거액을 들인 이 작품이 무려 9억6148만 달러의 수입을 올린 것이다. 이 기록은 지금까지도 전통 기법으로 제작한 애니메이션 흥행기록으로는 역대 1위다.‘알리딘’은 전통 제작기법으로 만든 작품 중 3위다. 컴퓨터로 제작한 애니메이션을 합칠 경우 ‘라이언 킹’은 2010년 개봉해 10억6317만 달러의 흥행 기록을 세운 ‘토이 스토리3’에 이어 역대 2위다. 게다가 ‘라이온 킹’ ‘인어공주’ ‘알리딘’ ‘미녀와 야수’ 등은 원소스 멀티유즈를 이끄는 견인차가 됐다. 영화관에서 상영 후 비디오 가게에서 대여되는 것은 물론 음반·뮤지컬·연극 등등 다양한 미디어로 확대 재생산됐다.카젠버그는 미디어의 미래를 보는 눈도 있었다. 그는 컴퓨터 제작 애니메이션 기술을 보유한 픽사와 제휴 계약을 했다. 개성있는 영화를 제작하는 미라맥스를 디즈디 스튜디오의 틀 안에 영입하는 등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막론하고 적극적으로 미래 투자를 했다. 픽사는 지금 디지털 애니메이션을 내세워 드림웍스와 함께 애니메이션 업계를 양분하고 있다. 스티브 잡스도 픽사의 기술에 반해 초기에 투자를 했는데 카젠버그는 그 가능성을 일찌감치 알아본 것이다.그런 카젠버그는 1994년 뜻밖의 일로 디즈니를 떠나게 됐다. 그 해 4월 본사인 월트 디즈니 컴퍼니의 회장 겸 최고경영자인 아이스너 밑에서 사장 겸 최고운영책임자를 지내던 2인자 프랭크 웰스가 헬기 사고를 세상을 떠났다. 카젠버그는 자신이 그 자리에 임명될 줄 알았는데 아이스너는 그 자리를 공석으로 뒀다. 그러면서 카젠버그와 아이스너의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컴퓨터 애니메이션 제작 기술에 일찍 눈 떠그 해 9월 디즈니를 그만 둔 카젠버그는 할리우드의 제작자 스티븐 스필버그와 데이비드 게펜과 손잡고 엔터테인먼트사 드림웍스 SKG를 세웠다. SKG는 세 사람 성의 머리글자를 딴 조어다. 드림웍스는 할리우드에 경천동지할 변화를 가져왔으며 상호 창의성 경쟁의 시대를 이끌었다. 카젠버그는 여기서도 애니메이션에 주력했다. 2004년 드림웍스 SKG에서 애니메이션 부문이 분리돼 드림웍스 애니메이션이 만들어지면서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를 맡고 있다.카젠버그는 드림웍스에서 애니메이션 분야에 새로운 혁명을 일으켰다. 디즈니에서의 성공이 거대 조직과 브랜드 덕분에 거저 얻은 게 아니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의성, 그리고 경영 능력으로 이뤘음을 증명했다. 특히 예쁜 공주가 멋진 왕자를 만나 해피엔딩으로 끝나던 구시대적인 스토리라인의 고전 디즈니 애니메이션과 철저히 다른 길을 걸었다.대표적인 것이 못생긴 주인공을 내세운 ‘슈렉’이다. 이 작품에는 디즈니의 옛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슈렉 집 근처에 있는 진창에 빠져 허덕이는 장면이 잠시 나온다. 디즈니에 담긴 애증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아울러 디즈니를 넘지 않으면 드림웍스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정을 담은 것일 수 있다.‘슈렉’은 투자 대비 8배 넘는 수익절박함이 천재성을 자극한 것일까. 결과는 흥행 성공이었다. 드림웍스에서 그는 1998년 첫 작품인 ‘개미’를 낸 이래 지금까지 모두 27편의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했다. 이 가운데 1억 달러 이하를 번 것은 2000년에 만든 ‘엘도라도’와 2003년에 만든 신‘ 밧드- 7대양의 전설’ 정도다. 이 두 편의 매출은 제작비보다는 많았지만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면 적자다. 나머지는 대부분 흑자다.심지어 도박업에 비교되기까지 하는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이 정도 성공 확률은 야구의 투수로 치면 최소한 ‘노히트 노런’이다. 그는 미다스의 손을 가졌다. 손대는 작품마다 황금으로 변했다. 모두 4편의 ‘슈렉’ 시리즈로 29억5578만 달러의 수입을 올렸다.3편의 ‘마다가스카’ 시리즈로는 18억 8350만 달러를 벌어 들였다. 2편의 ‘쿵푸 팬더’ 시리즈로는 12억9743만 달러의 매출을 기록했다. 특히 2001년에 만든 ‘슈렉’은 6000만 달러의 예산으로 4억8440만 달러의 박스오피스 수입을 올렸다. 들인 돈의 8배 이상을 뽑았다. 물론 마케팅 비용을 감안하면 이보다는 수익이 떨어지겠지만 그래도 상당한 고수익이 아닐 수 없다.사실 지난 몇 년 동안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은 그야말로 ‘진격의 시대’을 맞았다. 지난해 6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12 해외콘텐츠시장 동향조사’ 보고서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2011년 전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 규모는 138억 달러였으며 2008∼2010년 사이 3년간 지속적으로 성장했고 특히 2010년에는 11.4%의 큰 폭으로 성장했다.3차원(D)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박스오피스 흥행 성공으로 인한 애니메이션 영화 분야의 성장(21.8%)과 이에 따른 홈비디오 시장의 선전에 의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해 이후 향후 5년간 애니메이션시장 연 평균 성장률은 4.2%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0년 141억2000만 달러 규모였던 전 세계 애니메이션 산업규모는 지난해 148억 달러 규모에 이르렀으며 올해는 142억4700만 달러, 2015년엔 167억8100만 달러, 2016년엔 170억 달러로 증가할 것으로 기대된다.’이런 변화의 와중에 카벤버그는 중국에 45%의 지분 참여로 ‘오리엔탈 드림웍스’를 세워 2015년 개봉을 목표로 ‘쿵푸 팬더 3’을 제작 중이다. 전 세계에서 아시아 애니메이션 시장이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한국에 온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그의 방한에는 한국에서 발견한 콘텐트로 작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팔면서 아시아 시장에서의 비율을 높이자는 생각이 담겨있을 것이다. 디즈니와 드림웍스에서 연속 혁명을 일으킨 그의 창조경제 능력을 우리가 어떻게 흡수할지를 고민할 때다.

2013.10.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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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선도하는‘유로 스타일’의 힘

산업 일반

원칙으로 돌아가 품질과 개성 중시하는 문화 통해 성공사례 창출 질문을 던지면 답변이 쇄도한다. 답변자가 누구냐에 따라 모두 맞는 말이다. 유럽에서 가장 맛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회사는? 벨기에의 피에르 마르콜리니, 아니 고디바인가? 독일은 가장 우수한 자동차를 만든다. BMW나 벤츠다. 그러나 소형차인 르스마트카가 꽤 똑똑한 차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는 세계 이동전화 산업에 혁명을 일으키다시피 했다. 지금도 여전히 세계 전화시장의 유행을 선도한다. 그러나 노키아를 매우 창의적이라고 여기던 시절은 오래전이다. 오늘날 그 영광의 주인공은 주스트(Joost)다. 주스트 개발자들은 얼마 전만 해도 일련의 대히트작을 냈으며, 그중 하나가 스카이프(Skype)다. 그런데 어떻게 선정하나? 유럽의 많은 창업사가 그 영예를 놓고 겨룬다. 여기서 키워드는 ‘유럽적’이다. 과거와는 대조적으로 지금은 실리콘밸리가 화제가 아니다. 요즘 유럽에서 큰일들이 일어난다. 세계가 주목해야 한다. 유럽이 장구한 활력의 알맹이를 재발견했다. 그것은 한마디로 원조(元祖)로서의 장점이다. 만물이 똑같이 세계화된 요즘 세상에서 우리는 간혹 색다른 물건, 고유 환경에 뿌리 박은 진짜배기를 원한다. 그것이 반드시 낡고 전통적이거나 매력적일 필요는 없다. 오늘날에는 오히려 순수한 품질과 개성을 무기로 발전하며 경쟁에서 이긴 그 무엇인 경우가 많다. 뉴스위크가 유럽 특유의 몇 가지 성공사례를 소개한다. 노인이 살기 좋은 스웨덴 비르기타 렘베(77)는 오른쪽 허파의 3분의 1을 빼놓고, 2주 전 집에 돌아왔다. 카롤린스카 대학병원(스톡홀름)에서 받은 암 수술은 잘 됐다. 전액 무료였다. 퇴직 언론인 비르기타는 수술 후 재활 클리닉에서 2주 동안 머물렀다. 역시 무료였다. 2주 동안 매일 집단미용체조를 하고, 마지막 날에는 1.5㎞를 걸었다. 아파트로 돌아온 뒤에도 계속 도움을 받았다. “가정 도우미”가 장을 봐 오고, 세탁과 청소를 해준다. 언론계에 40년 동안 봉직한 비르기타의 연금이 꽤 되기 때문에 이 도우미 봉사는 무료가 아니다. 한 달에, 놀라지 마시라, 72유로다. 스웨덴은 유럽에서 노인이 가장 살기 좋은 나라다. 핀란드나 덴마크가 이의를 제기할지도 모르겠다. 잘나갔던 1970년대 이후 서비스의 질이 떨어졌다고 불평하는 일부 스웨덴인도 역시 달리 생각할 법하다. 그러나 비르기타와 남편 롤프(81)는 관대하지만 합리적이며 제대로 굴러가는 복지제도의 산증인이다. 롤프는 2002년 1월 심장우회수술을 받았다. 그로부터 아홉 달 뒤 10㎞ 경주에 참가했다. “우리는 평생 세금을 냈다”고 비르기타가 말했다. “이제 우리 돈을 돌려받는다.” 유럽의 다른 나라들이 수시로 본받으려고 애쓰는 스웨덴의 한 가지 장점은 변화하는 시대와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다. 노인복지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고령자의 의료비 부담이 병원들 몫이어서 노인환자가 감당하지 못할 수준으로 폭증했다. “병상 재배치를 고려해야 할 정도였다”고 카린 헬크비스트 보건사회부 차관이 말했다. 그래서 스웨덴은 1992년 그 책임을 지자체로 돌렸다. 가능하면 노인들을 값비싼 병원에서 퇴원시켜 집으로 보내고 비르기타가 누리는 혜택과 비슷한 가정 도우미 체제로 지원했다. 개혁에 착수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65세 이상의 입원환자 수가 절반으로 줄었다. 스웨덴은 1999년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 국민연금제도를 손봤다. 많은 나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스웨덴의 단일 연금제도 역시 신속한 고령화 사회의 무게에 짓눌렸다. 국가는 정당들의 합의 아래 기존 연금제도를 소위 명목확정기여 방식으로 대체했다. 새 제도는 공공연금을 개인 소득과 전체 기대 잔여수명 비율에 연동시켰다. 덕분에 세입 변동, 경제 현황, 인구 변화에 맞추는 적응력을 얻었다. 새 제도는 여전히 손볼 여지가 있으나 이제 세계은행이 연금 파산에 직면하는 국가가 본받을 모델로 예시한다. 새 연금제도의 입안에 참여한 웁살라 대학의 경제학자 에드바르트 팔메르는 독일과 일본 등이 진지한 관심을 보였다고 말했다. 또다시 스웨덴 모델의 승리다. Stryker McGuire 전쟁 방식에도 요령이 있다 “미국인들은 국가건설(nation-building)을 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 관리들이 선언하듯 말해 유명해진 말이다. 이라크 사태를 보면 그 말이 사실이다. 뉴욕 소재 세계정책연구소의 반란 진압 문제 전문가인 영국인 이언 커서버트슨은 미국과 유럽 간 군사 전술의 차이를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인들의 접근방식은 ‘먼저 쏘고 나중에 질문한다’는 식이다. 유럽인들은 좀 더 위험을 감수하려 한다. 그들은 점령군보다는 동반자로 보이고 싶어한다. 미국인과 달리 유럽인들은 전쟁터 너머를 바라보는 전체론적 사고방식을 지녔다.” 유럽 군대는 최근 일련의 활동에서 유럽적 사고방식의 효과를 증명했다. 그 효과는 무지막지한 군사력 행사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잘 알고 대처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예컨대 영국군이 이라크 남부에서 순찰에 나설 때 사용한 방법을 보라. 그들은 헬멧 대신 부드러운 모자를 착용하고, 군인보다는 경찰처럼 보이려 했다. 전쟁 당사국들의 군사력 균형이 비대칭적인 시대에, 그런 방식은 흥미로운(그러나 워싱턴에는 언짢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미국이 국방비 면에서는 유럽보다 3대 1 정도로 많을지 몰라도, 21세기의 전쟁을 수행하고 힘을 투사하는 방식에서는 유럽이 (일부 지역의 경우) 가장 뛰어나다는 결론이다. 유엔 평화유지군으로 레바논에 파견된 프랑스군은 헤즈볼라와 이스라엘 측 모두와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스니아에서는 유럽연합(EU) 군대가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군대를 대신해 성공적인 평화유지 임무를 수행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는 유럽 19개국에서 파견된 대표단이 유엔 지원 아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실시된 선거를 감독했다. 콩고는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10년 동안의 내전에서 막 벗어난 나라다. “유럽 대표단은 매우 적은 인원으로도 각종 선거를 훌륭하게 치러냈다. 그것은 기적 같은 일이었다”고 런던 소재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의 대너 앨린은 말했다. 유럽이 그런 우수성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유럽의 많은 국가는 과거 식민지 종주국 시절 성급하게 무력에 의존하지 않고도 분쟁 중인 집단들을 진정시켜온 경험이 풍부하다. 유럽 옹호론자들은 미군보다 우수한 훈련 방식과 더욱 노련한 직업 장교·하사관들을 또 다른 요인으로 꼽는다. 유럽인들은 문화·인종적 편견을 극복하는 데도 뛰어나다. 점차 심화되는 다양한 문화접목 현상을 체험해 왔기 때문이다. 영국군 신병들은 무슬림을 위험한 외계인으로 간주할 가능성이 미군보다 작다. 영국 일부 도시에서는 주민의 10% 이상이 무슬림일 정도로 낯익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미군은 이라크인들을 “순례자” 내지 “모래밭의 깜둥이” 정도로 간주하도록 사상주입을 받았다. 미군의 이라크 주둔 임무가 실패하는 이유를 이해하려면 조슈아 키의 주목할 만한 신저 ‘탈영병 이야기(The Deserter’s Tale)’를 읽어 보라. 어쩌면 유럽의 최대 장점은 과장된 수사(修辭)와 비현실적인 목표를 외면하는 실용주의 정신인지도 모른다. 커서버트슨은 이렇게 말했다. “아프가니스탄에서 유럽 군인들이 현지인들과 마주앉아 어떤 협정을 이끌어낼 가능성은 미군보다 훨씬 크다. 그것은 민주주의는 아니지만 일종의 평화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현지인들이 원하는 바다.” 사격을 중단하라. 그러면 가슴과 마음이 뒤따른다. WILLIAM UNDERHILL 유럽판 실리콘밸리의 영웅들 “범유럽적 기업”이라는 표현은 에어버스사의 A380 여객기 같은 불행의 이미지를 떠오르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국가가 주도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와는 반대로 중소기업 경영자들은 범유럽적 접근방식으로 미디어와 텔레콤 분야에서 일련의 확실한 성공을 거뒀다. 그런 성공 사례 중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널리 입에 오르내리는 창업회사 주스트(Joost)도 포함된다. 주스트의 공동 설립자는 덴마크인 야누스 프리스와 스웨덴인 니클라스 젠스트롬. 그들은 정보기술(IT)계의 최정상급 스타이자, 구글의 공동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 비견될 만한 유럽인들이다. 프리스와 젠스트롬은 크게 성공한 음악 공유 웹사이트 카자의 설립자로 이미 명성을 얻었었다. 카자는 사용자들로부터 폭발적 인기를 얻은 만큼이나 음반 회사들로부터는 엄청난 욕을 먹었다. 게다가 두 사람은 스카이프도 설립했다. 스카이프는 일반인들에게 인터넷을 이용한 저렴한 전화통화 서비스를 제공해 거대 통신회사들을 흔들리게 만들었다. 이제 프리스와 젠스트롬은 자신들의 재능을 새로운 미디어·오락 사업 쪽으로 돌렸다. 그들은 동화상 공유 웹사이트인 주스트를 이용해 가장 좋아하는 TV 쇼를 시청하는 새로운 방법을 웹 세대에 제공하려 한다. 플라스마 스크린에 필적하는 고선명 화질의 동영상을 언제 어디서든 감상하게 된다는 뜻이다. 기존의 디지털 케이블과 위성 TV 사업자들은 동영상 서비스의 이용료를 계속 인상해 왔다. 그러나 주스트는 동영상을 무료로 제공한다. 게다가 의견 게시와 인스턴트 메시지 등 각종 사회적 연결망 서비스도 함께 제공하는데, 이것 역시 공짜다. 전문적으로 제작된 콘텐트와 간편한 이용방법을 갖춘 주스트는 구글의 유튜브를 과거의 기술로 보이게 만든다. 주스트는 아직은 베타 버전을 사용자 그룹에 공개해 시험 운영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강력한 제휴사를 확보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워너 브러더스, 바이어컴 등이다. 바이어컴은 계열사인 파라마운트 영화사에서 제작되는 영화뿐 아니라 MTV·VH1·코미디 센트럴 등 산하 130개 채널의 영상물들도 주스트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그것만으로도 프리스와 젠스트롬이 얼마나 멀리까지 왔는지를 보여준다고 시장조사 업체인 포레스터 리서치의 제임스 매퀴비는 말했다. “그들이 카자를 운영했을 때, 거대 미디어 회사들이 하고 싶었던 유일한 일은 그들을 고소하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2005년 26억 달러를 받고 스카이프를 캘리포니아의 이베이에 팔았다. 그 즉시 실리콘밸리의 만신전(萬神殿)에는 그들의 이름이 올라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확고한 유럽인이다. 네덜란드식으로 발음되는 주스트라는 회사 이름부터가 그렇다. 주스트의 본사는 네덜란드의 라이덴에 있다. 그곳에서 스웨덴인 최고경영자 프레드릭 데 왈은 다국적 팀을 이끈다. MTV의 전(前) 마케팅 책임자와 아파치 소프트웨어 파운데이션의 전 CEO도 그 팀의 일원이다. 주스트의 조직망은 유럽 대륙에 널리 퍼져 있어 다양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강점들을 활용한다. 예를 들어 지극히 중요하고 독창적인 P2P(peer-to-peer) 소프트웨어는 에스토니아의 프로그래머 팀이 제공한다. 또 각종 서버(그리고 주스트의 법인 설립 인가증)는 룩셈부르크에 있다. 그리고 런던 사무소는 거대 미디어 기업들과의 섭외를 담당한다. 첨단기술의 미래가 미국의 스탠퍼드와 서니베일만큼이나 라이덴과 룩셈부르크에 달려있다는 의미일까? 그럴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미래의 일을 누가 알겠는가? JOHN SPARKS 스위스 명품 시계의 미학 진정한 아름다움은 눈으로, 또 마음으로도 보인다. 진정한 아름다움은 짙은 화장의 얼굴, 잘 닦여진 표면, 자질구레한 장신구, 다이아몬드 등의 뒤에 존재하는 실체를 인식하는 데 있다. 그것은 그 아름다움에 생명을 부여하고 똑딱거리며 움직이게 만드는 원동력을 이해하는(혹은 적어도 상상하는) 일이다. 시계 얘기다. 유일무이하게, 그리고 아름답게 만들어지는 스위스 시계 말이다. 물론 시계의 존재 목적은 시간을 알려주는 일이다. 그러나 스위스 시계는 제조 기술의 최고점에 군림한 채 의상이나 과학기술의 유행으로부터 영향을 받지 않는 영속적인 방식으로 시간을 알려준다. 스위스 시계의 신비로움은 그 작동 방식에 있다. 수세기 전에 밝혀진 기계공학적 원리에 입각해 오로지 기계적으로만 작동한다. 장인(匠人)들은 수없이 많은 초소형 톱니바퀴, 평형바퀴, 내부의 보석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교하게 맞물리도록 조립하고 손으로 문질러 광택을 낸다. 1970년대에는 한때 이런 우아한 기계장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는 우주비행사와 콩코드 여객기의 시대였다. 초음속의 시간은 단순한 구조의 액정화면에서 측정됐다. 그러나 명품 시계의 내면적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수집가·감정가들의 열정이 지난 25년 사이에 포스트모더니즘적 풍조 속에 되살아났다. 스위스 시계가 고전적 의미의 미술품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발명가로서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부러워할 만큼 정교한 시계장치를 사려고 기꺼이 수십만 달러를 내놓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 명품 시계 중 하나가 내부의 복잡성과 외면의 단순성을 자랑하는 롤렉스다. 롤렉스 시계는 세계 최초의 방수시계에 속한다. 1930년대에 착용자의 손목 움직임을 동력으로 활용해 만든 최초의 “영구 작동” 시계이기도 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파텍 필립, 브레게, 예거-르쿨트르 등 몇몇 다른 명품시계 제조사는 복합기능(complication)으로 유명한 기계장치를 만드는 데 막대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기서 복합기능이란 단순히 시간과 날짜를 알려주는 기능 외에 기계적 시계에 탑재된 온갖 복잡한 기술·기능을 의미한다(수정시계의 수정이나, 당신의 삼촌이 착용하는 오래된 불로바 시계의 ‘소리굽쇠’ 같은 부품은 없다. 또 전지도 없으며, 단순히 손이나 움직임으로 태엽을 감는다). 복합기능은 달의 모양 변화를 알려주는 ‘단순한’ 복합기능부터, 세팅을 새로 하지 않고도 향후 122년 동안 달 모양 변화를 보여주는 ‘위대한’ 복합기능(제네바의 제조업체 측 표현)까지 다양하다. 예를 들어 ‘미니트 리피터’는 한 애호가의 표현에 따르면 “교회처럼” 1시간이나 15분마다 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이다. 또 ‘투르비옹’ 기능은 스프링의 동력을 전달하는 핵심 장치(이스케이프먼트: 톱니바퀴에 맞물려서 회전 속도를 조절한다)를 회전시켜 지구 중력 때문에 발생하는 시간 오차를 보정한다. ‘영구 달력’은 별도의 조정 없이 윤년을 비롯해 모든 달의 길이를 자동 계산한다. ‘균시차(均時差)’라 불리는 또 다른 복합기능은 ‘진(眞)태양시’와 인위적인 ‘평균 태양시’의 차이를 산정한다. 지난해 예거-르쿨트르 측은 3면의 구조와 18개의 복합기능을 갖춘 ‘리베르소 그란데 컴프리케이션 아 트립티케’ 시계를 선보였다. 물론 이런 명품 시계들이라도 그 생명은 정확성에 있다. 그러나 전자시계의 정확성은 그다지 높은 평가를 못 받는다. 원자시계의 정확성을 기준으로 투르비옹 기능을 평가하는 고객들은 명품 시계 업계에서 환영받지 못한다. 가격은 얼마일까? 세계 시장이 감내할 만한 가격은? 지금까지 생산된 트립티케 시계는 75개뿐으로 개당 37만5000유로에 팔린다. 진정 시대의, 아니 시간들의 표상이다. CHRISTOPHER DICKEY 프랑스 요리는 토종 재료 써야 제 맛 최근 프랑스의 위대한 요리사들이 뉴욕과 런던은 물론 라스베이거스·홍콩·도쿄에서도 식당을 개설했다. 그들은 외국의 요리법과 식재료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외국산 식재료는 프랑스산만큼이나, 때론 그보다 더 뛰어나기 때문이란다. 퓨전 요리 열풍의 기적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잠깐. 훌륭한 프랑스 요리라면 그 재료도 프랑스산이어야 하지 않을까. 만일 마법 같은 포도주를 만들어내는 프랑스 토양의 특성들에, 또 그처럼 우수한 토양에서 우러나오는 그 모든 미묘함과 우아함을 존중하는 프랑스 문화에 직접적 관련이 없다면 어떻게 프랑스 요리라고 할까. 과거에는 그랬다. 그렇다면 지금도 그래야 하지 않나. 현대는 세계화한 요리사들이 뿌리를 잃은 희한한 퓨전 음식을 고급 프랑스 요리라고 내놓는 세상이다. 또 요리용 굴이 원래 서식지에서 수천㎞ 떨어진 주방으로 공수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최근 일부 프랑스 요리사는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역사와 공간 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런 요리사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이 미셸 브라(60)다. 방목장과 숲이 많은 오브락 지방 깊숙이 자리 잡은 라기올시(市) 외곽에는 그의 이름을 딴 3성급 식당이 있다. 이곳은 프랑스의 내륙 삼림지대를 대표하는 지역이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너무도 많은 주민이 도시의 일자리를 찾아 빠져나가 녹색의 황무지로 불려 왔다. 남아 있는 주민들은 집념에 가까운 애향심으로 고향을 지켜 왔다. 브라의 아버지는 대장장이였고, 어머니는 현지인 단골손님에게 집에서 만든 음식을 팔아 부수입을 올렸다. “우리 고장엔 미식법의 전통이 없었다. 주민들은 굶어죽지 않으려고 먹었다”고 브라는 말했다. 그는 독학으로 요리법을 공부하면서 식물 종자에 관한 오래된 서적들을 정독했다. 거기에서 과거 여러 세기 동안 사용돼 온 식재료에 관한 힌트를 얻고 독특한 원료들을 찾아냈다. 산야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눈(혹은 코)을 사로잡고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꽃·풀잎·뿌리를 채집했다. 오브락 산악지대의 고원 목초지에서는 달콤한 꽃들을 발견했다. 그 꽃들은 지금 아이스크림의 독특한 향기를 내는 데 이용된다. 어느 겨울날, 산악 도시 미요 부근을 산책하던 중 발견한 노간주나무 열매는 이제 양배추·오렌지와 함께 제공되는 계절 양념의 주성분이다. 쇠고기 역시 오브락 토종소 고기다. 야채는 브라의 집 정원에서 채취하거나 현지 농민들이 재배한 것들을 이용한다. 치즈도 토산품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식평론가이자 저자인 패트리셔 웰스는 프랑스의 위대한 요리사 일부가 전 세계로, 심지어 라스베이거스에까지 진출하는 현상을 비판하지 않는다(하기야 “사막 지대였던 라스베이거스에는 애당초 토종 식품이 없다”). 그러나 원래의 토양에 확고히 뿌리내린 요리사들만큼 웰스를 흥분시키는 사람은 드물다. 그녀는 “프랑스의 힘을 유지시키는 요인은 바로 전통의 감각과 땅에 갖는 존경심이다”고 말했다. 그렇다고 혁신이나 전향적 움직임을 보이면 안 된다는 뜻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프랑스 요리에 관한 한 프랑스만큼 좋은 원산지는 없다는 게 그녀의 지론이다. GINNY POWER and ALEXANDRA BUNZL 어딜 가나 최고 수준의 건축물 런던 국립미술관 건물에 뭔가를 추가하자는 제안에 찰스 왕세자는 20여년 전 “절친한 친구의 얼굴에 박힌, 눈에 거슬리는 커다란 부스럼”이라며 발끈했다. 결국 그 제안은 폐기됐고, 찰스는 ‘전투’에서 이겼다. 그러나 ‘전쟁’에선 졌다. 찰스 왕세자가 비판하는 와중에도 현대성을 강조하는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가 설계한 로이드은행 건물은 런던의 빌딩숲에서 솟구쳐 오르기 시작했다. 스테인리스 강철로 지은 이 건물은 외계인의 우주선처럼 미끈하다(다시 말해 ‘현대적’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찰스의 취향이 20여년 전 대처 시대의 ‘포스트모던’ 설계에 잠시 활력을 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로저스와 현대성을 중시하는 동료들이 끼치는 상반된 영향력은 영국과 유럽 대륙에서 커져갈 뿐이다. 요즘 그 세대의 설계자들은 유럽의 가장 눈에 띄는 ‘수출품’이 됐다. 사실 미국인 중에서 현대 건축에 유럽 출신 설계자보다 더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은 프랭크 게리가 유일하다. 그러나 그런 게리도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영국 출신 건축가 노먼 포스터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다. 포스터는 런던 본부에 500명의 직원을 두고 카자흐스탄에서 중국에 이르기까지 수십 가지 프로젝트를 감독한다. 다른 유럽 출신 유명 건축가들도 중국에서 굵직굵직한 사업을 수주했다. 스위스의 헤르조그&드 뫼롱 건축회사 팀이 설계한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과 네덜란드의 렘 쿨하스가 설계한 거대한 CCTV 건물이 좋은 예다. 지난 1월 과감한 문화지구 조성 계획을 발표한 아부다비(아랍에미리트 수도)도 이젠 유럽 출신의 유명 건축가를 끌어들인다. 미국의 게리뿐 아니라 런던의 자하 하디드, 파리의 장 누벨이 설계한 건물도 그곳에 들어선다. 이들 건축가는 세계 고객들에게 선보일 재능과 경험을 고국에서 쌓았다. 유럽이 사회 기반시설에 엄청난 자금을 지속적으로 투자한 덕분이다(지금도 마찬가지다). EU 회원국들은 세계 여러 곳에서 상상도 못할 파격적인 설계를 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공항과 기차역(로저스가 설계한 마드리드의 새로운 바라하스 터미널과 니컬러스 그림쇼가 설계한 런던의 워털루역), 교량(다수를 산티아고 칼라트라바가 멋지게 설계했다), 문화센터(렌조 피아노가 설계한 로마의 콘서트홀 ‘파르코 델라 뮤지카’와 누벨이 설계한 파리의 새로운 브랑리 미술관)가 좋은 예다. 단지 현지 주민들이 파격적인 건축물을 좋아하기 때문만도 아닌 듯하다. 이를테면 포스터가 설계한 물방울 모양의 런던 시청사나, 피터 쿡이 설계한 파란색 미술관 쿤스트하우스(오스트리아 그라츠 소재)처럼 튀는 건축물 말이다. 실은 기술이나 새로운 소재를 시험하면서 준비된 관람객을 찾는 건축가들의 도전 정신도 마찬가지로 파격적이다. 미국과 달리 유럽에선 젊고 지명도가 떨어지는 건축가들이 설계를 다량 수주하는 경우가 잦다. 설계 공모전이 자주 열리기 때문이다(이런 공모전 중 하나인 ‘유로팬’에는 40세 미만의 건축가에게만 참가 자격이 주어진다). 로저스도 첫 행운을 그렇게 잡았다. 1971년 그가 당시 파트너인 렌조 피아노와 함께 작업한 대담하고 다채로운 설계가 681명의 쟁쟁한 건축가를 제치고 선정됐다. 곧 쓰러질 듯한 케케묵은 건물들로 가득한 곳에 들어선 그 건물은 한때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퐁피두센터는 오랜 친구 같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유럽의 좋은 예다. CATHLEEN MCGUIGAN

2007.04.03 14:34

13분 소요
“마지막 숨까지 일하겠다”

산업 일반

A Mogul in Full 섬너 레드스톤의 재산은 보통 10억 달러대 갑부의 8~9배다. 그는 지난 1월 자신의 바이어컴 제국을 분할했다. 그 후 82세의 나이에 대형 미디어 회사를 하나도 아니고 둘씩 거느리게 됐다. 하나는 CBS사다(CBS 네트워크·쇼타임, 그리고 인기 라디오 대담프로 진행자 하워드 스턴이 근무했던 CBS 라디오). 또 하나는 분할 후의 바이어컴이다(MTV·니켈로디언, 파라마운트 영화사 등등). 레드스톤은 압도적인 지분을 보유하며 양사의 회장 자리를 지켰다. 그는 2005년 연봉·보너스 등의 보수를 모두 합쳐 양사로부터 2440만 달러를 받았다. 그런 레드스톤도 평범한 남자에 불과하다, 몇 가지 사소한 측면에서는. 그는 42세의 전직 교사 폴라 포투나토를 두 번째 부인으로 맞았다(“가장 성공한 합병”이라고 레드스톤은 말했다). 레드스톤은 그 부인과 함께 가끔 베벌리 힐스의 자택에 둘러쳐진 담장으로 다가가 이웃집 개들에게 먹이 주기를 좋아한다. 그냥 재미 삼아 하는 일이다(그렇다고 그의 이웃인 실베스터 스탤론이 애완견을 돌보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요즘 그의 마음속을 어지럽히는 온갖 생각을 훌훌 털어버리기에 좋은 소일거리다. 두 회사 모두 주가가 계속 미끄러져 내린다. 바이어컴을 둘로 분할한 이유 중의 하나가 바로 주가 띄우기였는데도 말이다. 딸 샤리(52)를 후계자로 키우는 중이지만 자신이 이 세상에서 마지막 숨을 내쉬기 전까지 은퇴는 어림없는 일이라고 레드스톤은 못박는다. 그의 후계 구도 때문에 올해 집안싸움이 생겼다. 그의 아들 브렌트가 섬너와 샤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브렌트는 그들이 자신을 따돌렸다며 가족재산 중 10억 달러를 요구했다. 한편 케이티 쿠릭이 곧 CBS에 합류하게 된다. 그녀는 전통적인 저녁 뉴스 형식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정밀 검사를 받았다. 동시에 CBS는 회사를 떠난 스타 하워드 스턴을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CBS 방송망을 불법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새 직장 시리우스를 홍보했다는 주장이다. CBS는 시리우스가 스턴에게 지불한 보너스 2억 달러를 내놓으라고 요구한다(스턴은 그 소송을 ‘개인적인 원한’이라고 비난했다). 게다가 수퍼스타 TV 제작자이자 할리우드 연예인 매니저 브래드 그레이도 있다. 지난해 바이어컴은 그를 파라마운트 영화사 회장으로 영입했다. 쇼비즈니스 업계에서 가장 막강한 자리 중의 하나다. 하지만 그레이는 확대되는 할리우드 도청 추문에서 갈수록 컴컴한 구석을 드러내는 중이다. 드러나는 전모의 주인공은 악당 사설탐정 앤서니 펠리카노다(불법도청 취미가 있다고 알려졌다). 거기에 그레이를 포함한 업계의 실력자 몇 명, 그리고 그들의 막강한 변호사들이 조연을 맡았다. 사설탐정은 이 변호사들 밑에서 일했다. 뉴스위크와의 인터뷰에서 레드스톤은 그레이를 향한 무조건적 지지를 표명했다. “브래드의 인격에 절대적이고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브래드가 처음 우리 회사에 영입됐을 때 펠리카노 사건에 관해 우리에게 할 이야기는 모두 털어놓았다… 브래드가 불법적인 일은 고사하고 무엇이든 부적절한 행동에 관여했다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레드스톤이 뉴스위크와 인터뷰를 한 이틀 후, 그리고 그가 그레이 등과 만찬을 한 다음 날인 지난 4월 14일 뉴욕 타임스 1면에 그레이와 펠리카노의 관계를 더 상세히 밝힌 기사가 실렸다. 레드스톤은 그 후 그래도 그레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뉴욕 타임스를 읽었지만 여전히 내 생각을 바꿀 만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고 그는 밝혔다. 다음은 레드스톤과의 인터뷰 발췌문. 샤리를 후계자로 키우는 중인데 어떻게 돼가나. 샤리가 아주 열심히 노력한다. CBS와 바이어컴 양사의 이사진을 구성하고, 양사의 목표를 설정하는 데 주된 역할을 했다. 전략적인 문제는 톰 프레스턴이나 레슬리 문베스와 상의한다. 딸이 아주 일을 잘한다. 현재 하는 만큼 더 많은 일을 하고 더 많이 관여할 것이다. 회사 내부 사람들은 그녀를 어떻게 보나. 우려가 있는가. 그들이 내게 말해주겠나. 애초에는 많은 우려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보기에 사내에서 아주 많이 사랑받는다. 내 아내도 마찬가지다. 우리 집 여자 두 명이 회사에서 아주 인기가 높다. 혹시 사망하기 전에 자리를 딸 샤리에게 넘겨줄 가능성은. 내가 어떻게 보이나. 매일 오전 5시에 일어나 35분간 자전거를 타며 운동을 한다. 그 후 수영장을 여러 번 왕복한다. 영양섭취와 운동에도 아주 철저하다. 내 평생 지금보다 더 몸이 좋았던 기억이 없다. 최근 7kg 정도 살을 뺐다. 왠지 아나? 굶주린 고양이가 살찐 고양이보다 오래 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차라리 굶주린 고양이가 되겠다. 내가 물러날 가능성은 전혀 없다. 아들 브렌트의 소송은 어떻게 생각하나. 결정 과정에서 따돌림당했다고 주장하며 이제 자기 몫의 재산을 내놓으라고 하는데. 소송은 걱정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100% 영양가 없는 소송이다. 새 CBS나 바이어컴에 아무런 영향도 못 미친다. 그러나 나는 고통을 느낀다. 내 딸에게도 고통임을 안다. 그 때문에 가슴 아파하는 그 아이 엄마에게도 분명 고통이다. 브렌트의 자식들에게도 아픔을 줄지 모른다. 9·11 테러 영화인 유니버설 영화사의 ‘유나이티드 93’이 4월 말 개봉된다. 하지만 이미 너무 충격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바이어컴 산하 파라마운트 영화사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는 9·11 테러 5주년 약 한 달 전인 8월 초에 개봉된다. 이런 영화를 보기에는 당시의 충격이 아직 너무 생생하다고 보는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용의 대부분이 영웅담이다. 사람들이 뿌듯하게 느낄 만한 이야기들이다…. 따라서 이 영화가 큰 호응을 얻으리라 기대한다. 올리버 스톤이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CBS와 새 바이어컴 양사의 주가가 모두 떨어졌다. 바이어컴 분할 목적이 주가 띄우기였는데. 뜻대로 되지 않은 이유는. 처음부터 분할 효과는 전적으로 신뢰하지만 주가를 끌어올리지는 못한다고 말했다. 주가는 회사 실적에 따라 움직인다. 그리고 이 회사들이 제대로 실적을 올리게 되려면 앞으로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 단지 주가 때문이었다면 바이어컴을 분할하지 않았다. 우리는 이 회사들을 과거 그 어느 때보다 더 잘 키울 만한 자금능력·전략능력·영업능력을 가졌다고 본다. 분명 다른 복합기업들의 주가는 움직이지 않고 있다. 그런 회사들은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만 나는 앉아서 기다리는 데 만족하지 못한다. 변화하는 세계에의 적응이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며 세상은 변한다. 1년 내에 그 회사들의 실적이 정상궤도에 오르리라고 생각한다. 새 바이어컴이 물려받은 파라마운트 영화사는 흥행실적에서 경쟁 영화사들에 밀려났었다. 지금은 전망이 어떤가. 그 영화사는 상승세를 탔다. 최근 개봉한 영화 ‘달콤한 백수와 사랑 만들기’(Failure to Launch)는 예상의 배에 달하는 실적을 올렸다. 5월에는 ‘미션 임파서블 3’가 개봉된다. 잭 블랙 주연의 ‘나초 리브레’(Nacho Libre)가 그 뒤를 잇는다. 그 다음에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월드 트레이드 센터’가 선보인다. 지금은 파라마운트에 인수된 드림워크스가 제작했던 영화가 있다. ‘드림 걸스’(Dream Girls)라는 영화로 제이미 폭스, 비욘세, 에디 머피가 주연하는데 내가 알기에는 아주 대단한 영화다. 따라서 과거의 파라마운트는 존속하며 그 어느 때보다 전성기를 구가할 것이다. CBS의 최고경영자 레슬리 문베스, 새 바이어컴의 최고경영자 톰 프레스턴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나. 아마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둘 다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다. 나도 말리지 않는다. 두 사람은 스타일이 약간 다르다. 톰은 좀 더 느긋한 성격인 듯하다. 그는 아주 경이로운 경영진을 구성했다. 훌륭하게 일을 했다. 레슬리는 불도저형 쪽인 듯하다. 모든 분야에서 최고의 TV 프로그램을 보유한다. 프로그램에 관해서는 본능적인 감각이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둘 다 승리자다. 그리고 둘 다 승리를 원한다. 그들의 투지는 엄청나다. 나는 승리자를 좋아한다. 둘 다 승리자가 돼야 한다. 그들은 자기 사업의 어떤 분야에서든 서로 경쟁할 권리가 있다. 다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행동으로 상대방을 망하게 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경쟁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두 경영자 모두 자신의 일 중 월스트리트의 비위를 맞춰야 하는 부분은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기업분석가들에게 브리핑하는 일은 분명 TV 프로그램 선정에 비하면 따분해 보인다. 내 말이 옳은가. 나는 바이어컴에서 그런 일들을 모두 했다. 그리고 이 친구들에게는 새로운 경험이다. 하지만 아주 잘 해내고 있다. 4월 초 CBS는 NBC ‘투데이’쇼의 케이티 쿠릭을 댄 래더의 후임으로 CBS 뉴스 사업부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그녀가 TV의 저녁뉴스 시간대를 활성화시킬지 모두 궁금해 한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선 케이티 쿠릭의 ‘CBS 이브닝 뉴스’ 영입은 아주 혁신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저녁뉴스 시간대는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내가 관심을 갖는 대상은 ‘CBS 이브닝 뉴스’다. 쿠릭은 분명 그 프로그램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알아차리지 못한 일이 한 가지 더 있다. 아침 뉴스 프로그램이 타격을 받은 만큼 우리의 아침 뉴스에 유리하다는 사실이다. 당국은 재닛 잭슨의 ‘니플게이트’ 등 CBS의 ‘낯 뜨거운’ 프로그램들에 총 4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했다. 지난 3월에는 ‘FBI 실종수사대’(Without a Trace) 1회 분이 360만 달러의 벌금을 맞았다. 정부의 이런 내용 규제 압력을 어떻게 생각하나.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미국인들이 무엇을 보고 들어야 할지 정부가 판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최근의 ‘FBI 실종수사대’의 규제 건도 마찬가지다. 자녀를 더 엄격히 감시하라고 부모들에게 경고할 목적이었다. 하지만 낯 뜨거운 섹스 장면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도 규제를 받았다. 한 마디로 정부가 이 일에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하워드 스턴이 5억 달러로 알려진 돈을 받고 시리우스 위성 라디오로 떠난다고 발표한 후 몇 달 동안 CBS 라디오에 남아 있었다. 그동안 시리우스에서의 계획을 거침없이 떠벌린 듯했다. 어째서 그가 새 직장으로 옮긴 후인 2월까지 기다렸다가 소송을 제기하고 시리우스가 그에게 주식으로 제공한 2억 달러의 보너스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는가. 하워드 스턴은 우리 방송을 이용해 경쟁사를 광고했다. 광고를 내보내면 돈을 받아야 하는데 우리는 받지 못했다. 그는 그렇게 하도록 대가를 받았다. 그것은 그가 받은 보너스가 말해준다. 고소를 미룬 이유는 우리는 경솔하게 소송에 뛰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발을 들여놓았으니 끝장을 볼 작정이다. 그가 방송에서 한 행동뿐 아니라 우리의 방송을 남용한 결과 얻은 보너스도 소송 사유다. 우리는 승리를 거의 확신한다. 내 말이 믿기지 않거든 레슬리에게 물어보라. 차진우 jincha@joongang.co.kr

2006.05.02 11:48

7분 소요
고화질 DVD 표준 선점 전쟁

산업 일반

DVD Cold War 라스베이거스는 통상적으로는 대변동의 전조를 알리는 그런 장소가 아니다. 그러나 1월 초에 열린 세계 최대 전자제품 박람회인 가전제품쇼(CES)는 전면전이 벌어진 듯했다. ‘본격적인 디지털 전쟁’ ‘양 진영 전쟁에 돌입’ 같은 신문기사 제목들이 긴박감을 단적으로 보여줬다. 전쟁의 원인은 누가 고화질(HD) 비디오 디스크의 표준을 정하느냐는 문제다. 일부에서는 그 표준이 향후 최소한 10년간 비디오 업계를 지배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이 경쟁으로 업계는 이미 양대 진영으로 갈렸다. 한쪽 진영의 선두업체는 도시바다. 이들이 내세우는 HD DVD 포맷은 현재의 DVD 기술을 ‘확장’해 고화질 비디오에 요구되는 데이터 수신을 가능케 하는 저가의 대안 기술이다. 상대 진영은 소니 블루레이 디스크 연합으로 보다 혁신적인(그리고 더 고가의) 제품에 승부를 걸고 있다. 데이터 용량이 엄청나게 커지고, 소니 최고경영자인 하워드 스트링어가 “혁명적이고 경이롭다”고 격찬한 새로운 시각적 체험을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소니는 한곳을 제외한 모든 대형 영화제작사와 대다수 핵심 비디오기기 제조사의 지지를 받으며, 도시바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인텔을 끌어들였다. 양 진영은 라스베이거스 쇼에 참가하면서 포문을 열었다. 도시바는 오는 3월 499달러짜리 HD DVD 플레이어를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반면 블루레이 플레이어의 출시는 올 여름께로 가격은 1800달러다. 소니는 올 후반 출시 예정으로 팬들이 학수고대하는 플레이스테이션 3에 블루레이를 탑재함으로써 후발주자로서의 핸디캡을 극복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시장 규모가 엄청나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2005년 DVD 판매액은 약 150억 달러에 달했으며 이는 다른 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한 실적이다. 영화업계에서는 고화질 비디오 포맷들이 DVD 판매의 꾸준한 감소 추세를 막아주기를 기대한다. DVD 판매는 오래전부터 영화 입장권 판매를 앞질러 업계의 주요 수입원으로 자리 매김했다. 한편 소비자들은 상황을 조심스럽게 관망한다. 1~2년 안에 다른 포맷이 승리하게 된다면 누가 수백 달러를 들여 디스크 플레이어를 구입하려 하겠는가? 이 같은 모든 우려의 배경에는 ‘모든 표준 전쟁의 원조’에 대한 기억이 깔려 있다. 바로 1970년대와 80년대 초 소니와 파나소닉 간의 비디오 카세트 포맷 주도권 다툼이다. 물론 당시 승자는 파나소닉이었다. 파나소닉의 VHS 포맷이 국제 표준으로 인정받으며, 기술력에서 우세한 소니의 베타맥스 기기는 매장 진열대에서 먼지만 덮어썼다. VHS와 베타맥스의 대결은 비즈니스 스쿨에서 연구 사례로 삼아 신기술에 대규모 투자를 할 때 초반 지지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30년 동안 상황은 크게 바뀌었다. 70년대에는 비디오를 볼 때 두 종류 카세트 중 택일하면 됐다. 요즘은 상황이 달라졌다. 도시바의 요시히테 후지 부사장은 HD DVD를 열렬히 옹호하면서 블루레이 진영이 “비난 선전”과 근거 없는 기술적 우위 주장을 퍼뜨린다고 공격했다. 그러나 그도 이제는 광디스크가 유일한 정보전달 수단이 아니라는 점만은 즉각 인정했다. 그는 표준 전쟁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15년 후에는 DVD가 존재하지 않을 것이므로 디스크 용량도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또 소니 진영의 경쟁상대들이 ‘물리적인 포맷’ 자체에만 집착한다고 주장했다. “블루레이 추진자들은 광 디스크 세대다. 그러나 미래에는 플래시 메모리, 하드디스크 드라이브, 광 홀로그램이 보다 큰 역할을 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누가 승리할지는 점치기 어렵지만 많은 업계 분석가들은 하드디스크 드라이브(HDD)에 주목한다(PC의 ‘두뇌’가 작아져 휴대용 기기 안에 장착되는 상황을 생각해 보라). 인비저니어링 그룹의 리처드 도허티 연구소장은 “HD DVD가 출시되지 않으면 네트워크와 HDD에는 유리하다. 고객들은 개인용 비디오 리코더로 콘텐츠를 보다 많이 확보하며 이것이 HDD에서도 작동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대안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블루레이와 HD DVD 간의 싸움이 “최후의 포맷 전쟁”이라고 빌 게이츠는 선언했다. 라스베이거스에서 그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미디어 센터가 어떻게 콘텐츠를 저장하고 DVD를 불필요하게 만드는지 시연해 보였다. 골드먼삭스의 가전업계 분석가인 마쓰하시 이쿠오는 HDD가 “영화나 TV를 녹화하는 가장 쉽고 편리한 방식”으로 등장해 DVD를 변두리로 밀어내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2~3년 안에 고객들은 이번 DVD 표준 경쟁을 기억조차 못 하게 된다”고 말했다. 일부 경쟁 참가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는다. 블루레이 디스크 연합의 대변인 앤디 파슨스는 케이블, 주문형 비디오 같은 대안이 아직은 DVD를 잠식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고객들은 집으로 가져가 수집할 수 있는 DVD처럼 유형의 전통적인 ‘패키지 상품’을 여전히 선호한다는 주장이다. 최근에는 대기업들이 도박을 피함에 따라 양 진영 간의 경계선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 파라마운트와 워너는 영화를 두 가지 포맷으로 출시할 계획이다. 예전에 블루레이에만 전념했던 삼성과 휼렛패커드도 HD DVD까지 지원할 계획임을 시사했다. 한편 양 진영의 지도자들을 포함해 모든 경쟁업체들은 DVD 이후를 내다본다고 마쓰하시는 주장했다. 그는 수익성 증대의 관점에서 볼 때 DVD는 다른 전략적 프로젝트(예를 들면 도시바의 경우 평면 TV에 대대적으로 투자해 효과를 봤다)보다 중요성이 떨어질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차세대 DVD 포맷 전쟁이 그렇게 중요한지에 대해서조차 자신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최소한 이번 전쟁은 지난번처럼 결사적이지는 않으리라. 임일동 newsweek@joongang.co.kr

2006.02.03 12:55

4분 소요
드림윅스 “꿈★은 이루어진다?”

산업 일반

와 의 히트에도 불구하고 드림웍스가 이익을 내려면 아직 멀었다. 투자자들이 첫 배당금을 받는 날은 과연 언제일까. 애니메이션의 귀재 제프리 카젠버그(52)가 일일이 보여주며 이야기한다. 그는 드림웍스의 ‘상상의 집’ 이 방에서 저 방으로 바삐 돌아다니며 야심찬 영화 제작 계획의 단면들을 살짝살짝 보여준다. 상상의 집은 5년 전 드림웍스 애니메이션 기지를 만들기 위해 세운 1만7,000여 평의 복합단지 일부를 개조한 것이다. (Sinbad: Legend of the Seven Seas)은 올 봄 개봉될 영화로 검과 마법이 난무하는 모험담을 담고 있다.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와 캐서린 제타 존스가 목소리 주연을 맡았다. 카젠버그는 “매혹적인 말괄량이가 애니메이션 영화 전편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며 열심히 떠벌린다. 심술쟁이 초록색 괴물로 히트를 친 속편은 내년 개봉될 예정이다. 그 뒤 말투가 거친 물고기들로 가득한 수중 액션영화 (Sharkslayer), 동물들을 실은 배가 뉴욕 시립 동물원으로 향하다가 아프리카 연안에서 좌초하는 이야기 (Madagascar), 영리한 동물들이 도시 근교에 사는 인간들과 다툼을 벌이는 (Over the Hedge)가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로 카랑카랑하게 말하던 카젠버그도 떠들기 시작한 지 3시간이 지나자 이윽고 몸을 뒤틀기 시작한다. 드림웍스가 10편 이상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제작할 계획이라지만 다음 기회에 듣는 수밖에 없을 듯싶다. 카젠버그가 방문객들에게 “머리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며 환하게 웃는다. 드림웍스는 8년 전 부티크 정도의 크기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주로 신념과 외부 사람들 돈으로 만들어진 드림웍스의 성과물은 미미하다. 디즈니 출신의 카젠버그와 그보다 더 유명한 두 동업자인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자수성가한 음반업계 억만장자 데이비드 게펜이 함께 설립한 드림웍스는 1995년 이후 지금까지 모두 44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필름 라이브러리가 디지털화한 뒤 다시 팔리는 보물이 된 지금 문제는 그렇게 큰 스튜디오가 2년 뒤 무엇을 만들어낼 것인가 하는 점이다. 드림웍스의 작품은 59회나 아카데미 수상 후보에 오르고 지난 4년 사이 작품상을 3번 받았다. 하지만 아직도 계속 속편으로 이어지고 있는 <007 시리즈> 같은 영화는 만들지 못하고 있다. 전용 촬영장 부지도 없다. TV 쇼와 비디오 프로그램에 걸었던 높은 희망은 사라지고, 음반사업은 부침을 거듭하는 실정이다. 드림웍스의 자산은 문도 열기 전 27억 달러로 평가됐다. 그러나 설립 8주년을 맞는 지금 자산은 모두 30억 달러에 불과하다. 그것도 게펜이 낙관적으로 산정한 수치다. 수익이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 동안 디즈니의 실적이 부진했고, 12년 전 게펜으로부터 넘겨받은 음반사업에서 손실을 본 비방디가 큰 곤경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카젠버그는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부티크 정도의 드림웍스가 디즈니, 워너, 파라마운트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대기업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규 자금조달로 15억달러나 끌어들인 드림웍스의 ‘3총사’는 영화산업에 3억달러 이상을 쏟아 부을 계획이다. 드림웍스는 매년 1편씩 제작하던 애니메이션을 내년에 2~3편으로, 8편 정도 제작하던 액션영화를 12편으로 늘릴 생각이다. 카젠버그의 꿈은 오는 2005년까지 매출 30억 달러에 적어도 3억 달러의 영업이익을 내는 것이다. 그때 드림웍스는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드림웍스의 최대 투자자 폴 앨런은 3년 뒤 6억7,500만달러의 자산투자 중 일부를 회수할 수 있다(그에게는 초기 투자금 6억7,500만달러를 분할 상환받는 방법과 10억달러가 넘는 자금의 24.5% 이상을 일시에 청산받는 두 방법 중 하나 혹은 모두 주장할 권리가 있다). 드림웍스의 주주사원 1,000명 가운데 일부는 자신들이 쏟아 부은 노력과 땀을 현금으로 바꾸려 들 것이다. 게다가 드림웍스의 보잘것없는 라이브러리를 개선하고자 애쓰는 카젠버그로서는 엔터테인먼트 자산 매입에 새 자금이 필요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기업공개가 불가피할 듯싶다. 하지만 세 동업자는 관심 없다며 드림웍스를 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스필버그는 “드림웍스를 팔려고 만든 게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무슨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 카젠버그는 “기회가 생길 것”이라며 “그것이 무엇인지 말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기회가 생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드림웍스는 덩치를 불리기 위해 이미 몇 차례 협상에 나선 바 있다. 2001년 카젠버그와 게펜은 당시 큰 어려움으로 휘청거리던 음반업계의 대기업 EMI와 합병하는 문제를 놓고 서로 대화했다. 하지만 드림웍스와 EMI의 협상은 회사가치 평가 방법에 대한 이견으로 무산되고 말았다. 드림웍스가 커크 커코리언의 MGM 스튜디오에 추파를 던진 적도 있다. 월가에서는 비방디 엔터테인먼트 사업부문과 드림웍스의 합병이란 발상을 환영하고 있다. 그러나 카젠버그는 이런 발상에 대해 부인하고 있다. 드림웍스가 상장기업은 아니지만 최근 몇 달 동안 ‘드림 팀’인 세 동업자는 월가의 애널리스트들에게 몇 가지 숫자를 귀띔해 줬다. 그에 따르면 2001년 의 매출은 22억 달러, 감가상각비·이자·세금 공제 전 수익은 1억 달러에 이르렀다. 지난해 매출은 18억달러로 떨어졌다. 드림웍스는 정확한 숫자를 밝히지 않은 가운데 영업기준으로 손익분기점에 이를 정도는 아니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감가상각비, 분할상환, 9억달러에 대한 이자(리보금리+1.4%) 공제 후 순수입은 과연 얼마나 될까. 묻는 게 실례일 듯싶다. 드림웍스 같은 기업의 가치는 얼마나 될까. 희망과 꿈을 수치로 환산해 평가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드림웍스는 이 최종적으로 10억달러의 이익을 안겨줄 것이라고 말한다. 좀더 엄격한 월가라면 드림웍스 가치를 잘 나가던 해 영업이익의 10배로 잡을 것이다. 여기에서 부채를 빼면 드림웍스의 자산가치는 게펜이 주장한 30억달러가 아니라 1억달러가 된다. 한편 디즈니의 기업가치는 총매출의 2배에 조금 못 미친다. 이를 드림웍스에 적용하면 게펜이 주장한 수치와 좀더 가까워진다. 더 큰 문제는 스필버그와 게펜이 카젠버그로 하여금 드림웍스를 대대적으로 키우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하는 점이다. 스필버그는 월터 파크스와 로리 맥도널드 부부에게 스튜디오 운영을 일임하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주로 좋은 영화나 만들면서 방해받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게펜은 사무실에서 일하기보다 집에서 협상하며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게다가 스필버그와 게펜 모두 남부럽지 않은 거부다(사실 게펜은 드림웍스에서 비롯된 수익을 자선단체에 몽땅 기부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젠버그에게는 뭔가 입증해야 할 게 있다. 94년 디즈니의 마이클 아이스너 회장이 카젠버그를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고 해고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젠버그, 스필버그, 게펜은 드림웍스 출범 전 1억달러를 모으고 있었다. 당시 카젠버그는 집 두 채를 담보로 잡히고 게펜의 보증 아래 대출받아 드림웍스 지분 3분의 1을 확보했다. 변화무쌍한 드림웍스의 실질적 최고경영자(CEO)는 카젠버그다. 드림웍스에서는 어느 누구도 공식 직함을 갖고 있지 않다. 세 공동 창업자들은 월급을 받은 적도 없다. 그들은 94년 10월 꿈의 공장을 만들었다. 딱딱한 기업 스타일이 아니라 창조적 스타일로 스튜디오를 건립해 할리우드 재건에 기여하자고 맹세했다. 당시 카젠버그는 애니메이션 부문의 운영을 맡기로 돼 있었다. 그는 와 같은 히트작으로 디즈니의 부활에 이바지했지만 정작 자신은 돈을 거의 벌지 못했다(이후 그는 디즈니를 제소해 드림웍스 설립 5년 뒤 디즈니로부터 2억5,000만달러를 받아냈다). 게펜은 윌리엄 모리스 에이전시 메일룸에서 시작해 영화음악계 거물로 성장한 뒤 90년 자신의 레코드 회사를 5억5,000만달러에 MCA로 넘겼다. 그는 드림웍스에서 유니버설과 합작으로 구성중인 음반 부문을 관장할 계획이었다. 드림웍스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갈 인물은 스필버그였다. 그는 75년 자신의 두 번째 영화 로 현대판 블록버스터의 전형을 창조했다. 드림웍스 설립 당시 스필버그는 이미 할리우드 역사에 길이 남을 대박 영화 15편 가운데 6편을 만든 감독이었다. 드림웍스는 스필버그가 버티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제작상 드림웍스와 거의 관계도 없는 여러 프로젝트에서 지분 50%를 확보할 수 있었다. 베벌리힐스에서 가진 기자회견을 통해 드림웍스 설립 계획이 발표됐다. 이 계획이 언론매체를 타고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자본조달에 도움이 됐다. 카젠버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약속과 아이디어, 그리고 계획과 상관없는 과대선전이 남발되지 않을 수 없었다”며 “기자 회견장을 걸어 나오면서 앞으로 사람들의 기대를 과연 충족시킬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런 상황에서 10억달러짜리 스튜디오를 만들 사람은 없을 것이다. 게펜은 “들어가는 돈과 그 돈이 반환될 때까지 오래 동안 기다리는 투자자들의 열성과 참을성으로 볼 때 다시는 그런 일을 벌일 수 없을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얼마 후 현명한 3총사는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 창업자 폴 앨런으로부터 드림웍스 지분 18%의 대가로 5억달러를 끌어들였다(그 뒤 앨런이 1억7,000만달러를 추가 투자하면서 그의 지분은 24.5%로 늘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투자금 1억 달러에 외부로부터 9억달러를 더 끌어들였다. 그들은 지금도 드림웍스 지분을 22%씩 보유하고 있다. 2000년까지만 해도 드림웍스는 실망만 안겨줬다. 카젠버그는 디즈니와 싸우느라 정신이 다른 데 팔려 있었다. 스필버그는 처음 몇 년 간 드림웍스와 경쟁 스튜디오의 프로젝트들을 동시 진행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드림웍스의 스튜디오 부지 확보 계획은 각자 머리 속에서만 맴돌았다. 3총사가 그토록 완벽하게 구슬렸던 언론은 곧 일이 어떻게 돼 가고 있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드림웍스의 핵심사업인 영화는 진척이 부진했다. 스튜디오의 액션영화 제작은 순탄치 않았다. 애니메이션 역시 뒤뚱거렸다. 는 박스 오피스에서 1억100만달러의 수입을 올렸지만 다음 작품 는 죽만 쑤고 말았다. 카젠버그는 당시 상황에 대해 “진땀이 날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그는 공들인 가 실패한 것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며 “6개월에서 9개월 동안 악몽 같은 나날을 보냈다”고 털어놓았다. 현금이 바닥나기 시작하자 드림웍스는 주요 후원자인 앨런에게 10억달러를 신용으로 더 끌어올 수밖에 없었다. 드림웍스는 앨런 등 투자자들에게 7년 뒤 원금을 상환할 수 있다고 말했지만 목표는 연기돼야 했다. 이후 선보인 영화들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는 세계 전역에서 4억5,7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드림웍스는 스필버그의 오랜 후원사 유니버설과 수익을 50대 50으로 나눴다. 와 같은 히트작에서도 이익을 반씩 나눌 수 있었다. 그 결과 드림웍스에 수백만 달러가 추가로 유입됐다. 2001년 드림웍스의 초대형 블록버스터가 선보였다. 그것이 바로 이다. 은 5년 간의 힘든 작업 끝에 세계 전역에서 상영돼 4억8,000만달러의 수익을 올린데다 비디오 3,500만 개가 팔려나갔다. 은 올 여름 유니버설의 테마파크 놀이 주제로 탈바꿈해 선보일 예정이다. 내년에는 전편을 많이 수정한 가 나올 예정이다. 드림웍스는 수익성 없는 사업을 포기함으로써 다시 조명을 받았다. 드림웍스의 TV 제작부문은 상근 스탭 20명으로 확장됐지만 히트작이라고는 밖에 없었다. 드림웍스의 TV 제작부문은 지금 스탭 10명으로 NBC와 제작협상을 벌이고 있다. 드림웍스는 TV 애니메이션, 비디오 게임, 인터넷 콘텐츠 등 다른 사업구상을 모두 포기했다. 스필버그는 “출범과 함께 너무 많은 욕심을 낸 것 같다”며 “위는 작은데 식욕만 엄청나지 않았나 싶다”고 털어놓았다. 하지만 그는 비디오 게임 부문을 매각한 것이 아직도 못내 아쉽기만 하다. 드림웍스의 몸집이 작아진 반면 들어오는 현금은 늘었다. 유니버설, HBO 등 여러 투자자들이 대출과 선금 명목으로 4억달러를 제공했다. 은행들은 15억달러를 신용 대출해줬다. 이런 아낌없는 성원에도 불구하고 드림웍스는 1,600명만 거느린 수수한 구조를 그대로 유지했다. 드림웍스에 따르면 할리우드의 다른 영화사들이 편당 평균 4,800만달러로 만든 영화가 박스 오피스에서 4,300만달러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반면, 드림웍스는 편당 제작비 5,500만달러로 미국 내 극장에서 8,500만달러 정도를 거둬들인다. 이 대박을 터뜨리면서 드림웍스의 2001년 매출은 20억달러 이상에 달했다. 드림웍스 직원 1인당 매출 규모가 140만달러였던 셈이다. 디즈니의 21만9,000달러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스필버그 명성에 지나치게 의존 지금까지 이어진 드림웍스의 실적은 그런대로 괜찮은 편이다. 그러나 드림웍스는 지금도 스필버그의 명성과 영향력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필버그는 원래 20세기 폭스에서 구상한 를 직접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드림웍스는 톰 크루즈와 특수효과까지 앞세운 제작비용 가운데 반을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대신 스튜디오 매출의 50%를 확보할 수 있었다. 는 세계 전역에서 3억5,200만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HBO, 사이피 채널은 스필버그가 자사 프로젝트에 이름만 빌려준다면 아무리 제작비용이 많이 드는 미니 시리즈라도 열심히 자금을 갖다 바쳤다. 드림웍스는 여러 TV 방송과 계약했다. 물론 여기에는 ‘스필버그 프리미엄’이 작용했다. 스필버그가 감독하는 영화는 다른 영화보다 33%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스필버그는 새 스튜디오에 자주 모습을 나타낸다. 그는 97년 이래 드림웍스의 이해관계와 맞물리지 않은 영화는 제작하지 않았다(그는 내년에 제작에 들어가는 는 예외적으로 드림웍스와 아무 관계도 없다). 소니가 스필버그에게 확실한 블록버스터 영화 의 감독을 맡아달라고 요청하면서 드림웍스는 배제한 일이 있다. 이에 스필버그는 감독을 고사했다. 스필버그는 드림웍스의 성장계획이 여전히 못마땅한 눈치다. 카젠버그가 영화제작 부문에 3억 달러나 쏟아 부어도 스필버그는 참여할 것 같지 않다. 스필버그는 “드림웍스를 출범시킬 때 카젠버그에게 ‘한 해 35편이나 만들고 싶진 않다’고 말하자 카젠버그가 ‘8~10편 정도만 만들 것’이라고 답했다”고 전했다. 요즘 카젠버그는 한 해 영화 15편 운운하고 있다. 그의 발언으로 드림웍스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는 다시 관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소니 영화사의 존 콜리 회장은 자신도 한 해 25~30편의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입장이라며 드림웍스가 “놀라운 일을 해냈다”고 치켜세웠다. 드림웍스는 기업의 가치를 높이고 투자자들이 만족할 수 있는 성장속도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앨런은 장기적 전망으로 자신의 드림웍스 지분을 그대로 유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카젠버그가 압박감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투자자라면 현금을 만져봤으면 하고 바라게 마련 아닌가.

2003.07.22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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